생활얘기2021. 2. 10. 18:35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 꼭 필요하지 않으면 외출을 삼간다.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도보산책이고 다른 하나는 식료품 구입이다. 식료품 구입도 최소한이다. 딱히 먹을 것이 없어야 슈퍼마겟에 간다. 영하 15도의 혹한이라 산책하러 나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주로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식료품 가게를 들러곤 한다.
 
요즈음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빙어다. 이 빙어는 바다와 강을 회유한다. 주로 발트해와 내무나스(Nemunas) 강이 만나는 쿠르슈 마려스(Kuršių marios, 쿠로니아 석호, Curonian Lagoon)에서 잡힌다. 현재 시세는 1kg당 7-10유로다. 며칠 전 리투아니아인 아내는 산책길에 빙어를 사왔다. 빙어는 크기가 작지만 밀가루에 묻혀 튀겨놓으면 살이 졸깃졸깃하다.
 
한편 냉장고에 1년 6개월 전에 한국 손님들이 주고 간 번데기 통조림 세 통이 있었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눈에 잘 띄지 않아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딱히 먹을 것이 없던 참이라 번데기를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아내와 딸이 산책을 나간 사이 혼자 있을 때가 기회다. 말하지 않아도 번데기를 먹는 사람을 잠시나마 비호감으로 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선 양배추, 대파, 양파를 썰었다. 
  
프라이팬에 야채를 먼저 볶은 후 그 위에 통조림 번데기를 붓고 조금 더 볶았다.  
 

약간의 고추장을 넣어 밥을 비볐다.
한 숟가락으로 떠서 먹어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진작 먹지 않았지!"
 
번데기 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유럽인 아내가 보더니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으악~~~ 어찌 벌레를 먹을 수 있나?"
"누에가 촉감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비단의 원료가 되는 실을 만들고 바로 이 벌레가 된 거야."
"아무리 그래도 보기만 해도 혐오스럽다. 한동안 당신 보기만 해도 번데기가 떠오르겠다."
부엌문을 닫고 째빨리 나가버린다. 이런 아내에게 단백질 영양분, 혈액순환, 당뇨 등에 좋은 번데기의 효능을 아무리 설명하더라도 그 선입견을 깨부시기가 불가능할 듯하다. 그냥 맛있게 한 그릇을 뚝닥 묵묵히 비우는 것이 상책... ㅎㅎㅎ
이렇게 이번주 3일을 점심으로 번데기 볶음밥을 맛있게 먹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6. 12. 29. 08:56

연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다. 우리 집 세 식구는 보통 아침와 저녁은 각자 스스로 챙겨 먹는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번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여름에 한국인 관광객이 술안주를 가져와 남은 것을 선물로 주고 간 것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번데기를 먹은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국을 떠난 지 26년이 되었으니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번데기를 안 먹은 것은 확실하다.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번데기를 사서 먹은 것은 기억난다. 친구들과 같이 종이꼬깔에 들어있는 번데기를 입안 가득히 넣어 씹어먹곤 했다. 

한국인이 선물을 주고 간 것을 그냥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번데기를 주저없이 먹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아내와 딸이 보는 앞에서 먹게 되었다.

"지금 뭐 먹는데?" 아내가 묻는다.
"번데기."
"번데기가 뭔데?"
"일명 비단벌레라고 해."
"뭐?! 벌레!!!"
"왜 안 돼?"
"난 벌레만 봐도 징그럽고 민감한데 당신은 그런 벌레를 먹다니..."  

번데기를 보여주니 아내는 기겁했다. 벌레를 먹는 남편에 혐오감마저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아내는 제안을 하나 했다.


"곧 다가오는 새해에 현지인 친구들이 모일 때 한국 음식이라고 내놓으면 좋을텐데..."
"당신이 기겁하는데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뻔하잖아. 괜히 한국인과 한국음식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지. 그러니 지금 먹어버리는 것이 좋지. ㅎㅎㅎ"

그런데 딸아이 반응은 의외였다.
"아빠가 먹고 싶으면 먹을 수도 있지 뭐."
"사실 아빠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있으니까 그냥 먹는 거야."

깡통에 든 번데기는 참 매웠다. 서너 입 먹고 나니 너무 매서워 기침까지 하게 되었다.
번데기만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관광객이 선물한 누렁지를 끓여서 번데기를 다 넣어서 먹었다. 이렇게 "번데기누렁지"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매운 맛으로 오전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냉장고에 있던 깡통번데기 자리를 이제야 비웠다는 것에 만족한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