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모음2009. 11. 19. 10:56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도 짧게 하자면 그는 근대 계몽주의를 최고 절정에 올려놓은 프로이센(후에 독일)의 철학자이다. 《순수이성 비판》,《실천이성 비판》 등의 저서로 후대 철학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칸트는 프로이센의 수도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지금의 칼리닌그라드)에 살았다. 1256년 건설된 이 도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도시는 안타깝게도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었다.

칼리닌그라드는 리투니아와 인접해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수학에서 널리 알려진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 문제"를 촬영하기 위해 지난 해 다녀왔다. 이외에도 칸트가 평생을 이 도시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산책했기 때문에 시민들을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왕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산이 없다. 다리와 도시 전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림이 필요했다. 하지만 군사도시라서 열기구 등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근처에 가장 높은 건물을 찾아가서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신축중인 아파트라 승강기가 없었다. 16층까지 무거운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너무 힘들게 올라갔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수학자 오일러가 해결하고자 고민한 그 7개 다리(한붓그리기 문제)와 철학자 칸트가 시계처럼 정확하게 산책한 공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가보기 힘든 이 도시의 구시가지 전경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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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수학 수수께끼가 된 쾨니히스베르크 7개 다리 현모습
* 최근글: 뱀이 다가와도 태연히 풍경화 그리던 소녀
               다리에서 개를 던지는 영상 파문,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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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2. 14:24

튜튼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도시는 철학자 칸트가 평생을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를 유명케 한 또 다른 것은 바로 7개 다리 건너기 문제이다.

두 개의 섬을 형성하며 프레겔 강이 쾨니히스베르크 중심가를 흐르고 있다. 이 섬과 강변을 연결하는 7개의 다리가 있다. 18세기 이 7개의 다리들을 한 번만 건너면서 처음 시작한 위치로 돌아오는 길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흔히 이를 한붓그리기 문제라고 한다. 1736년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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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어, 지금의 다리 모습은 그 전의 다리와 똑 같을 수 는 없지만, 그래도 18세기 사람들을 고민하게 한 7개  다리 건너기 문제를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지난 6월 하순 방문했을 때 그 다리들의 흔적을 찾아다녀보았다. 3과 4번 다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에서 내려다본 7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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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7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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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7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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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내려다본 6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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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본 6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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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6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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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내려다본 5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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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본 5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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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본 2번 다리 (원래 다리는 부서지고 새로운 고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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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1번 다리 (원래 다리는 부서지고 새로운 고가다리)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1. 15:05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철학자 칸트의 무덤은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칸트의 무덤을 직접 가본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 아닐 것이다. 그의 무덤은 유럽연합 국가들에 둘러싸인 고립된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위치해 있다.

원래 이 도시는 튜턴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철학자 칸트(1724-1804)가 평생을 살았던 이 도시는 안타깝게도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었다.

지난 6월 하순 칸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민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다리 위를 지나서 그의 무덤을 찾았다. 그의 무덤은 루터교 대성당 건물 한 쪽 벽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 독일인 관광객들이 비싼 러시아 비자 비용을 내고 자국 출신 세계적인 철학자 칸트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는 짧거나 긴 시간 속에 끝없이 변화하는 생물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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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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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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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은 대성당 한 쪽 벽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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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산책 나올 때 사람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바로 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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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쪽에서 바라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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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공부하고 가르쳤던 쾨니히스베르크 (지금은 칸트) 대학교 교정에 있는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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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공부하고 가르쳤던 쾨니히스베르크 (지금은 칸트) 대학교 교정에 있는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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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동상 곁에 산책 나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할머니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