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4. 1. 7. 07:39

최근 아내가 모처럼 집을 비웠다. 지방 도시에 일이 있어 이틀 동안 집을 비웠다. 집에 남은 딸아이와 함께 밥때가 되어 무엇을 해먹을까 고민했다. 

"아빠가 뭘 해주면 좋겠니?"
"아빠, 우리 각자 알아서 먹자. 아빠는 아빠 좋아하는 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거."
"좋은 생각이다."

이렇게 한 끼는 쉽게 해결되었다. 어디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다시 밥때가 되었다. 배가 고픈 딸아이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아빠, 우유가 없어! 달걀도 없어! 난 공부할테니까 아빠가 가게에 갔다와."
"그럼, 아빠가 사와야 할 물건들을 써봐라."
"알았어. 리투아니아어로? 영어로? 한국어로?"
"당연히 한국어지."
"어려워. 그래도 한번 써볼게."

이렇게 딸아이는 부엌에서 힘들게 쇼핑목록을 한글로 썼다.


게란         계란
오랜지     오렌지
굘           귤
팡           빵
옴뉴수     음료수

살펴보니 한글 표기의 어려움이 고스란힌 담겨져 있었다. 
에, 애  ('게'인지 '개'인지는 문맥이나 써여진 글자로 구별한다)  
파, 빠  (대부분 주변 유럽인들은 파와 빠를 구별하지 못한다)  
으 (대부분 유럽어는 이에 해당하는 철자가 없다)

"그래도 해바라기씨는 정확하게 썼네. 이젠 정말 더 열심히 한글책을 읽고 쓰는 공부를 해야겠다."
"맞아."


하지만 돌아서면 딸아이는 또 잊어버린다. 그래도 종종 이런 계기를 활용해 자극을 주면서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도록 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호텔방을 들어가면 큼직한 텔레비전 화면에 이름이 적혀있으면 웬지 기분이 좋다. 이런 경우 늘 머리 속에는 아주 옛날에 자주 들었던 노래가 맴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다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이어서 침대과 욕실을 둘어본 후에 의자에 앉아 책상 쪽을 바라보니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그 동안 많은 호텔에 투숙을 했지만, 이런 명확한 목록은 처음 보았다. 

'손님들이 여기와서 얼마나 사고를 쳤기에 이런 물품 훼손 목록이 놓여있을까?'


목록 속의 물품은 무려 67개 되었다. 이런 목록이 책상에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자세함에 한 번 더 놀랐다. 그 배상액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 확인해보았다. 목록 속 화폐단위는 라트비아 라트이다. 1라트는 한국돈으로 약 2100원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보자.

문          225라트 (47만원)
문손잡이 20라트 (4만 2천원)

텔레비전 700라트 (150만원)
리모콘    25라트 (5만 3천원)

카펫 평방미터 40라트 (8천 400원)
커튼              170라트 (36만원)

책상    100라트 (21만원)
전화    30라트 (6만 3천원)

세면대  250라트 (53만원)
샤워     250라트 (53만원)

보아하니 이 호텔에는 파티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음주로 인해 훼손하는 경우가 흔하는 듯하다. 그래서 잘 보이는 곳에 훼손 목록을 놓고 사람들에게 주의심을 주고 있다. 그냥 편안하게 잠만 자고 나오면 될 텐데 말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