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0. 3. 26. 08:01

90년 어느 가을 당시 유고슬라비아(지금은 세르비아)
수보티짜의 한 에스페란토 모임에서 슬라이드 필름을 이용해 한국에 관한 강연을 했다.
강연을 다 마치자 뒷쪽에서 한 중년의 아줌마가 다가와 속삭였다.

"s-ro, vi havas tre belajn dentojn."
(선생님 치아가 너무 예뻐요.)
"애고, 강연 도중 제 치아만 열심히 보셨군요."
라고 마음 속으로 응답했다.

이렇게 유럽사람들이 종종 젊은 시절 내 치아를 보고 감탄을 했지만,
중년의 나이가 들어가니 치과를 찾아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어제 아내와 함께 치과를 다녀왔다.
집에는 초등학교 2학년생 딸아이 요가일래가
고등학생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집에 남았다.

"수도검침원, 경찰, 옆집아저씨 등 누구든지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전화도 안 받을께."


이렇게 오후 한 시에 집을 나섰다. 치과에서 한 30분을 보낸 후 아내와 함께 가구점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5시경 아내는 집으로 돌와왔고, 나눈 중간에 지인을 만났다.
모처럼 만난지라 저녁식사까지 이어졌다. 밤 9시경에 전화가 왔다.

"아빠, 엄마가 아빠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보래."
"지금 막 집으로 가는 길이야."


밤 9시 30분 집에 도착하자 요가일래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손에는 반으로 접은 A4 종이를 들고 있었다.

"자, 여기 선물이야."

첫 면은 백지였지만 가운데를 오려내어 세 번째 면이 보이도록 했다.
아빠가 치과의자에 누워 치료를 받는 그림이다. 치약, 칫솔, 치아 등이 그려져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 면을 넘기자 두 번째 면에 딸이 쓴 글이 보였다.
"아빠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보고싶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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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치과에 간다고 오후 1시에 나가 오후 9시 30분에 돌아왔다.
아빠가 걱정이 되고 보고 싶어서 이렇게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림을 보면서 중간에 딸아이에게 전화라도 할 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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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