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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에서 러시아인들의 다차(dacha) 삶을 한번 엿볼 수 있었다. 콘스탄틴·갈리나 부부가 자신의 모스크바 근교 다차로 초대했다. 다차는 통나무 등으로 지은 크거나 작은 집과 텃밭이 딸린 주말 농장이다. 주말에 이곳에 머물면서 채소를 재배하고 휴식을 취한다.
모스크바 거주지에서 50km 떨어진 이 다차까지 토요일 오전 버스로 이동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두 시간이었다. 다차로 향하는 차량 행렬 등으로 교통 체증이 극심했다. 공산 체제 때 대체로 600평방미터의 땅을 무상으로 분배하면서 다차는 러시아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지금은 매매가 자유롭다.
이들 부부는 여러 해 전에 통나무 집이 있는 이 다차를 구입했다. 거실, 욕실, 방 3개로 구성되어 있고 난방 시설까지 잘 갖춰져 있다. 여름철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생활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날 가까운 일가 친척이 모였다. 이들 부부, 자녀 셋, 언니네 가족 등 모두 12명이었다. 러시아인들의 다차 삶에 꼬치구이(샤슬릭) 요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전날 특별히 잡은 양 한 마리(14kg)를 요리해서 먹으면서 1박을 보내기로 했다. 양고기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오늘은 텃밭에 자라는 채소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텃밭에 붉은 사과가 군침을 삼키게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웃집 사과나무였다. 주렁주렁 달린 사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뭇가지가 이들 부부의 텃밭으로 축 쳐져 내렸다. 오성 이항복의 감나무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과는 단물이 꽉 차서 참 맛있었다.
아로니아 열매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 따서 먹어 보니 떫으면서 약간 단 맛이 났다. 아로니아에 많이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은 항산화 작용이 강해 노화 방지뿐만 아니라 항암 효과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주로 주스나 잼을 만들어 먹는다.
꽃을 심어 어린 꽃사과나무 둘레를 마치 화관으로 장식을 해놓은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어릴 적 한국에 있는 우리 집 뒷밭에 자라던 앵두나무도 보인다. 유럽에서 주말 농장을 직접 가지게 되면 꼭 심어 놓은 나무가 바로 앵두나무이다. 앵두의 새콤달콤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 앵두는 그 옛날 시골집 향수를 자아내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선조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해서 특별히 "한국 전나무" 한 그루를 텃밭에 심었다고 했다.
통나무 집에서 본 텃밭의 모습이다. 면적은 700평방미터다. 여름철이 지나 얼핏 보기에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잡초가 우겨져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 잡초를 퇴비용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홍당근, 백당근(파스닙), 꽃배추, 배추 등이 자라고 있다.
야생딸기(fragaria)도 재배하고 있다.
봄철 같은 날씨가 지속되어서 그런지 딸기가 하얀 꽃을 또 피우고 있다. 이 텃밭의 딸기가 이 집단 다차 지역에서 맛있기로 소문 나 있다고 한다. 갈리나는 그 이유가 옆에서 키우고 있는 야생딸기에 있다고 여긴다. 벌들이 서로 가까이에 있는 야생딸기 꽃과 딸기 꽃을 번갈아 왕래한 결과가 아닐지...
고수다. 스님들의 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사찰 음식 중 하나인 고수는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 유럽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 중 하나다. 비누나 고무 탄 냄새가 나서 처음에는 꺼려지지만 느끼한 맛을 없애 주는 독특한 향을 지니고 있다. 리투아니아인 아내는 발코니 화분에 고수를 키워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고수는 신장, 간, 췌장을 정화시켜 주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겨자무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겨자무는 호스래디시(hoarseradish) 혹은 서양 고추냉이로 불린다. 혈액 순환을 돕고 고혈압, 감기예방, 가래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톡 쏘는 맛으로 고기를 먹을 때 곁들여서 먹는다. 갈리나의 남편 콘스탄틴이 만드는 보드카의 주된 재료 중 하나이다.
콘스탄틴은 겨자무 뿌리 하나를 뽑아서 직접 보여 주었다. 뿌리를 부러뜨려 보니 하얗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리투아니아 텃밭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땅 속이 아니라 땅 위에 토양을 쌓아 놓고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비닐을 열어 보니 퇴비가 자연 발효되고 있다. 채소를 수확한 후 곧 바로 잡초, 짚, 낙엽 등을 쌓아 비닐로 덮어 놓는다. 이유를 물어 보니 이 텃밭의 토질이 진흙이라서 땅을 깊게 파는 것보다 땅 위에 퇴비 등으로 채소 재배에 알맞은 토양을 만든다고 했다.
잡초 위에는 여러 개의 비닐 봉투가 흩어져 있다. 저 비닐 봉투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혹시 쓰레기를 담아 놓은 봉투가 아닐까? 궁금해서 물어 보니 뜯은 잡초를 봉투에 넣고 꽁꽁 묶어서 햇볕에 놓아서 퇴비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공기에 노출된 퇴비장보다 이렇게 하면 훨씬 더 빨리 발효가 된다고 했다.
텃밭에서 뜯은 잡초를 버리지 않고 자라는 채소 사이에 끼어 넣는다.
이들 부부가 백당근과 홍당근을 캐내고 있다. 이 두 당근의 줄기와 잎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흡사하다. 백당근은 파스닙(parsnip) 혹은 설탕당근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백당근(아래 사진 왼쪽)은 당근(아래 사진 오른쪽)보다 미네랄과 비타민 등이 더 풍부하다. 유럽에서 30여년 살고 있으면서 음식으로 종종 먹는 파스닙(백당근) 재배 현장을 이렇게 지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수확한 채소와 열매다. 해당화 열매도 보인다. 해당화 열매는 말려서 차로 마신다.
다차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여기에 있는 다차들은 다 높은 담장으로 되어 있다. 리투아니아 등에 있는 다차는 거의 담이 없다. 이웃 다차의 텃밭이 흔히 다 보인다.
"(러시아 다차는) 아마 안에 가진 것이 많아서 높은 벽을 쌓아 놓은 듯하다"라는 내 말에 "아마 안에 가진 것이 없거나 게을러서 황무지가 된 텃밭이라 이웃에게 보여 주기에 창피해서 높은 벽을 쌓아 놓았을 것이야"라고 옆에 있던 러시아인이 응수했다.
러시아 다차에 왔으니 인근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숲에 들어가면 길을 잃는다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구나... 더 깊게 들어가고 싶어도 울창한 숲에서 정말 길을 잃을까 두러워 일행은 재빨리 빠져 나왔다.
땅 위에는 빨간 색 열매가 사방에 즐비했다. 은방울꽃 열매다. 은방울꽃의 은은한 향기가 이 숲 속에 진동했을 것이다.
개미들이 침엽수 낙엽을 끌어 모아 태산 같은 집을 지어 놓았다.
북위 45도 이상에서 자라는 말굽버섯은 당뇨나 항암 효과에 좋다고 한다. 한편 말굽버섯은 고대부터 불쏘시개용으로 사용되었다. 섞어가는 나무 기둥에 10여개의 말굽버섯이 자라고 있다.
이날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콘스탄틴·갈리나 부부의 다차 삶에서 척박한 중앙 아시아 땅에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고려인들의 흔적을 느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상은 초유스 모스크바 여행기 2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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