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14. 5. 20. 06:52

강의를 하려고 대학교에 갔다. 한 학생이 물었다.
 
"오늘 새벽 엄청나게 내리친 번개와 천둥 소리를 들었나?" 
"새벽 2시에 잠들었는데 전혀 듣지 못했다."

그제서야 대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딸아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빠, 우산 가져가고 번개 치면 무조건 숨어."
"알았어. 하지만 햇빛이 있는데 비가 오겠니..."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물었다.

"너 왜 학교 가기 전에 번개 이야기 했는데?"
"오늘 새벽 엄청 번개치고 비가 왔어. 그래서 내가 깼어."

사실 근래에 햇빛이 나는 날보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리투아니아에도 많았다. 하지만 남유럽 발칸반도중부에는 130년 만에 최악의 홍수 사태가 발생했다. 보통 수개월에 내릴 비가 단 사흘에 집중해서 쏟아졌다. 수만명의 이재민과 수십명이 사망했다.   

가장 큰 피해는 사바강을 따라서이다. 사바강은 슬로베니아 북부의 알프스에서 발원해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를 거쳐 베오그라드에서 도나우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홍수 피해 지역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땅이다. 전쟁을 겪은 고통 속에 거대한 홍수가 또 다시 인명과 재산을 할퀴고 간다. 재해 소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스니아 에스페란토 친구가 알려주었다. 아래는 이 페이지에 올라온 재해 상황 사진들이다.


국제 사회의 지원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나라별로 갈라졌지만, 재난 앞에 발칸반도 주민들이 결속해 빠른 복구 작업을 해내길 바란다. 물살을 헤치고 음식을 전달하는 군인, 강아지를 치켜들고 턱까지 찬 물을 헤치는 아이...... 세월호의 잠수부와 학생들을 떠올린다. 힘내시고 평안하소서......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2. 5. 14. 05:11

최근 "15년 후 확 달라진 사라예보 모습"을 통해 폐허가 된 건물이 말끔히 복원된 사라예보의 변화를 전했다. 오늘은 누릭꾼들 사이에 화제가 된 사라예보 시민들의 전쟁 중과 지금의 모습을 소개한다.

사진작가 톰 스톧다르트(Tom Stoddart)는 1992-1996년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20년이 지난 후 그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을 촬영했다. 

전쟁 당시 엄마 팔에 들린 아들은 이제 엄마를 두 팔로 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전쟁이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소중한 행복을 빼앗아가는 지를 쉽게 엿볼 수 있다. 


전쟁 중 애완견을 안고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소녀는 이제 애마를 쓰다듬으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아가씨로 변했다. 전쟁 없는 세상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2. 5. 12. 06:30

사라예보! 
동유럽의 수많은 도시 이름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되는 도시 중 하나일 것이다. 멀게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 된 것이 사라예보 사건이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 중심가 다리에서 암살당했다. 가까이는 우리나라가 1973년 이에리사가 주축이 된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단체전 우승을 한 도시가 바로 사라예보이다. 구기종목 최초로 우리나라가 세계선수권 단체전을 제패한 역사적인 곳이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로 인구는 40여만명이다. 1990년 당시 유고슬라비아였을 때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에스페란티스토 친구들의 도움으로 사라예보와 주변 곳곳을 둘러보았다. 산 위에 있는 묘지에서 한눈에 바라보이는 사라예보 중심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전쟁(1992-1995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직후의 모습(1996년)과 근래 모습(2011년)의 비교한 사진을 접했다. 사진작가 짐 마샬(Jim Marshall)이 촬영했다.


15년이 지난 후 이렇게 안정돼가는 사라예보를 사진만으로도 만나보니 반갑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사라예보를 방문하고 싶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