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유럽 곳곳은 폭설이 내렸다. 리투아니아에서도 연말과 연초에 50년만에 기록적인 눈이 내렸다. 한 동안 포근한 날씨를 보이더니 이틀째 또 눈이 내리고 있다. 조금씩 내린 후 눈이 이제는 걸으면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낼 정도이다.
일전에 시골 도시를 가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일 중 하나가 도로 사정이었다. 도로 옆 밭이나 숲에는 여전히 폭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도로 위 눈은 말끔히 사라졌다. 운전할 때 육중한 화물차가 앞에서 오거나 옆으로 지나갈 때에는 비록 여유로운 공간이 어느 정도 있더라도 늘 신경이 곤두선다.
최근 폴란드 누리꾼들 사이에 경악을 불러일으킨 동영상 하나가 바로 도로 위 달리는 화물차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 화물차 운전기사가 전후 좌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질주하는 모습에서 영화의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지난 10월부터 1년간 "리투아니아 카리타스" NGO 단체가 "Aš – už pasaulį be prostitucijos"(나는 매춘없는 세상을 지지한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캠페인은 리투아니아내 심각해지고 있는 매춘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있다.
현재 리투아니아에는 수천명이 매춘행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춘행위는 불법이지만, 행해지고 있다. 초범일 경우 벌금은 300-500리타스(15만원-25만원)이고, 재범 이상일 경우 벌금은 1000리타스(50만원)까지이다.
매춘에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있지만, 대부분 매춘에 대한 벌은 판매자인 여성에게 주어진다. 이에 "리투아니아 카리타스" 단체는 매춘의 한 축인 구매자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나는 매춘없는 세상을 지지한다"라는 스티커를 만들었다.
▲ 캠페인 관계자에 의하면 유럽에서 장거리 화물차 대상 매춘행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이 없음). 리투아니아 화물 운송회사들은 매춘반대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거절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화물차와 택시 등에 붙일 것을 제안했다. 이 캠페인 주관단체의 관계자에 따르면 장거리 화물 운전수들에 대한 매춘행위는 유럽에서는 비밀이 아니다. 이는 매춘산업의 한 지류를 이룬다. 주유소나 교외 도로가에서 여성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캠페인에 화물차 운전수를 참가시키는 일인 흔하다.
인터넷 뉴스 포탈사이트 delfi.lt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장거리 화물 운송회사나 택시 회사들은 이 매춘반대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반대하고 있다. 어떤 회사는 이런 스티커를 붙이려면 허가가 필요하다라는 이유로 우회적으로 거절하고 있다. 어떤 회사는 민간사업은 사회공익 홍보에 참가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를 내세워거절하고 있다. 어떤 회사는 매춘없이 남자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냐하면서 노골적으로 거절하고 있다. 단지 몇몇 버스 회사들이 이 캠페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캠페인 관계자는 이 스티커를 붙인 화물차 운전수가 어떻게 매춘가격을 흥정할 수 있으며, 택시 기사가 어떻게 매춘여성을 이리저리 태워줄 수 있겠냐고 하면서 이들의 소극적 반응에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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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리투아니아에서 최초로 발명된 8륜 구동 수레가 100여년 만인 2007년에 복원되었다. 최근 이 복원된 수레를 타보았다. 오늘날에서야 다소 허술해 보이지만, 당시 마차나 초기 자동차 시대에서는 획기적인 운송수단이었다.
이 수레는 양쪽에 각각 4개 씩, 8개의 바퀴 모두가 동력을 전달받아 움직이는 시스템이고, 무게의 하중이나 필요시에 일부 바퀴를 상하로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모든 바퀴에 골고루 동력이 주어져 힘 있게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울퉁불퉁한 길에도 안정되게 갈 수 있었다. 당시 기술력으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발명이었다.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에 예속되어 있던 1907년 리투아니아인 프쉐미슬라스 네베라비츄스(1865-1936)가 이 시스템 발명에 대한 승인을 받았고, 1910년 3월 첫 시승식을 가졌다. 독일이 엄청난 금액에 제작권 판매를 제안했으나, 그는 팔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발명한 것이 리투아니아에서 제작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영국에 특허 신청비와 기계구조도를 보냈다. 그 후 몇 년 뒤인 1931년 영국 특허사무소는 이미 특허를 낸 사람이 있어 늦었다고 통보했다. 이렇게 그의 전륜 (모든 바퀴) 구동의 발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00여년이 지난 후 같은 마을 출신 레오나스 타물레비츄스가 마을 로고에 있는 수레바퀴의 유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리던 차 4년 전 우연히 1912년 찍은 8륜 구동 수레의 사진을 보고 더욱 흥미를 느꼈다. 그는 모든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2007년 복원에 성공했다.
이 8륜 구동 수레는 오늘날 군용차, 화물차, 우주탐사선에 적용되는 모든 바퀴 구동의 시초라면서 리투아니아 작은 마을 네막쉬체이는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복원자는 만약 재정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8륜 구동 수레를 리투아니아가 최초로 만들었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 수레를 타고 세계 일주를 꿈꾸고 있다.
역사 속에 묻혀 버린 것이 이렇게 후세대의 사람을 잘 만나면 이렇게 다시 세상에 드러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