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는 이번 시드니 올림픽 중 있은 모든 남자 농구경기를 중계해주었다. 이는 흔히 농구를 '리투아니아 제2의 종교'라고 하는 말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허름하지만, 리투아니아 곳곳에 있는 농구대가 바로 오늘의 성공을 이끌었다. 리투아니아에는 축구공을 차는 아이들보다 농구공을 던지는 아이들을 훨씬 많이 볼 수 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인에게 최고의 명승부로 여겨지는 경기는 승부타로 져 은메달에 딴 한국남자하키의 네덜란드와의 경기였다. 리투아니아인들에게는 바로 미국프로농구팀(NBA)의 콧대를 한층 낮게 해준 9월 29일 열린 농구경기였다. 

준준결승전에서 리투아니아는 오랜 숙적인 유고슬라비아를 76대63으로 이겼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이긴 것만으로도 리투아니아에게는 대성공이었다. 지금까지 국가간 시합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동안 진 빚을 갚게 되어 기뻐하였다. 

특히 NBA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최고의 농구선수인 아르비다스 사보니스가 이번에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투아니아는 사실 이번 올림픽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 애틀란트 올림픽에서 미국 드림팀에게 22점차로 패한 리투아니아였다. 

29일 준결승전에서 리투아니아는 다시 미국팀과 만났다. 예선에서 리투아니아는 미국과 시합에서 76대85로 9점차로 졌다. 리투아니아에게는 또 다른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출범한 후 연전연승을 거듭해온 NBA 드림팀은 그동안 늘 두 자리수 점수차로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이날 리투아니아의 목표는 미국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더라도 최고로 근소한 차이를 내는 것이었다. 

전반전 경기에는 리투아니아는 36대48로 졌다. 하지만 후반전에 들어와서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을 벌였다. 그리고 종료 몇 분전에는 미국을 이겨 기적을 낳을 수도 있다는 상황까지 도달하였다. 처음으로 리투아니아인들은 미국 감독이 마루바닥을 손을 치며 불안하던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였다. 

경기 종료 43초 전 자유투 3개 중 2개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또한 경기 종료 부저와 함께 던진 3점슛이 빗나가지 않았더라면 리투아니아는 세계 농구의 새로운 제왕으로 등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 드림팀의 자존심을 꺾어주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었다. 

10월 1일 열린 3·4위전에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노리며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지닌 호주팀을 리투아니아는 89대71로 가볍게 이겼다. 이로써 리투아니아 선수들은 세 번 연속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호주 선수와 경기를 종료한 후 승리감에 젖어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가장 큰 수훈을 세운 쌰루나스 야시케비츄스가 농구공을 자신의 유니폼 상의에 넣어 마치 임신부처럼 배를 불룩하게 하였다. 이는 최종 승리의 기쁨을 나타내는 리투아니아 농구팀의 하나의 관례이다. 

시상식에서 미국과 프랑스와 달리 리투아니아는 앞 선수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 입장을 하였고, 또한 12명의 선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상대에 올랐다. 바로 이들의 일치 단결된 힘이 바로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 주원인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미국 드림팀보다 2점차로 진 리투아니아팀이 더 유명해졌다. 리투아니아는 다시 한번 농구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고, 또한 가까운 장래에 미국 NBA 드림팀을 이길 수 있는 팀으로 전세계 농구팬들에게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리투아니아인들에게는 가장 큰 국민적 자부심과 일체감을 심어주었다. 

이제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 프로농구팀 중에서 리투아니아 출신 선수들이 활약한 때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사진설명: 리투아니아 농구 잡지 '크렙쉬니스' 표지사진; 동메달을 획득한 후 농구공으로 임신한 채 기뻐하는 쌰루나스 야시케비츄스

*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 2000년 10월 4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