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에서 세계 최초로 열린 ‘미스 여죄수’ 선발대회… 수상자들 “출옥하면 연예인 되겠다” 

지난 11월14일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에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 장소는 수도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150km 떨어진 파네베지스시 중심가에 위치한 교도소였다. 이 교도소는 리투아니아의 유일한 여성 전용 교도소다. 영국의 독일의 , 폴란드의 한국의 한국방송, 문화방송 프랑스의 등 60개 언론·방송사가 취재하는 등 이 행사는 리투아니아 국내외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최초로 열린 교도소 ‘미스 여죄수’ 선발대회였다. 

리투아니아 상업 TV방송사 방송관계자는 10월 중순 아주 특이한 발상을 했다. 여성 재소자를 대상으로 미인대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는 소외되고 절망적인 여성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미소를 배우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아루나스 발린스카스 방송 사회자는 말했다. 

뜻밖의 제안을 받은 케스투티스 슬란차우스카스 교도소장은 이 행사가 자칫하면 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주저했지만 기획의 진지성과 상금 등을 보아 받아들었다. 이 교도소에는 여성 재소자 367명이 수감되어 있고, 이들은 주로 봉제 노역을 한다. 방송 관계자와 사법당국 고위 공직자가 교도소를 방문하자 여성 재소자들은 처음엔 혹시나 사면이 있을까 하여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미인대회를 기획한다는 소리에 모두 실망했다. 이 행사가 암울한 감옥생활에 다소 위안을 주고 그들의 남은 인생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데는 3~4일이 걸렸다. 

참가자격에 키, 몸무게, 결혼 여부, 나이 등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단지 중죄를 짓지 않은 재소자에 한하고, 죄명과 본명을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17살에서 31살까지 모두 39명이 신청했다. 1차 서류심사로 16명을 선발했고, 비공개로 진행된 예선에서 8명을 선발했다. “우리는 그렇게 추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미인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자신은 감옥에 절대로 갈 일이 없다고 약속하지 말라”라고 나데즈다(19)는 결선 진출 소감을 피력했다. 

여죄수 미인대회 결선은 11월14일 오후 3시에서 6시까지 3시간에 걸쳐 열렸다. 이 행사는 다음날 < LNK >를 통해 리투아니아 전역으로 녹화 방송되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아루나스 발린스카스는 “오늘은 리투아니아, 아니 세계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우리는 이 행사가 세계 최초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케스투티스 슬란차우스카스 교도소장은 인사말에서 “20년 동안 이곳에서 일을 해왔지만 오늘처럼 특이한 일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교도소는 사회의 선과 악 둘 다 반영한다. 처음으로 우리 교도소는 추한 면이 아니라 아름다운 면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170석이 채 안 되는 교도소 강당은 심사위원, 교도관, 언론·방송사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장소가 협소해 여죄수 96명만이 제비뽑기로 참관할 수 있었다. 결선 진출에 실패한 한 재소자는 대회 며칠 전 이미 형이 만료되어 출옥해야 했으나, 본인의 부탁으로 교도소에 남아 이 대회를 참관했다. 이들은 처음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으나, 갈수록 긴장이 풀어졌다. 유명가수들의 막간공연 때마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율동에 맞춰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이날 결선에 참가한 여죄수는 모두 8명이었다. 이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빅토리아(17)는 여러 차례 다른 도시에 심문을 받으러 다니느라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실제로 7명이 경쟁했다. 이들 중 라우라(20)는 4개월 된 아들, 사만타(21)는 1년9개월 된 딸과 함께 교도소에서 생활한다. 참가자들은 3주 동안 노역 대신 하루 4시간씩 무대 걷기, 노래, 연기 등을 지도받았다. 의상은 리투아니아 일류 디자이너가 디자인했고, 분장도 전문가들이 맡아했다. 

장소가 교도소이고 대상이 재소자라는 것만 빼고는 일반적인 미인대회와 크게 다른 바 없었다. 먼저 야회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자기 소개를 했다. 이어 자기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역사적 인물이나 유명인을 묘사하는 연기를 했다. 이날 클레오파트라, 마돈나, 카르멘, 제나(Xena), 타트야나(푸슈킨 시의 주인공), 카우보이 등이 등장했다. 

가죽 재킷과 검은색 수영복, 모피 외투와 흰색 수영복은 사회의 어둠과 밝음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리투아니아 유명가수 기티스 파쉬케비추스와 함께 부르는 노래 시합이 이어졌다. 특히 잉가(31)의 노래솜씨는 대단해 출옥 뒤 파쉬케비추스와 함께 공동 앨범 제작을 꿈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혼식 신부복 시합이 있었다. 

심사위원회는 리투아니아 방송·예술 분야 권위자 다섯명으로 구성됐다. 우선 네티즌 1만여명이 참가해 뽑은 ‘미스 포토’상은 나데즈다가 받았다. 영예의 대상인 ‘미스 진’에는 사만타가 선발되어 왕관과 상금 4000리타스(약 140만원)를 받았다. 상금 2500리타스(약 88만원)의 ‘선’에는 잉가, 상금 1천리타스(35만원)의 ‘미’에는 타트야나가 선발됐다. 나머지는 각각 500리타스(약 18만원)를 받았다. 

이 상금과 왕관은 수상자가 출옥할 때까지 은행에 예치된다. 영구 소유하는 ‘미스 여죄수’의 왕관은 은(銀)에다 비취와 석영으로 장식되어 있다. 광물학자들은 은은 정화를 의미하고, 석영은 악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고, 비취는 죄수에게 자유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한 대회 관계자는 “이 상금액은 출옥하는 재소자에게 조금이나마 경제적 보탬이 될 것이고, 또한 미인대회 입상으로 얻은 인기로 이들이 쉽게 일자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2년을 더 감옥살이해야 하는 사만타는 출옥하면 사진모델이 되고 싶어한다. 사만타는 “믿기 어려운 이 상이 내 인생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길 바란다. 하루빨리 자유를 찾고 싶다. 솔직히 이 왕관보다 자유가 나에겐 더 귀하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네티즌 사이에 가장 큰 인기를 얻은 나데즈다는 “2년 뒤 출옥하면 화장술을 배우고 결혼해 아이를 가지고 싶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행사를 끝까지 지켜본 케스투티스 슬란차우스카스 교도소장는 아주 만족해했고, 내년에도 미인대회 개최를 허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번 대회가 성공했으니 반대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사회자이자 이번 행사 핵심기획자인 아루나스 발린스카스는 “이번 행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렸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현재 ‘미스 유럽 여죄수’의 개최에 대한 몇몇 제안을 받아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미인대회를 놓고 네티즌 간에도 열띤 논쟁이 붙었다. “정말 아름다운 여성들이네. 좋은 일로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슬플 뿐. 어떤 죄로 몇년 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는지를 공개하는 것이 공정한 투표를 위해 필요하다.”(ID xx) “이들의 말이 진솔하기를 믿고 싶다. 이 행사가 이들의 암울한 오늘을 위안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ID Ilona) “가장 아름다운 여죄수는 자신의 아이를 목 졸라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나중에는 가장 아름답게 똥을 누는 국회의원 선발대회가 열릴 수도 있겠다.”(ID Monika) “이들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회를 지켜보는 심정을 방송사는 한번 생각해보았는지 묻고 싶다.”(ID Laura) “이 대회는 인간존엄성을 격하시키는 꼴이다. 방송사는 시청자을 끌기 위해 별짓을 다한다.”(ID Austeja) 

사진(상): 파네베지스 교도소에서 열린 '미스 여죄수' 선발대회. 미스 여죄수 진 사만타(가운데), 선 잉가(오른쪽), 미 타트야나(왼쪽).

사진(하): 가죽 재킷을 걸치고 수영복 심사에 임하는 여죄수들. 이날 의상은 리투아니아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36호 2002년 11월 28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