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국가들, 유럽연합 가입 묻는 찬반투표 실시… 리투아니아의 진땀 나는 투표 독려 작전 

지난 4월1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동구권과 지중해 주변 10개국의 신규가입을 정식으로 승인했고, 관련국가 수반들은 이 가입조약에 서명했다. 서명은 해당 국가 국민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유효하게 된다. 2004년 5월1일 가입할 예정인 10개국은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키프로스다. 

과반수 안 되면 무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재건과 군사적 위협해소 등을 위해 1952년 6개국(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오늘날 유럽연합의 기초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정식으로 발족했다. 1957년 로마조약 체결로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가 설립되었다. 1973년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가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해 회원국은 9개국으로 확대되었다. 1981년 그리스, 1986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입하여 회원국은 12개국으로, 1995년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이 가입하여 다시 15개국으로 확대되었다. 

요즈음 동구권은 정식 가입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자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국민투표가 나라마다 연이어 이루어지고 있다. 후보국 중 가장 먼저 국민투표를 실시한 국가는 지중해에 있는 몰타였다. 지난 3월8일 투표참여율이 92.5%로 지극히 높았지만 53.5%으로 가까스로 유럽연합 가입에 찬성했다. 3월23일 슬로바키아는 60% 투표참여율에 89.61%가 대대적으로 지지했다. 이어 4월12일 헝가리는 46.5%의 저조한 투표참여율이었지만 83.76%가 찬성했다. 

과반수 미만의 헝가리의 투표참여율은 국민투표를 앞둔 리투아니아에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리투아니아 헌법에 의하면 과반수가 참여하지 않으면 국민투표가 자동으로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정부기관과 정당, 비정부단체 등 유럽연합 지지자들은 대대적인 홍보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도 “부모님, 저를 위해 투표하세요”라며 학교마다 홍보행사를 개최했고, 거리행진을 하기도 했다. 

5월8일 빌뉴스 대성당 광장에는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는 가수들의 무료 야외 노래공연이 열렸다. 유명가수 안드류스 마몬토바스는 “리투아니아를 유럽연합에 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을 리투아니아에 가입시키자”라고 말해 관람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 관람 시민 마르티나 암브로자이테는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는 반드시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며 가입을 확신했다. 

국민투표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66.3%가 가입을 지지하고, 13.3%만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투표율만 50%가 넘으면 리투아니아의 가입은 당연시되었다. 투표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례적인 조처를 취했다. 투표일을 5월10∼11일 이틀로 정했고, 투표시간을 아침 6시에서 저녁 10까지로 늘렸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아쉬 발사바우’(나는 투표했다)라고 쓰인 스티커를 가슴에 달아주었다. 또한 전국으로 방송되는 텔레비전 방송화면 밑에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투표참여율을 표시하게 했다. 

투표하면 음료수·초콜릿 드려요 

유례없는 홍보운동을 편 뒤 5월10일 첫째 투표일의 결과는 리투아니아 전국을 침통하게 했고, 사람들은 좌절감에 빠졌다. 5월8일 노래공연장에 역대 대통령이 모두 나와 투표참여를 촉구할 때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의 등장에 휘파람을 불며 냉대하던 모습이 필자에게 떠올랐다. 투표결과 23.02%가 투표에 참여했다. 이는 아주 비관적이었고, 다음날에도 이런 식으로 간다면 이번 국민투표는 무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사태가 예상외로 심각하게 전개되자, 5월10일 밤 팍사스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텔레비전에 나와 “무관심을 버리고 투표하러 오기를 충심으로 부탁한다. 자신과 리투아니아의 미래를 위해 투표하러 오라. 1990년 우리가 최초로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처럼 지금 이웃 나라인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기타 국가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가입조약에 서명했지만 최후결정은 바로 여러분 손에 달렸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첫쨋날 저조한 투표참여율에 충격을 받은 리투아니아 대형 유통업체인 빌냐우스 프레키보스 마르케트는 기발한 투표참여 유인책을 마련했다. 전국에 산재한 직영매장인 미니마, 메디아, 막시마, 트마르케트에서 투표에 참여한 사람이 다른 물건과 함께 리투아니아 맥주 500cc 한병, 1.5ℓ 음료수 한병, 세탁세제 한 봉지 혹은 리투아니아 생산 초콜릿 한개를 살 경우 가격에 관계없이 이를 1젠타스(한화 약 4원)에 팔기로 했다. 이 유인책으로 둘째 투표일인 5월11일 각 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텔레비전 화면 자막으로 내보낸 실시간 투표참여율 소식도 유럽연합 지지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둘쨋날 오전에도 여전히 투표율이 저조하자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올가 체스나우스키에네는 다급하게 전화기를 잡고 아직 투표하지 않은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미래를 위해”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후쯤 투표참여율이 거의 50%에 다가서자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쨋날 투표참여 저조로 무산위기에서 벗어나 밝은 표정으로 제노나스 바이가우스카스 선거관리위원장이 이날 저녁 초반 개표결과 압도적으로 가입을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공식 국민투표 결과는 총 63.3%가 참여해 91.04%가 찬성을 했다. 이 압도적 지지에 팍사스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국민이 시민사회의 시험을 통과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도 찬성에 몰표가 나온 것에 몹시 놀라워했다. 

근래 리투아니아인들의 정치 무관심이 점점 높아지자 일부 정치인들은 이번 국민투표가 과반수에 미달되어 무산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90년대 초 국무총리로 역임했고 현재 한국 리투아니아 명예영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알렉산드라스 아비샬라다. 수염을 기르는 그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해 동석한 국회의원에게 국민투표 통과 여부를 놓고 애지중지한 수염깎기 내기를 했다. 국민투표가 유효하게 되자 그는 자신의 예측이 잘못되었음을 받아들였고, 비록 장난스러운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개적으로 면도를 했다. 

내기에 진 뒤 수염 깎은 정치인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리투아니아의 이번 국민투표 통과는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이웃나라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후보국 중 최대 인구국으로 리투아니아처럼 저조한 투표율을 우려하고 있는 폴란드에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앞으로 국민투표 예정일은 폴란드 6월7∼8일, 체코 6월13∼14일, 에스토니아 9월14일, 라트비아 9월20일 등이다. 키프로스는 아직 국민투표 계획을 세워놓지 않고 있다. 

이들 10개국 모두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2004년 유럽연합은 25개 회원국으로 역사상 가장 넓은 확대를 이루게 된다. 지중해와 과거 철의 장막에 속한 옛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가입함으로써 유럽연합은 동서간 화합과 안정 속에 공동번영을 꾀하게 된다. 새로운 시장개척, 고용창출, 자유로운 인력이동 등으로 경제성장이 기대된다. 다른 한편 약소민족 문화와 언어의 사멸위기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민족주권 붕괴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것이다. 어쨌든 확대된 유럽연합이 세계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 사진(상): 이번 국민투표에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투표장에 왔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찬성표를 던졌다.
* 사진(중): 리투아니아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한 사람에게 ‘AS BALSAVAU’(나는 투표했다)라는 스티커를 가슴에 붙여주었다. 이 스티커는 투표한 사람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 사진(하): 5월12일 오전 11시 투표참가율 35.38%를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 밑에 있는 큰 자막은 ‘50%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14.62%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빌뉴스(리투아니아)=글·사진 최대석 | 자유기고가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60호 2003년 5월 29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