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고기 먹기 운동’벌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 축제 열어 지역경제에 활력 불어넣기도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우리나라 속담에 무엇인가를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가리켜 “까마귀고기를 먹었나”라는 말이 있다. 정말 까마귀고기를 먹으면 잘 잊어버릴까. 이 속담대로라면 건망증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나 잊으려고 애쓰는 사람 모두에게 까마귀고기가 특효약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든 아니든 주위에 까마귀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니 이는 “까맣게 잊었다”는 말을 까마귀의 까만색에 빗대어 나온 속담일 것이다. 

민족 서사시에 까마귀 먹었다는 기록도 

사진/ 까마귀 요리법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가장 쉽고 맛있는 요리법은 끓여서 당근과 함께 오래 달이는 것이다.


리투아니아에서도 까마귀고기를 먹는다는 말은 지금까지 전혀 듣지 못했다. 더욱이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까마귀고기 먹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사람들이 까마귀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까마귀고기를 전통적으로 먹어왔다는 사실이 문헌을 통해 밝혀졌다. 

옛 음식풍습인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을 주창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전직 검사출신인 안드류스 구진스카스(45)다. 그는 13년 전 우연히 늙은 사냥꾼으로부터 까마귀를 사냥해 까마귀고기 요리를 장만하는 법을 배웠다. 까마귀고기를 시식해보니 너무 맛이 좋아 이후 계속 먹어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했다. 처음에는 “같이 까마귀고기를 먹었다는 말을 다른 사람, 특히 아내에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차차 까마귀고기에 대한 주위의 편견이 사라졌고, 이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동호회도 결성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쓰여진 크리스티요나스 도넬라이티스의 리투아니아 민족 서사시 <메타이>(사계)에 왕이 농노에게 까마귀 사냥을 명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역사학자에 의하면 1721년 프리드리히 왕은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농노들에게 까마귀 12마리, 참새 12마리를 의무적으로 사냥할 것을 명했다. 귀족들은 이보다 더 많은 양을 사냥해야 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사냥한 것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맛을 보다가 먹게 되었다. 

이는 과거 리투아니아의 성탄절 전야 전통음식 중 하나가 참새고기 갤런틴(고기의 뼈를 뽑고 향미를 넣어 삶아 국물과 같이 응결시킨 찬 음식)이었고, 봄철 방목시기에 주로 먹은 음식이 까마귀고기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겨울철엔 참새 잡기가 쉽고, 봄철엔 까마귀 잡기가 쉽기 때문이다. 옛 소련은 봉건시대에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곤궁해서 까마귀를 먹었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가르쳤다. 물론 잦은 전쟁과 질병 등으로 가난이 닥쳤을 때 까마귀고기를 먹었겠지만, 이는 <메타이>에 나오는 “시골 곡간에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이 넘쳐났다”라는 기술과 배치된다. 

어쨌든 현대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까마귀고기 먹는 것을 별미로 바라보는 것보다 우선 역겨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까마귀고기 먹기 동호회의 노력으로 이제 이러한 시각이 점점 사라지고 주민들은 조상들이 즐겨 먹던 음식을 하나둘씩 맛보기 시작한다. 구진스카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한 단계 한 단계 실행해가고 있다. 일단 그는 까마귀에 얽힌 농담, 민담, 사냥 및 요리법 등에 관해 곧 책을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요리 먹으면 여권과 비자 준다 

사진/ 파크뤄위스군 까마귀 축제 참가자들이 ‘HAV(해학·맥주·까마귀) 공화국’ 여권까지 발급받아 공개적으로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까마귀 사냥철은 보통 5월 하순이나 6월 초순이다. 이때가 초봄에 부화된 어린 까마귀들이 둥지에서 나와 나뭇가지에 앉아 비행을 막 배우는 시기다. 구진스카스에 의하면 까마귀는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다섯 생물 중 하나로 다 자라면 잡기가 아주 어렵다. 미리 감지하고 하늘 높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바람이 아주 세게 분 뒤 숲 속에 가면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날지 못하는 어린 까마귀를 솔방울 줍듯 주워올 때도 있다. 총을 쏴서 잡기도 하고, 나무를 흔들어 떨어지는 까마귀를 잡기도 한다. 발트해 연안에 있는 큐르슈 지방에서는 그물로 잡기도 한다. 

구진스카스는 까마귀가 농사에 피해를 준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잡은 까마귀 위 속에 있는 곡식알을 “하나둘” 세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많아 더 이상 셀 수 없었다. “곡식 한알이 빵 하나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농민들이 자신에게 감사의 표시뿐 아니라 총알이라도 지급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시의 쓰레기더미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까마귀가 연상돼 까마귀고기가 인체에 해로울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는 어린 까마귀의 위 속 내용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의 확신을 대신한다. 

까마귀 가죽을 깃털과 함께 그대로 벗겨내는 데는 불과 몇분밖에 안 걸려서 닭요리를 장만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쉽다. 내장을 드러내고 찬물에 식초와 함께 담가놓는다. 구진스카스는 까마귀 요리법을 수백 가지나 알고 있다. 가장 쉽고 맛있는 요리법은 끓여서 당근과 함께 오래 달이는 것이다. 기름에 튀겨도 된다. 그는 “까마귀고기는 맥주 안주로 최고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올해부터 구진스카스는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을 공개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리투아니아 중부 북쪽에 위치한 파크뤄위스군과 손잡고 지난 6월7~8일에 까마귀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에 공무원, 유명인사, 언론종사자, 유지 등 300여명을 초청해 까마귀고기 시식회를 열었다. 특히 ‘바르나스’(까마귀라는 뜻)라는 성을 지닌 사람들도 초청되었다. 이 이색적인 모임을 취재하기 위해 행사장은 국내외의 많은 취재진들로 붐볐다. 

파크뤄위스군은 농업이 주된 사업이었으나 경쟁력을 점점 잃어가자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안으로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지역은 리투아니아에서도 해학(Humoras)과 맥주(Alus)로 유명하다. 여기에 까마귀(Varnas)를 덧붙여 매년 여름 ‘HAV공화국’을 선포하고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요나스 워자파이티스(58) 파크뤄위스 군수는 “이제 농업에는 기대하기 힘드니, 까마귀 축제를 우리 군의 유명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지역경기를 살리고자 한다”고 자신의 구상을 피력했다. 

“어린 까마귀는 최고의 맛” 

사진/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 주창자인 안드류스 구진스카스가 축제를 위해 까마귀를 사냥하고 있다. 

참석자 대부분은 처음 먹어보는 까마귀고기를 닭고기·토끼고기·오리고기 등과 비교하면서 맛이 아주 좋다고 평했다. ‘까마귀’라는 성을 가진 부부는 “처음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에 겁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전혀. 우린 26년간 매일 서로 맛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미 까마귀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고 답해 이 지역 사람들의 해학스러움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비타우타스 유르가이티스(45·수의사)는 “한마디로 우리 선조들이 먹었던 까마귀고기는 완벽한 음식이다. 까마귀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선 정신과의사를 방문해야 할 것이다. 맛은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만 어린 까마귀고기는 최고다”라고 극찬했다. 

이날 까마귀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HAV공화국 여권을 발급받았고, 먹었음을 증명하는 비자도 받았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조상들이 먹었던 음식을 먹는 떳떳한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까마귀고기 먹기를 주창하는 구진스카스는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에만 그치지 말자. 까마귀는 서로 상대방의 눈을 쪼지 않는 신사의 새다. 우리도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아가자”라고 강조한다. 

물론 까마귀 관광상품의 성공 여부에도 큰 관심이 있지만, 이 옛 음식 풍습이 되살아나 머지않은 장래에 까마귀고기가 스스럼없이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날이 올까 사뭇 궁금해진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66호 2003년 7월 2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