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두두둥~ 봄아 썩 나와라!

리투아니아의 민속축제 ‘우즈가베네스’ 풍경… 배불리 먹고 밤새 놀면서 봄을 재촉하다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ojus.com 

2월 초순 사순절 시작을 앞두고 세계 도처에서 사육제가 열렸다. 

북유럽 발트해 동쪽 연안에 접해 있는 가톨릭 교도가 많은 리투아니아에서도 예외 없이 전국 각지에서 사육제가 열렸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육제와 유사하나 리투아니아의 행사는 혹독한 겨울을 쫓아내고 봄을 맞이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이날을 ‘우즈가베네스’라 명명한다. 이는 ‘금식을 시작하기 전 기쁘게 많이 먹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은 국경일은 아니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이 즐기는 가장 중요한 민속축제 중 하나이다. 금식 계절인 사순절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고 유쾌하게 보내는 날이다. 부활절이 양력이 아니라 월력에 따라 정해지므로 이 축제는 해마다 날짜를 달리한다. 이 축제는 부활절 7주 전 마지막 날인 화요일에 열린다. 보통 양력 2월5일과 3월8일 사이에 있다. 올해는 2월8일에 열렸다. 이 행사는 일·월·화요일 사흘간 행해지고 화요일에 그 절정을 이룬다. 

배가 부르도록 12번 식사? 

기독교적 행사지만 리투아니아의 우즈가베네스는 봄을 맞이하고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하던 기독교화되기 이전의 고대 풍습 요소들이 들어 있다. 전통 종교의 봄맞이 대동놀이가 기독교의 ‘참회 화요일’ 의식과 융화되어 가장 행렬 등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19세기까지도 우즈가베네스에는 미신과 주술 등이 널리 알려졌다. 우즈가베네스에는 푸짐한 음식뿐만 아니라 익살, 해학, 미신, 점보기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날 등장한 고대부터 널리 먹었던 음식인 슈피니스가 눈길을 끌었다. 이는 돼지의 발이나 꼬리 혹은 머리에다 완두콩, 콩, 옥수수, 감자 등을 섞어서 기름기 있게 요리한 음식이다. 이 음식을 먹던 중 꼬리를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그해 가장 먼저 결혼한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음식은 밀가루, 우유, 달걀을 섞어서 만든 부침개인 블리나이다. 이는 색깔이 노랗고 모양이 둥글어 태양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이날 이 부침개를 가능한 한 많이 먹어 쨍쨍한 해가 빨리 봄을 가져오기를 기원한다. 이날은 하루 종일 배가 부르도록 가능한 한 12번 식사를 한다. 이렇게 해야 일년 내내 배가 부르게 지낼 수 있다. 

△ 여러 가지 옷으로 분장을 하고 마을 전체를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것이 이 민속축제의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날 쉴 새 없이 이웃이나 친구, 친척들을 방문해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보낸다. 이렇게 돌아다녀야 풍년이 된다. 온 눈밭을 썰매나 판자를 타고 다닌다. 눈밭에 뒹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두 풍년을 약속한다. 아가씨들을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도록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대마가 크게 자란다. 최대한의 높이로 그네를 탄다. 이 또한 대마의 풍년을 기원한다. 이날 실로 천을 짜면 벌레들이 배추밭을 헤집고 다닌다. 숫돌로 낫이나 칼을 갈면 여름에 폭풍이 와서 지방을 날려버린다. 이런 믿음 때문에 이날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먹고 노는 데 푹 빠진다. 

우즈가베네스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온 마을을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는 가장 행렬이다. 여러 가지 옷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마을 전체를 무리지어 돌아다닌다. 이들은 유대인, 집시, 걸인, 천사, 악마, 저승사자, 의사, 마녀 등으로 옷을 입는다. 한편 얼굴에는 말, 염소, 황새 등 동물이나 각양각색의 기이한 탈을 쓴다. 남자는 여장을 하고, 여자는 남장을 하기도 한다. 옛날 성직자를 제외한 마을 공동체의 모든 사회계층이 함께 이 축제에 참가했다. 돌아다니면서, 때때로 발을 쿵쿵 구른다. 이는 겨울 내내 잠들었던 땅을 깨워 농사철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늙은 여성 ‘모레’ 인형 태우기 

이날 중요한 등장인물은 홀쭉이를 상징하는 카나피니스(대마인, 삼베옷을 입은 이)와 뚱뚱보를 상징하는 라슈니니스(비계인, 소시지를 온 몸에 두른 이)다. 이들은 가장 행렬 중 서로 싸움질을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리투아니아 민속에 유대인과 집시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상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때부터다. 한편 이날은 다양한 인형들을 만들어 담이나 나무 위에 걸어놓는다. 이날 대표적인 인형은 겨울과 봄의 싸움을 상징하는 늙은 여성 모레이다. 이 모레는 오른손에 빗자루, 왼손에 도리깨를 들고 있다. 이는 지난해 수확물에 계속 도리깨질을 해야 할지, 아니면 봄맞이 대청소 비질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했음을 의미한다. 해가 질 무렵 사람들은 이 거대한 모레 인형 주위에 모여 모레를 불태운다. 이는 겨울을 쫓아내고 봄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이렇게 이들은 모레를 태운 자리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다음날 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 노래와 춤과 음식으로 축제를 만끽한다. 

△ 겨울과 봄의 싸움을 상징하는 인형 ‘모레’. 리투아니아인들은 ‘모레’를 불태우면서 겨울을 쫓는다. 

이날 점을 치는 일도 빠지지 않은 풍습이다. 한 예로 접시 세개를 준비한다. 흙으로 가득 채운 접시, 반지를 올려놓은 접시, 그리고 루타(순결을 상징하는 식물)로 만든 화관을 올려놓은 접시다. 눈을 감은 아가씨가 이 세 접시 중 하나를 선택한다. 반지 접시를 잡으면 부활절 뒤에 곧 시집을 가고, 화관 접시를 잡으면 노처녀로 남게 되고, 흙 접시를 잡으면 부활절 뒤 곧 죽는다. 

우즈가베네스는 지금도 어린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축제이다. 이날 점심식사로 집에서 만든 부침개를 싸간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에서 “겨울아, 겨울아, 썩 꺼져!”를 외치면서 모레 인형을 불태우고 가져온 부침개를 나눠먹는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분장을 하고 탈을 쓰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한다. 그냥 구걸하지 않고 나름대로 촌극을 연출한다. 사람들은 한해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부침개나 사탕, 과일, 돈을 이들에게 기꺼이 보시한다. 

룸쉬쉬케스 민속촌, 거대한 부침개 선보여 

리투아니아에서 우즈가베네스 축제로 가장 유명한 곳은 수도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70km 떨어진 룸쉬쉬케스 민속촌이다. 호수로 둘러싸인 소나무숲 속에 여러 개의 구릉지에 지방별 전통 가옥을 지어놓고 선조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매서운 영하 10도의 날씨임에도 행사장에서 수km, 심지어 인근 고속도로변까지 차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운집해 이 행사가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지니는 의미를 한눈에 엿볼 수 있었다. 

△ 축제의 백미는 거대한 부침개를 만드는 것이다. 지름 90cm 크기의 블리나이를 만드는 장면.

전통가옥 마당마다 민속가무단이 자리를 잡고 방문객들에게 춤과 노래와 놀이로 유쾌한 시간을 이끌었다. 널판자 끌고 빨리 돌기, 막대기 타고 빨리 돌기, 남녀가 짝을 이루어 톱질 빨리 하기, 짚낭으로 상대방을 땅에 떨어뜨리기 등 다양한 전통놀이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최대 규모의 블리나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숯불에 지름 1.5m의 프라이팬을 올려서 지름 90cm의 블리나이를 만들어 이 부분에서 리투아니아 최고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밀가루 2kg, 물 1.5ℓ, 달걀 30개로 부침개를 만들었다. 이를 지켜본 관객들은 거대한 부침개를 고루 맛볼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우즈가베네스는 비록 음식과 놀이에서는 다르지만, 봄이 오는 문턱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신명나게 대동놀이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월대보름을 연상케 한다. 부침개를 얻으러 아파트를 방문하는 리투아니아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 오곡밥을 얻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찰밥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하듯이 여기 사람들도 12차례나 먹어야 일년 내내 배고프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이 서로 유사하다. 전통를 사랑하고 지키는 리투아니아인들의 신명난 축제를 가까이에서 느낀 좋은 하루였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48호 2005년 3월 1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