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0. 3. 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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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2년이 채 남지 않은 50 평생에 처음으로 직접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옮기는 침대에 누웠다. 천천히 갔으면 좋을텐데 중년의 여간호사가 미는 침대는 왜 그렇게 빠른지 평소 발걸음이 빠른 아내도 뛰다시피해서 뒤따라왔다. (오른쪽 사진: 수술 후 왼손으로 써본 천지하감지위 天地下鑑之位 부모하감지위 父母下鑑之位 동포응감지위同胞應鑑之位 법률응감지위 法律應鑑之位. 하지만 한자 '감'자가 가물가물해 정확하게 쓸 수가 없었다.)
 
누워서 복도 천장의 전등을 보니 마치 빠른 자동차를 타고 도로 옆의 나무들을 보듯이 쌩쌩 지나갔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에는 볼이나 입술에 입맞추고 인사를 한다. 예상보다 2배나 길어진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자 아내가 몹시 기뻐했다. 갑상선 수술 후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내는 말을 해보라고 재촉했다. 말하기가 힘들었지만 목소리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당신이 수술실로 들어갈 때 의도적으로 입맞춤을 하지 않았다."라고 아내가 말하면서 원만한 수술을 축하해주었다. 이렇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수술실로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입맞춤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 입맞춤이 생의 최후 입맞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수술대에 누워 심장박동 확인기를 부착하고 또 주사액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이 순간 수술대 위 전등을 쳐다보면서 수술 후 저 전등을 확인하고자 하는 기대감은 정신의 몽롱감과 반대해 점점 낮아졌다.

4시간 후인 오후 3시에 병실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마취 후유증으로 구토증상까지 일어났다. 여러 시간을 잠과 깨어남의 반복을 거듭했다. 내내 옆에서 아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밤에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이젠 완전히 의식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남은 병실에서 손으로 제대로 글자를 쓸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확인해보고 싶었다. 평소 컴퓨터 자판기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해 가끔씩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웬지 낯설다는 느낌을 받곤한다. 수술대로 옮기는 침대에서 암송했던 일원상서원문(一圓相 誓願文)을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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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팔 손 근육이 제대로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지 볼펜이 바람에 날려가는 듯 했다. 더욱이 몇몇 한자는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아리송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나니 수술이 원만하게 끝났음을 비로소 스스로 확인하게 되어 안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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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兎昇沈催老像 (옥토승침최로상)
金烏出沒促年光 (금오출몰촉년광)
옥토끼(달) 오르고 내려 늙음을 재촉하고
금까마귀(해) 뜨고 져 세월을 독촉하네.

求名求利如朝露 (구명구리여조로)
或苦或榮似夕煙 (혹고혹영사석연)
명예와 이익을 구함은 아침이슬 같고
고통과 영화는 저녁연기와 흡사하네.

勸汝慇懃修善道 (권여은근수선도)
速成佛果濟迷倫 (속성불과제미륜)
그대에게 은근히 선도 수행을 권하니
빨리 불과를 이뤄 미혹중생을 구하라.

今生若不從斯語 (금생약부종사어)
後生當然恨萬端 (후생당연한만단)
지금 세상에 이 말을 따르지 아니하면
다음 세상에 당연히 온갖 한탄을 하리라.


이 글은 보조(普照)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원효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야운(野雲)의 [야운자경(野雲自警)]이 합철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나오는 글로 야운 스님이 지은 글이다. 병원생활하면서 여러 차례 필사를 하면서 마음을 다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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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