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8. 9. 27. 11:24

1990년대 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살았을 때 카탈루냐 친구와 함께 어느 날 공중 온천탕을 갔다. 넓은 탕 안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데, 60대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부다페스트 출신인데 파리에 살면서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아 인도와 티베트를 자주 왕래한다고 하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오른쪽으로 피해갔다. 어느 새 탕 입구 계단까지 오자, 이제 피하기도 그렇고 했어 친구가 빨리 와주기만을 바랬다.

곧 마사지를 받으러 간 친구가 돌아오자 안도의 숨을 쉬고 잽싸게 그와 함께 뒤편에 있는 사우나실로 가버렸다. 사우나실에서 그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순간 사우나실 문이 열리고 그 할아버지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내 곁에 앉더니 웃으면서 내 왼쪽 다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부탁도 하지도 않았는데, 더군다나 그를 피해 이 사우나실로 들어왔는데 이렇게 더 노골적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동성연애자를 만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동성애자라고 스스럼없이 밝히는 사람을 만났다. 당시 음악에 관해 나와 가끔 전자우편을 서로 주고받던 사람이었다. 로테르담에서 한 2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데, 내가 로테르담에 있다고 하니, 겸사겸사해서 왔다. 날씨가 더운 저녁 무렵 우리는 맥주를 한잔하기 위해 선술집에 들어갔다. 나는 맥주를 마셨고, 그는 백포도주에 탄산수를 섞어 마셨다. 두 서너 시간 동안 그는 주로 동성애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는 45세로 아일랜드 출신이고, 네덜란드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다. 9살에 성당에 갔을 때 멋있게 생긴 주일학교 선생을 보고, 그가 자기 삼촌이 되어 늘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동성애에 대한 그의 첫 느낌이라고 했다. 그 후 15살에 친구와 동성애 경험을 했다. 그는 이성(異性)과 그렇게 많이 접촉하면서도 이성에 대해 추호라도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동성애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야”라고 말했다.

16세 때 다른 도시에서 열린 사촌 누나 결혼식에 참석해 아버지와 함께 한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때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동성애를 고백했다. 아버지는 그가 비정상이니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볼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가 이성인 어머님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같이 자기도 동성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라고 반론했다. 만약 자기가 비정상으로 심리치료사를 찾아가야 한다고 하면 이성을 사랑하고 동성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심리치료사를 찾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아버지는 아들의 동성애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 때 한 한국인 남자와 2주일간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꿈같은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고 했다. 동양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를 “쌀왕”, 동양 여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를 “쌀여왕”이라고 애칭으로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듯이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선술집을 한번 둘러보더니 “저 사람은 동성애자야”하면서 내게 귀띔을 해주었다. 우리 옆에는 한 젊은이와 중년 여인이 정겹게 앉아있는 것을 보고 “저 젊은이는 동성애자고, 저 중년 여인은 홀로 사는 여인이야”라고 말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그 사람은 그 사람을 알아본다”고 짧게 대답했다.

이처럼 유럽에 살다보면 주위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동성애자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이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 지 잘 모르겠지만,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찾아보기 힘들다. 같이 어울리면서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간다라는 생각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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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