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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살다보면 주위 사람들의 관심들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 더군다나 저와 같은 동양인이 거의 없는 곳이라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혹은 제가 지나간 후 뒤에서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간혹 고개를 뒤로 돌려 그 사람들의 표정을 지켜보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이 신기한 듯 저 멀리서부터 저를 응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저기 중국인(혹은 일본인, 베트남인) 지나가네.”라고 수군대는 소리를 예사롭게 듣는다. 굳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들에게 확인해줄 필요도 없지만, 종종 이들이 가까이 있으면 “난 한국인이야!”라고 고쳐주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인사하고, 먼 곳에 있는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시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자기들끼리 험한 말을 주고받는 청소년들 곁으로 지나갈 때는 겁나기도 한다. 이들은 보통 자기들끼리 나를 “츄르카”라고 부른다. “츄르카”는 동양인을 가리키는 저속한 말이다. 특히 밤에 혼자 걷을 때에는 이들을 피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 이런 청소년들이 저의 어깨를 뒤에서 시비를 걸어온 적도 있었다.
언젠가 친구의 텃밭에 혼자 갔다. 이 텃밭 비닐온상에 한국에서 가져온 수박과 참외 씨를 토마토를 심은 줄 중간에 시범 삼아 뿌려놓았다. 한 두 시간 정도 쉬어가면서 김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친구는 이웃집 할머니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전에 검은머리를 한 키가 좀 작은 아르메니아 사람이 혼자 너 텃밭에 와서 사진도 찍고 비닐온상을 살펴보기도 했어. 혹시 그 아르메니아 사람에게 너 텃밭을 팔았니?” 황당한 질문을 받은 친구는 한참 골똘한 생각에 빠졌다. “아르메니아 사람이라, 도대체 그가 누구란 말인가!” 후에 비닐온상 수박과 참외에 김이 메져있는 것을 보고 그 주인공이 바로 나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한 번은 한 남자의 애인이 되기도 했다. 친구들과 그 텃밭 집에서 회식을 했다. 쇠고기 꼬치구이에 보드카와 맥주를 마시는 자리였다. 이때 한 친구가 자리를 피해 인근에 있는 자기 어머니의 텃밭을 구경시켜준다고 산책을 제의했다. 술을 좀 마신 그는 우람한 자신의 팔을 제 어깨로 얹고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그의 어머니 텃밭은 볼만했다. 우선 푸른 잔디밭 여기저기에 피워나 있는 아름다운 꽃들이며 벚꽃과 튜울립꽃 등 이름 모르는 다양한 꽃들이 조화를 이루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후 며칠이 지나 이웃사람이 텃밭에 온 친구의 어머니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자네 아들이 지난 토요일 웬 검은머리를 한 여자를 옆에 끼고 와서 자네 텃밭에서 놀고 갔어.”라는 한 마디에 어머니 가슴은 또 다시 철렁거렸다. 부인을 둔 아들이 바람을 피어 한 바탕 소동을 벌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어머니는 즉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질책하듯 그 검은머리 여자의 정체에 관해 물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이 낯선 리투아니아에서 이처럼 때로는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아르메니아인 심지어 여성으로까지 비추어지고 있다. 그러니 사물을 자의대로 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는 지 내 경우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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