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8. 8. 19. 13:59

리투아니아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면 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들은 자기 배필을 멀리서가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국에선 흔히 보게 되는 장면들, 이를테면 "내 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하면서 착잡한 듯 담배를 피워 문다거나,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혹은 진한 커피향기를 맡으며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을 리투아니아인들에게선 다소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거기에 바로 자기의 배우자가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내 주위에 있는 리투아니아 부부 20쌍을 대상으로 한번 통계를 내어 보았다. 우선 20쌍 중 연령별로는 40-50대가 2쌍이고, 30대가 9쌍, 그리고 20대가 9쌍이다. 이들이 결혼했을 때 여성은 평균 19살이었고, 남성은 20세였다. 부부간 연령차이는 평균 2.1세이고, 가장 많은 차이는 6살이다. 연하의 남편을 둔 부인도 5명이나 된다.

각자 살았던 집간 거리는 평균 3.3 km
이들 20쌍 부부가 결혼하기 전 각자가 살았던 집간 거리는 평균 3.3km다. 1km 미만 간격이 15쌍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2km 미만이 2쌍, 3km 미만이 1쌍, 3km 이상이 3쌍이다. 가장 먼 거리는 22km이고, 가장 짧은 거리는 서로 옆집으로 10m다. 결국 장래 배필은 바로 뜰에서 같이 놀던 친구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결론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다 클 때까지도 남녀 구분 없이 같이 즐겨 논다. 그러니 남자애가 동네에서 여자애들과 함께 고무줄 놀이를 한다고 해서 같은 남자애들이 따돌림을 하거나 놀리지도 않는다. 학업과 대학 진학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이성간 교제를 막는 부모도 없거니와 사회적 압박감도 없다.

그래도 연애결혼이 대부분
이들 20쌍 부부 다 연애결혼을 한 사람들이다. 가까이 사니 양가부모들이 어릴 때부터 장래 사위나 며느릿감으로 점찍어 놓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소꿉장난을 하다가 사춘기가 되자 서로 사랑을 느끼고 드디어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한편 결혼상대자 선택에 있어서 부모들이 큰 간섭을 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그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최종결정은 자녀에게 맡긴다. 결혼은 부모의 인생이 아니라 어차피 그들 자신의 인생이니까. 의외로 무척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같으면 장남은 부모를 모셔야 하므로 결혼대상자의 기피사항이 될 수도 있겠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장남, 차남 등의 출생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20쌍 중 어느 누구도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지팡이를 짚고 물건을 사는 나이 드신 70-80세의 노부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근거리 결혼'의 이유?
내가 보건대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이러한 '근거리 결혼'의 주된 이유는, 바로 직업이나 학교 등으로 이동하는 비율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얻고 배필을 만나고 평생 살아가는 것이 이들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과거 공산체제 아래에선 고등교육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또 거주하는 곳에서 완전고용제가 실시되었으니, 더더욱 교육이나 직장을 찾아 대도시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곳도 조금씩 많은 것들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이젠 스스로 나서서 직장을 구해야 하고, 직업별로 임금차도 크게 나는데다,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많이 배워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히 이동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 이곳도 아마 조금 있으면 이 독특한 '근거리 결혼' 풍습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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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을 부부로 함께 사는 올가(부인)와 림비다스(남편). 이들은 같은 아파트 동(棟)에서 어린 시절부터 살면서 함께 소꿉장난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