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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의 올림픽 열기는 그야말로 여름의 폭염처럼 뜨꺼웠다. 이에 비해 9월의 패러림픽은쌀쌀한 가을 날씨처럼 싸늘했다. 패러림픽에 대한 낮은 관심은 리투아니아에소 마찬가지였다. 리투아니아 최대 일간지 <례투보스 리타스>가 여론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의 깊게 지겨본다 5%, 리투아니아 선수 경기만 관심을 갖는다 41%, 관심이 없다 53%로 나타났다.
이 패러림픽 소식을 접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씨였다. 그는 전동휠체어로 유럽대륙을 종단할 때 2006년 7월 17일 8번째 국가는 리투아니아에 왔다. 손을 끈으로 고정하고 전동휠체어를 입으로 조정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빌뉴스 대성당 광장을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리투아니아 현지 교민들을 그를 따뜻하게 맞았다.
당시 그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2006년 5월 10일 그리스 아테네를 출발했다. 유럽 30여개국을 종단하고 이듬해 베를린 장벽에서 대장정을 마칠 계획이었다. 그후 그는 유럽 대장정(2만6000km)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갔다. 그의 기록은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지금도 장애인 인권을 위해 애쓰고 있는 그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배경 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Andrius Mamontovas)의 노래 "사랑은 자유로워"(Meilė laisva)이다.
이 패러림픽 소식을 접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씨였다. 그는 전동휠체어로 유럽대륙을 종단할 때 2006년 7월 17일 8번째 국가는 리투아니아에 왔다. 손을 끈으로 고정하고 전동휠체어를 입으로 조정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빌뉴스 대성당 광장을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리투아니아 현지 교민들을 그를 따뜻하게 맞았다.
당시 그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2006년 5월 10일 그리스 아테네를 출발했다. 유럽 30여개국을 종단하고 이듬해 베를린 장벽에서 대장정을 마칠 계획이었다. 그후 그는 유럽 대장정(2만6000km)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갔다. 그의 기록은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지금도 장애인 인권을 위해 애쓰고 있는 그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배경 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Andrius Mamontovas)의 노래 "사랑은 자유로워"(Meilė laisva)이다.
▲ 2006년 리투아니아 "LNK" TV 뉴스는 최창현씨의 대장정을 길게 전했다. (TV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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