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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인 딸 요가일래는 일반학교외에도 음악학교를 다닌다. 17일 수요일 한 해를 마감하는 공연회가 열렸다. 음악학교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많은 학생수로 공연에 출연하기가 쉽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노래 부문에서는 주로 합창단이 출연했다. 독창을 전공하는 딸아이는 학생들이 자원해서 들어가는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 음악학교 연말 연주회
지금껏 매년 이 공연회에 출연했는데 올해는 독창으로 뽑히지 않았다. 변성기 나이로 애매했다. 그냥 합창 한 곡에 참가했다. 요가일래는 아주 좋아라 했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좀 아쉬웠다. 아내는 교사 뒷풀이로 학교에 남고, 요가일래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길을 걸으면서 요가일래와 한 대화가 마음에 와 닿아 남기고자 한다.
"아빠, 내가 정말 아빠를 사랑해."
"거짓말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
"오늘 음악학교로 오면서 아빠에 많이 불평했잖아."
"아빠, 내가 엄마하고 얼마나 싸우는지 알잖아. 그래도 난 엄마를 사랑해."
"그래? 싸우지만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다는 말이네."
"맞아. 아빠가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파.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조차 하지 마."
"그래 알았다."
상대방에게 일시적으로 불평하더라도 그 바탕에 서로의 근본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 불평은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한 두 가지 더 아버지와 딸 사이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시간이 필요하잖아!
일전에 지인이 요가일래에게 실팔찌를 서너 개 만들어줄 것을 부탁했다. 짬짬이 손목띠를 만들고 있었다.
"이거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해?"
"한 3시간이면 돼."
"그러면 쉬지 않고 꼭박하면 하루만에 다 할 수 있겠네."
"없지. 내가 그렇게 안 하지."
"왜?"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잖아! 아빠도 일만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해."
일이 있으면 꼭 빨리 끝내려고 그 일에만 완전히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에도 관심 좀 가져라는 말이다.
* 요가일래의 취미 - 실팔찌 만들기
아빠도 먹고 싶잖아
어느 날 밤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양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와~ 샌드위치 맛있겠다."
"내가 했으니 맛있지. 아빠도 먹을래?"
"내가 먹으면 너한테 양이 부족하잖아. 네가 다 먹어."
"아니야. 내 배에 있을 것이 아빠 배에 있어도 내가 배부르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세상에 내 배만을 채유려는 사람이 세상이 비일비재한데 이날 우리집 부엌에는 달랐다. 요가일래가 커더라도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꼭 이런 생각을 간직하길 바란다.
아빠만큼 키 클래
딸아이는 또래에서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네가 아빠를 닮아서 키가 작나? 아빠를 닮지 마."
"괜찮아.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딸은 아빠 키만큼 자라."
"정말 그럴까? 그래도 예외가 있잖아"
"그냥 아빠만큼 키 클래."
작은 키를 크게 하기 위해 수술까지 하는 세상인데 그냥 아빠처럼 작아도 좋다라는 딸아이...
있는 그대로를 좋아해
종종 딸의 귀엽고 기특한 순간을 보면 묻곤 한다.
"아이구, 네가 어떻게 아빠한테 태어났니?"
"세상에는 더 좋은 사람도 많고, 더 넉넉한 사람도 많고..."
"세상에는 더 좋은 사람도 많고, 더 넉넉한 사람도 많고..."
"그래도 난 아빠가 좋아."
"왜?"
"아빠는 내 아빠니까."
빈부귀천의 척도로 아빠를 보지 않고 '아빠는 내 아빠니까'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좋아하는 딸아이...
이렇게 딸아이는 어린 내 딸이 아니라 나를 인간적으로 더 성숙시키는 존재로 다가온다. 어른이 아이에게 배운다라는 말은 이제 우리 집의 일상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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