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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람들은 중앙을 좋아한다. 그래서 중앙이 어디인지 정한다. 어디를 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늘 이견과 충돌이 생긴다. 한 때 유럽 대륙의 지리적 중앙이 과연 어디일까를 놓고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중앙은 자리이동을 한다.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등 중앙유럽에 자리 잡고 있는 나라들은 제각기 자국 영토 내에 유럽의 지리적 중앙이 위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리투아니아의 경우만 살펴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유럽의 지리적 중앙으로 지정된 일대의 땅값이 치솟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찾아오는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개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의 조사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1989년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 과학자들은 북쪽으로 노르웨이의 북극섬인 스피츠베르겐 섬, 남쪽으로 스페인에 속한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 동쪽으로 러시아의 우랄 산맥, 서쪽으로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제도를 기준으로 유럽의 지리적 중앙을 산출했다. 이렇게 해서 밝혀진 유럽의 지리적 중앙은 북위 54도 54분, 동경 25도 19분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바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26킬로미터 떨어진 푸르누쉬케이 마을이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기준점으로 아이슬란드와 대서양 서남부 포르투갈령인 마데이라를 포함한 반면 러시아 북쪽에 있는 노보야 세믈리야와 지중해의 말타를 포함하지 않았다. 전문가에 따르면 말타의 포함여부가 중앙 지점의 위치를 약 100미터로 위치변경을 가져온다. 카나리아, 아조레스, 마데이라 등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지만, 프랑스 과학자들은 이를 유럽 대륙에 포함시켰다.
소련으로부터 갓 독립한 리투아니아 국회는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의 발표를 근거로 1992년 유럽의 지리적 중앙으로 산출된 자리를 리투아니아의 중요한 역사사적지로 지정했다. 그리고 2004년 5월 1일 리투아니아의 유럽연합 정식가입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기념물을 조성하고 대리석 광장을 만들었다. 리투아니아와 유럽을 잇는 것을 상징하는 금색별 12개의 관을 쓴 흰 대리석 기둥을 세웠고, 정확한 중앙 지점에는 9톤에 이르는 둥근 바위 위에 철판으로 유럽 중앙을 표시했다. 또한 관광안내소를 설치해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것 외에도 “유럽 중앙 방문 기념증”을 발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를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개발 활용하고 있다.
한편 이 유럽 중앙 지점 인근에 위치한 동쪽 소나무 숲 속에는 “유럽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1987년 리투아니아 조각가 긴타라스 카로사스가 빌뉴스 인근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장소를 마련했는데, 유럽의 지리적 중앙이 발표되자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는 1991년 이곳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일명 유럽중앙박물관인 이 조각공원을 탄생시켰다. 이후 유럽연합 회원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유명 조각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곳에 기증해 전시하고 있다.
2005년 이 유럽 중앙 지점을 놓고 리투아니아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1990년 리투아니아 지리협회는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로부터 유럽 중앙이 리투아니아에 위치한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다.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기뻐한 나머지, 리투아니아 학자들은 북위와 동경을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을 간과했다. 그래서 북위 54도 54분, 동경 25도 19분 삼각형 일대에 구릉지대와 호수로 둘러싸여 경관이 수려한 푸르누쉬케이 마을을 유럽의 중앙으로 표시했고,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곳을 역사사적지로 지정했다.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한 유럽 중앙 지점에 따르면 북위 54도 50분 45초, 동경 25도 19분 13초인데 이는 기존에 유럽의 중앙으로 알려진 곳에서 동쪽으로 6-7킬로미터 이동한 자리에 있다. 이 지점은 밭으로 사유지이고, 더군다나 자연경관도 수려하지 않아 리투아니아 정부와 학계 등에서 새로운 중앙 지점 설정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유럽 대륙의 지리적 중앙을 최초로 측정한 사람은 폴란드 왕립 천문학자이자 지도학자인 쉬몬 안토니 소비에크라이스키이다. 그는 1775년 폴란드 북동지방에 있는 수호볼라 마을이 유럽의 정확한 지리적 중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유럽 대륙의 동서남북 극점을 산출하고 선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중앙을 판명했다. 독일 뉴알벤류트에는 나폴레옹 1세가 유럽의 중앙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는 돌이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887년 당시 이 제국에 속해 있던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라키프 마을에 유럽 중앙을 표시한 거대한 지석을 세웠다. 이어 1900년대 초기 독일인들은 지도분석을 통해 오스트리아 측량이 정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짓고, 독일의 드레스덴이 유럽 중앙이라 밝혔다. 나치 독일은 이 주장을 이용해 독일이 “유럽 심장”이라 선언했고, 독일이 유럽을 통치할 숙명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차 대전 후 소련 과학자들은 독일인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폭로했고, 우크라이나의 라키프가 유럽 중앙임을 재천명했다. 이후 이 작은 마을에 표지석이 다시 조성되었고,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이 벌어졌다. 폴란드는 유럽 대륙의 지리적 4대 극점으로부터 북위와 동경의 조합으로 분석한 바에 따라 유럽 중앙은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서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중세 도시 토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크렘니짜에도 유럽 중앙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처럼 유럽 대륙의 진정한 지리적 중앙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확고한 동의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준점, 측량방법, 계산방법,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유럽의 중앙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권위 있는 연구소의 결정이 어떤 강제적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주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유럽의 지리적 중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으므로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된 새로운 지점으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기념광장을 옮기지 않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유럽의 지리적 중앙은 엿장수 마음대로인 듯하다. 하지만 주제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군데인 유럽 중앙을 한 번 찾아나서 볼만 하다.
▲ 리투아니아 유럽 중앙에 위치한 표지석과 기념물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등 중앙유럽에 자리 잡고 있는 나라들은 제각기 자국 영토 내에 유럽의 지리적 중앙이 위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리투아니아의 경우만 살펴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유럽의 지리적 중앙으로 지정된 일대의 땅값이 치솟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찾아오는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개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의 조사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1989년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 과학자들은 북쪽으로 노르웨이의 북극섬인 스피츠베르겐 섬, 남쪽으로 스페인에 속한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 동쪽으로 러시아의 우랄 산맥, 서쪽으로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제도를 기준으로 유럽의 지리적 중앙을 산출했다. 이렇게 해서 밝혀진 유럽의 지리적 중앙은 북위 54도 54분, 동경 25도 19분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바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26킬로미터 떨어진 푸르누쉬케이 마을이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기준점으로 아이슬란드와 대서양 서남부 포르투갈령인 마데이라를 포함한 반면 러시아 북쪽에 있는 노보야 세믈리야와 지중해의 말타를 포함하지 않았다. 전문가에 따르면 말타의 포함여부가 중앙 지점의 위치를 약 100미터로 위치변경을 가져온다. 카나리아, 아조레스, 마데이라 등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지만, 프랑스 과학자들은 이를 유럽 대륙에 포함시켰다.
소련으로부터 갓 독립한 리투아니아 국회는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의 발표를 근거로 1992년 유럽의 지리적 중앙으로 산출된 자리를 리투아니아의 중요한 역사사적지로 지정했다. 그리고 2004년 5월 1일 리투아니아의 유럽연합 정식가입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기념물을 조성하고 대리석 광장을 만들었다. 리투아니아와 유럽을 잇는 것을 상징하는 금색별 12개의 관을 쓴 흰 대리석 기둥을 세웠고, 정확한 중앙 지점에는 9톤에 이르는 둥근 바위 위에 철판으로 유럽 중앙을 표시했다. 또한 관광안내소를 설치해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것 외에도 “유럽 중앙 방문 기념증”을 발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를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개발 활용하고 있다.
한편 이 유럽 중앙 지점 인근에 위치한 동쪽 소나무 숲 속에는 “유럽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1987년 리투아니아 조각가 긴타라스 카로사스가 빌뉴스 인근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장소를 마련했는데, 유럽의 지리적 중앙이 발표되자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는 1991년 이곳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일명 유럽중앙박물관인 이 조각공원을 탄생시켰다. 이후 유럽연합 회원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유명 조각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곳에 기증해 전시하고 있다.
2005년 이 유럽 중앙 지점을 놓고 리투아니아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1990년 리투아니아 지리협회는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로부터 유럽 중앙이 리투아니아에 위치한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다.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기뻐한 나머지, 리투아니아 학자들은 북위와 동경을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을 간과했다. 그래서 북위 54도 54분, 동경 25도 19분 삼각형 일대에 구릉지대와 호수로 둘러싸여 경관이 수려한 푸르누쉬케이 마을을 유럽의 중앙으로 표시했고,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곳을 역사사적지로 지정했다.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한 유럽 중앙 지점에 따르면 북위 54도 50분 45초, 동경 25도 19분 13초인데 이는 기존에 유럽의 중앙으로 알려진 곳에서 동쪽으로 6-7킬로미터 이동한 자리에 있다. 이 지점은 밭으로 사유지이고, 더군다나 자연경관도 수려하지 않아 리투아니아 정부와 학계 등에서 새로운 중앙 지점 설정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유럽 대륙의 지리적 중앙을 최초로 측정한 사람은 폴란드 왕립 천문학자이자 지도학자인 쉬몬 안토니 소비에크라이스키이다. 그는 1775년 폴란드 북동지방에 있는 수호볼라 마을이 유럽의 정확한 지리적 중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유럽 대륙의 동서남북 극점을 산출하고 선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중앙을 판명했다. 독일 뉴알벤류트에는 나폴레옹 1세가 유럽의 중앙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는 돌이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887년 당시 이 제국에 속해 있던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라키프 마을에 유럽 중앙을 표시한 거대한 지석을 세웠다. 이어 1900년대 초기 독일인들은 지도분석을 통해 오스트리아 측량이 정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짓고, 독일의 드레스덴이 유럽 중앙이라 밝혔다. 나치 독일은 이 주장을 이용해 독일이 “유럽 심장”이라 선언했고, 독일이 유럽을 통치할 숙명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차 대전 후 소련 과학자들은 독일인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폭로했고, 우크라이나의 라키프가 유럽 중앙임을 재천명했다. 이후 이 작은 마을에 표지석이 다시 조성되었고,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이 벌어졌다. 폴란드는 유럽 대륙의 지리적 4대 극점으로부터 북위와 동경의 조합으로 분석한 바에 따라 유럽 중앙은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서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중세 도시 토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크렘니짜에도 유럽 중앙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처럼 유럽 대륙의 진정한 지리적 중앙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확고한 동의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준점, 측량방법, 계산방법,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유럽의 중앙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권위 있는 연구소의 결정이 어떤 강제적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주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유럽의 지리적 중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으므로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된 새로운 지점으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기념광장을 옮기지 않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유럽의 지리적 중앙은 엿장수 마음대로인 듯하다. 하지만 주제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군데인 유럽 중앙을 한 번 찾아나서 볼만 하다.
▲ 리투아니아 유럽 중앙에 위치한 표지석과 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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