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8. 12. 9. 18:20

폴란드 역사를 읽으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 바로 폴란드 국왕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왕권이 세습되어 왔지만, 폴란드에는 귀족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 국내 정세 그리고 외세에 따라 폴란드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국왕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이렇게 수입된(?) 왕들 중에는 폴란드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왕들도 많았다.
 
폴란드 역사는 10세기부터 시작된다. 폴란드 최초 왕은 미에쉬코 1세(960?-992)로 그는 천주교를 국교로 수용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그가 죽자 후계자 문제로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
 
슬라브 전통에 의하면 장자에게만 상속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도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장자인 볼레스와브 1세가 권력을 잡았다.
 
그가 사망하자 차남인 미에쉬코 2세가 왕위에 오르자, 장자인 베스프럼과 그의 동생 오톤이 왕권을 요구했다. 이로써 수백년간 걸치는 피로 얼룩진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폴란드는 여러 왕국으로 나누어져 때로는 독일, 때로는 체코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카지미에스 대왕(1310-1370)은 비록 영토는 다소 축소되었지만, 다시 통일 국가 건설을 했고, 사회 경제 국방 등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는 1364년 크라코브대학  (지금의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을 설립했다. 그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으로 10세기부터 시작된  피아스트 왕조의 폴란드 통치는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되었다.
 
폴란드 왕위는 헝가리 왕 루드빅에게로 넘어갔고, 그가 1382년에 사망하자 2년 후 1384년 그의 둘째딸인 야드비가가 폴란드 왕으로 즉위했다.
 
한편 리투아니아는 이때 영토를 확장하고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고, 폴란드 귀족들은 리투아니아의 대공이 된 요가일라와 합의하여 그가 야드비가와 결혼하고 폴란드의 지배자가 되는 댓가로 리투아니아 영토를 폴란드에 통합시키도록 했다. 이로써 리투아니아인 요가일라는 1386년 폴란드의 왕으로 즉위했고, 근 200년간 요가일라 왕국이 지속되었다.

1573년 폴란드 의회는 프랑스 국왕 카롤 9세의 동생인 헨릭 발레지를 국왕으로 선출했고, 그가 6개월만에 프랑스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떠나자, 트란실바니아의 스테판 바토리를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1587년에는 스웨덴 얀 3세의 아들 지그문트 3세를 국왕으로 선출했, 그는 1596년 수도를 크라쿠브에서 바르샤바로 옮겼다.
 
이어서 1673년 터키군을 대파한 얀 소비에스키는 폴란드 국왕(1674-1696)으로 선출되었고, 1683년 직접 폴란드 군대를 지휘하며 12만명의 터키 군대를 오스트리아 군대와 함께 무찌르고 터키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수호한 왕으로 명성을 얻게 되였다.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의 지지를 받는 삭센 영주 아우구스트가 폴란드 귀족들의 특권과 특혜를 인정하며 폴란드의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1795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국가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3차 분할로 귀족공화국이 멸망하고, 1918년 독립을 회복할 때까지 123년 동안 유럽 정치지도에서 사라지는 불운을 맞이했다.
 
이와 같이 폴란드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스스럼없이 외세와 결탁하여 이웃나라의 왕족들을 자신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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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인으로 폴란드 왕이 된 요가일라 (야기에워)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