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3. 7. 23. 05:39

호텔에서 투숙하다 가끔 일정이 맞이 않아 부득이하게 아침이나 점심을 도시락을 받아나오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라트비아 리가에 있는 한 호텔에서 점심용으로 도시락을 받아나왔다. 괜찮은 호텔이었는데 도시락을 열어보니 실망스럽게도 부실했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먹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원이라 여기저기 새들이 날아다녔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까 생각하다가 새들과 함께 나눠 먹기로 했다. 빵과자와 치즈는 내가 먹고, 나머지는 새들에게 주었다. 흑빵은 잘게 쪼개서 비들기 등이 먹을 수 있도록 했고, 소시지는 풀밭으로 던졌다. 


조금 후 까마귀가 귀신같이 소시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까마귀는 부리로 소시지를 반으로 접어서 가져가기 쉽도록 했다. 



새들이 즐겨먹는 것을 보면서 쓰레기통 속으로 버리지 않길 잘했다. 도시락의 부실함 덕분에 새들이 포식하게 되었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2. 1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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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아이 요가일래는 아침 7시에 일어난다. 수업은 8시에 시작된다. 아침식사는 버터를 바른 식빵 한 조각이다. 도시락은 훈제고기 등을 넣은 식빵 두 조각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학교 식당에서 좋아하는 피자를 사먹는다고 도시락을 가지 않는다. 지난 수요일(9일)이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혹시 식당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점심을 못 사먹을 수 있으니 빵 한 조각이라도 가져가는 것이 어때?"
"내가 잘 알아. 시간이 충분해."

학교를 마친 후인 오후 1시경 요가일래는 항상 전화한다.

"아빠, 오늘 돈을 잃어버렸어."라고 풀이 다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돈이 리투아니아에 있으니 괜찮아. 빨리 조심해서 집으로 와."

배가 고픈 딸을 위해 달걀 두 개를 삶고 있는데 딸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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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자마자 딸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면서 방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지마. 아빠가 잃어버린 돈을 줄께."
"내 돈이 아니야. 엄마가 준 돈이야. 엄마가 화낼 거야."
"엄마가 화내지 않지. 네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플 거야."
 
여전히 훌쩍거렸다.

"이제 잊어버려. 돈은 어딘가에 잘 있을 거야."
"돈을 잃어버려서 내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 내가 학교에서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알아?"
"그러니까 이젠 항상 도시락을 가져가."
여전히 속상한 마음이 딸아이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참 후 삶은 달걀을 맛있게 먹고 딸아이는 음악학교를 갔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딸아이의 책가방 안을 샅샅히 살펴보았다. 한 주머니에 1리타스가 있고, 다른 주머니에 1리타스가 있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돈이 책가방 속에 있었다. 음악학교에서 다녀온 딸아이에게 말했다.

"여기 봐, 아빠가 찾았어. 이젠 돈을 잃어버리면 마음까지 잃어버리지 마. 속상해하거나 울지 말고 꼼꼼히 찾아봐."
"알았어. 하지만 오늘 정말 배가 고팠어."

* 아내와 이심전심, 몰래 도시락에 밤 넣기
* 경제위기로 아이의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
* 유럽 애들에게 놀림감 된 김밥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11. 7. 07:51

유럽연합의 동쪽 변방국인 리투아니아 슈퍼마켓에서 파는 한국음식은 그 동안 없었다. 하지만 "MORKOS KOREJIETIŠKA"(한국식 당근)이라는 리투아니아어 이름으로 파는 당근 샐러드 음식은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에는 없는 “한국 당근”을 즐겨 먹는다"를 참조하세요.)

지난 목요일 평소 자주 가는 슈퍼마켓에 들렀다. 면 종류 판매대 옆에 처음 보는 네모난 플라스틱 통으로 된 물품가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리투아니아 슈퍼마켓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아. 로마자가 아닌 키릴문자로 된 상표명이 생소했다. 어떤 신제품이 등장했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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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불가리아를 여행하면서 조금 익힌 실력으로 키릴문자를 읽어보려고 했으나, 끝부분 밑에 선명하게 한글로 '도시락'이 써여 있지 않은가!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한국음식을 직접보는 만큼 한글로 된 음식을 만나자 기분이 좋았다. 이는 값의 여부를 떠나 이 물건을 주저함없이 장바구니에 담게 했다. 참고 삼아 가격을 이야기하자면 1.99리타스(약 1000원)이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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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물을 끓여서 '도시락' 라면 맛을 보았다. 면은 한국에서 먹어봤던 즉석 라면 맛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고추장을 풀어서 먹으니 한국에서 먹던 그 컵라면 맛에 견줄만 했다. 이곳 북동유럽 리투아니아에서도 '도시락' 즉석 라면을 사먹을 수 있다니... 잔잔한 감동이 라면의 김따라 위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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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도시락' 라면이 이제 리투아니아까지 넘어왔다. 여기서도 인기몰이 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즉석 라면하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도시락'을 떠올리는 날이 오고, 이 제품 키릴문자 이름 '도시락' 밑에 있는 작은 글자 그림이 '한글'임을 알기를 바란다.

* 관련글: 해외에서 나 홀로 집에서 먹는 추억의 라면
               한국에는 없는 “한국 당근”을 즐겨 먹는다
* 최근글: 남의 헌옷을 생일잔치에 입으려는 8살 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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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09. 4. 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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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요가일래는 유럽연합 리투아니아 초등학교 1학년이다. 경제위기로 정부 재정 긴축의 불이익을 톡톡히 받고 있다.

경제위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무료급식을 해주어서 편했다. 하지만 이것이 폐지가 되자 아침 일과 하나가 더 늘어났다(관련글: 경제위기로 아이의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

일어나면 요구르트 작은 한 병만 마시고 학교에 간다. 7시 30분에 집을 나서 12시나 1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중간에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부활절 휴가를 친정에서 보내고 온 아내는 빵을 사는 것을 깜박 잊고 말았다. 어제는 한국식으로 모두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자기 전 다음 날 아침 요가일래를 위해 무슨 샌드위치를 할까 생각하다보니 비로서 빵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일 집 앞 가게가 몇 시에 문을 열지?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올 거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이런 일을 피하지만, 비상시엔 이렇게 희생심을 발휘하고자 한다.

"아침 8시에 문을 열지"라고 아내가 답한다.
"이잉~~ 8시면 요가일래가 벌써 첫 수업을 시작하는 시간이잖아!"

결국 요가일래가 종종 김밥을 먹으니 김밥을 해주기로 했다.
수업을 마친 요가일래에게 전화를 했다.

"수업 잘 마쳤니?"
"응~. 아빠, 나 친구하고 집으로 갈 거야. 안녕~" 밝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학교와 집 사이에서 만나는 길에서 맞은편에서 요가일래는 혼자 힘없이 꾸역꾸역 오고 있었다.

"왜 친구하고 안 오고?"
"내가 아빠 전화 받았을 때 친구가 있었는데 금방 사라져버렸어." 시무룩한 표정이 역력하다.

"오늘 김밥은 다 먹었니?"
"다 먹었는데... 시마스한테 주니까 시마스는 먹지 않았어." (시마스는 반 친구)
"왜?"
"내가 '김'이라고 하고 '바다 풀'이라고 설명을 했는데도 먹지 않았어."
"아마, 김이 무엇인지 몰라서 안 먹었을 거야."
 
집에 돌아온 요가일래는 엄마에게 오늘 학교 식사시간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했다.

"내가 김밥을 먹는데 친구들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바다의 풀'이라고 설명했지.
그런데 애들이 내가 시커먼 것을 먹는다고 막 놀렸어."

"너는~ 바다~ 풀도~ 먹네~, 너는~ 바다~ 풀도~ 먹네~"라고
놀렸다고 말하는 요가일래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김밥을 처음 본 주위 유럽 아이들은 이렇게 놀림감으로 삼았다. 자기들이 먹는 음식의 종류에만 국한되어 남의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들도 자라면 시각이 넓어지고, 여러 나라의 음식을 즐겨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김밥 맛을 몰라서 그려. 우리 집에 오는 친척 아이들 봐! 김밥을 아주 잘 먹잖아! 괜찮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놀림을 당했을 딸아이를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엄마는 다음부터 김밥 도시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또 다시 놀림을 받아 마음의 상처를 깊게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엄마의 배려였다.

"그래도 또 김밥 해줘. 아이들이 내가 김밥을 먹는 것에 익숙해져 더 이상 나를 놀리지 않을 때까지 김밥을 싸갈 거야!"라고 요가일래는 답했다.

딸의 마음 상처를 고려해 싸가지 말 것을 권고하던 부모는 이렇게 한 방을 크게 얻어 맞았다.
그래 친구들이 아무리 놀리더라도 맛있고 건강에 좋은 김밥을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

* 후기: 많은 댓글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학교를 데려다 주면서 요가일래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딸이 자기를 대신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해주라고 했습니다. 댓글에서 적지 않은 분들에게 누드김밥, 화려한 김밥을 만들기를 권했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요가일래는 양념 "김"에다 하얀 "밥"만이 오로지 김밥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이 김밥에 익숙해져서 아무리 화려하고 맛있는 김밥이라도 잘 먹지를 않으려고 합니다. 크면 달라지겠지요. 

* 최근글: 유럽 중앙에 울려퍼진 한국 동요 - 노을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09. 1. 26. 15:45

며칠 전만 해도 반팔윗옷과 반바지에 양말 없이 샌들에 브라질 거리를 활보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일찍 딸아이를 학교로 데려다 줄 때는 정반대였다. 장갑, 양말은 물론이고 내복에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이렇게 동일한 시간에 정반대의 삶이 지구에 공존한다. 차가운 북반구 리투아니아에서 따뜻한 남반구 브라질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지난 주에 집으로 돌아온 후 한국엔 설날인 오늘 처음으로 초등학교 일학년 딸아이를 학교로 데려다 주었다.

달라진 삶의 모습이 곧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고 학교로 갔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학교에서 아점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일괄적으로 제공되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바쁜 출근 준비에 부담 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고스란히 영향을 받고 있는 리투아니아 정부는 국가재정 지출을 억제하기 위기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학년 학생들에게 제공하던 무료급식 정책을 올해 초에 바로 폐지해버렸다.

지난 해와는 달리 아침에 일어난 딸아이는 벌써 배가 고프다고 한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젠 학교에서 아점 식사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설명을 듣고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과 한 개를 깎아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분산했다. 이것이 국가 경제위기로 맞은 우리집의 달라진 아이 학교 보내기 모습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급식을 폐지하는 것보다 정부부문 다른 지출을 줄이는 정책을 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등교길 내내 머리 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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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9월 초등학교에 입학한 요가일래. 연말까지는 요구르트 한 병만 마시고 학교로 갔지만 이제는 도시락까지 챙겨야 한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