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5. 2. 23. 07:31

올해는 한국을 떠나 산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니 한 가지 생활 변화를 꼽으라면 바로 재치기이다. 이제는 라면을 끓일 때나 김치를 담글 때나 늘 재치기한다. 심지어 고춧가루가 든 매운 음식을 먹을 때도 재치기한다. 바로 매운 고춧가루가 코를 자극해서 이를 유발한다. 한국 방문시 식탁에선 재치기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매운 라면은 외국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별미 중 별미일 것이다. 아버지만 한국인인 13살 딸아이요가일래는 라면을 좋아하고 잘 먹기 때문에 자기도 완전한 한국인이라고 우겨댄다.

똑 같은 방법으로 엄마가 끓이는 라면은 맛이 없고, 아빠가 끓이는 라면이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라면 요리는 늘 내 몫이다. 매울 것 같아 라면스프를 다 넣지 않고 끓여주면 금방 반응이 나온다. 

"아빠, 난 매운 라면을 좋아해. 이번에도 스프 다 안 넣었지?"
"그래"
"앞으로 다 넣어줘."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아주 드물게 라면을 끓여 준다. 지난 금요일 기특하게도 딸아이는 손님 맞이를 위해 큼직한 거실 창문 세 개를 딱는 중이었다. 

"아빠, 오늘 라면 끓여줘."
"매운 것 자주 먹으면 안 좋아."
"반드시 해줘야 돼."
"왜?"
"내가 라면을 먹으면 목 구멍이 따뜻해지고 노래가 더 잘 나와."
"ㅎㅎㅎㅎ 라면을 먹으면 노래를 더 잘 부른다고?! 그럼 오늘 해줘야지."
"내가 음악학교에 갈 때마다 라면을 끓어줘."


라면 꼭 먹으려는 이유를 이날은 노래 부르기에서 찾았다.
 
라면과 노래 부르기라... 

요가일래의 주장대로 정말 매운 라면을 먹으면 목이 트이고 노래를 더 잘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이 된다면 "노래방 가기 전 반드시 라면을 드세요"라는 라면광고가 나올 법하다. ㅎㅎㅎ  

한편 요즘에 요가일래는 매니큐어를 즐겨한다.
"매니규어 안 하면 안 되나?"
"내 친구들이 전부 하고 학교에 와."
"손톱이 숨을 쉰다고 하는데."
"아빠는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도 사랑해야지."
"네 손톱은 매니큐어 하지 않아도 예뻐."
"고마운데 그건 아빠 생각이야. 요즘 검은색이 내 스타일이야." 

이렇게 벌써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딸아이에게 하지 말라고만 계속 할 수 없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1. 26. 06:11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아파트 입구에서 코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렀다. 보통 이 소리에에 우리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딸아이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린다. 발걸음이 빠르면 딸아이가 기분이 좋고, 발걸음이 느리면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린다.

그런데 어제는 평소보다 훨씬 더 늦었다. 계단으로 올라오면서 친구에게 문자 쪽지를 보냈다고 했다. 딸아이가 학교에 있는 오전에 벌써 인터넷으로 영어 시험성적 결과를 알게 되었다.

"축하해. 영어는 만점(10점)을 받았더라."
"고마워. 그런데 지리는 9점을 받았어. 괜찮아. 9점도 좋아."
"그래. 아빠는 학교 다닐 때 지리를 잘했어. 너도 잘할 거야. 조그만 더 힘내. 아빠가 뭐 해줄까? 라면?"
"라면? 정말로?"

라면은 딸아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다. 라면이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자주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딸아이는 좋아하면서도 정말 아빠가 해줄까라고 물음표를 달았다.

보통 라면 한 봉지를 끓이면 물을 조금 넉넉하게 해서 딸에게 듬뿍 주고 찌꺼기는 내가 밥을 말아서 먹곤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배고플 것 같아서 끓인 라면 전부 다 그릇에 담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도 먹어야지."
"아니야. 난 됐어."
"아빠도 먹고 싶잖아."
"아니야. 오늘은 네가 다 먹어."
"아니야, 내가 이렇게 들어줄게."
"아니야, 됐어. 네가 다 먹을 수 있잖아."
"아니야, 아빠도 먹어야지."
"아니야, 네가 다 먹어."

이렇게 몇 차례 서로 우기다가 결국은 딸아이가 졌다.


"사실은 내가 다 먹을 수 있는데 아빠도 먹고 싶으니까 내가 주고 싶었어."
"그래. 항상 내가 조금 덜 먹어라도 남을 배려하는 예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
"아빠가 늘 마음이 예뻐야 된다고 말했잖아."
"그렇지. 나중에는 내 마음이 예쁘다는 것마저도 잊어야 돼."

라면 한 그릇을 다 먹은 딸아이 왈: "아빠, 나 다 먹었어. 정말 맛있었어. 고마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2. 4. 18. 05:02

영국을 구성하는 4개 나라는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이다. 지난 부활절 휴가에 웨일스를 다녀왔다. 방문한 도시는 웨일스의 교육 중심지인 애버리스트위스(Aberystwyth)이다. 상주인구가 1만6천명이고, 대학생은 9천여명이다. 부활절 방학으로 대학생들이 빠져나가서 그런지 도시는 한산했다.   


이 도시 중심가에 있는 한 가게를 들렀다. 그런데 낯익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 가게에서 찍은 사진이다. 간장, 라면, 우동 등 한국 식품이 진열대이 놓여있었다.


와, 영국의 이런 작은 도시의 가게에도 한국 삭품을 살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우동과 신라면을 사서 얼큰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9. 29. 08:4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빠, 라면 끓어주세요!"라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딸아이가 전화했다.

아점으로 신라면을 먹었는데 참 맛었다. 먹으면서 딸아이 요가일래가 생각이 났다. 요가일래는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데 유독히 신라면은 있는 그대로 먹는다.

초인종 소리가 나기에 문을 열고보니 딸아이는 웬 남자와 같이 있었다. 같이 온다는 소리도 없이 교실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하도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여러 차례 그렇게 하지 말 것을 권했지만 어제는 난데없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평소 마음에 든다고 말한 남자친구가 아니라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아이였다.

문앞까지 왔는데 안된다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를 노린 것 같았다. 남자친구가 한국말을 모르니 한국말로 따지듯이 물어보았다.

"벌써 경고했는데 또 왜 친구를 데리고 왔니?"
"내가 라면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가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 아빠, 빨리 라면 끓어주세요!!!"
"그래 일단 라면을 먹은 후에 그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면 이야기를 더 하자."

둘이서 그 매운 라면을 잘도 먹었다. 대화를 해보니 그 친구는 학교에서 아주 먼 곳에 살고 있었다. 기다렸다가 다른 곳에서 과외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둘이는 점심을 먹은 후 같이 숙제도 했다. 한 1시간 반 정도가 지나서 친구가 돌아갔다. 이는 곧 훈계시간이 돌아왔음을 의미했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부모하고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자꾸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그 시간이 줄어들잖아. 나중에 크면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으니 참아라. 이제 친구가 갔으니 어떻게 아빠도 모르고 엄마도 모르는 그 친구를 집으로 초대할 생각을 다 했니? 어디 한번 이야기해봐!"
"사실은 그 친구가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비도 오고해서 참 불쌍해보였어. 그래서 집으로 데려와 한국 라면을 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초대했어."

조금만 더 공세적으로 나갔다가는 딸아이가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더군다나 딸아이의 말을 듣자 훈계는 격려로 돌아섰다.

"아, 그래. 그런 마음으로 했다면 언제든지 초대해도 돼. 넌 오늘 정말 착한 마음을 내었네."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오늘도 친구 또 데리고 왔어!"라는 마음을 낸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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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