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2014. 11. 14. 07:24

이번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가족여행에서 세 번 버스로 도시간 이동했다. 대부분 도심은 일방동행 도로로 되어 있다. 버스정류장에는 있음직한 시간표가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버스 시간표를 알아냈다. 시간표를 모르고 그냥 버스정류장에 기다리다가는 30분이나 1시간은 그냥 기다려야 한다.  


버스가 한 정류장에 섰다. 창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돌로 쓴 문장에 눈에 들어왔다. 

This is not BUS STOP.

어떤 사람이 뜨거운 햇볕에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서 쓴 것 같았다.    



푸에르테벤투라 섬 북단에 있는 휴양도시 코랄레호(Corallejo)에서 공항까지 버스를 탔다. 직행이 없고 중간에서 갈아타야했다. 갈아타는 곳이 푸에르테벤추라 섬의 수도인 푸에르토 델 로사리오(Puerto del Rosario)이다.   



버스 이동에서 우리 가족이 받은 느낌이 하나 있어 소개한다. 바로 버스요금 영수증이다. 두 버스 운전사에게 각각 4명분의 요금을 한꺼번에 내었다. 그런데 받은 영수증을 보니 탑승인원수가 달랐다.  


빨간색 동그라미 영수증에는 승객이 1명이고, 녹색 동그라미 영수증에는 승객이 4명이다. 분명히 4명분을 내었는데 한 운전사는 1명분의 영수증을 끝어주었고, 다른 운전사는 정직하게 4명분의 영수증을 끝어주었다. 그렇다면  3명분의 요금(3.40유로 x 3명 = 10.2유로)은 누구에게로... 버스 운전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면서 우리 가족이 대화한 내용이다. 


이런 휴양의 낙원에도 이렇게 꼼수를 부리는 운전사가 있구나!

운전사가 돈이 아주 필요한가봐!

진작 확인했더라면 한번 '왜 한 명분이냐?"고 물어볼 걸...

영어로 말하니까 스페인어로 대답하는데 따진다고 답을 얻을 수가 있을까? 

그래도 정직하게 영수증을 끝어주는 것이 정도지...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8. 28. 07:21

또 다시 주말이 왔다. 어느 부부는 주중에 헤어져 주말에 만날 것이고, 어느 부부는 혹은 가족과 함께 혹은 단 둘이어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것이다. 지난 주말 우리 부부는 카누타기 야영을 다녀왔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에스페란토인 친구들과 마지막 여름보내기 모임이라 날씨와는 상관없이 참가하기로 했다. 빌뉴스 집에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두비사(Dubysa) 강에서 카누타기였다. 단 한 곳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흐름이라 주변 경관을 즐기면서 카누타기를 할 수 있었다. 아래는 가장 전복이 될 위험성이 있는 곳이다.  
 

행사장까지 가는 동안 날씨는 괜찮았다. 그런데 카누타기 행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할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험이 많은 한 친구가 좋은 생각을 해내었다. 바로 긴 비닐봉지를 이용해 즉석 치마를 만들었다. 비가 올 경우도 좋고, 노을 저을 때 떨어지는 물방울로부터 옷을 보호할 수 있어 좋았다. 



20km를 강따라 카누를 타면서 천둥, 번개, 폭우, 햇살 등을 두루 만났다. 다행히 점심식사를 할 때에는 비교적 맑은 날씨였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에는 폭우가 쏟아져 비옷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무지개로 우리를 반겼다. 특히 이날은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이 인간띠를 이룬 25주년 기념일이었다. 우리도 세 나라 국기를 들고 이날을 기념했다. 


저녁식사는 예외없이 꼬치구이다. 이 음식은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담당한다. 이어지는 시간은 놀이와 노래(기타반주에 맞춰 다 함께)였다. 먼 거리를 카누에 앉아서 노를 저어서 피곤이 빨리 몰려왔다. 


일부는 텐트를 쳤고, 일부는 허름한 빈 목조가옥 방을 이용했다. 텐트를 가져갔지만, 아내는 밤새 비가 오거나 아침에 텐트를 정리할 생각을 하니 방에서 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마침 2인이 잘 수 있는 침대 하나가 남아있었다. 그렇게 같이 자기로 하고 침낭을 가져와 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일행은 아내를 놓아주지 않았다. 기타반주와 노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경에 깨어났다. 그런데 옆 자리에 누워있어야 할 아내가 없었다. 일보러 밖으로 나가니 깊은 정적만 감돌았다. 

'이 밤중에 아내가 어딜 갔을까? 
누군가의 텐트에 자고 있겠지... 
그런데 텐트를 치지 말고 방에서 자자고 우긴 사람이 바로 아내가 아닌가!
그런 사람이 밤온도가 영상 5도인 추운 날씨에 어떻게 텐트에서 잘 생각을 했을까?'

의문이 의문을 낳았지만, 일행밖에 없는 독채 시골이라 다시 잠을 청했다. 같이 자려고 한 한 명도 방에 없다는 사실이 다소 안심시켰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텐트를 하나하나 열고 깊은 잠에 든 일행을 깨우면서 확인하기란 썩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눈을 떠보니 아침 6시였다. 여전히 아내는 옆에 없었다. 케케한 냄새가 나는 방 안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침낭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뜰 안에 있는 텐트를 바라면서 생각에 잠겼다. 


'과연 어느 텐트에가 아내가 있을까?
있다면 왜 비교적 따뜻한 방을 놓아두고 텐트를 택했을까?'

아침 9시경이 되자 여기저기 텐트에서 인기척이 새어나왔다. 먼저 일어난 일행에게 물으니 아내는 제일 큰 텐트에서 자고 있다고 답했다.

잠시 후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가 아내가 그 텐트에서 나왔다. 밤새 걱정을 끼친 것이 얄미워 야단치는 소리로 물어보려고 했지만, 혹시나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봐 웃으면서 말했다.

"텐트가 안 추웠어?"
"봐, 있는 옷 다 입고 잤는데도 추워서 잠을 뒤척였어."
"왜 방에서 안 자고 텐트에서 잤어?"
"당신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어? 난 당신이 자고있었지만 다 알아차린 줄 알았지."
"무슨 일이었는데?"
"글쎄, 자려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방 안에 엄청난 크기의 말벌이 네 마리가 날고 있었어. 아무리 내쫓으려고 했지만 내쫓을 수가 없었어. 말벌뿐만 아니라 흑벌도 여기저기 있었어. 방에 자기가 너무 무서웠어."
"그럼, 나는?"
"당신은 침낭을 머리 위까지 덥고 자고 있으니 안전할 것 같았어."

새벽에 이마에 무엇인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서 잠결에 손으로 이를 잡아서 버린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이것이 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내가 자기 전 말과는 다르게 텐트에 가서 잔 이유가 드러났다. 바로 꿀벌보다 수십 배나 더 많은 독성을 지닌 말벌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 명이 나와 함께 같은 방에서 자고 있었다. 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벌은 사람이 먼저 헤코지를 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 난 우리 아파트에서 말벌과 잔 적이 많다."

말벌이 무서워 이를 피해 텐트에 잔 사람도 무사했고, 말벌과 함께 방 공간을 나눈 사람도 무사했다. 그런데 왜 방안에 벌이 나타났을까? 사연은 이렇다. 주인인 할머니가 손님들이 온다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부엌난로에 불을 피웠다. 굴뚝에 벌집이 있어 벌들이 틈새로 방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모르고 태평스럽게 잠들었을 망정이지 미리 알았다면 나도 텐트를 쳤을 것이다. 상상만해도 그날 밤은 정말 큼찍, 오싹...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2. 3. 07:05

몇 해 전 헝가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헝가리 친구는 부다페스트 근교의 한적한 곳에 있는 연립주택에 살고 있었다. 친구가 준 열쇠를 가지고 현관문을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초인종을 눌렸더니, 턱수염이 있고 약간 살찐 사람이 나왔다. 이 친구는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에 다니는 페트로라는 친구이다.

우리의 인사소리를 듣고 3층에서 키가 훤칠한 여자 한 명이 내려왔다. 야간 기차를 타고 막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고 하니까, 친절하게 따뜻한 차와 아침식사에 초대했다. 이 여자는 실비아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20대 초반이고,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에서 무용수를 일하다가 지금은 부다페스트에서 한 무역회사의 시장조사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피곤한 심신을 잠으로 달래다 보니 벌써 저녁 무렵이 되어버렸다. 배가 몹시 고파 가까이 있는 동네 상점에 가서 쌀 세 봉지(한 봉지 1인분)와 백포도주 한 병, 그리고 직사각형 모양의 즉석 돈가스(일 것이라 생각하고)를 샀다.

쌀을 봉지 채로 물과 함께 끊었다. 잘 알다시피 이곳 사람들은 쌀을 자주 먹지 않고, 국에 국수 대신에 넣는 경우가 있고, 또한 간혹 감자 대신에 먹는다. 헝가리 국 중에 쌀을 넣은 토마토국을 아주 좋아한다. 이곳 사람들은 입바람에 날러가는 밥이 제일 맛있는 밥이라고 한다. 사실 끈끈하든, 날아가든 이들의 입맛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먹어본 이곳 쌀 중 이탈리아와 헝가리에서 나온 쌀이 우리나라 쌀처럼 끈끈하다.

그리고 네모 모양의 돈가스를 아주 정성껏 튀기기 시작했다. 한편 페트로는 방에서 레스토랑처럼 식탁을 차렸고, 촛불도 켰다. 아침초대에 보답하기 위해 실비아를 초청했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울어 초대에 응할 수가 없었다.

페트로와 단 둘이 식사를 하는 데 정말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돈가스를 칼로 자르는데 고기 한 점은커녕 난데없이 달콤한 밤색 액이 흘러나왔다. 알고 보니 이 네모난 것은 돈가스가 아니라 아이들 간식용으로 튀겨서 먹는 초콜릿이었다.

실비아가 오지 않았을 망정이지 왔다면 속된 말로 얼마나 쪽 팔렸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렇게 하여 난생 처음 초콜릿을 주된 반찬으로 하여 밥을 먹어보았다. 이것이 낯선 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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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강 건너 건물이 국회의사당) / 사진제공: 마르티나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9. 10. 15:13

이곳 유럽에서 살다보면 외국인이라 가끔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몽고반점에 얽인 일이다.

언젠가 바르샤바 인근에 사는 폴란드 친구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마침 그를 방문할 때 그의 부인이 이제 한 달 된 아기를 씻고 있었다. 

그 아기의 엉덩이 골에 있는 푸른 반점을 보자 다소 의아스러웠다. 다 알다시피 이 푸른 반점은 몽고족 어린이에게 흔히 나타나는 신체적인 특징이다. 부부가 폴란드인인데 어떻게 몽고반점이 있을까, 그럴 리야 없지만 밤낮으로 울어서 벌써 부모가 체벌을 가한 것일까...... 

이때 친구는 나를 쳐다보며 "이 아기 아버지는 내가 아니라 동양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10개월 전 그 당시 폴란드에 없었다고 하면 옆에 있는 친구 라덱을 바라보면서 “아빠 아님“을 강력히 선언했다. 라덱은 모친이 한국인이고, 부친이 폴란드인이다.

그 순간 우리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아기의 엄마는 이곳 유럽 아이들 중에도 더러는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면서 우리 둘의 무죄항변에 동조했다.

물론 혹자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유럽으로 진출한 흉노나 칭기즈칸이 남긴 부정할 수 없는 유산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몽고반점은 유일하게 몽고족에게만 있다고 하는 믿음은 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