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토2009. 10. 8. 08:12

지난 여름 폴란드 비알리스토크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취재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의 방에서 서울로 보낼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잠깐 쉬는 동안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백발의 한 노인이 거북이 가듯이 느릿느릿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가고 있었다. 모습을 보니 에스페란토 대회 개막식에서 소개된 라인하트 젤튼 교수 부부였다. 그의 아내는 몸이 불편해 휠체어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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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 참가한 젤튼 교수 부부 (가운데 검은색 양복이 젤튼 교수)

젤튼 교수는 게임이론 연구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Reinhard Selten, John Harsanyi, John Nash)이다. 게임이론은 경제학, 생물학, 정치학, 컴퓨터공학 등에 활용되는 응용수학의 한 분야이다. 이는 한 개인의 의사결정에서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존적인 전략적 상황에서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젤튼 교수 부부는 청년시절부터 에스페란토 운동을 활발히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음날 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리고 있는 비알리스토크 공과대학교 휴게실에서 이 부부를 보게 되었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 젤튼 교수에게 다가가서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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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스: 언제 어떻게 에스페란토를 배웠나?
젤   튼: 기억으로는 1946년 혹은 1947년에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독일에서는 책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에서 에스페란토의 16가지 기본문법을 복사해서 혼자 공부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는 데에는 2-3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 인터뷰에 답변하는 젤튼 교수)

초유스: 60년 이상 에스페란토 활동을 해왔다. 무엇이 그렇게 오랫동안 에스페란티스토로 남아있게 했나?
젤   튼: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에스페란토 클럽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1959년 결혼했다. 우리는 에스페란티스토 부부이다.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가 추구하고자 한 인류 형제애와 평등, 평화 정신에 공감한다. 특히 에스페란토를 통해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같은 직업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아주 흥미로웠다.

초유스: 에스페란토가 학문활동에 도움을 주었는가?
젤   튼: 직접적 도움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로 된 자료를 읽고 정보를 얻었다. 학문 연구에 전념한 인생의 중반기에는 적극적으로 에스페란토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꾸준히 에스페란토 잡지를 구독해서 읽었다.

초유스: 2007년 유럽의회에서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들이 제1 언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에스페란토냐?
젤   튼: 제1 언어가 아니고 제1 외국어다. 제1 언어는 해당국의 모국어이고, 제1 외국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울 것을 권했다. 유럽연합의 경제통합은 기대보다도 훨씬 빨리 이루어졌다. 하지만 진정한 통합은 유럽인들 자신이 유럽인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제외한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다. 어느 언어도 다른 언어에 비해 우월성을 지녀서는 안 된다. 그 언어는 배우기가 쉬워야 하고, 또한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않아야 한다. 그 조건을 갖춘 언어가 바로 에스페란토이기 때문이다.

초유스: 에스페란토의 미래는 어떠한가?
젤   튼: 에스페란토가 지니고 있는 장점 때문에 에스페란토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장점 중 하나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다른 언어들을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 더 쉽다는 실험결과도 나왔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에스페란토를 쉽게 배우고, 이렇게 습득한 언어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언어들을 배우는 것이 수월하다. 에스페란티스토들 중에는 3-5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요즈음 한 해 동안 연구과 활동으로 세계와 인류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있다. "노벨상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젤튼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 11. 5. 06:19

최근 시골 고향에서 고기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퇴임 기계학 교수를 취재하려 다녀왔다. 만남 인사를 마친 후 그의 첫 물음은 리투아니아인 아내와 집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인가였다. 모국어가 서로 다른 부부에게 제일 궁금한 중 하나가 "저들은 부부 사이, 자녀와 부모 사이 도대체 무슨 언어로 의사소통할까?"이다.  

의사소통 언어가 “에스페란토”라 답하니 "아직도 에스페란토가 살아있냐?"며 놀라워했다.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오래 전 에스페란토를 알던 사람들 중에도 에스페란토가 벌써 죽은 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는 우리 집 공용어로 매일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와 같은 에스페란토 맺어진 다문화가정이 세계 도처에 있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확인하니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국의 젊은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누리망에 퍼져 있는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에 한국어 자막처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선봉에 서서 한국어보다 영어를 강화시키고, 부모들이 영어 발음을 위해 자녀에게 혀 수술까지 시키는 사회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언어이다. 변음과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와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익히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언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제1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어몰입교육이 판치는 한국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한번 에스페란토를 배워보고자 하는 사람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7-5881; 010-3340-5936)에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한편 http://lernu.net/에서 직접 배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원광대 등에 에스페란토 강좌가 정식으로 개설돼 있다. 한국어 자막이 되어 있는 아래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E@I www.ikso.net 제작)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에스페란토를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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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우리 집 탁자에 체코,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한국에서 온 8명 친구들이 의사소통 장애 없이 에스페란토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1편: 에스페란토는 모든 것에 적합한 언어이다

2편: 에스페란토는 많은 특색을 가진 언어이다

3편: 에스페란토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4편: 에스페란토는 배울 수 있고, 배울만한 언어이다

5편: 에스페란토는 다양한 운동을 지닌 언어이다

6편: 에스페란토는 미래의 언어이다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 6. 5. 04:18

일전에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세계 언론인 대회”에서 매일 대회신문을 만드느라 여러 나라에서 온 몇 해만에 만나는 정겨운 옛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다. 마침 대회 마지막일 저녁 국회의장 만찬이 일찍 끝나 집으로 초대해 밤늦게까지 술잔을 부딪쳤다.

탁자에 둘러보니 모두 8개 민족 즉 폴란드, 스위스, 체코,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한국과 리투아니아 사람이 앉아있었다. 이날 8개 민족이 아무런 언어장벽 없이 대화를 즐겼다. 자신의 지난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참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묻기도 했다.

이렇게 모국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날 모여 어느 특정 민족어가 아닌 중립적인 언어로 심리적 부담감 없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이 언어가 에스페란토이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언어’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프랑스 북부 볼로뉴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어몰입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혹시 한번 에스페란토를 배워보고자 하는 분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7-5881; 010-3340-5936)에 문의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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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부터: 페트르 (체코), 아네트 (스위스), 칼레 (핀란드), 로만 (폴란드)
아래 왼쪽부터: 룹쵸 (불가리아), 이쉬트반 (헝가리), 비다 (리투아니아), 정상섭 (한국)

* 이 글은 주간지 "시사in" [42호] 2008년 07월 01일 게재됨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66

* 스스로 쌓은 6살 요가일래의 영어 내공 어때요?

http://www.kniivila.net/2008/lingvoj-prestighaj-kaj-malprestighaj/ 
(핀란드 친구가 쓴 글: 에스페란토)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