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리투아니아의 최대 일간지인 <례투보스 리타스>를 펼쳐보다가 야경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너무나 화려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인 줄 알았는데 사진설명을 보니 교통체증시간대의 서울야경이었다. 모처럼 만난 한국 관련 기사라 본문을 자세히 읽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교통체증 시간대 거리에는 제복을 입은 퇴임한 전직 경찰들이 자원봉사로 교통정리를 한다. 한국에는 교통경찰이 없다. 고속도로에는 경찰을 볼 수도 없고, 도로변에 숨어 있는 경찰도 없다. 경찰의 주된 업무는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통소통을 원활히 하고 교통사고 유발을 막는 것이다.
곳곳에 교통단속 무인카메라가 설치해 있고, 2킬로미터 전방에서 이를 미리 알린다. 속도를 위반하는 것은 결국 운전자 잘못이다. 속도위반 벌금은 아주 높다. 버스전용도로가 실시되고 있다.
서울의 대중교통개혁이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다. 2005년부터 지하철과 버스이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절약하고 있다. 버스전용차선이 있어 버스 속도는 빨라지고, 도로 위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결과는 대중교통 이용자가 5.2% 늘었다. 서울 모델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지금 여러 나라가 이를 도입하고 있다.
한편 리투아니아 도로엔 교통경찰차와 위반으로 잡힌 자동차를 자주 볼 수 있다. 도로변 수풀로 가린 비노출지역에서 단속하는 이른바 함정단속도 흔하다. 특히 한적하고 상태가 좋은 도로를 달릴 때 앞에서 오는 차가 없을 경우 함정단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리투아니아 사정을 고려해볼 때 벌주는 대신 도와주는 한국경찰에 관한 기사는 리투아니아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4월 중순 한국에 2주 동안 체류하다 돌아왔다. 그때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신신당부한 물건이 하나 있다. 혹시 한국에서 친척과 친구들과의 진한 만남 속에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해서 메일과 대화로 자주 상기시켰다.
리투아니아엔 없는 그 물건은 바로 들깨 씨이다. 아내가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하면서 먹어본 한국 반찬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 중 하나가 깻잎장아찌이다. 그래서 몇 해 전 한국에 가서 가져온 들깨 씨를 시골 장모님 텃밭에 심기도 했다. 그때 지인과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배워 처음으로 깻잎장아찌를 직접 만들어보았다. 그 덕분에 가까운 친구나 친척들도 깻잎장아찌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같은 도시에서 사는 친척 한 명이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해서 넓은 마당을 갖게 되었다. 채소를 같이 키워 나눠먹자고 제안을 해 아내는 더 더욱 들깨 씨를 종용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마침 큰 형수님의 친척이 들깨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지난 5월 3일 가져온 들깨 씨를 텃밭에 심었다. 삽으로 땅을 파고, 뒤집고, 고른 후 골을 파서 씨를 뿌렸다. 육체적으로는 힘든 하루였지만, 아내에게 좋아하는 깻잎장아찌를 만들어줄 수 있고,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깻잎의 효용성을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마음만큼은 즐거웠다.
지난 5월 7일 오전 휴대전화기로 쪽지가 들어왔다. 내용인즉 빌뉴스 에스페란토 동아리 회원의 아버지가 돌아가 함께 조문을 가자는 것이었다.
평소 우리 부부와 잘 아는 사람이라 같이 가려고 했으나, 아내는 학교 일 때문에 혼자 가게 되었다. 저녁 6시 시신이 안치된 성당 앞에서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 여섯 명이 되었다.
조화는 한 친구가 퇴근하는 길에 사왔다. 국화로 장식된 꽃바구니를 30리타스(약 13500원)에 샀고, 각자 5리타스를 내어 값을 치렀다. "한국 같으면 내가 살께~"라고 할 법 하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대개 참가 인원수로 공동 부담한다.
일반적으로 조문객들은 각자 꽃이나 화관을 가져온다. 하지만 화관 대신 조의금을 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친구들이 말한다.
이날 온 친구들은 공동 꽃바구니 외에 각자 성의껏 조의금을 냈다. 모두 준비한 봉투가 아니라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한 친구가 그 돈을 모아서 봉투 하나에 다 넣었다.
한국에선 각자 하얀 봉투 앞면엔 부의(賻儀)라고 적고, 봉투 뒷면엔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이렇게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다 같이 한 봉투에 넣어 선물한다고 한다. 누가 얼마를 내었는지 상주는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상주가 이에 상응하게 보답할 수가 없게 되어서 좀 아쉽지만, 내가 낸 부의금 액수 때문에 쑥스러워하거나 상주의 나중 대응에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
이날 이름 없이 다 함께 모은 조의금 봉투에서 상 없는 부조의 미를 읽을 수 있었다.
한편 조문객을 위한 접대는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조문하는 동안 눈물을 훔치는 사람은 있어도, 소리 내어 곡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사망자를 추모하고 안식을 기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