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0. 4. 21. 01:54

봄이 왔건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봄을 즐길 수가 없다. 아파트 발코니 너머 돋아나는 연두색 새싹을 바라본다. 유럽에 30여년을 살아도 이렇게 봄이 오면 어린 시절 한국에서 즐겨 먹었던 쑥, 다래, 냉이, 미나리, 두릅 등의 시골 봄나물을 떠올리곤 한다.

유럽에서는 야생 봄나물을 뜯어서 음식을 해먹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늘은 쐐기풀 (urtica dioica)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쐐기풀은 유럽 사람들이 기피하는 가장 대표적인 풀 중 하나다. 왜 기피할까?

잎이나 줄기에 포름산을 많이 포함한 털이 있어 만지거나 스치면 벌에 쏘인 것처럼 아주 따갑다. 심할 경우 긁힌 피부에는 한동안 선명하게 붉은 줄이 도드라져 있다. 유럽 수풀에서 반바지나 반팔을 잎고 부주의하게 돌아다니다보면 어느 순간 피부에 따끔따끔한 통증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십중팔구는 지나가다가 쐐기풀에 우연히 스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0년대초 유럽에서 겪은 일화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쐐기풀의 정체를 아직 잘 몰랐을 때다. 한번은 폴란드 친구들과 숲속에서 산책을 하는 데 한 어린 친구가 쐐기풀을 꺾어 장난을 쳤다. 

아마 그는 쐐기풀을 모르는 나에게 쐐기풀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내 뒤에서 쐐기풀로 여러 번 슬쩍슬쩍 내 팔을 때렸다. 그러자 따끔따끔한 통증이 느껴졌고 더 이상 장난치지 마라고 부탁했다. 그런데도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장난을 이어갔다. 

"그럼 한번 쐐기풀로 실컷 때려봐라"면서 사나이의 객기를 부려봤다. 숲길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면서 윗옷을 벗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 내 온 몸통을 앞뒤 좌우로 쐐기풀로 때렸다. 일생에 쐐기풀에 쏘일 양을 이날 다 받은 듯했다. 따갑고 화끈거리는 느낌을 오히려 내가 쾌감으로 받아들이니 그 친구는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해 그만두게 되었다. 이는 한동안 그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 빌뉴스 도심 담벼락에서 자라고 있는 쐐기풀


1992년 봄 헬싱키를 잠시 다녀왔다. 이때 핀란드인 친구가 숲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오늘은 쐐기풀을 뜯어 무침을 해먹어야겠다."
"쐐기풀은 쏘는 독성이 있는데."
"어린 싹은 그런 것이 없어."
이날 난생 처음 쐐기풀 무침을 먹어봤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그 정확한 맛은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한 끼 식사는 참 잘했다.

얼마 전 세르비아 에스페란토 친구(Jovan Zarkovic)가 건강에 좋은 쐐기풀 요리를 맛있게 해먹었다고 하면서 그 요리법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사진과 글을 허락했다. 

준비물
쐐기풀 새싹 20개
양파 1개
기름 1숟가락
달걀 5개
우유 약간
크림 약간

요리법
달걀을 깨서 우유와 크림에 넣어 젓는다
끓는 물에 약 5분 정도 쐐기풀을 삶는다
짤게 썰은 양파를 기름에 볶는다
그 위에 삶은 쐐기풀을 얹는다
그 위에 저은 달걀을 붓는다
뚜껑을 덮고 약 5분 정도 약한 불에 끓인다
소금으로 양념을 한다                            

이렇게 하면 세르비아 시골 사람들이 옛부터 즐겨 먹는 음식이 식탁 위에 오르게 된다. 이를 보고 있으니 쑥으로 만든 요리 같다. 
 


수백년 전부터 쐐기풀의 효용이 알려져 있다. 이것을 먹은 젖소의 우유는 지방이 더 함유되어 있고 새는 더 빨리 자라고 살이 찐다. 또한 닭은 더 큰 달걀을 낳는다. 쐐기풀은 머리카락을 강하게 하고 비듬을 없애준다. 쐐기풀은 제과, 약제, 향수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쐐기풀은 관절염, 통풍, 습진, 이비인후 장애, 출혈방지, 헤모글로빈 수치 증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유럽 수풀에서 피부에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겠지만 이제는 쐐기풀이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유용한 약재나 식재로서 다가온다. 아직 북유럽 리투아니아에는 쐐기풀 새싹이 돋아나지 않고 있다. 기회 되면 나도 세르비아 친구처럼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봐야겠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