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4. 2. 11. 05:15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흔히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언제 클까"일 것이다.

엉엉 울어대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왜 우는지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일일이 밥을 먹여주어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숟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옷을 챙겨 입혀주어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을까?"
머리를 빗겨 묶어주어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머리 손질을 할 수 있을까?"
학교 입구까지 손잡고 등교시켜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자녀를 키우면서 접하는 이런 물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씩 저절로 해결된다.
딸아이는 만 12살로 한국으로 치면 곧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하고, 3월에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다. 리투아니아는 초등학교가 4년제라서 중학교 2년생이다. 
    
최근까지 매주 금요일은 딸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챙겨 주고 학교에 보내는 일을 맡았다. 늦은 밤까지 일하고 서너 시간 잔 후에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질문이다.

"너는 언제 커서 스스로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가나?"
"아빠도 힘들지? 아직 내가 어리니까 아빠가 도와줘야지."
"빨리 스스로 혼자 아침밥 챙겨 먹고 갈 수 있도록 하면 참 좋겠다."
"그래도 아빠가 깨워주고 아침밥을 준비해주면 좋잖아."

드디어 때가 왔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딸아이는 꼭 3일째 이를 반복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아직 일주일이 채 안 된 지난 목요일 시차병으로 자명종없이 새벽에 일어났다. 일어나니 다섯시였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감기에 완쾌된 몸이 아직 아니지만 하루 일을 시작했다.

6시 20분 누군가 방문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랐다. 딸아이가 교복을 입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환영처럼 보였다. 딸아이는 아침 7시 10분경 깨워야 일어난다.

"네가 웬일이야?"
"아, 이제 혼자 일찍 일어나기로 했어."
"그래? 잘 했다. 씻고, 스스로 아침밥을 준비해봐라."
"알았어."

딸아이 아침밥은 사실 간단하다. 빵 두 조각에 버터를 바르고, 뜨거운 물에 코코아와 우유를 타는 것이다.

* '부모님, 이제 아침 늦게까지 편히 주무세요. 제가 알아서 아침밥 먹고 학교에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지난 12년 동안 딸아이는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았다.  

한국 부모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유럽인 자녀들은 이렇게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간다. 큰딸 마르티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 챙겨 먹고 등교했다. 

아, 이렇게 해서 난생 처음 작은딸 요가일래는 2014년 2월 6일 스스로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학교로 가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자명종을 맞춰놓고 딸아이를 깨우고 아침밥을 챙기는 일에서 마침내 해방된 셈이다. 자고 싶을 때까지 잘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7. 07:30

딸아이가 자라니 점점 아빠로서의 역할이 축소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등교시와 하교시에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이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 딸아이 학교 가는 길

주말인 금요일을 맞아 딸아이는 학교 근처에 있는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때마침 그 근처에 일이 있어 갔다가 딸아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너 안 추워."
"괜찮아."
"발이 안 시러워?"
"양말바지 하나에 양말 하나."
(스타킹이라는 말 대신에 우리는 양말바지라 부른다)

그리고 잠시 걸어오는데 딸아이가 한 마디했다.

"추운 날엔 양과 말에게 정말 감사해야 돼."
"왜?"
"양말이 따뜻하게 해주잖아."
"그 양말하고 양과 말은 다르지."
"알아, 하지만 양말이 꼭 양 더하기 말 같아서 한국말이 재미있어."

* 양말이 양 더하기 말?

양말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양 더하기 말, 즉 양과 말의 조합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양말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딸아이의 재미난 생각처럼 혹시 양털로 만든 말굽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서 양말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상상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양말은 서양식 버선으로 한자 洋襪에서 온 말이다.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 달라지고 있을 뿐이니 사실 지금의 양말이라는 말을 버선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아뭏든 "날씨가 추운 것이 아니라 옷을 얇게 입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모두들 따뜻하게 옷을 입고 겨울을 잘 나길 기원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9. 20. 06:04

오는 10월 8일 아내는 3주간 인도로 해외연수를 간다. 인도 정부가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한 정부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인도는 다양한 기간 동안 연수를 시킨다. 항공료, 체재비, 교육비 등 일체 경비를 인도 정부가 부담을 한다. 아내가 참가할 프로그램은 "리더쉽 훈련 프로그램"이다.

아내가 없는 동안 딸아이 학교 보내기 등 모든 일은 고스란히 떠맡겨되었다. 딸아이는 9월부터 초등학교 4학년생이다. 만으로 아직 9살이다. 여전히 아내가 학교 가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아내와 나는 생활패턴이 달라 늘 늦게 일어난다. 식구들이 다 잠든 늦은 시간에 일에 집중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에 늦게 잠자리에 든다. 그래서 대부분 딸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보지 못하다.  

"이제 일찍 자고 같이 일어나 어떻게 요가일래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지 배워야지."라고 아내가 말했다. 어제 일어나 아내로부터 하나하나 배우기를 시작했다.

먼저 7시 일어난다.
부엌 창문밖에 있는 바깥온도계를 확인한다.
그날 온도에 따라 입고갈 옷을 고른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에는 체육에 적합한 옷을 입힌다. 

딸아이 방에 가서 딸을 깨운다.
옷을 주고 부엌으로 간다.

코코아 차를 만든다.
두 찻숟가락 코코아, 한 찻숟가락 설탕을 넣는다.
뜨거운 물을 컵 1/2이 조금 안 되도록 붓는다.
우유를 붓는데 컵 위까지 찰랑찰랑 차지 않도록 한다.


"코코아가 너무 차지도 않아야 하고 너무 뜨겁지도 않아아 한다." 
"왜 이렇게 어려워!"

그리고 하얀 빵 한 조각에 잼을 바른다.
빵을 먹는 동안 도시락을 준비한다.
과자 몇 개와 사과, 그리고 잼을 바른 빵 한 조각이다.

다음은 머리를 손질한다.
머리 손질하기에 적당한 빗과 머리끈을 준비한다.
머리 손질과 머리 묶기를 돕는다.

이어서 딸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학교로 향한다.
이때 침실 창문가로 얼른 가서 딸이 뜰을 지나고 신호등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렇게 학교 보내기가 끝난다. 이어서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 일과를 생각해본다.


일어나 대충 준비하고 빵 먹고 등교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학교보내기를 따라해보니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대로 척척 준비해나가는 아내의 능숙함이 경이롭게 보였다.

▲ 요가일래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이 머리를 묶어서 오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풀어진 머리는 글쓰기 등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준비하더라도 선택한 옷이나 아침밥 등으로 딸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생길 법하다. 분명히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아내의 빈자리, 엄마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2주 넘게 남았으니 배우고 익숙해지는 데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3. 1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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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빠로서의 의무 하나가 이번주에 끝이 났다. 홀가분하지만 웬지 끈 하나가 끊어진 것 같아 허전하기도 하다. 지난 3년 동안 거의 매일 행해오던 의무였다. 바로 딸아이 등교시키기다.
(오른쪽 사진: "학교 혼자 잘 다녀올게")

딸아이는 2008년 9월 1일 초등학교에 입학해 현재 3학년 2학기에 다니고 있다. 기약없이 지속될 것 같았는데 마침내 딸아이는 이번주 목요일부터 혼자 등교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800미터이다. 번잡한 사거리가 하나 있고, 큰 거리를 따라 가면 된다. 군데군데 신호등이 없는 사잇길이 있어 걱정스럽다. 갑자기 과속으로 튀어나오는 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학년과 2학년일 때는 엄마와 번갈아가면서 등교를 시켰다. 물론 주된 당번은 아빠였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새벽에 잠들면 방문에 "don't disturb"를 붙여놓는다. 이런 날은 엄마가 데리고 가는 날이다. 2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하교 때 학교에 가서 데리고 와야 했다.

3학년이 되자 엄마는 등교시키기 일을 일체 아빠에게 미루었다. 적어도 집안 일 중 전적인 책임을 지고 해야 하는 일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또한 등교시키고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분이니 하루 운동량에 충분히 보탬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지난해 9월부터 매일 딸아이를 등교시키게 되었다.  

좀 더 일찍 혼자 등교할 수도 있었지만, 겨울철 어두운 아침 때문에 미루어졌다. 요즈음은 아침 7시면 사방이 훤하다. 그 동안 "30분이나 1시간만 더 잤으면 하루가 다 개운할 것인데"라며 진하게 아쉬워한 날들이 많았다. 딸아이 때문에 수업 받지 않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이제 졸업을 하게 된 셈이다. 학교까지 동행하는 의무는 벗었지만 여전히 작은 과제가 남아있다. 사거리를 건널 때까지 침실 창문을 통해 딸아이의 동선을 살피는 것이다. 녹음이 짙게 들면 이 일은 절로 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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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시키기가 귀찮아 짜증이 났을 때 "도대체 너는 언제 혼자 학교 갈 수 있나?"를 묻곤했다. 그 언제가 바로 이번주였다. 이렇게 우리 집은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다. 늦은 듯하지만 자력을 얻어가는 딸의 모습이 흐뭇하다. 혼자 학교에 등교하고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스스로 자랑스러운 듯했다.

"봐, 나 이렇게 혼자 학교에 잘 가고 올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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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12. 28. 07:33

해가 긴 여름철이 지나고 회색빛 하늘이 잦아지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벌써 동지가 몹시 기다려진다. 잘 알다시피 동지는 밤이 제일 긴 날이다.

일출: 오전 8시 40분
일몰: 오후 3시 54분

동지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밤이 제일 긴 이날 이후부터 낮이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이다. 날이 길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낮이 제일 긴 하지를 희망하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는 것이 덜 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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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A)에서 딸아이 초등학교(B)까지 거리는 800미터이다.

겨울철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를 아침 7시 30분에 등교시킨다. 집에서 딸아이 학교까지 거리는 800미터이다. 길거리엔 여전히 어둠이 깔려 있고, 가로등이 해를 대신한다. 최근 딸아이는 내가 어렸을 때 등교에 대해 물었다.

"아빠가 어렸을 때 학교는 멀었어?"
"정말 멀었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어?"
"두 시간 정도."
"두 시간이나! 차나 버스가 없었어?"
"없었지."

그때는 손목시계도 없었다. 라디오와 인근 읍사무소에서 나는 12시 정각 사이렌 소리로만 정확한 시간을 알 수가 있었다. 들판 넘어 바다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등교시간의 잣대였다. 막상 두 시간이라고 답했으나 좀 부풀어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구글지도를 살펴보았다. 우리 집(A)에서 학교(B)까지 거리는 2.6km였다. 지금 보니 걸어서 30-40분 걸리는 거리이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1시간 반 내지 두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가다가 산에 핀 진달래꽃도 보고, 들판에 익어가는 벼도 보고, 길 위로 기어나오는 뱀도 피하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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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A)에서 내 학교(B)까지 거리는 2.6km이다. 우리 마을은 산, 들, 강, 바다가 어울려져 있다.

특히 우리 마을은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강 건너 있는 마을과 산 넘어 있는 마을에는 각각 초등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가 더 가까웠지만, 행정구역상 우리 마을 아이들은 더 멀리 있는 학교로 가야 했다.

정말이지 단지 2.6km밖에 떨어져 있는 학교가 그땐 그렇게 멀어보였다. 읍내에 있는 4층 건물이 하늘만큼 높아보였던 시절이었다. 이는 결국 아이와 어른의 눈높이 차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