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투라이다성(Turaidas pils, Turaida castle)을 12월 초순 다녀왔다. 대부분 숲으로 되어 있는 가우야(Gauja) 국립공원 내에 있다. 투라이다성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주로 찾는 라트비아의 관광 명소 중 하나다. 

투라이다(Turaida)는 고대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리브족 언어 혹은 리보니아어로 "토르(Thor)의 정원"을 뜻한다. 토르는 망치를 든 신으로 북유럽 게르만 민족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이었다. 토르는 천둥과 번개의 신이기도 하다. 또한 폭풍, 참나무, 수확, 보호, 전투, 힘 등과도 관련이 깊다.

이 일대는 라트비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로 숲과 초지 그리고 강과 산이 잘 어우러져 있다. 여기를 방문하면 고대 원시인들이 왜 여기를 "신의 정원"이라고 불렀는지 누구라도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먼저 산 아래에 볼거리가 하나 있다. 발트 3국에서 가장 깊고 넓고 높은 동굴이다. 이 동굴 이름은 구트마니스(Gūtmaņa ala, Gūtmaņis' cave)다. 구트마니스는 선남자(착은 남자)를 뜻한다. 아래는 구트마니스 동굴에 가기 위한 입구이자 주차장이다. 여름철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들로 가득 차 있다. 주차료는 있지만 동굴 입장료는 없다.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연못을 이루고 밤사이 내린 눈이 백설 천지를 만들어 놓았다.


산 밑에 동굴이 보인다. 발트 3국에서 제일 크다는 동굴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약 1만년 전 사암층에 형성된 이 동굴은 깊이가 18.8미터, 넓이가 12미터, 높이가 10미터다. 이런 규모의 동굴이 발트 3국에서 제일 크다니... 바로 "호랑이 없는 산에 토끼가 왕 노릇한다"는 속담이 딱 맞는 곳이 바로 여기다.     


이 동굴은 "투라이다 장미"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다. 여기에서 1620년 "투라이다의 장미"라는 별명을 얻은 아리따운 19살 약혼녀 마이야(Maija)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다. 

이 동굴의 명물은 사암에 새겨진 글씨다. 여기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68년과 1677년에 새겨졌다("GEORG CONRAD Von VNGER STERNBERG 1668"과 "ANNA MAGDALENA Von TIESENHAVSEN ANNO 1677"). 내가 이날 찾은 가장 오래된 것은 1822년이다. 200여년 전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기념으로 표시해 놓았다.  


동굴에서 나오는 샘물이 연못으로 졸졸 흐르고 있다. 옹달샘의 맑은 물줄기가 따로 없다. 회색빛 토끼가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하다.



여름철 저 간이매점에서 열정적으로 크랜베리와 아몬드 과자를 파는 라트비아 사람이 떠오른다. 지금은 비수기라 텅 비어 있다. 


올겨울 이렇게 많이 내린 눈은 처음 본다. 날씨가 포근해서 언제 눈이 올까 몹시 기다렸는데 이렇게 라트비아 투라이다에서 보게 되다니...   


이제 발길을 투라이다성으로 돌린다. 


아래는 10월 가을에 찍은 모습이다.



투라이다성은 알베르트(Albert) 리가 대주교가 1214년 기존 부족장의 목조성을 철거하고 붉은 벽돌로 짓기 시작했다. 이후 증축을 거듭하다가 1776년 대화재로 대부분 소실된 후 방치되었다. 1970년에 와서야 일부가 복원되어 현재 박물관(입장료 6유로)으로 운영되고 있다. 배의 돛대처럼 우뚝 솟은 주탑으로 올라가본다. 


아래는 8월 여름에 찍은 모습이다.


주탑은 5층이고 밑에서 첨탑까지 높이가 38.25미터다. 외벽 직경이 13.40미터고 벽 두께가 2.90미터에서 3.70미터다. 나선형으로 되어 있는 계단 139개를 밟고 올라가면 전망대(해발 약 120미터 높이)가 나온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주변 경관은 사시사철 다 아름답고 멋지다. 굽이굽이 흐르는 가우야강이 거대한 숲을 갈라 놓는다. 그야말로 산태극 수태극이다.  


투라이다성은 가우야강 강변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강 너머 언덕 위가 시굴다(Sigulda)다. 백설 대지 위로 다시 눈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아래는 10월 초순 가을에 찍은 모습이다.


싸라기눈이다. 소리가 두 번 난다. 첫 번째는 옷에 떨어지는 소리고 두 번째는 땅에 떨어지는 소리다. 이렇게 소리가 나는 눈을 맞아본 지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없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햇빛이 1750년에 지어진 목조 교회의 붉은 외벽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래는 5월 봄에 찍은 모습이다.


"투라이다의 장미" 마이야(1601-1620)의 무덤에 다다르자 싸라기눈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폭설로 변한다. 


이날 투라이다성의 백설 경관과 싸라기눈 내리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본다. 투라이다성은 여름과 마찬가지로 겨울에도 와볼만한 곳임을 다시 한번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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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과 5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을 다녀왔다. 탈린은 북위 59도 26분 13초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겨울철은 낮이 짧고 밤이 길다. 일출이 아침 9시이고 일몰이 오후 3시 반이다. 

이날 다행히 낮에는 날씨가 영상 6도고 엷은 구름 사이로 종종 해가 얼굴을 내민다. 먼저 톰페아 언덕부터 구경을 시작한다. 전날밤 내린 비가 마르지 않아 돌바닥은 촉촉하다. 에스토니아 국회 바로 앞에 있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러시아 정교 성당은 언제 봐도 위엄스럽다. 초승달을 한 8단(꼭지점 8개) 십자가가 보인다.    


넵스키 성당에서 길을 건너 왼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공원이 나온다. 석회석으로 지은 높은 탑이 눈에 들어온다. 키다리 헤르만 탑이다. 꼭대기에는 파란색 검은색 하얀색 에스토니아 국기가 펄럭인다. 14세기에서 16세기초에 지어진 탑으로 높이가 45.6미터다.  


기존 톰페아성에 추가된 18세기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현재 에스토니아 국회(의원수 101명)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발트해 탈린만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올레비스테 교회(123.8미터) 첨탑과 여러 개의 망루(방어탑)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돌바닥에 고여 있는 빗물에 수백년 된 건물이 투영되어 있다.  


이맘때 탈린 여행의 백미는 바로 시청광장에 펼쳐진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이다. 이번 마켓은 11월 16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열린다.    


크리스마스 마켓 가운데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져 있다. 11월 9일 점등식을 가진 크리스마스 트리는 내년 1월 28일까지 시청광장을 빛낼 것이다. 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구 줄 50개, 작은 전구 5,000개, 큰 전구 2,500개, 붉은색 그리고 황금색 유리공 240개, 하트 모양 조명도구 50개로 장식되어 있다. 탈린 시청광장 크리스마스 트리는 에스토니아에서 자라고 있는 15-18미터 높이의 나무 중에서 경선으로 선택된다. 올해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작업 장면은 여기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 탈린과 라트비아 리가 중 어디가 먼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늘날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지역에서 상업 활동을 활발히 펼친 "검은머리 길드" 회원들이 1441년 탈린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져왔다. 에스토니아 역사학자 위리 쿠스케마(Jüri Kuuskemaa)는 1441년 12월 25일 탈린 시청광장 크리마스 트리에서 공연한 연주가들에게 탈린 시의회가 돈을 지불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1711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탈린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에 참가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리가 사람들은 최초로 1510년 크리스마스 트리가 리가 시청광장에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이날은 평일이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회전목마는 쉬고 있다. 


마켓은 주로 어떤 물건들을 팔까? 추운 곳이라 양털로 만든 의류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양털로 만든 모자와 목도리가 손님을 기다린다. 목도리로도 사용할 수 있는 길쭉한 양털 모자가 인기 있다.   


빼곡히 걸려 있는 모피 제품이다. 모자를 거의 안 쓸 뿐만 아니라 모피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무용지물...


에스토니아는 전국토의 반이 숲이다. 목재 생활용품과 장난감을 파는 상점이다. 판매대가 손님들이 쉽게 만져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어서 좋다. 


가장 많이 팔리는 것 중 하나가 글뢰그(glögi)다. 글뢰그는 정향, 계피, 생강, 오렌지껍질, 카다멈 등을 넣고 끓인 따뜻한 술이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마신다. 따뜻하게 데운 포도주도 인기다. 사람들은 한 모금씩 마시면서 마켓 구경을 즐길 수 있다. 가격은 알콜 없는 포도주가 2유로, 따뜻한 포도주가 3.5유로, 바나 탈린(에스토니아 전통 리큐어)을 섞은 포도주가 4유로다.       


조금 더 어두워지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벗어나 골목길 산책에 나서본다. 날씬한 첨답이 돋보이는 고딕 양식의 탈린 구시청사가 아치 속으로 들어온다.


탈린 구시가지에서 있는 가장 작은 건물이다. 성령 교회 건물에 붙어 있다. 일명 "작은 붉은 집"이다. 4층으로 되어 있는 55평방미터의 크기다.      


골목길에서 바라보는 탈린 시청사와 크리스마스 트리다.


다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온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쉽게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구시가지를 벗어나야 한다. 비루 쌍탑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저 뽀족한 시청 첨탑 너머로 보이는 분홍빛 노을이 그야말로 환성적이고 신비롭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겨울왕국 2"의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겨울왕국은 여기 이 순간에 다 보고 있다!"라는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휴대폰이 삼성 갤럭시7이라 내 눈으로 보고 있는 하늘 색감을 그대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아쉽다.    


탈린 시청광장 크리스마스 마켓을 영상으로도 담아본다.


* 초유스의 또 다른 탈린 이야기:  사진찍기 좋은 장소 | 각양각색 현관문들 | 탈린 밤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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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3국 여행2019. 6. 26. 06:09

발트 3국 여행에서 돋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관광객들로 아직 범람하지 않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지와 
청정한 자연 환경을 꼽을 수 있겠다. 
파아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하얀 구름은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다.

이번 6월에 만난 발트 3국 관광지를 아래 사진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호수 한 가운데 떠있는 듯한 리투아니아 트라카이 성이다.


리투아니아 샤울레이 근교에 있는 십자가 언덕이다. 

작은 언덕에 각자의 소원은 담은 수십만 개의 십자가에 꽂혀져 있다.



라트비아 룬달레 궁전 정원 6월은 장미꽃 향내가 진동을 한다.



라트비아 리가를 가로 지르는 다우가바 강 건너편에서 리가 구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신의 정원이라 부리는 라트비아 투라이다에는 작약꽃이 피어나고 있다.



에스토니아 패르누 해변은 수심이 낮아서 아이들 물놀이에 안성맞춤이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붉은 벽돌 건물보다 석회석 석재 건물이 돋보인다. 



6월 발트 3국 일물 시각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다. 일몰 후에도 한동안 여전히 훤하다.



여름철 직업이 관광안내사로 발트 3국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관광 버스 운전사를 만났지만 일전에 만난 운전사 같은 사람은 처음 만났다. 연세가 좀 있어 보였다. 조용하면서도 아주 능숙하게 운전을 하였고 길도 척척 잘 찾았다.



이보다 더 나를 더 감동시킨 것은 바로 그의 배려심이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더웠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려고 버스에 올라타니 내 의자와 인솔자 의자에 시원한 물 한 병이 놓여져 있었다.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나는 무엇을 배려했고, 배려하고, 배려할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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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하순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일몰은 
오후 10시 30-40분경이다. 
남쪽으로 600여킬로미터 떨어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일몰은 오후 10시경이다. 

밤 11시가 되어도 가로등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하늘은 여전히 밝음을 이어지고 가고 있다.

* 2018년 6월 16일 오후 11시 43분 모습 (붉은 원 안이 바로 라디슨 블루 스카이 24층 레스토랑)


이맘때 이곳은 야경을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바로 정점인 하지를 향해 나아가는 긴 날을 즐겨야 한다. 


탈린은 발트 3국 수도 중 바다와 접해 있는 유일한 곳이다. 
어느 곳에는 붉게 어느 곳에서는 하얗게 변해가는 
발트해 탈린만을 바라보면서 여름철 일몰을 즐길 수 있는 곳을 하나 소개한다. 


바로 구시가지 근처에 있는 라디슨 블루 스카이(Radisson Blue Sky)
24층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실내에도 가능하고 실외에도 가능하다. 
여름철인데도 대체로 날씨는 쌀쌀하다. 
6월 16일 이곳에 지인들과 다녀왔다. 
이날 바라본 일몰 무렵과 탈린 구시가지 모습이다. 


레스토랑에는 모포도 있지만 
긴팔을 입거나 따뜻한 옷을 챙겨가야 한다. 
참고로 맥주 500cc 한 잔 가격이 6유로였다.

6월 16일 오후 10시 44분 불꽃놀이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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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Tallinn)은 발트 3국 중 한 나라인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다. 여행 안내서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은 "2018년 알뜰한 여행객을 유혹하는 최고의 10대 여행지"에서 탈린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렇다면 탈린을 여행하는 데에는 언제가 가장 좋을까? 여행객마다 성향이 다르므로 어느 한 계절을 특정해 추천하기가 사실 어렵다. 10월 초순과 중순에 탈린을 세 차례 다녀왔다. 아담한 구시가지는 걸어서 구석구석을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노란 단풍이 수놓은 촉촉한 돌길을 따라 탈린 구시가지를 둘러보자.



올레비스테 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탈린 구시가지



긴다리 거리에서 본 알렉산더 넵스키 성당



톰페아 언덕에 있는 한 거리. 멀리 마리아 대성당이 보인다.



여러 길드들이 몰려 있는 카타리나 골목길



베드로와 바울 가톨릭 대성당



대길드 앞 



니굴리스테 성당



참새 한 마리가 일광욕을 즐긴다.



모처럼 만나는 맑은 하늘



시청 광장 앞



어서오세요 - 올데 한자



가을 거리에서 가장 흔히 만나는 식물은 히스(heath)



탈린 구시가지에 가장 작은 건물로 알려진 선물가게



다소 으시시한 날 건물 안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몸을 녹히는 것이 좋겠다.



이맘때도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구나... 



스웨덴 대사관이 있는 긴다리 거리



골목길 넘어 탈린 시청과 그 꼭대기에 늙은 토마스가 보인다.



대부분 선물 가게 앞에는 이렇게 인형이 세워져 있다.

 


긴다리(pikk jalg) 거리



탈린의 멋 중 하나는 바로 각양각색의 출입문들이다.  관련글은 여기로 -> "시선을 빨아들이는 다양다색 탈린 중세 문들



잿빛 하늘 아래 이처럼 화려한 색깔의 문과 단풍으로 가득 찬 탈린의 구시가지는 구시월에 방문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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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3. 8. 13. 05:17

관광안내사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행사 중 관괭객들과는 대개 일방통행식으로 의사전달이 이루어진다. 관광지에 대한 설명이 주된 임무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로부터 질문이 많을 때는 다소 힘들지만 기분은 좋다. 서로 소통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동안 함께 했지만 헤어질 때는 마음이 찡하고 아쉬워하는 경우도 많다. 일전에 만난 단체도 이 경우이다. 식당에서 음식이 맞지 않아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이나 반찬을 꺼내 먹는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그런데 이번 단체는 여러 날을 같이 보냈지만,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 분들은 참 대단하다. 오로지 현지식에만 충실하시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출발하기 위해서 공항으로 떠나기 전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 관광객들이 한 분 두 분 다가와 봉지에 든 것을 주었다.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실례가 될 듯해 주저되지만 혹시나 해서 이렇게 드립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이렇게 모인 음식 선물 봉지가 내 가방도 더 컸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대부분 컵라면, 소주, 한국 과자였다.


그 중에서 이번 대박 음식은 뭐니해도 무말랭이 무침이었다, 달콤매콤한 이 반찬을 먹어본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적은 양이지만, 여러 끼를 절약해서 먹었다.


관광안내사 일의 또 다른 재미가 이런 것이다. 그 동안 음식 선물을 준 모든 관광객들에게 감사드린다. 외국에서 진짜 한국의 음식 맛을 느끼고 (찰나이지만) 즐길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관련글: 유럽 현지 식당에서 한국 반찬 먹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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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3. 7. 9. 07:46

유럽의 대부분 나라와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가족 중심이다. 가능한 어디를 가든 가족, 혹은 부부가 함께 간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산 가족이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큰 딸 마르티나 때문이다. 

마르티나는 여름 방학인데도 집에 못 오고 있다. 이유는 방학을 집에서 보내다가 학년이 시잘 무렵 영국으로 돌아가면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시간제로 일하던 커피숍에서 방학 동안 정식으로 일하고 있다. 궁금한 분을 위해 알리자면 영국 스코트랜드 에딘버러에서 그가 받는 시급은 6.29파운드(한국돈으로 10500원)이다. 단기간 목표는 열심히 일해서 내년에 6개월 동안 중동 두바이에 있는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나머지 가족이 방학을 맞아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아내는 세 식구(나, 아내, 작은 딸)가 모두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을 찾아봤으나 불가능했다. 결국 아내와 작은 딸 둘이만 영국 에딘버러로 떠났다.

하루 이틀은 그런 대로 견딜만 했다. 식구 각자의 식성이 달라서 함께 있을 때도 같이 밥을 먹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요리해주는 따뜻한 음식은 모두가 식탁에 앉아 먹곤 한다. 

아내가 없는 동안 밥 때가 되면 더 바빠지는 듯하다. 요리를 해서 혼자 먹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울 것인가가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간이식품으로 눈과 손이 가게 된다. 여름철이 되니 귀한 한국 간이음식들이 우리 집 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연은 간단하다. 여름철엔 발트 3국 관광안내사(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을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것 같은 나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기 때문이다. 


음식 선물을 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이 음식이 아내가 없는 지금 아주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컵라면 봉지가 쌓여간다. 


버리지 않고서라고 핏잔을 줄 사람도 있겠다. 참고로 컵라면 봉지는 시골에 계시는 장모님이 이른 봄철 씨파종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모운다. 아내가 그리운 지, 따뜻한 음식이 그리운 지... 아뭏든 잘 있다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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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사 일을 하다보면 소지품과 관련해 여러 일을 겪게 된다. 아침에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소지품을 다시 확인할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옷이나 지갑, 손가방 등을 호텔방에 놓아두고 나오지 않았는지 확인시킨다. 

1. 나온 방도 다시 보자 
모두가 이상이 없다고 해 출발한다. 얼마 전 호텔을 떠나 같은 도시의 구시가지에서 관광안내를 하는 데 손님 중 한 분이 슬며시 다가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스마트폰을 호텔방에 놓아두고 온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전화해보겠습니다."

호텔에 전화하니 30분 후에야 확인해줄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안면이 있는 호텔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손님 중 또 한 분이 스마폰을 방에 놓아두지 않았나요?"
"확인하겠습니다."

한 손님이 태연하게 자신의 손가방을 뒤지더니 휴대폰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아직 그 도시를 떠나지 않은 상태로 그 호텔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다음 일정이 한 시간이나 늦어졌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처럼 "나온 방도 다시 보자." 

호텔방에 놓고 온 물건은 비교적 찾기가 쉽다, 물론 호텔 직원이 정직하다라는 전제이다.

* 어디든 사람이 붐부비는 곳에는 각별히 소지품을 조심해야  

2. 물건 살 때 지갑은 꺼내지 말고 가방 속에
한 번은 손님이 가게 물건 위에 지갑을 놓고 값을 지불했다. 서두러다 거스름돈을 받고 지갑에 넣지 않고 손에 쥔 채로 그대로 나왔다. 놓아둔 지갑을 챙기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관광하던 중에야 지갑이 떠올라서 가게를 갔다.

"지갑을 못 보았어요?"
"보지 못했어요."

바쁜 다음 일정 때문에 다른 절차를 밟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지갑 안에는 소액이 들어있었고, 여권도 다른 곳에 놓아두었다. 물건을 살 때 항상 지갑은 손가방 속에 넣어놓은 채로 계산하는 습관을 들어야 한다. 잠깐 꺼내놓은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서두러다가는 챙기는 것을 쉽게 잊는다.

3. 가방끈으로 손이나 발에 묶어놓자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온 손님들은 인솔자가 수속을 밟는 동안 지친 몸을 편안한 의자에 기대어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소지품을 내려 놓는다. 인솔자가 방열쇠를 나눠주고, 다음 일정을 안내한다. 이때 그만 옆에 놓아둔 작은 가방을 챙기지 않고 큰 가방만 끌고 호텔방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소지품은 즉각 사냥꾼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 호텔 로비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일전에 탈린 구시가지에 아주 가까운 소코스Sokos)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다. 호텔 로비에는 여기저기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로비 가운데 있는 벽 뒤에 있는 일정 부분은 CCTV 사각지대였다. 공고롭게도 한 손님이 이곳에 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여권과 지갑이 든 손가방을 발 아래 놓았다. 인솔자의 안내가 끝나자 이 분은 가방을 챙기지 않고 그냥 호텔방으로 올라갔다. 

호텔방에서 가방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로비에 내려오니 가방이 없었다. 일행 중 누군가 챙겼을 것이라고 바라면서 호텔방으로 올라와 물었다.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로비에 내려오니 가방이 있었다. 

가방 안을 확인하니 지갑이 없어졌다. 하지만 지갑에 넣어두었던 신용카드는 가방 바닥에 있었다. 여권도 그대로 있었다. 단지 신용카드를 뺀 지갑만 훔쳐갔다. 4성급 호텔 로비에서 부주의로 인해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저 여권이 있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일정에 구애받지 않았더라면 CCTV도 살펴보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손님에게 미안하다. 

여행 중 중요한 소지품은 한시라도 손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 내려놓으려면 손이나 발에 그 가방의 끈으로 묶어서 자리 이동을 위해 일어설 때 이를 반드시 챙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남아있는 여행 기간 중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Posted by 초유스

발트 3국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라트비아에서 대표적으로 방문하는 곳은 수도 리가(Riga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유르말라(Jurmala), 남쪽으로 룬달레(Rundale) 궁전, 동쪽으로 투라이다(Turaida) 성이다. 

* 투라이다 상 입구(상)와 방어탑에서 내려본 전경(하)

리가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는 투라이다 성은 가우야(Gauja) 강변의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가톨릭 리가 대주교 알베르트(Albert)가 1214년 세우기 시작했고, 리가 주교의 거주지 중 하나였다. 1776년 화재로 폐허가 되었고, 1970년대부터 유적 발굴과 복원 사업이 전개되었다. 지금은 일부가 복원되어 박물관으로사용되고 있다. 특히 높은 방어탑에서 내려다 보는 주변 경관이 일품이다. 


* 투라이다 성 안 뜰에서 본 모습

투라이다 성은 "투라이다의 장미" 이야기로 유명하다. 폴란드와 스웨덴 전쟁 중 1601년 봄 전투장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여자아이 한 명 발견된다. 성 관리인은 마이야(5월이라는 뜻)라고 이름 짓고 친딸처럼 잘 키운다. 

마이야는 "투라이다의 장미"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라 강 건너 시굴다(Sigula) 성의 정원tk 빅토르 헤일(Viktor Heil)과 약혼한다. 한편 당시 성에 근무하던 폴란드 군인 아담 야쿠보브스키도 청혼했지만, 마이야는 이를 단번에 거절한다. 아담은 빅토르가 편지를 쓴 것처럼 속여서 마이야를 인근에 있는 구트마나(Gutmana) 동굴로 유인한다.

마이야는 약혼자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아담에게 자신의 붉은 스카프는 마법을 지니고 있어서 심지어 검으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다고 하면서 한번 해보라고 한다. 이에 아담은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친다. 이때가 1620년, 마이야가 19살이다.  

* '투라이다의 장미'(마이야)의 무덤

약혼녀의 죽음을 전해 들은 빅토르는 동굴로 달려온다. 서두러다가 잃어버린 그의 도끼가 동굴 속에서 발견된다. 졸지에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하지만 아담의 동료 군인이 진실을 법정에서 밝히자 빅토르는 풀러난다. 마이야는 투라이드 성 안에 묻혔고, 빅토르는 그 무덤 곁에 보리수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이 나무는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을 표현이라도 하듯이 기이한 모습을 하고 지금도 자라고 있다. 

* 마이야가 죽은 장소로 알려진 구트마나 동굴

마이야가 지조를 위해 목숨을 버린 구트마나 동굴은 발트 3국에서 가장 큰 동굴이다. 길이 19m, 너비 12m, 높이 10m이다. 사암층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치료와 회준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지난해 여름 이 동굴에서 나와 도로변 주차장으로 돌아오다가 신기한 나무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나무 밑은 연리목이요, 위는 연리지이다.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은 흔히 연리목(連理木)이나 연리지(連理枝)로 비유된다. 밑에서 연리목이 된 두 나무는 또 다시 위에서 연리지를 형성한다. 훨씬 후세대에 자라기 시작한 나무이지만, 마치 마이야와 빅토르의 애틋한 사랑의 극치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3. 3. 13. 07:27

이번에 한국을 다녀온 이야기 중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국립고궁박물관이다. 빌뉴스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사용할 교재를 살펴보기 위해 교보문고를 가는 중이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렸다.

출구를 찾아서 나오는 데 "국립고궁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관람료는 무료입니다"가 눈에 띄었다. 환영보다 무료가 더 반가웠다. 여름철에는 발트3국 관광안내사로 일한다.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 심지어 성당이나 교회(리투아니아 제외)도 입장이 유료인 경우가 흔히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고궁박물관 안으로 들아가보았다.


입구 안내실에 들어서니 리투아니아 빌뉴스 우리 집에 있는 인조 새를 닮은 새가 매달려 있는 장식화가 먼저 시선을 끌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는 화준(花樽)으로 용무늬가 있는 항아리 위에 2천여 다발의 복숭아꽃을 중심으로 나비, 벌, 잠자리, 새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복숭아꽃은 왕의 권위와 위용을 상징하고, 각종 새와 곤충은 군신을 상징한다. 


홀로 이리저리 구경하는 데 "조선 27대 국왕" 앞에서 여러 사람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입장은 무료지만, 해설까지 무료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유료라면 이미 돈을 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관광지에서 안내사의 설명이 있고 없고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일단 주변 상황을 살피면서 엿들었다. 


해설사는 차분한 음성으로 알차게 설명해주었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일월오봉도의 설명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월은 음양, 왕과 왕비요, 오봉은 오행(목화토금수)이자 오상(인의예지신)이다. 즉 이는 인의예지신 다섯 가지 덕목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조선의 왕관에는 구슬줄이 아홉 개가 매달려있다. 왜 일까? 이는 중국 황제의 관과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관은 구슬줄이 모두 열두 개이다. 이는 왕비 궁중옷의 줄무늬에도 적용된다. 아래 사진 속 궁중옷의 새 장식줄을 세어보면 모두 아홉이다.


새롭게 안 사실 또 하나는 잡상이다. 기와지붕 위 추녀마루에 흙으로 빚어올린 작은 장식기와(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다. 궁궐의 재앙을 막아주기를 바라면서 만든 것이다. 예전에 한국을 방문한 초등학생 딸아이가 "아빠, 궁궐 지붕 위에 있는 저 동물은 뭐야?"라는 물음에 "아, 저건 12지간에 나오는 동물이야!"라고 대답한 일이 떠올랐다. 얼마나 무식한 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때 딸아이가 동물 숫자를 세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이밖에도 궁궐의 화재 예방책이다. 불을 쫓는 신성한 동물인 용이나 해태로 장식한 일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자 용용(龍)자로 물수(水)자로 부적을 만든 것은 화재 예방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지를 쉽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정성과 기원에도 남대문 숭례문을 불태우다니!!!


끝으로 또 알게 된 사항이다. 근정전 등 돌계단에는 왜 가운데가 장식물로 막아져 계단이 없을까?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왕이 가운데가 아니라 약간 측면으로 올라 가도록 한 것은 분명 예가 아닐 것이다. 해설사의 답은 간단했다. 왕은 걸어서 올라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가마를 타고 올라갔다.


1시간 남짓 동안 새로운 사실을 열정으로 전해준 해설사와 무료입장과 무료해설까지 마련해준 문화 관계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궁박물관 식당에 먹은 버성영양밥도 맛있었고, 경복궁 지붕 위에서 울려대는 까치도 반가웠다.


발트3국 여름철 관광안내사로 일할 때 이번에 만난 국립고궁박물관 문화해설사((정애숙)의 모습을 떠올려야겠다. 한 마디로 말하면 유료입장과 유료안내에 익숙해진 나에게 과히 충격적이었다. 그냥 고개 숙인 감사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가방 속에서 리투아니아에서 가져온 초콜릿 한 상자로 꺼내 답례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