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2.03 히스꽃 한겨울에도 생기 가득
  2. 2010.01.25 지구온난화에 혹한으로 학교에 안가다 1
  3. 2008.09.12 밥상 위의 전인교육 2
생활얘기2020. 2. 3. 05:17

유럽에서 30년 사는 동안 이번 겨울처럼 따뜻한 겨울은 없었다. 북유럽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낮은 온도는 1956년 2월 1일 우태나(Utena)에서 기록된 영하 42.9도다. 가장 낮은 월평균 온도는 1987년 1월 영하 16.4도다. 2020년 2월 2일 빌뉴스 낮 온도는 영상 8도다. 

보통 리투아니아는 1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눈이 쌓여 있다. 남서부 지방은 연중 약 65일정도, 동부 지방은 연중 약 100일 이상 눈으로 덮혀 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지금껏 제대로 내린 눈이 한 번도 없었다. 거의 대부분 낮 온도는 영상이고 자주 봄비 같은 비가 내렸다.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에 비친 앙상한 나무가 이번 겨울의 날씨를 말해주고 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그야말로 실제다.


겨울철에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도심 인근에 있는 묘지를 흔히 방문한다. 생화가 가득한 여름철 묘지는 꽃공원을 연상시킨다. 겨울철에는 조화가 생화를 대신하고 있다.   


시들어버린 생화 둘레에 깔린 하얀색 돌이 마치 꽃잎처럼 보인다.    


생화는 모두 다 시들어버렸는데 유독 생기 가득하게 피어있는 꽃이 있다. 바로 히스꽃이다. 히스(heath)는 진달랫과 에리가속에 속하는 소관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곳에 자라는 히스꽃은 주로 칼루나 불가리스(calluna vulgaris)다.    


분홍색, 하얀색, 노란색 등 여러 색깔의 꽃을 피운다. 소코트랜드 사람들은 하얀색 히스꽃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양지 바른 곳이나 약간 그늘진 산성 토양에서 잘 자란다. 이곳에서는 건조한 소나무나 자작나무 숲, 습지 등에서 많이 자란다.   


특히 어두운 색과 쓴 맛을 가지고 있는 히스꿀은 상대적으로 값이 비싸다. 신장, 방광 및 전립선 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근래부터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묘에 이 히스꽃을 많이 심고 있다. 특히 눈이 없는 겨울철에 싱싱하게 꽃을 피워 묘를 지키고 있는 히스꽃이 돋보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1. 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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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도관이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얼마나 추운 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아파트의 실내온도는 중앙난방 덕분에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벌써 이번 달 말에 받을 난방비 고지서가 걱정된다.  
 
북동유럽 리투아니아에는 지난 12월 하순부터 영하 15도 내외의 한파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젠 좀 날이 풀리기를 바랬지만 오히려 기온은 더 내려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각 바깥 온도계는 영하 20도를 가르키고 있다. 최근 리투아니아는 기록적인 혹한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가 밤 온도가 영하 20-29도에 이른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추운 날씨 기록은 1956년 1월 31일 영하 42.9도이다.

리투아니아 교육부에 따르면 기온이 영하 20도 이상이면 초등학교 1-5학년 학생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영하 25도 이상이면 고학년들도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학교 수업이 열리지 않는다.

이런 혹한의 날씨가 계속되자 "히말라야의 빙하는 2035년이면 소멸된다"는 과학자들의 예측이 과연 맞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예측은 2500명이 넘는 과학자로 구성된 유엔 기후변화위원회가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면서 2007년 발표한 보고서에 담은 내용이다.

그 동안 겨울에 영하 20도 내외 날씨는 보통 1-2주 정도였는데 올해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폴란드 북동지방에 있는 한 친구는 현지 기온은 영하 30도를 넘어섰다고 방금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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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이젠 영하 10도 내외의 겨울 유럽날씨가 영하 30도 내외로 변화하지 않을 지 걱정이다. 갑자기 세계의 화두가 지구온난화에서 지구냉각화로 전환될 것 같다.
 
이제 몇 시간 뒤 일어날 딸아이 요가일래와의 실랑이가 눈에 선한다.

"나 학교에 갈래!"
"온도계를 봐! 영하 22도야!"

* 최근글: 딸아이의 첫 눈썹 메이크업에 웃음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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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9. 12. 05:57

혹자는 채식교육이란 말에 의아해 한다. 그냥 밥상의 고기를 두부나 야채로 바꾸면 채식인데 교육이라니, 그것도 학교현장에서 말이다. 하나 인간의 행동패턴을 바꾸기가 그리 쉬운 것일까? 오죽하면 육식문명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학창시절 자주 듣는 말이 전인교육인데 지금도 그 개념이 분명치 않다. 자기 직분의 존엄성이 없이 일하는 ‘사람’은 단지 노동자가 되어버리고, 배우는 ‘사람’은 없고 학생만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 ‘전인(全人)’이란 말은 인간의 본래적 통일성을 상기시킨다. 에머슨의 말처럼 ‘전인(全人)’을 찾자면 ‘전사회적(全社會的)’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인교육의 내용은  건강한 몸과 좋은 품성, 그리고 생태의식과 최상의 윤리적 행동을 갖추는데 있다하면 지나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채식이 이러한 사항을 더 할 나 위없이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교육방편의 하나라면 일선교사들도 채식교육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첫째, 인간의 몸과 품성은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에 비해 공격적인 것이 그 증거다.  무엇보다도 식사와 소비의 깨어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미국인의 식사’란 책에서 존로빈슨은 도살장에 끌러가기 직전의 닭의 70%가 암에 돼지의 80%가 폐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는 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성장호르몬의 오염 등 소위 비정상적 공장식 사육환경에 기인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동물들은 죽어가면서 극심한 고통으로 생화학적인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어 유독한 물질이 온몸으로 퍼진다. 이러한 소와  닭, 돼지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그 화를 먹는 셈이고 그것을 먹고 난 다음에는 그 화를 표현하게 된다.우리 자신은 곧 우리가 먹는 그것이다.

둘째, 개인과 세계는 뿌리 깊게 연결돼있다. 매일매일 행하는 밥상위의 선택은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전체사회에 엄청나게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미친다. 1994년 28개국 260명 대표가 모인 유엔 지속개발위 오슬로 회의에서 밥상위의 소비패턴이 기아의 주된 원인이며 세계 환경 재앙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최근의 중국발 식량파동위기도 중국인의 급격힌 식단변화로 인한 것이다.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곡물사료 14kg 이 필요하다 즉 14명 먹을 분량의 곡식으로 키운 가축의 고기를 먹으면 1명분밖에 안되니 곡물시장이 심하게 동요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만약 인도도 이 변화에 합류한다면 그 위험성은 더 끔찍할 것이다. 중국의 육류소비증가는 위구르와 중국북부의 광대한  방목을 부추기고 이로 인한 사막화는 짙은 황사가 되어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이 대규모 악순환은 열대우림 파괴와 지구온난화, 세계기아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정치문제로까지 스며들어 있다. 일상사의 기본적인 선택이 세계와 지구를 살리고 치유하는 선순환을 이끄는 중요한 기로가 되는 이 생생한 체험은 아이를 스스로가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나 가족을 넘어 세계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환경을 열어준다. 만물의 관계성에 대한 자각이라 할 수 있는 생태의식을 일깨움에 이 보다 좋은 방편이 있을까 .게다가 방편 그자체가 실천이다.

셋째, 최상의 윤리적 행동은 생명존중이다. 참된 평화와 이상은 이러한 윤리적 행동에서 나온다. 모든 존재는 행복을 원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육식 ,인간이 아무 필요도 없이 생물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을 짓뭉개고, 잔인한 폭력을 자신에게 행사한다면 어떻게 윤리교육이 가능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먹는 치킨이나 햄버거는 과자가 아니다. 우리처럼 피와 땀이 살아있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생명이다. 여러 가공단계를 거치면서 원래의 형상이 왜곡됐기 때문일까. 이러한 왜곡은 학생을 생명이 아니라 오로지 입시전쟁의 기계로 보는 교육현장등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존엄성을 자각하는 힘이야말로 최상의 윤리교육이며 ‘문화’다.  아이들은 채식교육을 통해 생명외경에 스스로 눈뜬다.

빛이 온다. 단지 육식의 종말을 알리는 게 아니다. 아담이 개인이며 동시에 인류를 대표하는 ‘전인’이듯 모두가 타고난 전인적 본성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채식은 이것을 상기하고 표현한다. 채식은 이것을 북돋는다. 매일 4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부족으로 죽어 가는데 단지 입맛을 채우려고 미국의 70%이상, 지구상 전체 곡식의 1/3을 소와 다른 가축들이 먹어치우는 현실. 조류독감과 광우병 등 세계적 유행병의 위험을 알면서도 애꿎게 우리의 동물친구들만을 희생시키는 현실 등등이 과연 합리적인지 스스로 비추며 되묻는다. 전인성의 빛은 생명에 대한 외경과 겸손함을 바탕으로 여태껏 합리적이라 여기고 당연시된 사실에 대해 무엇이 진정 합리적이고, 무엇이 진정 자신과 지구를 치유하는 길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할 것을 요청한다.  일선 교육현장의 채식교육도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채식운동도 음식점에서 각자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듯 소수의 생활양식도 존중받길 원하는 소극적 움직임에서 깨어나 새로운 기지개를 켠다.

위의 글은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인 고용석님의 글이다. 지난 여름 한국방문 때 채식과 지구온난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옛 친구인 그를 만났다. 그의 양해를 얻어 이 블로그에 실었다. - 초유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