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3. 8. 27. 06:02

날씨마다 제각각 멋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진 찍기 좋은 날은 뭐니해도 화창한 날이다. 여행하기에도 이런 날이 좋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따뜻한 찻집에 앉아서 빗방울이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는 창문을 바라면서 사색에 마음 속 여행을 하는 것이 더 나을 법하다. 

하지만 정해진 일정으로 해외 여행을 온 사람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 그날 그날 일정대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한국 관광객들과 함께 라트비아 룬달레 궁전을 방문했다. 아쉽게도 비가 내렸다. 

* 라트비아 룬달레 궁전

일부는 우산이 있어도 정원을 구경하는 대신 비를 가려주는 현관에서 그저 눈으로만 구경했다. 다른 일행은 우산을 쓰고 정원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었다. 우산을 들고 비오는 날 사진 찍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 여성은 순간적인 발상으로 수월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로 가방을 어깨에 맨 끈으로 우산을 칭칭 감아서 고정시켰다. 사람들이 부탁하기에 나는 우산을 땅에 내려놓고, 렌즈가 비에 젖지 않도록 애써면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가방을 든 이 여성은 이렇게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했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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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2. 11. 13. 09:07

지난 10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140킬로미터 떨어진 농촌 마을의 인상 깊은 '짚조각 공원'을 촬영 취재를 했다[관련글: 농촌 마을, 가을 짚조각 공원으로 유명세, 관련 KBS News 영상 다시보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외국 방송사에서 취재를 온다니 관계자는 만족스러워했다. 항상 취재를 나갈 때에는 한국적인 물품을 챙겨가려고 한다. 그래서 기회되는 대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적인 열쇠고리, 병따개, 인형 등을 사가지고 온다. 이번에도 아내가 몇 가지를 챙겼다. 그 중 하나가 소주였다. 


짚조각 공원에서 취재를 마치자 관계자가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했다. 마침 촬영을 마칠 무렵이 점심식사 시간대였다. 마을 갤러리 안에 탁자가 놓여있었다. 투박스러운 모습을 띤 샌드위치가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길쭉한 토마토...... 이 마을에서 직접 재배된 토마토라고 했다.


현지인들은 약초로 만든 술도 내놓았다. 낮이지만 반주로 한 잔씩 돌렸다. 아내는 챙겨온 선물을 전했다. 이번에는 한국의 소주였다. 


"리투아니아의 상징 색이 녹색이니 여기 한국에서 가져온 녹색 선물입니다."
"이게 뭐예요?"
"한국산 보드카 소주입니다."
"쌀로 만들었나요?" 
"쌀, 고구마, 보리 등을 발효시켜 물로 희석하여 만든 술입니다."
"도수는 몇 도인가요?"
"19.5도입니다."


이날 난생 처음 소주를 마셔본 현지인들 표정은 "콰~~!"가 아니라 "쩝쩝"이었다. 

"맹물 같아요."라고 한 남자가 평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거 몇 잔 마시면 (취기가 들어) 시끌벅쩍하고 재미있어요."라고 아내가 응했다.
"사실 소주는 삽겹살 등 안주와 함께 마셔야 제맛이 나요. 리투아니아는 안주 문화가 발달되지 않아 소주를 즐길 수 없어 아쉽네요."라고 덧붙였다.

* 이날 관계자로부터 선물로 받은 건초 작품

40-50도 도수의 보드카에 익숙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혀에는 소주가 맹물 같지만, 소주의 존재만이라도 알려준 것에 만족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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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0. 5. 28. 08:25

수요일 저녁 초등학교 2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8살)가 목요일 소풍을 간다고 기뻐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리투아니아 최초의 수도로 알려진 케르나베에 학급소풍을 간다고 했다.  

"아빠, 내일 소풍 가는 데 나 카메라 가져갈 거야."
"뭐라고? 안 돼!"
"아빠 카메라 말고 언니 카메라를 가져갈 거야."
"언니가 빌려준대?"
"응."
"정말?"
"지금 카메라를 충전하고 있어."

그 동안 딸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카메라를 잡고 찍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가끔씩 찍을 때에는카메라가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가까이에 있거나 반드시 카메라 줄을 목에 걸도록 했다. 그래서 학급 소풍에 처음으로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가게 되었다.

"너, 카메라로 찍을 수 있어?"
"알아."
"사람만 찍지 말고 다른 것도 많이 찍어와."

이렇게 디카를 가지고 소풍을 갔다. 혹시난 카메라를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아니면 부주의로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정말 잘 찍었을까 걱정스럽고 한편으로 궁금했다. 이날 딸아이가 찍어온 사진을 아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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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에 있는 의자 뒷부문이 없으면 어떨까?" - "아빠, 있어야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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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최초 수도인 케르나베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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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전설에 얽힌 철갑을 두른 늑대. 철갑늑대 조각상뿐만 아니라 설명까지 따로 사진을 찍은 것을 보니 제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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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를 찍고 다시 줌을 이용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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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급 남자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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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 머리 윗 부분 공간이 너무 넓다." - "아빠, 내가 찍을 때 친구가 옆에서 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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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게질 하는 할머니를 보고 뜨게질 하는 모습을 연출까지 해서 찍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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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소풍을 다녀온 8살 딸아이 요가일래

딸아이가 찍어온 사진들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이제 요가일래에게 카메라를 사줘도 될 듯하다.

* 최근글: 딸아이가 생각해낸 아기와 애기의 구별법

아기 때부터 영어 TV 틀어놓으면 효과 있을까
닌텐도를 놀면서 구걸 행각을 벌인 딸아이
한글 없는 휴대폰에 8살 딸의 한국말 문자쪽지
세계 男心 잡은 리투아니아 슈퍼모델들
한국은 위대한 나라 - 리투아니아 유명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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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5. 18. 06:17

방송촬영을 갈 때는 리투아니아인 아내와 늘 함께 간다. 특히 아내는 인터뷰할 때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답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빠뜨릴 수 있는 중요한 그림을 알려준다. 한 장면을 찍고 있는 데 다른 곳에서 더 좋은 그림이 될 만한 상황을 본 아내는 카메라를 빨리 돌려라고 말해준다. 현지인이기 때문에 현지인과 격의없이 자연스럽게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방송촬영에는 아내가 함께 가지 못했다. 먼저 우리집 식구 모두 지난 주 내내 감기, 기침, 고열 등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내도 기침을 심하게 했고, 아픈 아이들을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촬영 장소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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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골동품 시장. 매주 토요일 열린다.

집 근처 전망 좋은 곳에 과거 노동자 회관이었던 건물이 있다. 이 건물과 주위에 매주 토요일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 산책할 때 가끔 둘러본다. 리투아니아 골동품 시장을 취재하기 위해 촬영해야 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시장으로 갔다. 아침 8시인데도 벌써 제법 사람들이 모였다.

우선 언덕 위에서 부감 그림을 잡았다. 그리고 점점 가까이 가면서 촬영했다. 만약을 위해 "press" 카드를 보이도록 목에 걸었다. 그런데 삼각대와 카메라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거나 고개를 돌렸다. 삭막한 분위기가 점점 느껴졌다. 뒤에서 "카메라로 찍지마!"라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서 덩치가 큰 사람이 다가오더니 "여기 파파라치 있네!"라고 소리쳤다. 이어 그는 지인인 듯한 사람에게 "야, 너를 찍고 있어!"라고 알려주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괜찮아."라고 답했고, 먼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일본에서 왔나?"
"한국에서."
"아, 한국! 부산에 가봤지."
"언제?"
"5년 전에."
"무슨 일로?"
"내가 러시아 배 선원이었지. 두 달 머물렀어. 한국 정말 좋았어."

이때다 싶어 이 사람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파는 물건, 손님과 거래 장면 등등. 하지만 주위 분위기는 참으로 냉랭했다. 꼭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물 안으로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보니 더 큰 골동품 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이 훨씬 좋았다. 출입문턱을 넘어 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빡빡 깎은 덩치 큰 사람이 다가왔다. 러시아어로 외쳤다.
"어디서 온 놈이야? 여긴 촬영 금지야. 당장 나가!" (분위기상으로 번역했다)
또 다른 곳에서 덩치 큰 사람이 "나가라!"라고 외쳤다. 금방이라도 밀칠 듯이 다가왔다.
키가 작은 동양인 한 사람이 무거운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온 것이 그들에게 이상한 것 같았다. 낌새를 보니 그냥 순순히 나가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 같아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좀 떨어진 곳에 정신을 가다듬을 겸 도시 전경을 촬영했다.

그래도 몇 컷을 더 찍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옛날 농기구나 가구, 철물 등이 즐비한 곳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한 사람이 전화를 걸고 말하는 내용이 들렸다.
"여기 건물 입구에 카메라가 찍고 있어."
건물 안에 있는 누군가에 촬영을 하고 있다라는 정보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덩치 큰 사람이 오기 전에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런데 나오는 길목에 점잖게 나이든 사람이 또 뭐라고 한 소리했다.
"카메라 들고 뭐해? 찍지마!"라고 조롱하듯이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히히 웃어댔다.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군중들 속 우군이 없는 이방인 혼자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것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날따라 그 동안 늘 촬영일에 함께 한 아내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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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리투아니아 '가족의 날' 행사를 촬영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대체로 방송 카메라 앞에 경계심이나 부끄러움을 탄다.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인터뷰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유럽에서 십여년 동안 방송촬영하면서 이렇게 냉소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는 처음으로 겪었다.

"왜 골동품장수들은 그렇게 비협조적이었을까?"라고 현지인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불법적인 골동품이라도 있어서 그럴까?"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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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