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7. 4. 18. 03:50

성탄절과 부활절엔 예외없이 지방도시에 있는 처가를 방문한다. 올해는 부활절인지 성탄절인지 구별이 안 되는 날씨였다. 리투아니아 북서부 지방 일부를 제외한 전국에 눈이 쏟아졌다. 


부활절에 어김없이 하는 과제가 하나 있다. 가족이 다 함께 모여 달걀에 문양을 내거나 색칠을 하는 것이다. 올해는 쉽게 하기로 했다. 



1. 새싹을 뜯는다
2. 달걀 위에 붙인다
3. 헝겊으로 둘러싸서 실로 칭칭 감는다
4. 양파껍질 속에 묻는다
5. 끓인 후 어느 정도 담가놓으면 끝이다. 


부활절에 식구들이 서로 달걀을 부딪혀서 겨루기를 한다.


어느 순간 부엌으로 가니 장모님이 열심히 무엇인가를 갈고 계셨다.

"뭐 가세요?"
"자투리 비누."
"뭐 하시게요?"
"자동차 세차할 때 사용하려고."


아, 장모님의 절약에 그저 말문이 막힌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자 장모님이 돈을 꺼내신다.

"이거 얼마 되지 않지만 생일 선물이야."
"아, 벌써 생일 지났어요. 제가 용돈을 드려야 하는데... 필요 없어요."
"그래도 내 성의니까 받아둬."

자투리 비누를 재활용하려고 갈고 계시는 장모님의 손길이 아직 눈에 선한데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 적은 연금액에서 그렇게 아껴서 모으신 돈인데 냉큼 받을 수가 없었다.

주시려고 하는 장모님과 안 받으려고 하는 사위 사이 작은 실랑이에 아내가 끼어들었다.

"줄 때 받아. 엄마가 우리 집에 오면 식당에 가서 맛있는 거 사드리면 되지."
"아이구, 어쩔 수가 없네. 그런데 장모님, 5유로가 모자라네요. ㅎㅎㅎ"
"나이대만큼 준 거야..."
"꽃피는 오월에 꼭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4. 07:08

남편의 처가 안 챙기기나 아내의 지나친 처가 챙기기는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명절에 양가 부모님 용돈 챙기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넉넉한 살림이라면 예외일 것이다. 그런데 주변 리투아니아 부부들에게는 부모님 용돈 주기로 서로 골치 아파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 대부분은 최저 월급(50만 원)에 못 미치는 연금을 받고 있지만, 부모 두 분이 받으면 자녀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여름철 텃밭에서 직접 재배하는 오이, 양파, 마늘, 양배추, 붉은 사탕무, 완두콩, 감자, 당근 등은 식료비를 줄이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사과, 버찌, 딸기를 비롯한 식용 열매도 겨울철에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니 처가집에 갈 때 물질적으로 큰 부담감이 없다. 무슨 선물을 사서 드릴까만 고민하면 된다. 보통 선물은 건강보조품이다. 

장모님은 다른 연금 수령자보다 처지가 조금 나은 편에 속한다. 바로 자력이 없는 노모를 모시고 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노모 연금에다 보살피는 비용으로 연금 하나가 더 나온다. 세 식구가 사는 데 연금이 4명 분이니 절약하면 다소 여유가 있다.

▲ 부활절이지만 밖에 눈이 내리고, 부엌엔 장모님이 키우는 화초가 꽃을 피우고 있다.

장모님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기름값 하라고 약간의 돈을 아내의 지갑에 넣어준다. 이번 부활절에는 느닷없이 부르더니 나에게까지 챙겨주셨다.

"이거 지나났지만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생일이 지났는데......"

완강히 거절했지만 더 완강히 주려고 하셨다. 

"가계살림 계좌에 넣지 않고 용돈으로 잘 써겠습니다."

가계살림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 가족을 위한 이 계좌로 들어가면 마음 놓고 개인 용도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장모님의 200리타스(약 9만 원)

지천명의 나이에 비록 생일 선물용이지만 장모님으로부터 돈을 받으니 꼭 세뱃돈을 받은 아이의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연금 제도 덕분에 부모 용돈 챙기기에 자녀가 별다른 신경을 써지 않아도 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7. 6. 07:42

요즘 매일 탁구를 친다. 지난 2월 우리 집에 설치했다. 짝은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할 큰 딸 마르티나다. 테니스를 취미를 가지고 있는 마르티나는 탁구도 비교적 잘 친다.

그냥 치면 재미가 없으니 내기 탁구이다. 마르티나가 이기면 10리타스(5천원)를 주고, 지면 마시는 차를 끓여주는 것이 내기이다. 아내도 좋아한다. 지면 건강을 위해 탁구를 친 값이라고 생각하고, 마르티나에겐 짭짤한 용돈 벌이다. 

늘 막상막하이다. 먼저 여섯 번을 이긴 사람이 승자이다. 보통 7-11번을 논다. 어제도 탁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작은 딸 요가일래는 아빠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아빠, 책상이 너무 지저분해. 내가 깨끗이 정리해줄게."

요가일래는 책상에 널려있는 책을 한 쪽에 쌓아서 정리했다. 더 이상 쓸 수 없는 볼펜을 버렸다. 특히 책깔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색종이 스티커를 필통에 붙여놓았다.

▲ 책깔피로 사용하라고 연필통에 붙여놓은 색종이 스티커들
 

"아빠, 내가 이렇게 정리하니 기분이 좋지?"
"그래."

탁구시합에 집중해야 하는 데 요가일래의 물음은 점점 방해가 되어 갔다.

"아빠, 내가 이렇게 잘 깎인 연필도 줄게."
"그래."
"아빠, 내가 이렇게 아빠를 위해서 책상을 정리하는데 아빠는 '그래', '응'이라고 짧게 말을 해!"

▲ 아빠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요가일래
 

요가일래는 더 긴 칭찬을 듣고 싶어했다. 그런데 탁구에 열중인 아빠의 반응은 짧고 무뚝뚝했다. 드디어 토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한 일이니 끝을 내겠다고 했다. 즐거움으로 시작한 일이 아빠의 반응으로 댓가를 바라는 일로 변해갔다. 

"아빠, 용돈!"
"네가 생각하기에 책상 정리 수고비가 얼마나 할까? 원하는 만큼 가져가."
"아빠 책상이니까 아빠가 결정해야지."

잠시 머뭇거렸다.

"5리타스(2천5백원)는 어때?"
"그럼, 5리타스 줘."

요가일래는 아빠 손바닥에 있는 동전에서 5리타스를 가져갔고, 다시 20센트를 더 가져갔다. 

"20센트는 팁이야. 이건 내 저금통으로!"

아빠와 딸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다가왔다.

"아니, 책상 정리하는 수고비가 5리타스! 너무 많아! 이렇게 습관을 들이면 안 돼!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는데 딸이 아빠 책상 정리를 댓가없이 해주면 안 되나?"

맞는 말이지만 아내에게 한 마디했다.

"그 돈이 누구한테 가든 우리 집에 있잖아! 아이도 돈이 필요하잖아. 이렇게 해서 모우게 하는 것도 좋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7. 5. 08:24

일주일 동안 장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 도시로 아내와 딸들이 다녀왔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마자 9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외쳤다.

"아빠, 사랑해. 정말 한국말 하고 싶었다."

요가일래는 늘 리투아니아어와 한국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아빠가 함께 하지 못한 시간 동안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딸아이의 첫 외침을 들으니 한국어의 빈 자리가 그렇게 컸구나라고 느꼈다. 어젯밤 딸아이에게 시골에 있었던 일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았다.

- 가장 재미 있었던 일은?
- 비가 오는 데 호수에서 수영을 한 일이다.

- 가장 좋았던 일은?
- 친구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개와 함께 놀았던 일이다.

- 가장 안 좋았던 일은?
- 언니가 사촌오빠와 이야기하면서 나를 비웃을 때이다.

- 아빠 안 보고 싶었어?
- 보고 싶었지. 한번은 보고 싶어 울었어.

 - 또 시골에 가고 싶어?
- 아니. 잠 잘 때 모기가 나를 물었어.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딸아이가 입을 열였다.

"그런데 아빠, 외할머니가 참 나빠."
"왜?"
"1000리타스(50만원)를 주었는데. 언니에게는 600리타스(30만원), 엄마에게는 400리타스(20만원) 나에게는 20리타스(1만원)만 주었어. 너무 적어!!!" 
"언니는 곧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니까, 외할머니가 용돈을 많이 주셨을 거야."
"언니에게 500리타스(25만원) 주고, 나에게 100리타스(5만원)를 줄 수 있잖아!"
"너도 커면 많이 주실 거야."
"그래도 20리타스(1만원)은 너무 적어."
"20리타스라도 준 것에 고마워해야지."


▲ 외할머니와 좋아하는 완두콩을 심고 있는 딸아이
 

딸아이는 벌써 금액에 민감한 나이가 되었으니, 자기가 생각하는 연령차이에 비해 용돈차이가 너무 커서 외할머니에게 토라졌다.

"남이 받은 용돈 금액은 알려고도 하지 말고, 단지 네가 받은 용돈 금액이 적든 많든 감사히 받아라."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10. 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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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컴퓨터 해!"
"아니."
"오늘 컴퓨터 안 했잖아."
"아빠는 내가 아빠처럼 안경 쓰면 좋아?"

9월 초 시력저하 진단을 받고 컴퓨터 하기를 멀리하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생 딸아이와 흔히 나누는 대화이다. 예전엔 하루에 아빠가 하는 시간만큼이나 컴퓨터하기를 좋아했는데 요즘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내년 1월까지 지불한 인터넷 한국어 학습사이트 사용료가 아까워서 가끔 하라고 재촉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컴퓨터하기 대신에 혼자 피아노치기, 탁구놀이, 그림그리기 등 여러 가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 딸아이가 한 놀이가 재미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아빠, 국수 해줘!"
"조금 기다려. 하는 일을 다 마치고."
"아빠, 정말 배고파. 빨리 국수 해줘!!!"
요구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배고프다는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부엌으로 갔다. 책상 서랍장 위에는 국수를 먹기 위해 필요한 젓가락 모두가 놓여져 있고, 냉장고와 찬장에는 "!!!!!!!!!!! DO NOT !OPEN!" 쪽지가 붙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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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니?"
"여기를 봐!"

MONEY TOO CHILDREN IN AFRICA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돈)
20ct or 50ct
PLEASE HELP THEM
(그들을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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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ct면 너무 적은 돈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찬장 문 하나를 한 번 여는 데 20ct 혹은 50ct(한국돈으로 약 220원)이다고 말했다. 국수를 끓이려면 찬장과 문을 수차례 열어야 한다. 협상을 해서 큰 동전을 지불하고 쪽지를 떼어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큰 가게에서 보았어."
"너 자라서 정말 아프리카 어린이들 많이 도와줘."
"할 수 있으면 할게."

* 최근글: 대리투표에 관련된 국회의원의 운명은?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10. 19. 07:28

우리 집은 통유리 아파트는 아니지만 창문이 비교적 큼직하고 많아서 햇살이 많이 들어와서 좋다. 이런 혜택을 누리지만 수고스러움도 따른다. 바로 창문 닦기이다. 보통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계절마다 혹은 봄과 가을에 한 번씩 닦는다.
 
딸아이 마르티나와 요가일래가 어렸을 때는 우리 부부가 분담해서 닦았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서는 마르티나가 닦고, 요가일래가 보조한다. 이들의 가사 분담 참여는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용돈이 미끼이다. 가사 돕기로 가장 많은 용돈을 버는 일이 바로 창문 닦기이다. 난이도가 높다고 해서 그렇게 책정했다. 창문수 곱하기 일정액이다.
 
용돈을 탐내는 아이들은 매주 닦기를 원하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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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용돈으로 깨끗한 창문을 가지게 되었지만, 바깥 풍경을 마치 유리가 없는 듯 즐길 수 있어서 우리 식구 다 며칠 동안은 즐겁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7. 21. 05:28

아내가 아직까지 독일여행중이다. 아내가 떠나기 전에는 모처럼 딸아이와 둘이서 지내는 것에 대한 약간의 설레임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내의 빈 공간을 곳곳에서 느낀다. 특히 요리 솜씨가 없고, 또한 요즘 엄청 바쁜 일이 있어 나와 딸아이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오늘은 뭘 먹을까?"
"아빠가 알아서 해줘."
"오늘은 외식하자."
"싫어."
"네가 피자를 아주 좋아하잖아."
"이제 싫어졌어."


딸아이의 찬성을 얻고,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을 기대를 가지고 질문했지만, 대답은 "이제는 피자가 실어졌어."다. 외식하면 간단하게 한 끼, 아니 배부르게 먹으면 두 끼는 절로 해결이 되는 데 말이다.

"이제 냉장고에 음식과 과일이 동이 났는데 어떻게 하니?"
"아빠, 슈퍼마켓에 가자."
"그럼, 우리가 살 목록을 네가 쓰라."
"아빠, 헬로키티 책을 사줘."
"얼마인데?"
"2리타스(천원). 알았어."


우유, 달걀, 빵, 복숭아, 바나나, 음료수, 요구르트, 책

이렇게 레스토랑 대신 슈퍼마켓을 가게 되었다. 쪽지에 적힌 목록대로 물건을 바구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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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 책 사줘."
"얼마인데?"
라고 물으면서 책 뒷표지에 붙은 가격표를 보았다.

"우와, 15리타스(7500원)이네. 비싸다."
"알았어."
라고 대답하더니 딸아이는 책을 원래 자리로 갖다놓았다.

잠시 후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 순간 딸아이는 다시 그 책을 보더니 이렇게 제안했다.
"아빠, 그러면 내 용돈에 사줘. 이 책이 친구들 사이에 아주 인기가 있어. 나도 가지고 싶어."

군것질 안하고 모은 자기 용돈으로 책을 아낌없이 사겠다는 딸아이의 애원하는 표정에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동의를 표하자 꼭 내가 사주는 것처럼 기뻐했다.

"책값은?" 집으로 돌아온 후 딸아이에게 물었다.
"알았어. 지금 줄 게."라고 답하고 지갑으로 다가갔다.

아내는 수년간 가계부를 써오고 있다. 집을 떠나기 전 가계부 작성을 신신당부했다. 작은 책의 값으로 15리타스는 큰 돈이다.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고 고민스러웠다. 약속은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딸아이의 용돈에서 막상 받으려고 하니 마음이 선듯 나서지 않았다. 생각 끝에 그냥 두리뭉실하게 음식값에 포함시키고 딸아이에게 청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선물이야! 네가 군것질 안하고, 아빠가 외식 안하고 했으니 돈이 절약 많이 되었으니 선물이야!"
"아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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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