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이집트 후르가다 롱비치리조트 호텔에 머물면서 많은 종업원을 만난다. 해변이든 수영장이든 식당이든 종업원들이 투숙객들의 편의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유럽 관광지와는 사뭇 다르다. 종업원 전부가 남성이다.
호텔 내 식당
식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랍권도 이제는 전통적 관습이나 사고를 과감히 척결하고 특히 3차산업 부문에서 여성의 고용증대를 꾀하고 사막 녹화 및 농장화 등 국가 기간산업 부문에 남성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홍해 해변 해수욕 및 일광욕장
보통 종업원들은 친절하다. 해변에는 종업원들이 자주 돌아다닌다. 투숙객들이 다 마시고 놓은 플라스틱 컵을 수거하기 위해서다. 이 컵은 씻어서 다시 활용한다. 정해진 종업원이 아니고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명의 종업원이 번갈아 다닌다. 보통 첫 컵은 해변으로 나오면서 간이술집에서 받아온다. 긴수건을 받아서 일광욕할 자리를 잡아서 휴식을 취한다. 컵을 수거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종업원들이 미소를 지우면서 말을 걸어온다. 대체로 종업원들은 현란한 말솜씨를 지니고 있다.
맥주 한 잔을 시켜도 두 잔이 오는 경우도 있다.
“안녕.” “안녕.” “어디서 왔나?” “한번 알아맞혀봐.” “...” (여기까지가 종업원들에게 정형화된 듯한 대화다) “한 컵 더 원해?” “좋아.”(종업원이 직접 가져다준다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겠지...)
종업원이 금세 오는 경우도 있고 좀 시간이 지난 후에 오는 경우도 있다. 쟁반에 한 컵만이 아니고 한 두 컵이 더 놓여 있다. 기분 좋으면 시키지 않은 칵테일도 따라온다. 이 모든 음료는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으니 마음껏 시켜도 된다.
마음에 들면 덤으로 칵테일도 가져다준다.
그런데 이 경우 동전 1 유로나 1 달러로 답례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1 유로를 주고 나면 직접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난다. 통성명도 하고 다음날 그 다음날도 찾아온다. 그런데 매번마다 1유로를 줄 동전이 없다. ㅎㅎㅎ
식당 종업원은 좋은 자리로 안내하고 포크 등 식기를 챙겨주거나 음료수를 본인이 받아서 가져다주는 경우가 있다. 이때도 1 유로로 답례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번 답례하고 나면 자꾸 종업원이 찾아오기도 한다.
친절한 봉사 뒤에는 늘 1 유로가 나간다. 빌뉴스에 살고 있는 이집트 친구가 “이집트 여행을 간다”고 하니 조언을 한 말이 떠오른다. “1 유로짜리 동전을 많이 챙겨가라. 답례하면 잘 대해줄 것이다.”
호텔내 수영장이다.
호텔 종업원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호텔방을 청소해주는 사람이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지만 늘 미소로 대하고 정성껏 꼼꼼하게 호텔방을 청소한다. 더운 날 호텔방을 청소하는 그를 위해 “오늘은 청소를 안 해도 된다”라는 안내문을 걸어놓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해변으로 나갈 때 호텔방에 놓고 가는 1 유로가 모이고 모여서 그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늦은 오후나 저녁에 호텔방으로 들어올 때 늘 궁금하다. 오늘은 그 종업원이 어떤 모양의 수건장식으로 우리를 감탄하게 할까?
주인 없는 호텗방을 지켜주는 듯하다.숙소 앞에 피어있는 꽃잎들로 장식했다. 그 정성에 감탄하다.수건 백조 한 쌍이다.코끼리 한 마리가 다음날 마실 커피를 들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친절한 미소와 현란한 말솜씨에 늘 1 유로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서서히 둥지를 틀려고 할 때쯤 우리 일행 모두의 주머니든 지갑이든 어디에도 동전이 더 이상 없다. 이러다보니 친절을 피해 다니는 경우도 생긴다. 종업원은 답례를 받아내는 솜씨가 있어야 하듯이 투숙객은 답례를 주는 솜씨가 있어야겠다.
동유럽에 살기 시작한 90년대 초반에는 거의 한국인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후반부터 서서히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그 물결이 발트 3국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을 위해 관광안내사 일을 하면서 얻는 좋은 점은 한국어를 내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한국 사람들로부터 유익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관광객들의 동정을 살피지 않는다.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탄 인원을 파악하고 이들의 불편여부를 점검하는 일은 인솔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9월 초순에 맞이한 손님들이 기억난다. 바로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다리에 끈을 묶고 있었다.
"다리에 끈을 묶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으세요?"
"아니요. 편하려고 끈을 묶었지요."
"그래요?"
"장거리 이동시에 다리를 오무리고 가는 것이 벌리고 가는 것보다 더 편하지요. 그래서 이렇게 마음대로 길이를 조정할 수 있는 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이 말에 따라 허리를 곧곧하게 하고 다리를 오무리면서 한 동안 가보았더니 정말로 더 편한함을 느꼈다. 그런데 오무린 다리는 방심하면 이내 풀어졌다. 그래서 해외여행 고수들은 이렇게 끈을 사용하는 지혜를 터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장거리 국제선 버스를 타고 탈린에서 빌뉴스까지 왔다. 8시간 버스 여행 중 옆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어 불편했다. 때론 상대방이 벌린 다리가 내 영역으로 들어오고, 때론 내 다리가 상대방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런 경우에도 유용할 한국인 여행객의 다리 묶는 끈이 그 순간 절실히 떠올랐다.
2-3년 전부터 발트 3국이 한국 사람들로부터 관광지로 관심을 끌고 있다. 관광안내를 하면서 만나본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처음으로 발트 3국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발트 3국이 한국 사람들에게 아직은 낯설다.
이런 낯선 관광지 거리에서 갑자기 한국 애국가를 듣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라트비아 수도 리가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자유의 상, 검은 머리 전당, 베드로 성당, 화약탑, 스웨덴 문, 리가성, 대야곱 성당 등 볼만한 것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스웨덴 문을 통과해 대야콥 성당을 거쳐 나오다보면 많은 관광객들이 자주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바로 삼형제 건물이다. 건물 셋이 나란히 있는데 이는 중세 시대 주거지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보는 방향에서 오른쪽 하얀색 건물은 15세기, 가운데 노란색 건물은 17세기, 왼쪽 초록색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졌다. 지금 이 세 건물은 라트비아 건축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 앞에서 호른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가오는 관광객들이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를 재빨리 파악해 그 나라와 관련된 노래를 연주하는 사람이다. 지금껏 그는 한번도 틀리지 않고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애국가를 연주했다.
그가 애국가를 연주하자마자 관광객들은 깜짝 놀란다. 대부분 한국인들의 반응은 이렇다.
"어머, 우리가 한국 사람인 줄 어떻게 알고, 이렇게 애국가를 연주할까?"
"팁 줘야겠네."
"맞아, 팁 받으려면 이 정도는 수고해야지."
일전에 안내한 관광객들은 모두 여고 동창생들이었다. 갑작스런 뭉클함으로 이들은 듣기만으로는 부족해서 호른 연주에 맞춰 다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한국인의 기상을 보는 듯했다.
노래를 마치자 이들은 지갑이나 호주머니에서 팁을 꺼냈다. 애국가 덕분에 이날 아침 호른 연주자는 대박을 맞았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박수로 이에 응답했다. 물론 팁을 기대하고 연주하겠지만,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알 수 있는 한 장면이 아닐까......
가끔 식당에 가지만 항상 고민스러운 일이 얼마 정도 팁을 놓으면 적당할까이다. 북동유럽 리투아니아에도 팁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종업원은 식당주로부터 최저 임금액을 받고, 손님으로부터 팁을 받는다. 손님에게 잘 해주어야 팁이 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종업원이 다 친절하라는 법은 없다.
음식값의 몇 퍼센트 정도가 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동의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그래서 계산할 때 머리를 좀 더 오래 굴린다. 일단 음식값의 10%에서 종업원 친절도, 음식맛, 식당 분위기 등을 고려해 결정하곤 한다. 종종 내가 이것을 주면 종업원한테서 "저 동양인 정말 짠돌이네!"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이 경우 팁은 약간 더 올라간다. 때론 정말 팁을 주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폴란드 웹사이트 조몬스터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말끔하게 다 먹은 접시 밑에 10달러짜리 팁이 있는 사진이다. 종업원이 이것을 보면 기분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 이 지폐를 뒤집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진짜 돈이 아니라 복사한 것이다. 지폐 앞면에는 "몇 가지는 돈보다 더 좋다"라는 구절과 기독교 복음 구절이 적혀있다. [사진출처 image sour link]
이것을 받아본 종업원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물론 다양하겠다. 하지만 돈이 절실히 필요한 종업원에게는 이런 10달러보다는 진짜 1달러가 더 기쁨을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