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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F76tDltHvk&list=PLyI4dGDRfUVOHKkG1I7Jtxw7NGQZuJ2EC'
벨라루스는 벨라루스 사람이라고 하고 리투아니아는 리투아니아 사람이라고 하고 폴란드는 폴란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문학인이 있다. 바로 그가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 1798-1855)다. 그는 지금의 벨라루스에 속한 나바흐루다크(노보그루데크) 근처에서 태어나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공부를 하고 카우나스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폴란드어로 문학 작품을 썼다. 그는 폴란드의 셰익스피어, 괴테, 푸시킨으로 비유되며 폴란드 최고 민족시인으로 불리어진다.
그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1569년 결성)이 주변 강대국인 프러시아, 러시아 그리고 오스트리아에 의해 마지막으로 분할되고 더 이상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태어난 곳은 러시아 짜르체제의 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500여 년간 지속된 다양한 언어와 종교가 공존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민중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었다.
미츠키에비치는 1815년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인 빌뉴스로 이주하여 대학교를 다녔다. 1579년 세워진 빌뉴스대학교는 당시 동유럽의 주요한 교육과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대학시절부터 그는 시적 재능, 박학다식과 지도력으로 유명해졌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부활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정치활동을 하였다.
1819년부터 4년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역사, 법률,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면서 시작(詩作) 활동에 헌신하였다. 서사시 <그라지나>(Grażyna, Gražina)가 1823년 출판되었다. <그라지나>는 노보그루데크 리투아니아 공작부인 그라지나가 독일 기사단에 맞서서 싸우다가 영웅적으로 죽는다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823년 그는 정치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당했고 다음해 8월 러시아로 추방당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쉬킨과 교제했다. 독일 기사단과 리투아니아인들의 전투를 그린 서사시 <콘라트 발렌로트(Konrad Wallenrod>가 1828년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콘라트는 리투아니아 소년으로서 독일 기사단에 붙들려 가서 교육을 받고 공을 세워 기사단 총장이 된다. 어느 날 리투아니아 유랑 악사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의 뿌리를 느끼고, 기사단을 전장으로 이끌고 가서 전멸토록 한다.
러시아에서 5년 간 유배 생활 후 1829년 마침내 국외이주 허락을 받았다. 독일(바이마르), 스위스를 거쳐 1830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 정착했다. 1832년부터 파리에 정착한 후 그의 대표작인 <판 타데우시>(Pan Tadeusz)를 써서 1834년에 출판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 군대의 동진(東進)과 더불어 자유를 획득하려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희망이 커진 1811-1812년의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총 12편에 9,670 시구와 후기(後記) 129 시구로 되어 있고 매 시구는 13음절로 되어 있고, 완벽한 운을 맞추고 있고 있다.
1834년 파리에서 폴란드인과 결혼해 아들 4명, 딸 2 명을 두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교사 생활을 하면서 도서관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러시아와 터키 간 크림전쟁(1853-1856)이 이 일어나자 다시 폴란드의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희망이 켜졌다. 1855년 11월 그는 파리를 떠나 이스탄불에 도착해 폴란드인 군단 조직을 시도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파리에 묻혔다가 1890년 폴란드 크라쿠프 바벨성에 이장되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낸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관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는 평생 고향에 대한 향수에 사무쳐 있었고 역사에서 사라진 조국 독립을 위해 정열을 쏟았다. 조국애 사상이 그의 작품에 짙게 스며있다. "그라지나"와 "콘라트 발렌로트"에서 그는 독일 기사단에 대항한 리투아니아인들의 용기와 희생을 높이 평가했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에도 그를 기념하는 동상과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그의 작품 <판 타데우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국제어 에스페란토는 안토니 그라보프스키(Antoni Grabowski)가 번역해 1918년 출판되었다.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1859-1917)가 이 작품 일부의 에스페란토 번역본을 직접 읽어본 후 끝까지 완역하기를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한국 에스페란티스토 40여 명이 뜻을 모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이 작품을 가지고 함께 2월 10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공부하기로 했다.
아래 동영상은 이 공부를 위해 간략하게 유럽역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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