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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락길 밑에서 바라본 안산 정상 모습이다.
자락길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재개발 지역이라서 그런지 이런 빈집들이 있다. 더 이상 집을 짓지 말고 그냥 자연으로 원상회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길이나 얼음길에 산책하는 시민을 배려하는 정성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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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다소나무 한 그루가 산책길을 막아서고 있다. 베어내지 않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놓아둔 것이 바로 친자연 자락길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막아섬은 산책객을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개발시 인간의 환경파괴심을 막아서는 것을 웅변하는 듯하다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는 메타세콰이어가 하늘 기운을 받아서 산책객에게 전해주는 듯하다.
운동기구들도 잘 갖춰져 있다.
목재로 길을 만들어놓았다. 사치 같아서 예산낭비로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오른쪽 빙판길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철망을 잡고 걷는데도 여러 번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이렇게 해놓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락길따라 산책하면서 사방에 보이는 서울의 모습이다. 아파트 단지 저 뒷편에 북한산이 보인다.
남서쪽이다. 뿌여서 제대로 전경을 즐길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맞은편 인왕산과 청와대,백악산이 보인다.
여기는 서대문 형무소이다.
안산 자락길을 3시간 정도 다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서대문 형무소이다. 지난 역사를 되새겨보기 위해 역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차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에" 피가 끓어올랐다.
고초 겪었던 애국지사들의 수형기록표가 붙여져 있다.
이번 방문에서 애국지사에 붙는 의사, 열사, 지사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의사는 무력으로 결행, 열사는 맨몸으로 투쟁, 지사는 항거하는 사람이다.
외국에 살면 태극기만 봐도 웬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선다.
산책길을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어린 시절 즐겨먹었던 수제비를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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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3년 폴란드 의회는 프랑스 국왕 카롤 9세의 동생인 헨릭 발레지를 국왕으로 선출했고, 그가 6개월만에 프랑스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떠나자, 트란실바니아의 스테판 바토리를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1587년에는 스웨덴 얀 3세의 아들 지그문트 3세를 국왕으로 선출했, 그는 1596년 수도를 크라쿠브에서 바르샤바로 옮겼다.
이어서 1673년 터키군을 대파한 얀 소비에스키는 폴란드 국왕(1674-1696)으로 선출되었고, 1683년 직접 폴란드 군대를 지휘하며 12만명의 터키 군대를 오스트리아 군대와 함께 무찌르고 터키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수호한 왕으로 명성을 얻게 되였다.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의 지지를 받는 삭센 영주 아우구스트가 폴란드 귀족들의 특권과 특혜를 인정하며 폴란드의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1795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국가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3차 분할로 귀족공화국이 멸망하고, 1918년 독립을 회복할 때까지 123년 동안 유럽 정치지도에서 사라지는 불운을 맞이했다.
이와 같이 폴란드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스스럼없이 외세와 결탁하여 이웃나라의 왕족들을 자신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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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유럽에서 뜨고 있는 동영상 하나가 있다. 바로 “십분 속 폴란드 역사”이다. 옜 그림과 사진 등으로 구성된 10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966년 미에쉬코 왕자가 로마 가톨릭교를 수용한 후부터 2004년 유럽연합까지의 역사가 음악과 함께 자막처리 되어 있다.
이 동영상을 본 한 누리꾼은 45년 인생에서보다 이 10분 속에서 더 생생하게 폴란드 역사를 배우게 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 10분물 동영상을 통해 폴란드 역사를 한 번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아 소개하고자 한다.
966년 미에쉬코 왕자가 로마 가톨릭교를 수용했다.
1385년 폴란드로부터 리투아니아가 가톨릭교를 수용했다. 이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400여년 동안 연합국가를 형성했다. 리투아니아인 요가일라가 폴란드 왕이 되었다.
독일기사단이 리투아니아 침략을 계획하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동맹을 맺었다. 1409년 전쟁 시작.
1410년 그룬발트 전투는 유럽 중세시대 가장 큰 규모의 전쟁 중 하나였다. 리투아니아-폴란드 동맹군이 독일기사단을 크게 무찔렀다.
16세기는 폴란드의 황금기이다
르네상스식 대표적인 건물인 크라쿠브 바벨성이 지어졌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1569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공동 의회를 구성했고, 영토는 10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했다.
1573년 종교자유 인정. 유럽이 종교분쟁에 휩싸일 때 폴란드는 신교도, 유대인, 이슬람인의 안전한 피신처가 되었다. 국왕을 선출하기 시작했다. 모든 귀족은 법 앞에 평등. 입법과 행정의 권력분립이 이루어졌다. 국민의 10%가 선거권을 가졌다.
17세기에는 많은 전쟁을 치렀다.
1605년 스웨덴과 전쟁에서 승리
1610년 러시아 군대를 격파하고, 1612년까지 모스크바 점령
1683년 터키 군대가 비엔나를 포위하자 폴란드 왕이 이끄는 유럽동맹군이 터키 군대를 무찔렀다.
18세기에 폴란드는 큰 위기를 맞았고, 아우구스투스 왕은 많은 개혁을 추진했다.
1773년 국가교육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세계 최초 교육부가 탄생.
1791년 5월 3일 성문헌법을 발표. 이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유럽 최초의 성문헌법이다.
1792년 절대군주제를 취한 이웃나라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전쟁을 시작했다. 패자가 되었다.
1794년 미국 독립전재에 참가한 코쉬츄쉬코가 봉기를 일으켰다.
1795년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가는 유럽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로 분할되고 말았다. 폴란드인은 조국을 잊지 않고 독립 쟁취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1830-1831년 11월 봉기, 1848년 봉기, 1863-1864년 1월 봉기
독립을 위한 싸움뿐만 아니라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많은 폴란드인들이 기록을 남겼다.
1853년 워카시에비츠는 등유램프를 만들었다. 이는 현대석유산업의 시작점으로 간주되고 있다.
쇼팽은 폴란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폴란드인 마리아 퀴리 노벨상을 받았다.
1918년 폴란드는 123년만에 다시 유럽지도에 다시 나타났다.
1920년 폴란드는 소련군을 물리침으로써 유럽을 구했다.
1939년 9월 1일 2차 대전 발발
1978년 폴란드인 교황으로 선출됨
1980년 솔리다르노쉬치(연대) 결성
1989년 공산당 지도와 솔리다르노쉬치 지도자간 원탁회의. 이는 폴란드에서 공산주의 종말, 유럽에서 공산주의 붕괴의 시작이었다.
2004년 유럽연합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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