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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인근 호반의 트라카이 성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을 가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 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무 아래 곁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화초였다.
이 화초는 신기하게도 3층으로 되어 있는 꽃의 색깔이 각기 달랐다.
밑에는 주홍색, 중간에는 노란색, 위에는 보라색을 띄고 있었다.
이런 꽃은 처음 본 것이라 카메라에 담았다.
* 관련글: 호반의 성 위에 비구름과 햇볕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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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어제 중요한 일을 끝냈다. 7살 딸아이 요가일래는 아침에 일어나 아빠 컴퓨터가 켜져있지 않자 "와! 우리 아빠 일 다 끝났네! 축하해~~~"라고 말하면서 아빠를 꼬옥 안았다. 그리고 딸아이는 얼른 방으로 사서 닌텐도를 가져왔다.
"아빠, 내가 가르쳐 줄테니 한 번 이것으로 나하고 같이 놀자."
"난 이런 놀이 정말 힘들어." (사실 아빠는 게임에는 문외한이다)
"아빠, 여기 노는 방법이 다 적혀있어. 읽으면 돼!"
그래서 한 두 게임을 같이 해봤다.
그리고 딸아이 왈: "아빠는 정말 게임을 못한다. 그만하자!"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 딸아이는 이렇게 심심하게 논다. 하지만 종종 즐겨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천에 그림을 그려 수를 놓는 일이다. 30-40년전 시골에서 누님들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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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요가일래는 만 7살반인데 아직 대모와 대부가 없었다. 이런 명절이 되면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가끔 엄마와 외가쪽에서 대모와 대부를 정하자는 뜻을 피력했지만, 아빠의 신앙이 달라 주저했다. 또 다른 이유는 적합한 대모와 대부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와 엄마는 결혼해서 아들을 낳은 조카부부를 대모와 대부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우선 딸아이에게 물으니 좋다고 했다. 그리고 조카부부에게 물으니 선뜻 응하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7년이라는 긴 세월 수면 아래에 있던 딸아이 세례가 3일만에 일사천리를 이루어졌다.
먼저 월요일 조카부부를 집에 초대해 승낙여부를 확답 받았다. 그리고 시골에 사시는 는 장모님에게 전화해 화요일 성당 신부님께 부탁해 수요일 오후에 일정을 잡도록 했다. 모든 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화요일 엄마는 딸아이와 함께 백화점에서 속옷부터 시작해 세례식 때 입을 옷을 모두 새 것으로 샀다. 헌옷을 입고 세례식에 참가하면 평생 좋은 옷을 입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아빠는 자기 전에 딸아이에게 목욕재계를 시켰다.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깨끗이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딸아이는 다음 날 세례식에 대한 설레이는 마음으로 혼자 방에서 잘 준비했다. 하지만 한참 후 방안에서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가보니 딸아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울고 있었다. "왜"라고 물어도 대답 없이 엄마를 꼭 껴안고 울기만 했다.
우리 부부는 원인분석에 들어갔다. 답은 간단했다.
이날 낮 백화점에서 옷을 사면서 엄마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대모와 대부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부모가 불상사를 당하면 아이의 성장을 책임지는 것이 리투아니아인들이 생각하는 대모와 대부의 첫 번째 역할이다. 그래서 대모와 대부는 친척들 중 신망 있는 사람들 중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위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보니 이 세례식은 새로운 신앙인으로 태어나는 것보다는 아이를 후견하는 대모와 대부를 공식적으로 정하는 의미가 더 강해 보인다.
바로 이 '불상사'라는 말에 딸아이가 서럽게 울었던 것이다. 이런 지경이라면 당장 세례식을 취소하자는 말이 목구멍 아래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딸아이가 이렇게 서럽게 우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길거리에서 죽어있는 새 등을 볼 때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저렇게 생을 마감한다고 어릴 때부터 딸아이에게 이야기해왔지만, 막상 가까운 인연을 그렇게 상상하니, 그 상상마저도 7살 딸아이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오래 오래 같이 살자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 기도에 감응이 올 것이다"라고 설득에 설득을 한 후에야 딸아이의 서러운 한 시간 울음은 그쳤다.
어제 수요일 딸아이 세례식은 잘 끝났다. 특히 머리 위로 컵 가득 물을 쏟는 순간 울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미소 띤 딸아이의 얼굴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이날 엄마는 아빠의 신앙을 고려해 딸아이의 왼손 팔에 염주를, 그리고 오른손 팔에 묵주를 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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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트라카이에서 열리고 있는 중세축제에 다녀왔다. 이 축제가 마련한 중세시대 놀이를 지켜보았다.
먼저 무거운 투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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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7살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왔다.
오늘도 딸아이와 실랑이를 벌인 여러 날 중 하나였다.
이유는 책가방이다.
책가방을 들어보니 다소 무거웠다.
딸아이가 옷을 입고 사이에
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현관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다 입고 방에서 나온 딸아이는
얼른 가방을 낚아채더니 엄마에게 준다.
"엄마, 잘 보관해! 아빠가 가져갈 수 없도록."
"가방이 무거우니까. 아빠가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
엄마가 아빠에게 다시 주려는 가방을 놓고
딸아이는 재차 빼앗았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가면 자라고 있는 허리에 좋지가 않아!"
"그래서?"
"그러니까 가방이 무거운 날은 아빠가 들고가야지."
'아빠, 내가 학생이야!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가야지!"
"그래. 맞다. 무겁지만 학생인 너가 들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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