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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월 판소리가 리투아니아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관련 기사에는 판소리는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춰 한 명의 소리꾼이 주로 목소리를 사용해 몸짓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한국 전통음악이라는 정의와 함께 2003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선정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 리투아니아 판소리 순회공연하는 소리꾼 놀애 박인혜 [사진: 박인혜]
이유는 4월 19일 샤울레이를 시작으로 21일 클라이페다, 23일 카우나스, 24일 수도 빌뉴스에서 판소리 순회공연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특히 한국 전통음악의 해외공연은 교민이 주된 대상이다. 그래서 교민수가 많을수록 한국에서 오는 공연단의 방문도 잦아진다. 하지만 유럽의 한 변방로 여겨지는 리투아니아는 작은 나라로 전체 인구가 300만 여명이고, 교민수도 약 20명에 불과하다.
요즘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고, 리투아니아에서도 여러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는 K-Pop 순회공연이라면 쉽게 이해가 되겠지만, 이런 여건에서 판소리 하나만을 가지고 리투아니아 4대 도시로 순회공연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하게 보인다. 더욱이 흥부가, 심청가, 춘향가 등 판소리 소재가 한국인 정서에 깊게 뿌리하고 있어 유럽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 리투아니아 대표적 문학 작품 <아닉쉬체이의 숲>을 자막과 함께 판소리하는 박인혜
그렇다면 이번 순회공연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해 10월 리투아니아 북동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구 1만 1천명) 아닉쉬체이에 문화수도 행사 일환으로 국제 연극 경연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판소리 소리꾼 놀애 박인혜가 참가했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이자 판소리를 근간으로 하는 창작음악을 만들어 부르는 젊은 소리꾼이다. 2011년-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차세대 예술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판소리의 전통적인 소재가 아닌 특이한 창작 소재로 노래를 불렸다. 소재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詩) <아닉쉬체이의 숲>이었다. 리투아니아 사람 마르티나스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에서 놀애가 판소리에 맞게 재구성했다. 러시아 차르 지배를 받고 있던 암울한 시대인 1859년 안타나스 바라나우스카스(1835-1902, 가톨릭 주교)가 지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숲의 오랜 밀접한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당시 공연 중 한국어 판소리 구절에 따라 리투아니아어 자막이 제공되었다. 리투아니아 관객들은 자기 나라의 대표적 시를 한국어 판소리로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수백 명의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오랫동안 박수로 감동을 표현했다. 박인혜는 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 연극계의 대부로 알려진 연출가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를 비롯한 리투아니아 문화계 주요 인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순회공연에 앞서 열린 4월 18일 기자회견장에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리투아니아 유명 대중 가수 안드류스 마몬토바스도 참석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작품을 한국 음악에 결합시킨 것은 한국과 리투아니아 역사에 있어서 독특한 경우이다. 관람하지 않는 것 자체가 결례이다. 두 차례 한국에 공연차 갔는데 큰 환대를 받았다. 이제 우리가 환대할 차례이다.”라고 말했다.
* 리투아니아 가수 안드류스 마몬토바스(왼쪽)과 연출가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오른쪽)
연극 <불의 가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해 한국에서도 공연한 바 있는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는 “독특한 방식의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의 바라나우스카스를 새롭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리투아니아 작품, 우리의 고전 작품을 넘어서 세계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 놀애 박인혜(왼쪽)와 리투아니아 출신 보행 스님(오른쪽)
이번 리투아니아 판소리 순회공연을 가능케 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판소리 소재를 리투아니아 문학 작품에서 찾은 것이다. 또한 리투아니아 연극배우 출신으로 한국에서 승려 생활을 하면서 한국 문화를 리투아니아에 소개하는 데 정성을 쏟고 있는 보행(케스투티스 마르츌리나스) 스님의 역할도 공연 성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놀애의 소리에 따라 속세 시절 전공이었던 팬터마임을 함께 공연하고 있다. 한편 이번 공연에는 장재효 고수가 북을 맡고 있다.
19세기 중엽 “아닉쉬체이의 숲”을 쓴 리투아니아 시인은 먼 훗날 한국의 소리꾼이 자신의 시를 한국어로 판소리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 시와 한국 판소리의 만남은 두 나라 문화의 이해와 교류에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박인혜의 이번 창작 공연을 통해 이것이 인류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판소리를 세계화하는 데 효과적인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해외공연 현지의 소재를 판소리에 맞게 창작하여 부르는 것이다. 판소리를 토대로 특유한 호소력과 뛰어난 감성으로 노래하며 세계인들에게 다가가는 그의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한국의 소리꾼들이 이런 시도를 더 많이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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