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에 해당되는 글 253건

  1. 2011.10.04 나무토막을 여행 기념물로 삼는 못난 아빠
  2. 2011.08.10 매직펜으로 얼굴 화장을 해버린 딸아이
  3. 2011.08.08 딸과 처음으로 함께 한 20km 카누 여행
  4. 2011.07.06 아빠 책상 정리한 수고비는 얼마일까 3
  5. 2011.06.23 9살 딸아이 마침내 귀 뚫기 소원을 이루다 5
  6. 2011.06.14 "야!"면 안되잖아, 9살 딸의 따끔한 한 마디 8
  7. 2011.05.24 유럽 중앙에 울려퍼진 한국 동요 - 노을 9
  8. 2011.05.21 악성댓글로 인해 토라진 초3 딸아이 6
  9. 2011.05.18 인형하고 같이 안자려는 딸아이의 까닭
  10. 2011.05.04 친구의 햄스터 죽음에 깔깔 웃어버린 딸의 이유 3
  11. 2011.05.02 민요 경연 대회장엔 마이크가 없다 2
  12. 2011.04.27 "아빠, 내 코를 때려!" 코 내미는 딸아이 3
  13. 2011.04.11 아빠, 태권도 도장에서 생일잔치 해줘
  14. 2011.04.08 한국사람이라서 아주 좋다고 기뻐하는 초3 딸 12
  15. 2011.04.06 언니 생일에 음식하다 포기한 초3 딸아이의 이유
  16. 2011.04.04 부모 테두리를 처음 벗어난 초3 딸의 항변 1
  17. 2011.02.17 구겨진 종이 뭉치를 생일 선물로 준 딸아이 2
  18. 2011.01.14 여자의 몸을 그리면 쉽게 개를 그릴 수 있어 10
  19. 2010.12.31 긴긴 밤 딸아이와 함께 단어만들기 놀이
  20. 2010.11.27 아내를 가장 사랑하면 딸이 기뻐하는 이유 6
  21. 2010.10.07 우리 집 커피 타는 일은 초등3 딸의 몫 1
  22. 2010.09.21 딸의 항변 - 친구와 마음이 똑같아야!
  23. 2010.07.23 성형수술 때문에 가수가 안될래 5
  24. 2010.07.21 딸아이 용돈 책값에 고민하는 父情 11
  25. 2010.07.19 동화엔 왜 아름다운 가족이 없냐고 묻는 딸 4
  26. 2010.07.16 아빠, 늙었다고 생각하지 마 2
  27. 2010.07.15 소시지 앞에 울컥 울어버린 딸아이 7
  28. 2010.05.06 지렁이가 두 동강 나서 눈물이 나
  29. 2010.04.16 "엄마를 사랑해야지"라고 경고하는 딸아이 2
  30. 2010.04.12 가요제 상 타도 피자, 상 안 타도 피자 먹는 딸의 방법 11
요가일래2011. 10. 4. 06:20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 여름방학은 길다. 겨울방학이 없는 대신 여름방학은 약 3개월이다.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여름방학 숙제조차 없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쉴 수 있도록 한다. 방학 전 담임 선생님은 여행가서 개학이 되면 기념물을 가져와 이야기하도록 부탁했다.

방학 내내 딸아이는 선생님 부탁을 실행해야 한다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터키, 불가리아, 영국, 스페인 등으로 여행가자고 졸라댔다. "그냥 방학 잘 보내고 오라고 하시지 여행 이야기를 꺼내 부모를 곤란케하시나?"라고 살짝 선생님에 대한 불평심이 일어났다. 한편 "선생님 부탁은 왜 꼭 들을려고 하니?"라고 딸아이를 책망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다.

아내는 열심히 적합한 해외여행을 찾느라 여러 주를 보냈다. 하지만 살다보면 뜻과 같이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한 주 한 주, 한 달 한 달 보내다보니 결국 지난 여름방학에는 가족 해외나들이는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위안삼을 일은 있었다. 당시 큰 딸 마르티나는 2달 여정으로 미국을 여행하고 있었다. 아내는 10월 중하순 3주 동안 인도(India)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8월 하순 친구들이 리투아니아 메르키스 강(江) 카누여행(관련글: 여름 가족여행으로 손색없는 카누 타기)을 기획했다. 우리 가족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내팽개치고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해외여행은 못가도 한번이라도 국내여행은 갔다오자라는 취지였다.

강을 따라 카누를 저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맑은 물에 수영하는데 물 속에 돌처럼 생긴 물건이 눈에 띄었다. 꺼내보니 진흙으로 덮혀진 물건이었다. 진흙을 걷어내니 검은 나무토막이었다.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어미새 모양이었다. 신기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 강물 속에서 찾은 나무토막,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어미새를 닮은 듯하다.
 

개학 후 예정된 대로 딸아이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여행 기념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빠, 난 무엇을 가지고 가지?"
"지난번 나무토막 어때?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카누여행을 했으니 충분히 기념이 되잖아."

(요즘 사람들이 흔히 다녀오는 해외여행도 시켜주지 못해 못난 아빠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아빠. 좋은 생각이네."

이날 나무토막을 가지고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나무토막 보여줬어?"
"친구들이 그리스, 크로아티아, 스페인, 독일, 덴마크 여행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서 시간이 없었어."
"그래서?"
"그냥에 옆에 앉은 친구에게만 이야기해줬어."

"여름에 해외여행 못가서 미안해. 하지만 조금 있으면 아빠하고 같이 한국을 방문하잖아."
"알았어."
"한국에 가면 무엇을 제일 먹고 싶니?"
"배, 대추, 밤......" 

요즘 딸아이는 곧 한국에 갈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8. 10. 07:12

우리 집을 자주 방문하는 친척의 딸아이가 이제 만 한살 반이다. 우리 집에 오면 혼자 아장아장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내 엄마가 뒤를 따른다. 무엇에 부딛히거나 무엇을 입에 넣는 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이렇게 부모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이는 딸아이 요가일래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난 딸아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딸아이가 네살이었을 때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나 어때? 예쁘지?"


황당한 일이었다. 메직펜으로 양 미간 사이 바로 위 이마에 화장을 해놓았다. 인터넷에서 이마에 점을 찍는 인도 여인들을 보고 한 듯 했다. 여러 개의 점이 있는 것을 보니 한 개의 점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같았다.

"예쁜데 지울려면 고생 좀 해야겠네. 어떻게 메직펜으로 얼굴 화장할 생각을 다 했니?!" 


칭찬에 이어지는 나무람에 딸아이는 그만 뽀르퉁하게 토라졌다. 사실 이런 일들이 아이 키우기에 솔찬한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8. 8. 06:01

올 9월 초등학교 4학년생이 될 딸아이 요가일래는 이제 여름 방학 3달 중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다. 그 동안 "바다로 놀러 가자", "호수로 놀러 가자"에 바쁘다는 구실로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했다. 

일전에 에스페란토 친구들이 늦은 여름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리투아니아 남동 지방에 흐르는 메르키스 강을 따라 카누 타기로 했다. 

"우리 다 함께 카누 타러 갈 거야."
"난 안 갈 거야. 카누가 뒤집어지면 어떻게 해? 타지 않을 거야"라고 딸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울기까지 했다.

아내에게 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지 마라라고 했다. 왜냐하면 막상 현장에 가보면 타고 싶은 것이 아이들의 심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월 6일 집에서 남서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일행과 함께 떠났다. 한 두 살 많은 남자 아이들도 있었다. 카누 출발점에 가서 우선 강물의 깊이를 재어보았다. 카누 노의 반 정도였다. 그래도 구명조끼를 하면 심리적으로 안정되므로 입혔다. 카누는 2인용이었다.

▲ 난생 처음 카누를 타는 요가일래
 
"누가 하고 카누를 탈래?"
"아빠하고."
"왜 아빠를 선택했는데?"
"그러니까 아빠가 나의 안전을 더 보호해줄 것이라 생각해."

▲ 구명조끼를 하고 직접 노를 젓는 요가일래
 

이렇게 딸아이는 난생 처음 카누를 탔고, 또한 아빠하고 처음으로 카누를 탔다. 서툴렀지만 처음에는 노를 오른쪽 왼쪽으로 저으면서 아빠를 도와주었다. 나중에는 두 발을 강물에 담그면서 아빠에게 "빨리 빨리 우리가 1등해야 돼"를 외쳐대었다.

▲ 강물에 발을 적시면서 카누 여행을 즐기는 요가일래
 

"시합이 아니라 우리 여행하고 있어. 1등할 필요가 없어."
"그래도 제일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

덩치 큰 리투아니아 친구들을 혼자서 따라가기도 힘드는데 1등까지 요구하니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용케도 목적지에 제일 먼저 도착해 딸아이로부터 "우리 아빠 최고야!"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날 총 카누 여행은 20km였다. 비록 강물따라 카누 노를 저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굽이굽이 물태극을 이루었다.

▲ 아빠를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카누 여행
 

"너는 기쁘지만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겠니를 한번 생각해봐."
"아빠, 미안해. 하지만 아빠도 기쁘지?"
"그래 기쁘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7. 6. 07:42

요즘 매일 탁구를 친다. 지난 2월 우리 집에 설치했다. 짝은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할 큰 딸 마르티나다. 테니스를 취미를 가지고 있는 마르티나는 탁구도 비교적 잘 친다.

그냥 치면 재미가 없으니 내기 탁구이다. 마르티나가 이기면 10리타스(5천원)를 주고, 지면 마시는 차를 끓여주는 것이 내기이다. 아내도 좋아한다. 지면 건강을 위해 탁구를 친 값이라고 생각하고, 마르티나에겐 짭짤한 용돈 벌이다. 

늘 막상막하이다. 먼저 여섯 번을 이긴 사람이 승자이다. 보통 7-11번을 논다. 어제도 탁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작은 딸 요가일래는 아빠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아빠, 책상이 너무 지저분해. 내가 깨끗이 정리해줄게."

요가일래는 책상에 널려있는 책을 한 쪽에 쌓아서 정리했다. 더 이상 쓸 수 없는 볼펜을 버렸다. 특히 책깔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색종이 스티커를 필통에 붙여놓았다.

▲ 책깔피로 사용하라고 연필통에 붙여놓은 색종이 스티커들
 

"아빠, 내가 이렇게 정리하니 기분이 좋지?"
"그래."

탁구시합에 집중해야 하는 데 요가일래의 물음은 점점 방해가 되어 갔다.

"아빠, 내가 이렇게 잘 깎인 연필도 줄게."
"그래."
"아빠, 내가 이렇게 아빠를 위해서 책상을 정리하는데 아빠는 '그래', '응'이라고 짧게 말을 해!"

▲ 아빠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요가일래
 

요가일래는 더 긴 칭찬을 듣고 싶어했다. 그런데 탁구에 열중인 아빠의 반응은 짧고 무뚝뚝했다. 드디어 토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한 일이니 끝을 내겠다고 했다. 즐거움으로 시작한 일이 아빠의 반응으로 댓가를 바라는 일로 변해갔다. 

"아빠, 용돈!"
"네가 생각하기에 책상 정리 수고비가 얼마나 할까? 원하는 만큼 가져가."
"아빠 책상이니까 아빠가 결정해야지."

잠시 머뭇거렸다.

"5리타스(2천5백원)는 어때?"
"그럼, 5리타스 줘."

요가일래는 아빠 손바닥에 있는 동전에서 5리타스를 가져갔고, 다시 20센트를 더 가져갔다. 

"20센트는 팁이야. 이건 내 저금통으로!"

아빠와 딸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다가왔다.

"아니, 책상 정리하는 수고비가 5리타스! 너무 많아! 이렇게 습관을 들이면 안 돼!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는데 딸이 아빠 책상 정리를 댓가없이 해주면 안 되나?"

맞는 말이지만 아내에게 한 마디했다.

"그 돈이 누구한테 가든 우리 집에 있잖아! 아이도 돈이 필요하잖아. 이렇게 해서 모우게 하는 것도 좋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23. 07:25

몇해 전 한창 언니와 엄마 귀걸이를 가지고 놀던 시절 딸아이는 언니처럼 귀를 뚫겠다고 엄청 졸라했다. 그땐 "귀를 뚫을 때 정말 아플거야. 넌 아직 어리잖아!"라는 말로 어렵게 설득시켰다. 지금껏 이 일은 수면래로 잠겨져 있었다. 일 때문에 다른 도시에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가일래가 귀를 뚫겠다고 졸라대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아직 어리잖아. 적어도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야잖아."
"요가일래가 막무가내라 당신이 직접 설득해봐."

벌써 엄마하고 한 바탕 실랑이을 벌인터라 전화를 건네받은 딸아이는 울면서 전화를 받았다.

"아직 어리잖아. 나중에 커서 하면 안 돼?"
"아빠, 나도 이제 컸어. 어렸을 때도 어리다고 하고, 지금도 어리다고 하면 거짓말이잖아. 나 
이제 9살이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
"아플텐데 정말 귀를 뚫고 싶어?"
"그래도 정말 뚫고 싶어. 친구들은 벌써 다 귀글 뚫었어."
"그래. 내가 정말 하고 싶으면 이제 귀를 뚫어라."

▲ 귀를 뚫기 직전의 딸아이 모습

외지에 있었는지라 더 이상 설득하기엔 한계를 느꼈다. 7살 때 아직 어리다고 못하고 했고, 9살인데도 어리다고 못하게 하는 것은 딸아이 말대로 그 동안의 성장을 무시한 것이다. 또한 주변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진작 귀를 뚫었으니 "너만은 안 돼!"는 아버지와 딸간 간격의 벽을 더욱 두텁게 할 것 같다.

훌쩍이던 딸아이는 목소리는 이내 경쾌해졌다.
"아빠, 고마워~~~"
 

한쪽 귀를 뚫은 후 딸아이는 통증을 느껴 엄마에게 "다른 쪽 귀는 나중에 뚫으면 안 될까?"라고 물었다. 노련한 아저씨는 딸아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하는 동안 다른 쪽를 만지는 척하면서 그대로 확 뚫어버렸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자, 딸아이는 아주 반갑게 맞았다. 귀에는 귀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진작 허락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여자 아이들은 보통 몇 살에 귀를 뚫을까 궁금해진다. 미리 알았다면, "한국 아이들은 16살(?) 귀를 뚫어"라는 말로 설득해 보았을텐데 말이다. 

"아빠, 한국에 가면 예쁜 내 귀걸이 사줘! 알았지?"
 
"그래, 꼭 사줄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14. 06:27

어젯밤 늦게 잠 들었다. 아침 10경에 일어나니 아내가 사라졌다. 

혹시 욕실에?
욕실문 틈사이로 전등빛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아내가 창문을 활짝 열고 커피를 자주 마시는 발코니로 가보았다.
창문이 닫혀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보통 다음날 아침 어디를 가면 그 전날 알려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를 않았다.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아내로부터 문자쪽지가 왔다.
어디를 가야 하는 데 웹지도에 위치를 알아서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한참 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피아노 수업에 있어."
"방학이잖아."
"이탈리아에서 피아노 교수가 와서 교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지인하고 우리 집에 갈테니 집안 정리 좀 하고, 점심밥도 해놓아!"
"소식없이 나가더니 온만 것을 다 시키네."

먼저 바쁘게 집안 정리를 해놓고 쌀을 씻고 전기밥솥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바쁜 시간에 왜 그리 전화가 자주오는지......
그중 하나가 지인으로부터 왔다.

"야! 내가 바빠서 부탁한 것을 알아보지 못했어. 조금 후 내가 전화해줄게."

손님맞이로 집안 복도 거울을 닦고 있던 딸아이가 이 전화를 들었다.

"아빠, '야!'라고 하면 안되잖아."
"미안해~~~~~"
"아빠, 나한테 '미안해'라고 하지 말고, 아빠 친구에게 직접 '미안해'라고 말해야 되잖아!"
"알았어."

▲ 아빠에게 한 수 가르침을 서슴치 않는 요가일래 [요가일래의 한국 노래를 듣고 싶은 분은 여기로]
 

9살 딸아이의 지적을 듣고나니 속으로 뜨끔했다.
아무리 경황없지만 함부로 "야!"라고 말하지 말아야겠다.
또한 제 3자가 아니라, 내 말을 들은 당사자에게 직접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딸에게 "미안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가르쳐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야 딸아이의 또 다른 가르침이 없었을텐데 말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24. 05:21


노래하는 요가일래(생후 2년 8개월)

노래하는 요가일래(생후 6년 3개월)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음악학교를 다닌다. 전공은 노래이다. 한국 누리꾼들에게 요가일래가 부를만한 한국 동요을 지난해 3월 초에 부탁했다. (오른쪽 사진: 노래 선생님과 요가일래) 

 * 관련글: 딸에게 한국노래를 부탁한 선생님


아빠가 한국인임을 알고 있는 음악학교 노래 선생님이 요가일래가 좋은 기회에 한국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원했다. 누리꾼들이 여러 노래를 추천해 준 것 중에 동요 "노을"을 선택했다. 독자들 중 그 후 진행 상황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종종 딸아이에게 물었다.

"네 노래 선생님이 한국 동요 안 가르쳐줘?"
"응."
"그럼, 언제 가르쳐줄까?"
"나도 몰라."


이렇게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어제 드디어 요가일래가 한국 동요 "노을"을 불렀다. 음이 높다고 생각해 선생님이 한 단계를 낮추었다. 그 동안 리투아니아어로만 노래를 부르던 요가일래를 응원한 모든 독자들에게 이 노래를 전한다.

리투아니아인 노래 선생님이 지도하고, 리투아니아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의 한국 동요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 아래 동영상을 소개한다. 

 

참고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지방이 유럽의 지리적 중앙이라는데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억지를 부려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가 연구를 토대로 발표한 것이다. 어제 딸아이가 노래한 장소는 빌뉴스의 옛 시청 건물(로투쉐)이다. 권위있는 문화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라서 유럽에 한류를 전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노래는 재미로 하고 가수는 안되겠다는 요가일래이지만 어제 앙코르 박수까지 받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너 앙코르 박수 엄청 받았을 때 한국 노래 한 곡 더 하지."
"그러게. 산토끼 산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불렀으면 다 웃었을 거야." 
  

 
* 관련글: 딸에게 한국노래를 부탁한 선생님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21. 05:44

시력보호 차원으로 초등학교 3학년생 딸아이에게 컴퓨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한 지 벌써 1여년이 다 되어간다. 한때는 열심히 페이스북에 사진도 올리고 했다. 그 사진 중 하나가 최근 딸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악성댓글 때문이다. 

최근 밖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자 딸아이가 있었던 일을 말했다.

"아빠, 친구가 내 사진에 아주 나쁜 댓글을 달았어."
"뭐라고?"
"똥을 많이 싸서 네 옷이 검게 되었다."
"그래. 좋으네  "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딸아이는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리고 한 마디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내가 아빠 딸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딸아이는 친구의 기분 나쁜 댓글에 아빠가 화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내기는 커녕 "좋으네"라는 말에 그만 아빠에게 배신감을 순간적으로 느끼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조금 후 딸아이의 감정이 누그러진 듯해서 방문을 열고 말했다.

"나쁜 댓글에 네가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하려고 그렇게 말한 거야."
"그래도 나는 아빠 딸이니까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잖아!" 

블로그나 인터넷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 악성댓글이다. 물론 좋은 댓글, 기분 좋게 하는 댓글만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가 나쁜 말하면 들어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러면 기분 나쁠 일도 없어."
"아빠는 그게 쉽다고 생각해?"
"힘들지만 자꾸 노력해야지."
"누가 맛이 없는 음식을 주면 네가 안 먹지?"
"맞아. 안 먹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18. 05:54

밤 10시경이면 초등학교 딸아이 요가일래가 잠을 잘 시간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잠자기 전 아직도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준다. 어젯 저녁은 여러 가지 일로 몹시 바빴다. 밤 10시가 되자 어김 없이 딸아이는 내 방으로 왔다.

"나를 사랑하는 아빠!"
"왜?"
"책 읽어줄래?"

바쁘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아빠"라는 말이 세상 만사를 제쳐 놓게 했다.

"무슨 책을 읽어줄래?"
"네가 선택해. 자주 읽지 않은 책을 선택해."
"홍길동 이야기 아니면 엄지 공주?"
"쪽수가 적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 바쁜 아빠에게는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엄지 공주, 내일은 홍길동 이야기. 알았지?"

이렇게 동화책을 선택하고 딸아이 침대로 갔다.

"아빠, 그런데 나 인형하고 안잘래."
"왜?"
"그러니까 내가 꿈을 꾸었는데 인형도 말을 할 수 있어."
"인형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
"그럼 있지."

딸아이는 인형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례 1
"옛날 시골에 갈 때 내가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을 함께 나란히 앉아 있게 해주었다. 일주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보니 남자 인형은 누워 있고, 여자 인형은 조금 서서 있었어." 

사례 2
"발코니에 인형이 창문 밖을 보게 해놓았어. 내가 부엌에 가서 음료수를 가져왔는데 인형이 밖을 보지 않고 안쪽으로 보고 있었어."

"그럼, 인형이 말한다고 해서 왜 인형을 안고 안자려고 해?"
"인형이 말을 하니까 시끄러워 내가 잘 수 없잖아."
"인형은 참 신기하다. 네가 잘 때 말하고, 네가 안볼 때 움직이고...."
"정말 그러네."

인형이 유정물(有情物)이라고 믿고 있는 딸아이가 너무 순진해보였지만, 굳이 무정물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싶지 않았다. 엄지 공지 동화책을 다 읽었을 때 딸아이는 인형 없이 벌써 고히 잠들어 있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4. 08:27

이제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어딜 때부터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다. 종종 우리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몇 해전 요가일래가 러시아어 유치원을 졸업하던 날이었다. 

졸업식은 문화행사이다. 남아있는 유치원생들이 재롱을 부리고 떠나가는 유치원생들이 그 동안 배운 노래와 춤을 공연한다. 마지막으로 20여명이 송별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왔다. 다른 아이들은 별다른 감정없이 침착하게 노래를 하는데 앞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요가일래는 눈물을 주럭주럭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요즈음 주말을 몹시 기다린다. 얼마전부터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들리니" 드라마를 본다. 초기에 요가일래와 함께 보왔다. 눈물 흘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아빠하고 같이 보자."
"아빠, 나 안 볼래."
"왜?"
"눈물 나오게 해서 안 볼래."

가끔 길거리에 죽어 있는 새들을 보면 꼭 같이 묻어주자고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딸아이에게 주문처럼 하는 말이 있다.

"태어난 것은 모두 때가 되면 죽는다. 죽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 

가끔 놀이 삼아 딸아이와 문장잇기 놀이를 한다.

"태어나면"
"죽는다."
"죽으면"
"태어난다."

생사거래에 대한 무덤덤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며칠 전 요가일래는 학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친구가 자기 햄스터가 죽었다고 말했는데 내가 깔깔 웃었어. 그러니까 친구가 왜 웃느냐고 삐지듯이 물었어. 그래서 내가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다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렇듯이 친구가 알았다고 말했어."

이렇게 명랑하게 말을 한 후 요가일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도 봤는데 그 햄스터가 정말 귀여웠어. 정말 마음이 아파."
"친구한테는 웃었고, 지금은 울고 있네."
"친구가 슬퍼하지 말라고 웃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나도 슬퍼."
"슬퍼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기뻐해도 너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좋아."
"알아.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
"그러니 마음의 힘을 길러야 돼."
"노력해볼 게."

요가일래와 대화하는 동안 옛날 어머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님은 이렇게 물어셨다.

"너 시골 할머니한테 놀려가지 않을래?"
"좋지."


이렇게 어머님과 같이 버스를 타고 기대감과 함께 시골로 향했다. 그런데 시골이 가까워지자
어머님 왈: "가면 할머님은 안 계실 거야."

대학생인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어머님은 장례에 가자라는 말 대신 놀려가자고 말하셨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이렇게 어머님은 죽음 앞에 듬듬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태어난 것은 죽는다."라라고 요가일래에게 말했다.
"하지만 언제 죽을 지 아무도 모르잖아!"라고 답했다.
"그렇지. 모르니까 열심히 살아야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2. 14:55

지난주 금요일 딸아이가 다니는 음악학교에서 노래 경연대회가 열렸다. 그 동안 약간의 감기 증세, 부활절 방학 등으로 제대로 노래 지도를 받지 못했다.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딸아이에게 이왕 등록했으니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달랬다.

늘 그렇듯이 기록을 위해 이날 경연 대회장인 음악학교로 갔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있는 음악학교들에서 노래 전공 학생들과 앙상블들이 참가했다.

200석 규모의 강당에서 열렸다. 지금껏 연주회 등에 관람했을 때에는 늘 무대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마이크가 없었다. 딸아이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큰 강당에 왜 오늘은 마이크가 없지?"라고 옆에 있던 아내에게 물었다.
"민요 경연 대회에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라고 답했다.


 이날 딸아이는 리투아니아 민요 두 곡을 불렀다. 리투아니아어이지만 딸아이의 동영상을 소개한다. 결과는? 2등을 했다.



"오늘은 2등 했나? 축하해. 기분이 어때?"
"괜찮아. 벌써 1등을 많이 했잖아. 2등 할 수도 있지 뭐."
"그래. 맞아."

이날 식구들은 케익과 맥주로 소박한 축하연을 베풀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4. 27. 06:50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은 어제 화요일 수업은 총 다섯 시간이었다. 그런데 4교시가 끝나자 전화가 왔다.

"엄마, 학교 식당에서 간식으로 꿀과자를 사먹었는데 배가 아파."
"그래서?"
"선생님이 조퇴 허락을 했어. 엄마가 와서 데리고 가."
"엄마가 지금 언니 일로 바쁘니까, 아빠가 학교로 가도록 할 게."
"알았어."


처음 이런 일이 생겼다. 걱정 가득 빠른 발걸음으로 딸아이 학교로 갔다.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 학교 식당을 찾아가 왜 이런 일이 생겼나를 따질까....
- 위생담당기관을 찾아가 학교 식당 위생상태를 점검해라고 요구할까....

이 날 꿀과자를 먹은 학생들 중 많은 학생이 같은 증세를 겪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딸아이 개인적인 몸의 요인이 야기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빠, 내 혀바닥이 검지?"
"왜?"
"양호 선생님이 약을 주었어."


집 가까이 오자 딸아이는 힘이 드는 듯 안아달라고 했다. 두 손으로 딸아이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벌써 무거진 딸을 안고 집으로 오면서 역시 부모사랑은 내리사랑이로다...... 힘들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다행히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자 배가 아픈 증상이 나아졌다. 저녁무렵이 되자 딸아이는 완전히 원기를 회복했다. 아냥마저 떨기 시작했다.

"아빠, 안아줘."

딸아이를 안아주는 순간 딸의 무릎이 그만 내 코를 우연히 받아버렸다. 순간 충격으로 코피가 날 듯했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살다보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일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아파서 안았던 딸을 내려놓고 손으로 코를 만지면서 부엌에서 나왔다. 한참 후에 다시 딸아이와 마주쳤다.

"아빠, 정말 미안해. 아빠 코가 아팠지?"
"정말 아팠어."
"아빠, 아빠 코가 아픈 만큼 내 코를 때려!!!"

손으로 딸아이 코를 만졌다.

"아빠, 그렇게 말고, 정말 주먹으로 때려!!!"

* 우연히 아빠 코를 무릎으로 때린 딸이 자기 코를 때리라고 한다. 어느 아빠가 되갚음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한 후 딸아이는 눈을 감고, 아빠의 주먹을 기다렸다.

"아빠가 어떻게 너를 때릴 수 있겠나!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참 기특하다! 고마워!"
"아빠, 내가 미안하고 고마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4. 11. 07:14

리투아니아 어린이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일년에 크게 두 번 있다. 하나는 성탄절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생일이다. 보통 생일은 집에서 아주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 보낸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서 초등학교 3학년생 딸의 친구들을 보면 생일잔치 장소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엔 맥도날드 가게나 피자 가게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요가일래 친구는 극장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먼저 어린이용 만화 영화를 보고 피자 가게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생일잔치로 참 좋은 생각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난주 금요일 생일잔치 장소는 뜻밖이었다. 바로 가라데 도장에서 생일잔치가 열렸다. 초대장에 운동복 차림으로 오라고 명기되어 있었다. 가라데 도장에서 생일잔치라...... 고개가 절로 흔들렸다. 이날 가라데 도장에서 열린 생일잔치의 이모저모이다. 


아이들은 가라데 시범을 지켜보았고. 여러가지 기초체력 훈련동작을 직접 해보았다. 두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딸아이는 한마디로 색다른 생일잔치에 대만족이었다.

"아빠, 내 생일잔치는 태권도 도장에서 해줘!"
 
친구들에게 태권도도 알리고, 마음 놓고 푹신한 매트에서 뛰어놀 수 있으니까 참 좋을 것 같다. 아쉽게도 아직 빌뉴스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은 없다.
 
* 최근글: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만든 빌뉴스 한류 학생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4. 8. 06:03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 요가일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 빨리 와!"
"왜?"
"할 말이 있어."
"무슨 말인데? 아빠에게 와서 하면 안 돼?"
"아니야. 아빠가 와야 돼."

현관문으로 갔다. 느닷없이 아빠를 꼭 안으면서 요가일래가 말했다.

"아빠,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아주 기뻐. 아빠, 정말 고마워~~~"

갑자기 애교를 떨었다. 이국 땅에 살고 있는 데 "아빠가 한국사람이고 자기가 한국사람이라서 좋다"고 기뻐하는 딸의 말을 들으니 마음 속에 눈물이 핑돌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집에 오면서 반 친구 형이 지나갔어. 내가 큰 소리로 그에게 '너를 사랑해'라고 말했어."
"그것이 한국사람하고 무슨 관계가 있니?"
"나는 한국사람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
"그럼, 리투아니아사람들은?"
"말을 안 해." (참고로 리투아니아사람들은 대체로 내성적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속에 있는 생각들을 제대로 들어낼 수가 없었다. 특히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어른이나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한국사람이라서 자기 생각을 그대로 용기있게 말할 수 있다는 요가일래의 믿음은 허상에 가깝다. 한국사람, 리투아니아사람을 떠나서 요가일래가 형성한 개인적인 성격일 뿐이다. 

며칠 전 식탁에서 요가일래가 비교해서 한 말이 떠올랐다.

"리투아니아 아이들은 자기가 잘못해도 '잘못했어'라고 잘 말하지 않아. 그리고 하더라도 '잘못했어' 한 마디뿐이야. 그런데 한국 아이들은 '내가 잘못햇어. 어디 아프지 않아? 지금은 괜찮아?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 게......'라고 하면서 아주 보살펴 줘. 한국 아이들이 정말 좋아." 


요가일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한국 아이가 작다면서 입던 옷을 어제 가득 챙겨주었다. 이 옷들을 일일이 입어보면서 요가일래는 나홀로 패션쇼를 즐겼다.

"아빠, 한국사람이라서 정말 좋아."
"왜 또?"
"한국사람이니까 이렇게 옷을 많이 나눠주잖아."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한국과 한국사람에 대한 좋은 점을 스스로 찾고 느끼고 있는 초3 딸이 무척 고맙다.

* 최근글: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만든 빌뉴스 한류 학생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4. 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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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고3인 큰 딸 마르티나가 만 19살 생일을 맞이했다. 마르티나가 주도해서 가까운 친척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저녁식사를 준비할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저녁식사는 7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아내는 이날 저녁 7시까지 학교에서 일을 해야 했다. 마르티나는 테니스를 치고 6시 30분에 집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오늘은 생일이니 테니스장에 가지 말고 음식 준비를 하면 좋겠는데......"
"테니스는 나에게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책이야. 안 돼."
"생일이잖아."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가면 요가일래가 음악학교에서 돌아와서 할 거야."
"뭐라고?"
"요가일래가 할 수 있어?"
"잘 해. 걱정하지 마."

마르티나가 잘 하는 요리는 바로 캘리포니아 마키이다. 한국인 일식 요리사가 요리법을 가르쳐주었다. 언니가 하는 것을 보고 요가일래도 배웠다. 최근 들어 언니가 마키를 만들 때에는 요가일래도 만든다. 언니가 지시하는 대로 잘 따라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것이라 즐겨 먹는다.

"네가 정말 할 거니?"
"내가 할 거야."

음악학교에서 오후 다섯 시에 돌아온 요가일래는 손을 깨끗이 씻고 언니가 테니스 치러 가기 전에 준비해놓은 것을 가지고 기분 좋게 캘리포니아 마키를 만들어갔다. 

"아빠, 빨리 부엌에 와!"
"왜?"
"난 만들기 싫어. 모양이 안 예뻐. 아빠가 해!"
"괜찮아. 그래도 끝까지 해 봐. 언니가 좋아할 거야."
"안 할 거야. 우리 식구만 먹을 것이면 예쁘지 않아도 되지만, 손님들도 먹을 거야. 아빠가 빨리 이 안 예쁜 것을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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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하고자 하는 의욕이 왕성했으나 만들다보니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요가일래는 포기해버렸다. 핑계는 손님들에게 예쁜 마키를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핑계가 그럴 듯해서 모두가 받아들였다. 이날 마르티나가 와서 만들었다. 결국 자기 손님은 자기가 대접한다에 충실하게 된 셈이다.

 * 최근글: 부모 테두리를 처음 벗어난 초3 딸의 항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4. 4. 08:01

북동유럽 리투아니아 빌뉴스에는 어제 일요일 상상할 수 없는 날씨가 펼쳐졌다. 낮 온도가 무려 영상 15도였다. 봄이지만 지금까지의 낮 온도는 5도를 넘지 않았다. 더욱이 해가 쨍쨍한 날이라 사람들은 거리, 공원 등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 가족도 처음 만난 봄의 포근함에 안기기로 했다.

초3 작은 딸 요가일래 왈: "아빠, 난 친구하고 밖에서 놀래!"
고3 큰 딸 마르티나 왈: "난 국어 시험 공부해야 돼!"

결국 우리 부부만 산책을 가게 되었다.  

"너 친구하고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만 놀고 싫증나면 집에 가서 놀아!"
"예, 아빠 알았어요." (딸아이는 허락해줘 감사함을 느껴 존칭어를 사용했다.)

아내와 함께 빌뉴스 시내 중심가로 발길을 향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공원의 긴의자에 앉아 한참 일광욕을 즐겼다. 혹시 요가일래가 친구하고 놀이터에서 잘 놀고 있나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너 지금 놀이터에서 계속 놀고 있니?"
"아니, 타우라스 산에서 공놀이 하고 있어."
"약속한 놀이터에서만 놀아야지. 왜 좀 멀리 갔니?"
"한 곳에만 있으니 심심해."

타우라스 산은 집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언덕이다. 요가일래가 어릴 때부터 자주 놀러가는 곳이라 안심이 되었다.

"그래 알았어. 그곳에만 놀고 다른 곳에는 가지마!"
"예, 알았어요."

일광욕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시내 중심가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요가일래가 놀고 있을 타우라스 산 옆으로 다가오자 아내가 전화를 해보았다.

"우리가 타우라스 산 가까이 있는데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나, 게디미나스 거리 공원에 와 있어. 아빠에게 비밀로 해! 조금 놀다가 집에 갈 게, 엄마!"

약속한 놀이터, 산, 그리고 이젠 더 멀리 있는 공원까지......
아직 한번도 부모와 약속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먼 곳까지 가다니!!!!

"당신 먼저 집에 가. 내가 아이들 있는 곳에 가서 데리고 올 게."
 
요가일래가 있는 쪽으로 가는 도중에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 전화했다.

"너 어디니?"
"공원인데 아빠 오지 말고 집에 가. 우리 조금 더 놀고 갈 게. 아빠가 오면 우린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아빠가 가고, 너가 오면 떠 빨리 만나자나!"
"우리 여기 더 놀 거야."
"안 돼! 그긴 낯선 사람들도 많고, 네가 처음 갔잖아. 아빠가 불안하니 빨리 와!"
"아빠 화내지 말고 기뻐해야 돼. 아빠는 이렇게 생각해야 돼 -
와~, 우리 딸 정말 대단하다. 먼 공원까지 가서 놀고 있으니까."
"(목소리를 더 이상 높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부모하고 약속한 장소를 벗어나면 안되잖아. 우리가 얼마나 걱정하는 지를 생각해야지."
"알았어. 그러면 천천히 오세요. 미안해요."

초3 딸아이는 이렇게 부모와 약속한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까지 가서 노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는 이런 딸아이의 행동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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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기로 약속한 첫 장소인 집 앞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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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이 영역을 넓힌 타우라스 산에서 나무타기 놀이를 하는 요가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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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화내지 말고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기뻐해야 돼!"

이제 해가 갈수록 딸아이의 당돌함은 거세질 것이다. 부모의 테두리를 점점 넓혀야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 최근글: 유럽 초등 3학년 영어 시험은 어떤 내용일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2. 17.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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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저녁 초등학교 딸아이 요가일래는 아빠가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깨끗한 A4 종이를 막 구겼다. 일전에 종이를 구겨버린 딸아이와의 언쟁이 떠올랐다(관련글 읽어보기 ->).

"종이를 왜 구겨? 아빠에게 벌써 혼났잖아."
"알아."
"그런데 또 구겨? 종이를 사랑해야지."
"이렇게 다시 펴면 되잖아!"

그리고 딸아이는 이 구겨진 종이 뭉치를 들고 식탁이 있는 부엌으로 가버렸다. 어제 16일은 여권상 내 생일이다. 우리 집 식구들에게 내 생일은 3개로 알려져 있다. 먼저 주민등록부에 적힌 2월 16일이다. 이는 음력 생일을 적은 날짜이다.

당시 양력 생일은 3월 21일, 춘분이다. 이것이 두 번째 생일이다. 그리고 해마다 음력 2월 16일에 해당하는 양력일이 세 번째 생일이다. 한 때 재미삼아 한 해에 생일을 세 번 치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과 상의해 3월 21일을 진짜 생일로 하기로 정했다.

그래도 2월 16일이 되면 식구들로부터 축하의 말을 듣는다. 더구나 2월 16일은 리투아니아가 1918년 제정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의미있는 국경일이다.

어제 16일 딸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자 편안하게 아침 늦게까지 잠에 빠졌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딸아이가 먼저 깨어났다. 얼마 후 딸아이는 난데 없이 구겨진 종이 뭉치를 내 쪽으로 던졌다.

"야, 어떻게 종이 뭉치를 아빠에게 던질 수 있니?"라고 하면서 더 이상 잠결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주워서 한번 펼쳐봐!"라면서 아내가 말했다.

구겨진 종이는 마치 헝겊이 된 듯했다. 조금씩 펼쳐보니 글자가 나타났다. 바로 딸아이가 "가짜 생일"이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선물을 만들었다.

위에는 한국어(로마자), 영어, 리투아니아어로 글을 썼다.
 
Apa(아빠),
nan(난)
norl(너를)
adzu(아주)
saranghe(사랑해).
Naeso(나에서)
10000000
popo(뽀뽀)
pada(받아).


Daddy,
you
are very
awesome!
I love you
very very
much.
10000000
kisses
from
me to
you
Tėti,
aš tave
labal labai
myliu.
10000000
bučiukų
tau
duodu.




그 밑에는 Happy b-day to you!
그 밑에는 내가 요즘 읽고 있는 "한권으로 읽는 史記", 늘 일하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그려져 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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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종이 뭉치라고 무시해 버리고 막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면 딸아이가 얼마나 속상해 했을까.....

"왜 종이를 구겨서 선물을 하려고 했는데?"
"재미있어라구"

* 관련글: 종이를 구겨버린 딸아이와의 언쟁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 14. 09:38

긴긴 겨울밤 초등학교 3학년생 딸아이 요가일래가 자주 하는 놀이가 있다. 바로 그림그리기이다. 어떤 때는 물감으로, 어떤 때는 볼펜으로 그린다. 그러다가 지치면 종종 아빠를 불러 동물 그리기 놀이를 한다.

"아빠, 그리기 놀이 하자."
"어떻게?"
"내가 동물 이름을 말하면 아빠가 그 동물을 그린다. 아빠가 동물 이름을 말하면 내가 그린다. 쉽지?"
"쉽지만, 아빠는 그림을 못 그린다."
"괜찮아."

얼마 전 요가일래가 그림에 전혀 소질이 없는 아빠에게 한 수 가르쳐주었다.

"아빠, 개를 어떻게 하면 쉽게 그릴 수 있는 지 알아?"
"몰라."
"내가 가르쳐줄게. 여자의 몸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그려봐."

딸아이는 동작 하나 하나에 사진을 찍도록 했다. 아래는 딸아이가 개를 그려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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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너무 허리가 없고 통통하다."
"아빠, 개를 그리려면 어쩔 수가 없잖아."

딸아이가 여자의 몸을 그리면서 그린 개 그림이 정말 개를 닮았나요?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12. 31. 10:56

지난 11월 5일 만 아홉살이 된 딸아이에게 줄 생일 선물을 사려고 가게가 갔다.

"아빠, 인형을 사줘!"
"인형보다 더 유용한 선물을 사는 것이 어떨까?"
"그래도 인형을 가지고 싶어."
"인형은 벌써 많이 있으니까. 뭐 새로운 선물을 사는 것이 어떨까?"
"한번 생각해볼께."
"저기 있는 스크래블을 사면 어떨까? 이제 긴긴 겨울 밤이 오니까 함께 놀이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알았어."

이렇게 스크래블을 놀 수 있는 도구를 사게 되었다. 참고로 스크래블(scrabble)은 알파벳이 새겨진 타일을 보드 위에 가로나 세로로 단어를 만들어 내면 점수를 얻게 되는 방식의 보드 게임이다(더 많은 정보는 위키백과를 참조하세요).

어느 날 저녁 딸아이가 다가왔다.
"아빠, 너무 심심해. 우리 스크래블 놀까?"
"그래 한번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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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글: 2010년 코메디 같은 축구 경기 장면 모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11. 27. 07:08

지금도 거의 매일 밤 자기 전에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지금은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때 생긴 습관적인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지?"
"나, 요가일래지."
"그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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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교에서 돌아와 예쁘게 놀고 있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세상에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지?"
"나, 요가일래."

"어떻게 알았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자꾸 말했잖아."
"그럼, 이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바꾸어볼까? 아빠가 바꾸면 누굴까?"
"엄마."
 
"아빠가 엄마를 가장 사랑하면 네가 슬퍼하지 않을까?"
"아니, 정말 기뻐."
"왜 기쁘니?"
"내 동생이 생길거잖아."

* 최근글: 세계에서 가장 옷 유행을 쫓는 도시는?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10. 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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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요가일래가 초등학교 3학년생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무엇이 가장 달라졌을까? 일상에서 제일 느끼는 것은 두 가지이다. 9월 전까지만 해도 딸아이는 무엇이든지 부모에게 시키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아빠, 음료수 가져다 줘."라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딸이 옆방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외친다.
"아빠 바빠. 네가 하면 안 돼?"
"지금 재미있는 만화야."

한 동안 침묵이 흐른다.

"아빠, 빨리 줘. 목 말라."
"네도 발이 있고 손이 있잖아. 스스로 해."
"아빠, 난 어린이야. 부모가 보살펴줘야 해."

예전에는 이런 일이 하루에도 허다했다. 딸의 왕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이런 딸아이의 태도가 확 바꿨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일하는 아빠에게 와서 묻는다.

"아빠, 커피 아니면 차?"
"차."
"요즘 너 많이 달라졌다. 웬 일이야?"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아주 많이 음료수 심부름을 했잖아. 이젠 내 차례야."

그리고 또 하나 현저하게 달라진 것은 머리카락 손질이다. 2학년 때까지는 학교가는 날마다 엄마가 일어나 머리카락 손질을 해주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혼자서 척척 잘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머리카락 닿는 실력을 보여주단면서 저녁 내내 손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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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혼자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딸에게 윽박지르지 않고 놓아둔 것에 대해서 이제는 후회스럽지가 않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쳐가고 있는 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딸이 탄 차의 향기가 벌써 눈앞에 아른거린다.

* 최근글: Miss Princess of the World에 리투아니아 여대생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9. 2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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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벌써 추석명절이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평상과 같은 생활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 요가일래는 추석선물을 모른다. 요즘따라 딸아이가 학급의 남자친구들 이야기를 부쩍 많이 한다. 자라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것이다. 어제 월요일 엄마가 해주는 아침식사 빵을 먹으면서 남자친구들에 대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른쪽: 초등학교 3학년생 요가일래)

"너 또 남자친구들 이야기니?"
"아빠도 (여자친구인) 엄마를 가지고 있잖아!"
"어떻게 아빠하고 동급으로 놀려고 하니? 아빠는 나이가 많잖아. 너는 아직 어리니까 남자친구들보다 공부에 좀 더 신경을 써라!"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를 점심 후 음악학교로 데러다 주는 길에 딸아이는 이날따라 말이 참 많았다.

"오늘 학교에서 줄넘기를 했다. 아빠는 어렸을 때 줄넘기를 잘했어?"
"잘했지. 쉬지 않고 500번도 뛰었지."
"그 줄넘기 줄 아직도 있어?"
"너무 오래 되어서 없어."
"아빠 어렸을 때 구슬치기를 했어."
"했지."
"그러면 그 구슬 아직도 있어?"
"없어."
"그러면 버렸어?"
"오래 되어서 기억인 안 난다."
"아빠, 난 구슬을 버리지 않고 잘 간직했다고 내가 결혼해서 내 아이에게 구슬을 줄 거야."
"거, 좋은 생각이다. 아빠가 놀던 구슬을 너에게 줄 수 없어 미안해."
"괜찮아."

언니가 타던 10년 된 자전거를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타는 것을 보니 지금 놀던 구슬을 자식에게도 전해줄 것만 같다. 이날 대화의 절정은 바로 음악학교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아빠 내 생일에 A 친구를 초대 안할 거야."
"그 친구는 나쁜 말도 하고 고자질도 잘 해. 그래서 나도 복수할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돼. 마음이 착해야지."
"아니. (친구와) 마음이 똑 같아야 돼."
"친구가 너에게 나쁜 말을 했다고 너도 나쁜 말을 하면 안 돼!"
"그러면 왜 아빠는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에게 나쁘게 하면 아빠가 혼내준다고 말했하잖아."
 
순간적으로 부끄러웠다. 이것은 딸에게 아빠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딸아이는 이 말에서 아빠도 혼를 내주겠다는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나 자신도 복수심을 품고 있으면서 어떻게 딸에게 복수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것이 우스워보이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7. 2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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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독일 가고, 언니는 영국 가고 집에 남은 사람이 요가일래와 아빠뿐이다. 비록 둘이서 자기 할 일을 하느라 하루 종일 같이 있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 둘밖에 없으니 자연히 이야기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혼자 집에서 잘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영 혼자 있기를 무서워한다.

집안에 거미 한 마리, 파리 한 머리, 모기 한 마리만 봐도 기겁을 하면서 8살 딸아이는 "아빠, 도와줘!"를 연신 외쳐댄다. 며칠 전 치과의사를 방문한 시간이 아침 8시였는데 평소 같으면 쿨쿨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혼자 있기를 싫어해 결국 아침 7시에 일어나 함께 치과를 다녀왔다.

깨우지 않고 그냥 혼자 살짝 갔다오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우연히 잠에서 깨어나 혼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서움의 공포에 빠질 것 같았다. 정신적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깨워서 데려가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족한 잠은 다시 갔다와서 낮에 자면 될 것이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데 갑기기 생뚱맞은 말을 했다.

"아빠, 나 크면 가수 안될래?"
"왜?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
"가수가 되면 수술을 많이 하잖아."
"무슨 수술?"
"얼굴 수술. 마이클잭슨도 했잖아. 나는 수술 싫어."
"너는 수술 필요없잖아. 있는 그대로 사는 거야."
"그래도 안될래. 노래를 많이 하면 목이 아플 수도 있잖아."


음악학교에서 노래를 전공하는 요가일래는 종종 노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은연중 가수라는 장래희망이 잠재해 있는 듯하다. 최근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가수=수술'이라는 등식이 머리 속에 맴돌아서 이날 이렇게 말한 듯하다. 딸아이가 살아가면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길 기대한다. 그러면 가수가 되더라도 부족한 얼굴을 굳이 뜯어고치려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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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0. 7. 21. 05:28

아내가 아직까지 독일여행중이다. 아내가 떠나기 전에는 모처럼 딸아이와 둘이서 지내는 것에 대한 약간의 설레임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내의 빈 공간을 곳곳에서 느낀다. 특히 요리 솜씨가 없고, 또한 요즘 엄청 바쁜 일이 있어 나와 딸아이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오늘은 뭘 먹을까?"
"아빠가 알아서 해줘."
"오늘은 외식하자."
"싫어."
"네가 피자를 아주 좋아하잖아."
"이제 싫어졌어."


딸아이의 찬성을 얻고,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을 기대를 가지고 질문했지만, 대답은 "이제는 피자가 실어졌어."다. 외식하면 간단하게 한 끼, 아니 배부르게 먹으면 두 끼는 절로 해결이 되는 데 말이다.

"이제 냉장고에 음식과 과일이 동이 났는데 어떻게 하니?"
"아빠, 슈퍼마켓에 가자."
"그럼, 우리가 살 목록을 네가 쓰라."
"아빠, 헬로키티 책을 사줘."
"얼마인데?"
"2리타스(천원). 알았어."


우유, 달걀, 빵, 복숭아, 바나나, 음료수, 요구르트, 책

이렇게 레스토랑 대신 슈퍼마켓을 가게 되었다. 쪽지에 적힌 목록대로 물건을 바구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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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 책 사줘."
"얼마인데?"
라고 물으면서 책 뒷표지에 붙은 가격표를 보았다.

"우와, 15리타스(7500원)이네. 비싸다."
"알았어."
라고 대답하더니 딸아이는 책을 원래 자리로 갖다놓았다.

잠시 후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 순간 딸아이는 다시 그 책을 보더니 이렇게 제안했다.
"아빠, 그러면 내 용돈에 사줘. 이 책이 친구들 사이에 아주 인기가 있어. 나도 가지고 싶어."

군것질 안하고 모은 자기 용돈으로 책을 아낌없이 사겠다는 딸아이의 애원하는 표정에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동의를 표하자 꼭 내가 사주는 것처럼 기뻐했다.

"책값은?" 집으로 돌아온 후 딸아이에게 물었다.
"알았어. 지금 줄 게."라고 답하고 지갑으로 다가갔다.

아내는 수년간 가계부를 써오고 있다. 집을 떠나기 전 가계부 작성을 신신당부했다. 작은 책의 값으로 15리타스는 큰 돈이다.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고 고민스러웠다. 약속은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딸아이의 용돈에서 막상 받으려고 하니 마음이 선듯 나서지 않았다. 생각 끝에 그냥 두리뭉실하게 음식값에 포함시키고 딸아이에게 청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선물이야! 네가 군것질 안하고, 아빠가 외식 안하고 했으니 돈이 절약 많이 되었으니 선물이야!"
"아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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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7. 1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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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독일로 공연여행을 떠난 후부터 취침시간이 좀 빨라졌다. 보통 새벽 2-3시에 잠을 자는 데 이젠 12시경에 잔다. 원해서가 아니라 8살 딸아이 요가일래 때문이다. 11시경 밖이 어두워지면 그 때부터 슬슬 잠자기를 재촉한다.

"아빠, 자러 가자."
"일 좀 더 해야 되니까 혼자 잘 준비해라."
"싫어. 혼자 자기가 무서워."


방 안에 윙윙거리는 파리 한 마리도 무서워서 아빠의 도움을 요청하는 요가일래다. 혼자 자고자 할 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하는 일을 멈추고 자게 된다.

(2005년 리투아니아어로 번역출판된 한국 전래동화: 서진석 번역, 김은옥 삽화)

자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어 동화를 읽어주는 것이다. 어제는 "기쁨 찾은 금빛 동전"을 읽어주었다. 십원짜리 동전 이야기로 참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보통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 요가일래는 잠이 든다. 그런데 어제는 너무 생생했다. 자기 전 샤워를 해서 생기가 남아돈다면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샤워한 것을 후회했다.

"잠이 안 오면 우리 이야기를 하자."
"아빠가 먼저 해."
"아빠가 동화책을 읽었으니 네가 먼저 해."
"알았다."


"옛날에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엄마하고 살았다.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놀았다. 엄마하고 살았는데 엄마 말도 안 들었다. 길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소 탈을 썼는데 소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른 아저씨가 이 소를 샀다......"
"너, 어떻게 그 이야기를 아니?"
"인터넷에서 들었다. 이제 아빠 차례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야 된다."
"옛날 옛날에 깊은 산 속에 아버지하고 딸이 살았다......"

"잠깐, 아빠! 질문이 있다."
"뭔 데?"
"동화에는 왜 아름다운 가족이 없어? 그 남자는 엄마하고만 살고, 아빠 이야기에는 아빠하고만 살고. 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사는 아름다운 가족은 없어?"
"정말이네. 네가 자라서 아름다운 가족이야기를 한 번 지어봐."

잠시 엄마가 집을 비워서 그런가 요가일래는 동화 속 가족에는 자주 부모 중 한 사람만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백설공주, 콩쥐밭쥐,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등 많은 동화에서 부모가 같이 화목하게 사는 가정이 설정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야기다.

8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갑자기 던진 물음을 들은 후 아름다운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동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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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0. 7. 16. 05:32

보통 유럽 사람들처럼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만나면 결혼여부나 나이를 묻지 않는다. 가끔 이들이 나에게 나이를 묻기도 한다. 이는 진짜 나이를 알고 싶어서 묻기보다는 생긴 얼굴을 보아 도저히 나이를 추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궁금해서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 사람들의 나이를 알아맞히기가 어렵듯이 유럽 사람들도 또한 아시아 사람들의 나이를 알아맞히기가 힘들다고 한다. 내 경험상 대체로 여기 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의 나이를 더 적게 본다. 그 덕분에 내 나이도 십년은 훌쩍 넘게 젋어 보인다. 머리색깔은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 아마도 나이와 관계없이 머리를 염색하는 것이 일반화되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종종 친구들은 "나이는 여권에 오지, 나에게는 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여권에는 생년월일이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 오지, 이 쪽으로 오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물론 자기위안용이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나이를 적게 보아도 어쩔 수 없게 늙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서 대해서는 "나이가 드니 부부 말싸움이 늘어난 이유" 글에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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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말부터 시작한 여름방학에 종종 발코니 그네에서 책을 읽는 요가일래

일전에 아내와 나 그리고 8살 딸아이 요가일래와 시내 중심가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시간이 좀 촉박했다. 아내는 평소 빠른 걸음을 걷는다. 이에 비해 나는 느릿느릿 걸음을 좋아한다. 엄마와 손을 잡은 요가일래는 뒤에서 겨우 따라오는 아빠에게 한 소리를 했다.
"아빠, 시간이 없어. 좀 빨리 걸을 수 없어?"
"아빠도 이제 늙어서 그래."


요가일래의 다음 대답이 재미있었다.
"아빠가 늙었다고 생각하니까 늙은 거야. 늙었다고 생각하지 마!"
"그러면 걸음이 더 빨라질까?"
"당연하지. 자, 늙었다고 생각하지 마!"


이 말에 속아넘어가는 아빠는 보폭을 더 크게 했다. 이 순간에는 딸아이의 생각을 증명해보였다. 하지만 늙었다고 정말 생각 안하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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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0. 7. 1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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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8살 딸아이 요가일래와 단 둘이서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가 첫 날이었다. 어제 아침 7시에 아내는 음악학교 합장단과 함께 독일로 공연을 떠났다.

요가일래는 기어이 혼자 잠을 자고 있어도 되는 데 엄마와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버스가 기다리는 학교를 같이 갔다. 힘겨운 작별을 했다. 버스가 떠날 무렵 갑자기 비까지 내려 작별의 슬픔을 동반하는 듯 했다.

낮 동안 같이 집에 있었다가 친구가 방문해 몇 시간 동안 시내를 산책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가일래는 컴퓨터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텔레비젼을 보다가 때론 엄마를 생각하면서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너가 보가 싶다고 울면 엄마 마음이 아플 거야. 엄마 마음이 아프면 안 좋지? 그러니 울지마."
"알았어. 하지만 눈물이 나."

생기를 되찾은 요가일래는 배가 고플 때마다 먹을 것을 달라했다.

"아빠, 라면 해 줘!"
"알았어."

이렇게 라면 한 봉지를 반은 생으로 먹고, 반은 삶아서 먹었다.

"아빠, 배 고파 뭐 먹을 것 없어?"
"바나나, 복숭아, 요구르트?"
"복숭아 줘."
"알았어."

복숭아 한 개를 먹기에 편하게 잘라서 주었다.

"아빠, 또 배 고파."
"그럼, 같이 냉장고에 가자."
"이 소시지 세 조각을 줘."
"알았어."

이렇게 요가일래는 세 조각을 가지고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로 갔다.

"아빠!"
"왜?"

조금 후 요가일래는 소시지 한 조각이 남은 접시를 들고 아빠 방으로 오자마자 서글퍼게 울기 시작했다.

"왜 우니?"
"아빠가 너무 불쌍해. 아무 것도 먹지 안았잖아. 이 소시지 먹어."


소시지 세 조각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배가 고플 때마다 음식을 가져다만 준 아빠는 저녁 내내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나서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8살 딸아이의 배려심에 그만 속으로 나도 눈물이 울컥했지만 울컥하는 그를 달랬다.

"아빠 오늘 낮에 친구하고 많이 먹었잖아. 울지마. 이 남은 조각마저 네가 다 먹어."
"고마워,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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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5. 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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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어머니날(5월 2일)을 맞아 시골도시에 살고 있는 장모님을 다녀왔다. 토요일 5월 1일 일가친척들이 모여 장모님 텃밭에서 감자를 심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감자심기를 마치고 부지런한 장모님은 요가일래와 함께 강남콩을 심었다. 외할머니와 손녀가 정겹게 있는 모습을 카메라를 담고 텃밭내 집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요가일래는 손바닥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잡고 달려왔다.

"아빠, 이 지렁이가 나왔어. 좋은 자리에 놓아주어야 돼."
"너는 지렁이가 안 무서워?"
"아니."
"안 징그러워?"
"아니, 정말 귀여워."

속으로 "이잉~ 많은 사람들이 징그러워하는 지렁이가 귀엽단말이야! 정말 너는 엽기아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렁이는 햇볕을 싫어하니까 얼른 땅 속에 넣어주자."
"아빠, 우리 빨리 도와주자."

이렇게 해서 응달진 곳에 땅을 파고 습기가 있는 곳에 지렁이를 놓아두었다.

요가일래는 다시 강남콩을 심고 있는 외할머니에게 갔고 아빠는 사람들이 모인 집안으로 들어왔다. 벽난로에서 장난을 태우고 있는 데 얼마 후 요가일래가 들어왔다. 요가일래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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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와 강남콩을 심고 있는 딸아이 요가일래

"아빠, 눈물이 나."
"왜?"
"지렁이가 두 동강 나서 죽을 거야."

외할머니가 강남콩을 심기 위해 땅을 파는 동안 지렁이가 다쳐서 두 동강 났다.

"지렁이는 둘로 잘려도 다시 재생되어 두 마리가 될 수 있어."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돼?"
"동물세계는 신기한 것이 많아."
"그래도 지렁이가 아프잖아."

거미를 무서워해 소리지르고 달아내는 요가일래가 지렁이를 마치 새끼개를 어루만지듯 하는 것을 보니 징그러운 마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래도 두러워하지 않고 지렁이를 귀여워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에 흐뭇하다.

"지렁이는 땅을 좋게 해."
"알아."
"집에 가서 비누로 손을 아주 깨끗이 씻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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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4.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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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 접어드니 특히 건성으로 듣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새벽까지 일하다가 어제 아침에도 비몽사몽간이었다. 일어날 기미를 보이자, 부엌에서 아내가 뭐라고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가일래가 10시 45분 학교 앞 모임에 차질 없도록 도와주어라는 부탁이었다.

아빠보다 먼저 일어난 요가일래에게도 아내는 "너가 만나는 시간을 잘 아니까 아빠한테 데려달라고 해."라고 말한 후 일 때문에 외출했다. 아내가 나간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요가일래는 빨리 학교로 가자고 아빠를 재촉했다. 아내가 말한 시간을 건성으로 듣고 기억한 터라 요가일래가 정확하게 알 것이라고 믿고 시간을 보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요가일래 학교는 4월 15일 고등학교 졸업시험장이라 임시 휴일이었다. 담임 학교 선생님은 학급단체로 보볼링장에 가기로 결정했다. 학교 앞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다. 요가일래에 따르면 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지금 9시 30분인데 요가일래외에는 아무도 없어.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은 참 바보다. 10시 45분이지, 어떻게 9시 30분이야! 그렇게 여러 번 말했는데 기억을 못하다니!"


이어서 요가일래에게 아빠가 한 소리했다.
"봐! 네가 재촉해 빨리 왔더니 아빠가 엄마한테 바보라는 소리를 듣게 되잖아! 어떻게 할 거니?"
"여기서 그냥 기다릴 거야.'
"여기서 1시간 15분 동안이나 혼자 기다린다는 말이야!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아침 은행에 갈 일이 있었고, 또 한국에서 소포가 와있다는 우체국 통지서를 가지고 있었다. 두 일을 모두  해도 시간이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요가일래는 그래도 있을 것이라고 버텼다. 한국에서 온 소포가 아빠 블로그의 어느 독자가 딸에게 보낸 선물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로 간신히 설득했다.

은행일을 마치고 우체국에서 무게가 7.4kg 소포를 받아들었다. 이 무거운 소포를 들고 학교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힘들 것 같았다. 집에 갔다놓고 학교로 가기로 했다. 그때 시각이 아침 10시 10분이었다. 소포의 내용물이 궁금했지만 나중에 온 가족이 같이 열어보기로 했다.

다시 학교로 가는 길에 소포 선물로 싱글벙글한 요가일래에게 말했다.
"뜻하지 않게 선물까지 받았으니 너가 동요 '노을'을 잘 불러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했다.

마침 반대편에서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긴 아가씨 한 분이 다가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면서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런 미소에 무표정으로 답하기는 어색해서 아빠도 미소로 대했다. 아가씨가 막 지나가자 요가일래는 아빠를 향해 들고 있던 신발봉지로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아빠, 내가 아빠를 때릴 거야!"
"왜?"
"엄마를 사랑해야지!"(지나가는 여자에게 미소짓는 것만으로 요가일래는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를 사랑해야지?"
"할아버지."
"그리고 또 누구를?"
"할머니."
"그리고?"
"이젠 됐어."
"그럼, 요가일래를 안 사랑해도 돼?"
"아마도."(토라졌네. "아빠가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하지?"라고 평소 물으면 딸은 '나지!"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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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엄마를 사랑해야지!"라고 말한 요가일래

이렇게 요가일래를 학교 앞까지 다시 데려다주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있는 찰나에 아내가 전화를 했다.
"이제 (10시 30분) 요가일래를 데리고 학교에 가도 돼."
"벌써 데려다 주고 왔는데."
"내가 그렇게 여러 번 시간을 말했는데 그것을 기억을 못해?.........." (또 따지네......)

이렇게 따지거나 잔소리가 시작되면 우이독경으로 대하지만 마음 속에는 "그래도 엄마를 사랑해야지"라는 딸아이 요가일래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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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4. 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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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아내는 4월 10일(토) 딸아이 요가일래가 노래공연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그냥 노래하는 것이니 부담없이 평소 하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 행사 시작 한 시간 전에 부랴부랴 일어났다. 그래도 기념이니 촬영하러 같이 가자고 아내와 딸이 제안했다. 무거운 삼각대를 가져가려고 했으나 아내가 제지했다.

단순한 노래공연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가보니 심사위원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리투아니아 음악계에 알려진 사람들 세 사람이 심사위원이었다. 노래전문 음악학교가 작고한 리투아니아 유명 성악가인 비루테 알모나이티테(Birute Almonaityte) 이름으로 개최하는 어린이 및 청소년 가요제였다.

음악학교 노래지도 선생님들 사이에는 권위있는 가요제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자기 제자가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선생님들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요가일래는 4-10세까지 어린이 부문에 참가했다. 빌뉴스에 소재한 여러 음악학교 대표로 12명이 참가했다. 요가일래는 두 번째로 노래했다. 요가일래가 노래를 마치자 심사위원들이 웅성거리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어린이들의 노래솜씨도 대단했다.

모든 참가자의 노래가 끝나자 잠시 휴식 후 수상자 발표가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그때서야 단순한 노래공연이 아니라 노래경연임을 알게 되었다.

         ▲ 노래전문 음악학교가 주최한 가요제에서 노래하는 요가일래 (2010년 4월 10일, 빌뉴스)  

여러 날부터 요가일래는 피자타령을 했지만 아내의 절약정책 고수에 빈번히 좌절되었다.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엄마가 요가일래에게 한 마디 했다.

"오늘 너가 상을 타면 피자를 사줄게."
"고마워. 그런데 상을 타면 엄마가 피자를 사고, 상을 안 타면 내 용돈에서 피자를 사도 돼?"
"물론이지."


엄마와 딸 사이에 앉아있던 아빠가 거들었다.
"요가일래, 너, 오늘 상 타도 피자 먹고, 상 안 타도 피자 먹게 되네. 정말 행복한 날이다!"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긴장된 순간에 우리 가족은 이렇게 곧 먹을 피자 생각으로 그 긴장감을 해소했다.

12명 중 수상자는 세 사람이었다. 가장 어린 참가자(5세)에게 주는 상 수상자의 호명이 있었다. 요가일래는 8세이니 해당사항이 없었다. 이어서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상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10세 남자아이가 상을 탔다. 이제 마지막 남은 수상자는 한 사람이었다.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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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을 받는 장면 (왼쪽);                                      ▲ 노래지도 선생님과 함께 (오른쪽)  

예상하지 못했지만 요가일래였다. 노래지도 선생님이 요가일래 볼에 입맞춤함으로써 축하인증샷을 남겼다. 부모보다도 선생님이 요가일래에게 노래를 지도하는 데 더 열성이라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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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