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에 해당되는 글 495건

  1. 2017.02.19 아빠, 돈으로 키우지 않아서 고마워
  2. 2017.02.14 중3 딸의 하루 마무리는 채식 도시락 싸기 2
  3. 2017.02.13 출장에서 돌아오니 딸아이 자판에 한글이 2
  4. 2017.01.31 세뱃돈 안 받겠다는 딸아이의 이유에 가슴이 찡~~~ 2
  5. 2017.01.30 경기장에 놀던 3살 아이, 12년 후 이런 모습으로 2
  6. 2016.12.30 딸아이가 방 밖에 휴대전화를 내놓고 자는 연유 1
  7. 2015.12.29 딸의 감동 선물 - 한 달에 열 가지 좋은 일 할게요 1
  8. 2015.12.21 학교 수업이 지루할 때 이렇게 그림 그려요 1
  9. 2015.11.06 생일 맞은 딸아이 오히려 부모에게 꽃 선물 5
  10. 2015.09.03 김밥으로 도시락, 내가 정말 한국 사람이다 2
  11. 2015.06.08 아버지 날에 받은 쪽지에 피곤함이 사르르 녹아
  12. 2015.04.28 20년 된 아빠 필통 학교 가져간 딸아이의 문자쪽지 1
  13. 2015.03.26 딸 키워서 부모가 처음으로 대접 받은 요리 15
  14. 2015.03.23 생일 선물로 한국 노래 잘하겠다는 딸애, 그 결과는? 14
  15. 2015.03.17 학교 점수로 사랑해, 아니면 아빠 딸로 사랑해? 2
  16. 2015.03.09 등교길 딸이 지은 시, 문자쪽지로 읽어보니 4
  17. 2015.03.02 옆방에 있는 딸아이를 SNS로 설득시키다 2
  18. 2015.02.27 저만치 포옹하던 딸아이 - 우리가 미쳤나봐 6
  19. 2015.02.23 매운 라면 먹으려는 딸아이의 꾀에 웃음 절로
  20. 2015.02.11 시험 만점 딸에게 용돈 주려다 일침을 맞다 8
  21. 2015.02.10 딸의 식생활 변화, 엄마 오늘 고기 사지 마
  22. 2015.01.30 배우는 중이라는 딸에게 더는 화 못낸 사연 9
  23. 2015.01.28 이 한국 선물 하나로 모든 실망을 잠재우다 5
  24. 2015.01.02 딸아이의 소박한 새해 포부에 잠시 뭉클해져 4
  25. 2014.12.19 어린 딸이 아니라 성숙시키는 존재로 다가와 6
  26. 2014.12.17 딸의 아삭아삭 양배추에 아작아작 무가 그리워 4
  27. 2014.11.27 기말고사는 없고, 성적 내용은 복잡다단 1
  28. 2014.10.17 사춘기 딸이 꼽은 세계 8번째 불가사의 3
  29. 2014.09.26 딸 부탁으로 사탕 사주고 칭찬 받았네 2
  30. 2014.09.12 유럽 중학생이 되자 확~ 변한 딸의 생활상 2
요가일래2017. 2. 19. 06:03

최근 유승민 의원의 딸 재산이 화제와 논란이 되었다. 특별한 소득이 없는 대학생이 2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 2억을 모았다고 한다. 물질이 복이라면 참으로 큰 복을 받았다. 어떤 이에게는 평생 모아도 모을 수 없는 액수다.


이 기사를 접하자 며칠 전 중3 딸이 취침 전 찾아와서 한 말이 떠올랐다. 공손히 합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돈으로 나를 키우지 않아서 고마워."

느닷없이 왜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해주는 딸이 고마웠다. 

종종 딸과 하는 대화 한 토막이다.

"아빠가 용돈 좀 줄까?"
"아니. 필요 없어."
"왜?" 
"절약한 용돈이 아직 남아 있어."
"그래도 주고 싶은데."
"괜찮아. 필요 없어."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용돈 정도는 충분하게 줄 수 있는데 딸아이는 필요 이상을 받지 않는다. 이런 자세가 오래 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7. 2. 14. 04:14

리투아니아 학제는 초등 4학년, 중등 4학년, 고등 4학년으로 되어 있다. 작은 딸 요가일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인데 한국 학제로는 중학교 3학년생이다. 

요가일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채소보다 고기를 더 좋아해서 몹시 걱정스러웠다. 아내는 "어떻게 해봐야 되지 않을까?"라고 고민했지만, 나는 "자라나면서 스스로 알게 될 것이야"라고 믿었다.

바로 그때가 왔다. 지난해 5월이었다. 그 동안 예를 들면 닭고기나 소고기가 시장에 나오기 전 가공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나 채식을 권장하는 글 등을 기회 따라서 보여주거나 읽도록 했다. 이런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요가일래는 지난해 5월 하순 여름 방학을 맞아서 3개월 동안 완전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실천했다. 지금까지도 채식을 하고 있다.

학교에 친한 친구 한 명도 채식에 합세했다. 새해부터 이 두 사람은 도시락을 싸간다. 대부분 반 학생들은 매점에서 주로 샌드위치를 사먹는다고 한다. 요가일래와 친구는 채식 도시락을 서로 나눠 먹는다. 

요가일래는 부엌에서 친구와 나눠 먹을 채식 도시락 싸기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어제는 도시락 싸기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엄마나 아빠가 도시락을 싸줄 수 있는데..."
"내가 혼자 할 수 있으니까 혼자 해야지."

야채, 당근, 키위, 귤로 도시락을 쌌다.
  

도시락을 다 싼 후에 냉장고에 넣으면서 요가일래는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이 도시락이 내일 아침까지 여기에서 나를 기다릴거야." 

때가 되니 육식에서 채식으로 
도시락까지 직접 싸가니 
부모의 걱정과 부담이 이렇게 줄어들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7. 2. 13. 05:31

얼마 전 출장 중인데 중학교 3학년생인 요가일래로부터 쪽지가 왔다.  

"아빠 도와줘."
"뭐?"
"내가 지금 내 컴퓨터에 한국어 자판을 했는데 한국 글자 안 나와."
"자판 언어를 한국어로 바꿔라"
"내가 제어판에 갔고 자판에 (한국어를) 추가했어."
"컴퓨터 화면 사진 찍어 보내라."

그 동안 요가일래는 한국어를 발음나는 대로 로마자로 썼다. 이제 스스로 한글로 쓰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듯했다.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바로 요가일래 노트북 영문 자판(키보드)에 한글이 붙여져 있었다.


이후부터 우리는 주로 한글로 쪽지를 주고 받는다. 틀린 표기는 교정해서 다시 쪽지를 보낸다. 



요즘 취미 하나가 늘어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도 딸 덕분에 나도 보게 되었다. 한국어 노트를 마련해서 드라마를 보면서 접하는 새로운 단어를 적기도 한다.  



서너 문장을 써서 검사를 부탁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강요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심해서 하게 된 것이라 그저 감사할 뿐이다. 



방 벽에는 한국 풍경 사진을 붙여놓았다. 



"좋은 사진이 붙여져 있네."
"이 방은 한국인이 사는 방이라 한국 풍경이 있어야 돼."
"나중에 리투아니아에 이런 집을 하나 지으면 좋겠다."
"꿈을 가져야지."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가니 한국어를 더 잘 하자."
"알겠습니다. 전하~~~!"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7. 1. 31. 06:24

해외에 살다보니 설다운 설을 보내지 못해 아쉽다.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고 또 자녀나 조카들로부터 세배를 받고...  

* 리투아니아 드루스키닌카이 한 호텔의 2017년 정유년 장식 

* 리투아니아 드루스키닌카이 거리 2017년 정유년 장식 

아침에 일어난 식구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삿말을 서로 주고 받은 것이 우리 집 설날분위기의 정점이었다. 

이날 잠자기 전 딸아이가 인사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래. 그런데 아빠가 아침에 세뱃돈을 잊어버렸다. 세뱃돈 줄게."
"아니야. 세뱃돈 필요없어."
"왜?"
"아빠가 내 인생을 주었잖아. 그것이 최고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것만해도 고마운데 용돈이나 세뱃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가슴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평생 부모에 대한 그런 마음을 딸아이가 오래 오래 간직하면서 살아가길 바래본다. "바위섬" 부르는 딸아이 영상 하나도 첨부합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7. 1. 30. 07:08

2017년 설날을 맞아서 우리 가족에게 기쁜 일이 하나 있었다. 딸아이 요가일래가 리투아니아를 대표해 경기에 앞서 리투아니아 애국가를 불렸다. 

경기는 풋살이다. 풋살(Futsal)은 국제축구연맹(FIFA)가 공인한 실내 축구의 한 형태이다. 문지기를 포함해 다섯명이 뛴다. 유럽축구연맹(UEFA) 2018년 풋살 챔피언쉽 본선 출전을 위한 예선 경기가 1월 27일에서 29일까지 리투아니아 빌뉴스 시에멘스 아레나(Siemens Arena) 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경기장은 12500명 수용으로 리투아니아에서 규모가 큰 대회나 행사가 열린다.  

우리 가족의 공용어인 에스페란토 세계대회가 2005년 7월에 열린 곳이기도 하다. 

▲ 2005년 시에멘스 아레나(Siemens Arena)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

▲ 2005년 시에멘스 아레나(Siemens Arena) 경기장에서 자멘호프 손자 잘레스키

시에멘스 아레나(Siemens Arena) 경기장에서 3살 요가일래 - 2005년

▲ 시에멘스 아레나(Siemens Arena) 경기장에서 15살 요가일래 - 2017년

그때 요가일래는 3살 아이였다. 개막식이 열리는 경기장 빈 자리에 앉아서 어른들이 하는 행사를 편안하게 내려다보기도 하고 혼자 뛰어다니면서 놀기도 했다.

세월은 여지없이 12년이 지나갔다. 1월 27일과 29일 그 옛날 놀던 그 경기장을 요가일래가 다시 찾았다. 이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27일은 안도라와 리투아니아, 29일은 프랑스와 리투아니아가 풋살 경기를 펼쳤다. 경기에 앞서 상대국 애국가가 컴퓨터 파일에서 흘러나왔고 이어서 리투아니아 애국가는 요가일래가 불렸다.


* 리투아니아-안도라 풋살 경기에 앞서 리투아니아 애국가를 부르는 요가일래

리투아니아 애국가 가사 (초벌 번역)
리투아니아 우리의 조국, 당신은 영웅들의 땅
과거로부터 당신의 아들들이 당신의 힘을 얻게 하소서
아이들이 덕행의 길만 가도록
당신의 번영과 인류의 선을 위해 일하도록
리투아니아에 태양이 어둠을 물리치고 광명과 진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도록
리투아니아를 위한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활활 타오도록
이 나라의 이름으로 일체감이 꽃피도록

리투아니아를 대표해서 UEFA 국제 경기에서 리투아니아 애국가를 부르는 요가일래의 모습에 천진무구하게 이 경기장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3살 아이 때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성장, 변화... 아이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 정성으로 잘 키우는 수밖에 없겠다. 

"나중에 이 경기장에서 한국과 리투아니아가 경기를 하면 좋겠다"
"왜?"
"한국 애국가도 부르고 리투아니아 애국가도 부를 수 있으니까."
"보장은 없지만 그럴 기회가 오면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6. 12. 30. 08:59

11월 중순부터 가급적이면 휴대전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계기는 휴대전화를 통신회사 수리소에 맡긴 것이다.  그 전에는 집에서도 휴대전화를 거의 손에 놓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컴퓨터 옆에 놓아두고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사회교제망을 휴대폰으로 사용했다. 잠에 떨어지기 직전까지도 침대에서 휴대전화기를 뉴스 등을 읽어야 했다.

그런데 휴대전화기가 수리소에 있는 동안 처음에는 없어서 아주 불편했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없는 것에 차차 익숙해졌다. 자기 전에는 책을 읽고, 잠시 쉴 때에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12월 중순 통신회사로부터 새 전화기 삼성 갤럭시 S7 엣지로 교체 받은 이후부터는 무선뿐만 아니라 아예 전화기 자체를 꺼서 작업방에 놓고 침실로 간다.

3일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딸아이의 하얀 휴대전화기가 딸아이 방문 앞 복도에 놓여있었다. 휴대전화기 전원도 꺼져 있었다. 


이틀 전에도 역시 방문 앞 복도에 휴대전화기가 놓여있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쉽게 알 수가 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이렇게 아빠따라 자기 전에 휴대전화기를 방 밖에 놓고 자는 것을 스스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딸아이가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아무쪼록 우리 집 세 식구 모두가 이 습관에 익숙해져 앞으로도 쭉 이어가면 좋겠다. 새해부턴 아내도 동참하길 기대해본다. 아래는 아내의 기타 반주에 노래하는 딸아이 영상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12. 29. 08:49

12월의 상징어 중 하나가 선물이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어린 아이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용돈으로 특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한다. 이 선물을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놓거나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식사 후 서로 교환한다. 

한편 아직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은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부탁하는 편지를 써서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놓는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선물유무를 확인한다. 우리 부부는 여러 해 전부터 따로 선물을 교환하지 않고 가족 전체를 위해 평소에는 비싸서 사기가 부담스러운 생활용품 등을 구입해 왔다.

하지만 두 딸과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 올해 딸아이로부터 무슨 선물을 받을까 궁금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생이니 그동안 모아놓은 용돈도 꽤 된다.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식사에 12가지 음식을 먹은 후 딸아이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조그마한 종이곽이었다. 누런 상자종이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색종이를 그 위에 붙였다. 


과연 저 안에 무슨 선물이 들어있을까?
열어보니 이렇게 써여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
    모든 것에 감사 드리고, 계신다는 것에 감사 드립니다.
    행운, 건강, 사랑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두 분을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있을 법 선물 물건은 없고, 누런 종이에 색종이를 붙인 것만이 10장 있었다.
세상에 이런 선물도 다 있네라면서 하나하나 꺼내보려는 순간 딸아이가 안 된다고 했다.

"여기 10장이 있는데 한 달 동안 한 번에 딱 한 장만 빼야 된다."
"그러면 뭐가 있는데?"
"일단 하나만 빼봐."


이렇게 빼낸 것이 아래와 같다.

     "무엇이든지 부탁하십시오. (제가 들어드리겠어요)"


돈 한 푼 쓰지 않고, 폐품을 재활용하고, 선물 기대감을 한 달 동안 지속시키고, 더우기 10가지 선행까지 하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한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설사 딸바보 소리 들어도 귀가 즐거울 수밖에 없겠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12. 21. 08:11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한 명은 만 13살이다.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생이다. 그는 늘 손목에 다양한 무늬를 하고 있다. 지난 주 수업 내용이 취미였다.

"취미가 뭐예요?"
"그리기이에요."
"받침이 없을 때에는 '-이에요'가 아니라 '-예요'입니다."
"아~~~"
"취미가 그리기라서 손에 그림이?!"
"아, 이거요... 수업이 지루해 할 일이 없을 때 이렇게 그려요."
"선생님이 보면 뭐라고 하지 않아요?"
"아니요, 뭐라고 하지 않아요."
"한국어에서는 이럴 때 '아니요, 뭐라고 하지 않아요'가 아니라 '예, 뭐라고 하지 않아요'입니다."


학창시절 지루할 때 책에 참 낙서를 많이 했다.
그런데 리투아니아 학생들은 학년을 마치면 책을 돌려주어야 하기 책에 낙서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수업에 흥미가 없을 때 손이나 손목, 팔 등에 낙서를 한다.

며칠 전 비슷한 또래인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손뿐만 아니라 양팔에도 그려져 있었다.


"오늘 수업 정말 재미 없는가봐?"
"맞아."

그리고 보니 다행히 1시간 반이나 지속되는 한국어 수업에 아직 이렇게 그리는 이를 본 적이 없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11. 6. 10:08

어제는 딸아이 요가일래의 생일이었다. 이제 만 14살이 되었다. 리투아니아 학제(4,4,4)로는 중학교 마지막 학년생이고, 한국 학제(6,3,3)로는 중학교 2학년생이다. 아침에 미역국이라도 먹여서 학교에 보내야 할 법하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아침에 같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등교하기 위해 딸아이가 집을 나갈 때 일어나 아파트 현관문을 잠그기만 하면 된다. 아침밥도 간단하지만 자기가 챙겨 먹는다.

"우리가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줄 수 있는데..."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제 내가 혼자 할 수 있잖아. 그 동안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었으니까 이제부터는 그냥 늦게까지 잘 주무세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찡하다. 몸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마음도 쑥쑥 자라서 아빠가 기분이 좋다.ㅎㅎㅎ"
"고마워."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요가일래는 노란꽃 꽃 한 송이를 손에 쥐고 왔다.


"이거 내가 산 선물이야. 돈이 없어 한 송이밖에 못 샀어."
"우리가 꽃 선물을 해야 하는데..."
"아니야, 아빠와 엄마가 없으면 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없잖아. 그래서 내가 꽃 선물을 해야 돼."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엄마와 상의해 좋은 선물을 할게."
"그래, 고마워."

그리고 반 친구들이 선물한 사탕 상자을 선물했다.

 

아내는 낮에 학교에서 돌아올 딸아이를 위해 미역국을 끓였다.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 놓았으니까 맛있게 점심을 먹어."
"우와~~~ 생일에 미역국을 먹으니까 내가 정말 한국 사람이다."

저녁에 대학교에서 강의를 마친 후 귀가하는 길에 갈등꺼리가 하나 생겼다.
'아, 배가 고프니, 빨리 집으로 갈까', 
'아니 그래도 큰가게에 들러 꽃 선물을 사서 집에 가자'
결국 평소 15분 귀가 소요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마음이 즐거우니 걸음도 가벼웠다.
장미 15송이를 사고자 했지만, 카드결제가 불가해 소지한 현금을 다 주고 3송이만 샀다.


"자, 이제 우리가 꽃 선물할 차례다. 축하해."
"정말 예쁘다. 고마워~~~"

자기가 우리에게 주는 꽃 선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더니 막상 꽃 선물을 받드니 아주 좋아했다. 더 먼 길을 택하기를 잘 했다. 자기 생일에 부모에게 꽃을 선물하는 어린 딸아이의 마음씀이 기특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9. 3. 05:31

발트3국 출장으로 8월 중순부터 거의 집을 비웠다. 다행히 학년이 시작되는 9월 1일 가족과 함께 했다. 리가에서 저녁 버스를 타고 4시간 걸려 빌뉴스 집에 밤 10시경 도착하니 전기밥솥에 솔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분명히 리가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는데 밥을 해놓다니... 잠시 후 딸아이가 부엌으로 들어와 음식을 준비하려고 했다.

"아빠, 저녁 먹었는데."
"알아."
"건데 왜 지금 늦은 시간에 음식을 하니?"
"이제 학교에서 밥을 사먹지 않고 도시락을 사서 가져가려고. 김밥해서 가져갈거야."
"네가 직접?"
"그래. 엄마가 조금 도와주고 내가 할거야."


6년 전 초등학교 2학년 때 도시락으로 가져간 김밥이 놀림감이 되었다는 글이 떠올랐다.  

그땐 아빠가 만들어주었는데,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은 이렇게 스스로 김밥을 사가지고 학교에 가져가겠다고 한다. 지나가면 역시 세월은 참 빠르다. 김 위에 밥을 얹고 그 위에 계란말이, 오이 등을 얹으면서 딸아이의 말은 이어졌다.


"아빠, 내가 정말 한국인인가봐."
"왜?"
"김밥을 좋아하고 이렇게 김밥을 만들고 있으니까, 내가 정말 한국 사람이다."
"그래?"
"아버님, 감사합니다."
"왜?"
"나를 한국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으니 정말 고맙지."
"아이구... 내일 아침에 아빠가 깨워줄게."

책장에는 벌써 중학교 2학년 시간표가 붙여져 있다. 하루 수업수는 6-7시간이다.


학교 사물함에 놓을 물건을 보니 빗, 머리끈, 비상 간식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공부와 학교 생활이 재미있다고 하는 딸아이의 마음이 이번 학년 끝까지 쭉 이어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6. 8. 07:48

벌써 일주일째 집을 떠나 이 도시 저 도시로 돌아다니고 있다. 관광안내사 일을 하면서 올해 들어 이번이 가장 좋은 날씨다. 아직 비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고, 낮 온도는 15도-25도로 쾌적하다. 하지만 하루에 보통 만 5천보를 걸어다니면서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다.

* 라트비아 리가의 검은 머리 전당과 베드로 성당


* 라트비아 리가의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


* 에스토니아 타르투 일몰과 요한 성당


어제는 이런 피로감이 딸아이가 보낸 쪽지로 사르르 녹았다. 6월 첫 번째 일요일은 아버지 날이다. 한국은 어버이날로 같은 날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를 되새기지만, 유럽의 많은 나라는 따로 정해져 있다. 어머니날은 5월 첫 번째 일요일이다. 어머니 날은 모두가 기억하고 기념하지만, 아버지 날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 날은 잊고 산다. 

인터넷이 되는 라트비아 리가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페이스북에 접속해보니 딸아이 요가일래가 보낸 쪽지가 있었다. 


로마자를 쓴 한국어를 한글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 아빠 날이다... 우리랑 같이 있어서 고마워.. 제일 제일 사랑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같이 있어서"라는 말이 감정을 뭉클하게 했다. 건강, 행복, 부, 소원성취 등 수많은 축하의 단어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같이 있어서"라는 이 표현이 최상으로 다가왔다. 

'그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같이 있다! 맞아.'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4. 28. 05:50

일요일부터 에스토니아 출장 중이다. 집을 떠나온 후 책상컴퓨터는 딸아이 몫이다. 성능이 좋아 놀이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놀이만 하면 될 것인데 그만 책상에 있는 오래된 아빠 필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문자쪽지를 보냈다. 


아빠 이 필통 빌려줘도 돼?


20년쯤 된 이 필통을 보내더니 탐이 난 듯했다. 


이거 쓸 때 아빠 생각 난다.


월요일 처음으로 학교에 이 필통을 가져갔다. 그리고 딸아이는 출장 중인 아빠에게 페이스북으로 쪽지를 보냈다. 비록 철자가 틀린 쪽지이지만 아빠된 재미를 솔솔하게 느끼기엔 충분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3. 26. 08:39

"아, 우리 딸 언제 다 커나?" 
힘든 육아 시절에 가장 흔히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 중 하나다. 그땐 같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데 요즘 13살 딸아이를 보니 너무 짧게 느껴진다. 이러다가 4-5년 지나 큰딸처럼 외국에 나가 유학이라도 한다면 함께 한 집에서 생활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학교에서 다녀온 딸아이가 자기가 점심을 만들어 대접하겠다고 했다.
"오늘 점심은 내가 할게."
"뭘 할거야?"
"마카로니."
"네가 할 수 있어?"
"한번 지켜봐."

그 동안 샌드위치 정도 딸아이가 직접 만들어 얻어 먹은 적은 있었지만, 요리를 대접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근래에 학교 요리 수업에서 배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눈물 나오게 하는 양파도 직접 썰었다,


버섯을 어렵게 써는 모습을 보니 안스러웠다. 혹시나 칼에 베일까 제일 걱정 되었다.
"아빠가 도와줄까?"
"아니. 내가 다 할거야."
"칼 조심해라."
"알아.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야. 그런 말 이젠 하지마. 나를 믿어줘."
"알았다."


한쪽 불에서는 썰은 채소를 볶고, 다른쪽 불에서는 마카로니를 삶고... 
소스도 능숙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집 부엌에 새로운 요리사 탄생!!!

영국에 있는 있는 언니가 스카이프로 요가일래의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만든 요리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맛은?

딸 키워 처음 대접 받은 요리 맛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맛일 수밖에... 

"처음이라 소스의 양을 잘 몰라서 부족하다. 그렇지?"
"이 정도로도 충분해."

다 먹은 후 딸아이는 설겆이까지 말끔하게 마쳤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요리 부탁해. 오늘 정말 배부르게 잘 먹었다."
"고마워~~~ 맛이 없는 것 같았는데 잘 먹어줘서."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3. 23. 08:02

해마다 누구에게 찾아오는 의미 있는 날이 하나 있다. 바로 생일이다. 일전에 크로아티아 친구과 대화하면서 1년에 내 생일이 3번이다라고 하니 몹시 놀라워했다. 두 번도 아니고 3번이라니... 설명을 해주니 참 재미있어 했다.

먼저 여권상 기재된 태어난 해의 음력 생일이다. 바로 이날 생년월일이 공개된 사회교제망(SNS) 친구들로 가장 많이 축하를 받는다. 더우기 리투아니아 현지인 친구들은 이날을 쉽게 기억한다. 리투아니아 국가 재건일인 국경일이 이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음력 생일인데 이는 해마다 달라진다. 서양력을 사용하고 있는 유럽이라 음력을 일상에서는 거의 잊고 산다. 셋째는 태어난 해의 양력 생일이다. 

축하받을 일이 세 번이라 많을 것 같으나, 실제로는 생일 자체를 별다르게 찾지 않으니 오히려 받을 일이 없게 된 셈이다. 식구들이 손님들을 초대해 잘 챙겨준다고 하면 양력일에 하자고 한다. 양력일이 오면 벌써 여권상 생일이 지났는데 내년에 하자고 한다.

생일 축하 답례로 꼬냑을 준비했으나 도로 가져와 
이 세 생일 중 태어난 해의 양력 생일을 좋아한다. 바로 춘분이기 때문이다. 봄기운 받아 늘 생생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마침 이날 현지인 친구들과 탁구 모임이 있었다. 그냥 가려하는데 아내가 가방 속에 꼬냑을 한 병 넣어주었다.

"오늘 모임에서 누군가 당신 생일을 알아보고 축하하면 그 답례로 이걸 나눠 마셔라."
"아무도 축하하지 않으면?"
"그냥 도로 가져와."
"내가 먼저 오늘 내 생일이니 한잔 하자라고 하면 안 되나?"
"그러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난 한국 사람인데."
"여긴 리투아니아잖아."

아내 말처럼 대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자기 것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자기 자신이 먼저 나서지를 않는다.

돌 선물은 은 숟가락
마침 이날 교민 친구 딸이 첫돌을 맞아 초대를 받았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선물 선택에 평소 많은 고민을 하는 리투아니아 아내는 돌 선물로 무엇을 살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주로 은 숟가락을 선물한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돌 선물로 은 숟가락


이 은 숟가락으로 먹는 것이 늘 풍족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돌케익이 두 개였다. 하나는 친구 딸의 첫돌 케익 ,다른 하나는 내 생일 케익으로 친구 아내가 배려해주었다. 이렇게 느닷없이 생일 케익과 축노래까지 받게 되었다.

생일 선물로 한국 노래 잘할게
이날 오후 딸아이가 음악학교 노래 경연 대회에 나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왜 생일을 안 하는데?"
"생일이 어제 같으니까 안 하지."
"그게 뭔데?"
"어제는 생일이 아니었잖아. 그냥 평범한 날이었잖아. 오늘이 지나가면 어제가 되잖아. 낳아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특히 하루 종일 착한 마음으로 지내면 되지."
"그래 알았다. 내가 오늘 한국 노래 잘 부르는 것으로 아빠 생일 선물을 할게."

* 한국 노래 잘하겠다라는 것으로 생일 선물한 딸아이 요가일래


변성기라는 핑계로 평소 집에서 노래 연습을 안 하던 딸아이가 노래 경연 대회에 나가 한국 노래를 잘하겠다고 하니 의외했다. 

"그래, 오늘 아빠 생일 기운으로 어디 한번 잘해봐라."
"고마워."

아래는 아빠 생일에 노래 경연 대회(참가자: 리투아니아 노래 1곡, 외국 노래 1곡)에서 부른 한국 노래 "바위섬" 영상이다.  



저녁 무렵 선생님이 전화로 결과를 알려왔다. 딸아이 요가일래가 부른 "바위섬"이 "가장 아름다운 외국 노래"로 선정되었다고 했다. 정말 좋은 생일 선물이었다. 아내는 "당신이 탁구 모임에 가니까 내가 영상을 잘 찍는 것으로 생일 선물을 하겠다"고 했다. 촬영물 결과를 보더니 "무대 위 딸아이가 심리적으로 떨 것을 내가 대신 촬영하면서 떨어주었다."고 웃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3. 17. 07:42

유럽 리투아니아에 요즘 날씨가 맑아 기분마저 좋아지고 있다. 마침내 하늘이 잿빛 구름을 걷어내고 파란 자기 실체를 드러내는 날이 잦아지고 있다. 이렇게 하늘도 완연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교 1학년생 딸아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기분이 엄청 좋았다.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왜 기분이 좋니?"
"오늘 수학 시험 아주 잘 봤어. 만점 받을 거야."
"지난주에 보고 또 수학 시험이 있었어?"
"여러 명이 다시 시험 봤어."

사연인즉 이렇다.

지지난해까지만 해도 딸아이는 수학을 아주 힘들어했지만 지난해부터 수학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집에서도 거의 부모 도움 없이도 혼자 쉽게 잘했다. 이 덕분에 반에서 성적도 상위권이다. 

3월 초순까지 1등 하던 딸아이는 중순이 되자 20등으로 내려앉았다. 어떻게 짧은 기간에 1등이 20등이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평가를 하는데 모두가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3월 전체 과목 평균 성적 90점 이상을 받은 학생이 29명중 무려 22명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시험 번수가 학생마다 다르다. 어떤 학생은 5번이고, 어떤 학생은 13번이다. 어떤 학생은 5번 시험 쳐서 평균 점수 9.8을 받았고, 어떤 학생은 13번 시험 쳐서 9.5를 받았다. 등위는 전자 학생이 더 위에 있다. 

지난주 백분율를 공부했는데 딸아이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시험 전날 자기 분에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공부했다.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으나,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반밖에 받지 못했다. 그래서 반에서 등수가 급격히 하락했다.

부모 입장에선 쭉 최상위권으로 그대로 끝까지 가주었으면 좋았겠는데 그렇하지 못해 아쉬웠다. 성적을 인터넷으로 확인한 후 한마디 살짝 했다. 

"네가 반에서 하위권으로 내려가 마음이 좀 아프네."
"나도 마찬가지야."
"이제 텔레비젼도 덜 보고, 인터넷도 덜 하고, 취미생활도 덜 하고..."
"아빠는 학교 점수로 날 사랑해? 아니면 아빠 딸로서 날 사랑해?"
"그거야, 아빠 딸로서 사랑하지."
"아빠 딸로서 날 사랑하면 더 이상 점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 내가 나중에 좋은 사람이 될 테니까 지금 점수가 중요하지 않아."
"그래, 점수로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않을 게. 하지만 그래도 좋으면 좋지..."

재시험을 보다
지난주 수학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못 받은 학생이 비교적 많았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이는 목적이 성적으로 학생 순위를 매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 습득을 점검하는 데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지난번 나쁜 점수는 기록에서 삭제된다.

"아빠는 학교 점수로 날 사랑해? 아니면 아빠 딸로서 날 사랑해?"라는 딸아이의 말이 오래도록 내 귀에 남을 것이다. 이날 점수가 낮다고 크게 야단치지 않기를 참 잘했다. 그렇다가는 딸에게 깊은 상처만 줄었을 법하다. 

* 요즘 실팔찌 만들기에 푹 빠진 딸아이 요가일래


공부가 전부인 경쟁 사회에 익숙해진 옛 버릇이 나도 모르게 그날 튀어나와버렸다. 덕분에 딸아이로부터 한 수 배우게 되었다. 어제도 딸아이는 한국 방송을 보면서 공부보다 실팔찌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3. 9. 13:05

겨울 내내 거의 오지 않던 눈이 3월 4일 수요일 밤에 엄청 내렸다. 이번 겨울은 유럽에서 25여년 살면서 눈이 가장 적은 겨울이고, 날씨가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그래서 아파트 뜰에는 벌써 벛꽃나무와 사과나무와 새싹을 튀우고 있었다. 그런덴 이번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인 듯 이날 폭설이 내렸다.

* 눈에 파뭏힌 우리 집 뜰의 사과나무

목요일 아침 13살 딸아이 요가일래는 혼자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학교로 갔다. 얼마 후 아내의 휴대전화로 문자쪽지가 날라왔다.


내용인즉 학교 가는 길에 시상이 떠올라서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보내준 시를 잘 읽어봤다. 마음에 들었어."
"그래?!"
"그런데 학교 갈 때는 시 쓰는 것도 좋지만 사방으로 조심해서 가야지."
"내가 앞을 잘 보면서 문자를 쳤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리투아니아어로 쓴 원작시를 한국어로 한번 번역해보았다.
13살 딸아이가 모처럼 내린 눈에 어떤 느낌을 받아 시를 썼을까... 


OBELAITE


Ak, vargšele obelaite,
Mūsų kiemo karailaite.

Negailestinga ta žiema,
Be saiko skriausdama tave. 


Buvo išdygę - mieli ragiukai 

Ir maži maži pumpuriukai. 


O ji vis metė savo sniegą, 

Tad nušalai, mieloji. 


Šią vasarą nepamaitinsi, 

Saldžiarūgščiais obuoliais. 


Tai žaismas žmonių jausmais. 


Tas sniegas buvo kaip druska 

Berta ant mano kruvinos žaizdos. 

사과나무


아, 불쌍한 사과나무,

우리 뜰의 여왕이여.


무자비한 겨울이 너를 

절제 없이 손상시켰네.


귀여운 뿔들과 작고 작은

새싹들이 돋아났는데


겨울이 그만 눈을 던졌고

귀염이 네가 얼어버렸네.


이번 여름 달고 신 사과를

먹일 수가 없게 되었네.


이는 사람의 느낌과 장난질.


눈은 내 피나는 상처에 

뿌려진 소금과 같았구나.


나 같으면 아침 등교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간만에 내린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면서 기분 좋게 갔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딸아이는 눈 속에 파뭏혀버린 사과나무의 새싹이 얼게 된 것에 마음이 많이 아파서 이런 시를 쓰게 되었다. 

나타난 것에 대한 기쁨보다 감춰진 것에 대한 슬픔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인생에서는 필요할 때도 있겠다. 이런 마음을 자아낸 딸아이가 심신이 다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3. 2. 07:24

같은 집 안에서 바로 옆방에 있는 아내나 딸아이에게도 말 대신에 SNS을 통해 대화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각자 방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으니 굳이 가서 말하는 것보다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페로 원하는 사항을 말하는 것이 더 편하다. 특히 감기로 독방을 쓰고 있는 요즈음은 그 빈도가 더하다. 


* 2007년 6살부터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딸아이는 벌써 이렇게 커버렸네요. ㅎㅎㅎ


토요일 감기 증상이 되살아나려고 하는 아내가 딸에게 함께 자자고 제안하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통해 딸과 문자 대화를 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13살 딸아이는 아직 한글로 써는 것이 능숙하지 못해 한국어를 발음나는 대로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다. 그래서 붉은 글씨로 이를 옮겨놓았다. 


21 hours ago
뭐 하니?
ebay
이베이
hohoho
호호호
grigu gagcon
그리고 개콘 (봐)
appann
아빤?
오늘 혼자 자라. 엄마가 또 아플라한다.
아빠는 인터넷 하고 있지.
gnde apaciorom anapadziana
건데 (엄마가) 아빠처럼 안 아프잖아
nega honca dziagi ciom isanhe
내가 혼자 자기 처음 이상해
그래도 혼자 자라.
감기 걸리면 안 된다.
nega gamgidro sipo
내가 감기 들고 싶어
아악악 안 돼°°°°°
건강이 최고야....
mola mola
몰라 몰라
알아야지... 아뭏든 건강이 최고야... 아빠 기침 하는 소리 들어봤지? 정말 안 좋아...
madza.......
맞아
ne....... honcia dzalkejo.......
예.... 혼자 잘게요.
만세!!! 아빠 말을 들어서 고마워~~~
ani, apaga nahante gariociodziuoso gomawojo.
아니, 아빠가 나한테 
가르쳐줘서 고마워

Chat conversation end


마지막 딸아이의 말이 인상적이라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아빠 말을 들어서 고맙다고 하니 딸아이는 자기한테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이처럼 서로가 고마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개인이든 가정이든 평화롭고 화목하겠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2. 27. 06:06

이번 주말이 지나면 벌써 봄계절이 시작된다. 25년 동안 유럽에 살면서 이번 겨울만큼 눈이 적고 춥지 않은 때는 없었다.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해마다 한 두 번 고생시키던 감기도 2월 중순까지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하다가 이번 겨울에 무감기 신기록을 세울 것 같았다. 같은 방에 자는 아내가 감기에 들었지만, 거의 다 나을 때까지도 나에게 옮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목이 조금씩 아파오더니 콧물, 기침 등으로 이어졌다. 한 집에 사는 식구라 어쩔 수가 없다. ㅎㅎㅎ 함께 사는 딸아이 요가일래는 1월 초순에 이미 감기를 겪었다. 

나는 감기에 들면 가급적이면 철저히 폐쇄적으로 생활하려고 한다. 방을 따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 오거나 내 몸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것이 딸에게 가장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침 인사, 낮 인사, 저녁 인사 등 하루에도 여러 번 포옹으로 한다.

어느 순간 내가 감기에 든 것을 잊어버린 딸아이는 습관적으로 포옹하려고 다가온다.

"안 돼!!!! 아빠 감기 들었어."
"정말 안고 싶어."
"아빠가 감기 나으면 많이 안아줄게."

저만치 떨어져 있던 딸아이는 말한다. 
"아빠, 두 팔을 벌려라. 나도 두 팔을 벌린다. 자 , 우리 포옹하자."
"그래, 우리 포옹했다. 잘 자라~~~"
"아빠, 우리가 이렇게 포옹하다니 정말 미쳐나봐 ㅎㅎㅎ"

어제는 요가일래가 다니는 음악학교에서 노래 전공자 독창과 합장 공연이 있었다. 유명 작곡가를 초대하고, 학생들이 그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행사였다. 


"오늘 아빠가 촬영하러 갈까?"
"와야지. 내가 노래 잘 부를거야."
"그래. 알았다."

이렇게 해서 공연 시간에 학교에 가서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노래는 리투아니아어이고, 제목은 "노래가 바람 속에 소리난다"이다.
 


노래가 끝난 후 잘 했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으나 아직 콧물과 기침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축하하고 미안해. 아빠가 다 나으면 왕창 안아줄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2. 23. 07:31

올해는 한국을 떠나 산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니 한 가지 생활 변화를 꼽으라면 바로 재치기이다. 이제는 라면을 끓일 때나 김치를 담글 때나 늘 재치기한다. 심지어 고춧가루가 든 매운 음식을 먹을 때도 재치기한다. 바로 매운 고춧가루가 코를 자극해서 이를 유발한다. 한국 방문시 식탁에선 재치기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매운 라면은 외국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별미 중 별미일 것이다. 아버지만 한국인인 13살 딸아이요가일래는 라면을 좋아하고 잘 먹기 때문에 자기도 완전한 한국인이라고 우겨댄다.

똑 같은 방법으로 엄마가 끓이는 라면은 맛이 없고, 아빠가 끓이는 라면이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라면 요리는 늘 내 몫이다. 매울 것 같아 라면스프를 다 넣지 않고 끓여주면 금방 반응이 나온다. 

"아빠, 난 매운 라면을 좋아해. 이번에도 스프 다 안 넣었지?"
"그래"
"앞으로 다 넣어줘."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아주 드물게 라면을 끓여 준다. 지난 금요일 기특하게도 딸아이는 손님 맞이를 위해 큼직한 거실 창문 세 개를 딱는 중이었다. 

"아빠, 오늘 라면 끓여줘."
"매운 것 자주 먹으면 안 좋아."
"반드시 해줘야 돼."
"왜?"
"내가 라면을 먹으면 목 구멍이 따뜻해지고 노래가 더 잘 나와."
"ㅎㅎㅎㅎ 라면을 먹으면 노래를 더 잘 부른다고?! 그럼 오늘 해줘야지."
"내가 음악학교에 갈 때마다 라면을 끓어줘."


라면 꼭 먹으려는 이유를 이날은 노래 부르기에서 찾았다.
 
라면과 노래 부르기라... 

요가일래의 주장대로 정말 매운 라면을 먹으면 목이 트이고 노래를 더 잘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이 된다면 "노래방 가기 전 반드시 라면을 드세요"라는 라면광고가 나올 법하다. ㅎㅎㅎ  

한편 요즘에 요가일래는 매니큐어를 즐겨한다.
"매니규어 안 하면 안 되나?"
"내 친구들이 전부 하고 학교에 와."
"손톱이 숨을 쉰다고 하는데."
"아빠는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도 사랑해야지."
"네 손톱은 매니큐어 하지 않아도 예뻐."
"고마운데 그건 아빠 생각이야. 요즘 검은색이 내 스타일이야." 

이렇게 벌써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딸아이에게 하지 말라고만 계속 할 수 없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2. 11. 06:33

리투아니아 학교는 시도 때도 없이 시험이 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따로 없다. 과목 선생님이 원하는 시간에 시험을 치른다.

좋은 점은 있다. 벼락치기 공부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배운 바를 확인한다. 시험범위가 좁으니 아이들에게 부담이 덜하다. 부담없는(?) 시험이 학교 생활의 일상인 셈이다.       

학업에 대한 평가에는 크게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있다. 상대평가는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그가 속한 반(집단)의 결과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1개 학급에서 수 10%, 우 20%, 미 40%, 양 20%, 가 10%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절대평가는 집단의 결과는 달리 학생 개개인이 설정한 목표에 어느 정도를 달성했는 지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이에 따르면 학생 모두가 '수'를 받을 수 있다. 

리투아니아 학교는 상대평가제를 취하고 있다. 자녀의 학업성적 확인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7학년생(중학교 1학년생)인 딸아이의 학급의 1학기 종합성적을 살펴보자.


'수'에 해당하는 전과목 평균 9점 이상 학생수는 29명 중 13명이다. '우'에 해당하는 8점 이상 학생수는 8명이다. 이 둘을 합치면 21명이다. 2/3가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다. 


2월부터는 2학기이다. 지금껏 종합성적에서 9점 이상 학생수는 10명이다.     
   


1학기보다 성적이 다섯 단계나 뛰어올랐다. 부모로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은 시험이 없나?"
"물리 시험이 있어."
"너는 물리가 좀 약하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것이 쉽게 이해돼."
"만점 받으면 아빠가 돈을 줄게."
"싫어."
"왜?"
"내가 돈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공부하잖아. 내가 잘 알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니까."
"아빠가 어렸을 때 100점 맞은 시험지를 보여주면 할아버지가 과자 사먹으라고 돈을 주었지. 돈 받는 재미가 솔솔했지. ㅎㅎㅎ"
"난 돈 필요 없어."
"그래 너 말이 맞다. 돈 받으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지식을 얻는 것이니까 열심히 해라. 약한 물리에서 만점을 받아 네 평균점수가 올라가면 참 좋겠다. 이대로 쭉 가면 최고로 좋은 고등학교에서도 갈 수 있겠다."
"싫어."
"왜?"
"그긴 경쟁이 너무 심해."
"그래도 가면 좋지 않을까? 좋은 대학교에 갈 가능성이 높잖아."
"알았어. 재미있게 공부해볼게."

잠들기 전 딸아이는 인사하면서 덧붙였다.
"오늘 아빠와 얘기를 많이 해서 참 좋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2. 10. 08:25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 2주일이 지났다. 처음엔 시차 부적응으로 새벽 3-5시에 일어났다. 이제 평소처럼 7시경에 일어나게 되었다. 며칠 전 부엌에는 불이 훤했다.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7학년(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 딸아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부엌문을 똑똑 두드렀다.

"들어와."

접시에는 빵과 소시지가 아니라 사과 두 쪽이 있었다. 

"오늘 아침 식사는 사과니?"
"그래. 사과 한 개를 네 쪽으로 짤랐어. 벌써 배가 부르네. 아빠가 한 쪽 먹어라."
"배가 고플텐데. 아니 괜찮아."
"우와, 이제 아빠 딸이 과일로 밥을 먹네. 대단하다. 한번 결심한 바를 이렇게 실행하는 것을 보니 너는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럼그럼 ㅎㅎㅎ"
 
딸아이를 키우면서 늘 마음 속 걱정 되는 바가 하나 있었다. 바로 고기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과자 군것질 대신 간식으로도 고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고기는 훈제고기나 훈제소시지다. 채소와 함께 먹기를 권하지만 채소는 고기맛을 떨어지게 한다고 주장하면서 듣지를 않았다.

구워 먹는 고기 중에는 삼겹살을 가장 좋아한다.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자기도 한국인임을 느끼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삼겹살을 구워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모질 지가 못하다. 육식의 편식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를 억지로 딸아이에게 주입시키고 싶지 않다. '지금은 어리니 육식을 좋아하지만 크면 좀 스스로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위안 삼기로 했다. 종종 소나 돼지 등을 잡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참혹한 모습을 보기 싫다면서 거부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딸아이의 식생활이 확 바꿨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딸아이에게 일어났다.



1월 23일 한국에서 돌아온 후 그 다음날 가게에서 돌아온 아내가 딸아이 이야기를 했다. 봉지에는 과일만 담겨 있었다.
"내가 고기를 사려고 했는데 딸이 말려서 안 샀어."
"이유가 뭐래?"
"어제 고기를 먹었으니 한 동안 고기를 먹지 말자고 했어."
"고기쟁이가 웬 일이야."

방에서 키위 여러 개를 먹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 딸아이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왜 고기를 덜 먹기로 결심했는데?"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고기 말고 과일에서도 단백질을 얻을 수 있데, 고기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어."
"그래. 그 유튜브 동영상을 아빠에게 한번 보내봐."

아래는 1월 27일 페이스북으로 딸아이가 보낸 영상이다. 고기 섭취를 줄이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기로 결심하게 한 영상이다. 
 


"내가 이 영상에서 나오는 영어를 다 알아들었니?"
"그럼, 그러니까 내가 고기를 덜 먹고 과일을 많이 먹기로 했다."
"아빠, 우리 여름에는 정말 과일만 먹고 살자."
"리투아니아에는 과일이 많지 않아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과일 많이 먹도록 하자."

딸아이의 식생활 변화를 보면서 인생에서 획기적인 변화는 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그 동안 육식의 편식에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변화되길 바라면서 지켜본 것이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앞으로 딸아이에게 즐거이 과일을 사댈 것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1. 30. 08:39

최근 3주 동안 한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딸아이와 아내 둘만 집에 남았다. 물어보니 두 사람이 아주 화목하게 잘 지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내가 돌아온 후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내와 딸 사이에 한바탕 고성이 오고갔다. 결국 딸아이는 자기 방으로 가서 흐르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 이 사진은 이 글 내용의 옷과는 상관 없음


이유는 옷이다.
마음에 딱 드는 옷이 자기 눈에 확 들어온 딸아이는 그간의 옷 구입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꼭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내는 여러 가지 이유로 권하지 않았다. 

"내 돈으로 살 거야."
"아무리 네 돈이지만, 이미 있는 옷도 있고, 벌써 여러 차례 옷을 근래에 샀잖아."
"그래도 그 옷이 정말 마음에 들어. 엄마는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내 마음도 좀 알아야 돼."
"알지만 이건 아니다."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것을 확신한 딸아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로 홀로 지냈다. 이런 경우 서너 시간 그냥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 욕심 하나만 없애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질 것인데..."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아내가 계속해서 구입 불가 이유를 설명하자, 딸아이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고, 결국에는 '지금은 보기 싫다'고 아내마저 자기 방에서 나가라고 했다. 

이런 행동은 딸아이의 평소 심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듯해서 따끔하게 훈계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저녁 무렵 미술학교를 가야 하므로 딸아이의 기분을 더 이상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참았다.

평소 아내가 차로 학교에서 데리고 오는데 이날은 낮에 입은 마음의 상처로 어두컴컴한 밤에 혼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딸아이가 우겼다. 막상 조심해서 오라고 했지만 부모 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 갈코야 -> 갈꺼야, 갈거야


중간에 서로 만났는데 딸아이의 기분이 많이 좋아져보였다. 그래서 평온한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 낮에 엄마한테 네 마음이 약간 안 예뻤다."
"맞아."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나중에."
"항상 마음이 예뻐야 하는 것을 잊지 마."
"알아. 하지만 내가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잖아. 그러니 아빠가 이해해줘."
"옷이나 네 욕심보다 너를 낳아준 엄마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중요해."
"알아. 노력할게."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딸아이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낮에 딸에게 매섭게 훈계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훈계하기를 일단 멈추고 딸아이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되돌아보면서 시비이해를 분석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겠다. 그후 새 옷에 대한 딸아이의 생각은 거짓말처럼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1. 28. 08:54

가족 중 누군가가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남아 있는 가족은 행여나 돌아올 때 가져올 선물을 기대한다. 그래서 집 떠나는 사람의 선물에 대한 고민은 남아 있는 사람의 선물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깊다. 

한 지인은 늘 초콜릿을 선물로 산다. 초기에 그의 가족은 "뭘 이런 것을 선물로?!"라며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익숙해지자 "이번엔 어떤 초콜릿을 가져올까?" 기대감으로 차 있다고 한다. 

다른 지인은 쉬려고 여행가는데 선물 선택 고민으로 여행을 힘들게 할 수 없으니 아예 선물을 사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도 이젠 이를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기야 요즘 해외여행은 그 옛날 이웃 마실 나들이 가는 든한 기분이다.

이번 한국 방문을 앞두고 딸아이가 꼭 부탁한 선물이 있었다. 여권수첩이다. 딸아이는 직접 인터넷 검색을 통해 멋진 여권수첩을 봐두었다. 

* 딸아이가 부탁한 여권수첩


"아빠, 다른 것은 안 사도 되는데 꼭 이것은 사와야 돼, 알았지?"
"열심히 찾아볼게."

한국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기념품 가게 등에서 여권수첩을 찾아보았다. 어느 곳에서도 여권수첩은 없었다. 한국에서 출국일이 가까워지자 딸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출국 전날 밤에 숙소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보왔다. 과일가게의 커다란 배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이거야! 이것이면 딸아이의 실망감을 다 잠재울 거야!'라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일반적으로 농수산물 반입 절차는 까다롭다. 잠시 고민했지만, 수화물 가방 속에 넣어 만약 걸린다면 순순히 그 절차에 응하기로 했다. 이렇게 내 두 주먹보다 더 큰 한국 배 3개가 집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다.


여행가방을 열자 딸아이는 다른 것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직 한국 배였다. 
"아빠, 정말 고마워! 아빠가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 아빠 짱이야! 나 오늘 대박이다! ㅎㅎㅎ"


몇 해 전 한국을 같이 방문했을 때 먹어본 후 딸아이는 한국 배를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다. 대형상점이나 재래시장 과일 판매대를 지날 때 딸아이는 한국 배가 아주 먹고 싶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이렇게 모처럼 한국 배를 먹게 되었다.

* 씨를 버리기가 아까워 일단 화분에 심어놓았다.


"한국 배가 정말 맛있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왜?"
"물이 많고 달고 사근사근 씹히는 맛이 정말 좋아!"
"여권수첩 못 사서 미안해."
"괜찮아. 이 한국 배가 최고야!"
"그렇게 생각하니 고마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1. 2. 08:43

지금껏 25여년을 유럽에 살면서 가장 조용하게 새해를 보냈다. 보통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초대하거나 초대 받아서 새해의 0시 0분 0초를 환호 속에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 새해엔 그야말로 밖에 잠시 나가 폭죽 속에 새해를 맞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아래 영상은 2014년 새해를 폭죽 속에 맞이한 영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꼭 번역을 마쳐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 송구영신의 시각을 잊으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더 큰 이유는 자고 나면 새날이요, 지난 시각은 헌날이라는 원칙에 너무나 충실해 세월흐름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을 이해해준 가족 덕분에 새해맞이 시각에도 '놀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2014년의 마지막 저녁이니 아내가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식사하면서 딸아이가 주도해 잠시 동안 우리집 2014년 10대 대사를 꼽아보았다.


1. 언니가 미국에서 공부

2. 요가일래가 TV 노래 경연 출전

3. 카나리아 란자로테-푸에르테벤추라 가족 여행

4. 할머니 순조로운 수술

5. 어머니 학교 공연 성황

6. 요가일래 실팔찌 취미

7. 리투아니아 유로 도입

8. 아버지 단체관광 직접 조직

9. 요가일래 수학 공부 우수

10. 요가일래 그림그리기 재미


딸이 주도하다보니 우리 집 10대 뉴스의 반을 차지했다. ㅎㅎㅎ

수학이 어려워 그 동안 힘들어했는데 2014년에는 수학이 재미있다고 아주 좋아했다. 실팔찌 만들기와 미술이 새로운 취미로 자리 잡았다. 내년에는 어떤 10대 뉴스가 우리 집 연말 식탁에 오를까...


며칠 전 딸아이는 유리병을 포장을 하고 있었다.

"뭐하니?"
"지금 유리병을 포장하고 있지?"
"왜?"
"내 새해 포부야."
"새해 포부가 뭔데?"
"새해에 좋은 일이 생기면 적어서 이 안에 집어넣으려고."
"왜 그렇게 하는데?"
"나중에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그래 맞다. 좋은 일을 잊어버리기 전에 적는 것도 참 좋겠다."

* 2015년 딸아이의 좋은 일 쪽지통


좋은 일을 챙기는 것이 딸아이의 새해 포부란다. 선악을 별로 챙기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내 자신을 돌아보니 잠시 뭉클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좋은 일만 챙기지 말고 좋지 않은 일을 위한 통도 하나 만들어놓으면 어떨까?"
"좋은 일로만 충분해."
"좋은 일 수와 좋지 않은 일 수를 나중에 서로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새해는 하나만 할거야."

과연 얼마나 새해 포부에 충실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통 안에 좋은 일 쪽지가 가득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12. 19. 07:50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인 딸 요가일래는 일반학교외에도 음악학교를 다닌다. 17일 수요일 한 해를 마감하는 공연회가 열렸다. 음악학교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많은 학생수로 공연에 출연하기가 쉽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노래 부문에서는 주로 합창단이 출연했다. 독창을 전공하는 딸아이는 학생들이 자원해서 들어가는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 음악학교 연말 연주회

지금껏 매년 이 공연회에 출연했는데 올해는 독창으로 뽑히지 않았다. 변성기 나이로 애매했다. 그냥 합창 한 곡에 참가했다. 요가일래는 아주 좋아라 했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좀 아쉬웠다. 아내는 교사 뒷풀이로 학교에 남고, 요가일래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길을 걸으면서 요가일래와 한 대화가 마음에 와 닿아 남기고자 한다.

"아빠, 내가 정말 아빠를 사랑해."
"거짓말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
"오늘 음악학교로 오면서 아빠에 많이 불평했잖아."
"아빠, 내가 엄마하고 얼마나 싸우는지 알잖아. 그래도 난 엄마를 사랑해."
"그래? 싸우지만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다는 말이네."
"맞아. 아빠가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파.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조차 하지 마."
"그래 알았다."

상대방에게 일시적으로 불평하더라도 그 바탕에 서로의 근본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 불평은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한 두 가지 더 아버지와 딸 사이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시간이 필요하잖아!
일전에 지인이 요가일래에게 실팔찌를 서너 개 만들어줄 것을 부탁했다. 짬짬이 손목띠를 만들고 있었다.
"이거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해?"
"한 3시간이면 돼."
"그러면 쉬지 않고 꼭박하면 하루만에 다 할 수 있겠네."
"없지. 내가 그렇게 안 하지."
"왜?"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잖아! 아빠도 일만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해."

일이 있으면 꼭 빨리 끝내려고 그 일에만 완전히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에도 관심 좀 가져라는 말이다. 

* 요가일래의 취미 - 실팔찌 만들기

아빠도 먹고 싶잖아
어느 날 밤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양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와~ 샌드위치 맛있겠다."
"내가 했으니 맛있지. 아빠도 먹을래?"
"내가 먹으면 너한테 양이 부족하잖아. 네가 다 먹어."
"아니야. 내 배에 있을 것이 아빠 배에 있어도 내가 배부르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세상에 내 배만을 채유려는 사람이 세상이 비일비재한데 이날 우리집 부엌에는 달랐다. 요가일래가 커더라도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꼭 이런 생각을 간직하길 바란다. 

아빠만큼 키 클래
딸아이는 또래에서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네가 아빠를 닮아서 키가 작나? 아빠를 닮지 마."
"괜찮아.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딸은 아빠 키만큼 자라."
"정말 그럴까? 그래도 예외가 있잖아"
"그냥 아빠만큼 키 클래."  

작은 키를 크게 하기 위해 수술까지 하는 세상인데 그냥 아빠처럼 작아도 좋다라는 딸아이...  
 
있는 그대로를 좋아해
종종 딸의 귀엽고 기특한 순간을 보면 묻곤 한다.  
"아이구, 네가 어떻게 아빠한테 태어났니?"
"세상에는 더 좋은 사람도 많고, 더 넉넉한 사람도 많고..." 
"그래도 난 아빠가 좋아."
"왜?"
"아빠는 내 아빠니까."

빈부귀천의 척도로 아빠를 보지 않고 '아빠는 내 아빠니까'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좋아하는 딸아이...

이렇게 딸아이는 어린 내 딸이 아니라 나를 인간적으로 더 성숙시키는 존재로 다가온다. 어른이 아이에게 배운다라는 말은 이제 우리 집의 일상사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12. 17. 07:33

이곳 북동 유럽 리투아니아에서 겨울철이 되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하나 있다. 바로 동지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해가 조금씩 조금씩 탈출하기 때문이다. 

요즘 해는 아침 8시 36분에 뜨고, 오후 3시 52분에 진다. 일출과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날이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하늘에는 대부분 구름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어제 미술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저녁 8시에 끝냈다. 가로등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둡다. 그래서 아내와 나 둘 중 한 사람이 미술학교까지 데리려 가야 한다. 

어제는 겨울답지 않게 벌써 봄이 왔음을 착각시키는 비가 내렸다. 

"아빠, 나를 데리려 와줘서 참 고마워~"
"그래."
"지금 눈이 와야 하는데 비가 오니까 이상하다. 그렇지?"
"그래 지금은 해양성기후 때문이다. 너, 며칠 전에 가르쳐 준 한국말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 기억해?"
"그럼."

이렇게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숙제를 마치고 양배추 날 것을 반으로 잘라 방으로 가져갔다.


"양배추는 왜?"
"책 읽으면서 먹으려고."
"양배추가 맛있어?"
"정말 맛있어. 한번 씹어봐. 사탕만큼 달아."
"거짓말."
"아니야, 입에서 많이 씹어봐."



평소 고기를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
딸아이의 독서 중 간식이 양배추라...ㅎㅎㅎ


아내에게 물어봤다.

"당신도 어렸을 때 양배추를 저렇게 먹었어?"
"먹었지만 그렇게 자주는 아니."

긴긴 밤 책을 읽으면서 양배추를 아삭아삭 씹어먹는 딸아이를 보니 시골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컴컴한 밤에 가위바위보 시합을 해서 진 사람이 뒷밭에 묻어놓은 차가운 무를 꺼내 왔다. 그리고 형제들이 이예기 저예기 하면서 겨울밤을 보냈다. 

도심에 살면서도 감자튀김 과자 등을 먹지 않고 날양배추 잎을 하나하나 벗겨 먹는 딸아이 덕분에 잠시나마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리워해본다.

요가일래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최근 성당에서 공연한 노래 동영상 하나를 소개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11. 27. 07:51

일전에 "중학생이 되자 확~ 변한 딸의 생활상" 글에서 유럽 리투아니아 중학교 1학년생 수업내용을 소개했다. 오늘은 시험 성적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학교 1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요즘 흔히 말한다.
"내일 시험 있어."
"또 시험이야!"
"모레도 시험 있어!"
"뭐!?"
"힘들겠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시험일이 다가오면 밤을 꼬박 새면서까지 공부했는데, 딸아이는 평소처럼 밤 10시에 잠을 잔다. 왜 그럴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따로 없어
어느 특정한 날을 정해 그날 하루 내내 모든 과목 시험을 치지 않는다. 과목마다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시험일을 달리한다. 동일한 내용에 대한 수업을 서너 차례 진행한 후 선생님이 이 내용에 대해 학생들이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낸다. 시험공부 분량이 많지 않아서 한꺼번에 힘들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비교적 자주 점검하기 때문에 평소 느슨하게 공부하다가 시험일이 다가와서야 벼락치기 공부하는 일이 아직까지는 없었다. 한국에 있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여긴 따로 없다. 

평가점수는 1-10점이다. 아래는 학생수 29명의 성적표이다. 이번 학기 지금까지 평균성적이 9점(90점)이상이 12명, 8점(80점)이상이 7명, 7점(70점)이상이 7명이다. 80점이상 학생이 19명으로 전체의 과반수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다. 아래 붉은 칸을 한 것이 과목(러시아어)당 평가번수(Pazymiu)이다. 한 학생은 6번, 다른 학생은 10번, 또 다른 학생은 15번이다. 학생마다 다르다. 동일한 번수로 시험을 쳐서 얻은 점수 합계를 나눠 평균점수를 내고 순위를 정해야 맞을 듯한테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또 다시 그 까닭이 궁금해진다. 그 답이 아래 붉은 칸에 나와 있다. 필기시험 하나만으로 과목당 성적을 평가하지 않고, 그 과목에 대한 지식습득을 평가는 내용이 여러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번수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성적내용은 복잡다단
성적에 포함되는 평가내용은 이렇다.
실습 
자립작업: 시험문제를 주면 학생들이 교과서나 기타 자료 등을 이용해 스스로 답을 내는 
이론
취합 (반복되는 과제 제출을 종합해서 평가)
다른 기관이 발행한 평가(예, 다른 기관이 주최하는 수학 경시 대회 등 참가해서 얻은 점수)
필기시험
숙제
자립이나 가정 학습 점수 (병 등으로 결석일이 많은 학생의 경우)
일상사 (일반적인 학생들의 일)  
교실일 (예, 교실 환경미화)
프로젝트 (과제 발표)

막상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참 복잡하다. 하지만 과목당 필기시험 하나만으로 단순히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내용을 종합해서 그 과목의 성적을 매기는 것이 특이하다. 그래서 학생마다 평가번수가 다름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10. 17. 05:12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내었지만 도저히 사량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적인  건축물을 흔히 불가사의라 부른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7대 불가사의가 있다.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대피라미드, 바빌론 공중 정원, 알렉산드리아 등대, 에페소스 아르테미스 신전, 마우솔로스 영묘, 올림피아 제우스 상, 로도스 거상이다. 

*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세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스톤헨지, 콜로세움, 카타콤베, 만리장성, 영곡탑, 하기야 소피아, 피사탑이다.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기적이 발표되었다. 이는 마추픽추,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치첸이트사 마야 유적지, 만리장성, 타지마할, 요르단 페트라, 로마 콜로세움이다. 


근래 들어 사춘기에 막 접어든 딸아이는 8번째 불가사의 기적을 말한다. 무엇일까? 학교에서 혹은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면 요가일래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오~~~ 8번째 기적!!!"

"딸아, 네가 말하는 8번째 기적은 도대체 뭐지?"

"아빠, 궁금하지?"

"당연하지. 뭔데?"

"바로 집이야!!!"

"이잉~~~"



"어떻게 집이 기적이 될 수 있니?"
"집은 정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고 싶은 기적 같은 곳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참 좋네. 그래 이 기적 같은 집에서 기적 같은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자."
"아빠,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이 정말 기적이다. 그렇지?"
"넓고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이렇게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은 네 말대로 기적이다."

학교 수업에 지쳐 돌아온 집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또한 가족이 함께 하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존재가 집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이렇게 생각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딸아이의 이런 생각이 오래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9. 26. 05:51

한국어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딸아이가 전화했다. 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 있나해서 받기로 했다. 또한 생생한 한국어 대화를 들으면 학생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아빠!"
"왜?"
"집에 올 때 사탕을 30개 사올 수 있어?"
"있지."
"왜 사탕을 그렇게 많이?"
"내일 영어 시간에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데 학생들에게 질문할 거야. 맞으면 사탕을 선물할 거야."
"알았다."

수업을 마친 후 대학교 인근에 있는 가게를 찾았다. 무슨 사탕을 살까 고민스러웠다. 물어보려고 전화했다.

"아빠가 어떤 사탕을 사줄까?"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으로 보내줘."

* 딸아이와 페이스북으로 주고 받은 내용이다. 한글로 옮겨 적으면 이렇다:

제일 위에 세 번째. 건데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세려면 안 돼. 너무 많이 사지마.


정말 좋은 세상이다. 집에 있으면서도 인터넷 덕분에 원하는 사탕을 주문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가게에는 원하는 사탕이 없었다.

"내가 다른 큰 가게에 가서 사탕을 살게."
"아빠, 그럴 필요가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와. 아빠가 힘들잖아."
"내가 힘들어도 네가 좋으면 좋지."
"정말이지 그럴 필요 없어. 배가 고프잖아. 그냥 빨리 집으로 와."
"벌써 새로운 가게로 가고 있어."
"그러면 아빠가 사고 싶은 것도 사. 내가 돈줄게."
"됐어. 빨리 사서 가져갈게."

이렇게 사탕을 30개보다 훨씬 많은 50개 정도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딸아이는 밑으로까지 내려왔다.



"아빠, 정말 고마워.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내일 영어 프레젠테이션 잘 해라."

감사의 뽀뽀를 막하려는 딸을 제지했다.
"밖에서 왔으니 세수한 후에 뽀뽀해. ㅎㅎㅎ"

강의 후 더 먼 길을 걸으면서 힘들었지만 이렇게 딸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것에 피곤을 잊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9. 12. 05:30

<초유스의 동유럽> 블로그를 운영한 지 벌써 만 7년이 되었다. 이 블로그의 한 부류를 차지하는 아버지와 딸아이 이야기의 주인공 요가일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언제 다 자라나? 휴~"하던 시절이 훌쩍 가버렸다. 이제는 "벌써~ 소녀가 되었네!. 사춘기를 잘 넘겨야할텐데"라는 때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는 시간이 빨리 가면 참 좋겠다라고 바랬는데 지나고 나니 세월은 역시 빨랐다. 이제 6년을 더 학교 다닌 후 고등학교를 마치고 언니처럼 외국에 공부하러 가면 함께 지낼 시간도 사실 그렇게 많지가 않다.

지난 여름 종종 큰소리로 대꾸하기에 한번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이유없이 대꾸하면 안 되잖아!"
"나도 알아. 선생님이 우리가 그런 나이에 있다고 해서."
"그래도 아빠가 늘 마음이 예뻐야 된다고 네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쳤는데 이런 때 그 덕을 좀 보자."
"나도 알아. 아마 이런 날이 빨리 지나가면 괜찮을거야."

더 이상 나무랄 수가 없었다.

9월 1일 요가일래는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이 되었다. 먼저 유럽 리투아니아의 중학교 수업시간표를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1주일 수업시간은 총 31시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1주일 수업시간이 22시간이다. 6년 후 11시간이 더 추가되었다. 가장 수업시간(5시간)이 많은 과목은 국어인 리투아니아어다. 이어서 영어와 수학이 각각 4시간이다. 역사, 생물, 지리, 러시아어, 체육, 작업이 각각 두 시간이다. 물리, 미술, 음악, 신앙, 정보기술, 학급시간이 각각 1시간이다. 역시 여기도 국영수가 최우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담임선생님과 조회는 매일 열리지 않고 월요일 딱 1시간이다.


그렇다면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생활에서 확~ 변한 것은 무엇일까?
9월 1일 개학한 날 밤 다음날 학교에 가기 위해 밤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딸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 부모님이 일어나야 돼?" (즉 일어나서 깨우고 아침밥을 챙겨줘야 돼나?)  
"아니.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어. 내가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까 그냥 부모님은 계속 자세요. 내가 혼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서 먹고 학교에 갈거야."
"정말 그래도 돼?"
"정말이야. 이제부턴 내가 한다. 나도 이제 스스로 해야 할 나이잖아."
"그래. 그 결심을 존중한다."

그 후 며칠 동안 정말 딸아이는 스스로 잘 했다. 어느 날 아침 9시경 일어나 침대에서 뒤척이면서 '오늘도 학교에 잘 가겠지'하고 속으로 딸아이를 칭찬했다. 한참 후 일어나 세수하고 거실로 가는데 딸아이의 방문에 닫혀져 있었다. 혹시나 하고 열어보았더니 딸아이가 여전히 쿨쿨 자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보다 학교에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욕심에 자명종 시계를 6시 반에 맞추어놓았다. 일어났지만 3개월 여름방학에 여전히 익숙해져 있는 몸을 쉽게 일으켜세울 수가 없었다. 

침실에 있는 아내에게 살짝 와서 상황을 설명하면서 야단을 치지 말자고 했다. 이번을 계기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후 요가일래는 휴대폰 자명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으로 맞춰놓았다.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이렇게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후에 음악학교로 출근하는 아내는 보통 늦게 잔다. 거의 집에서 일하는 나도 늦게 잔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 중 누가 먼저 일어나야 했다. 

"당신이 내일 일찍 일어나 딸아이 등교를 도와줘!"라고 서로에게 미루지 않게 되었다. 

이제 곧 만 13살이 되는 딸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부모 도움없이 등교를 하게 되었다. 이런 자립심이 지속되어 만 18세 성인이 되면 정말 스스로 세상살기에 익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