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에 해당되는 글 495건

  1. 2013.03.05 햄스터를 야생에 놓아두면 매가 잡아먹잖아
  2. 2013.03.04 유명인사 서명에 초연한 아내 안절부절 4
  3. 2013.02.25 유럽에서 부르는 한국 동요 반달 1
  4. 2013.02.18 아빠, 내 볼에 뽀뽀하면 10만원 줄게 1
  5. 2013.02.14 하트 스티커를 대신할 딸아이의 다양한 하트 표현 5
  6. 2013.02.14 초딩 딸아이의 결혼기념일 깜짝 선물 2
  7. 2013.02.08 특이하게 머리 땋아주는 여고생 언니가 좋아 1
  8. 2013.02.07 아빠 보고싶어 말끔히 책상 정리한 초등 딸
  9. 2013.01.29 초딩딸의 취미 캉클레스, 내친 김에 가야금도 2
  10. 2013.01.21 아빠, 내 편지 꼭 한국에서 읽어야 돼 1
  11. 2013.01.18 한국에서 꼭 사와야 한다는 초등 딸 물품 목록
  12. 2012.12.24 옷 벗어주면 아빠가 추워서 죽잖아, 안 돼! 1
  13. 2012.12.19 하교길에 주운 아이폰 빨리 집으로 가져와! 8
  14. 2012.12.17 안경 쓰는 아빠의 불편 느끼려고 안경 썼어 2
  15. 2012.12.17 추운 날엔 양과 말에게 정말 감사해야 1
  16. 2012.12.12 대체 교사한테 계속 배우겠다는 딸의 이유는? 1
  17. 2012.11.19 부모 침실에 같이 자는 아이 이빨이 다 빠져 2
  18. 2012.11.15 애지중지하던 딸의 컵을 깬 후 펼친 공방전 2
  19. 2012.10.25 꽃 30송이를 제각각 다르게 그린 초딩 아이 1
  20. 2012.10.23 현지인은 강남스타일, 초딩 딸은 판소리 들으러 3
  21. 2012.10.16 동요 반달은 지는 반달일까, 뜨는 반달일까? 1
  22. 2012.10.15 머리에 상자 잘 이는 건 한국인이라서
  23. 2012.10.12 초딩 딸, 유럽 교실에서 한국 동화 소개해
  24. 2012.10.09 "내가 학생이야"라는 말에 책가방 실랑이 끝 2
  25. 2012.09.28 깨진 유리그릇 인증샷부터 찍자는 초딩 딸
  26. 2012.09.27 놀림당한 초딩 딸에게 힘내라 문자쪽지 1
  27. 2012.08.06 초딩 딸 400컷 사진으로 만화영화 놀이 4
  28. 2012.07.23 할아버지가 10살 아이에게 용서 구하다 1
  29. 2012.07.20 10살 딸이 흥부전을 베껴쓰는 데 걸린 시간은? 5
  30. 2012.06.25 초딩 딸이 오븐으로 구운 과자 금방 동나 3
요가일래2013. 3. 5. 06:31

학교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 딸아이가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에서 서재까지 상대적으로 긴 복도가 있다. 햄스터가 없었을 때 딸아이는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향해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 부엌 창가에 놓아둔 햄스터에게 달려가 '(출필고)반필면'을 잊어버렸다.  

"봐, 햄스터 때문에 아빠를 잊었지?"
"햄스터는 살아있는 장난감이잖아. 아이들은 장난감을 좋아해. 그래서 먼저 장남감하고 놀아."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외할머니가 난쟁이 햄스터(드워프 햄스터, dwarf hamster) 새끼 한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 여러 차례 애완동물, 특히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라대었지만 완고하게 거절했다. 애완동물 기르기는 많은 장점이 있는 줄은 알지만, 그저 사람은 사람끼리 사는 것이 좋다는 주의에 충실하고 싶다. 애완동물에 대한 특별한 애(愛)나 증(憎)은 없다. 

어제 딸아이는 학교에서 오자마자 햄스터를 우리에서 꺼내 침실로 가져갔다. 조금 후 딸아이는 햄스터에게 재미나게 호통을 쳤다.
"야~~~ 이렇게 내 옷에 오줌을 누면 어떻게 해? 앞으로 한번만 더 하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


우리에서 꺼낸 햄스터가 침대포 위에 똥을 누는 경우도 있다. 좁쌀만한 똥을 딸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맨손으로 주워 쓰레기통에 버린다. 

"비누로 손 씨는 것을 잊지마!" 

애완동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정산 종사)이 있다.

어항을 치워라. 못에서 마음대로 헤엄침을 보리라. 
화병을 치우라. 정원에 피어있는 그대로를 보리라. 
조롱을 열어 주라. 마음대로 날으는 것은 보리라.


어느 날 이 구절을 딸아이에게 해주었다. 
"이 햄스터가 야생에서 자유롭게 자라면 얼마나 좋겠니?"
"아빠, 그렇게 하면 매가 햄스터를 잡아먹잖아. 햄스터가 그렇게 죽으면 아빠는 좋겠어? 우리가 키워주면 자연히 죽을 때까지 잘 살잖아."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3. 4. 07:04

3월 1일 딸아이가 다니는 음악학교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작곡가 한 명을 초대해 그가 작곡한 곡들을 노래했다. 작곡가는 리투아니아 사람으로 라이무티스 빌콘츄스다. 음악하는 아내의 말에 따르면 현존하는 리투아니아 작곡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학생들이 합창 혹은 독창으로 노래하는 것에 대한 답례로 이날 그는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곡을 불렀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거리나 공공장소에 유명인을 만나도 별다른 반응을 거의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서명을 받으러 확 몰려드는 일은 극히 드물다. 보통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처럼 유명인사 서명 받기에 초연하는 아내는 이날 의외로 서명 받기에 안절부절했다. 딸아이가 이 작곡가의 서명을 꼭 받기를 원했다.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자라면 이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작곡가인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 같았다. 딸아이도 그가 작곡한 곡을 불렀다. 제목은 "내 조국이여!"이다. 
 

서명을 받고 헤어지는 순간에 작곡가가 한마디했다.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김칫국 먼저 마시는 듯했지만, '딸아이에게 언젠가 곡 하나 줄려나'라고 생각해보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25. 07:05

음악학교에서 노래를 지도하는 딸아이의 선생님이 수술로 인해 3개월 병가를 내었다. 2월 초순부터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자 딸아이도 바빠졌다. 의욕적인 선생님이라 제자들을 데리고 노래 경연 대회나 공연에 활발히 참여하기 때문이다.


일요일 빌뉴스 한 음악학교가 노래 경연 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에서 정월 대보름 명절을 보내는 시각에 딸아이는 한국 동요 반달을 불렀다. 두 번째 곡은 스웨덴 랩소디(rhapsody, 광시곡, 狂詩曲)였다. 대중 앞에 모처럼 노래를 불러서 그런지 다소 불안해보였다.



"잘 했어. 그런데 아빠 귀에 약간 틀린 부분도 있더라."
"다행히 사람들이 한국어를 모르잖아."
"알든 모르든 잘 해야지."
"알았어. 하지만 사람은 실수할 수 있지." 

* 다음 TV팟에 올라온 요가일래 동영상: http://tvpot.daum.net/v/49844428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18. 07:11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아이가 아플 때이다. 지난주 일요일 밤부터 39도의 고열과 기침으로 딸아이는 고생했다. 이번 주말에는 회복기로 들어섰다. 누군가 아플 때에는 서로가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은 예방법이다. 이를 아는 딸아이는 종종 장난을 쳤다.

"아빠, 내 볼에 뽀뽀하면 10만원 줄게."
"그렇게 많이? 정말?"
"물론이지."
"네가 나으면 공짜로 뽀뽀 많이 해줄게."

회복기에 들어서자 침대에만 누워있는 따분함을 버리고 딸아이는 혼자 여러 가지로 놀았다. 그러던 참 혼자서 할 수 없는 놀이를 생각해냈다.

"아빠, 우리 같이 놀자."
"그래 일전에 뽀뽀는 못해주었지만 함께 놀자."

놀이는 단순했다. 목재 세 조각으로 한 판을 이루고, 이것을 탑처럼 쌓는다. 그리고 탑이 무너지지 않게 목재 토막을 빼내는 것이다.
 


"아빠, 앞으로는 더 많이 같이 놀자."
"그럴 수 있을까...... 서로가 컴 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14. 08:02

2월 14일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이다. 유럽에 있지만 리투아니아는 그렇게 요란하지 않다. 이날 흔히들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선물과 연인의 사랑 고백이 떠올린다. 리투아니아 발렌타인데이 풍경은 이런 일반적인 모습과는 좀 다르다. 

지금껏 지켜본 리투아니아의 발렌타인데이 풍경은 한 마디로 소박하다. 연인 축제로 여기는 역사가 일천해서 일까, 아니면 부산하게 굴지 않는 성격 때문일까?

이날 주변 사람들이 선물로 가장 많이 사는 것은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 과자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사는 것은 하트 모양 스티커다. 이들은 이날 친구 얼굴이나 겉옷에 스티커를 서로 붙여준다. 이 붉은 하트 스티커를 다닥다닥 얼굴에 붙이고 무리 지어 다니는 청소년들을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쯤 되고 보니 이날은 하트 스티커를 붙이는 날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올해는 딸아이에게 하트 스티커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1주일간 방학으로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가게에 갈 좋은 기회가 없다. 더욱이 요즘 아파서 침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의 8년만에 최근 데스크탑 컴퓨터를 교체했다. 옛 컴퓨터 내 문서에 딸아이의 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바로 하트 스티커보다 더 멋진 하트를 해보이는 장면이다. 


올해 발렌타인데이의 선물은 이 사진으로 대체해야 할 듯하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한다. 눈이 뿜어내는 손 하트에 그 사랑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빠 딸, 빨리 건강을 되찾기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14. 07:16

일전에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초딩 딸아이는 우리 부부를 부엌에 갇아놓고 자기 방으로 갔다. 

"나를 따라오면 안돼. 꼭 여기 있어야 돼."
"왜?"
"그냥."

자기 방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종이로 포장된 물건을 가지고 왔다.

"엄마 아빠 결혼을 축하해."
"뭔데?"
"종이를 뜯어봐."

종이 속에는 아래와 서양란이 곱게 피어있었다.

"고마워. 그런데 이것을 몰래 사서 보관하느라 힘들었겠다."
"아니." 
 

그 동안 딸아이는 대부분 자기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선물을 주었다. 자기 용돈에서 꽃을 사서 결혼기념일 선물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의 존재를 있게 한 부모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서양란까지 선물하다니 이젠 제법 자랐음을 뜻하는 것 같아 흐뭇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8. 07:22

리투아니아에는 머리 땋은 여학생들이 흔하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도 보통 머리를 땋고 학교에 간다. 아직은 거의 대부분 엄마가 땋아준다. 가장 흔한 머리땋기이다.  


딸아이는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여고생 사촌 언니가 있다. 명절 때나 일이 있어 지방에 갈 때는 사촌 언니 집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사촌 언니가 다양하게 머리를 땋아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다녀왔다. 사촌 언니가 어려울 것 같은 머리 땋기를 아주 쉽게 척척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먼저 머리끈을 두른 것과 효과를 주는 머리땋기이다.   



다음은 이마 바로 위에서부터 조금씩 시작해서 나사처럼 돌면서 머리를 땋았다. 끝부분은 일명 지네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사촌 언니는 대학에 가서 미용을 전공하겠다고 한다. 위와 같은 머리땋기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아뭏든 하고자 하는 일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7. 07:07

2주간 한국 방문으로 집을 떠나있었다.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나기 다섯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갑작스런 병고로 한국행 포기를 결심했다. 그런 판국이라 책상도 재데로 정리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을 방문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을 보니 깜짝 놀랐다. 떠나기 직전 번역 중이라 여러 참고 책들과 사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빠, 책상 누가 이렇게 말끔히 치웠니?"
"내가 치웠지." 
"고생 많았네. 고마워~" 


그런데 단어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잡았는데 또 한 번 더 깜짝 놀라게 되었아. 찢어져 있던 사전이 테잎으로 깔끔하게 붙여져 있었다.   


"이것도 네가 한 거야?"
"내가 하자고 했고, 엄마가 조금 도와줬어."
"고마워."
"아빠가 보고싶었을 때 내가 아빠 책상을 정리했어."

남이 없을 때 이렇게 무엇인가 그를 위해 하는 것이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 29. 08:33

기회 있을 때마다 초딩 딸아이는 캉클레스 악기를 사달라고 했다. 특히 이 악기 반주에 따라 노래를 부른 날은 좀 극성적으로 졸라댔다. 그럴 때마다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악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래는 몇 해 전 캉클레스 반주에 따라 리투아니아 민요을 부르는 딸 동영상이다.
 
 
캉클레스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민속 현악기이다. 본체는 단단한 통나무로 만들고, 이를 깎아 그 위에 가문비나무 같은 연한 나무판을 올린다. 그 소리판에 꽃무늬나 별 모양을 내서 구멍을 낸다. 철사나 동물의 내장으로 줄을 만든다. 
 

고대 리투아니아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간 날 숲 속에 베어온 나무가 소리를 잘 낸다고 믿었다. 캉클레스 연주는 곧 명상과 같고 죽음, 질병, 사고로부터 연주인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캉클레스 연주를 들으면 애절함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야 딸아이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이날 사오자마자 딸아이는 홀로 연주 시도에 몰두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진작에 사줄 것을 아쉬워했다. 

 
어슬픈 초짜의 솜씨이지만 딸아이는 리투아니아 민요 한 곡을 이날 시도해보았다. 캉클레스 연주에 익숙해져 자라서 나중에 한국의 거문고나 가야금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참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 21. 07:25

일전에 한국 방문을 하기 위해 빌뉴스 집을 떠나기 전날 밤 초딩5 딸아이는 야무지게 봉한 편지를 한 통 주었다. 그리고 신신당부했다.
 
"아빠, 이 편지 지금 읽으면 안 되고 꼭 한국에서 읽어야 돼"
 
그리고 경유지인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 딸아이는 몇 번이나 인터넷 대화 프로그램인 스카이프(skype)와 바이버(viber)를 통해 꼭 한국에서 읽어라고 말했다.

 
위 캡쳐화면은 리투아니아어 철자로 쓴 한국어 대화이다.
안녕, (아빠가) 조금 있으면 비행기 탄다
아이구, 조심해. 너무 사랑해... 안녕
그래 내일 봐
알았어
편지 읽기 잊어버리지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딸아이가 이토록 '한국에서 읽으라'고 강요하듯이 할까 궁금했지만 부탁대로 해야 했다. 한국에 도착해 편지를 뜯어보니 딸아이의 부탁을 쉽게 해야 하게 되었다. 이유는 바로 편지를 '한국어'로 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사와야 할 물품 목록은 영어로 썼지만[관련글 바로가기], 아빠가 읽을 편지는 리투아니아어 철자로 된 한국어가 아니라 한글로 썼다. 딸아이는 한국에서 한국어 편지를 보고 기뻐할 아빠의 모습을 혼자 상상하면서 무척이나 즐거웠을 법하다.
 
"우와, 너 이렇게까지 한국어를 쓸 수 있어? 아빠가 정말 몰랐다. 어떻게 배웠니? 혹시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은 아니지?"
"비밀이야."
"아뭏든 아빠가 박수 친다. 아빠가 이렇게 좋아하니 앞으로는 한국어를 말만 하지 말고 한글로 써는 것도 좀 열심히 배워라."
"알았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 18. 07:00

한국에 2주간 다녀올 일 생겼다. 늘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라 잠시라도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헤어질 때는 웃움보다 눈물이 앞선다.

"이런 때 당신이 집을 비우니 남아있는 우리가 힘들 거야."
"그럼 안 갈 수도 있어."
"표를 연기할 수도 없잖아. 아까우니 그래도 가야지."
"헤어지기 전에는 헤어진 후의 일로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지만 막상 헤어지면 만날 기대감으로 그 걱정과 불안을 잊게 된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 편히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야 돼."


이렇게 아내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저녁에 대화를 하는 동안 초둥학교 5년생인 딸아이는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뭐하니?"
"아빠가 한국에서 나에게 꼭 사와야 할 물건을 적고 있어."

딸아이가 작성한 목록이다. 쓰는 한글이 서툴어서 영어로 썼다고 한다.
      TM이 써진 모자
      목걸이
      컴퓨터
      한글이 있는 공책
      필통
  


"아빠, 여기 컴퓨터는 공책하고 구별하기 위해서 썼는데 노트북이야. 알았지?"
"노트북 비싼데."
"내가 내 용돈에서 보탤 거야."
"리투아니아에도 공책이 많잖아."
"친구들에게 한글 자랑하려고."


곧 잠시 떠나는 아빠로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이런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내는 딸이 기특해 보였다.

"너 아빠하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 눈물 흘리면 안 돼?"
"노력해 볼 게."
"우린 헤어질 때도 웃는 사람이 되자."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24. 07:33

일전에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인 카우나스를 다녀왔다. 국제어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의 탄생일 맞아 매년 리투아니아 에스페란토 협회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행사를 마치고 일행들과 함께 '자유의 거리'를 산책했다. 이 거리는 전용 산책로이다. 길이가 1.6km로 동유럽에서 가장 긴 산책로로 알려져 있다. 산책로 가운데는 보리수나무가 두 줄로 쭉 심어져 있다.  


이날은 혹한에다 바람까지 불었다. 딸아이는 추운 듯했다.

"추워?"
"물론이지."
"아빠가 외투를 벗어줄까?"
"그래."

정말 옷을 벗어려고 하자, 딸아이는 극구 반대했다.


"아빠는 정말 바보다. 벗어주면 아빠가 (추워서) 죽잖아. 안 돼!"
"아빠가 설령 죽더라도 딸에게 옷을 벗어줄 수 있는 정도는 되야 아빠라고 할 수 있지."
"그래. 하지만 둘 다 같이 살아야지. 참을 수 있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9. 07:43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딸아이가 어제 하교길에 전화를 했다.

"엄마, 나 거리에서 아이폰(iPhone) 주었어. 어떻게 할까?"
"빨리 집으로 가져와."
"왜?"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가져갈 수 있으니까."
"알았어."

막상 그 비싼 아이폰을 길거리에서 주웠다는 것이 그렇게 실감나지가 않았다. 통화가 끝난 지 채 1-2분도 되지 않아 아파트 1층에서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었다. 딸아이가 그렇게 빨리 집에 도착할 거리는 아닌데 말이다. 누굴까?


딸아이였다. 손에는 검은 가죽 케이스에 든 아이폰이 있었다. 우리 집에 한 대도 없는 아이폰을 길거리에서 그냥 줍다니...... 가족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자고 했다. 

"여보, 빨리 전화해. 잃어버린 사람이 초단위로 걱정하고 있을 거야 "
"어디다가?"
"가장 최근에 걸려온 전화번호로."

아내가 전화하니 공교롭게도 받는 사람은 바로 잃어버린 사람의 아내였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이폰을 잘 보관하고 있으니 우리 집 주소로 찾아오라고 했다.

얼마 후 잃어버린 사람이 옆 사람의 전화를 빌려 전화가 왔다. 10여분이 지나 직접 우리 집으로 왔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정말 감사해요."
"천만예요."
"급하게 오느라 이것 밖에 없어요."

중년의 그는 주머니에서 15유로를 꺼내 아이폰을 주운 딸아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빠, 내가 주었어."
"그래 정말 네가 착한 일 했다. 그런데 착은 일을 한 후에는 반드시 했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돼."
"왜?"
"그래야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
"우리 이 돈으로 뭘 하지? 아빠가 보관해."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누군가 주어서 주인에게 돌려주면 흔히 답례한다. 우리에겐 사기가 버거운 아이폰을 딸아이가 눈덥힌 거리에서 주어서 가족 모두가 나서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니 기쁜 마음이 들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7. 07:33

딸아이가 어렸을 때 안경 쓴 아빠의 모습이 멋있어 도수가 높은 안경임에도 궁금해서 안경을 써보겠다고 막무가내 졸라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60여명의 우리 반에 안경을 쓴 남자 아이는 딱 한 명이었다. 

이 친구는 인기짱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안경 한번 써보려고 친구들이 갖은 부탁을 하곤 했다. 지금은 바보짓이라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안경 쓴 자신의 모습과 그 안경의 마력이 그렇게도 알고 싶었다. 


최근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딸아이를 만났다. 그런데 딸아이는 난데없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을 쓰면 아빠에게 혼이 난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딸아이는 혼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아빠가 안경을 쓰고 있으면 얼마나 불편한 지를 한번 알아보려고 안경을 썼어."
"생각은 좋지만 안 써고도 알아야지."
"그래도 한번 써보는 것도 좋잖아."
"누구 안경이야?"
"친구 아빠 안경!"
"빨리 안경 벗어!!!"
"헤헤헤, 아빠 화났지?"
"당연하지."
"아, 재미있다. 봐~ 안경알이 없지? 나 어때?"
"안경 안 쓴 모습이 더 예쁘다. 안경 안 써도록 절대로 조심해라."
"알았어."

이렇게 대답했지만, 이날 딸아이는 저녁에도 써고 있다가 아빠에게 또 혼났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 비록 알 없는 안경이더라도 더 이상 안경쓰기 장난은 하지마!!!"


안경 쓰는 아빠의 불편을 느끼려는 명분으로 결국은 안경쓰기 놀이를 한 셈이었다. 시력 보호에 항상 주의심을 갖도록 꾸지람을 했지만, 딸아이의 호기심을 억누르는 것 같아서 한편 미안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7. 07:30

딸아이가 자라니 점점 아빠로서의 역할이 축소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등교시와 하교시에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이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 딸아이 학교 가는 길

주말인 금요일을 맞아 딸아이는 학교 근처에 있는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때마침 그 근처에 일이 있어 갔다가 딸아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너 안 추워."
"괜찮아."
"발이 안 시러워?"
"양말바지 하나에 양말 하나."
(스타킹이라는 말 대신에 우리는 양말바지라 부른다)

그리고 잠시 걸어오는데 딸아이가 한 마디했다.

"추운 날엔 양과 말에게 정말 감사해야 돼."
"왜?"
"양말이 따뜻하게 해주잖아."
"그 양말하고 양과 말은 다르지."
"알아, 하지만 양말이 꼭 양 더하기 말 같아서 한국말이 재미있어."

* 양말이 양 더하기 말?

양말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양 더하기 말, 즉 양과 말의 조합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양말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딸아이의 재미난 생각처럼 혹시 양털로 만든 말굽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서 양말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상상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양말은 서양식 버선으로 한자 洋襪에서 온 말이다.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 달라지고 있을 뿐이니 사실 지금의 양말이라는 말을 버선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아뭏든 "날씨가 추운 것이 아니라 옷을 얇게 입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모두들 따뜻하게 옷을 입고 겨울을 잘 나길 기원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2. 07:02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딸아이가 다니는 음악학교에서는 요즘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 가톨릭 인구가 많은 리투아니아답게 대부분 주제는 성탄절이다.

10일 월요일 저녁 노래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공연회가 열렸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딸아이 요가일래에게 노래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발 수술로 인해 이번 학기에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나이든 선생님이 노래를 지도하고 있다. 


이날 요가일래가 부른 노래는 바하(J.S. Bach)의 "Ich steh' an deiner Krippen hier"였다. 물론 리투아니아어로 번역된 가사이다. 


노래 공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요가일래는 엄마를 졸라대었다.

"엄마, 나 원래 선생님 대신 이 계속 이번 선생님으로부터 노래 배울래."
"왜?"
"이번 선생님은 정말 조용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원래 선생님은?"
"막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요구 사항이 너무 많아."
"4년이나 너를 가르쳤는데 그만두고 다른 선생님을 선택하면 그 선생님이 슬퍼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선생님은 너에게 공력을 엄청 쏟았잖아."
"그래도 이번 선생님한테 계속 노래 배울래."
"한번 생각해보자."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함께 위의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원래 선생님은 학기 중에 참가한 공연이나 시합이 대여섯 차례나 되었는데 이번 선생님은 딱 한 번이다."
"그러게. 임시 대체 교사임을 스스로 알고 소극적으로 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마도. 요가일래는 전보다 편하게 배울 수 있으니까 이번 선생님을 계속 택하겠다고 하는 것 같아."
"맞아. 의욕있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무래도 좋겠지. 재활 마치고 돌아오면 원래 교사로 쭉 가도록 하자."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1. 19. 10:31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는 잠들기 전 종종 묻는다. 특히 주말이면 더 잦다.
 
"아빠, 나 오늘 엄마하고 자도 돼?"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 나 오늘 엄마하고 자도 돼?"
"아빠한테 물어봐."

"아빠, 엄마가 말했는데 아빠가 결정하래."
"왜 엄마하고 자야 돼?"
"앞으로 내가 엄마하고 자는 날이 아빠가 엄마하고 자는 날보다 적으니까."
"어떻게?"
"나도 언니처럼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또 결혼하면 엄마하고 자는 날이 없잖아."

"아빠보다 엄마하고 자는 날이 적다"라는 말에 그만 양보했다.

"그래 오늘만 엄마하고 자."
"알았어."

말이 오늘만이지......  그런 날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반적으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녀를 아기침대에서 재운다. 아기침대는 부모 침대 바로 옆에 둔다. 여유로운 방이 있을 경우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는 다른 방에 재운다.

물론 엄격한 부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자기 방에서 혼자 자게 하고, 밤중에 깨어 울 때도 혼자 울다가 다시 잠들게 한다. 이는 아이의 자율과 독립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우리 집의 경우 위와는 다르다. 아이가 자기 방에서 혼자 울고 다시 잠들게 할 정도로 부모 둘 다 강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적어도 어렸을 때에는 부모와 함께 자면서 그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따로 재워 독립심을 키워주는 것보다 더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출산해서 얼마 동안에는 아기침대에 재웠다.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재웠다. 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따로 방을 주지 않고 부모 침대 옆에 어린이용 침대를 놓았다. 

* 만 다섯 살에 다른 방에서 혼자 자기 시도, 실패

물론 몇 차례 혼자 자고 싶다고 해서 다른 방에서 재우기를 시도해보았다. 만 다섯 살 무렵 어느 날 혼자 자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혹시나 자다가 침대에 떨어질까 걱정되어 온갖 조치를 취한 후 재웠다. 그런데 밤중에 일어나 울면서 부모 침대로 돌아왔다. 

* 일곱 살 무렵 온돌방에서 혼자 자기 시도, 실패

일곱 살 무렵 한국 여행을 하면서 혼자 온돌방에 자겠다고 우겼다. 결과는 뻔했다. 자다가 무서워서 더 이상 혼자 잘 수 없다고 해서 언니와 같은 방을 사용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혼자 방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 그런 지 지금도 부모 침대에서 자겠다고 한다. 이제는 세 사람이 자기에는 침대가 좁으니 아빠가 양보할 수밖에...... 

그렇다면 리투아니아 부모들은 부모하고 자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어떻게 설득할까? 며칠 전에야 아내가 이야기 했다. [관련글: 쥐가 줄 돈에 유치빼기 아픔을 잊는다]

'부모하고 같이 자면 네 이빨이 다 빠져! 이빨 빠지면 보기가 흉하지? 어서 네 방에 가서 자!'

"당신 이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해?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했어야지."
"맞다."
"지금 이빨 다 빠진다고 이야기하면 안 믿지. 부모하고 안 자도 이빨은 다 빠지잖아."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1. 15. 07:23

어제 새벽에야 잠들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아침 8시경 전화가 왔다. 급한 방송 녹음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잠잔 시간은 3시간이었다. 그래서 낮에 잠깐 자기 위해 자명종 시계를 오후 4시 30분에 맞추어놓았다.

시계 소리에 일어났다. 하지만 비몽사몽이었다. 밖은 어두웠다. 시계 소리를 멈추게 한 후 누워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아파트 현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른 아침에 누가 우리 집을 방문했나?'

침대 옆을 보니 같이 잘 것 같은 아내가 없었다. '벌써 일어나 초등학교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부엌에서 있을 시간이구나.'(사실 이 시각 아내는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내가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누워있었다. 그래도 초인종 소리가 계속 났다. 

'할 수 없이 내가 열어야겠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현관문으로 갔다. 안경도 끼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설마 나쁜 사람이겠나......'

현관문 가운데 있는 작은 유리 구멍으로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에 깜짝 놀랐다. 손님이 아니라 바로 딸아이였다. 책가방이 없었다.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왜 돌아왔니? 뭘 잊어버려서 돌아왔니? 책가방은?"
"지금 돌아왔잖아."
"지금이 아침이잖아!"

벽시계를 쳐다보니 4시 50분이었다. 새벽이 아니라 오후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을 보니 어두워서 낮이 아니라 이른 아침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세상에 벌써 이런 착각을 하는 나이에 도달하다니!'

여기까진 좋았다. 

곧장 부엌으로 갔다. 점심 때 먹고 물에 담궈놓은 물컵과 접시 등이 싱크대에는 놓여있었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설거지가 안 된 부엌을 보면 빈둥빈둥 놀고 잠만 자는 남편이라 잔소리할 거야. ㅎㅎㅎ'

아직 잠결이라 손가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싱크대에 있는 컵을 들어서 그릇찬장에 올릴 때 컵이 찬장에 맞닿자 그만 싱크대로 떨어졌다. 하필 이 컵이 초등학교 딸아이가 애지중지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컵은 멀쩡했지만, 컵 손잡이가 두 조각 났다.


이때 부엌 식탁에서 숙제를 막 시작하던 딸아이는 이것을 보자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이 컵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같은 반 학생 이름이 모두 적혀있는 소중한 기념물이다.

"이 컵이 얼마나 중요한데. 흐흑흑~~~"
"알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조심했어야지."
"잠결이라서 미안해."
"이젠 아빠를 싫어할 거야."

"물건이 아빠보다 더 중요해?"
"물건이 더 중요해."
"사람은 실수할 수 있잖아. 너도 그릇을 깬 적이 있잖아."
"없어."

"네가 어렸을 때 여러 번 깨었지."
"하지만 자라서는 깨지 않았잖아."
"물건은 깨어질 수 있어. 세상에 모든 것은 끝이 있어. 사람도 늙으면 없어지잖아. 아빠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이젠 컵을 사용할 수 없잖아."

"깨어진 손잡이를 접착제로 붙이면 될 거야."
"그래도 흠집이 보이잖아."
"네 얼굴에도 흉터가 있잖아."
"그래도 컵이 중요해."
"알았다. 아빠가 덜 중요하니까 앞으론 아빠에게 부탁할 일을 물건에게 부탁해." 

이렇게 언쟁 아닌 언쟁을 하고 부엌을 나왔다. 계속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딸아이는 아빠에게로 달려와 끌어안았다.

"아빠,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물건보다 더 중요해. 깨어진 물건 하나 때문에 아빠를 싫어한다는 것은 너무 한 거야. 아빠든 딸이든 근본적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있는 것이야."
"알았어."

이후 딸아이는 평상심을 찾았는지 유쾌하게 숙제도 하고 이방 저방을 돌아다녔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25. 06:33

새벽 3시에 밝아지고 밤 11시에 어두워지던 여름날이 엊그제 같은데 10월 하순에 들어서자 벌써 동짓 섣달이 찾아온 듯하다. 곧 일광절약시간제(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 일요일까지)가 해제되면 더 더욱 밤이 길어진다.

최근 어느날 초딩 5학년생 딸아이는 밤이 지루했는지 이면지를 가져가더니 내내 꽃송이를 그리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뭘 그리는데?"
"보면 알잖아."
"얼마나 그리게?"
"30개."
"꽃은 개가 아니고 송이야! 삼십 개가 아니라 삼십 송이라고 말해야돼."
"맞다. 사람은 마리가 아니라 명이고, 나무는 개가 아니고 그루지."
"정말 30송이 그릴거야?"
"노력해볼게."    




이렇게 요가일래는 꽃 30송이를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렸다. 자신의 힘든 성취에 만족한 딸아이는 가지런히 정리해서 자신의 앨범에 날짜까지 써서 보관하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23. 18:22

지난 주말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는 웬지 궁시렁거렸다. 

"오늘 아빠 촬영 취재하러 가는데 너도 같이 가자."
"어디 가는데?"
"오늘 아닉쉬체이에서 판소리 공연이 열린다."
"판소리가 뭔데?"
"아라리요~~~, 심청이가 바다에 풍덩~~~ 한국 전통 노래야."
"재미 없어. 그냥 집에 있을래."
"엄마 아빠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야돼."

이렇게 차 뒷자리에 딸아이를 태우고 빌뉴스에서 120km 떨어진 공연 도시로 향했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 받았다.

"반 친구들이 지금 버스 안에서 강남스타일을 듣고 있데."
"어디로 가는데?"
"가을 소풍."

그제서야 궁시렁거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동급생들이 1박 2일로 리투아니아 서쪽 끝으로 소풍을 가고 있었고, 요가일래는 엄마의 불허락으로 가지 못했다.

"난 지금 한국에서 온 유명한 가수가 부르는 판소리 들으러 간다."라고 친구 문자쪽지에 답했다.   

"판소리가 뭔지 모르니까. 네가 잘 듣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줘."
"난 재미없어."
"그래도 가서 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1시간 공연이 끝났다. 400여명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자 오랫동안 기립박수로 자신들의 감동을 표했다. 특히 리투아니아의 19세기 중반 유명한 시(詩)인 '아닉쉬체이의 숲'을 한국어로 판소리로 불러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촬영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달려와 졸라댔다.


* Pansori by PARK In-hye - Anykščių šilelis - korėjietiškai

"아빠, 저 언니하고 사진 찍어줘. 그리고 서명도 받게 해줘."
"판소리 재미없다면서?"
"우와, 정말 짱이야! 나도 배우고 싶어."
"봐바, 여기 오길 잘 했지?"
"아빠, 꼭 내 부탁 들어줘."


이렇게 사진도 함께 찍고, 서명도 받았다.


요가일래는 받은 서명을 자기가 자는 침대 바로 옆 벽에 붙여놓았다. 이 정도로 딸아이가 판소리에 호감을 가지게 되나니 좀 의외다. 이런 호감을 자라면서도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16. 07:32



음악학교에서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 딸아이가 선생님이 또 한국 노래를 부탁했다고 동요를 선곡해달라고 했다. 지난번에는 "노을"을 선택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노래를 추천할까 고민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한 에스페란티스토가 준 노래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한국인들이 즐겨부르는 한국의 가요, 가곡, 동요 등을 담고 있다. 동요편에서 세 곡을 뽑았다.

과수원길
반달
섬집아기

이 세 곡을 학교에 가져간 딸아이는 선생님이 반달을 선택했다고 했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달고 샃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반달은 지는 반달이야? 아니면 뜨는 반달이야?"
"글쎄다. 생각을 해봐야겠다."
"리투아니아어로는 지는 반달이 있고, 뜨는 반달이 있어. 이름이 서로 달라."
"뭔데? 지는 반달은 delčia(델챠)이고, 뜨는 반달은 priešpilnis(프리에쉬필니스)야."
"한국어에도 하현달이 있고, 상현달이 있어. 그런데 이 노래 속 반달이 하현달인지 상현달인지는 아빠도 공부해봐야겠다."

명쾌한 즉답을 하지 못해 부끄러웠지만 공부해보겠다라는 말로 순간을 모면했다. 반달 노래를 수없이 부르고 들었지만, 한반도 이 반달이 상현달인지 하현달인지 물음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반달은 음력으로 대략 7-8일이나 22-23일쯤 달에 지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지구에서 달이 반만 보이는 때의 달 이름이다. 그렇다면 동요 반달 속 반달은 상현달일까, 하현달일까? 고민이로다.

쪽배라.
뒤집힌 배로는 탈 수가 없다.
그런데 상현달이든 하현달이든 어느 시각에 보느냐에 따라 쪽배의 똑바름과 뒤집힘이 달라질 수 있다. 상현달일 경우 정오에는 쪽배가 뒤집혀있지만, 자정에는 쪽배가 똑바로 있다. 하현달은 반대이다. 
은하수라.
해질녘에 별이 뜬다.
이 무렵이면 상현달의 뒤집힌 쪽배는 서서히 똑바로 세워진다.
서쪽나라라
점점 똑바로 세워지는 상현달의 쪽배가 서쪽으로 잘도 가고 있다. 

조만간 반달 노래를 배우러 음악학교에 갈 딸에게 이렇게 말해야겠다.

* 2010년 12월 11일 오후 10시 23분에 초유스가 촬영한 상현달

"아빠 생각으로는 반달은 상현달이다. 선생님에게 리투아니아어로 priešpilnis라고 말해줘."

이렇게 해놓고도 동요 속 반달이 100% 상현달일까라고 고민된다. 물구나무서서 하현달을 보면 상현달로 보이겠지...... 같은 값이면 보름달을 향해 뜨는 반달이 그믐달을 향해 지는 반달보다 아이들의 밝은 정서에 더 맞을 것 같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15. 06:09

주말 초딩 딸아이는 혼자 500조각 퍼즐을 맞추면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쳐서 그런지 혼자 웃을 거리를 찾아나섰다. 
대상이 의자에 앉아 열심히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 아빠였다.
가만히 와서 아빠 머리 위에 퍼즐 상자를 올렸다.


그런데 아빠는 떨어뜨리지 않고 잘 견뎌내고 있었다.
딸아이는 신기한 듯 놀라면서 웃어대었다.
"아빠, 기다려! 인증샷 찍자."


딸아이는 카메라를 가져오더니 여러 각도에서 촬칵촬칵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이렇게 잘 견뎌내고 있어?"
"아빠는 한국인이라서. ㅎㅎㅎ"


딸아이가 머리에 얹어놓은 퍼즐 상자에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어머니의 물덩이가 떠올랐다.  
무엇이든지 머리에 잘도 이고 가던 
지난날 한국 여성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대답을 "한국인이라서"라고 했다.

"그럼, 엄마한테 가서 한번 실험해보자."하고 딸아이는 퍼즐 상자를 아내에게 가져갔다.
"어, 엄마도 잘 이고 있는데."
"엄마는 여자라서 ㅎㅎㅎ"

이렇게 퍼즐 상자 때문에 주말 밤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음의 순간을 맞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12. 06:28

"아빠, 내가 참 착하지?" 
"왜?"
"오늘 학교 갔다와서 텔레비전도 안 보고 컴퓨터도 안하고 계속 공부했잖아."
"그래. 네가 공부 많이 하면 아빠가 정말 기쁘다."
"나도 기뻐지."

한국으로 치면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리투아니아는 중학교 1학년생이다. 초등학교 시절과 가장 달라진 것은 숙제가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창의적인 숙제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일전에는 있었던 자연과목 숙제는 지렁이 잡기였다. 친구들과 모여서 지렁이가 살만한 곳을 찾아서 흙과 함께 지렁이 4마리를 잡아왔다. 


최근 미술 숙제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한 15명의 사람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빠, 오늘 리투아니아어 숙제가 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겠니?"
"자기가 읽은 동화를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는 거야. 그런데 난 한국 동화를 소개하려고 해."
"정말?"
"정말이지. 한국 동화 아주 재미있어. 아빠, 흥부와 놀부, 아니면 해와 달이 된 오빠와 동생, 아니면 까치의 보은을 할까?"
"네가 선택해야지."
"흥부와 놀부는 너무 길다. 까치의 보은이 좋겠다."

* 리투아니아어로 번역된 한국 전래 동화

덤으로 일전에 딸아이가 전해준 소식이다.

"아빠, 오늘 음악 시간에 우리 반 모두가 강남스타일 춤을 췄다."
"어떻게?"
"음악 선생님이 왔는데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강남 스타일을 틀어달라고 소리쳤지."
"강남 스타일 때문에 너도 기분 좋아겠다."
"물론이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동화를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려는 것을 보니 딸아이가 다문화 가정 아이로 밝게 자라고 있는 듯해 안심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9. 04:52

가을이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초딩 5학년생 딸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그칠 줄 몰랐다. 여름철이라면 한바탕 비가 쏴 내리다가도 이내 해가 방긋한다. 굵직하게 내리는 비를 창문 밖으로 보면서 전화가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이런 경우 종종 누나나 형이 우산을 들고 학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전화 소리가 울렸다.

"아빠, 비가 와."
"알았어. 학교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우산 가지고 금방 갈게."

이렇게 해서 800미터 떨어진 초등학교로 향했다. 학교 현관문 창문으로 보니 딸아이가 친구들과 재잘거리면서 놀고 있었다. 한참을 방관자처럼 지켜보았다. 아빠와 눈이 마주친 후에야 딸아이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비가 거의 안 오네. 아빠가 올 필요가 없어졌네."
"그래도 아빠가 올 땐 비가 많이 내렸지. 가방 이리 줘. 내가 들고 갈게."
"안 돼. 내가 들어야 돼."
"가방이 너무 무겁다. 아빠가 들고 간다!"
"아빠, 우기지 마. 내가 학생이야!"

이런 선택에서는 누군가 양보해야 한다. "내가 학생이야!"라는 말에 부녀(父女)의 실랑이는 끝났다.

아빠의 믿음직한 존재를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맞아. 군인은 총, 기자는 펜, 학생은 책가방을 들어야지!"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집으로 향했다.


그친 듯한 비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봐, 아빠가 오길 잘 했지?"
"고마워."

아무리 생각해도 딸아이의 가방이 무거워 보였다.

"집에 가서 네 책가방이 얼마나 무거운 지 한번 무게를 재어봐야겠다."

* 책가방를 메고 잰 무게(왼쪽), 책가방 없이 잰 무게(오른쪽): 책가방 무게는 4kg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딸아이는 정말 자신의 책가방이 무거운 지를 알았다는 듯이 책가방을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아빠, 무거워?"
"아니, 괜찮아."

책가방을 멘 한 쪽 어깨가 축 쳐지는 듯했지만 대답은 그렇게 했다. 비 덕분에 모처럼 아빠와 딸이 정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9. 28. 06:38

아내는 학교에서 일하고 초딩 딸은 혼자 집에서 있었다.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빠에게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딸아이가 급하게 말했다.

"아빠, 내가 안 했어!!!!"
"뭘 안 했는데?"
"부엌에 가 봐! 유리그릇이 깨졌어. 혼자 깨졌어."
"어떻게 유리그릇이 스스로 깨질 수 있니?"
"아빠가 아래 현관문(1층)을 열고 닫는 소리가 났을 때 그릇 깨지는 소리(3층)가 쾅하고 났어."
"너는 어디 있었는데?"
"내 방에서 숙제하고 있었어. 정말 내가 깨지 않았어."

1층 현관문을 닫는 순간 3층 우리 집 부엌에 있는 유리그릇이 떨어져 깨졌다.

불안해하는 딸아이의 주장을 일단 받아들이면서 안심시켰다. 이 사실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유리그릇이 냉장고가 있는 창틀 철상자 위에 놓여져있었다. 처음엔 안전하게 놓여져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살짝 닿아서 조금씩 밀려날 수 있었겠다. 현관문 닫는 파장 영향으로 불균형하게 놓여있던 유리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던 것이 아닐까......

아내가 가장 아끼던 유리그릇이 그만 깨져버렸다. 그렇다고 아내가 올 때까지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로 쓸어담으려고 했다.

"아, 잠깐만! 사진찍어서 엄마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자."
"그래 찍어!"


깨져있는 현장을 사진 찍는다고 해서 그릇이 절로 깨졌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엄마에게 현장을 보여주겠다는 초딩 딸의 순간적인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증샷 찍기가 습관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9. 27. 05:47

딸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5년생이다. 리투아니아 학제에 따르면 중학교 1학년생이다. 4학년 때까지와 비교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숙제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공부할 과제가 많아졌고, 또한 난이도도 훨씬 높아졌다. 그래서 늘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다.

최근 어느날 수학 숙제는 딸아이에게 아주 버거웠다. 축척과 거리 계산이었다. 지상거리와 도상거리를 구하는 것인데 책 어디를 뒤져봐도 공식이 없었다. 공식이 있다면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 아이들 스스로 공식을 만들어내도록 의도한 것일까...... 

참고로 인터넷에서 찾은 공식이다.
지상거리 = 도상거리 x 축척의 분모
도시거리 = 지상거리 / 축척의 분모
축척 = 지상거리 / 도상거리

"이제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되겠다."
"너무 힘들어."

다음날 학교에 간 딸아이는 첫 수업을 마치자 휴식시간에 전화했다. 학교에서 딸아이가 전화하면 우선 걱정이 앞선다. 딸아이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반 친구들이 전부 나를 고자질쟁이라고 놀리고 있어."
"진정해. 시간이 지나면 돼."라고 아내가 달랬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고자질쟁이가 되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딸아이는 친했다고 오랫동안 친하지 않은 반친구가 있었는데 최근 다시 친해졌다. 이 친구가 딸아이는 "새로운 저 남자 반친구가 마음에 들어."라고 속내를 말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 말을 다른 반친구들에게 확 불어버렸다. 

이어서 학생들은 '얼레꼴레리 얼레꼴레리 누구누구는 누누구구를 좋한대요'식으로 딸아이를 놀래대기 시작했다. 예민한 딸아이는 당황해서 그만 화장실로 가서 울음을 터트렸다. 찾아온 친구와 의논해 반전체를 상대하기엔 혼자 힘으로 역부족하다고 해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것을 안 반 학생들이 다음날 아침 학교 교실로 들어선 딸아이를 향해 일제히 고자질쟁이라고 놀래대었고, 딸아이는 혼자 견디기 어려워 아내에게 전화했다. 이런 땐 든든한 아빠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즉각 문자쪽지를 날렸다.

Himnera! Saranghe! uldzimalgo, huanedzimalgo, nogaczegoja!!!! 
Maumi gangheja denda!
힘내라! 사랑해! 울지말고, 화내지말고. 너가 최고야!!! 마음이 강해야 된다!

* 딸아이는 최근 출장다녀온 아빠에게 종이를 접어서 만든 하트를 선물했다

"이럴 때 오빠가 있어 같은 학교에 다니면 참 좋을텐데."
"맞아. 나도 오빠가 둘이 있어 아무도 나를 놀리거나 건들지 못했지."라고 아내가 맞짱구쳤다.

3교시 수업이 끝나자 딸아이가 또 전화했다.

"아빠, 이제는 괜찮아. 선생님이 와서 말했고. 친구들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래, 잘 되었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마음을 말하지마. 그리고 놀린다고해서 금방 선생님한테 달려가지 말고, 일단 참아!"

한편 이번 경우를 통해 놀림을 당하는 아이 뒤에는 선생님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심어준 것 같다. 딸아이가 내일부터는 다시 밝은 모습으로 학교로 갈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8. 6. 04:17

리투아니아 여름방학은 길고 길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가 방학이다. 이렇게 긴 방학도 이제 한 달도 남겨놓지 않고 있다. 

방학 내내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지 말라", "컴퓨터 사용시간을 꼭 지켜라"라는 아내의 부탁 말이 매일 귀에 들린다. 딸아이가 컴퓨터를 하루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이다. 대부분 딸아이는 한국에 잠시 가 있는 한국인 친구와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와 인터넷 대화를 하면서 같이 게임을 즐겨한다. 컴퓨터 외에 텔레비전을 두 시간 시청할 수 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딸아이는 책을 읽거나 인형 등을 가지고 논다. 어느 날 딸아이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부탁했다. 그리고 거실 문을 닫더니 혼자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들어가려고 하니 나중에 부르겠다고 했다. 

딸아이가 식구들을 모두 불렀다. 딸아이는 카메라에서 사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한 편의 만화영화를 보는 듯했다. 딸아이가 찍은 사진은 400여장이나 되었다. 한 동작 찍고, 인형을 옮기고, 또 한 동작 찍고 옮기기를 반복했다.   


딸아이는 카메라 메모리칩에 지우지 말고 보관하라고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재미난 사진 만화영화 놀이를 그냥 컴퓨터에만 사진으로 보관하기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딸아이가 카메라에서 연속으로 보여준 사진 동영상을 직접 컴퓨터에서 작업을 해보았다.  
 

지루한 방학, 길고 긴 하루를 이렇게 400컷 사진을 찍어 만화영화를 만들어본 초딩 딸아이가 기특해보였다. 그렇다고 컴퓨터 사용시간을 세 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7. 23. 06:44

한국에서 오신 스승님 일행을 6월 25일 바르샤바에서 맞이했다. 스승님은 원불교 좌산 상사님이시다. 교단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를 두 차례 역임하셨다. 상사님을 1982년 대학생 시절 종로교당에서 처음 뵈었다. 지금 유럽에서 살 수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해준 분이다. 에스페란토 공부와 원불교 교서 번역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셨다. 

7월 4일 떠나는 날까지 모시면서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스승님과 함께 한 시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었다. 스승님이 떠나신 날 저녁부터 잘 때까지 10살 딸아이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10일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딸아이 마음 속에 차지한 비중이 아주 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라트비아 룬달레 궁전에서 스승님과 요가일래
▲ 짧은 한복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해 동안 입을 수 있는 예쁜 한복을 선물해주셨다. 

스승님께서 계시는 동안 일어났던 여러 일화 중 하나를 소개한다. 주무시는 방에 12장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다. 마침 6월에서 7월로 넘어가는 때였다. 월을 바꾸기 위해 벽에서 달력을 떼내는 순간 함께 걸려 있던 도자기 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딸아이가 노래 공연에서 받았던 상품이었다. 방을 지나가는 데 스승님께서 부르셨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깨어진 새를 보여주시면 말씀하셨다.  

"내가 달력 월을 바꾸려다가 그만 새를 바닥으로 떨어뜨렸어요."
"괜찮아요. 원래부터 새가 견고하게 붙어있지 않았어요."   

이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떠나시기 직전이었다. 다 함께 거실에 앉아서 감상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스승님께서는 벌써 쓰레기통으로 버리셨을 듯한데, 깨어진 새 조각을 챙겨서 앞에 놓아두셨다. 그리고 딸아이 요가일래를 부르셨다.   


"내가 요가일래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하나 있는데, 할아버지가 잘못해서 이 새를 그만 깨뜨렸어요."
"할아버지, 괜찮아요."

그래도 상품으로 받은 예쁜 새가 아까운 듯 딸아이 눈에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스승님 일행을 환송하기 위해 온 식구가 공항으로 나갔다. 집으로 돌아와자 딸아이는 무엇이 급한지 물었다.

"아빠, 그 깨어진 새가 어디 있어? 쓰레기통에 버렸어?"
"왜?"
"깨어졌지만 할아버지 기념으로 오랫동안 보관하려고."
"아빠가 벌써 잘 보관하고 있어. 그런데 새를 보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마음 속에 보관해야 돼."
"뭔데?"
"지위와 노소를 떠나서 누구나 실수했다면 직접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법이지."
"아빠 말이 어렵다. 할아버지라도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말이지?"
"그래. 아이라도 할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말도 되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7. 20. 06:14

유럽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자라는 요가일래(10살)는 모태에서부터 아빠와는 철처히 한국어로만 말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말만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한국어를 읽고 쓰는 능력도 점점 갖춰야 할 시기이다. 하지만 당장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경에 살고 있지 않으므로 딸아이는 그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제 너도 한국말을 읽고 쓸 수가 있어야 돼."
"아빠, 나 한국말 잘 하잖아. 필요없어."
"아니, 말하기가 아니라 읽기와 쓰기야."
"우리는 리투아니아에 살잖아."
"나중에 한국에 가서 살 수도 있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조금씩 공부하면 좋잖아." 
"해볼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이야기는 뭔데?"
"흥부와 놀부지."
"그렇다면 흥부와 놀부 책을 읽으면서 글자를 베껴써보자."
"알았어." 
"억지로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을 때 해. 끝내면 아빠가 선물을 줄게."
" 뭔데?"
"네가 미리 알아버리면 의욕이 사라지니까 말 안 할거야." 


이렇게 요가일래는 2012년 1월 16일 흥부전 책을 베껴쓰기를 시작했다. 딸아이가 할 일이 없어 무료함을 느낄 때 가끔씩 흥부전 읽고 쓰기를 권했다. 정말 끝까지 해날까 궁금하기도 했다. 


요가일래는 마침내 6월 27일 "그 뒤로 놀부는 착한 사람이 되어 흥부와 오순도순 의좋게 살았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다 베껴썼다. 10살 딸아이가 처음 시작한 후 만 5개월이 지났다.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책 다섯 쪽 분량 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강요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룬 성과였다.

"아빠, 이렇게 다 써고나니 내가 한국어를 더 잘 하는 것 같아."
"그래. 바로 그런 자신감을 너에게 주는 거야.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다른 책을 베껴쓰자."
"재미있네."
"무슨 책을 선택할까? "네가 좋아하는 신데렐라 책은 어때?"
"양이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해볼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6. 25. 10:47

며칠 전 집 안에 같이 있던 딸아이가 오랫동안 기척이 없었다. 무엇을 하기에? 궁금했다. 얼마 후 부엌에 가보니 잠잠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열심히 과자를 오븐에서 굽는 일을 혼자 하고 있었다.


군것질을 잘 하지 않는 것도 대견한데 이렇게 직접 과자를 만들다니...... 아빠의 기쁨은 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딸아이가 굽은 과자는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바삭바삭한 것이 아빠의 시원한 맥주 안주로도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