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그리스2021. 8. 6. 15:30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이 발생한 이후로부터 백신접종을 한 후 6월 중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리스 이오니아 제도 자킨도스 섬으로 여행을 결정하면서 어디가 가장 가볼만 곳인가를 검색해봤다. 단연코 나바지오 해변(좌초선 혹은 난파선 해변)과 이곳을 절벽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최상위에 올라와 있다. 특히 이 해변은 KBS TV 텔레비전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그리스 촬영지다. 이 덕분에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한류팬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2018년 여론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선정되었다고 하니 안 가볼 수가 없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나바지오 해변은 그리스 자킨토스 서북부에 있다.

나바지오 해변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도보로는 접근이 불가능한다. 유일한 방법이 투어상품을 구입해 배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자킨토스에 도착해 이 해변 저 해변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았다. 더우기 반드시 배를 타야만 하니까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동하는 버스나 차에서도 어지러워 책을 읽지 못하는 아내가 파도따라 출렁이는 배 타기를 아주 질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벽 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나바지오 해변 풍광이라도 즐기기로 했다. 자킨토스 섬 어디에서라도 이곳을 쉽게 갈 수 있다. 물론 여행자에겐 대중교통수단이 아니라 렌트카로다. 나바지오는 섬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방문 시간이 중요하다. 아침 시간대에는 절벽이 해변을 그늘지게 함으로 햇빛이 빚어내는 광채나는 비취색 바다과 하얀색 해변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특히 여름철 정오대는 뜨거운 햇빛이 기다리고 있다. 여름철은 대체로 늦은 오후(4시경부터)가 좋다. 
 

나바지오 해변은 이렇게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숙소가 있는 라가나스(Laganas)에서 전망대까지는 34km인데 소요시간은 53분으로 나온다. 리투아니아에서 이 주행거리라면 25분 정도 걸린다. 50분 정도 예상되니 산악길이 예사롭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에다가 가파란 절벽 위에 있을 듯하다. 다행히 내 짐작은 다 맞지 않았다.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겪었던 그런 험준한 길[포르멘토르 등개까진 탄성과 지옥 길]은 아니였다. 
 
라가나스를 벗어나자마자 도로는 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도로 양옆에는 수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이 환영하고 작별한다. 도로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드물게 나타나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거리에는 중앙선 표시가 업다. 시야도 좁으니 자연히 속도를 멈출 수밖에 없다. 
 
구불구불한 길에 이르면 짐벌로 촬영을 하는 나를 대신해 운전하는 아내는 속도를 더 높인다. 마치 F1 곡선 주행의 묘미를 맛보기라도 하는 듯하다. 실은 갑자기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내가 몸을 미리 움직어 놓는 것이다. 아내는 이를 보고 내가 재미있어서 그러는 줄로 알고 더 빨리 달린다. 남의 속도 모르고 자기 마음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이 어찌 이 일뿐이겠는가...
 

 

마리에스(Maries)를 벗어나 계속 북쪽을 향하자 도로 좌우 산에는 그리스 대화재의 흔적이 역력하다. 2007년 6월부터 8월까지 그리스 곳곳에 산불이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 화재로 그리스 전체 면적 2%가 불태워졌고 자킨토스 섬도 큰 피해를 입었다. 
 
성 게오르기우스 크렘몬(St. George Kremnon) 수도원을 지나 나바지오 해변 전망대로 방향을 왼쪽으로 하는 지점에 차량 통제원을 만난다. 전망대 접근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원활한 주차관리를 위해 차량수를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명소이니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일지라도 많은 관광객들이 미리 와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장에 가지 그렇지가 않다. 여러 언어로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상인 모녀가 관광객수와 손님이 거의 없음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하다. 
 
 
사진으로 본 나바지오 해변이 바로 눈앞에 펼쳐질 줄 기대했는데 흔히 보이는 넓은 바다가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 어디에 꼭꼭 숨어있을까? 일단 사람들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본다. 저기 낮은 돌벽과 철막대 난간이 보인다. 전망대 의자에 앉거나 서서 한참 동안 마음껏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허무하게 무너진다. 뙤약볕에 줄을 서 있는 뒷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슬아슬 위험한 절벽이라 나바지오 절경을 볼 수 있게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나바지오를 이렇게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하는 동안 몇 십초에서 1-2분 이내로 봐야하다니... 아쉽고도 아쉽다. 다음에 혹시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혼자라도 투어상품을 이용해야겠다. 퍼뜩 동영상을 찍고 얼릉 사진을 찍고 난간 자리를 뒷사람에게 내어준다. 아래 영상은 나바지오 해변 전망대에서 6월 16일 오후 4시에 찍은 것이다. 해변 일부에는 아직 그늘이 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물감을 온통 뿌려놓은 듯한 파란 비취색 바다와 바다로 기어들어가는 악어를 가로로 반 잘라놓은 듯한 수직 절벽이 낭떨러지 공포감을 잠시 감추어주고 탄성을 드러내준다. 대리석의 하얀색과 모래사장의 하얀색과 파도거품의 하얀색이 서로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하나가 된 듯하다. 때묻지 않은 천연의 고립된 모래해변에 물욕으로 가득 찼던 녹슬어 가는 난파선이 한 덩어리를 이뤄 황홀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염정제법 제호일미가 떠오른다(더럽다 깨끗하다 등 일체의 분별을 떠나서 본래의 참다운 모습은 평등무차별한 하나다).          

 

하얀 절벽과 하얀 모래사장에 난파선이 녹슬어 가고 있다. 

찰나 같은 순간이지만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에 만족해본다. 혹시나 한동안 사람들이 전혀 오지 않을 때를 기다리면서 난간 주변을 둘러본다. 시간이 갈수록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난간을 바다쪽으로 좀 더 길쭉하게 낼 법한데 말이다. 2018년 나바지오 절벽 일부가 떨어져 나가 일시적으로 해변이 폐쇄된 것을 고려한다면 충분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쉽게 공감이 된다. 절벽에서 해변까지 이르는 수직승강기 설치를 순간적으로 떠올려보지만 다 만족해버리는 것보다는 어느 여행이든 약간의 여운과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이라는 믿음에 위안을 삼는다.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촬영하는 순간에만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내내 아쉽다.

 
잠시 후 난간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돌발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가 스마트폰을 그만 놓쳐버렸다. 불행히도 난간 위가 아니라 낭떠러지 위로 떨어졌다. 두 서너 명이 서로 손을 잡으면 쉽게 주울 수 있는 거리다. 그리스 현장 통제원은 한치도 양보없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스마트폰을 놓친 네덜란드 부부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난감해 한다. 이런 일이 한 두 번 일어난 것이 아닐텐데 아무런 도구가 비치되어 있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    
 

야속하게도 스마트폰이 난간에서 손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떨어지고 말았다. 

남편은 어렵게 주변에서 구한 마른 나뭇가지 두 개를 묶어 스마트폰을 끌어당겨본다. 실패다. 부인은 가게에 가서 빗자루를 빌려온다. 이 또한 실패다. 아내가 다시 나무판자 막대기를 구해온다. 하지만 묶을 끈이 없다. 주변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부부만 애를 쓰고 있다. 야무지게 묶어야 하는데 좀 떨어진 곳에서 보니 서툴어 보인다.

 

내 반바지 끈으로 야무지게 묶는다

누군가 도와줘야 되는데 그 누군가가 되고 싶어진다. 크게 쓸모가 없는 내 반바지 끈을 풀어서 막대기와 빗자루를 묶는 것을 돕는다. 물론 끈이 없는 내 반바지가 밑으로 훌렁 내려가지 않도록 배를 불룩 내밀면서 말이다. 부인도 자신의 안경줄을 급히 풀어 보탠다. 아쉽게도 이 도구 또한 실패다. 스마트폰은 야속하게도 절벽 끝쪽으로 더 가버린다. 이를 어찌할꼬?!  
 
 
부인이 번떡이는 기지를 발휘해서 차에서 갈고리를 가져온다. 이렇게 나와 남편이 합심해서 묶고 하니 누군가 좋은 끈을 건네준다. 이렇게 갈고리, 막대기, 빗자루 모두 세 개를 꽁꽁 묶어 스마트폰을 난간 쪽으로 끌어당겨본다. 이번에는 성공이다. 네덜란드 부부는 감사의 뜻으로 가게로 가서 음료 대접으로 사례하고자 한다. 이를 극구 사양하면서 "우린 한국과 리투아니아에서 온 부부다"라고만 말하고 작별한다.
 
이렇게 발 아래로 내려다 본 것만이라도 감사해야겠다.
"우리가 여기를 빨리 떠나지 않고 서성거린 이유가 바로 저 부부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닐지..."
"나바지오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이런 돌발사고로 더 추억거리로 남게 되네."   

 

이상은 초유스 가족의 그리스 자킨토스 여행기 2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21. 4. 26. 20:15

크로아티아 자다르(Zadar) 페트르차네(Petrčane) 현지인 친구 집에서 머물면서 인근에 있는 닌(Nin 위치)을 다녀왔다. 닌은 인구 3천명도 되지 않는 작은 휴양도시지만 중세시대 크로아티아 첫 수도였고 크로아티아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도시다. 닌은 크로아티아 국가의 요람이고 크로아티아 국민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우리 일행은 먼저 천일염전(Solana Nin 위치)을 찾았다. 1500년부터 지금껏 전통방식대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음을 염전 박물관의 벽화가 잘 말해 주고 있다. 기계가 아니라 바닷물을 끌어들여 햇볕과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고 있다. 

 

박물관이자 안내소이자 판매소까지 겸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소금생산 과정을 담은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소금 운송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직원 서너 명은 소금을 구입하는 방문객들을 안내하거나 계산하는 데 분주하다.

 

큰 자루에 담아 전시해놓은 소금이 눈길을 끈다. 왼쪽부터 소금꽃, 천일염, 가는 소금이다. 닌 소금의 대명사는 바로 소금꽃(꽃소금 cvijet soli, flower of salt, feur de sel)이다. 여기 소금은 요리뿐만 아니라 건강제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닌 천일염전을 안내사와 함께 둘러 본다.

 

염전에 왔으니 소금을 먼저 볼 줄 알았는데 안내사는 가둬 놓은 바닷물 속을 먼저 보여준다. 그는 두 손으로 염전에 자라고 있는 아주 작은 물고기인 씨몽키(sea monkeys, brine shrimp)를 떠서 보여준다. 이런 동물도 물이 증발된 후 소금에 함유되어 독특한 맛을 내는 데 기여한다.  

 

사진만으로 보면 갈대가 자라고 있는 호숫가나 강가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겠다. 닌 염전에는 갈매기도 보이고 녹색 풀도 자라고 있다. 이 녹색풀의 정체는?

 

이 염생식물의 정체는 퉁퉁마디(salicornia europaea, salicornia, saltmarshes)다. 염전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이 또한 소금생산 과정에서 활용돼서 유기 미네랄 소금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먹어보니 톡톡 씹히면서 김치를 만들기 위해 절여 놓은 배춧잎을 먹을 때 나는 맛이다.

 

소금꽃을 생산하는 과정을 지켜 본다. 소금꽃은 세계 음식 애호가들 사이에 소금의 캐비어로 불러어진다. 소금꽃은 밝고 섬세하고 촉촉한 맛을 가지고 있다.

 

소금꽃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수세기 동안 동일한 전통과 기술로 만들어진다. 수분이 점차 증발되면 남아 있는 바닷물 위에 부유하는 소금층이 생긴다. 마치 살얼음같다.     

 

넓직한 사각형 채에 이 부유층을 담는다. 그러면 수분은 밑으로 빠지고 보송보송하고 촉촉한 소금은 남는다. 

 

이를 통에 담고 가득 차면 큰 통으로 옮기고 다음에 건조시킨다. 햇볕에 붉게 그을린 그의 피부가 작업의 고됨을 말해주고 있다. 하루에 보통 소금꽃 400kg을 채취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꽃은 아래 통에 담겨 판매되고 있다. 이곳에서 소금꽃 10kg을 구입해 한동안 맛있는 청정 소금을 먹었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북유럽 리투아니아는 천일염이 생산되지 않아서 소금은 전적으로 수입인데 대부분 암염이다. 불순물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고대에는 소금 1온스가 금 1온스와 물물교환될 만큼 소금이 귀하고 비쌌다. 급여나 월급의 의미를 지진 샐러리(salary) 단어는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sal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로마시대 소금을 병사들에게 급여로 지급한 것이 살라리움(salarium)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기에서 샐러리(salary) 단어가 나왔다. 

 

 

염전 관광을 마친 후 우리는 닌의 중심으로 향한다(주차장 위치). 방어 목적으로 석호 안에 있는 섬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저 바다 건너가 닌이다. 

 

닌 중심이 있는 섬과 육지를 잇는 석교 근처에 오른손을 쭉 뻗어 검을 들고 있는 동상이 나온다. 보기에도 위엄이 넘친다. 크로아티아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라 여겨 일단 사진을 찍고 돌아와 누구인지를 검색해봤다. 브라니미르(Branimir)로 879년에서 892년까지 크로아티아를 통치한 공작이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크로아티아 해안 지역의 독립성을 강화했고 요한 8세 로마 교황으로부터 이를 확인 받게 되었다. 879년 6월 7일 역사상 최초로 그는 합법적 통치자로, 크로아티아는 합법적 국가로, 닌은 합법적 수도로 승인 받게 되었다. 최초의 크로아티아 국가 승인 1128주년을 맞아 2007년 현재의 자리에 4미터 높이의 동상이 세워졌다.  

  

중심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거대한 동상을 만난다. 스플리트(Split)를 먼저 구경하고 온 사람은 엄지 발가락을 보자마자 이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르구르 닌스키(Grgur Ninski, Gregory of Nin)다. 이름에서 보듯이 닌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르구르는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크로아티아어 이름이다.

 

900년에서 929년까지 로마 가톨릭 닌 주교구의 주교다. 그는 그때까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로만 진행되던 미사에 크로아티아어를 도입했다. 이는 크로아티아 언어와 문화에 아주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 왕국 내 기독교를 더 강하게 했다. 그르구리 주교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다. 참고로 925년 토미슬라브(Tomislav) 공작이 크로아티아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렇게 닌에서 만난 두 동상 덕분에 크로아티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두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의 동상 엄지 발가락을 손으로 문지르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전해진다. 세상에 행운을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이미 황금색으로 변했다. 누군가 문 지를 때마다 저 황금이 그 사람 지갑 속으로 쑥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오전이라 중심 거리는 조용하고 한산하다. 

 

한적한 거리를 따라 조금 더 가보면 오른쪽에 크로아티아 최초의 주교좌성당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성 안셀름(Anselm) 성당이 나온다. 크로아티아 왕국 시대(925-1102) 닌의 주교좌성당이다. 6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여러 차례 복원이 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8세기부터다.

 

남유럽 나라이라서 그런지 성당(St. Anselm) 이름이 생소하다. 안셀름(안셈 안셀무스 1033-1109)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1093-1109)를 지냈고 스콜라 철학(기독교 신학 중심의 철학적 사상)의 창시자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면 고대 로마의 가옥 유적 가운데 세워진 조그만 성당이 나온다. 9세기 초기 로마네스크 로마 가톨릭 성 십자가 성당(Holy Cross)이다. 크로아티아 공국 시대(626-925) 공작의 왕실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주교좌성당은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교좌성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근처에 1세기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재임 69-79) 때 지어진 유적지가 있다.      

 

자다르에서 닌으로 들어오가나 나갈 때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탑 모양의 조그마한 석축 성당이 보인다. 성 니콜라우스(니콜라이) 성당(위치)이다. 선사시대 피라미드 무덤 위에 12세기에 세워졌다. 길이가 5.90미터, 폭이 5.70미터, 높이가 6미터다.

 

지금도 12월 6일 성 니콜라우스 축일과 4월 25일 성 마르크(마가) 축일에 미사가 행해진다. 중세시대 닌 중심에서 대관식을 마친 일곱 명의 왕이 이 성당까지 말을 타고 와서 대중에게 자신 모습을 보였을 만큼 작지만 유서깊은 성당이다.   

    

붉은 지붕과 성 안셀름 성당 종탑이 보이는 곳이 바로 닌의 중심이다. 

 

이제 해수욕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닌 중심과 석호가 내려다 보이는 크랄위치나 해수욕장(Kraljičina plaža 왕비 해수욕장)이다. 지금껏 가본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 해수욕장 대부분이 자갈이었는데 여기는 발트 해변에서 주로 보는 부드러운 모래다.

 

 

알아보니 모래사장 길이가 8km로 크로아티아에서 제일 긴 모래 해수욕장이다. 크로아티아 초대 국왕 토미슬라브가 이곳에서 왕비와 함께 잊을 수 없는 황홀한 일몰 전경 등을 즐긴 것에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일광욕을 즐기면서 이따금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온몸을 완전 까맣게 칠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광활한 모래사장 어딘가에 진흙탕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궁금해서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기니 정말 진흙탕이 나왔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넓은 치료용 진흙탕이 바로 여기다. 노천 무료 진흙탕이다. 누구나 와서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긴 뒤 비취색 바다로 첨벙해서 첩첩 산맥을 바라보면서 수영을 한다. 이 여행의 즐거움을 어찌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해수욕 일광욕 진흙욕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곳이 바로 여기다. 이 해수욕장이 크로아티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수욕장 하나로 손꼽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오늘날 닌은 비록 그 규모가 작지만 중세 크로아티아의 수도였고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자다르(Zadar) 등 인근 도시에서 여러 날 동안 묵는 여행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다.    

 

아래는 닌 천일염전 방문을 담은 동영상이다.

 

 

이상은 초유스의 크로아티아 가족 여행기 1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크로아티아 여행기

1편 | 2편 | 3편 | 4편 | 5편 |

Posted by 초유스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으로 거주국인 리투아니아에 머물러야 하는 올해 틈틈이 4K 워킹투어 길거리 영상 등을 찍고 있다. 일전에 가족과 함께 리투아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클라이페다를 다녀왔다. 수도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300km 떨어져 있고 왕복 4차선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여름철 고속도로 제한속도가 시속 130km이므로 3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다.   


참고로는 리투아니아는 자가용 승용차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따로 없다. 9인승 이상 승합차나 버스 그리고 3.5톤 이상 화물차 등은 도로세[1일 6유로 내지 11유로 - 관련사이트 vignette tariffs]을 내야 한다. 지정된 주유소나 인터넷으로 통행권을 구입할 수 있다. 


클라이페다[Klaipėda, Klaipeda]는 발트해에 접해 있는 리투아니아의 유일한 항구도시다. 옛부터 부동항으로 해상 물류와 교통의 요충지다. 인구 15만명인 클라이페다는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시내 중심가를 흐르는 다네 강을 따라 바다쪽으로 나아가는데 눈에 들어오는 목골 건물들의 모습이 낯설다. 리투아니아가 아니라 독일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클라이페다는 1252년 독일 기사단이 세웠고 옛 이름은 메멜(Memel)이다. 1919년까지 프로이센에 이어서 독일에 속했다. 1차 대전에 패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이곳을 연합국에 빼앗겼고 프랑스가 임시로 통치했다. 


1923년 리투아니아인 거주자들이 반란에 성공함으로써 리투아니아에 흡수되었다. 1939년에서 1944년까지 다시 독일에 속했고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 리투아니아 땅이다. 전체 클라이페다 인구의 6%가 러시아인들이다. 


* 클라이페다 극장광장



이날 우리가 도착한 무렵이 저녁이었다. 우선 야간의 클라이페다 구시가지를 둘러본다.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임에도 레스토랑이나 술집 야외 좌석은 사람들로 거의 다 차 있다.           



다음날 아침 쌀쌀하고 구름낀 날씨를 아쉬워하면서 클라이페다 구시가지 여기저기를 걸어서 둘러본다. 



오후로 접어들자 기온은 여름날이다. 일광욕뿐만 아니라 해수욕까지 기대하면서 클라이페다 맬른라게(Melnrage) 해변으로 향한다. 바닷물 가까이에 가니까 물렁물렁한 해파리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해파리가 그야말로 천지 삐까리다. 



해수욕을 할 수 없으니 커피가게가 있는 저 멀리까지 쭉 걸어가본다.



리투아니아 올해 9월은 50년만에 찾아온 따뜻한 날씨다. 여름철에 못한 해변 일광욕을 이날 짧으나마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 서쪽 대서양에 위치해 있는 카나리아 제도는 주요 섬 7개(라팔마, 테네리페, 라고메라, 엘이에로, 그란카나리아, 푸에르테벤투라, 란사로테)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에는 먼저 란사로테(Lanzarote)를 방문했다. 푸에르토델카르멘(Puerto del Carmen, 푸에르토 델 카르멘)에서 묵으면서 해변산책, 해수욕 그리고 일광욕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아내에게 관광회사를 통해 전일관광(

Grand Tour

)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일광욕을 좋아하는 아내는 마지 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 숙소 바로 앞까지 관광버스가 온다. 먼저 몇몇 도시를 들러서 예약한 손님들을 태운다. 해변도시를 벗어나 내륙 산악지대로 들어갈 수록 땅은 더욱 척박하다.

종종 이렇게 가꾸어진 푸른 식물들을 만나면 웬지 기분이 상큼해지고 눈이 즐거워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저 화산재 밑에 숨어 있을까...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구경한 첫 번째 장소가 엘골포(El Golfo)다. 작은 어촌이다. 이름 그대로 조그마한 만이 형성되어 있다. 좀 더 왼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녹색 석호가 있다. 단체관광이라 그기까지 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반대쪽 산기슭을 자세히 보면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18세기 화산 분화로 뜨거운 용암이 바다로 흘려들어갈 때 차가운 조류가 만들어낸 자연의 조각작품이다.

 

다음 행선지는 1895년 시작된 염전(Salinas de Janubio)이다. 석호의 바닷물을 초기엔 풍차, 지금은 전기펌프로 끌어올려 자연 증발시켜 소금을 만든다. 연 2,000-15,000 소금을 생산한다. 검은색 화산석 둘레에 쌓여 있는 소금의 하얀색이 더욱 하얗게 보인다. 여기가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염전이다.

오늘 투어의 최고 명소 중 하나인 티만파야(Timanfaya)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여러 색깔의 토양, 크고 작은 분화구, 기암괴석, 완만하게 경사진 산 그리고 나무 한 그루도 없는 지형이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행성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달이나 화성이 아니라 국립공원 박물관 주차장이다. 여기서는 낙타타기 선택관광을 할 수 있다. 두 줄로 쭉 앉아 있는 낙탁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옛날 낙타는 란사로테에서 농사와 운송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가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관광객들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

미리 예약할 필요가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현장에서 지불하면 된다. 낙타타기는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마치 산을 넘어가는 대상의 행렬을 보는 듯하다. 우리 가족은 천성적으로 동물을 이용해 하는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찾아간 곳은 주차장 가까이에 있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카나리아 제도의 주민들이 어떻게 낙타를 활용했는 지를 잘 전시하고 있다. 단봉낙타등에 여러 도구를 얹어서 때론 교통 수단으로 때론 운송 수단으로 활용했다. 아래 사진 속 초록색 물건은 낙타안장이다. 낙타등 위에 얹어서 양쪽으로 각각 한 명이 탄다.      

다시 관광버스는 꾸불꾸불한 아스파트길을 따라 이동한다. 특히 아스팔트 길 밖으로 나가서 걷는 것은 금지다. 용암 위 걷기는 화산 물질에 해를 끼치거나 지의류(화산석에 자라는 유기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밑에 동굴이 있을 수 있는 얇은 용암 표면을 걷는 것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다. 

전일관광의 최고 백미는 티만파야 국립공원 안에 있는 불의 산(Montañas del Fuego)이다. 공원 입장료는 성인 12유로다. 사람들이 빙 둘러 모여 무엇인가를 내려다 보고 있다. 무슨 일일까? 

공원 직원이 긴 철봉 끝에 나뭇가지 뭉치를 매달아 바위 틈 사이로 밀어넣자 곧 불이 활활 타오른다. 그냥 구덩이로 보이지만 실상은 불구덩이다. 

 

이제는 직원이 물 한 동이를 쇠구멍에 부어 넣자 조금 후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수증기가 치솟는다. 화산 지열이 아직도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하 13미터 깊이에 온도가 섭시 100-600도이다. 티만파야에서 마지막 화산 분화는 1824년에 일어났다. 

이곳에 자리잡은 엘디아블로(El Diablo) 레스토랑의 화덕은 정말 환상적이다. 요리 연료비가 0원이다. 지하 10미터에서 올라는 약 300도의 지열로 음식을 요리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이 또한 란사로테 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예술공간으로 변모시킨 스페인 예술가 세사르 만리케(César Manrique)의 작품이다.     

개별여행이라면 이 레스토랑에서 꼭 식사를 해보고 싶은데 단체여행이라 미리 정해진 식당이 다른 곳에 있다. 아쉽고 아쉽다. 저 화산지열로 구운 요리를 맛보는 기회가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길 바란다. 

동정녀의 망토(Manto de la Virgen)로 불린다. 붉은색이 금방이라도 이글거리는 용암을 뿜어낼 기세다. 이런 신기하고 기이한 형상을 지닌 바위를 여기저기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스팔트 길 옆 용암벽이 버스보다 더 높다. 휴, 다행히 식은 용암이다. 그래도 두려움이 검은 용암벽을 따라 눈 안으로 들어온다.  

내려다 보이는 것이 엘디아블로 식당이 있는 불의 산 시설물이다.     

단체로 먹는 점심식사다. 푸짐하고 맛있다.

만차블랑카(Mancha Blanca)에 있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1730-1736년 화산 분화로 용암이 마을을 향해 흘러내려 왔다. 이때 주민들이 고통의 성모 마리아 상을 이웃 마을 티나조(Tinajo)의 산 로케(San Roque) 성당에서 빌려서 기도 행진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용암이 식어서 멈췄다. 이 자리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기적을 일으킨 성모 마리에 감사하기 위해 성당을 건립했다.    

이어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란사로테의 주요 포도주 산지인 라게리아(La Geria)다. 란사로테는 아주 특이하게 포도농사를 짓는 곳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화산으로 황폐화된 극한 토양에서 포도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회색빛의 산정상 가까이까지 반원형 돌벽이 빼곡히 쌓여 있다. 1730년대 화산 분화가 있기 전까지 란사로테는 농업이 번성한 섬이었다. 연속으로 일어난 화산 분화로 인해 땅 위에는 재와 자갈의 두꺼운 층이 형성되었다. 
처음에 농민들은 이것을 재앙으로 봤지만 영양소가 풍부한 화산 토양이 특정 작물을 재배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스펀지같은 성질이 있어 물을 빨리 흡수하고 오랫동안 수분을 보존한다. 재는 일종의 절연체 역할을 해서 비록 공기 온도가 오르내리더라도 토양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화산 분화 후의 란사로테는 포토재배에 아주 적합하게 되었다. 포도는 화산재 토양에서 잘 자라고 완만하게 높아지는 경사면은 포도나무에 이상적이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포도가 필요한 반복적인 냉온 변화를 준다. 낮에는 따뜻하고 거의 늘 맑고, 밤에는 춥다. 온도 차이는 포도가 산도(추운 밤)와 단맛(따뜻하고 맑은 낮) 둘 다 발전시키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주된 문제 하나가 있다. 바로 바람이다. 한결같이 대서양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이는 윈드서핑이나 카이트서핑에는 최고다. 하지만 어린 포도나무를 흔들어 넘어뜨리거나 뿌리채 뽑아 버릴 수 있다. 농민들은 그 해결책으로 화산 토양에 넓고 얕은 구멍을 파서 어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주변에 돌을 쌓아 반원형 바람막이 벽을 만들었다. 
벽의 높이와 구멍의 깊이가 매우 중요하다. 어린 포도나무가 그림자에 방해받지 않고 그대로 햇빛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한 화산 토양으로부터 영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얕아야 한다. 포도농장마다 이런 구멍과 벽이 수천 개나 된다. 한 그루마다 바람막이 벽이 필요하니 얼마나 많은 노고와 정성이 깃들어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포도주 시음을 한다. 포도주 전문가 아니라 그 맛을 묘시하기가 힘든다. 황폐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특이한 포도재배법을 찾아낸 란사로테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뜻으로 우리도 포도주 2병을 구입한다. 다시 버스는 북쪽을 향해 달린다. 절벽 위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여러 시간 동안 사람을 제외한 움직이는 생물체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땅에 떨어진 마른 나무줄기와 비슷하게 생긴 도마뱀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한다.   

싱싱한 초록색 잎과 분홍색 꽃이 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그동안 재빛색 화산석에 찌들어 있는 내 눈을 잠시나마 정화시켜 준다.

저 아래 계곡에 있는 하얀색 도시가 아리아(Haría)다. 발 밑은 급강하 천길 낭떠러지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예민한 사람은 전일관광을 떠나기 전 멀미약을 복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제는 완전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화산 사막을 벗어나 마치 비옥한 옥토를 지나는 것 같다. 아리아는 "야자수 천 그루 계곡"라 불린다. 이곳에는 카나리아 제도 자생 야자수가 자라고 있다.

전일관광의 또 다른 백미다. 세사르 만리케가 심혈을 쏟아 조성한 자메오스델아구아(Jameos del Agua) 화산 동굴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크라운 화산 분화에 의해 생성된 용암 동굴에 있다. 동굴의 총길이는 6킬로미터이고 이중 1.5킬로미터 정도가 해수면 아래에 위치해 있다. 지하소금호수, 레스토랑, 정원, 비취색 연못, 박물관, 관람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생태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1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바닷가재(squat lobster)들의 서식지다.

용암 동굴의 지붕이 무너진 자리에 오아시스를 만들어 놓았다. 시커먼 용암으로 둘러싸인 하얀색 연못가와 비취색 연못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리 숙소 앞까지 관광버스가 태워 준다. 돌아오니 아름다운 노을이 반긴다.

 

포도농장에서 구입해온 포도주를 마시면서 란사로테 일주관광을 되돌아본다."오늘 관광 만족해?"라고 아내에게 묻는다."오늘 당신 말 듣기를 정말 잘 했다. 자, 위하여!"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4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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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란사로테(Lanzarote)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직항이 없어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경유지로 선택한 도시가 바르셀로나다.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볼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일 비행기가 없어 바르셀로나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밤 비행기로 떠나는 일정이다. 저가항공의 대명사 라이언에어(Ryanair)를 이용한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늦은 밤에 도착한다. 다음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이 있어서 에어비엔비(Airbnb)로 바르셀로나 중심가에 있는 아파트를 숙소로 정한다. 칠이 벗겨진 현관문이 우릴 기다린다. 도심속 오래된 아파트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습관적으로 혹시 누군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지는 않았을까라는 장난 섞인 의심으로 먼저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숙소 침실이다. 커튼 뒤가 창문이다. 나무덮개를 열면 유리창문이 나온다. 나무덮개가 차양막 역할도 한다. 유리를 통해 밖을 보기 위해서는 나무덮개를 열어야 한다. 마치 창문 없는 곳에 갇혀 있는 듯해서 무척 답답함을 느낀다. 1박이기 다행이다.    

아침이다. 하지만 중심가 좁은 골목길 동네라 건물 사이로 트인 틈을 통해서만 창공을 바라볼 수 있다. 아침 일찍부터 시내구경에 나선다. 무거운 짐가방은 가까운 곳에서 있는 짐보관소에 맡긴다.   

 

한나절만에 바르셀로나 명소를 다 구경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핵심적인 것만 도보여행으로 둘러보기로 한다. 햇빛이 내리쬐는 골목길이다. 걸어오는 사람이 마치 공연을 하기 위해 조명이 훤하게 켜진 무대로 나오는 배우처럼 보인다.    

 

스페인으로부터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깃발이 건물 도처에 걸려 있다. 독립을 향한 카탈루냐 사람들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 선이 4개 있고 파란색 삼각형 안에 하얀색 별이 있는 깃발이다.

이동하다가 가로수에 묶여 있는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띈다. 앞바퀴만 빠져 있다. 누군가가 앞바퀴만 훔쳐 갔을까? 아니면 설치예술가가 의도적으로 전시해 놓은 작품일까?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예술가 피카소와 가우디 등을 배출한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에 후자를 생각나게 한다.     

자물쇠 줄을 보니 그 굵기가 장난이 아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자전거라면 뒷바퀴 바람이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뒷바퀴가 멀쩡하다. 간밤에 도둑을 맞은 쪽으로 살짝 생각이 기울기 시작한다. ㅎㅎㅎ

첫 번째 명소다. 바르셀로나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 로마 가톨릭 성가족성당)이다. 가우디 건축의 최고로 꼽힌다. 입장을 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성당 건축이 완전히 완공된 후에 내부입장을 해보자. 언제쯤일까?

1882년 비야르(Villar)가 건립을 시작해서 이듬해 가우디가 이어 받아 고딕과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시켜 설계를 변경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4분의 1만 완공한 채 생을 마감했다. 개인적인 기부금에 의존하므로 건설작업이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다. 가이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성가족 성당 둘레를 빙 둘러보고 연못이 있는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제 개선문(Arc de Triomf)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보통 개선문은 의미있는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우는데 이 개선문은 1888년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Expo)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텔레비전 촬영 중이다. 우리도 슬쩍 지나왔는데 어디 좀 나왔을까.... 

양옆의 야자수가 이국에 와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이제 시우타데야(Ciutadella) 공원으로 향한다. 세계박람회를 위해 사용되었던 공간에 조성된 공원이다.    

점점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 순간 멀리 특이한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토레 아그바르(Torre Agbar) 건물이다. 35층 142미터 높이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했다. 
콘크리트 심지, 철골, 유리틀 그리고 불규칙하게 배치된 창문 4000개로 이루어져 있다. 40가지 색조로 칠한 표면은 일조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자아낸다. 바르셀로나 건축의 또 하나의 명물이다.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가기 위해 철길을 넘어서 만난 조형물이다. 이를 보자마자 뭐라고 자세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역시 바르셀로나스러운 작품이다"라고 생각해 본다.  

지중해 바르셀로네타 해변(Playa de la Barceloneta)이다. 해수욕과 일광욕 그리고 산책욕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2킬로미터에 이르는 해변산책로나 모래해변을 따라 걷기만 해도 바르셀로나에 온 것에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돛을 단 배 모양을 띤 바르셀로나 W호텔이 저기 보인다. 마치 바람이 불면 지중해 동쪽으로 금방이라도 두둥실 항해할 듯하다.    

이제 해변에서 도심으로 회항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Mirador de Colom)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을 기념하기 하기 위해 1888년 세계박람회 때 세운 기념비다. 높이가 60미터다.

꼭대기엔 콜럼버스 동상이 있다. 오른손은 항해 출발 방향인 마요르카를 가르키고 왼손은 항해지도를 들고 있다.
기사와 제독 작위, 발견한 땅의 총독 지위, 얻은 총수익의 1/10의 조건을 내건 콜럼버스의 무모한 도전 정신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조건을 받아들인 이사벨 1세 여왕의 미래를 보는 안목을 되새겨본다. 

 

한편

콜럼버스의 아버지는 리투아니아 대공작이자 폴란드 왕인 요가일라(Jogaila, 야기에워)의 손자

라는 포르투갈 역사학자의 주장이 머리 속에 맴돈다.

콜럼버스 기념비 뒤 대로 건너편에 해군본부(Comandància Naval de Barcelona)가 있다. 탑 위에 휘날리는 깃발이 스페인 국기다.

저 자리에 카탈루냐 국기가 펄럭이는 날이 언젠가 올까

...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도심 속 산책거리 람블라(Rambla 또는 람블라스 Ramblas)로 접어든다. 1.2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과 콜럼버스 기념비를 연결하고 있다. 선물가게, 커피가게,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다. 관광객들이 신나게 구경하고 소매치기들이 그 방심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노리는 거리다.       

 

여기저기 재미난 무언극 배우들을 만난다. 세계 최고의 거리 무연극 배우들이 이곳에 모여 마치 경연제를 벌이는 듯하다.

이제는 하루 종일 도보에 시달리던 다리를 넉넉하게 쉬게 하면서 출출한 배를 달래야 할 시간이다. 하몽(돼지 뒷다리를 넓게 짤라서 소금에 절인 후 건조시킨 고기)을 얇게 썰은 타파스다. 

스페인의 대표적 음식 중 하나인 파에야(paella)다. 해물 파에야를 시켰다.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걸어서 바르셀로나를 둘러보았다. 공항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카탈루냐 광장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날 이동경로다. 이렇게 걸어서 돌고나니 바르셀로나가 눈에 더 생생하게 각인된다. 이제 조금 맛보기를 했으니 다음 기회에는 여러 날 동안 머물면서 찬찬히 구경해야겠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2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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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 서쪽 대서양에 위치해 있는 카나리아 제도는 주요 섬 7개(라팔마, 테네리페, 라고메라, 엘이에로, 그란카나리아, 푸에르테벤투라, 란사로테)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에는 먼저 란사로테를 방문한다. 푸에르토델카르멘(푸에르토 델 카르멘 Puerto del Carmen)의 전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란사로테는 화산섬이다. 길이는 남북으로 60킬로미터, 동서로 25킬로미터고 면적은 845제곱킬로미터다. 인구는 15만명이고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167명이다. 전체 해안선이 213킬로미터인데 모래가 10킬로미터, 해수욕장이 16.5킬로미터고 나머지는 모두 다 바위다. 기후는 아열대 사막 기후로 강우량이 적고 연중 온도는 섭씨 18-25도다.     

란사로테 섬 전체가 화산 전경이다. 현재의 지형은 1730년에서 1736년까지 그리고 1824년에 발생한 티만파야(Timanfaya) 화산 폭발로 이루어졌다. 이런 척박하고 황량한 곳에 사람들은 지형적 조건과 기후적 조건에 맞춰서 주거지, 농경지 그리고 휴양지 등을 일궈냈다.

우리가 묵을 곳은 란사로테의 주요 관광도시인 푸에르토델카르멘(Puerto del Carmen)이다. 처음에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이곳은 1970년대에 관광휴양지로 개발되었다. 해마다 란사로테를 방문하는 백만명 이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을 숙박지로 선택한다. 
주로 영국,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란사로테 공항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길쭉한 황금빛 모래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중심 거리가 7킬로미터 뻗어 있고 차도, 인도 그리고 자전거 도로를 갖추고 있다. 길옆에는 식당, 술집, 선물가게 등이 즐비하다. 우리는 연립주택단지 로카스블랑카스(Roccas Blankas)에서 묵고 있다.

연립주택단지는 자체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숙소가 1층이고 바로 앞이 수영장이다. 언제든지 편하게 수영장으로 첨벙 뛰어들 수 있다. 높이 솟은 야자수가 이국적인 곳에 와 있음을 더욱 실감시켜 주고 있다. 

연립주택은 거실, 방 2개, 욕실로 되어 있다. 

대서양 일출을 보기 위해 산책에 나선다. 대체로 북유럽 사람들은 일출에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엄한 일출을 감상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겨울철에는 일출이 늦고 또한 구름낀 날이 태반이다. 여름철에는 일출이 빠르고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각이다. 대서양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궁금하다. 어린 시절 툇마루에 앉아 자주 보았던 동해의 검붉은 일출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살아 있다.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휴양객들이지만 건강생활을 꾸준히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푸에르토델카르멘과 이어져 있는 이웃 도시 로스포킬로스(Los Pocillos)의 해수욕장까지 산책을 계속한다. 일광욕 산책을 하는 부부를 보자 나도 윗옷을 벗어 아침 햇살을 맞는다.        

때론 잘 정리된 거리를 따라 때론 모래해변을 따라 이날 아침 산책한 거리가 왕복 6킬로미터이다. 우리 식구들은 얼굴 공개를 꺼려 한다. 종종 즐겨 찍는 단체사진 촬영법이 있다. 바로 같이 그림자를 찍는 것이다.    

해수욕장대로(Av. de las Playas) 산책로에서 사랑을 약속하는 자물쇠가 빽빽히 채워져 있는 쇠줄을 만난다. 역시 스페인의 정열을 느낀다. 자물쇠가 형형색색이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북유럽에서 본 이런 자물쇠는 그저 자물쇠색인데 여긴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휴양지에서 대체로 오전은 이렇게 수영장에서 일광욕으로 시작한다.  

몸이 뜨거워지면 수영장에 물놀이...그런데 물 속으로 들어갈 때는 코를 막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야자수 사이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끝없는 바다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싶다.

바로 우리 숙소 앞에서 황금빛 모래 해수욕장이 시작된다. 이곳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잔잔한 바다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에 부딛히지 않고 편하게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긴다.

화산석이 좋은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파파가요 (Papagayo) 산맥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화창한 날씨라서 일몰 광경을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흑백 사진으로도 찍어 본다. 저 산 너머에는 또 다른 휴양도시 플라야블랑카(Playa Blanca)가 자리잡고 있다. 

저녁 시간이다. 낮에 해수욕과 일광욕 또는 섬관광을 즐긴 사람들이 하나 둘씩 해수욕장대로(Av. de las Playas)에 이어져 있는 식당, 술집, 가게 등으로 모여든다. 우리 가족은 일명 밤문화에는 익숙하지 않다. 

대로를 따라 가로등이 밝혀 켜져 있어 밤에도 해변 산책이나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10월 하순임에도 일광욕과 해수욕을 마음껏 즐기고 다음 행선지인 푸에르테벤투라 섬을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푸에르토델카르멘에서 머물면서 만난 란사로테 일출과 일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3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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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중 하나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섬북단에 위치한 코랄레호(Corralejo)에 머물렀다.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로 먼저 둘러본 란사로테(Lanzarote)에서 가까워서 이동이 편리하다. 둘째로 주변에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많이 있다. 세째로 출국시 이용할 공항까지 40킬로미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코랄레호는 1950년대부터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의 관광회사가 투자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 휴양관광지로 활발하게 개발되었다. 척박한 모래사장에 솟아 자라고 있는 야자수가 말없이 개발을 상징하는 듯하다.      

 

여기서는 사람의 수고가 없으면 이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다. 모래 밑에는 관수용 호스가 심어져 있다. 연평균 강우량이 160mm로 극히 적다. 이런 환경에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겠다. 도심에 있는 식물은 대부분 이렇게 관수용 호스로 물을 공급 받고 있다.    

 
뭐니해도 코랄레호의 가장 큰 명소는 동쪽에 있는 광활한 모래사막과 길쭉한 모래해변이다. 이곳은 1982년 자연공원(Parque natural)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공원면적은 2700헥타르이고 모래해변은 11킬로미터다. 공원명 안내상 위에 있는 새는 푸에르테벤투라 섬의 자연을 상징하는 후바라(hubara, houbara)다.

 

코랄레호 주택지와 맞닿아 있는 공원 입구에서 해변을 향해 조금 걸어가니 눈앞에 대해수욕장(Grandes playas)이 끝없이 펼쳐진다. 해송 한 그루도 없고 풀 한 포기도 없는 모래사장에 저 시커먼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까이 가보니 돌로 벽을 쌓아 놓았다. 이유는 이 섬의 이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푸에르테벤투라는 강풍이라는 뜻이다. 특히 강풍이 불 때 모래가 날아다니는 모래사장에서도 편하게 일광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오는 사람이 비어 있는 일광욕 돌벽집의 주인이 된다. 

 

바람이 없음에도 모든 돌벽집은 이미 주인들이 지키고 있다. 우리 일행은 모래해변에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이 북적되지 않아서 좋다. 해변의 모래는 조개껍질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작용을 거쳐 된 모래라서 정말 곱디곱다.

 

황금빛 모래색이 그라데이션으로 검푸른 바닷색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해수욕을 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  

 

하얀 물체가 눈에 확 띈다. 유럽인 식구들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갑오징어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집에 비상약으로 갑오징어뼈가 있었다. 상처가 나면 이 갑오징어뼈를 갈아서 그 분말을 상처에 발랐다. 지혈이 쉽게 되고 상처가 빨리 아물었다. 바닷물에 깨끗이 씻어 이 갑오징어뼈를 빌뉴스 집으로 가져왔다.   

썰물 때다.

왼쪽에 바다 건너 보이는 중절모처럼 생긴 섬이 로보스다

.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다. 갯벌이 아니고 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바닥을 이루고 있다.   

 

어느 구간 돌바닥은 예리한 칼날처럼 쭈빗쭈빗 솟아 있다. 물이 차 있을 때 이곳에서의 해수욕은 조심히 해야겠다. 

유럽 사람들은 한 곳에서 일광욕이나 해수욕도 즐겨 하고 해변을 따라 걷는 것도 즐겨 한다. 후자일 경우는 대체로 맨발이다. 소금기 있는 젖은 해변의 모래를 밟으면서 걷는 것은 각질 제거에 도움이 된다. 코랄레호의 조개껍질 모래는 각질 제거에 탁월하다고 한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들은 모래해변에 세워진 대규모 호텔단지다.

호텔단지를 넘어가니 남쪽 해수욕장과 사막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전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지금까지 해변을 따라 걸어온 거리가 솔찬히 되어서 저 해수욕장은 다음날로 아껴둔다.   

 

코랄레호 자연공원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넓은 사막지대다. 황량한 돌산을 뒷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사막의 모래빛이 더욱 돋보인다. 

 

다음날에 이 사막을 방문한다. 높은 사구도 물결처럼 반복되어 있어서 아이들의 모래썰매 놀이에도 제격이다.

 

 

사구에서 바라보는 경관이다. 대해수욕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나게 큰 모래벌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다와 구름 너머로 보이는 산이 란사로테 섬이다. 이 경관만 보더라도 여기가 푸에르테벤투라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수욕장 중 하나이다는 말에 쉽게 수긍이 간다.         

 
대해수욕장 중간쯤 있는 호텔단지다. 왜 이런 모래 허허벌판에 호텔이 지어졌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겠다.

 
주차장에서 내린 사람들이 연이어서 해변으로 향한다. 일광욕할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된다.   

 
코랄레호 대해수욕장 안내판이다. 어느 쪽으로 갈까...

 

워낙 해변이 넓고 길쭉하니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와도 그저 한산하다.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북쪽 해변 모습이다.

 

동쪽 모습이다. 저 바다 건너로 가면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가 나온다.

남쪽 모습이다. 깨끗한 바다, 얕은 수심, 고운 모래를 가진 해수욕장이라서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도 아주 훌룡한 곳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가를 온 이 한 쌍은 일광욕을 겸한 낮잠에 푹 빠져 있다. 참으로 한가롭고 평화롭다.      

푸에르테벤투라 코랄레호와 대해수욕장을 아래 영상으로도 담아봤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10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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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중 하나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계절이 10월 하순이었다. 섬북단 코랄레호(Corralejo)에 머물면서 주로 인근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조금 떨어져 있는 엘코틸로(El Cotillo)를 다녀왔다. 
코랄레호에서 FV-1, FV-109, FV-10 도로를 타고 이동한다. 엘코틸로에 거의 도착할 무렵 창호지 문창살을 떠올리게 하는 로케 풍차(Molino del Roque)가 우리를 먼저 맞이한다. 푸에르테벤투라의 뜻이 강풍이듯이 여기는 연중 내내 무역풍이 분다. 특히 수확 직후인 7-8월에는 자주 강풍이 분다. 그러니 곡물 빻기에는 풍차가 제일 안성맞춤이다. 풍차는 18세기에 이 섬에 도입되었다. 섬 일주를 하다보면 여기저기 솟아 있는 다양한 풍자를 만나게 된다.   

엘코틸로는 서쪽 해변에 자리잡고 있다. 17세기 어촌 항구로 시작했지만 1980년대에 휴양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수정 같이 맑은 물과 고운 모래를 지니고 있는 아기자기한 해수욕장이 석호따라 이어져 있다. 이날 정한 욕수욕장은 라콘차(La Concha) 해수욕장이다.

여기에서

차를 세워놓고 모래사장을 따라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왼쪽 하늘 먹구름이 심상치가 않다. 

하지만 오른쪽 하늘에 희망을 걸어보면서 해수욕장에 다다른다. 

파아란 하늘 하아얀 구름 황금빛 모래 비취빛 석호잔잔한 물결검푸른 바위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바라보고 있으니 왜 이 라콘차(La Concha)를 

럽과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꼽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겠다.

서 있는 바위에서 고개를 고요한 석호에서 왼쪽으로 돌리니 저 멀리서 파도가 철썩철썩 암초에 부딪치면서 흰 거품을 뿜어내고 있다.

쭉 뻗어 있는 바닷속 암초가 파고에 따라 드러났다 숨었다를 반복하면서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이 암초 덕분에 석호 안 바닷물은 잔잔하기 그지 없다.

마치 노천에서 온천욕을 하는 듯하다.

아니면 사해에서 둥둥 떠있으면서 일광욕을 즐기는 듯하다.

라콘차 해수욕장 바로 남쪽 있는 로스라고스(Los Lagos) 해수욕장이다.

다시 라콘차 해수욕장 전경이다. 소금냄새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이 다채로운 색의 향연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찾아온 보람을 느끼게 한다.

 

물의 투명함으로 인해 바다와 모래의 경계가 애매하다.  

저 시커먼 해변 바위 뒤로 숨어서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서 이렇게 해수욕 바다를 잠잠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암초의 수고를 나부터라도 기억해야겠다.  

바닷속에 불순물 하나 없는 맑고 맑은 물이다. 

엄마가 손바닥 위 뭔가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다. 화평스러운 장면이다.

 

인산인해, 파라솔천국, 잡상인, 호객행위, 바가지요금 등 해수욕장을 통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 여기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엘코틸로 일대 해수욕장에서는 파도를 타는 재미는 없지만 바닷속 고요함과 해변의 한적함을 두루 만끽할 수 있다. 라콘차 해수욕장 전경을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12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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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중 하나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섬북단 코랄레호(Corralejo)에 머물면서 주로 인근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구 1만7천여명의 도시이지만 인근에 광활한 모래사막과 길쭉한 모래해변이 있어서 많은 휴양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숙소에서 해수욕장까지는 3-5km 거리다. 늘 걸어다녔다. 길 옆에는 담장도 모래색이고 주택도 모래색인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부터 관광개발이 활발해져 지금은 푸에르테벤투라의 최고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휴양도시답게 자전거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가정용 계량기가 집안이나 집벽이 아니라 담장 외벽에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해놓으면 검침원 사칭 등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겠다.

 
큰 거리는 차도, 자전거도로, 인도가 잘 구별되어 있다.

 

아열대 지대라 가로수가 야자나무다.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비키려다가 찢어진 야자나무 잎사귀에 종종 찔린 뻔한 적도 있다. 조심해야...  

 

키가 큰 야자나무와 밖으로 튀어 나온 발코니가 공존하고 있다. 심술궂은 건축가를 만났더라면 저 야자나무는 분명히 천수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숙소로 향하는 거리를 따라 가는데 열린 문으로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는 꽃들이 보인다.  

 

꽃의 환영을 받으면서 마치 투숙객인냥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덩굴식물인 부겐빌레아(bougainvillea)다. 원산지가 브라질이고 꽃말은 정열이다. 꽃말답게 정말 화려한 정열로 유혹하는 듯하다.   

 

그런데 화려한 색은 부겐빌레아꽃이 아니다. 초록색은 나뭇잎이고 빨강색이나 노란색이나 분홍색은 잎이 변해서 된 포엽(苞葉)이다. 진짜 꽃은 하얀색이다. 포엽이 이렇게 선명하고 다채로운 것은 나비나 벌을 진짜 꽃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자연은 참 신비롭구나! 

 

어느 집 담장에 핀 무궁화속의 부상화다. 밝고 산뜻한 붉은색이 강한 인상을 준다.

 

남쪽에서 FV-1 도로를 따라 길쭉한 단색의 사막언덕과 모래해변 사이로 달리다가 코랄레요로 진입하는 바로 입구에 시선을 강타하는 집을 만날 수 있다. 각양각색의 식물과 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 

 

 

정문 왼쪽에 "

Villa Tabaiba

"(

구글 위치

)라 쓰여 있다. 타바이바(tabaiba)는 선인장 종의 하나로 푸에르테벤투라의 토착 식물이다. 이 집에 누가 살기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꾸며 놓았을까? 필히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역시 집주인은 전문가다. 스페인 남서부 도시 세비야(Seville)에서 태어난 건축가, 화가, 사진가, 조각가, 작가, 한마디로 예술가 카를로스 칼데론 이루에가스(Carlos Calderon Yruegas)다.

 

 
위에 사진에서 보여준 코랄레요의 일반적인 담장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쪽문이다. 동화 속 마법의 집으로 그냥 빨려 들어가고 싶다. 아쉽게도 닫혀 있다.

 

 

 

수중 물고기궁전에서 나온 인어가 평소 수영으로 야무지게 다져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고 있는 듯하다. 

 

담장예술과 정원식물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장소다. 담장 넘어 있는 정원의 경관이 궁금하지만 쉽게 어떤할지가 눈에 그려진다. 

 

구멍 난 철판을 사이에 두고 여인 둘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을까?

 
두상이라 해야 할지 흉상이라 해야 할지... 
하나로 봐야 할지 둘로 봐야 할지...
잠시 생각에 빠져 본다.  

 
몰래 마시는 술일까...
술 마실 시간을 알려주는 종일까...
술 마셨다고 동네방네 고자질하는 종일까...
흥나게 술 마시자는 종일까... 

 

언제 조각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짝짝이 스타킹의 유행을 예지해서 만든 것은 아닐까...

 

 
365일 늘어지게 일광욕을 하는 여인이다. 
 

 

조각 하나하나에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멍하니 서서 예술가의 의도를 한번 추측하려고 하니 식구들이 바보 같다면서 나에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집주인은 30년 동안 이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면 개조하거나 새롭게 만든다. 유지하고 보수하고 창작하는 데에 적지 않은 수고와 비용이 들어간다.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공개해서 우리 같은 행인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15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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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주요 섬으로 이루어진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는 1479년부터 스페인에 속해 있다. 아프리카 모르코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약 100 km 떨어져 있다. 인구가 215만명인데 해마다 1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주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영국, 독일 등 북쪽에 위치한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카나리아 제도를 이루는 7개 주요 섬 중 하나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 섬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이 섬의 최북단에 위치한 휴양도시가 코랄레호(Corralejo)에서 묵었다. 동쪽 근교에 광활한 사막과 11 km의 부드러운 모래 해변이 있어 많은 휴양객들이 찾아온다. 또한 란사로테(Lanzarote) 섬으로 가는 항구다.           

일광욕과 해수욕에 푹 빠진 식구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코랄레호 해변에서 바라보이는 작은 섬이 늘 궁금하다. 머무는 동안 혼자라도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호수 같이 잔잔한 아침 바다에서 낚시하는 배 넘어 보이는 섬이 바로 로보스(isla de lobos) 섬이다. 6000-8000년 전에 형성된 화산섬이다. 코랄레호에서 2 km 거리에 있다. 섬 이름은 Lobos는 늑대라는 뜻이다. 여기서 늑대는 바다늑대 즉 지중해에 서식하고 있는 몽크물범, 수도사물범을 말한다.

로보스 섬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칼데라(Caldera) 산이다. 해발 127 m다.  얼핏 보니 그 형상이 중절모를 닮은 듯하다. 저 꼭대기에 빨리 올라가 사방을 두루 구경하고 싶다.

코랄레호 선착장에서 낮 시간에만 관광객을 위해서 

여객선

이 운영되고 있다. 하루 4-5편이 있다. 섬에서의 야영은 금지되어 있다. 코랄레호 출발 시각은 10:00, 11:00, 13:00, 14:00, 15:30이고 로보스에서 돌아오는 시각은 11:15, 14:15, 16:00, 17:00이다. 소요시간은 15분이고 왕복운임은 성인 16유로, 어린이(4-11) 8.50유로다. 선착장에서 로보스로 향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봤다.

로보스 선착장에서 내리니 주변에는 많은 요트들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다. 바닷속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섬으로 들어가자 흉상 하나가 나를 맞이한다. 호세피나 플라(Josefina Pla, 1903-1999)다. 1903년 로보스에서 태어난 파라과이 여류작가다. 인권과 남녀평등을 옹호하는 작품 활동으로 많은 상을 수상했다. 2003년 탄생 백주년을 맞아 이곳에 흉상이 세워졌다.      

방문객 안내소 앞에 몽크물범 두 마리가 누워서 쉬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만 서식하고 있는 이 물범은 모피 빛깔이 목 부위에서 달라지는 것이 마치 중세시대 유럽 수도사가 쓰는 고깔을 닮아서 몽크물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때 이 섬에서 대량으로 서식하던 몽크물범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사라졌다. 요즘은 이따금 보인다. 사진 속 두 마리는 조각상이다.    

면적이 약 5 평방킬로미터인 로보스 섬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식물군과 동물군(특히 조류)을 보호하기 위해 표시된 길로만 사람들이 다닐 수 있다. 칼데라 산정상까지 도보 소요시간은 49분이다.    

평평한 산정상으로 그 형상이 확연히 모자를 닮아 보인다.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자 비취색 석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백사장이 있는 콘차 해수욕장(Playa de la Concha)이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일광욕이나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같이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솔찬히 많았다. 그런데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자취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무인도에서 혼자된 느낌이다. 멀리 한 가족을 발견하자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하다. 혹시 목적지가 같을까...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바람 한점 없다.  

드디어 산어귀에 도착했다. 해발 127 m 높이다. 등선미가 완만해 보인다. 하지만 올라가보니 가파른 구간도 여러 곳에 있다. 뭐니해도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장난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숲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색색의 야생화가 향기를 뿜어내는 산에서의 등산보다는 훨씬 힘든다.

멀리서 보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돌산으로 보이지만 직접 와서 보니 돌조각으로 뒤덮인 산에 여러 다육 식물(건조 기후나 모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잎이나 줄기 또는 뿌리에 물을 저장해 자라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작은 섬에 130개 이상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마침내 산정상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갈매기 한 마리가 나를 반기는 듯하다.

이내 갈매기는 "나를 따라 내려와!"를 외치듯 산비탈 아래로 날아간다.  

칼데라 산의 서쪽 가파른 비탈이다. 그 아래에 아주 작은 만이 형성되어 있다. 근접성이 쉽지가 않다. 검은 자갈 대신에 하얀 모래가 해변을 장식하고 있다면 누군가 저기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법하다.  

이 비탈은 다양한 종류의 갈매기들의 집단 서식지이다. 

칼데라 산정상으로 올가가는 장면과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봤다. 

127 m 산정상 표지석이다. 

밭처럼 가꾸어진 곳이 로보스 섬의 염전이다.

로보스 섬의 콘차 해수욕장이다.

바다 건너 보이는 광활한 사막과 기다란 해수욕장이 푸에르테벤투라의 대표적 관광명소다.

바다와 하늘의 다양한 파란색이 홀로 뙤약볕에 힘겹게 오른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관에 산상소원을 빌지 않을 수 없다.

바다 건너편이 묵고 있는 코랄레호다.

이 순간 요트를 타는 것이 더 재미있을까?산정상에서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를 천천히 가로지른 요트를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까?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엄청 강하다. 나무가 없으니 사진으로 이 강풍을 찍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돌벽이 이를 차단해 주고 있다.

돌틈 사이로 바다 건너 란사로테 섬이 보인다. 

란사로테는 카네리아 제도를 이루는 또 하나의 주요한 섬다.

로보스 북동 극점에 여전히 활동중인 등대가 있다. 1865년 세워졌다. 1960년대 자동화가 된 후 마지막 등대지기와 그의 가족이 이 섬을 떠났다. 현재 이 섬에는 상주하는 사람은 없다. 

내친 김에 푼토 마르티노(Punto Martino) 등대까지 가본다. 로보스 선착장에서 여기까지는 3.5 km 거리다.

로보스의 동쪽 부분은 식물이 비교적 많이 자라고 있다. 마치 습지에 온 듯하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사하라와 카나리아 제도까지 분포되어 있는 관목인 유포르비아(euphorbia balsamifera)다. 이 관목은 이웃 섬 란사로테의 식물 상징물이다. 2 m에서 5 m까지 자란다.

테트라에나 포타네시이(tetraena fontanesii)다. 마크로네시아와 북서 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다. 팔마 섬을 제외한 모든 카나리아 제도에서 서식하고 있다. 생김새와 색깔이 특이하다. 햇볕에 노출되는 것에 따라 녹색에서부터 황색까지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 잎은 만지면 톡 터질 듯한 원통형이다.    

여기저기 낮은 오름이 즐비하다. 푸른 잔디 옷을 입고 있었더라면 경주의 신라 고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  

바위 덩어리의 형상이 코알라나 아기곰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아늑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금빛 모래사장에서 독서하면서 일광욕하다가 이따금 연한 비취색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다보면 세상사 모든 근심이 저절로 사라지겠다. 아쉽게도 코랄레호로 돌아갈 배을 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로보스 섬이 속해 있는 행정구역이 강풍을 뜻하는 푸에르테벤추라다. 그래서 그런지 낮은 건물 모습이 쉽게 이해가 된다.   

4시간 동안 약 15 km를 거의 쉴 틈 없이 로보스 섬을 둘러본 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몸은 몹시 지쳤지만 섬 전체를 도보로 일주하니 마음이 아주 뿌듯하다. 황량한 돌산, 모래색 산책로, 땅색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 식물을 보고온 후라서 그런지 비취색 바다와 파란색 하늘이 더욱 돋보인다.    

코랄레호나 인근에서 여러 날 휴양하려는 사람들에게 로보스를 한번 방문하길 권한다. 가급적 첫 배를 타고 와서 섬 도보 일주를 한 후 석호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반드시 물과 간식거리를 든든히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11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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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20. 3. 6. 14:37

"유럽 호텔 더블룸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글에 "왜 베개를 많이 제공할까요? 더블룸인 경우에도 두 개가 아니고 보통 네 개씩 놓여있던데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름철 발트 3국으로 여행온 한국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온다.
"(우리가 묵은) 호텔 방에 왜 베개가 많나?" 

베개는 사람들의 아주 오래된 잠자리 필수품이다. 초기 이집트인들은 벌레가 코 등 얼굴의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돌 위에 머리를 얹고 잤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천이나 깃털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여름철 출장이 잦아서 호텔에 들어가면 보통 1인당 베개가 2개 놓여있다. 크기가 각각 다른 베개 4개가 있는 호텔도 있다. 유럽 호텔방 모습을 한번 보자.  

* 리가 그랜드포잇 호텔 Grand poet hotel

* 리가 풀만 호텔 Pullman hotel

* 빌얀디 파크 호텔 Park hotell


* 탈린 스위소텔 호텔 Swissotel hotel

* 리가 도무스 호텔 Domus hotel

하나로 충분할텐데 베개가 왜 두서너 개나 있을까? 고침단명(高枕短命 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살지 못한다)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유럽 호텔방 베개 갯수가 낯설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베개 하나만 베고 나머지는 옆으로 치워놓을 것이다. 

호텔방은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용한다. 사람마다 습관도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높은 베개를 선호하고 어떤 사람들은 낮은 베개를 선호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혀 베개를 베지 않는다. 모두 다 숙면이나 건강을 위해서 각자의 선호가 있다. 베개 갯수가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여러 가지 수면 습관을 배려한 것이다. 한마디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다.   
  
보통 베개는 푹신하다. 베개가 여러 개 있는 것은 높게 해서 자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주로 옆으로 누워 자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들 중 어깨가 넓은 사람들이 낮은 베개를 사용할 시 목을 잘 지지해 주지 못함으로써 경추에 부담을 준다. 유럽의 중장년층은 일반적으로 아시아인들보다 체격이 큼직하다. 또한 높은 베개는 위산역류(속쓰림) 증상을 줄어준다. 우리 집 식구와 주변 유럽 사람들은 거의 다 반듯이 누워 자지 않고 옆으로 누워서 잔다.  

베개 하나로 충분한 사람은 다른 베개를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무릎 사이에 다른 베개를 끼고 잘 수 있다. 이는 척추의 비틀림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눈가리개나 귀마개처럼 사용해 빛과 소리를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할 때 여러 개의 베개는 등받이용으로도 좋다. 

유럽 호텔에 베개가 여러 개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각자가 편하게 이용해 숙면을 취하면 된다. 호텔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도 보통 베개 두 개를 배치하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바다 얼음 위에 펼쳐진 도로가 유럽에 있다. 바로 북위 57.3-59.5분과 동경 21.5-28.1에 위치해 있는 에스토니아다. 발트 3국 중 유일하게 에스토니아만 바다 섬이 있다. 발트해에 있는 섬은 1500여개로 에스토니아 전국토 면적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발트해는 염분이 적을 뿐만 아니라 수심(평균 수심 55 m)이 그렇게 깊지가 않다. 그래서 추운 겨울철에 연안이 얼어버린다. 

현재까지 알려진 에스토니아에서 시작된 가장 긴 얼음 도로는 1323년 사레마(Saaremaa)에서 북부 독일 뤼베크(Lübeck)까지 연결된 도로다. 지금껏 얼음 도로에서 침몰한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얼음 도로가 없을 때는 연락선(페리)이 다닌다. 아래는 몇 해 전에 직접 찍은 3월 초순 발트해 연안 모습이다. 얼음 도로가 가능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1월 하순에 얼음 도로가 개통되어 3월 하순까지 운영된다. 도로가 개통되려면 얼음 두께가 적어도 22 cm는 되어야 한다. 에스토니아 전역에 운영되는 얼음 도로는 날씨 상황에 따라서 6-7개가 된다. 


1. 무후-본토 Muhu-mainland: 7 km
2. 히우마-본토 Hiiuma-mainland: 25 km 
3. 보름시-본토 Vormsi-mainland: 12 km
4. 히우마-사레마 Hiiuma-Saaremaa: 15 km
5. 합살루-노아로치 Haapsalu-Noarootsi: 3 km
6. 키흐니-본토 Kihnu-mainland: 15 km
7. 락사르-피리스사르 Laaksaar-Piirissaar: 8 km    

* 사진: 에스토니아 김수환

이중 가장 긴 얼음 도로는 2번 도로다. 길이가 25 km로 현재 유럽에서 가장 긴 얼음 도로이기도 한다. 본토 로후퀼라(Rohuküla)와 무후섬 헬테르마(Heltermaa)을 이어주고 있다. 아래 동영상은 바로 이 얼음 도로를 담은 것이다. 



얼음 도로 주행시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 

1.
차량 무게는 2.5톤 이하여야 한다. 앞뒤 차량과의 간격은 적어도 250 m여야 한다. 

* 사진: 에스토니아 김수환

2.
권장 시속은 시간당 25 km 혹은 40-70 km다. 25-40 km일 경우 자동차가 공명을 일으켜 얼음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3.
안전띠를 착용하면 안 된다. 그래야 유사시 차에서 빠르게 빠져 나올 수 있다. 차량문 잠금장치는 해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유사시에 문을 쉽게 열 수 있다. 

4.
얼음 위에 달릴 때는 멈춰서는 안 된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일몰 후 운행은 안 된다.

 
얼음 도로 개통은 현지 주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데 있다. 더불어 겨울철 이맘 때 에스토니아 방문객들은 이 얼음 도로 주행으로 색다른 여행을 체험해 볼 수 있겠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20. 2. 24. 05:15

유럽의 오래된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건물에 써진 혹은 새겨진 로마 숫자를 흔히 만난다. 대체로 이는 건물이 완공된 혹은 개축된 연도를 나타낸다. 로마 숫자를 읽을 수 있다면 '아 저 건물이 언제 지어졌구나!'를 스스로 쉽게 알 수 있다.  

종종 아래 건물에서 보듯이 아라비아 숫자로 되어 있는 건물도 있다. 보자마자 완공이나 개축 연도를 알 수 있다.  


로마 숫자 1에서 10까지(I, II, III, IV, V, VI, VII, VIII, IX, X)는 많이들 알고 있다. 이외도 기본 기호 7개만 알면 비교적 쉽다. 로마 숫자는 바로 이 7개의 기호로 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I

V

X

L

C

D

M

1

5

10

50 

100 

500 

1000 


1. 같은 숫자는 더해 준다
II = 1+1 = 2; XX = 10+10 = 20; MM = 1000+1000 = 2000

2. 큰 숫자 다음에 작은 숫자가 있으면 더해 준다
VI = 5+1 = 6; XXI = 10+10+1 = 21; LXVII = 50+10+7 = 67

3. 큰 숫자 앞에 작은 숫자가 있으면 빼준다
IV = 5-1 =4; IX = 10-1 = 9; XL = 50-10 = 40; XC = 100-10 = 90; CD = 500-100 = 400; CM = 1000-100 = 900

4. V, L, D는 중복으로 쓸 수 업지만 X, C, M는 중복으로 쓸 수 있다
VV가 아니라 X이고, LL가 아니고 C이고, DD가 아니고 M이다.

5. 같은 숫자를 네 번 이상 쓸 수 없다
IIII로 쓰지 않고 IV로 쓰고, XXXX로 쓰지 않고 XL로 쓴다. 


이제 아래 건물의 완공 연도를 알아보자


MDCCCXLIV = 1000+500+100+100+100+40(50-10)+4(5-1) = 1844년 완공 
MCMXXIV = 1000+900(1000-100)+10+10+4(5-1) = 1924년 개축

아래 건물의 완공 연도는 좀 더 쉽게 알 수 있겠다.


MDCCLX = 1000+500+100+100+50+10 = 1760년 완공

만약 유럽의 중세 도시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미리 로마 숫자를 익혀 가는 것도 좋겠다. 구시가지의 건물에 새겨진 로마 숫자를 해독해 보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20. 2. 18. 18:13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다. 한 번 가보면 또 가고 싶은 곳이 프라하이기도 하다. 유럽에 30년 살면서 여러 번 프라하를 다녀왔다. 프라하에 갈 때마다 들러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카를교다. 
카를교는 프라하 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는 블타바(Vltava) 강에 세워져 서쪽 언덕 위 성과 동쪽 평지 위 구시가지를 서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 
기존 유디타(Judita) 다리가 1342년 봄 얼음홍수로 파괴되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 카를 4세가 새 다리를 짓도록 명했다. 가장 좋은 착공일에 대해 점성가들에게 의견을 물어 얻은 숫자가 135797531다. 이에 1357년 7월 9일 5시 31분 그가 직접 기초석을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1402년 완공되어 1841년까지 프라하의 유일한 다리였다. 석재가 사암, 길이가 516미터, 폭이 9.5미터인 카를교는 16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18세기 만들어진 바르코 양식 조각상 30개가 다리를 장식하고 있다.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다리 앞에서 강 건너편 프라하 성을 바라보면서 즐기는 여행의 묘미는 글로 표현하기가 힘든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 보고 잠시 고개를 들어 거대한 성을 쳐다본다.   

언덕 위 웅장한 프라하 성은 길이가 57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긴 성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하와 체코의 상징물로 역대 통치자들이 기거한 곳이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870년에 짓기 시작해 1929년에 완공되었다. 고딕 건축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비투스 대성당이 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이 카를교가 어떻게 건설되었는지를 쉽게 [관련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영상을 최근 접하게 되어 아래 소개한다. 카를 4세 탄생 700주년을 맞아 3D 그래픽으로 제작된 것이다. 카를교 산책 중 이 영상을 보면 14세기 다리의 기둥과 아치 구조물 건설방법을 보다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겠다. 

Posted by 초유스

북유럽 발트 3국 리투아니아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수도 빌뉴스 구시가지와 옛 수도 트라카다. 빌뉴스 반나절 여행이나 한나절 여행에 대해서는 각각 관련된 초유스 글을 참고할 수 있겠다. 여기서는 트라카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 트라카이 루카 호수는 한반도 지형을 빼닮았다


트라카이(Trakai)는 수도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28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 빌뉴스(1323년부터 수도) 이전 수도였던 곳이다. 트라카이는 리투아니아인, 타타르인, 러시아인, 폴란드인, 유대인 그리고 카라임인 등이 어울려 살고 있다. 


특히 카라임(karaimas) 사람들은 흑해에서 비타우타스 대공작이 14세기 말 이곳으로 데리고 온 민족이다. 이들은 유대교를 믿는 투르크계에서 분파되었다. 집은 일자형 목조가옥이고 거리를 향한 창문은 모두 세 개(하나님, 비타우타스 그리고 주인을 뜻함)다. 이들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중 하나가 키비나스(kibinas)다. 



호수 위 붉은 벽돌 성에는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이르는 넓은 영토를 확보한 비타우타스(1350-1430) 대공작이 거주하고 사망한 곳이다. 이 성은 방어가 주된 기능으로 당시로는 난공불락의 요새임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아쉽게도 17세기 모스크바 공국과의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현재 건물은 수십년에 걸쳐 되었다. 1962년부터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트라카이를 둘러싸고 있는 큰 호수는 모두 3개다. 타타르 호수, 갈베 호수, 루카 호수다. 트라카이 성이 떠있는 듯한 갈베 호수의 수심은 약 50미터이고 섬 21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특히 루카 호수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한반도 지형을 꼭 닮았다. 


1. 교통편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빌뉴스에서 기차나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기차로는 33분이 소요된다. 편도 기차표는 1.8유로다.

기차시각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traukiniobilietas.lt/portal/

버스시각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autobusubilietai.lt/en/popular-bus-routes/Vilnius-Trakai/




2. 한반도를 닮은 루카 호수따라 걸어보기

기차역이나 버스역에 내려서 이 호수변을 따라 트라카이 성으로 이동하길 권한다. 거리는 3.5킬로미터이고 도보 소요시간은 45분 정도이다.



3. 트라카이 섬 성 (island castle, salos muzeijus) 내부 관람하기

현재 입장료가 8유로다. 리투아니아 대공국 시절의 유물과 다양한 주제의 전시물을 구경할 수 있다. 관람을 마치고 성 둘레를 한 바퀴 산책하길 권한다.



4. 요트나 배 또는 오리배 타보기

맑고 넓고 깊은 트라카이 주변 호수를 눈으로만 즐기기엔 너무 아깝다. 여름철이라면 요트나 배를 타고 붉은 벽돌 트라가이 성 주변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소요시간은 30-40분이다.   




5. 카라임 음식 먹어보기

배고프다면 호수 주변 식당에서 리투아니아 맥주에다 카라임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겠다. 키비나스는 보통 닭육수와 함께 먹는다. 



기차역이나 버스역으로 돌아갈 때는 카라이마이와 비타우타스 거리(Karaimų gatvė, Vytayto gatvė)를 이용하길 권한다. 트라카이에서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맑은 호수 그리고 붉은 요새를 바라면서 여행을 만끽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20. 1. 18. 20:54

유엔 통계국(United Nations Statistics Division, UNSD)은 유럽을 아래와 같이 지리적으로 분류를 하고 있다. 이 분류는 유럽 나라들을 동유럽, 북유럽, 남유럽, 서유럽으로 나누고 있다[출처 1 | 2]. 이 분류에 따르면 흔히 발트 3국이라 부르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는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등과 같이 북유럽에 속해 있다.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 동유럽 나라들

    • 벨라루스
    • 불가리아
    • 체코
    • 헝가리
    • 몰도바
    • 폴란드
    • 루마니아
    • 러시아
    • 슬로바키아
    • 우크라이나


2. 북유럽 나라들

    • 올란드 제도
    • 덴마크
    • 에스토니아
    • 페로 제도
    • 핀란드
    • 건지섬 (Guernsey) 
    • 아이슬란드
    • 아일랜드
    • 맨섬 (Isle of Man) 
    • 저지섬 (Jersey)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
    • 노르웨이
    • 사크섬 (Sark)
    • 스발바르와 얀마옌 제도 (Svalbard and Jan Mayen)
    • 스웨덴
    • 영국


3. 남유럽 나라들

    • 알바니아
    • 안도라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 지브롤터
    • 그리스
    • 이탈리아
    • 몰타
    • 몬테네그로
    • 북마케도니아
    • 포르투갈
    • 산마리노
    • 세르비아
    • 슬로베니아
    • 스페인
    • 바티칸


4. 서유럽 나라들

    • 오스트리아
    • 벨기에
    • 프랑스
    • 독일
    • 리히텐슈타인
    • 룩셈부르크
    • 모나코
    • 네덜란드
    •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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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3국 여행2020. 1. 10. 14:22

유럽에서 장기나 복수 여행을 할 때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것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체류일수다. 유럽 여행에서 꼭 알아둬야 할 국제조약이 쉥겐조약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쉥겐조약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쉥겐조약은 무엇인가?
쉥겐조약(Schengen agreement, 솅겐협정)은 유럽 각국이 국가간 이동의 편의를 위해 체결한 협정이다. 즉 국경을 철폐해서 육상, 해상, 항공 이동시 입국심사 등을 거치지 않고 인적 및 물적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현재 가입한 국가는 26개국(회원국 명단)이다.
 

쉥겐 조약국가 많지 않았을 때는 무비자로 유럽 여러 나라에 장기 체류하는 것이 아주 쉬웠다. 양자 무비자 협정을 맺은 국가에서 무비자 체류일수가 끝날 무렵 인근 나라로 잠시 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새로운 무비자 체류기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국경을 통과할 때 출입국 도장을 꼭 받아 놓아야 했다.  

하지면 쉥겐조약 회원국수가 늘어나면서 이것이 어렵게 되었다. 쉥겐조약 가입국 전체 지역에서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최초입국일부터 시작해 180일 동안 합쳐서 90일까지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쉥겐조약을 우선시하는 국가도 있고 국가와 국가간 서로 맺은 양자사증면제협정을 우선시하는 국가도 있다. 

쉥겐조약 회원국 최초입국지가 입국 도장을 찍어주고 최후출국지가 출국 도장을 찍어준다. 국경이 철폐되었기 때문에 쉥겐조약 회원국들 안에서 이동할 때는 도장을 안 찍어준다. 국경 지점이나 근처에서 개인 신분 확인차 여권을 검사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아래 영상은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국경을 통과하는 장면이다. 출입국 심사나 검사가 전혀 없다. 그냥 같은 국가 내에 있는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   
  

유럽을 무비자로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출입국시 웬지 불안하다. 혹시 지난 180일 동안 최대 90일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는 규정을 위반해 예기치 않게 심문, 벌금, 추방, 입국금지 등을 당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쉥겐조약 지역 무비자 체류가능 일수을 계산해주는 사이트가 있어 소개한다. 최종 출국일 기준으로 180일 이내에 90일 체류했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 아래 사이트에서 지난 180일 동안 쉥겐조약 가입국에서 체류한 날짜를 기입하면 앞으로 체류할 수 있는 날수가 나온다.


입국날짜 (Date of entry) 
출국날짜 (Date of exit)
체류일수 (Days of stay)
지난 180일 이내 체류일수  
체류 최종일  

2019년 11월 05일 입국
2020년 01월 09일 출국

계산(calculate) 단추를 누른다
2020년 2월 2일까지 앞으로 36일을 더 체류할 수 있다.

Posted by 초유스

12월 초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다녀왔다. 라트비아는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중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 영화 "베를린"(2013년 류승완 감독)과 "영웅"(2020년 개봉 예정, 윤제균 감독)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흔히 러시아 민요로 알려져 있는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마리냐가 소녀에게 삶을 주었다 Dāvāja Māriņa meitenei mūžiņu)이 바로 라트비아 가요(작곡 Raimonds Pauls 라이몬드스 파울스)다. 발트 3국 중 유일하게 양국이 대사관 공관을 둘 정도로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1201년 세워진 리가(Riga)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겨울철이라 낮이 짧아서 첫날은 야경을 즐겨본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자유상과 운하 다리를 지나면 왼쪽에 공원이 있다. 여름철 이 시각에는 푸른 잔디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을 이 공원에는 크리스마스 조명을 장식한 나무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구시가지 중심 거리(Kaļķu iela)를 쭉 걸어가면 시청광장(Rātslaukums)이 나온다. 발트 3국 수도의 시청 중 유일하게 옛날 시청사가 현재의 시청사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도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다.    


리가의 상징 건물 중 하나인 "검은머리 전당"(흑두당, 보는 쪽에서 오른쪽 건물)이다. 


"검은머리"는 14세기 중엽부터 1940년까지 오늘날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서 상업활동을 활발히 펼친 길드(상인조합)의 이름이다. 이 건물이 바로 이 조합의 회관이다. 현관문 좌우에는 이 길드의 수호성인인 모리셔스와 성모 마리아가 모셔져 있다. 


검은머리 전당 앞 광장에는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기념비 하나가 세워져 있다.


검은머리 길드에 의해 1510년 여기에 첫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라트비아는 이곳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탄생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에스토니아는 1441년이라고 주장한다[관련글은 여기에서].



이제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기에 위해 발길을 돔성당 쪽으로 돌린다. 이번 크리스마스 마켓은 리가 돔성당(루터교 대성당) 광장에서 12월 1일부터 1월 8일까지 열린다. 전구와 생나뭇가지로 만든 마켓 입구 장식물이 돋보인다. 


살짝 내린 눈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 고조시켜 준다.


탈린과 마찬가지로 리가도 전나무 한 그루를 통채로 잘라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주중이고 이른 저녁 시간이라 아직 마켓은 한산하다.


날씨가 추운 곳이라 온포도주를 파는 곳이 여기저기에 있다. 온포도주(독일어 glühwein 글뤼바인, 프랑스어 vin chaud 뱅 쇼, 영어 mulled wine 멀드 와인)는 적포도주에 향신료를 넣어 따뜻하게 데운 술이다. 추위를 이기기에 딱 좋다. 가격은 0.2리터에 3유로다.


이날 구경한 리가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영상에 담아본다.


다음날 일출 후(9시)에 크리스마스 마켓의 아침 풍경을 구경한다. 겨울철 날씨답지 않게 일출부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다. 밤사이 내린 눈이 대성당 지붕과 광장 바닥을 하얗게 덮고 있다. 


부지런한 상인들이 남들보다 일찍 판매대를 열고 있다.  


이 일대 어느 나라든 크리스마스 마켓의 판매품들 대부분은 방한제품이다. 양털로 만든 모자, 장갑, 목도리, 실내화 등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 장식물로는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라트비아 리가의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와 교회나 성당 첨탑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아니라 흔히 수탉이 장식되어 있다. 


왜 꼭대기에 수탉일까?
고대 로마 시대 사원 지붕은 바다의 신(넵투누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삼지창 형태의 풍향계가 장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가 공인된 후 삼지창 풍향계는 수탉 풍향계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수탉이 상징하는 바는 여러 가지다. 먼저 수탉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초대 로마 교황 베드로를 떠올리게 한다. 자기를 부인하지만 나중에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예수는 기꺼이 환영하고 용서해 준다. 로마 교황 니콜라오 1세(재위 858-867)는 모든 성당의 첨탑이나 반구형 지붕에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배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수탉 조형물을 설치할 것을 명하는 칙령을 내렸다.      

수탉은 새벽 일찍 일어나 운다. 즉 수탉은 예수가 어둠을 쫓아내는 빛임을 상기시켜 준다. 이곳 사람들은 옛부터 수탉은 자지 않고 악으로부터 지켜 주는 수호자고 아침 울음으로 모든 나쁜 것을 쫓아낼 수 있다고 믿어 왔다. 리가 종교 건물 첨탑에 있는 거의 대부분 수탉은 풍향계 역할도 하고 있다.    


산타가 타고 다니는 수레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온포도주를 파는 매점이다. 루돌프 사슴(순록)은 나무판자로 만들어졌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이 산타 복장을 했더라면 더 운치로웠을 텐데 말이다.   


리가 돔광장뿐만 아니라 크론발다 공원(Kronvalda parks 구글 위치 정보) 등에서도 다양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행사 등을 즐길 수 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