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백만명이 사는 리투아니아에 한국 교민은 10여명이다. 그런데 교민수보다 한국에서 오는 교환학생수가 이제는 더 많다. 학기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빌뉴스에 30-50여명의 교환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종종 명절에 교민들과 교환학생들이 한인회 초청으로 만난다. 일전에 몇몇 교환학생들과 시내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리투아니아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김치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주 금요일 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 우리 집을 방문한 경희대학교 교환학생들 (좌로부터 지연, 보라, 혜빈 지원 학생)
사실 집으로 한국 손님을 초대하는 일은 좀 민감하다. 나와 딸은 대환영이지만,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부담스러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각이 뛰어난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음식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분의 꾀를 내야 했다. 우리 집엔 한국에서 보내준 잡채용 당면이 있다. 잡채는 딸아이가 무척 좋아한다. 아내는 한 두 번 시도해보았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자 더 이상 잡채 요리를 하지 않고 있다.
"우리 집에 와서 잡채를 맛있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학생들에게 제안했다.
"우와~, 정말요? 당연히 가야죠."라고 하면서 이들은 덥석 받아들였다.
이날 집으로 돌아와 "한국 교환학생들이 와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잡채를 해줄 거야. 괜찮지?"라고 아내에게 말하자 "나도 좀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니 좋아."라고 답했다.
잡채요리에 필요한 버섯, 피망, 시금치 등 재료를 아내와 함께 구입해놓고 교환학생들을 기다렸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는 큰딸과 비슷한 나이를 가진 학생들이라 아내도 기쁘게 이들을 맞이했다.
우리 집 부엌은 일시에 교환학생 4명에다가 아내 그리고 딸아이 요가일래까지 합쳐 6명의 요리인들로 북쩍거렸다. 그런데 이들 곁에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한 잡채요리법 때문이었다. 능숙한 가정주부처럼 만드는 잡채요리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 수 배워보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아내는 약간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금요일 저녁식사를 준비한 6명의 요리인
"요즘 요리법 일일히 익힐 필요 없어. 인터넷 검색하면 쫙 나와. 한국 학생들 집에서 직접 요리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 사실 우리 큰딸도 몇 가지를 제외하면 요리하지 못하잖아."
"하기야 그래."
"다 같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잖아. 어느 한 사람이 고생해서 바치는 맛있는 음식보다 다 같이 어울러서 만든 덜 맛있는 음식이 난 더 좋아."
이렇게 한 시간 반을 거쳐 잡채, 된장국, 호박전 등이 완성되었다. 한인회 회장(김유명)도 초대했다. 잡채를 먹어본 딸아이의 맛평가가 이날 교환학생 초대가 의미있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아빠,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잡채 중 제일 맛있어."
"그래? 아빠가 언니들 정말 잘 초대했지?"
"맞아. 언니들이 또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딸아이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잡채를 먹었다.
한 학기 동안 머무는 교환학생수가 교민수를 훌쩍 넘어섰다. 이제는 교민들보다 교환학생들이 주변 리투아니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심는 데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 있는 동안 공부도 하면서 리투아니아 현지를 이해하고, 한국을 알리는 데 힘닿는 대로 기여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