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8. 11. 17. 18:42

몇 해 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가 지난 주말 편지를 보내왔다. 이 친구는 독일인이고,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통해 알게 되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알려준 사진모음에 들어가 보았다.

한국의 가을 찍은 사진이 쌓인 낙엽처럼 듬뿍 있었다. 노랗디노란 은행잎, 빨갛디빨간 단풍잎 사진을 보자 고향에 대한 향수가 한없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 아름다움은 도저히 이곳 리투아니아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의 허락을 얻어 사진을 올린다. 앞으로 기회 되는 대로 "초유스의 동유럽" 블로그를 통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에스페란토 친구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함께 올리고자 한다. 독일인 친구 비르케(Birke)가 찍은 한국의 가을풍경 더 많은 사진들을 그의 ipernity.com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Jen mi aperigas fotojn de Birke pri korea aŭtuno. Ŝi loĝas en Koreio. Dankon, Birke, pro viaj fot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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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 11. 5. 06:19

최근 시골 고향에서 고기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퇴임 기계학 교수를 취재하려 다녀왔다. 만남 인사를 마친 후 그의 첫 물음은 리투아니아인 아내와 집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인가였다. 모국어가 서로 다른 부부에게 제일 궁금한 중 하나가 "저들은 부부 사이, 자녀와 부모 사이 도대체 무슨 언어로 의사소통할까?"이다.  

의사소통 언어가 “에스페란토”라 답하니 "아직도 에스페란토가 살아있냐?"며 놀라워했다.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오래 전 에스페란토를 알던 사람들 중에도 에스페란토가 벌써 죽은 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는 우리 집 공용어로 매일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와 같은 에스페란토 맺어진 다문화가정이 세계 도처에 있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확인하니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국의 젊은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누리망에 퍼져 있는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에 한국어 자막처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선봉에 서서 한국어보다 영어를 강화시키고, 부모들이 영어 발음을 위해 자녀에게 혀 수술까지 시키는 사회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언어이다. 변음과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와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익히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언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제1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어몰입교육이 판치는 한국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한번 에스페란토를 배워보고자 하는 사람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7-5881; 010-3340-5936)에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한편 http://lernu.net/에서 직접 배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원광대 등에 에스페란토 강좌가 정식으로 개설돼 있다. 한국어 자막이 되어 있는 아래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E@I www.ikso.net 제작)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에스페란토를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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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우리 집 탁자에 체코,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한국에서 온 8명 친구들이 의사소통 장애 없이 에스페란토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1편: 에스페란토는 모든 것에 적합한 언어이다

2편: 에스페란토는 많은 특색을 가진 언어이다

3편: 에스페란토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4편: 에스페란토는 배울 수 있고, 배울만한 언어이다

5편: 에스페란토는 다양한 운동을 지닌 언어이다

6편: 에스페란토는 미래의 언어이다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0. 5. 06:21

목적달성에 너무 집착하는 이들에게 교훈적인 글 하나를 번역 소개한다. 헝가리인 János Sárkőzi가 쓴 것을 에스페란토에서 초유스가 번역했다. 

여행

쿠티(Kuti)는 여행하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는 자주 국내와 이웃 나라를 여행했다. 그는 혼자 살았지만,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은 함께 자주 여행했다. 아름다운 산에서의 긴 도보여행들, 수많은 체험들, 헤아릴 수 없는 공동의 추억들, 매혹적인 자연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결합시켰다.
하지만 쿠티는 그러한 여행에 만족하지 못했다. 늘 마음 속 깊이 모든 사람이 다 갈 수 없는 먼 나라에 대한 동경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벌써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름답고 먼 나라 일본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주 생각으로 그곳을 여행했지만, 실제 일본 여행은 너무 비싸 이룰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버는 돈은 걱정 없이 생활하고 가까운 곳을 여행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일본 여행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여행이 비싸지만 보통 그와 비슷한 여행만큼 비싸지 않다는 것을 가끔 읽었다. 그 여행이 매년 한 번 있었고, 일찍 신청해야만 참가할 수 있었다. 이제 그의 편안함은 끝났다. 그는 계산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부업을 가지고 아무데도 여행하지 않고 음식 외에는 다른 것을 일체 구입하지 않는다면, 그 여행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결정을 내린 후 그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부업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일상적인 여행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전보다도 더 외롭고 저렴하게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피곤했지만, 큰 여행에 대한 희망이 그 힘든 일을 견디도록 그에게 힘을 주었다.
친구들은 처음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들은 그를 찾았지만, 그는 집에 늘 없었다. 그들은 전처럼 그를 여행에 초대했지만, 그는 그들과 함께 가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터놓고 말했다. 친구들은 단지 그 여행을 위해 2년 동안 모든 것을 할 가치가 있는 지, 그것을 위해 심지어 친구들을 버릴 가치가 있는 지하고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그들에게 그 여행은 아주 중요하고 그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후에 그는 간혹 친구들을 만났다. 그는 그들에게 거의 낯설게 되었다. 그는 단지 그 여행에만 관심을 가졌고, 반면에 친구들은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했다. 그는 밤낮으로 일을 했고, 틈이 날 때마다 일본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는 벌써 그 나라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마침내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 가까워졌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그는 세세하게 준비했다.  단지 한 가지 일이 그를 걱정스럽게 했다. 비록 늘 피곤함이 더해 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벌써 그는 그것을 오래 하지 못했다. 여행을 떠나기 몇 일전 그는 심하게 앓았다. 의사는 그가 더 살고 다시 건강해지기를 원한다면, 여행을 할 수가 없고, 심지어 몇 주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로로 인한 피곤함이 그 병의 원인이었다.
그는 완전히 울상이었고 절망적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외로이 누워 있었고, 먹기조차 싫었다. 그의 건강은 좋아지기는커녕 나빠져 갔다. 그는 이미 살기조차 싫었다.
하지만 어느 날 변화가 생겼다. 옛날 그와 함께 자주 여행을 다녔던 한 친구가 그를 방문했다. 그는 쿠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왔다.
그의 방문으로 쿠티는 친구들이 여전히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매우 기뻐하였고,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단지 그들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이보게 친구, 전(全) 생애를 통해 나는 그 여행을 생각해왔어. 지금 바로 목표 앞에 나는 그만 병들고 말았어. 내가 왜 그토록 일을 했지? 내가 왜 그토록 고생을 했지? 나는 아주 불행해.”
“이봐, 진정해. 큰 목적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해 일을 하는 것은 존경할만한 일이야. 그러나 난 어느 곳이든지 여행을 하기 위해 심지어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 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해, 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알아.”
“그래, 그러나 난 아름다운 경험들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한다면 그 여행이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을 알아.”
“난 홀로여행이 아니라 단체여행을 하려고 했어.”   
“모든 나쁜 일에는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야. 네가 여행 중에 그 병을 얻었다면 무슨 일이 있어났을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봐. 이제 너는 돈을 가지고 있으니, 1년 후에는 확실히 그곳으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야. 만약 네가 올해 그 단체와 함께 여행을 떠났더라면, 너는 지금 그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것이야. 어떤 좋은 일 앞에 있는 것이 그 후에 있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을 잘 배워두고 항상 기억해!”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0. 4. 05:11

인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사랑하던 이와 헤어짐은 가슴 아픈 일이고, 흔히 자기를 버리고 떠나버린 임을  원망하곤 한다. 헤어짐으로 원망하는 이에게 어울리는 단편 하나를 번역해 소개한다. 헝가리인 János Sárkőzi가 쓴 것을 에스페란토에서 초유스가 번역했다. 

해에게 화내지 마

한 젊은 친구가 아름답고 젊은 여인을 만나 2주일 동안 보낸 환상적인 여행에 관해 나에게 이야기했다. 자유롭고 아무런 걱정 없이 그들은 삶과 젊음에 기뻐했다. 그들은 함께 푸른 바다에서 목욕했고, 강렬한 햇빛아래 해변에서 누었고, 아름답고 고풍 있는 도시들을 구경했고, 타오르는 오래된 포도주를 마셨다. 저녁에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우람한 가로수 밑을 산책했고,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 여인은 그에게 아주 친절했고, 그들은 서로를 잘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러한 이해에서 큰 사랑이 이루어졌다. 그때까지 그가 느낀 가장 큰 사랑이었다.
“정말 그때 제가 행복한 만큼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저는 여기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가 하고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제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불행이 다가왔습니다.”라고 그가 말 했다.
“무슨 일이 생겼어?...... 네가 이야기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추억할 수 없는 정말 그런 큰 행복이었어. 사람들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여름여행을 쉽사리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야.”
“맞아요. 하지만 후에 이어진 일이 가장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 여행이 끝나자 그녀는 영원히 제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거 참, 정말 안되었네. 하지만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 생명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그녀가 저에게 한 짓을 저는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녀가 무엇을 했는데? 그녀는 너에게 큰 행복을 선물했어.”
“그래요. 하지만 단지 2주일 동안입니다. 후에 그녀는 저를 버렸고, 저를 깊은 절망과 불행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녀가 너에게 영원히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니?”
“아니요. 그녀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관해 우리는 일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헤어질 때 너에게 무슨 나쁜 말을 했니?”
“그녀는 저와 함께 모든 것이 아주 좋았고, 저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참으로 아름답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저와 영원히 헤어져야 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떠나기 전 그녀는 조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니?”
“그녀는 저를 혼자 내버려두었고, 그 큰 행복 뒤에 단지 큰 공허감만이 저에게 남았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큰 희망을 불러일으킨 후 저를 큰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런 희망을 단지 너는 너를 위해 너의 생각 속에서 만들었어. 그녀가 너에게 준 것에 대해 너는 감사해야 하고, 화를 내거나 미워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래, 사람들은 자기가 받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더 좋아하고, 그것을 받지 못하면 화를 내지. 또한 사람들은 자기가 이미 받은 것에 대해 잊어버리고, 감사하기는커녕 화를 내지. 많이 받을수록 화도 더 커져.”
“있었던 일이 아니라, 있을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봐, 해가 오랜 어둠 후에 너에게 잠깐 빛을 발하고 다시 구름 뒤로 자신을 감출 때, 해에게 화내지 마! 오히려 네가 받은 빛과 따뜻함에 대해 감사하고, 가능 한이면 가장 오래 동안 그 빛과 따뜻함을 간직하도록 노력해봐.”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0. 4. 04:36

자기가 필요하면 이 말을 하고, 자기가 필요하지 않으면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래 단편 글이 잘 표현해주고 있다. 헝가리인 János Sárkőzi가 쓴 것을 에스페란토에서 초유스가 번역했다. 

다른 장소, 다른 생각

버스 정류장에 남녀들이 서 있었다. 일을 마친 후 그들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었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기다리기에는 몹시 불쾌한 날씨였다. 심지어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벌써 오랫동안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불안하게 버스가 와야 하는 쪽으로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버스는 오기를 싫어하는 듯 나타나지 않았다.
그곳에 한 뚱뚱한 여인도 서 있었고, 그녀는 가장 불만스러워 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왜 버스 회선을 더 늘리지 않는가요? 그들은 우리들의 관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은 귀가를 서두르고, 가족들은 기다리고, 우리들은 추운 비 속에 이렇게 서 있어야만 해요!”
모두 화가 났고, 그 여인에 동감하였다. 그들 공동의 적은 오지 않은 버스였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후에 버스가 왔다. 그 버스는 만원이었지만, 가운데에는 아직도 여유로운 공간이 있었다. 좌석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퇴근 후 버스에 서 있기만 해도 기쁘다. 그러나 버스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서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때 문에 있는 그 뚱뚱한 여인이 소리치듯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여러분! 안으로 좀 들어가세요. 제가 보기에 아직도 가운데에는 여유로운 곳이 있어요. 입구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모든 사람들에게 탈 권리가 있잖아요! 우리가 비 속에 이곳에 계속 서 있기를 원하지 마세요.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도록 도와주세요. 우리의 공동 관심사는 모두가 빨리 안으로 들어가 버스가 계속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잖아요!”
그녀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은 입구를 자유롭게 해주었고, 모두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안에 모두가 만족했다. 모두가 적어도 설 자리가 충분하다는 데 기뻤다. 가운데는 아직도 여유로운 곳이 있었다.
우리의 뚱뚱한 여인은 입구 가까이에 좋은 자리를 찾아 만족한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다시 정류장이 나왔다. 그곳에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다. 버스는 멈추었고 문이 열렸다. 비 속에서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은 들어가기를 시도하였고 자리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뚱뚱한 여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들어가는 것을 자기가 가장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지 못한 듯이 그저 편안하게 서 있기만 했다. 심지어 그녀는 한 노인 남자가 밀어 들어오기를 시도하자 화를 내며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건들지 마요, 밀지 마요! 어쩔 거요? 제가 원하는 곳에 설 권리가 있잖아요!”
“하지만 아주머니, 다른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도록 좀 도와줘. 모두가 집에 가고 싶어 하잖아!”
“그것은 제가 염려할 바가 아니요. 제기랄, 왜 버스가 더 자주 오지 않는담? 저는 여기에 설 권리가 있고, 그래서 돈을 내었고, 어떤 누구도 저를 미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요.”여러분은 이 여인이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를 기억합니까? 이러한 사람들을 단지 버스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9. 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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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광복절을 즈음해서 마음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해방 후 행적이 묘연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독립운동사과 중국에스페란토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인 안우생이다.

그는 1909년 이등박문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막내 동생 안공근의 장남으로 1907년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공근은 전 가족과 함께 1922년에 상해로 이주하여 김구의 측근으로서 독립운동에 활약했다. 이에 안우생도 1939년경 중경에 가서 항일전선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을 했으며, 1942년 9월 임시정부 개편 이후 편집부의 과원으로 활동했다.

해방 이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김구의 대회담당비서로 일했다. 그의 민족통일에 대한 신념과 노력은 김구, 김규식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남북연석회의 참가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 남북연석회의에 김구를 수행했던 그는 1946년 홍콩으로 간 후에 아무런 소식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던 중 40년 후인 1986년 4월 19일 북한 노동신문에 “민족대단합의 위대한 경륜 - 남북연석회의와 김구선생을 회고하면서”라는 논문이 안우생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일본 관서에스란토연맹 기관지에 이 논문의 저자가 바로 안우생이라는 기사가 실려 안우생의 생사를 몹시 궁금해 하던 많은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이후 한국 언론이 그가 1991년 2월 북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한국어,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 불어, 에스페란토를 구사한 어학의 기재(奇才)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와 교분을 쌓은 중국 에페란티스토들은 그가 특히 문학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가졌다고 말했다.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사>에서 그는 ‘엘핀’(Elpin)이라는 필명으로 중국의 대표적 애국문학가인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 ‘고향’, ‘백광’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했다는 글을 읽고 그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 중국 근대문학의 최초 소설인 ‘광인일기’를 번역했고, 그가 번역한 소설 세편이 책의 4분의 1을 차지한 것 등에서 그의 에스페란토 실력과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루쉰 소설을 번역한 세 작품 외에도 다른 역작이나 원작이 분명히 더 있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섰다. 헝가리에서 에스페란토학을 공부하면서 1991년부터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페인, 네덜란드에서 여러 편의 그의 문학작품들을 수집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 있던 문학잡지 <문학세계>(Literatura Mondo) 1934년 11월호에 게재된 안우생의 번역작품 김동인의 ‘걸인’과 함께 두권의 책(<루쉰문선>, <루쉰소설집>(Noveloj de Lusin), 네 개의 정기간행물(<원동사자>, <동방호성>, <중국보도>, <문학세계>)에서 모두 40편에 달하는 작품을 찾아낼 수 있었다. 거의가 1938-40년 중국의 홍콩, 청두, 중경에서 발간된 것들이다. 이것은 전부 에스페란토로 되어 있고, 원작시 3편, 번역시 14편, 원작소설 2편, 번역소설 12편, 번역희곡 4편 그리고 기사 5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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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문학잡지 〈Literatura Mondo〉의 1934년 11월호에 게재된 안우생의 번역작품 김동인의 '걸인'

필자가 이렇게 수집한 40편 작품을 2004년 한국에스페란토협회는 "Verkoj de Elpin"(안우생 문집)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발간했다. 이를 근간으로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영구 교수는 "Elpin의 문학세계"라는 책을 펴냈다. 해방 후 북한에서 살면서 한 에스페란토운동과 문학활동에 관한 자료를 전혀 구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필자는 통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의 문학작품들이 북한 어딘가에 더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8. 18. 11:33

지난 7월 하순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인천에 소재한 문일여고의 에스페란토 동아리 모임에 가족과 함께 참가했다.

이날 프로그램 중 장기자랑에서 여고생들은 아무런 악기 없이 책상과 손바닥 하나로 흥겹게 즉석 난타 공연을 했다.


특히 나이가 비슷한 큰 딸 마르티나는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고, 리투아니아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해줄 좋은 이야기꺼리가 생겼다면서 좋아했다.



* 관련글: 딸아이가 여름방학에 공부 안하는 까닭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 7. 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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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평소 존경하던 분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7년 한국에서 이 분을 인터뷰한 기사를 소개해 이 분의 뜻이 세상에 좀 더 알려주기를 바라면서 올려봅니다. 늘 미소를 띤 이 분은 오래 오래 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특별인터뷰 이종영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 

이종영 박사는 1932년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하여 청구대학을 나와 경북대학교, 하와이대학교, 하바드대학교 대학원을 수학하고, 미국 센튜리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일본 코베대학교에서 상학박사를 취득하였다. 18년간 유엔 식량농업기구에서 근무하였고, 경북대학교 교수.경영대학원장, 한국 마케팅 학회장,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중국 남경경제대학, 연변대학 명예교수, 재단법인 한국 산업경제개발 이사장, 그리고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중국상업정책사연구", "마케팅과 후진국의 경제발전", "기업윤리 - 이론과 실제", "마케팅의 과제와 전망", "Marketing Improvement in Developing Countries" 등이 있다.
편집자 주


◎ 원불교《정전》이 1988년 에스페란토판으로 번역되고, 아울러《대종경》이 번역되어 현재 마지막 교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원불교 좌산 종법사는 지난 95년 한국 종교인으로서는 최초로 종교 NGOs 초청으로 유엔에서 「세계공동체 건설과 종교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시면서 세계 일가(家)를 이루기 위해 에스페란토를 세계 공통어로 설정하자고 주장하셨습니다. 그 동안 《원광》은 이러한 중요한 에스페란토를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만, 오늘 이렇게 세계 에스페란토 운동을 이끌어 가시는 회장을 모시고 에스페란토 운동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먼저 에스페란토는 어떠한 언어이며, 어떠한 배경 속에 태어났으며,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원불교의 좌산 종법사님을 2년전에 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친근감 속에 한국과 세계의 당면 과제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세계 공통어」에 대한 말씀은 기억에 생생합니다.
에스페란토의 탄생은 기본적으로 세계 인류가 하나의 형제·자매라는 것을 전제하기에 아마 원불교가 인류에 공헌하고자 하는 이상과 통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 좋은 만남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 생각에 인간들이 상호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하고, 건설중이던 바벨 탑이 무너진 이후부터 인류는 하나의 공통어를 갈망해 왔다고 봅니다.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Zamenhof) 박사가 살았던 폴란드의 비얄리스토크는 유대인·폴란드인·독일인·러시아인 등 다국적·다인종 지역으로 언제나 「언어」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언어로 야기되는 각종 분쟁을 지켜보면서 결국 에스페란토를 창안하게 되는데, 몇 가지 추구하는 이상이 있습니다. 곧「1민족 2언어」주의입니다.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사용하고 외국인과는 공통어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 인류가 지구촌 공동체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 그 공통어의 필요성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에 대응하는 반면, 언어 강대국으로 부터 약소민족의 언어권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유럽연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9개국을 회원으로 가진 유럽연합이 회의를 하는데 33명의 통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금년 1월부터 회원국이 15개국으로 늘어났고 공통어 또한 11개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언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의 공통어를 불어·영어·독일어·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5개 국어로 제한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초, 불란서어는 외교어, 독일어는 의학용어, 영어는 상업용어로 많은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2차대전 이 후에는 세계의 양극화에 따라 자유진영은 미국의 영어가, 공산진영은 러시아어가 강요되다시피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소련이 붕괴되자 영어의 영향력이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대국의 언어가 소수의 약소민족어 (한국·일본·이태리 등 언어적으로 약소국)에 대한 태도입니다. 언어는 민족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민족어를 상실하면 민족 그 자체가 위협받습니다. 일제시대에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언어말살의 뼈아픈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에스페란토는「세계화」시대에 국제적인 언어의 교량 (의사소통, 외국어 학습, 외국어 번역, 출판물)역할과 민족의 융화를 돕고 약소민족의 언어권을 보호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에스페란토에 내재해 있는 사상은 인류인(人類人)주의를 목적으로 탄생된 평화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인류가 사랑의 기초위에 평등·중립·정의·우애를 촉진하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통해 교류하자는 것입니다.

◎ 오늘날 가계살림을 휘청거리게 하는 사교육비중 많은 부분이 외국어 공부, 특히 영어 과외공부에 들어갑니다. 요즈음 취직을 위한 어학공부로 대학생들 휴학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으며, 많은 수가 외국에 가서 어학연수를 받는다고까지 합니다. 이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필요한 어학 능력을 습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며, 특히 세계화시대에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금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공통어로 지향하는 에스페란토는 이러한 현실적 과제를 극복하는데 과연 얼마나 쉬우며, 인간이 만든 인공어로서 자연어에 비해 어느 정도 표현의 한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세계 공통어」라는 표현에는 사실 우려점도 없지 않습니다. 각종 각색의 인종과 풍속이 총 집합된 지구촌 인류가 하나의 언어로써 대화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논의되는 에스페란토가 세계 공통어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국제 공통어는 다음의 몇 가지가 전제된다고 봅니다.
첫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무엇보다 중립어 (中立語)라야 합니다. 철저히「언어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듣지 않아야 합니다. 강대국의 언어적 침투는 곧 언어적 약소국가의 문화 파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특정 민족어는 국제 공통어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중립적인 국제 공통어는 민족어 (母國語)의「보조어」라야 합니다. 민족의 융화를 돕는 민족 나름대로의 언어를 유지·발전시키면서 대외적인 통상이나 교류에서 국제 공통어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1민족 2언어주의를 내세운 것입니다.
둘째, 문법이 간결하고 규칙적이며 발음이 쉬워야 합니다. 곧 배워서 사용하기에 편리해야 합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에 설명을 덧붙인다면, 「자연어」라는 것은 말이 생긴 이후에 체계화 시킨 것이기 때문에 문법이 매우 복잡한 반면, 에스페란토는 모든 자연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취하여 만든 「인공어」이기에 문법상 배우고 사용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즉 1음 1자, 1자 1음 주의를 원칙으로 변음과 묵음이 없으며,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5모음제(A·E·I·O·U) 언어입니다.
셋째, 언어적 기능이 충분해야 합니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이나 표현을 어려움없이 나타낼 수 있고, 철학·문학·예술·경제·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서 충분히 표현 가능한 언어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에스페란토가 이 세가지를 갖추고 있느냐의 질문을 하겠지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 박사가 1987년, 창안할 당시「유럽」의 국제적 여건을 바탕하였지만 지금은 거듭 발전하여 동양적 언어의 요소 (예, 굴절어 등)를 내포하고 있기에 이 세가지 요건을 구비한 언어라고 확신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특정 언어에 편중하지 않은 인공어이기에 중립적이고, 문법이 전문 16개조로 되어 규칙적이고 간결하며, 단어를 합성할 수 있고 표현이 자연어와 가까워 배우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 실예로 1984∼5년, 이탈리아 Rocca 소학교의 9∼11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학습시킨 불란서어와 에스페란토의 결과인데, 160시간의 학습 후 어학능력이 불란서어는 35%, 에스페란토는 80%였다는 것입니다.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종교경전이나 문학 작품도 엄청납니다. 원작 문학작품만도 6,000여종이며, 15개국의 문학선집이 번역 되었습니다. 또한《기독교성경》(1926년 번역),《코란》(1968년), 이집트의《파피루스》, 중국의 사서(四書)등 동·서양의 수 많은 경서가 번역되었습니다.《원불교교전》도 번역이 끝나 최종 검토중에 있다는 희소식 또한 에스페란토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에스페란토의 언어적 한계를 말씀하셨는데, 모든 언어가 생명력을 갖고 변화·발전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다만 전 세계에서 외국어를 번역하는 자동번역기 개발 프로그램에 관련시켜 설명 드리겠습니다. 예컨대 자동번역기에서 6개 국어를 상호 번역하려면 30개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에스페란토를「교량어」로 사용할 경우에는 12개의 번역 프로그램 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언어 분산 번역 프로그램. DLT : Distribuita Lingvo-Tradukado).
에스페란토는 각 나라의 민족어를 번역하는데 아주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 민족어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여 공통점을 찾은 언어이기에 교량어로서 매우 훌륭하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조금더 설명하죠.《원불교 교전》을 영어로 재 번역하여 출판직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수많은 입장이 없을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런데 이《원불교 교전》을 먼저 에스페란토로 번역하여 영어·독일어·러시아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하면 보다 원전에 가깝게 번역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에스페란토는 모든 민족어가 가질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여 만들어진「인공어」입니다. 약 200∼300여 종류의 민족어로 각종 출판물이 번역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에스페란토는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는데 어떤 언어보다 과학적이고 용이하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그리고 국내에 어느 정도로 보급되어 있으며, 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까?
◎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때마다 110년이 된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어떻게 잘 소개할까 걱정을 했었는데 또 이 질문을 받게 되었군요.
에스페란토는 1887년, 자멘호프 박사에 의해 창안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1908년 세계 에스페란토 결성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120여국 약 2백만∼3백만명 정도의 사용자가 있습니다(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원). 75개국에 대표 2천명, 60여개국에 국가 지부, 50여개국에 전문가, 200여개에 달하는 각종 신문·방송·출판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51개국에서 2천 여종의 교과서가 발행되었고, 32개국 700여개 학교에서 에스페란토를 교육하고 있으며,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엘테대학교에서는 석·박사과정을 두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약 2천 여명의 회원에 6개지부가 있으며, 청년회·대학생연합회·기독교 연맹·원불교 에스페란토회 등으로 구성·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에스페란토 보급은 처음 1900년대에 《임꺽정》을 쓴 홍명희씨로부터인데 이미 1920년대에 《감자(Batato)》, 《붉은산(Rug^a (Monto)》등을 번역하여 외국의 에스페란토지(誌)에 소개하였습니다. 장혁주의 소설《쫓겨가는 사람들(La Forplelataj Homoj)》, 이태준의 《분노(Indigno)》등 수 없는 작품이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일간지<동아일보>,<조선일보>등에서는 에스페란토 지상강좌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은 에스페란토 창안 1백주년(1887∼1987) 기념으로 이재현의 원작수필을 비롯 한국의 수필, 소설, 민화를 번역한《한국의 수필·소설 및 민화》(Koreaj Eseoj, Noveloj kaj Popolrakontoj)가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습니다.
세계에 널리 보급·발전시키고 있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사실「여론의 선도자」들입니다. 곧 그 나라나 지역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기에 역사가 지날수록 더욱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원불교에 대하여 매우 놀라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세계화」의 노력입니다. 한국에서도 어느 기성종교에 못지않게 각 방면에서 모범적인 활동을 하는 반면, 경전을 영어·에스페란토·독일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싱할리즈어 등으로 번역하여 보급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놀라고 찬사를 보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한가지 에스페란토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덧붙인다면 원불교의 세계화를 도울 수 있는 에스페란토를 「교무」양성과정(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영산원불교대학교 과정)에서 학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교양선택(제 2외국어) 과목 정도로 수강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가 점차 개방되어 공통어 사용은 사실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원불교 교무님들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하시려면 물론 영어를 익혀야 되겠지만 그 보다 훨씬 쉽고, 더욱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에스페란토를 익혔으면 합니다.

◎ 저도 여러차례 국제대회에 참관하면서 언어 장벽없이 제 가슴에 담은 모든 것을 상대방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언어가 서로 다른 수천명이 모여 통역과 번역이 없는 대회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러한 대회를 치루는데 남다른 감회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 이러한 대회는 주로 어떻게 진행됩니까?
◎ 세계대회는 에스페란토의「실용성」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큰 행사입니다. 곧 수많은 국제회의가 언어의 장벽 때문에 행사비의 약 30%∼50% 가량을 통역비로 사용하는데 전혀 통역없이 세계대회를 치른다는 기적같은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대회는 매년 7월 하순경에 약 1주일정도의 일정으로 약 60개국에서 2,000∼3,000명 정도가 참가합니다. 이 세계대회 때에는 주로 이사회, 총회, 강연회, 대학강의를 비롯, 연극, 음악 등의 전문단체 총회, 친교, 문화행사 등을 하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통역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에스페란토 세계대회는 개방화를 추구하여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도 참가하게 합니다. 대외적으로 통역없이 국제 대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죠. 유럽대회, 북미대회, 아프리카대회, 아세아대회 등의 지역대회도 매년 열리며, 한국에서도 금년은「경주」에서 열릴 예정인데, 어느 국제기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통역 없는 대회가 열릴 것입니다.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전 인류의 민족적인 차별을 없애려고 했고, 대화와 교류를 통한 진정한 우애를 존중했으며, 강대국의 특권이나 불의를 부정하고 인류가 공존하는 평화의 언어를 세상에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은 이러한 대회에서 모두에게 확인됩니다. 종교의 홍보를 위해 참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의 「오도모토」라는 종교에서는 세계대회가 열릴 때마다 참가하여 홍보를 해왔습니다. 원불교에서도 가능하다면 이러한 대회에 참가하여 홍보기회를 삼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대회는 에스페란토를 사용(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 에스페란토에는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가 추구해온 인류애, 형제애, 세계평화가 내재되어 있어 종교단체들이 쉽게 이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원불교에서도 1980년 서울 종로교당 청년회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세계 종교계에서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어떠합니까?
◎ 이 질문의 대답에 앞서 자멘호프 박사가 자란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폴란드의 비얄리스토크를 다시한번 상기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비얄리스토크는 주민의 40%가 유대인으로서 상점이나 뒷골목에서 유대어를 사용했고, 20%는 주로 노동자인 폴란드인이 폴란드어를, 25%는 주로 독일인이 독일어를, 그리고 적은 숫자인 러시아인은 관리나 군인 등 지배계급으로서 공용 표준어라는「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온갖 독재를 자행했던 곳입니다.
사실 자멘호프 박사는 에스페란토를 통해「민족간의 평화」를 갈망한 것이지「공통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의 목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인본주의자였고 적극적으로「에스페란토」라는 언어로써 그 방법을 찾았습니다.
1878년 12월 5일, 에스페란토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비얄리스토크의 부모님집에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부른 노래 가사에도 나타납니다.
「민족간 증오심이여!
없어져라. 없어져라.
이제는 인류가 한가족으로
뭉쳐야 할 그 때가 왔도다」
그러나 처음에는 에스페란토 회원들조차 공통어 에스페란토의 효율성은 인정하면서도 어떤 「사상」이나 「정신」으로 확산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자멘호프 박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 유명한 인류인주의(人類人 homaranismo)를 구체화 시키기에 이릅니다. 곧 에스페란토의 내적사상이라 할 수 있는 인류애·형제애·세계 평화를 담은「인류인주의 선언문 12개항」입니다.
이제 질문하신 자멘호프 박사의 종교에 관련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가지 근거보다 우선 인류인주의 선언문에 나타난 그의 평화적인 종교관을 소개하겠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류인주의 선언문에는 신(神)에 대한 해석부터 차이가 옵니다.
「신(神)은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한 신비로운 힘을 말하는데 그 본질은 각자가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다. ····신에 대한 나의(개인적인) 생각을, 신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밝혔으며 종교의 기본원칙에 대하여「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대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행해야 하며, 항상 당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고 했습니다.
신에 대한『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자멘호프는 무엇보다「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종교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나의 종교에 반하지 않는 한, 각 종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중립적인 방식으로 행사를 해야한다」그리고「종교의 주된 목적이 인간을 형제로 만드는데 있지만. ··· 나의 도시에 모든 사람에게 중립적인 사원(temple)을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중립적 사원에서는 각기 다른 종교나 철학적 제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다같이 느끼지만, 각기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는 위대한 힘(forto)을 서로 다같이 섬기도록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중립적인 종교사원과 의식, 그리고 표현이 다른 절대적 진리에 대하여 상호 존중하자는 자멘호프 박사의 종교적 입장은 이와같이 언제나 형제애, 평등, 세계평화 (정의)의 기초위에서 타 종교와의 대화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언제나 사랑·관용·이해의 종교 행동원칙을 정해놓고「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고 했으며「파괴는 비록 건설을 목적으로 할지라도 결코 안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세계 각 종교에 있어서 에스페란토의 영향은 첫째, 주요경전의 번역입니다. 《기독교 성경》을 비롯해 수 많은 불경과 주석서가 에스페란토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세계 천주교 에스페란토 연맹을 결성하여 천주교 주요 서적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것은 오래전부터 였고, 바티칸 에스페란토 방송이나 교황의 부활절·성탄절 메시지 등 에스페란토를 적극 보급·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바하이교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세계 공통어로 채택하기 위해 UN에 공식 요청한 종교의 하나이며, 일본의 오오모토교, 이슬람교 등 많은 종교가 에스페란토를 보급·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오오모토교는 세계대회 때마다 엄청난 교단적 참가(100명 이상)와 함께「하나의 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언어」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 종교입니다.
원불교에서도 한국 에스페란토회가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지난 《원광》창간 48돌 기념 <종교경전 및 주석서 전시회>때 각 종교경전 및 주석서 23권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창시자 자멘호프 박사의 인류인주의 입니다. 어느나라, 어떠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에스페란토가 보다 많이 보급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에스페란토가 보급됨으로써 미치는 영향입니다. 바로 평등·사랑·형제애·정의·중립의 이상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 회장께서는 근 20년간 유엔 식량농업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오랜 행정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난 95년부터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장으로 있으면서 유엔, 유네스코, 유럽의회 등을 수차례 방문하여 국제기구 언어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에스페란토의 공용어 채택과 소수언어 보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하며, 에스페란토가 이들 국제기구의 공통어로 채택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 과연 국제기구에서 국제 공통어가 필요한가.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모두가「반드시」필요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은 이를 담당한「정치가」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정은 합리적 결정보다 정치적인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정치적인 결정? 곧 자국의 이해 득실을 따지는 국가외교상의 기술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에스페란토의 국제 공통어 채택에 대한 지지와 격려는 오래 전부터 입니다. 그 예로 1920년대에 이미 국제연맹총회에서 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의 반대로 부결되었죠. 1924년, 만국우편엽합(IPU)에서의 통신용 언어 채택에서 에스페란토가 선정되었고, 1954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에스페란토 교육 권장의 결의를 하는 등 수 없는 논의는 지금까지 계속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가능성은 어느 정도 보입니다. 1996년 프라하에서 개최된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때에 UN, EU, 유네스코 대표 및 학자들이 참가하여 아주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특히 1997년 UN 경제사회 이사회에서「국제보조어」문제가 중요한 안건으로 논의되도록 노력했던 점을 볼 때 희망이 있습니다. 1997년 5월 UN 경제사회이사회 소속 비정부 기구 (700여개)를 회원으로 「국제 보조어를 위한 비정부기구 연대」가 결성되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발전하면 언젠가 에스페란토가 국제 공통어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998년, 제네바에서 UN 인권문제고등판무관의 지원으로 「인권 문제의 언어적 측면」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만국 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인데, 이것은 국제 사회에서 에스페란토의 중요성이 인정받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렵연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죠. 현재 11개국의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의회 위원수가 627명입니다. 그런데 회의 및 행사에서 사용되는 경비의 50% 정도가 언어 (통역)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어떤 한 위원이 연설을 한다고 할 때 11개국어로 동시 통역하지 않고는 의사가 전달되지 않는 분위기를 짐작하시겠습니까? 의원 사무실 문패마다 11개국어로 표시하고 있는「언어」의 한계에서 에스페란토의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실현 되느냐 못되느냐가 언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사실상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몇몇 강대국들의 언어 기득권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모든 회원들의 언어는 평등하다」라는 기본 원칙을 앞세우기에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 사실 유엔, 유네스코, 유럽의회 등 이러한 공인된 국제기구의 결정이 에스페란토 보급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로 더욱 구체화되는 21세기에서의 에스페란토운동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우리나라에서 요사이 부쩍 국제화·세계화를 부르짖는데 여기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민족 문화입니다. 다양한 민족문화 특히 언어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에스페란토를 세계에 널리 보급·발전시키는 목적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세계가 하나의 평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대화와 만남의 중립적인 공통어가 절실하다는 것이며, 둘째는 소수 약소민족의 언어 보호 및 여기에 따른 인권의 문제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많은 설명이 있었으므로 생략하고 「인권」보호에 대해선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지구상의「피난민」이 대략 1천 6백만명 정도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언어로 인한 인권의 피해가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면 믿겠습니까? 사실 우리 한국인들은 어느 정도「영어」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회의, 사업, 관광 등에서 그렇게 불편함없이 사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영어」가 세계의 공통어 입니까? 유럽만해도 영어만으로는 도저히 통하지 않는 나라가 수 없이 많습니다.
국가적으로 온갖 분쟁과 혼란, 그 속에서의 빈곤, 질병, 무지의 약소국가가 겪는 고통 가운데「언어」때문에 생기는 고통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경이 수 없이 무너지고 그때마다 지도자와 법이 바뀌는 상황에서 「언어」는 때때로 최악에는 파괴와 죽음을 부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권이 보장되어야 인권이 보장된다는 측면입니다.
내년에 UN에서 만국인권선언 50주년 기념으로「인권문제의 언어적 측면」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에스페란토가 국제 사회에서 반드시 공통어로 채택되었으면 합니다.
세계 에스페란토협회에서는 새 언어질서를 위한 캠페인 2,000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외적으로 UN에서 언어문제를 토의하도록 계속적인 건의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언어 교육을 통한 세계 평화운동」 을, 유럽연합(EU)에서는 국제 보조어로서 에스페란토가 채택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유명인들을 중심으로「에스페란토의 벗」을, 각 운동단체, 친목단체 등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여 이제는 세계 곳곳에 수 많은 전문단체, 특성 단체가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무엇보다 에스페란토가 그 사회의 질적 향상과 유대강화에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어 국제회의, 친선, 관광, 교육, 특히 인터넷이나 출판을 통해 발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발전적인 과제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한국어와 얼마나 특성상 가깝고 외국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언어 교육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겠으며 둘째, 에스페란토협회의 운영적 자립 셋째, 에스페란토의 위상이 높아져 교육, 방송 및 기타 언론 매체를 통해 보급·발전되는 것 넷째, 에스페란토가 한국의 대내외 외교에 큰 역할을 하는 것 등 홍보·활동에서 한걸음 발전하여 효율성과 우수성에서 인정받는 언어가 되었으면 합니다.
에스페란토가 국제 공통어로 채택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사실 어쩌면 유토피아 같은 꿈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에스페란토가 반드시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이 있다는 확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점차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될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인데, 가장 문제가 되는 언어! 특히 민족어 내지 민족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실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점의 간판을 한번 보십시오. 영어를 비롯해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가 난무합니다. 이것이 세계화 입니까? 우리나라는 한문이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민족어가 사라졌고, 일제 식민지하에서는 제도적으로 말살되었으며, 지금은「영어」를 비롯, 수 많은 외국어에 의해 민족어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에스페란토는 거듭 강조하지만 약소민족의 소수 언어를 위해서도 반드시 보급·발전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국제 공통어가 되었으면 하지만 국제 보조어의 하나로서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중국정부는 매주 열리는 외교부 정례기자회견문등을 그동안 영어로 번역 배포해오던 것을 지난 해 9월부터 이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중국은 위대한 나라이며 위대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하필 영어로 번역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에서입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태도 때문에 각국의 언론사 기자나 외교관들이 매우 어려운 처지라고 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영어 독점주의? 영어가 사실 많은 국가에 있어서 공통어 내지 그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진다는 것 아닙니까? 민족어를 보호하겠다는 이러한 태도는 중국만이 아닐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나라가 소위「언어식민지」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입니다.

◎ 에스페란토운동을 하시면서 보람과 힘들었던 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해방 직후 헌 책방에서 우연히 에스페란토를 만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날까지 에스페란토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세계대회 때 입니다.
세계대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7일간의 독립국가」라고 할까요. 어떠한 통역도 없이 전혀 의사소통에 막힘도 없이 진행되는 일정 하나 하나를 통해 인류가 진정한 형제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약 3천여명의 참가자들은 국적·인종·언어·종교·연령 등에 전혀 구애없이 오직 에스페란토라는 공통어로 하나가 됩니다.
영어가 국제어라는 선입감을 벗어나자고 할때 어떤 분은 영어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UN기구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소위「영어」덕을 톡톡히 본 사람입니다. 영어의 장·단점을 잘 알고, 영어의 영향력을 알기 때문에 에스페란토를 권장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에스페란토 세계대회 때 15명이 한 조가 되어 문화답사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에스페란토만 사용했기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조차 이야기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우연히 국적을 묻게 되고 각자의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11개국에서 모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에스페란토는 진정 사랑이 담긴 언어라고 생각하며 세계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급·발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언어가 죽어가는 경우는 어떠한 상태일 때를 말합니까. 전문용어로 사용하지 못할 때 입니다. 한국어도 죽어가는 언어에 속한다고 봅니다. 점차 전문연구 부문에서 사용정도가 줄고 또 평가절하를 받고 있습니다. 한 예로 공과대학 교수들의 연구물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영어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어로 표현이 어렵고 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이죠. 이것은 그 동안 민족어의 방패 역할을 할 공통어가 없기 때문이며, 정치·경제적인 자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후진국의 경우, 특히 아프리카의 원주민 언어들은 개방과 경제적 발전이라는 이유로 지금 사멸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8개국에 있는 세계 에스페란토협회의 임원들과 전자우편을 통하여 의사교환을 하면서 협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어를 몰라도 전혀 언어의 장벽이 없습니다.

◎ 천주교인으로 평소 종교에 대한 생각과 원불교에 대해 아시는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 종교인은 대체로 열심히 믿는 사람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열심히 다니는 사람에 속한다고 봅니다.
원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원상(一圓相)을 보면서 자멘호프 박사가 신에 대하여「우주를 지배하는 신비로운 힘」으로 표현한 내용과 통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교세확장 보다는 사회의 공익과 복지, 때로는 불의에 대해 대단한 용기를 가진 종교라고 알고 있습니다.
평소 저는 에스페란토에 대하여 사랑이 있는 언어, 인간의 마음을 열어주는 언어라고 생각해 왔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그「수단」으로 충분한 언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류의 공통된 이상은 평화이겠지요? 이 근원적인 목적에 종교이든, 그것이 언어이든 같을 것입니다. 원불교 또한 이 근원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 생각하지만····.
세계는 다양한 언어, 종교, 사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립과 반목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의 창안자들이 목적한 일이라고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아마 원불교를 개교하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그 방법을「종교」로, 자멘호프 박사는「언어」로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이 글은 원불교 기관지인 "월간 원광" 1997년 9월호에 16쪽에 걸쳐 실렸습니다.
* 대담: 최보광(대석) / 원불교 교서정역위원회
* 정 리: 오 선 명 본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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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8. 7. 3. 15:37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또 다른 기쁨은 인터넷판으로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종이판으로도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지난 6월 4일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기사를 올렸다.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로 알려진 "시사IN" 오윤현 기자가 이 글을 읽고 6월 23일 방명록에 '블로거와 만드는 멋진 인생'에 게재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동의했고, "시사IN" 42호 2008년 07월 01일 에 게재된 것을 확인했다.

지면 언론과 블로거를 소통시키는 '시사IN'의 '블로거와 만드는 멋진 인생' 고정란이 앞으로 계속 발전하고 기존 언론과 블로그가 상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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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 6. 5. 04:18

일전에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세계 언론인 대회”에서 매일 대회신문을 만드느라 여러 나라에서 온 몇 해만에 만나는 정겨운 옛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다. 마침 대회 마지막일 저녁 국회의장 만찬이 일찍 끝나 집으로 초대해 밤늦게까지 술잔을 부딪쳤다.

탁자에 둘러보니 모두 8개 민족 즉 폴란드, 스위스, 체코,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한국과 리투아니아 사람이 앉아있었다. 이날 8개 민족이 아무런 언어장벽 없이 대화를 즐겼다. 자신의 지난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참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묻기도 했다.

이렇게 모국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날 모여 어느 특정 민족어가 아닌 중립적인 언어로 심리적 부담감 없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이 언어가 에스페란토이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언어’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프랑스 북부 볼로뉴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어몰입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혹시 한번 에스페란토를 배워보고자 하는 분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7-5881; 010-3340-5936)에 문의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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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부터: 페트르 (체코), 아네트 (스위스), 칼레 (핀란드), 로만 (폴란드)
아래 왼쪽부터: 룹쵸 (불가리아), 이쉬트반 (헝가리), 비다 (리투아니아), 정상섭 (한국)

* 이 글은 주간지 "시사in" [42호] 2008년 07월 01일 게재됨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66

* 스스로 쌓은 6살 요가일래의 영어 내공 어때요?

http://www.kniivila.net/2008/lingvoj-prestighaj-kaj-malprestighaj/ 
(핀란드 친구가 쓴 글: 에스페란토)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6. 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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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통역 없는 세계 언론인 대회" 블로거 기사에서 에스페란토를 소개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매년 여름 개최되는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몹시 기다린다. 보통 60-80개국에서 2천명-4천명이 참가해  통역이나 번역 없이 일주일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친목과 상호이해를 증진시킨다.
 
이 대회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춤을 추거나 가르치는 최윤희씨가 있다. 최근 동영상 파일을 정리하면서 지난 2006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최윤희씨의 한국춤 강좌와 배우기 동영상을 다시 보았다.

그의 지도에 따라 다양한 민족의 남녀노소가 신발을 벗고 아리랑 가락을 흥겹게 추고 있다. 특히 오른 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열심히 따라 배우는 분이 인상적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한국을 알리는 데 열성을 쏟는 최윤희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 5. 30. 14:25

혹시 동시통역이나 번역이 필요 없는 국제회의를 상상해 봤는가. 모든 민족이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세상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
5월 29일 현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세계 언론인 대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대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37개국에서 200여명의 언론인이 참석했다.
그러나 회의 진행을 위한 동시통역은 없다. 각국 언어로 번역된 유인물도 준비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참석자 모두 오랜 친구이기나 한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강연과 만찬 등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 때문이다.
한국 대표로 참가한 정상섭 기자(부산일보)는 중국의 리진후아, 영국의 도널드 가스펠, 오스트레일리아의 프림퐁 바두, 리투아니아의 게디미나스 데게시스 씨와 자연스럽게 얘기를 주고받는다. 주제도 중국의 최근 지진 참사에서부터 북유럽의 변덕스런 날씨에 이르기까지 아무 거리낌이 없다.
 에스페란토 세계에는 국적이 없다.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이번 세계 언론인 대회 기간 중 매일 발행되는 4쪽짜리 공식 소식지의 편집자는 리투아니아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필자다.
빌뉴스에 살고 있는 필자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지금의 리투아니아인 아내를 만났다. 우리 집의 공용어는 에스페란토며, 아내와의 대화는 거의 전적으로 에스페란토로 이뤄진다.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을 알거나, ‘세계 언어 평등’이라는 이상에 공감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 유용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동유럽의 작은 국가 리투아니아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세계 언론인 대회와 필자의 사례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지난 2005년 제90회 세계에스페란토 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참가 경비와 숙식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 가며 세계 언론인 대회를 빌뉴스에 유치하는 열정을 보였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27개국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EU(유럽연합)에서 언어 단일화 추진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에스페란토가 가장 유력한 공용어 후보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든 학교 수업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우리나라와 영어를 대체할 중립적 세계 공용어의 채택을 준비하는 리투아니아 가운데 과연 어느 나라가 더 실용적일까?

*에스페란토란
1887년 폴란드의 안과의사 자멘호프가 창안한 국제공용어. 변음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 악센트 등이 규칙적이어서 익히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그들끼리는 에스페란티스토라고 부른다)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한다. 현재 120여개 국가에서 5천여만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초기에 처음 소개됐으며, 김억 홍명희 등은 에스페란토로 쓴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산악인 엄홍길, 소설가 김훈, 조류학자 윤무부 등이 에스페란토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원광대 등에 강좌가 개설돼 있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에스페란토문화원 등에서 온라인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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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기: 5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일정으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세계 에스페란토 언론인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리투아니아 에스페란토협회 소속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부산일보에서 정상섭 기자가 참석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리투아니아 정부 초청으로 열렸으며, 총리와 국회의장, 빌뉴스 시장이 만찬을 주재하는 등 리투아니아 정부로서는 상당히 정성을 들인 국제회의입니다.
'1민족 2언어주의'를 주창하며 세계 언어 평등권을 일궈 나가는 에스페란토를 한국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참고로 대회 소식지가 4번 나왔으며, 소식지 취재와 제작, 편집은 저하고 정 기자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회가 끝난 후 대회 관련 소식을 편편 올릴 계획입니다. 에스페란토로 된 대회 누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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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에스페란토 언론인 대회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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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회 중 국회의장, 국무총리, 빌뉴스 시장 만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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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대회 강연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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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대표로 참가한 부산일보 정상섭 기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중국, 영국 등 참가자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07. 12. 15. 15:45

요즈음 리투아니아엔 바깥 온도가 내려갈수록 중앙난방 열은 높아간다. 밤이면 실내온도는 더욱 올라간다. 최근 어느 날 밤 요가일래(만 6살)는 더워서 양말까지 벗더니 그 양말을 가지고 4개 국어로 장기자랑을 했다.

4개 국어는 차례로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 리투아니아어이다.

한국인 아빠와 리투아니아인 엄마를 둔 요가일래가 4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래와 같다.

1. 모태부터 지금까지 아빠는 무조건 한국어, 엄마는 리투아니아로만 말한다
   (원칙: 어느 한 쪽이 두 말을 절대로 섞지 말 것.  적어도 만 3살이 되도록까지)

2.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리투아니아엔 영어가 현재 러시아어를 밀어내고 있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러시아어가 다시 중요한 언어로 부각될 것이라 생각해 러시아어 어린이집에 다니도록 했다.

3. 영어 만화채널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유롭게 보도록 했다. 어린이집에 갔다오면 잘 때까지 거의 영어채널을 틀어놓는다. 전기료를 과외비로 생각한다. 영어를 들으면서 온갖 놀이를 한다.

요가일래 부모의 공용어는 에스페란토이다. 아직 의도적으로 이를 가르치지 않고 그냥 들으면서 절로 배우도록 하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는 이해하고 말을 하기도 한다.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분에게 저희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7. 11. 25. 17:45

ERMITA skribis en http://www.uonbulismo.net, kaj mi verdkolore korektis.
 
Speciala knabineto, Jogaile

Ŝi estas kvin-jara, filino de s-ro Ŝtonego. Jogaile havas specialan kapablon. Ŝi povas paroli en kelaj lingvoj, ekzemple, korea, litova, angla, rusa kaj kompreneble esperanta lingvo.

Ŝi estas kvinjara filino de s-ro Ŝtonego. Jogaile havas specialan kapablon. Ŝi povas paroli en kelkaj lingvoj, ekzemple, la korea, la litova, la angla, la rusa kaj kompreneble la Esperanta lingvoj (여기서 lingvoj를 복수로 쓰는 이유는 한 언어가 아니고 여러 언어이기 때문에. Esperanta를 대문자로 쓴 이유는 Esperanto와 esperanto를 구별하기 위해서. 언어 이름 앞에는 일반적으로 la를 사용하고, lingvo를 생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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Ŝia gepatroj klopodas fari ŝin havi eblecon, kion ŝi povas paroli, aŭskulti, kaj skribi multajn malsamajn lingvojn. Jogaile parolas korean lingvon kun sia patro kaj litovan lingvon kun sia patrino, lernas anglan lingvon per televida programo, kaj rusan lingvon en la kindergarteno.

Ŝiaj gepatroj klopodas, por ke ŝi havu eblecojn paroli, aŭskulti kaj skribi multajn malsamajn lingvojn. Jogaile parolas la korean lingvon kun sia patro kaj la litovan lingvon kun sia patrino, lernas la anglan lingvon per televida programo, kaj la rusan lingvon en la infanĝardeno.

Ŝia patro proponis, ke ŝi frekvenas al rusa kindergarteno por ke lernu plu alian lingvon. Li volas ŝin lerni francan lingvoin poste. Ŝi ŝatas paroli ciujn lingvojn. Mirinde ŝi neniam parolas mikse kun malsamaj lingvoj.

Ŝia patro proponis, ke ŝi frekventu rusan infanĝardenon, por ke ŝi lernu unu plian lingvon. Li volas, ke poste ŝi lernu la francan lingvon. Ŝi ŝatas paroli ĉiujn lingvojn. Estas mirinde, ke ŝi preskaŭ neniam parolas, miksante la lingvojn.

Kiam infanoj estas junegaj, ili havas infinitan kapablecon. Mi pensas ke lerni ailan lingvon estas ju pli juna des pli bone. Mi opinias ke krom nacia lingvo paroli la duan lingvon post lerninte Esperanton estas la plej bona ordo. Ĉar Esperanto povas pli facile lierni ol aliaj lingvoj.

Kiam infanoj estas junegaj, ili havas grandegan kapablon. Mi pensas, ke ju pli juna, des pli bone estas lerni alian lingvon. Mi opinias, ke krom sia nacia lingvo lerni la duan alian lingvon post Esperanto estas la plej bona ordo. Ĉar Esperanto estas pli facile lernebla ol aliaj lingvoj.

* 요가일래 누리집: http://jogaile.chojus.com
* 문장 중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댓글을 이용하세요. - 초유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7. 11. 23. 01:09

ERMITA skribis al mi en 2007-11-22 kaj mi verdkolore korektis:

Kara S-ro Ŝtonego,
Kiel vi kaj viaj familianoj fartas?
Mi estas ĉe Iksan.

Kara s-ro Ŝtonego,
Kiel fartas vi kaj viaj familianoj?
Mi nun estas en Iksan.
 
Dank'al via helpo por ke lernu Esperanton kiam mi estis ĉe via loko, mi estas progresita usi esperanton kaj tre interesita studi La Sanktan Instruon de Ŭonbulismo.

Danke al via helpo por mia lernado de Esperanto dum mia restado ĉe vi, mi ja progresas uzi Esperanton kaj estas tre interesita legi la libron "La Sankta Instruo de Ŭonbulismo".
 
Nuntempe komence mi lernas 3. Praktikado en La Sotesana Instruo. Mi volas diskuti kun vi pri enhavo speciale cinajn ideografojn. Se vi havos liberan tempon, ĉu vi povas respondi al miaj demandoj?

Nun mi komencis lerni la trian ĉapitron "Praktikado" de la libro. Mi volas diskuti kun vi pri la enhavo de speciale ĉinaj ideogramoj. Se vi havas liberan tempon, ĉu vi povas respondi al miaj demandoj?
 
Antaŭ en la 3. Praktikado 1. darmo en la lastfrozo origine (초범 입성의 큰일을 . . .). Mi pensas ke 초범 estas 범부를 초월하여 aŭ  범부를 넘어서서.

Temas pri la unua paragrafo de la ĉapitro. En la lasta frazo estas originale (초범 입성의 큰일을 . . .). Mi pensas ke 초범 estas 범부를 초월하여 aŭ  범부를 넘어서서.
 
En paĝo 127 de la Sankta Instruo mi ne povas ŝerci tiujn vortojn. Ĉu vi povas pririgardi ilin?

En paĝo 127 de La Sankta Instruo mi ne povas trovi tiujn vortojn. Ĉu vi povas kontroli ilin?
 
Mi havas novretadreson ĉe hotmail.com. Ĉu vi ŝatas ĉi tion?

Mi havas novan retadreson ĉe hotmail.com. Ĉu vi ŝatas ĉi tion?
 
Bonvole saluti al Vida, Martina, kaj Jogaile.
Kun koran dankon,
amike via Ermita

Bonvolu transdoni miajn salutojn al Vida, Martyna, kaj Jogaile.
Kun kora danko
amike
Ermita

* 문장 중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댓글을 이용하세요. - 초유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