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토'에 해당되는 글 285건

  1. 2011.08.24 비둘기 가족 단란에서 비참까지 생생 포착 1
  2. 2011.08.16 물 속도 아랑곳 않는 폴란드 결혼 사진 2
  3. 2011.08.09 여름 가족여행으로 손색없는 카누 타기
  4. 2011.04.10 나를 매료시킨 루마니아 할머니 사진들
  5. 2010.08.02 30분 얼음을 훑어서 콘텍트 렌즈를 찾아주다 1
  6. 2010.07.11 프랑스 친구 만나 영어 한 마디도 안한 딸아이 2
  7. 2010.05.30 막걸리 영문 애칭, 에스페란토에서 배워라 3
  8. 2010.04.23 노란꽃의 정체 알고보니 거미새끼들 3
  9. 2010.03.22 봄 시샘으로 튤립꽃에 눈폭탄 쏟은 겨울 2
  10. 2010.01.17 배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 10
  11. 2010.01.15 유럽통화 유로의 아버지는 에스페란티스토 1
  12. 2009.11.14 신종플루로 취소된 행사, 스카이프로 부활
  13. 2009.11.07 일본 하이쿠에 한국 시조의 세계화가 아쉽다 9
  14. 2009.10.08 블로거, 노벨상 수상자를 인터뷰하다 6
  15. 2009.08.21 잘 생긴 프랑스 남자에 반한 아내
  16. 2009.08.12 고대 한국의 솟대를 만드는 유럽인들
  17. 2009.08.10 사진 전시장이 된 궁전의 담벼락
  18. 2009.08.03 아직도 1.3메가 픽셀 디카 사용하는 의사 8
  19. 2009.07.26 홀로 배낭여행하는 73세 할머니 1
  20. 2009.07.21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4
  21. 2009.06.02 10년 연금절약으로 식당에 초대한 교수 1
  22. 2009.02.24 브라질 여행 안전한가, 위험한가 2
  23. 2009.02.12 브라질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24. 2009.02.06 브라질 순대는 아이스크림 4
  25. 2009.01.12 에스페란토 나라에 온 듯한 브라질 7
  26. 2009.01.12 원불교 종법사 신년법문 - 에스페란토 번역본
  27. 2008.12.29 브라질 비자 받기와 에스페란토 2
  28. 2008.12.07 폴란드 아이들이 그린 천사 모습들
  29. 2008.11.27 난징대학교 다언어 교육 프로그램 추진
  30. 2008.11.18 뜻밖의 평양 룡악산 동물인형들 4
사진모음2011. 8. 24. 09:44

집 앞에 있는 나무에 비둘기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했다. 새끼 두 마리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단란한 비둘기 둥지는 그만 텅비고 만다.

이 비둘기 가족의 생생한 장면이 체코 프라하(Praha)에 살고 있는 에스페란토 친구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친구의 허락을 받아 이 비둘기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Vlasta Celá | 출처: Fonto de la fotoj]
 

▲ 2011년 4월 9일
우리 집 발코니 앞에 비둘기 집이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가 알을 품었다.  


▲ 2011년 4월 25일
비둘기 새끼가 벌써 태어났는지 우리는 매일 살펴보았다.


▲ 2011년 4월 30일
어미 비둘기가 물어다 주는 먹이로 새끼 비둘기가 잘 자랐다.


▲ 2011년 5월 1일
날마다 새끼 비둘기는 점점 크져 갔다.


▲ 2011년 5월 4일
처음으로 어미 비둘기가 둥지를 떠났고, 새끼 비둘기들은 집에 홀로 남았다.


▲ 2011년 5월 4일
하지만 맹금(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갖고 있는 육식성 새)들이 금방 기회를 포착해 새끼 비둘기를 공격했다. 첫 공격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 한 마리만 상처를 입었다.


▲ 2011년 5월 4일
두 번째 공격은 훨씬 강했고, 새끼 한 마리가 그만 땅으로 떨어졌다.


▲ 2011년 5월 4일
둥지에는 상처를 입은 새끼 한 마리만 남았다.


▲ 2011년 5월 4일
어미 비둘기가 돌아와 새끼 한 마리만 발견했다.


▲ 2011년 5월 5일
새끼는 또 다시 상처를 입었다.


▲ 2011년 5월 7일
둥지는 텅비어 있다. 두 번째 새끼 비둘기도 맹금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땅으로 떨어졌다. 어미 비둘기는 더 이상 둥지로 돌아오지 않았다.

동물의 먹이사슬이라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맹금도 비둘기 새끼가 자라서 어느 정도 피신이나 방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는 없을까...... 어찌 이것이 새들의 세계에만 국한될까...... 

* 최근글: 러시아 사람들이 보도에 벽돌 까는 방법은?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 8. 16. 08:58

폴란드 지인의 딸이 최근 결혼했다. 멋지고 행복한 모습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폴란드 사람들의 결혼 사진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자 지인은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맑은 강물 속에 찍은 사진을 보니 마치 인어공주를 데리고 행복을 찾아 도망치는 듯한 장면이 퍽 인상적이다.    
 
[사진작가: Marcin Czaban | 사진출처: fonto de la fotoj


치켜세운 중지는 유럽에서는 아주 심한 욕을 뜻하지만, 이렇게 신혼부부가 두 개를 맞대니 행복의 승리감이 하늘 천정을 향해 올라가는 듯하다. 두 사람의 사랑과 행복이 늘 싱싱하게 자라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 8. 9. 06:55

북동유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의 여름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피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낮 온도가 30도에 육박하는 때가 더러 있지만 그늘에 가면 더운 줄 모른다. 일반 가정에는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더운 날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반바지만 입어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아직 여름 가족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물론 바쁜 일들이 있었지만, 여름 지내기에 안성맞춤인 리투아니아를 떠나 남쪽 나라로 여행하는 것은 그렇게 썩 내키지가 않는다. 일전에 리투아니아 에스페란토 친구들이 함께 카누 타기를 결정했다. 여름 가족여행이라 생색낼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우리 식구 세 사람이 다 동참하기로 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남서쪽으로 100km 떨어진 메르키네(Merkine)가 목적지였다. 이 도시는 메르키스와 네무나스 두 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옛부터 요충지이다. 

▲ 카누 타기는 20km였다. 오른쪽 하단 Puvociai 마을에서 시작해 왼쪽 상단 Merkine 도시까지였다.
 
리투아니아 강변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암절벽은 없다. 하지만 강변은 우거진 숲이나 초원으로 가득 차 있다. 흐르는 강물이라 카누 타기가 수월한 편이지만 급한 각도로 강줄기가 굽어져 있는 곳에는 힘들게 방향을 잡아야 한다. 또한 넘어진 나무들이 강물을 막고 있는 경우에는 주의를 요한다.  


이런 단체 여행이라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음식을 준비한다. 전 일정 동안 자기가 먹고 마실 것은 챙겨온다. 함께 온 사람들과 나눠먹기 위해 더 많은 양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렇게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으니 참으로 푸짐했다.  

▲ 한국인인 나에게는 뜨거운 국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뜨거운 국을 즐겨 먹지 않는다. 

▲ 점심식사후 이렇게 풀밭에 누워 잠깐이지만 낮잠은 정말 꿀맛이었다. 

▲ 가다가 힘들면 모두 카누를 강변에 올려놓고 수영을 즐겼다. 메르키스 강은 특히 샘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강물이 아주 차다.

▲ 이날 저녁 숙소는 바로 텐트였다.

▲ 꼬치구이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담소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 식사후 이어진 사우나에서는 삼순이 양머리(관련글 바로가기)가 인기짱이었다.

▲ 친구들의 음식 가방은 요술 가방 같았다. 다음 끼니 때에도 식탁은 여전히 풍족했다. 

▲ 1박 2일 여행 1인당 경비는 40리타스(2만원)이다. 이 비용은 카누 임대, 꼬치구이 값이 포함되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도시에 있는 명소를 방문했다.
 

▲ 함께 1박 2일을 같이 리투아니아 에스페란토 친구들이다.

이렇게 단체 여행이지만, 가족 나들이를 즐겁게 하고 돌아왔다. 생전 처음 카누를 타본 딸아이가 가장 좋아했다. "이것으로 이번 여름 우리 가족여행은 끝!"이라고 선언해도 될 법했다. 그래도 바다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 4. 10. 08:17

에스페란토 친구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 ipernity.com 블로그를 심심치 않게 드나든다. 이들은 주로 자신들의 일상의 모습을 전한다. 가만히 앉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의 하루 생활들을 지켜보고 또 소식을 나누는 재미가 솔찬하다.

그 중 루마니아 할머니가 찍어서 올리는 사진은 늘 고향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교사로 정년 퇴임을 한 할머니(Lenke, 64세)는 독서, 자연 속 거닐기, 사진찍기를 취미로 한다. 최근 할머니가 올린 사진이 압권이다. 노출이 심한 상황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해 하얀 꽃을 부각시켰다(아래 사진).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 속 풍경이 나를 유혹한다. 1991년 루마니아를 처음 방문하고 아직 가보지 못했다. 목가적인 풍경이 넘쳐나는 루마니아로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다. 할머니의 허락을 얻어 여기 루마니아의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사진 Foto: Lenke Szász 출처 Fonto: http://www.ipernity.com/home/szasz.lenke]


나를 루마니아로 유혹하는 사진들...... 멀지 않은 장래에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카메라를 찍찍 누르기만 할 수 있다는 할머니...... 지나치게 겸손하시는 듯하다.   

* 관련글: 한국사람이라서 아주 좋다고 기뻐하는 초3 딸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8. 2. 08:45

매달 한국에서 오는 잡지가 하나 있다. 바로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가 발행하는 기관지 "La Lanterno Azia"이다. 한국어와 에스페란토로 된 월간지이다. 대개 봉투를 열자마자 24쪽으로 된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훑어본다. 한 때 이 잡지를 편집했던 사람으로서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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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우리집 거실탁자에 체코,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한국에서 온 8명 친구들이 의사소통 장애 없이 에스페란토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호를 받아들고 읽어가는 데 글쓴이가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에스페란티스토였다. 에스페란토를 배우게 된 동기와 활동을 기술해 놓을 글이었다. 그런데 후반부에 내 이름이 등장했다.

1983년 겨울 당시 초급을 마친 김유순, 이상수 등과 경기도 샛터에서 있었던 합숙에 참가했는데, 그 합숙에서 최대석, 나병도, 최윤희, 홍성조 선생님을 만났다...... 중략 ......

그리고 멀리서 온 우리를 보살펴주던 최대석 씨의 따뜻한 마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같이 갔던 부산회원 한 분이 세수하다 콘텍트 렌즈를 잃어버렸는데 얼음이 얼어붙은 샘가에서 30분 정도 맨손으로 얼음을 훑더니  결국 그 렌즈를 찾아주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감동이다.


1983년이며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의 일이다. 난 그때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기억을 하고 있다니 부끄럽고 고마울 뿐이다. 시력이 약한 사람이 렌즈를 잃어버렸으니 누군가 옆에 있는 사람이 찾아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옛 일을 되살리면서 잠시 자신을 돌어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나 또는 남에게 감동을 주면서 살아왔는가? 자타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 7. 11. 08:59

2005년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 참석차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를 방문한 프랑스 친구가 있다. 그는 프랑스 동부지방에 살고 있으며, 지역난방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교사인 아내와 11살 딸아이 레아(Lea)와 함께 최근 빌뉴스를 다시 방문했다.

대개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어느 지역을 방문할 경우 미리 연락에 숙소와 여행안내 제공을 무료를 받는다. 그런데 이 친구는 미리 호텔을 예약해 머물렀다. 바빠서 매일 만나 여행을 도와주지 못했지만 세 차례 만나났다. 무엇보다도 이들과의 만남을 반긴 사람은 8살 딸아이 요가일래였다.

그 동안 특별히 요가일래에게 에스페란토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우리 부부는 몹시 궁금했다. 레아와 같이 있을 때 뭐라고 요가일래는 말을 이어갔다. 말을 제대로 잘 하고 있냐 궁금해 가까이 가서 들어보려고 하면 요가일래는 접근금지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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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프랑스에서 온 레아(11살); 우: 리투아니아에 사는 요가일래(8살). 이들은 에스페란토로 통했다.
 

레아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함께 에스페란토 행사에 참가하면서 에스페란토를 배워 곧잘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프랑스 말을 하지 못하는 요가일래가 레아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는 에스페란토나 영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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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친구 가족과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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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에서 벗어나 강가에 있는 벨몬타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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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친구 부부와 함께

지난 금요일 저녁 이별 만남으로 프랑스 친구 가족을 또 만났다. 도심에서 벗어난 식당에 모여 맛있다는 리투아니아 맥주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제일 궁금한 사항을 레아에게 물어보았다.
 
"요가일래가 에스페란토를 할 줄 아니?"
"정말 잘 해요. 알고 있는 단어가 아주 많아요. 놀랐어요."
"그럴리가?!"


옆에 있던 요가일래가 칭찬에 자랑스러운 듯이 거들었다.
"아빠, 레아에게 영어 한 마디도 안 했어! 100퍼센트 에스페란토로만 말했어."
"웬 일이니? 정말 잘 했다. 내년에 덴마크에서 열리는 세계 에스페란토 어린이 대회에 보내줄게."
"정말?"
"정말이지. 레아도 오고 세계 각지에서 어린이들이 참가할 거야."


다음날 빌뉴스를 떠나는 레아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MSN으로 만나자면서 요가일래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만남은 요가일래가 난생 처음 에스페란토를 활용한 만남으로 기록된다. 비록 부모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에스페란토이지만, 8살 딸아이가 직접 에스페란토 의사소통을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기 때부터 영어 TV 틀어놓으면 효과 있을까
  한국은 위대한 나라 - 리투아니아 유명가수
  사라진 고대 프러시아를 재현하는 사람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미 노트북 출현?
  한국인 나보다 김밥 더 잘 만드는 유럽 친구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0. 5. 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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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한국 정부가 막걸리 세계화 명분으로 막걸리 영문 애칭을 "drunken rice"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drunken은 술취한, 술고래의, 취중의, 술김의 뜻이고, rice는 쌀이다. 이 말의 구체적인 배경은 모르지만 이 표현을 보자 "술취한 쌀"이 먼저 떠오른다.

어떻게 술취한 쌀이 막걸리의 애칭이 될 수 있을까? 술취한 쌀이라 하니 쌀이 어떻게 술에 취할 수 있을까? 술취한 쌀이므로 그 쌀을 마시면 사람이 술취한다는 말인가? "막거리는 마시기 전에 술에 취하게 하니 마셔서는 안 되는 술이야. 혹은 술에 취하고 싶으면 마시는 술이 막걸리야."라는 우스게 소리도 나올 법하다.

막걸리의 영문 애칭화로 막걸리의 세계화를 꾀하고자 하는 발상 자체를 이해하기가 힘든다. 아무리 애칭이지만 "drunken rice"는 우스광스럽다. 술 좋아하는 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drunken(술취한)이다. 그렇다면 이름에서 벌써 drunken을 풍기니 마실 맛이 날까? Drunken rice에는 한국 이미지도, 막걸리 이미지도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애칭보다 이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처음 이 막걸리라는 말을 접하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설명을 듣고 자꾸 마시다보면 자연스럽게 막걸리가 한국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막걸리의 세계화이지 굳이 요상스러운 영문 애칭을 만들어 세계화를 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막걸리도 단순히 rice wine 표현 대신에 럼, 보드카, 위스키 등과 같이 동등한 이름을 부여받아야 마땅하다. 한 마디로 영문 애칭 대신에 있는 이름 그대로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세계화의 최선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rice wine"(rizvino)이라는 설명적인 이름 대신에 makolio(마콜리오)라는 표현을 사용해왔고, 결실을 맺었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언어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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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스페란계에서 가장 권위있고 큰 "Plena Ilustrita Vortaro de Esperanto"(에스페란토 대사전)에 막걸리 단어가 등재된 것이 그 결실이다. 한국어 발음에 근접한 표현 mak(k)oli에 에스페란토 명사형 어미 -O가 붙어서 makolio가 되었다.
makoli/o: Koredevena alkoholaĵo el rizo, malforta, ne distilita, fermentigita per malto
막걸리: 도수가 약하고, 증류되지 않고, 맥아로 발효시킨 한국에서 유래한 쌀로 만든 술

이렇게 에스페란토에서는 요상한 말로 애칭되지 않아도 보드카, 위스키처럼 막걸리가 당당하게 하나의 어근으로 공용화되어 있다. 정부는 막걸리의 영문 애칭을 짓느라 애쓰기보다는 각국 사전을 조사해 막걸리가 어떻게 표현되어 있고, 제대로 기술이 되었는 지 확인하는 일이 애칭 부여보다 선행과제라고 생각한다.

* 최근글: 내 카메라에 잡힌 벨라루시 축구대표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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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음2010. 4. 23. 06:03

일전에 자신의 정원에 각양각색의 튤립을 키우고 있는 헝가리에 사는 에스페란토 친구(Erzsébet Tuboly)의 튤립 사진을 소개했다(관련글 바로가기). 어제 그가 또 다시 헝가리 봄소식 사진을 전해왔다.

북동유럽에 속해 있는 리투아니아에는 이제 막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지만, 남쪽에 위치한 헝가리에는 꽃이 활짝 피어있고, 소들이 벌써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 (사진촬영 | foto: Erzsébet Tub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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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얼핏보기에는 노란색 꽃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니 무수한 거미새끼들이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 소름으로 뻗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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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글: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인터뷰한다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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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음2010. 3. 22. 08:19

최근 헝가리에 살고 있는 에스페란토 친구가 봄소식을 전해왔다. 3월초 헝가리는 날씨가 따뜻해 정원 꽃밭에는 벌써 꽃이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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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꽃을 좋아하는 친구는 여러 송이를 화분에도 기르고 있다. 땅 속에 있는 튤립은 아직 소식이 없지만 화분 속 튤립은 어느 듯 피어올라 봄의 정취를 먼저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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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출처: Erzsébet Tuboly, ipernity.com/doc/33065/7539435?from=7539435&at=1268336146

하지만 3월 중순에 들어와 다시 영하 10도의 기온으로 추워지고 눈이 내리기도 했다. 눈에 덮힌 튤립을 보고있자니 겨울이 봄을 시샘하는 듯하다.

* 최근글: 딸이 생일선물한 케익, 보기만 해도 배부르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0. 1. 17. 09:55

배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일 것이다. 아무리 배워도 힘든 것이 외국어이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 리투아니아어는 초유스에겐 정말 어렵다. 단어도 쉽게 외워지지도 않고, 정확한 발음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이럴 때 아내의 잔소리는 높아진다. 다행히 옆에 있는 요가일래는 "그래도 아빠는 한국말과 에스페란토를 잘 하잖아!"라고 원군이 되어준다. 90년대초 폴란드어를 좀 배워서 말했다. 슬라브어에 속하는 폴란드어 지식 덕분에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지를 여행할 때 초보수준이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현지인들과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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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여름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천명이 모여서 세계대회를 개최한다.

언젠가 잠시 한국에 갔을 때 지인의 친구 A의 친구 B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지인의 친구 A는 러시아인이고 이들은 에스페란토로 잘 통했다. 그 친구 A의 친구 B가 한국에 가자 A는 자신의 한국인 친구인 초유스의 지인을 소개했다. 그런데 B는 에스페란토도, 영어도 할 수가 없었다. 지인과 B는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구원투수는 초유스의 폴란드어였다. 이렇게 배우지 않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라면 손짓 발짓을 보태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이를 수 있다. 

지난 1월 11일 영국 BBC 1 TV의 "The One Show" 프로그램이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소개했다. 이 리포트에서 에스페란토에 전혀 지식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에스페란토 문장을 말해주었더니 이들이 쉽게 이해를 했다. 이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의 지식으로 쉽게 에스페란토를 이해했던 것이다.  



이때 이해력을 실험한 에스페란토 문장은 다음과 같다.
              Mia filo havas hamstron.
              La hamstro nomiĝas Fred.

              Mia patro havas hundon.
              La hundo nomiĝas Roxy.


지금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유럽언어에 익숙하다면 이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배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간 의사소통은 참 쉬울 것이다.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1859-1917)는 오랜 기간 동안 리투아니아 대공국 땅이었고 지금은 폴란드 땅에 있는 비알리스토크에서 태어났다. 당시 비알리스토크는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자멘호프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해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했다.

에스페란토는 변음과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가 나고, 품사어미와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배우기가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언어가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쉽게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에스페란토를 권하고 싶다.

* 최근글: 딸아이의 첫 눈썹 메이크업에 웃음 절로
* 관련글: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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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10. 1. 15. 08:48

한 때 유럽 여행객들은 가는 나라마다 새로운 화폐로 환전해야 했다.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각국 동전은 처치하기 곤란한 짐이 되기도 했다. 베테랑 여행자들은 환율이 좋은 환전소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낯선 풍경이 되었다. 현재 유럽연합(EU)의 16개국이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유럽 국가들은 경제공동체와 아울러 단일통화 도입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단일통화 도입이 확정됐고, 1995년에는 단일통화 이름이 ‘유로’로 결정됐다. 유로가 정식 화폐로 도입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마침내 2002년부터 자국화폐 대신 유로가 일상생활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유럽인들은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단일통화를 추구해 왔다. 바로 만국공통어 사용을 주장하는 에스페란토 지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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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 소인이 찍힌 에스페란토 엽서 (4. 유럽 단일통화 도입을 요구하라)
 
"프롬유로"는 단일통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을 촉진하기 위해 유럽투자은행과 유럽위원회 등이 1990년 설립한 비영리기구다. 이 기구가 펴낸 ‘유럽을 위한 유로’라는 책자에는 1934년 9월13일자 소인이 찍힌 우편엽서가 실려 있다. 루마니아에서 발행된 엽서의 발신지는 스페인, 수신자는 프랑스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사용자)다. 에스페란토로 쓰인 이 엽서는 유럽인들에게 호소하는 열 가지 사항을 담고 있다. 유럽연합을 믿어라, 유럽 단일경제구역 창설을 지지하라, 유럽 의회를 대표하는 공동의회 창설을 홍보하라 등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열 가지 내용 중 네 번째 사항은 ‘공동 유럽군대 창설과 유럽 단일통화 도입을 요구하라’다.

1907년부터 공동통화 제조 유통 … 회비 내고 잡지 구입 등에 사용
에스페란토는 세계평화 실현을 목표로 폴란드인인 자멘호프가 창안해 1887년 발표한 언어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초기부터 만국공통어 실현과 함께 단일통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에스페란티스토들 사이에서만 통용됐으나 이미 20세기 벽두에 유럽 공동화폐를 실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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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사용한 공동통화 "스텔로"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언어학자이자 에스페란티스토인 소쉬르의 제안에 따라 1907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스페스밀로’라는 공동통화를 제조해 사용했다. 독일 에스페란티스토인 차우나는 1921년부터 유럽 단일통화 연구에 몰두했다. 에스페란토 국제조직인 ‘세계연맹’은 기존 지폐에 이어 1959년부터 '스텔로(뜻은 별)라는 동전을 통용시켰다. 비록 에스페란티스토 사이에서만 사용됐지만 이 화폐는 회비를 내고 잡지를 구독하거나 도서를 구입하는 등 기존 화폐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유로의 아버지는 에스페란티스토
그렇다면 현재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euro)라는 이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 기관지 Esperanto 2010년 1월호는 이에 대한 글을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euro"라는 이름을 짓은 사람은 벨기에서 중학교 교사이자 에스페란티스토인 게르마인 피를로트(Germain Pirlo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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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에페란토 협회 기관지 "에스페란토" 2010년 1월호에 실린 관련 기사 화면 촬영

그는 1995년 8월 4일 당시 유럽집행위원장인 작크 상테르(Jacques Santer)에게 새로운 유럽 통화에 "유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자라는 제안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 해 9월 18일 상테르는 피를로트에게 그의 제안에 대한 감사편지를 보냈다. 1995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서 "유로"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유로는 단일통화로 완전히 정착되고 있지만, EU는 여전히 회원국간의 언어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EU는 회원국 언어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EU 확대로 인해 늘어나는 통번역비 등으로 업무어수(業務語數) 축소, 또는 하나의 공용어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유로와 에스페란토는 통일성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유로는 각국의 기존 화폐를 사라지게 하고, 에스페란토는 각국의 기존 언어들을 존중하는 1민족 2언어 주의를 표명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유로와 에스페란토의 차이점이다.

* 관련글: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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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9. 11. 14. 07:31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 행사가 하나 있다. 바로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학습하는 남강학교이다. 남강학교는 남강서원에서 열리는 비상설 학교이다. 남강서원은 경북 청도군 각북면 비슬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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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청도 각북에 소재하고 있는 남강서원은 1988년부터 에스페란토 학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 남강서원은 1537년 창건되어 오졸재 박한주 선생을 향사했는데 뒤에 국담 박수춘 선생을 배향한 서원으로 내려오다1868년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1995-1998년 복원을 이루었다. 이곳에서 1998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두 차례 에스페란토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천자문이나 사서삼경 읽는 소리가 들려야 할 서원에 웬 생소한 외국어 읽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을까? 박씨 문중의 한 분이자 에스페란티스토인 박화종 선생이 건물만 복원해 보존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이 서원을 국제어 에스페란토 학습장으로 사용할 것을 종중 어른들을 설득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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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에스페란티스토들도 참가하고 있다.

적게는 50여명 많게는 150여명이 참가하는 한국에스페란토계에서 중요한 연례행사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참가하고 있다. 초유스는 외국에서 살기 때문에 참석하고 싶어도 거의 기회가 없다. 하지만 2006년 처음 이 학교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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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사과의 탐스러움에 반한 초유스

당시 리투아니아 친구, 브라질 친구와 함께 참석했는데 늦은 가을 따뜻한 햇살에 비치는 사과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소문난대로 청도사과는 정말 맛있었다. 함께 리투아니아 친구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사과가 있다니 감탄을 마지 않았다.

에스페란토 학습이외에 늦은 가을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 아래에서 소주와 포항 꽈메기로 전국 각지에 온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밤을 새우면서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새롭다. 밤새 반짝이는 하늘의 별이 날이 밝아짐에 따라 초록색 희망의 별로 변해 에스페란티스토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확 받을 수 있는 그런 행사이다.

그런데 올해 이 행사가 신종플루 때문에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행사의 연속성보다는 사람의 건강보호를 우선한 주관자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이 행사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에스페란토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행사 취소를 아쉬워하는 한국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인터넷으로 부활해보자는 데에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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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남강 에스페란토 학교 참가자들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던 11월 14일 오후 1시부터 15월 오후 3시까지 인터넷 화상대화 프로그램인 스카이프로 온라인 학교가 열린다. 행사 내내 희망자들이 스카이프에 접속해서 대화를 통해 회화실력을 높일 수 있고, 질의응답을 할 수가 있다. 어제 열린 운영 점검에서 초유스는 브라질, 일본, 핀란드, 한국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했다.
     
신종플루로 취소된 행사를 이렇게 스카이프로 부활시키는 한국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에스페란토에 대한 그들의 열정뿐만 아니라 한국이 인터넷 강국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셈이다. 박수 짝!짝!짝!

* 관련글: 블로거, 노벨상 수상자를 인터뷰하다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 최근글: 우리 집은 화장실 이어쓰기로 물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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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09. 11. 7. 07:17

하이쿠는 17음절로 된 일본의 정형시이다. 한 줄로 쓰기도 하지만, 보통 3줄로 된 짧은 시이다. 3줄은 각각 5음절, 7음절, 5음절로 구성된다. 주로 자연을 기술한다. 하이쿠는 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이쿠는 자연을 기술만 하고, 논평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이는 독자의 몫이다.

이 하이쿠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2003년이다. 당시 한국에서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원불교 교전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일을 진행했다. 그때 번역 윤문 작업에 참가한 스페인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일본에 유학했고, 일본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그가 일본의 옛 하이쿠로 스페인어로 번역한 책이었다.

스페인어로 된 하이쿠 책! 하이쿠와 스페인어에 문외한 사람에게 이 책은 그 동안 서고의 기념품으로만 남았다. 그러다가 2007년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가 요코하마에서 열렸다.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으로 대회 일일 신문을 꼬박 읽었다. 이 신문에 하이쿠에 대한 강연 기사가 있었고, 관련 웹사이트가 적어져 잇었다. 2003년의 하이쿠 단어가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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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에도 하이쿠 애호가들이 활발하다. 빌뉴스 2009년 유럽 문화 수도를 기념해 발간한 "빌뉴스를 위한 하이쿠" 책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하이쿠처럼 시조를 읊을 날이 올까?

이후 종종 하이쿠를 에스페란토로 써보곤 했다. 계절과 느낌을 17(5+7+5) 음절에 딱 맞게 기술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만 흥미로웠다. 하나의 하이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때론 하루를 꼬박 시름하기가 했다. 왼쪽은 에스페란토 언어이고, 오른쪽은 이를 번역한 것이다.
             Jen kandelaro                     촛불 무리가
             fajras tombejan nokton —    묘지밤을 밝힌다 —
             vintra komenco                   겨울의 시작  (11월 1일은 묘지에 촛불을 밝히는 날이다)  

             Soras la blanko                   파란 하늘에  
             sur la ĉiela bluo,                  하얀 색이 떠올라  
             galopas hejmen.                 집에 달린다.

             Malantaŭ nubo                   구름 뒤에는
             la brila bela suno                 빛나고 예쁜 해가
             ĉiame lumas.                      늘 빛을 낸다
.
 
이렇게 에스페란토로 일본의 하이쿠를 지을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바로 한국의 전통적인 정형시 시조때문이다. 오래 전에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노산 이은상의 시조집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직 에스페란토 초보자라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못했다. 일본의 하이쿠를 접하니 이제서야 노산의 에스페란토 시조집이 공부하고 싶어진다. 책부터 구해야겠다.

기회가 되면 앞으로 한국의 시조를 열심히 공부해서 에스페란토로 직접 시조를 써보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조의 세계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 한국의 시조도 일본의 하이쿠처럼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 관련글: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 최근글: 유럽 슈퍼마켓에서 만난 한글 '도시락'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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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2009. 10. 8. 08:12

지난 여름 폴란드 비알리스토크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취재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의 방에서 서울로 보낼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잠깐 쉬는 동안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백발의 한 노인이 거북이 가듯이 느릿느릿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가고 있었다. 모습을 보니 에스페란토 대회 개막식에서 소개된 라인하트 젤튼 교수 부부였다. 그의 아내는 몸이 불편해 휠체어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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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 참가한 젤튼 교수 부부 (가운데 검은색 양복이 젤튼 교수)

젤튼 교수는 게임이론 연구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Reinhard Selten, John Harsanyi, John Nash)이다. 게임이론은 경제학, 생물학, 정치학, 컴퓨터공학 등에 활용되는 응용수학의 한 분야이다. 이는 한 개인의 의사결정에서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존적인 전략적 상황에서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젤튼 교수 부부는 청년시절부터 에스페란토 운동을 활발히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음날 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리고 있는 비알리스토크 공과대학교 휴게실에서 이 부부를 보게 되었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 젤튼 교수에게 다가가서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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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스: 언제 어떻게 에스페란토를 배웠나?
젤   튼: 기억으로는 1946년 혹은 1947년에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독일에서는 책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에서 에스페란토의 16가지 기본문법을 복사해서 혼자 공부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는 데에는 2-3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 인터뷰에 답변하는 젤튼 교수)

초유스: 60년 이상 에스페란토 활동을 해왔다. 무엇이 그렇게 오랫동안 에스페란티스토로 남아있게 했나?
젤   튼: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에스페란토 클럽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1959년 결혼했다. 우리는 에스페란티스토 부부이다.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가 추구하고자 한 인류 형제애와 평등, 평화 정신에 공감한다. 특히 에스페란토를 통해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같은 직업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아주 흥미로웠다.

초유스: 에스페란토가 학문활동에 도움을 주었는가?
젤   튼: 직접적 도움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로 된 자료를 읽고 정보를 얻었다. 학문 연구에 전념한 인생의 중반기에는 적극적으로 에스페란토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꾸준히 에스페란토 잡지를 구독해서 읽었다.

초유스: 2007년 유럽의회에서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들이 제1 언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에스페란토냐?
젤   튼: 제1 언어가 아니고 제1 외국어다. 제1 언어는 해당국의 모국어이고, 제1 외국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울 것을 권했다. 유럽연합의 경제통합은 기대보다도 훨씬 빨리 이루어졌다. 하지만 진정한 통합은 유럽인들 자신이 유럽인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제외한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다. 어느 언어도 다른 언어에 비해 우월성을 지녀서는 안 된다. 그 언어는 배우기가 쉬워야 하고, 또한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않아야 한다. 그 조건을 갖춘 언어가 바로 에스페란토이기 때문이다.

초유스: 에스페란토의 미래는 어떠한가?
젤   튼: 에스페란토가 지니고 있는 장점 때문에 에스페란토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장점 중 하나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다른 언어들을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 더 쉽다는 실험결과도 나왔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에스페란토를 쉽게 배우고, 이렇게 습득한 언어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언어들을 배우는 것이 수월하다. 에스페란티스토들 중에는 3-5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요즈음 한 해 동안 연구과 활동으로 세계와 인류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있다. "노벨상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젤튼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 8. 2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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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취재를 마치고 빌뉴스로 돌아온 후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연감에 있는 초유스의 주소를 보고 편지했다.

프랑스인 남자가 프랑스인 여자친구와 함께 8월 중순경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방문하고자 하는 데 숙박을 제공해줄 수 있는 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여름 휴가의 일정도 있었지만 선뜻 응하기로 했다. 어떤 낯선 사람들이 올까 궁금했다. 8월 17일 드디어 이들이 우리 집으로 왔다.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보낸 대화 일부를 소개한다. (사진: 우리집을 방문한 프랑스인 남자 크리스토프와 여자 마리온)

어떤 일을 하나?

유럽연합의 자원봉사서비스(EVS: European Voluntary Service) 프로그램으로 현재 폴란드 비얄리스토크에 있는 에스페란토 관련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비얄리스토크 시청이 개관한 자멘호프센터 일을 보조하는 일을 하는 한편 에스페란토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EVS는 어떤 프로그램인가?
유럽자원봉사서비스는 젊은 유럽 청년들(18세30세)에게 유럽내나 유럽외의 다른 나라에서 적게는 2달, 많게는 1년까지 무료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런 방법으로 젊은이들간 결속과 상호이해, 관용을 진작시키고자 한다.

무료봉사이지만, 그래도 생활비 등은 지원받지 않나?
왕복교통비와 매달 주거비, 식사비, 용돈을 받는다. 한달 식사비는 현재 400즐로티를 받고, 용돈은 300즐로티를 받는다. 매달 식사비는 반드시 모든 영수증을 첨부해 제출한다. 여자친구도 슬로베니아에서 1년간 자원봉사를 했다.
 
여행을 즐기는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언어를 많이 쓰나?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나라를 제외하고는 프랑스어가 통하지 않는다. 주로 에스페란토와 영어를 사용한다. 여행 떠나기 전 여행하는 나라의 기초언어를 습득하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 교통편은 대부분 히치하이킹으로 하는 데, 장거리 이동하면서 운전사로부터 현지어를 많이 배운다.

특히 여자에겐 히치하이킹은 위험하지 않나?
16세부터 해오고 있지만 , 아직까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위험은 어디나 일어날 수 있다.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탄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차를 탈 때 미리 위험에 대해 겁을 먹지 않고 나가듯이 하이하이킹도 마찬가지다. 위험에 대해 조심은 하지만 겁을 먹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은 이민족에 대해 관대하나?
사실 주변에 정통 프랑스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내 할아버지는 스페인인이었고, 여친의 할머니는 슬로베니아인이었다. 이처럼 조부모 세대, 심지어 부모 세대 중 이민자들이 많다. 사람이나 지역에 따라 관대에 대한 체감온도가 다르지만 대체로 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은 프랑스인이라 생각하나?
비록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다른 민족이지만, 우리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프랑스 문화 속에 살기 때문에 프랑스인이다. 태어나서 살고 있는 곳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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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시절 대부분을 자원봉사와 여행으로 보내고 있는 프랑스인 크리스토프와 마리온
 

이렇게 2박 3일 동안 프랑스 에스페란티스토 남녀 한 쌍에게 숙박과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떠날 때 이들은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고, 프랑스에 오면 꼭 자신의 집을 방문할 것을 청했다. 생면부지의 여행자들에게 이렇게 함으로써 유럽 각국을 여행했던 젊은 시절에 신세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한다.

이들이 떠나자 아내는 "저렇게 잘 생기고 지적인 눈을 가진 남자는 정말 오랜 만에 만났다"라고 질투나게 하는 말을 서스럼없이 꺼냈다. 2박 3일 동안 손님 대접에 애를 쓴 아내를 생각해서 위의 말은 못들은 척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 관련글: 집교환 휴가법 확산 일로
               홀로 배낭여행하는 73세 할머니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9. 8. 12. 10:35

지난 7월 하순 폴란드 비얄리스토크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를 다녀왔다. 이 대회에서는 한국인 소태산 박중빈님이 세운 원불교의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분과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이들은 원불교를 세계 각국의 대회 참가자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한국문화 알리기 일환으로 올해는 솟대를 소개하고 직접 같이 만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솟대는 예로부터 한국의 조상들이 연초에 행운을 불러들이기 위해 마을입구에 세워 둔 긴 장대이다. 이 장대 맨 꼭대기에는 새를 매달아 놓는데 사람들은 그 새가 신과 인간을 이어준다고  믿었다. 그리고 솟대가 세워져 있는 곳은 신성한 곳이라 여겨 비록 죄인이 그곳에 있어도 끌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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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인들은 재료를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가지고 와서 분과모임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60여명의 참가자들은 새로운 문화에 대한 큰 관심을 표하고 직접 만들어보았다. 자기가 만든 것을 선물로 가져가게 했다. 한국인들은 이 솟대 만드는 법을 복사해서 나누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유럽인 참가자 여러 명은 집으로 돌아가 꼭 해보겠다면서 방법을 숙지하는 데 공을 들었다.
 
 
이렇게 한국의 솟대가 유럽에 상륙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으니 잔잔한 감동이 일어났다. 이들 원불교 에스페란토 사용자들 덕분에 한국 솟대를 선물로 집으로 가져왔고, 이는 앞으로 주위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한국의 옛문화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폴란드 여대생의 유창한 한국어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9. 8. 10. 14:11

일전에 이웃 나라 폴란드를 다녀왔다. 비얄리스토크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를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비얄리스토크는 폴란드 북동지방의 중심도시이다. 이곳에서 1859년 세계공통어를 지향하는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자멘호프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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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얄리스토크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은 바로 브라니쯔키 궁전이다. 브라니쯔키 가문은 18세기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귀족 가문 중 하나였다. 이 궁전을 관람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담벼락에 사진을 전시회에 방문객이나 산책객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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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폴란드 여대생의 유창한 한국어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 8. 3. 06:20

일주일간 지속되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 프로그램에 따르면 수요일은 온종일 관광이 열린다. 이날은 대회가 열리는 도시 인근의 관광지를 둘러보는 날이다. 매년 온종일 관광을 마친 이날 저녁 한국인 참가자들이 모여 상견례를 하면서 친선을 도모한다. 올해는 20명이 참가했다. 제일 연장자는 올해 72세인 소아과의사 김영명 박사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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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님은 52년전 1957년 의과대학에 다닐 때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껏 에스페란토 사용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는 스스로 애칭을 "HOPE"(에스페란토로 장식된 사람)로 부를 만큼 에스페란토에 푹 빠진 사람이다. 일년간 열심히 일하고 여름엔 세계에스페란토대회 등 에스페란토 행사에 참가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삶의 활력소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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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박사님이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에 적인 숫자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1.3메가 픽셀이다. 요즘 휴대폰도 2메가 픽셀 카메라를 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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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는 5메가, 7메가, 8메가 심지어 12메가 픽셀 등 그 동안 괄목한 발전을 해오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한 초창기에 산 1.3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초유스도 초창기에 산 디지털 카메라를 여러 해 동안 잘 사용하다가 서너 차례 업그레이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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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듯 보기에 7층 건물을 가진 전문의 김박사님의 부와 명성에 1.3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사진인화를 해도 만족스럽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김박사님은 에스페란토 활동을 하면서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에스페란토 운동을 위해 기꺼이 기부하곤 했다. 이런 기부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그가 지금까지 수년 동안 1.3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마음이 한 요인이 되었구나라고 느꼈다. 김박사님의 디지털 카메라를 본 후 10메가나 12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수그러졌다.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 7. 26. 14:50

며칠 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사용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러시아를 여행 중인 프랑스의 한 여자 에스페란티토가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참가차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토요일 도착하는 데 기차역에서 마중하고 폴란드 대회장소인 비얄리스토크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를 묻는 편지였다.

아무런 주저 없이 역으로 가서 마중을 하고 도움을 주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혹시 우리 부부가 승용차로 갈 수 도 있는 데 그럴 경우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토요일까지 생면부지인 프랑스 여자 에스페란티스토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젊은 여자일까, 나이든 사람일까......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다. 기차 도착시간을 조금 지나 빌뉴스역에 도착했다. 선로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에스페란티스토(가방 등에 녹색별을 부착 등등) 같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합실에서 나와 역밖으로 나오니 머리가 희긋한 여자 한 사람이 열심히 디카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입고 있는 티셔츠 등에는 선명하게 "ESPERANTO"가 적혀 있었다.

낯선 사람을 낯선 기차역에서 낯선 사람이 만났지만, 둘은 악수하고 금방 오랜된 친구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하는 이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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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면부지이지만 처음 만나자마자 초유스네의 아침상을 받고 있는 르네 할머니 (오른쪽)

할머니를 집으로 안내해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300km 떨어진 폴란드 대회장소로 향했다.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 프랑스 에스페란티스토의 발음을 금방 알아보는 데 이 할머니는 그렇하지가 않았다. 봐아 하니 오랫 동안 에스페란토를 사용한 사람인 것 같았다. 여러 대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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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를 집삼아 베낭여행을 즐기는 르네 할머니 (73세)

이 할머니의 이름은 르네 코벨(Renee Caubel)이다. 1937년에 태어났으니 73세이다.  1916년 에스페란토를 배운 아버지로부터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부모 둘 다 에스페란티스토이었고, 집에서 에스페란토를 사용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반발한 1939년부터 집에서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자제했다.

결혼을 하고 세쌍둥이를 비롯해 4자매를 낳고 길렀다. 병원 영양사로 20년간 근무했고, 52세의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은퇴했다. 1999년 남편이 사망하자 젊은 시절 했던 에스페란토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2000년 덴마크 여행을 시작해 매년 세 차례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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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비자가 부착된 할머니 여권

2005년 99일간 유럽연합 회원국을 모두 방문했다. 일본, 중국, 베트남을 비롯해 40여개국을 여행했다. 할머니의 여행 특징은 바로 세계에스페란토청년회가 제공하는 "Pasporta Servo" (에스페란티스토 무료 민박 주소록)을 이용하는 것이다. 할머니도 거주 도시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 만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에스페란티스토를 만나면 처음 봤지만 수년 전에 만난 것처럼 정이 간다. 최근 러시아 에스페란티스토에게 묵었는데, 그는 자기 집의 열쇠까지 주면서 언제든지 오라고 한다"라고 말하면서 "에스페란토를 하니 청춘시절로 회귀한다"라며 애띤 소녀처럼 웃었다.

일흔의 나이에 이렇게 배낭여행을 하는 데 그래도 경비가 솔찬히 들어갈테인데 어떻게 해결하냐고 물었다. 연금에서 먹고 입고 하는 데서 최대한 절약해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경비를 조달한다고 한다. 노후에 이렇게 세계를 자기 집삼아 에스페란토로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이나 옛 친구를 만나 활발하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무척 부럽다.

* 이글은 프레스블로그 2009년 9월 MP에 선정되었습니다.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 7. 21. 08:41

70개국 2천명, 통역 없는 국제회의 가능할까? 한마디로 가능하다. 오는 7월 25일에서 8월 1일까지 전세계 70여개국에서 2000여명이 폴란드 북동지방의 중심도시인 비얄리스토크에 모인다. 한국에서도 20여명이 온다. 바로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들이 만나는 국제회의에선 늘 통역과 번역이 따른다. 하지만 이 세계에스페란토대회는 모든 회의와 강연, 공연, 관광 등이 에스페란토 하나만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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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스페란토대회 개막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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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얄리스토크는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1859-1917)가 태어난 곳이다. 올해는 그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멘호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비얄리스토크는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자멘호프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해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했다.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에스페란토가 정말 언어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세계대회는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가장 큰 통로 역할을 한다. 불가리아의 농부, 인도의 맹인, 브라질의 대학교수, 리투아니아의 앳된 소녀, 영국의 구순 할아버지,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등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통역 없이 진행된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으면, 세계 공통어야말로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 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라고 자멘호프는 1905년 제1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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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지속되는 이 대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대회대학은 세계 각국의 유수한 대학 교수들이 나와 천문학, 인문학, 언어학, 문학, 수학, 정보학, 민속학 등 다방면에 걸쳐 강의를 한다. 작가, 방송인, 기자, 법률가, 교직자, 자연치료사, 채식주의자, 고양이애호가, 과학자, 무국적주의자 등 많은 에스페란토 단체들이 분과회의를 가진다. 이러한 학술 및 회의 프로그램 외에도‘민족의 밤’을 통해 참가자들은 대회 개최국가인 폴란드의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다. 노래공연, 악기연주회, 연극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관광도 열린다. 어린이 세계대회도 병행에서 열린다.

전세계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고전음악이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러 차례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낸 험프리 톰킨 박사는 한 기자회견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는 여러분들이 추정하는 것보다 많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닌 레나토 코르세티 박사는 “최근 들어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의 우월적 지위에서 파생된 언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2007년 미국 사명위기언어연구소는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 7000여개 중 소수 민족 언어들이 2주에 한 개 꼴로 사라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세계 인구의 80%가 사용 빈도가 높은 언어 83개, 세계 인구의 0.2%가 3500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유럽연합의 회원국은 27개국으로 공식어가 23개에 이른다. 통번역에 소용되는 비용은 연간 무려 13억 달러에 달한다.

정치·경제·통화 분야에서 통합을 이뤄가는 유럽연합은 언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지배적인 언어인 영어를 공식어로 채택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로 합의를 이끌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등장하는 대안이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이다.

에스페란토가 발표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민족간 반목과 혐오감은 여전하고, 강한 민족의 언어는 약한 민족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에스페란토가 영어를 비롯한 특정 민족어의 우월주의를 넘어서는 공식적 대안으로 인정받을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에스페란토가 유럽연합의 언어로, 나아가 세계 인류의 공통언어가 되어 말이 같은 자국민간 모국어를 사용해 이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키면서 서로 말이 다른 민족간 에스페란토를 사용해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루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  제94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열린 원불교 분과모임 영상

초유스는 오는 7월 25일 통역 없는 세상으로 인류평화를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폴란드 비얄리스토크 현장을 찾아간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과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블로그를 통해 알릴 계획이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관련글: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취재 방송한 YTN TV 영상을 볼 수 있는 곳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6. 2. 09:29

어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바로 브라질의 한 에스페란티스토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리 자연의 이치라고 하지만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수록 주위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하나 하나 곁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올해 여든살인 이 브라질 지인은 UN 직원, 시인, 대학교수, 에스페란토 학술원 회원, 번역가, 교육자, 사전편찬자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일을 했다.
 
지난 해 12월 31일 브라질 리오데자이네로 여행 때 처음 이 분을 만났다. 당시 머물고 있는 지인 집으로 이날 직접 찾아와 한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포르투갈어-에스페란토 사전 편찬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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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 않은 체구에 넘치는 웃음과 힘찬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여든의 나이에 저렇게 건강하고 정열적으로 살 수 있을까 놀랍기도 하고 몹시 부러웠다. 저 나이에도 저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다음날 (1월 1일) 점심식사로 초대했다.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부담스러웠지만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우선 그가 단골로 가는 중국식당으로 갔으나 새해라 문을 닫았다. 한참 동안 찾아간 곳이 일본식당이었다. 

"당신들을 초대하기 위해 내가 지난 10년 동안 연금을 절약해놓았으니, 오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시켜라"라고 하던 그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식사 내내 그의 농담과 일화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영상은 음식이 나오기 전 젊은 시절의 여러 가지 일화를 에스페란토로 들려주는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상은 초유스의 브라질 가족여행기 8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브라질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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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브라질2009. 2. 24. 12:40

그 동안 여러 차례 브라질 방문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이번 여행에서 최대 화두는 다름 아닌 "브라질 여행 안전한가, 위험한가?" 지난 12월 31일부터 1월 21일까지 3주 꼬박 브라질을 여행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과 지인을 통해 가장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한 것은 안전이었다.

브라질에 살고 한 리투아니아인은 주택 담에 전기 철조망을 칠 정도로 치안이 잘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각별히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관광지에는 지갑이나 카메라 등을 조심하라고 한다. 이런 사전 경고를 듣고 보니 dsr 카메라나 캠코더를 들어갈 의욕마저 잃게 되었다. 그냥 머리와 마음 속에 여행의 추억을 담아오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혼자 가지만 갔다 오면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담을 망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안고다라도 카메라와 캠코더를 가져가기로 했다. 리오데자네이로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오른 쪽 길옆에선 소위 '빈민촌'이 즐비했다. 이 빈민촌을 바라보면서 승용차 대화는 여행안전이었다.

"브라질 여행은 위험하다고 하는 데 실지로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느끼나?"
"위험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리오데자네이로에 살면서 위험을 느껴본 적은 없다. 위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위험이 더 쉽게 찾아온다. 그러므로 위험을 특별히 의식하지 말고, 외국인 여행자라는 것을 티내지 않고, 평소처럼 조심하면 된다."

사거리에서 차가 멈추자, 신호대기 중인 운전자들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창문을 열려는 순간 친구는 이런 곳에서는 절대로 창문을 열지 말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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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데자네이로의 또 다른 친구는 우리들을 위해 거리에서 총을 들고 순찰을 도는 경찰관들에게 안전에 관해 물었다. 경찰의 답은 이렇다. "카메라나 캠코더를 목에 걸고 다니지 말고, 가방에 속에 넣어서 필요할 때만 꺼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경찰로부터 이런 말을 직접 들은 후 이날 저녁 꼬빠까바나에서 열리는 새해맞이에 캠코더를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200여만명이 모인다는 소리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 가니 캠코더를 가져오기 않은 무척 후회했다. 술 마시고 깽판 치는 무리들,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이날 현장엔 이런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이렇게 브라질을 3주 여행하는 동안 브라질은 위험하다고 하는 속설은 적어도 초유스 경우엔 사실과 달랐다. 어쩌면 대부분 에스페란토를 말하는 현지인과 함께 돌아다녔기 때문에 실제로 그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점도 있을 것이다. 동행인이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도 낯선 현지인들의 친절한 도움 덕분에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도움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이번 여행에서 보듯이 역시 제일 안전한 여행은 현지인 사람들과 미리 사귀어놓고 도움을 받는 것이다. 리오데자네이로에서 내내 안내를 해준 마리아 그라시아의 "나와 함께 있으면 만사가 형통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과거 우편시대보다 요즈음은 훨씬 더 빠르게 여행 목적지의 사람들과 사귈 수가 있다. 물론 언어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초유스는 이 언어장벽을 에스페란토로 해결했다.

이상은 초유스의 브라질 가족여행기 15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브라질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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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브라질2009. 2. 12. 11:30

낯선 나라에 처음으로 갈 때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이 늘 상존한다. 지난 12월 초순 갑자기 브라질 쿠리티바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 아내가 동해하는 김에 세계적 유명 관광지인 리오데자네이로(리오)와 상파울로도 방문하기로 했다.

쿠리티바와 상파울로에는 친구들이 있어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리오였다. 부부가 같이 가므로 일상에서 더 절약하고 이번 리오에서는 분위기 있게 보내기를 결정했다. 그래서 신나게 인터넷으로 호텔 예약을 시도했다. 무궁화 3개부터 시작해 무궁화 5개까지 모조리 찾았으나 방이 없었다. 새해맞이를 위해 세계와 브라질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상파울로나 쿠리티바로 곧장 오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 브라질 친구가 옳았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에스페란토였다. 리오에 사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가 발행하는 에스페란토 사용자 주소록인 연감에서 몇몇 현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새해부터 민폐 끼치기가 부담스러워 호텔 예약을 부탁했다. 큰 기대는 안했지만, 몇 시간 후 세 사람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안전과 현지적응을 위해 호텔보다는 에스페란토 사용자 집을 권했다. 이렇게 자기 집으로 기꺼이 초대하겠다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었다.   

12월 30일 파리 공항에 있는 데 브라질에서 국제전화가 왔다. 택시를 잘못 타면 바가지 낭패를 당할 수도 있으니 자기가 31일 아침 공항에 마중을 나가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작곡가인 아라곤은 차를 가진 아들과 함께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손에는 초면의 사람을 찾기 위해 큼직하게 이름을 쓴 종이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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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와 3박 4일간 같이 생활한 마리아는 대학교 교직원으로 퇴임했다. 마리아는 치즈빵을 직접 만들어서 우리 부부를 맞이했다. 내내 관광지를 안내하며 브라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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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UN 직원으로 일을 했고, 대학교수로 퇴임한 실라(80세)는 우리 부부 점심 초대를 위해 지난 십년 동안 연금을 절약했다면서 인근 일식당으로 초대했다. 같이 있는 동안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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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 퇴임한 알로이죠는 에스페란토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날 우리 부부를 리오데자이네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폐허 공원"으로 안내했다. 많아도 5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실제 나이가 65세라 한다. 믿지를 않자, 그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었다. 에스페란토를 하면 이렇게 젊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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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남부 지방 쿠리티바에서 만난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편하고 정이 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날 모인 친구(오른쪽 밑 사진, 하얀 티셔츠)가 어느 날 사촌과 함께 대학시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촌왈: "내가 꼽는 최고의 교수는 바로 포르투갈어를 가르친 제랄도 교수이지! 너는 모르지?"
친구왈: "그 교수와 난 같은 에스페란토 단체 회원인데!!!"
사촌왈: "부럽다, 부러워~~~" (교수는 왼쪽 윗 사진,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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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로에서는 서울에서 YTN 리포터 연수 받을 때 같은 방을 쓴 친구이다. 방을 같이 쓴 죄(?)로 이번에 손님 대접 왕창 받았다. 아내는 한국외에서도 한국인의 손님 환대에 감동 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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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전>를 포르투갈어로 번역을 한 친구 제랄도(78세)의 가족이다. 3개 대학교에서 포르투갈어를 가르쳤다. 남들보다 3배나 더 일했으므로 합쳐서 100년을 일했다고 한다. 2주간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대부분 시간을 글 쓰는데 바치고 있었다. 제랄도 가족 덕분에 브라질 사람들의 일상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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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어를 전혀 모르는 우리 부부가 브라질에서 이렇게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바로
에스페란토 덕분이다. 출발지에서는 바로 위 사진 속처럼 환송을 받았고, 도착지에서는 환영을 받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의 언어로 서로 이해하고, 돕고, 형제처럼 지내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고, 노력하고자 한다.

이상은 초유스의 브라질 가족여행기 2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브라질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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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9. 2. 6. 08:05

지난 1월 3주간 처음으로 남미 브라질을 방문했다.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간단한 회회라도 몇 마디 배우고자 했으나 게으름 탓으로 하지 못했다.

전혀 배운 바가 없었지만, 현지인들이 포트투갈어로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랐다. 포르투갈어 학자이자 에스페란토 학자인 브라질 친구로부터 나중에 들은 말에 따르면 포르투갈어와 에스페란토의 어근은 약 60-70%가 유사하다. 그 덕분에 에스페란토 현지인 친구의 동행이 없었을 때 가끔 에스페란토로 약간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 가면 현지 언어에 대한 무지로 재미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쿠리티바 도심에 잠시 혼자 거닐게 되었다. 마침 배가 고픈터라, 거리 간이매점의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SUNDAE

쿠리티바에도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 한국의 순대가 여기서도 팔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황당한 생각을 해봤다. "SUNDAE" 글자를 향해 매점으로 점점 다가가니 글자 밑에 아이스크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빗나간 추측에 실망과 웃음이 나왔다. 포르투갈어 sundae는 잊을 수가 없으리라.
 
또 하나는 CORREIO이다. 처음에 이 단어를 보자 꼭 에스페란토에서 한국을 표현하는 단어인 KOREIO와 너무 닮았다. 포르투갈어에는 철자 K가 없고, C가 K 발음난다. CORREIO는 우체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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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브라질2009. 1. 12. 23:00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공어 에스페란토가 과거 한 때 반짝거리다가 사라진 언어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언어를 배워서 무엇에 써먹을 것일까?!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언어이다. 변음과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와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익히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언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아내와 함께 브라질을 여행하면서 늘 일상에서 쓰는 말이 에스페란토이다. 그리고 이곳 브라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리오데자네이로, 사옹파울로에 이어 환경도시로 알려진 이곳 쿠리티바에서도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지난 토요일(1월 10일) 쿠리티바 에스페란티스토들의 모임에 참가했다. 사실 같은 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국어로 말하는 것이 흔하다. 하지만 이날 만난 사람들은 국어인 포르투갈어를 쓰지 않고 모두 유창하게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퇴임한 대학교수부터 경찰관까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였다. 한 친구는 쿵푸와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다면서 멋있게 자세를 취해보기도 했다. 

브라질에 와 있지만 에스페란토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포르투갈어를 모르고도 이렇게 에스페란토 덕분에 브라질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포르투갈어 교수를 역임한 제랄도 박사에 의하면 포르투갈어와 에스페란토는 어근이 거의 60%가 동일하거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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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초유스의 브라질 가족여행기 8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브라질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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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2009. 1. 12. 21:17

Novjara mesaĝo

Ni kune revivigu moralon

Jam venis la nova jaro, la 94a ŭonbulana jaro (2009). Mi tutkore deziras, ke la bonfaro kaj lumo de la darmkorpa budho, la kvar bonfaroj, estu kun ĉiuj vivuloj, la tuta homaro, la popolo kaj la tuta ŭonbulanaro.

Pasintjare la eklezio ekhavis la ŝancon por pli vigle disvolviĝi per la projekto “albudha ofero de disvastigo”. Ni decidiĝis finplenumi la centjaran jubileon per niaj sennombraj oferoj kaj havis signifoplenan jaron, en kiu ni komencis krei novan historion de la eklezio.

Ni ĉiuj kun pleja voto kaj pleja penado partoprenu en la centjara jubileo kaj faru la jubileon historia momento, en kiu la tuta homaro disvolvos sian spiriton danke al la instruo de la nova budho Sotesano, klare komprenos pri la gravaj kvar bonfaroj, kiujn elmontris la nova budho Sotesano, kaj sekve faros grandan rekompencon.

Nun la homaro kaj nia popolo travivas multegajn suferojn. En la mondo ne ĉesas tertremoj, nutraĵa problemo, petrolpreza malstabileco, energia problemo kaj tiel plu. Al multaj landoj nun disvastiĝas financa krizo komencita en Usono. En Koreio grandiĝas maltrankvilo pro konflikto inter konservuloj kaj progresuloj, norda-suda problemo, ekonomia regreso kaj tiel plu.

Se pensi pri kialoj de ĉi ĉiuj malfaciloj, la esenca kialo estas ne manko de naturhavaĵoj, nek manko de materialoj, nek manko de scioj, sed nur manko de moralo. Pro tio malhonestaj juĝoj, egoismaj deziroj kaj materialismaj pensoj pligrandigas suferojn de homoj ĉie en la socio.
 
En ĉi tiu situacio ĉiu individuo, ĉiu lando kaj la mondo pentu kaj iru laŭ la vojo revivigi  moralon. Ĉi tiu jaro do estu difinita kiel jaro de la revivigo de moralo kaj ni pleje strebu al tio. 

1. Ni revivigu la originan menson.
Antaŭ ĉio, ni devas per trankviligo de menso trovi kaj gardi la originan menson, kiu estas entenata en la interno de homo. La kerno de la revivigo de moralo estas trovi kaj respekti la instruiston, la originan menson, kiu gvidas nin.
La origina menso ekzistas egale en ĉies menso kaj ĝi estas la plej kara juvelo kaj la fonto de moralo. Forgesi ĉi tiun originan menson estas la komenco de sufero.     
Ordinaraj homoj vivas kun maltrankvilo, deziro kaj plezuro, tial ili forgesas la originan menson. Ni, studantoj, ĉiam trankviligu menson kaj forigu densan nubon de la kvin deziroj por bone aŭskulti la okultan sonon de la origina menso kaj laŭtigi la sonon. Fine ni fariĝu morala homo, kiu ĉiam sekvas instruon de la origina menso.

2. Ni vivu honeste.
Estas la vero, ke ni tiom ricevas feliĉon kaj kapablon, kiom ni ŝvite klopodas. Kion ajn ni faras ie ajn, ni mensogu nek al ni mem, nek al aliaj homoj, nek al la vero. Ja honeste ni devas vivi. Honesto estas niaj havaĵo, forto kaj armilo. Malpravaj profito kaj potenco estas kiel flosanta nubo kaj momenta vento kaj estas la komenco de malfeliĉo. Nur tio akirita per honesto estas eterna juvelo, kiun neniu povas forrabi. 

3. Ni respektu principon.
Estas regulo kaj principo, kiujn devas observi familio, socio kaj ŝtato. Ĉi tiu principo estu establita per publika diskuto kaj estu instruata, por ke ĉiu ajn respektu ĝin.
Principo estas la fundamento de socia ordo kaj la apogstango de kunekzistado, kaj ĝi estas kiel moktako. Malobservanto de ĉi tiu principo estas publika malamiko. Kiam la principo detruiĝas, la mondo iĝas plena de nekredo kaj konflikto.
Nur se socia moralo estas firme establita sur ĉi tiu principo, la mondo iĝas sana kaj justa.

4. Ni devas bone vivi kun najbaroj.
En la mondo estas nenio, kio ekzistas sola. Ĉio estas interligita. Mi ekzistas, ĉar vi ekzistas; vi ekzistas, ĉar mi ekzistas. Ŝtatoj havas landlimojn, sed ĉiuj aĵoj de la mondo ne havas landlimojn. Do ili turniĝadas, ne fiksite al iu. Vi kaj mi, socio kaj socio, ŝtato kaj ŝtato estas origine interligitaj per unu menso, unu energio kaj unu vero. Kiu volas vivi bone nur sola kaj akiri nur sian profiton, tiu fine estos forlasita kaj ne povos stariĝi sola kaj eterne ne povas sukcesi.
Estas dirite, ke ju pli dividiĝas feliĉo, des pli ĝi grandiĝas, kaj ju pli dividiĝas sufero, des pli malgrandiĝas. Ni devas dividi la frukton de feliĉo kun najbaroj kaj tiam ĉiuj fariĝas feliĉaj. Ĝuste tiu feliĉo estas eterna kaj vivigas ĉiujn. La tuta homaro devas konstrui la mondon de komuna vivo kaj komuna prospero.

Jam pli frue Sotesano antaŭdiris: “En la estonteco malfermiĝos vere civiliza mondo, en kiu moralo kaj scienco bone harmonios. Koreio havas tian grandan fortunon, ke fiŝo ŝanĝiĝos al drako, kaj ĝi fariĝos la gepatra lando de moralo kaj la gvida lando de spirito kaj estros la mondon.” Kredante ĉi tiujn vortojn eldiritajn per liaj klarvidaj okuloj, ni kun kuraĝo kaj fido venku hodiaŭajn krizojn kaj lumigu la torĉon de la revivigo de moralo kaj antaŭeniru al esperplena morgaŭo.

Novjaran matenon en la 94a ŭonbulana jaro
Gjongsan,
ĉefmajstro de ŭonbulismo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브라질2008. 12. 29. 09:16

아내와 함께 브라질행 항공권을 12월 중순에 구입하게 되었다. 한국 여권 소지자는  90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여권 소지자는 비자가 필요하다. 리투아니아에는 아직 브라질 대사관이 없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보통 여행사를 통해 바르샤바 브라질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다. 중개해주는 여행사에 전화했는데 출국일 12월 30일 전까지 비자를 받아 여권을 돌려줄 수 있는 지에 확신이 없다고 하면서 모두 거절했다.

유일한 방법은 아내가 직접 약 500km 떨어진 바르샤바로 다녀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아내는 허리통증이 심했다. 바르샤바 브라질 대사관 누리집은 폴란드어와 포르투갈어로만 되어 있다. 비행기편이 수월한 프라하 브라질 대사관에 우편으로도 일단 비자신청 접수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다음날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바르샤바에서는 근무일 5일이 지난 후에야 비자를 줄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크리스마스 연휴로 아슬아슬했다. 항공권은 있지만 비자와 여권을 떠나기 전까지 손에 쥐지 못한다면......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왔다.

언젠가 브라질 외교관 중 에스페란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혹시 이 외교관이 유럽 어딘가에 근무하고 처한 사정을 얘기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 지인을 통해 그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브라질 영사관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상황이 다급한지라 전화했다. 영어로 그를 찾자 본인이라 고 했다. 언어 뇌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동으로 에스페란토를 선택해 절로 즐거워하는 듯했다. 첫 대화였지만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 모든 영사관 사람들과 이렇게 편하게 대화하고, 그들이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를 대신해 직접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외교관답게 원칙을 설명했다.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받으려면 아내가 직접 프랑크푸르트 관광을 하는 중 대사관으로 찾아와야 비자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바르샤바 영사관 동료에게 직접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곧 전화가 왔고, 그는 아주 자세하게 필요한 사항을 전해주었다. 필요한 서류는 여권, 여권용 사진 1장, 은행잔고증명서 (1일 60USD x 체류기간), 초청장, 초청자 여권 복사이었다.

서류를 준비해 국제특급배달 회사인 Fedex 사무실에 가니 만에 하나 분실위험이 있으므로 여권은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차라리 여권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서류라고 말할 것을 후회가 막심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특급배달 회사 TNT를 찾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아주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근무일 3일 안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5시경 접수했는데 익일 오전 11시경 바르샤바 영사관 직원이 여권을 잘 받았다고 친절하게 전화까지 해주었다.

크리스마스 연휴 사정으로 가급적 빨리 처리해주기를 부탁했다. 3일만인 금요일 비자를 받았다. 하지만 우편으로는 발송하지 않고 본인이나 위임한 대리인이 와서 받아가야 한다. 급히 바르샤바에 사는 또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친구는 여권을 찾아 일요일 직접 빌뉴스로 찾아왔다. 이렇게 에스페란토와 친구 덕분에 여행 떠나기 9일 전에 무사히 비자와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초유스의 동유럽”은 앞으로 약 3주간 “초유스의 브라질”로 내용 전환을 할 것이다. 포르투갈어 번역일 때문에 브라질에 가지만, 기회 닿는 대로 현지에 접한 소식을 올리고자 한다. 관심과 성원을 부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슬한 상황에서 에스페란토 덕분에 브라질 비자를 무사히 받게 되었다 (사진: IKUE)
 
이상은 초유스의 브라질 가족여행기 1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브라질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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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12. 7. 08:18

이제 곧 성탄절이 다가온다. 성탄절에 빠질 수 없는 상징 중 하나는 천사이다. 하느님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천사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천사는 등에 날개가 없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천사는 날개가 달린 사람의 모습이었다. 천국의 성가대를 구성하는 천사들은 미소년의 모습으로, 대천사 가브리엘은 우아한 남성의 모습이었다. 근세 이후부터는 벌거벗은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이나 여성적인 모습, 상냥한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에스페란토로 통해 알게 된 폴란드 친구 미르카 쿠비쯔카(Mirka Kubicka)가 찍은 폴란드 초등학생이 생각하는 천사의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다. 기도하는 천사, 요리하는 천사, 낚시하는 천사, 망치 든 천사, 잠자는 천사, 뚱뚱한 천사...... 하늘 나라에 사는 천사의 모습을 사람답게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폴란드 비에룬(Bieruń)에 소재한 한 초등학교의 학생(6세-12세)들이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천사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사진 게재를 허락한 미르카의 사진첩에 가면 더 많은 천사들을 만날 수 있다.

Jen mi aperigas fotojn de Mirka pri anĝeloj faritaj de polaj lernantoj. Dankon, Mirka, pro viaj fot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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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1. 27. 06:59

중국의 명문 대학교 중 하나인 난징(남경)대학교가 아시아 학생들을 위한 다언어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 현재 입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어 세계 에스페란토계에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언어 인재양성 신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에스페란토를 기반으로 하는 다언어 교육을 실시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능률적으로 다양한 외국어를 습득하게 하고 치열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에스페란토는 국제 보조어이다. 에스페란토는 쉽게 배워 사용할 수 있고 동시에 여타의 서양언어를 쉽게 배우게 해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 에스페란토는 인도유럽계의 어족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발음, 문법, 단어들은 유럽 언어들과 매우 흡사하다. 에스페란토의 단어들은 약 80%가 라틴계 언어들에서 유래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페란토의 학습은 유럽언어들을 쉽게 배우게 해주는 것이다.

단순하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에스페란토는 아시아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교류하게 해주고, 다른 외국어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해준다. 단시간에 외국어를 배우면 외국어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높여준다. 영어가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한 많은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운 뒤 다시 영어에 도전하여 성공한 사실이 그것을 확인해 준다.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얻게 되는 사고방식과 외국어의 관례적 표현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제2, 제3의 유럽 언어들을 쉽게 배우게 해주어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한다. 다양한 나라들에서 온 학생들은 중립적인 에스페란토의 기초 위에서 평등하게 비(非) 모국어로 의사소통한다. 언어는, 인류의 무형문화 유산 중 하나로서 의사소통과 상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며, 다언어(多言語) 교육은 세계 평화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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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함께 생활한다. 1학년 때는 에스페란토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사용한다. 3개 언어[에스페란토, 영어(또는 불어), 중국어(또는 일어,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진다. 4년 후 졸업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는 남경대학 졸업장, 학사학위 증서, 에스페란토교사 자격증 등을 수여한다. 그 후 외국의 자매 대학에서 1년 혹은 2년간 수학을 하고 최종 시험에 합격하면 그 외국 대학의 석사학위를 받는다.

개강은 2009년 2월이다. 모집인원은  60명(한국, 중국, 일본 각 20명)이고, 입학자격은 2005년 이후 고등학교 졸업자 (2005년 졸업자 포함)이다.

난징대학교의 다언어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마영태 객원교수(mayoungtae@yahoo.co.kr)한테로 문의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이 글은 마영태 객원교수의 글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11. 18. 14:21

지난 9월 평양을 다녀온 리투아니아 유명가수 안드류스 마몬토바스의 웹사진첩에서 북한 평양에는 곰, 개 등 동물인형들이 많다라는 사진설명을 읽고 좀 의아해 했다. 지도자와 체제홍보 조각상들로 가득한 북한에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동물인형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니 정말 의외였다.

"독일인이 찍은 한국 가을 풍경" 글에서 소개했듯이 독일인 친구 비르케가 최근에 알려준 자신의 웹사진첩에 가보니 안드류스의 설명에 믿음이 갔다. 비르케는 평양의 룡악산을 등산하면서 동물인형들을 많이 찍었다.

해발 292m인 룡악산은 모란봉, 대성산과 함께 평양의 명산으로 꼽힌다. 특히 경치가 좋아 '평양의 금강산'으로 불리고 있다. 역사유적으로 법운암, 룡곡서원 등이 있다. 그의 허락을 얻어 사진을 올린다. 더 많은 비르케(Birke)의 룡악산 등산 사진들을 그의 ipernity.com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Jen mi aperigas fotojn de Birke pri la monto Rjongak en Pjengjango. Dankon, Birke, pro viaj fot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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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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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룡악산은 "평양의 금강"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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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룡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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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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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경사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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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룡악산에서 바라본 평양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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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 있는 동물인형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