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에 해당되는 글 471건

  1. 2013.03.04 유명인사 서명에 초연한 아내 안절부절 4
  2. 2013.02.18 아빠, 내 볼에 뽀뽀하면 10만원 줄게 1
  3. 2013.02.14 하트 스티커를 대신할 딸아이의 다양한 하트 표현 5
  4. 2013.02.14 초딩 딸아이의 결혼기념일 깜짝 선물 2
  5. 2013.02.07 아빠 보고싶어 말끔히 책상 정리한 초등 딸
  6. 2013.01.29 초딩딸의 취미 캉클레스, 내친 김에 가야금도 2
  7. 2013.01.21 아빠, 내 편지 꼭 한국에서 읽어야 돼 1
  8. 2013.01.18 한국에서 꼭 사와야 한다는 초등 딸 물품 목록
  9. 2012.12.24 옷 벗어주면 아빠가 추워서 죽잖아, 안 돼! 1
  10. 2012.12.19 하교길에 주운 아이폰 빨리 집으로 가져와! 8
  11. 2012.12.17 안경 쓰는 아빠의 불편 느끼려고 안경 썼어 2
  12. 2012.12.17 추운 날엔 양과 말에게 정말 감사해야 1
  13. 2012.11.15 애지중지하던 딸의 컵을 깬 후 펼친 공방전 2
  14. 2012.10.25 꽃 30송이를 제각각 다르게 그린 초딩 아이 1
  15. 2012.10.23 현지인은 강남스타일, 초딩 딸은 판소리 들으러 3
  16. 2012.10.16 동요 반달은 지는 반달일까, 뜨는 반달일까? 1
  17. 2012.10.15 머리에 상자 잘 이는 건 한국인이라서
  18. 2012.10.12 초딩 딸, 유럽 교실에서 한국 동화 소개해
  19. 2012.10.09 "내가 학생이야"라는 말에 책가방 실랑이 끝 2
  20. 2012.09.28 깨진 유리그릇 인증샷부터 찍자는 초딩 딸
  21. 2012.09.27 놀림당한 초딩 딸에게 힘내라 문자쪽지 1
  22. 2012.09.10 외국인 설계사가 만든 김치제작도, 일목요연해 9
  23. 2012.08.06 초딩 딸 400컷 사진으로 만화영화 놀이 4
  24. 2012.07.23 할아버지가 10살 아이에게 용서 구하다 1
  25. 2012.06.25 초딩 딸이 오븐으로 구운 과자 금방 동나 3
  26. 2012.06.15 보면 애완동물 키우려는 마음이 싹 사라져 1
  27. 2012.06.05 초딩 딸이 작약꽃으로 만든 아버지날 선물 2
  28. 2012.05.26 초딩4 딸이 선정한 유로비전 우승후보 5 1
  29. 2012.05.22 구글번역기로 소통하는 말이 다른 두 아이 2
  30. 2012.05.07 지지 않는 장미꽃을 엄마에게 선물한 초딩 딸 1
요가일래2013. 3. 4. 07:04

3월 1일 딸아이가 다니는 음악학교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작곡가 한 명을 초대해 그가 작곡한 곡들을 노래했다. 작곡가는 리투아니아 사람으로 라이무티스 빌콘츄스다. 음악하는 아내의 말에 따르면 현존하는 리투아니아 작곡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학생들이 합창 혹은 독창으로 노래하는 것에 대한 답례로 이날 그는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곡을 불렀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거리나 공공장소에 유명인을 만나도 별다른 반응을 거의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서명을 받으러 확 몰려드는 일은 극히 드물다. 보통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처럼 유명인사 서명 받기에 초연하는 아내는 이날 의외로 서명 받기에 안절부절했다. 딸아이가 이 작곡가의 서명을 꼭 받기를 원했다.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자라면 이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작곡가인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 같았다. 딸아이도 그가 작곡한 곡을 불렀다. 제목은 "내 조국이여!"이다. 
 

서명을 받고 헤어지는 순간에 작곡가가 한마디했다.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김칫국 먼저 마시는 듯했지만, '딸아이에게 언젠가 곡 하나 줄려나'라고 생각해보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18. 07:11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아이가 아플 때이다. 지난주 일요일 밤부터 39도의 고열과 기침으로 딸아이는 고생했다. 이번 주말에는 회복기로 들어섰다. 누군가 아플 때에는 서로가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은 예방법이다. 이를 아는 딸아이는 종종 장난을 쳤다.

"아빠, 내 볼에 뽀뽀하면 10만원 줄게."
"그렇게 많이? 정말?"
"물론이지."
"네가 나으면 공짜로 뽀뽀 많이 해줄게."

회복기에 들어서자 침대에만 누워있는 따분함을 버리고 딸아이는 혼자 여러 가지로 놀았다. 그러던 참 혼자서 할 수 없는 놀이를 생각해냈다.

"아빠, 우리 같이 놀자."
"그래 일전에 뽀뽀는 못해주었지만 함께 놀자."

놀이는 단순했다. 목재 세 조각으로 한 판을 이루고, 이것을 탑처럼 쌓는다. 그리고 탑이 무너지지 않게 목재 토막을 빼내는 것이다.
 


"아빠, 앞으로는 더 많이 같이 놀자."
"그럴 수 있을까...... 서로가 컴 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14. 08:02

2월 14일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이다. 유럽에 있지만 리투아니아는 그렇게 요란하지 않다. 이날 흔히들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선물과 연인의 사랑 고백이 떠올린다. 리투아니아 발렌타인데이 풍경은 이런 일반적인 모습과는 좀 다르다. 

지금껏 지켜본 리투아니아의 발렌타인데이 풍경은 한 마디로 소박하다. 연인 축제로 여기는 역사가 일천해서 일까, 아니면 부산하게 굴지 않는 성격 때문일까?

이날 주변 사람들이 선물로 가장 많이 사는 것은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 과자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사는 것은 하트 모양 스티커다. 이들은 이날 친구 얼굴이나 겉옷에 스티커를 서로 붙여준다. 이 붉은 하트 스티커를 다닥다닥 얼굴에 붙이고 무리 지어 다니는 청소년들을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쯤 되고 보니 이날은 하트 스티커를 붙이는 날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올해는 딸아이에게 하트 스티커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1주일간 방학으로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가게에 갈 좋은 기회가 없다. 더욱이 요즘 아파서 침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의 8년만에 최근 데스크탑 컴퓨터를 교체했다. 옛 컴퓨터 내 문서에 딸아이의 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바로 하트 스티커보다 더 멋진 하트를 해보이는 장면이다. 


올해 발렌타인데이의 선물은 이 사진으로 대체해야 할 듯하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한다. 눈이 뿜어내는 손 하트에 그 사랑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빠 딸, 빨리 건강을 되찾기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14. 07:16

일전에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초딩 딸아이는 우리 부부를 부엌에 갇아놓고 자기 방으로 갔다. 

"나를 따라오면 안돼. 꼭 여기 있어야 돼."
"왜?"
"그냥."

자기 방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종이로 포장된 물건을 가지고 왔다.

"엄마 아빠 결혼을 축하해."
"뭔데?"
"종이를 뜯어봐."

종이 속에는 아래와 서양란이 곱게 피어있었다.

"고마워. 그런데 이것을 몰래 사서 보관하느라 힘들었겠다."
"아니." 
 

그 동안 딸아이는 대부분 자기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선물을 주었다. 자기 용돈에서 꽃을 사서 결혼기념일 선물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의 존재를 있게 한 부모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서양란까지 선물하다니 이젠 제법 자랐음을 뜻하는 것 같아 흐뭇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2. 7. 07:07

2주간 한국 방문으로 집을 떠나있었다.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나기 다섯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갑작스런 병고로 한국행 포기를 결심했다. 그런 판국이라 책상도 재데로 정리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을 방문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을 보니 깜짝 놀랐다. 떠나기 직전 번역 중이라 여러 참고 책들과 사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빠, 책상 누가 이렇게 말끔히 치웠니?"
"내가 치웠지." 
"고생 많았네. 고마워~" 


그런데 단어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잡았는데 또 한 번 더 깜짝 놀라게 되었아. 찢어져 있던 사전이 테잎으로 깔끔하게 붙여져 있었다.   


"이것도 네가 한 거야?"
"내가 하자고 했고, 엄마가 조금 도와줬어."
"고마워."
"아빠가 보고싶었을 때 내가 아빠 책상을 정리했어."

남이 없을 때 이렇게 무엇인가 그를 위해 하는 것이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 29. 08:33

기회 있을 때마다 초딩 딸아이는 캉클레스 악기를 사달라고 했다. 특히 이 악기 반주에 따라 노래를 부른 날은 좀 극성적으로 졸라댔다. 그럴 때마다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악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래는 몇 해 전 캉클레스 반주에 따라 리투아니아 민요을 부르는 딸 동영상이다.
 
 
캉클레스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민속 현악기이다. 본체는 단단한 통나무로 만들고, 이를 깎아 그 위에 가문비나무 같은 연한 나무판을 올린다. 그 소리판에 꽃무늬나 별 모양을 내서 구멍을 낸다. 철사나 동물의 내장으로 줄을 만든다. 
 

고대 리투아니아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간 날 숲 속에 베어온 나무가 소리를 잘 낸다고 믿었다. 캉클레스 연주는 곧 명상과 같고 죽음, 질병, 사고로부터 연주인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캉클레스 연주를 들으면 애절함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야 딸아이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이날 사오자마자 딸아이는 홀로 연주 시도에 몰두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진작에 사줄 것을 아쉬워했다. 

 
어슬픈 초짜의 솜씨이지만 딸아이는 리투아니아 민요 한 곡을 이날 시도해보았다. 캉클레스 연주에 익숙해져 자라서 나중에 한국의 거문고나 가야금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참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 21. 07:25

일전에 한국 방문을 하기 위해 빌뉴스 집을 떠나기 전날 밤 초딩5 딸아이는 야무지게 봉한 편지를 한 통 주었다. 그리고 신신당부했다.
 
"아빠, 이 편지 지금 읽으면 안 되고 꼭 한국에서 읽어야 돼"
 
그리고 경유지인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 딸아이는 몇 번이나 인터넷 대화 프로그램인 스카이프(skype)와 바이버(viber)를 통해 꼭 한국에서 읽어라고 말했다.

 
위 캡쳐화면은 리투아니아어 철자로 쓴 한국어 대화이다.
안녕, (아빠가) 조금 있으면 비행기 탄다
아이구, 조심해. 너무 사랑해... 안녕
그래 내일 봐
알았어
편지 읽기 잊어버리지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딸아이가 이토록 '한국에서 읽으라'고 강요하듯이 할까 궁금했지만 부탁대로 해야 했다. 한국에 도착해 편지를 뜯어보니 딸아이의 부탁을 쉽게 해야 하게 되었다. 이유는 바로 편지를 '한국어'로 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사와야 할 물품 목록은 영어로 썼지만[관련글 바로가기], 아빠가 읽을 편지는 리투아니아어 철자로 된 한국어가 아니라 한글로 썼다. 딸아이는 한국에서 한국어 편지를 보고 기뻐할 아빠의 모습을 혼자 상상하면서 무척이나 즐거웠을 법하다.
 
"우와, 너 이렇게까지 한국어를 쓸 수 있어? 아빠가 정말 몰랐다. 어떻게 배웠니? 혹시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은 아니지?"
"비밀이야."
"아뭏든 아빠가 박수 친다. 아빠가 이렇게 좋아하니 앞으로는 한국어를 말만 하지 말고 한글로 써는 것도 좀 열심히 배워라."
"알았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 18. 07:00

한국에 2주간 다녀올 일 생겼다. 늘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라 잠시라도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헤어질 때는 웃움보다 눈물이 앞선다.

"이런 때 당신이 집을 비우니 남아있는 우리가 힘들 거야."
"그럼 안 갈 수도 있어."
"표를 연기할 수도 없잖아. 아까우니 그래도 가야지."
"헤어지기 전에는 헤어진 후의 일로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지만 막상 헤어지면 만날 기대감으로 그 걱정과 불안을 잊게 된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 편히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야 돼."


이렇게 아내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저녁에 대화를 하는 동안 초둥학교 5년생인 딸아이는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뭐하니?"
"아빠가 한국에서 나에게 꼭 사와야 할 물건을 적고 있어."

딸아이가 작성한 목록이다. 쓰는 한글이 서툴어서 영어로 썼다고 한다.
      TM이 써진 모자
      목걸이
      컴퓨터
      한글이 있는 공책
      필통
  


"아빠, 여기 컴퓨터는 공책하고 구별하기 위해서 썼는데 노트북이야. 알았지?"
"노트북 비싼데."
"내가 내 용돈에서 보탤 거야."
"리투아니아에도 공책이 많잖아."
"친구들에게 한글 자랑하려고."


곧 잠시 떠나는 아빠로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이런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내는 딸이 기특해 보였다.

"너 아빠하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 눈물 흘리면 안 돼?"
"노력해 볼 게."
"우린 헤어질 때도 웃는 사람이 되자."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24. 07:33

일전에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인 카우나스를 다녀왔다. 국제어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의 탄생일 맞아 매년 리투아니아 에스페란토 협회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행사를 마치고 일행들과 함께 '자유의 거리'를 산책했다. 이 거리는 전용 산책로이다. 길이가 1.6km로 동유럽에서 가장 긴 산책로로 알려져 있다. 산책로 가운데는 보리수나무가 두 줄로 쭉 심어져 있다.  


이날은 혹한에다 바람까지 불었다. 딸아이는 추운 듯했다.

"추워?"
"물론이지."
"아빠가 외투를 벗어줄까?"
"그래."

정말 옷을 벗어려고 하자, 딸아이는 극구 반대했다.


"아빠는 정말 바보다. 벗어주면 아빠가 (추워서) 죽잖아. 안 돼!"
"아빠가 설령 죽더라도 딸에게 옷을 벗어줄 수 있는 정도는 되야 아빠라고 할 수 있지."
"그래. 하지만 둘 다 같이 살아야지. 참을 수 있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9. 07:43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딸아이가 어제 하교길에 전화를 했다.

"엄마, 나 거리에서 아이폰(iPhone) 주었어. 어떻게 할까?"
"빨리 집으로 가져와."
"왜?"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가져갈 수 있으니까."
"알았어."

막상 그 비싼 아이폰을 길거리에서 주웠다는 것이 그렇게 실감나지가 않았다. 통화가 끝난 지 채 1-2분도 되지 않아 아파트 1층에서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었다. 딸아이가 그렇게 빨리 집에 도착할 거리는 아닌데 말이다. 누굴까?


딸아이였다. 손에는 검은 가죽 케이스에 든 아이폰이 있었다. 우리 집에 한 대도 없는 아이폰을 길거리에서 그냥 줍다니...... 가족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자고 했다. 

"여보, 빨리 전화해. 잃어버린 사람이 초단위로 걱정하고 있을 거야 "
"어디다가?"
"가장 최근에 걸려온 전화번호로."

아내가 전화하니 공교롭게도 받는 사람은 바로 잃어버린 사람의 아내였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이폰을 잘 보관하고 있으니 우리 집 주소로 찾아오라고 했다.

얼마 후 잃어버린 사람이 옆 사람의 전화를 빌려 전화가 왔다. 10여분이 지나 직접 우리 집으로 왔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정말 감사해요."
"천만예요."
"급하게 오느라 이것 밖에 없어요."

중년의 그는 주머니에서 15유로를 꺼내 아이폰을 주운 딸아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빠, 내가 주었어."
"그래 정말 네가 착한 일 했다. 그런데 착은 일을 한 후에는 반드시 했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돼."
"왜?"
"그래야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
"우리 이 돈으로 뭘 하지? 아빠가 보관해."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누군가 주어서 주인에게 돌려주면 흔히 답례한다. 우리에겐 사기가 버거운 아이폰을 딸아이가 눈덥힌 거리에서 주어서 가족 모두가 나서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니 기쁜 마음이 들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7. 07:33

딸아이가 어렸을 때 안경 쓴 아빠의 모습이 멋있어 도수가 높은 안경임에도 궁금해서 안경을 써보겠다고 막무가내 졸라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60여명의 우리 반에 안경을 쓴 남자 아이는 딱 한 명이었다. 

이 친구는 인기짱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안경 한번 써보려고 친구들이 갖은 부탁을 하곤 했다. 지금은 바보짓이라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안경 쓴 자신의 모습과 그 안경의 마력이 그렇게도 알고 싶었다. 


최근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딸아이를 만났다. 그런데 딸아이는 난데없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을 쓰면 아빠에게 혼이 난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딸아이는 혼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아빠가 안경을 쓰고 있으면 얼마나 불편한 지를 한번 알아보려고 안경을 썼어."
"생각은 좋지만 안 써고도 알아야지."
"그래도 한번 써보는 것도 좋잖아."
"누구 안경이야?"
"친구 아빠 안경!"
"빨리 안경 벗어!!!"
"헤헤헤, 아빠 화났지?"
"당연하지."
"아, 재미있다. 봐~ 안경알이 없지? 나 어때?"
"안경 안 쓴 모습이 더 예쁘다. 안경 안 써도록 절대로 조심해라."
"알았어."

이렇게 대답했지만, 이날 딸아이는 저녁에도 써고 있다가 아빠에게 또 혼났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 비록 알 없는 안경이더라도 더 이상 안경쓰기 장난은 하지마!!!"


안경 쓰는 아빠의 불편을 느끼려는 명분으로 결국은 안경쓰기 놀이를 한 셈이었다. 시력 보호에 항상 주의심을 갖도록 꾸지람을 했지만, 딸아이의 호기심을 억누르는 것 같아서 한편 미안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2. 17. 07:30

딸아이가 자라니 점점 아빠로서의 역할이 축소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등교시와 하교시에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이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 딸아이 학교 가는 길

주말인 금요일을 맞아 딸아이는 학교 근처에 있는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때마침 그 근처에 일이 있어 갔다가 딸아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너 안 추워."
"괜찮아."
"발이 안 시러워?"
"양말바지 하나에 양말 하나."
(스타킹이라는 말 대신에 우리는 양말바지라 부른다)

그리고 잠시 걸어오는데 딸아이가 한 마디했다.

"추운 날엔 양과 말에게 정말 감사해야 돼."
"왜?"
"양말이 따뜻하게 해주잖아."
"그 양말하고 양과 말은 다르지."
"알아, 하지만 양말이 꼭 양 더하기 말 같아서 한국말이 재미있어."

* 양말이 양 더하기 말?

양말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양 더하기 말, 즉 양과 말의 조합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양말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딸아이의 재미난 생각처럼 혹시 양털로 만든 말굽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서 양말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상상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양말은 서양식 버선으로 한자 洋襪에서 온 말이다.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 달라지고 있을 뿐이니 사실 지금의 양말이라는 말을 버선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아뭏든 "날씨가 추운 것이 아니라 옷을 얇게 입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모두들 따뜻하게 옷을 입고 겨울을 잘 나길 기원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1. 15. 07:23

어제 새벽에야 잠들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아침 8시경 전화가 왔다. 급한 방송 녹음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잠잔 시간은 3시간이었다. 그래서 낮에 잠깐 자기 위해 자명종 시계를 오후 4시 30분에 맞추어놓았다.

시계 소리에 일어났다. 하지만 비몽사몽이었다. 밖은 어두웠다. 시계 소리를 멈추게 한 후 누워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아파트 현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른 아침에 누가 우리 집을 방문했나?'

침대 옆을 보니 같이 잘 것 같은 아내가 없었다. '벌써 일어나 초등학교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부엌에서 있을 시간이구나.'(사실 이 시각 아내는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내가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누워있었다. 그래도 초인종 소리가 계속 났다. 

'할 수 없이 내가 열어야겠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현관문으로 갔다. 안경도 끼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설마 나쁜 사람이겠나......'

현관문 가운데 있는 작은 유리 구멍으로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에 깜짝 놀랐다. 손님이 아니라 바로 딸아이였다. 책가방이 없었다.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왜 돌아왔니? 뭘 잊어버려서 돌아왔니? 책가방은?"
"지금 돌아왔잖아."
"지금이 아침이잖아!"

벽시계를 쳐다보니 4시 50분이었다. 새벽이 아니라 오후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을 보니 어두워서 낮이 아니라 이른 아침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세상에 벌써 이런 착각을 하는 나이에 도달하다니!'

여기까진 좋았다. 

곧장 부엌으로 갔다. 점심 때 먹고 물에 담궈놓은 물컵과 접시 등이 싱크대에는 놓여있었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설거지가 안 된 부엌을 보면 빈둥빈둥 놀고 잠만 자는 남편이라 잔소리할 거야. ㅎㅎㅎ'

아직 잠결이라 손가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싱크대에 있는 컵을 들어서 그릇찬장에 올릴 때 컵이 찬장에 맞닿자 그만 싱크대로 떨어졌다. 하필 이 컵이 초등학교 딸아이가 애지중지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컵은 멀쩡했지만, 컵 손잡이가 두 조각 났다.


이때 부엌 식탁에서 숙제를 막 시작하던 딸아이는 이것을 보자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이 컵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같은 반 학생 이름이 모두 적혀있는 소중한 기념물이다.

"이 컵이 얼마나 중요한데. 흐흑흑~~~"
"알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조심했어야지."
"잠결이라서 미안해."
"이젠 아빠를 싫어할 거야."

"물건이 아빠보다 더 중요해?"
"물건이 더 중요해."
"사람은 실수할 수 있잖아. 너도 그릇을 깬 적이 있잖아."
"없어."

"네가 어렸을 때 여러 번 깨었지."
"하지만 자라서는 깨지 않았잖아."
"물건은 깨어질 수 있어. 세상에 모든 것은 끝이 있어. 사람도 늙으면 없어지잖아. 아빠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이젠 컵을 사용할 수 없잖아."

"깨어진 손잡이를 접착제로 붙이면 될 거야."
"그래도 흠집이 보이잖아."
"네 얼굴에도 흉터가 있잖아."
"그래도 컵이 중요해."
"알았다. 아빠가 덜 중요하니까 앞으론 아빠에게 부탁할 일을 물건에게 부탁해." 

이렇게 언쟁 아닌 언쟁을 하고 부엌을 나왔다. 계속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딸아이는 아빠에게로 달려와 끌어안았다.

"아빠,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물건보다 더 중요해. 깨어진 물건 하나 때문에 아빠를 싫어한다는 것은 너무 한 거야. 아빠든 딸이든 근본적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있는 것이야."
"알았어."

이후 딸아이는 평상심을 찾았는지 유쾌하게 숙제도 하고 이방 저방을 돌아다녔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25. 06:33

새벽 3시에 밝아지고 밤 11시에 어두워지던 여름날이 엊그제 같은데 10월 하순에 들어서자 벌써 동짓 섣달이 찾아온 듯하다. 곧 일광절약시간제(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 일요일까지)가 해제되면 더 더욱 밤이 길어진다.

최근 어느날 초딩 5학년생 딸아이는 밤이 지루했는지 이면지를 가져가더니 내내 꽃송이를 그리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뭘 그리는데?"
"보면 알잖아."
"얼마나 그리게?"
"30개."
"꽃은 개가 아니고 송이야! 삼십 개가 아니라 삼십 송이라고 말해야돼."
"맞다. 사람은 마리가 아니라 명이고, 나무는 개가 아니고 그루지."
"정말 30송이 그릴거야?"
"노력해볼게."    




이렇게 요가일래는 꽃 30송이를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렸다. 자신의 힘든 성취에 만족한 딸아이는 가지런히 정리해서 자신의 앨범에 날짜까지 써서 보관하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23. 18:22

지난 주말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는 웬지 궁시렁거렸다. 

"오늘 아빠 촬영 취재하러 가는데 너도 같이 가자."
"어디 가는데?"
"오늘 아닉쉬체이에서 판소리 공연이 열린다."
"판소리가 뭔데?"
"아라리요~~~, 심청이가 바다에 풍덩~~~ 한국 전통 노래야."
"재미 없어. 그냥 집에 있을래."
"엄마 아빠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야돼."

이렇게 차 뒷자리에 딸아이를 태우고 빌뉴스에서 120km 떨어진 공연 도시로 향했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 받았다.

"반 친구들이 지금 버스 안에서 강남스타일을 듣고 있데."
"어디로 가는데?"
"가을 소풍."

그제서야 궁시렁거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동급생들이 1박 2일로 리투아니아 서쪽 끝으로 소풍을 가고 있었고, 요가일래는 엄마의 불허락으로 가지 못했다.

"난 지금 한국에서 온 유명한 가수가 부르는 판소리 들으러 간다."라고 친구 문자쪽지에 답했다.   

"판소리가 뭔지 모르니까. 네가 잘 듣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줘."
"난 재미없어."
"그래도 가서 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1시간 공연이 끝났다. 400여명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자 오랫동안 기립박수로 자신들의 감동을 표했다. 특히 리투아니아의 19세기 중반 유명한 시(詩)인 '아닉쉬체이의 숲'을 한국어로 판소리로 불러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촬영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달려와 졸라댔다.


* Pansori by PARK In-hye - Anykščių šilelis - korėjietiškai

"아빠, 저 언니하고 사진 찍어줘. 그리고 서명도 받게 해줘."
"판소리 재미없다면서?"
"우와, 정말 짱이야! 나도 배우고 싶어."
"봐바, 여기 오길 잘 했지?"
"아빠, 꼭 내 부탁 들어줘."


이렇게 사진도 함께 찍고, 서명도 받았다.


요가일래는 받은 서명을 자기가 자는 침대 바로 옆 벽에 붙여놓았다. 이 정도로 딸아이가 판소리에 호감을 가지게 되나니 좀 의외다. 이런 호감을 자라면서도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16. 07:32



음악학교에서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 딸아이가 선생님이 또 한국 노래를 부탁했다고 동요를 선곡해달라고 했다. 지난번에는 "노을"을 선택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노래를 추천할까 고민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한 에스페란티스토가 준 노래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한국인들이 즐겨부르는 한국의 가요, 가곡, 동요 등을 담고 있다. 동요편에서 세 곡을 뽑았다.

과수원길
반달
섬집아기

이 세 곡을 학교에 가져간 딸아이는 선생님이 반달을 선택했다고 했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달고 샃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반달은 지는 반달이야? 아니면 뜨는 반달이야?"
"글쎄다. 생각을 해봐야겠다."
"리투아니아어로는 지는 반달이 있고, 뜨는 반달이 있어. 이름이 서로 달라."
"뭔데? 지는 반달은 delčia(델챠)이고, 뜨는 반달은 priešpilnis(프리에쉬필니스)야."
"한국어에도 하현달이 있고, 상현달이 있어. 그런데 이 노래 속 반달이 하현달인지 상현달인지는 아빠도 공부해봐야겠다."

명쾌한 즉답을 하지 못해 부끄러웠지만 공부해보겠다라는 말로 순간을 모면했다. 반달 노래를 수없이 부르고 들었지만, 한반도 이 반달이 상현달인지 하현달인지 물음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반달은 음력으로 대략 7-8일이나 22-23일쯤 달에 지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지구에서 달이 반만 보이는 때의 달 이름이다. 그렇다면 동요 반달 속 반달은 상현달일까, 하현달일까? 고민이로다.

쪽배라.
뒤집힌 배로는 탈 수가 없다.
그런데 상현달이든 하현달이든 어느 시각에 보느냐에 따라 쪽배의 똑바름과 뒤집힘이 달라질 수 있다. 상현달일 경우 정오에는 쪽배가 뒤집혀있지만, 자정에는 쪽배가 똑바로 있다. 하현달은 반대이다. 
은하수라.
해질녘에 별이 뜬다.
이 무렵이면 상현달의 뒤집힌 쪽배는 서서히 똑바로 세워진다.
서쪽나라라
점점 똑바로 세워지는 상현달의 쪽배가 서쪽으로 잘도 가고 있다. 

조만간 반달 노래를 배우러 음악학교에 갈 딸에게 이렇게 말해야겠다.

* 2010년 12월 11일 오후 10시 23분에 초유스가 촬영한 상현달

"아빠 생각으로는 반달은 상현달이다. 선생님에게 리투아니아어로 priešpilnis라고 말해줘."

이렇게 해놓고도 동요 속 반달이 100% 상현달일까라고 고민된다. 물구나무서서 하현달을 보면 상현달로 보이겠지...... 같은 값이면 보름달을 향해 뜨는 반달이 그믐달을 향해 지는 반달보다 아이들의 밝은 정서에 더 맞을 것 같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15. 06:09

주말 초딩 딸아이는 혼자 500조각 퍼즐을 맞추면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쳐서 그런지 혼자 웃을 거리를 찾아나섰다. 
대상이 의자에 앉아 열심히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 아빠였다.
가만히 와서 아빠 머리 위에 퍼즐 상자를 올렸다.


그런데 아빠는 떨어뜨리지 않고 잘 견뎌내고 있었다.
딸아이는 신기한 듯 놀라면서 웃어대었다.
"아빠, 기다려! 인증샷 찍자."


딸아이는 카메라를 가져오더니 여러 각도에서 촬칵촬칵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이렇게 잘 견뎌내고 있어?"
"아빠는 한국인이라서. ㅎㅎㅎ"


딸아이가 머리에 얹어놓은 퍼즐 상자에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어머니의 물덩이가 떠올랐다.  
무엇이든지 머리에 잘도 이고 가던 
지난날 한국 여성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대답을 "한국인이라서"라고 했다.

"그럼, 엄마한테 가서 한번 실험해보자."하고 딸아이는 퍼즐 상자를 아내에게 가져갔다.
"어, 엄마도 잘 이고 있는데."
"엄마는 여자라서 ㅎㅎㅎ"

이렇게 퍼즐 상자 때문에 주말 밤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음의 순간을 맞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12. 06:28

"아빠, 내가 참 착하지?" 
"왜?"
"오늘 학교 갔다와서 텔레비전도 안 보고 컴퓨터도 안하고 계속 공부했잖아."
"그래. 네가 공부 많이 하면 아빠가 정말 기쁘다."
"나도 기뻐지."

한국으로 치면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리투아니아는 중학교 1학년생이다. 초등학교 시절과 가장 달라진 것은 숙제가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창의적인 숙제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일전에는 있었던 자연과목 숙제는 지렁이 잡기였다. 친구들과 모여서 지렁이가 살만한 곳을 찾아서 흙과 함께 지렁이 4마리를 잡아왔다. 


최근 미술 숙제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한 15명의 사람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빠, 오늘 리투아니아어 숙제가 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겠니?"
"자기가 읽은 동화를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는 거야. 그런데 난 한국 동화를 소개하려고 해."
"정말?"
"정말이지. 한국 동화 아주 재미있어. 아빠, 흥부와 놀부, 아니면 해와 달이 된 오빠와 동생, 아니면 까치의 보은을 할까?"
"네가 선택해야지."
"흥부와 놀부는 너무 길다. 까치의 보은이 좋겠다."

* 리투아니아어로 번역된 한국 전래 동화

덤으로 일전에 딸아이가 전해준 소식이다.

"아빠, 오늘 음악 시간에 우리 반 모두가 강남스타일 춤을 췄다."
"어떻게?"
"음악 선생님이 왔는데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강남 스타일을 틀어달라고 소리쳤지."
"강남 스타일 때문에 너도 기분 좋아겠다."
"물론이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동화를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려는 것을 보니 딸아이가 다문화 가정 아이로 밝게 자라고 있는 듯해 안심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0. 9. 04:52

가을이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초딩 5학년생 딸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그칠 줄 몰랐다. 여름철이라면 한바탕 비가 쏴 내리다가도 이내 해가 방긋한다. 굵직하게 내리는 비를 창문 밖으로 보면서 전화가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이런 경우 종종 누나나 형이 우산을 들고 학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전화 소리가 울렸다.

"아빠, 비가 와."
"알았어. 학교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우산 가지고 금방 갈게."

이렇게 해서 800미터 떨어진 초등학교로 향했다. 학교 현관문 창문으로 보니 딸아이가 친구들과 재잘거리면서 놀고 있었다. 한참을 방관자처럼 지켜보았다. 아빠와 눈이 마주친 후에야 딸아이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비가 거의 안 오네. 아빠가 올 필요가 없어졌네."
"그래도 아빠가 올 땐 비가 많이 내렸지. 가방 이리 줘. 내가 들고 갈게."
"안 돼. 내가 들어야 돼."
"가방이 너무 무겁다. 아빠가 들고 간다!"
"아빠, 우기지 마. 내가 학생이야!"

이런 선택에서는 누군가 양보해야 한다. "내가 학생이야!"라는 말에 부녀(父女)의 실랑이는 끝났다.

아빠의 믿음직한 존재를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맞아. 군인은 총, 기자는 펜, 학생은 책가방을 들어야지!"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집으로 향했다.


그친 듯한 비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봐, 아빠가 오길 잘 했지?"
"고마워."

아무리 생각해도 딸아이의 가방이 무거워 보였다.

"집에 가서 네 책가방이 얼마나 무거운 지 한번 무게를 재어봐야겠다."

* 책가방를 메고 잰 무게(왼쪽), 책가방 없이 잰 무게(오른쪽): 책가방 무게는 4kg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딸아이는 정말 자신의 책가방이 무거운 지를 알았다는 듯이 책가방을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아빠, 무거워?"
"아니, 괜찮아."

책가방을 멘 한 쪽 어깨가 축 쳐지는 듯했지만 대답은 그렇게 했다. 비 덕분에 모처럼 아빠와 딸이 정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9. 28. 06:38

아내는 학교에서 일하고 초딩 딸은 혼자 집에서 있었다.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빠에게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딸아이가 급하게 말했다.

"아빠, 내가 안 했어!!!!"
"뭘 안 했는데?"
"부엌에 가 봐! 유리그릇이 깨졌어. 혼자 깨졌어."
"어떻게 유리그릇이 스스로 깨질 수 있니?"
"아빠가 아래 현관문(1층)을 열고 닫는 소리가 났을 때 그릇 깨지는 소리(3층)가 쾅하고 났어."
"너는 어디 있었는데?"
"내 방에서 숙제하고 있었어. 정말 내가 깨지 않았어."

1층 현관문을 닫는 순간 3층 우리 집 부엌에 있는 유리그릇이 떨어져 깨졌다.

불안해하는 딸아이의 주장을 일단 받아들이면서 안심시켰다. 이 사실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유리그릇이 냉장고가 있는 창틀 철상자 위에 놓여져있었다. 처음엔 안전하게 놓여져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살짝 닿아서 조금씩 밀려날 수 있었겠다. 현관문 닫는 파장 영향으로 불균형하게 놓여있던 유리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던 것이 아닐까......

아내가 가장 아끼던 유리그릇이 그만 깨져버렸다. 그렇다고 아내가 올 때까지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로 쓸어담으려고 했다.

"아, 잠깐만! 사진찍어서 엄마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자."
"그래 찍어!"


깨져있는 현장을 사진 찍는다고 해서 그릇이 절로 깨졌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엄마에게 현장을 보여주겠다는 초딩 딸의 순간적인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증샷 찍기가 습관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9. 27. 05:47

딸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5년생이다. 리투아니아 학제에 따르면 중학교 1학년생이다. 4학년 때까지와 비교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숙제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공부할 과제가 많아졌고, 또한 난이도도 훨씬 높아졌다. 그래서 늘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다.

최근 어느날 수학 숙제는 딸아이에게 아주 버거웠다. 축척과 거리 계산이었다. 지상거리와 도상거리를 구하는 것인데 책 어디를 뒤져봐도 공식이 없었다. 공식이 있다면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 아이들 스스로 공식을 만들어내도록 의도한 것일까...... 

참고로 인터넷에서 찾은 공식이다.
지상거리 = 도상거리 x 축척의 분모
도시거리 = 지상거리 / 축척의 분모
축척 = 지상거리 / 도상거리

"이제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되겠다."
"너무 힘들어."

다음날 학교에 간 딸아이는 첫 수업을 마치자 휴식시간에 전화했다. 학교에서 딸아이가 전화하면 우선 걱정이 앞선다. 딸아이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반 친구들이 전부 나를 고자질쟁이라고 놀리고 있어."
"진정해. 시간이 지나면 돼."라고 아내가 달랬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고자질쟁이가 되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딸아이는 친했다고 오랫동안 친하지 않은 반친구가 있었는데 최근 다시 친해졌다. 이 친구가 딸아이는 "새로운 저 남자 반친구가 마음에 들어."라고 속내를 말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 말을 다른 반친구들에게 확 불어버렸다. 

이어서 학생들은 '얼레꼴레리 얼레꼴레리 누구누구는 누누구구를 좋한대요'식으로 딸아이를 놀래대기 시작했다. 예민한 딸아이는 당황해서 그만 화장실로 가서 울음을 터트렸다. 찾아온 친구와 의논해 반전체를 상대하기엔 혼자 힘으로 역부족하다고 해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것을 안 반 학생들이 다음날 아침 학교 교실로 들어선 딸아이를 향해 일제히 고자질쟁이라고 놀래대었고, 딸아이는 혼자 견디기 어려워 아내에게 전화했다. 이런 땐 든든한 아빠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즉각 문자쪽지를 날렸다.

Himnera! Saranghe! uldzimalgo, huanedzimalgo, nogaczegoja!!!! 
Maumi gangheja denda!
힘내라! 사랑해! 울지말고, 화내지말고. 너가 최고야!!! 마음이 강해야 된다!

* 딸아이는 최근 출장다녀온 아빠에게 종이를 접어서 만든 하트를 선물했다

"이럴 때 오빠가 있어 같은 학교에 다니면 참 좋을텐데."
"맞아. 나도 오빠가 둘이 있어 아무도 나를 놀리거나 건들지 못했지."라고 아내가 맞짱구쳤다.

3교시 수업이 끝나자 딸아이가 또 전화했다.

"아빠, 이제는 괜찮아. 선생님이 와서 말했고. 친구들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래, 잘 되었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마음을 말하지마. 그리고 놀린다고해서 금방 선생님한테 달려가지 말고, 일단 참아!"

한편 이번 경우를 통해 놀림을 당하는 아이 뒤에는 선생님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심어준 것 같다. 딸아이가 내일부터는 다시 밝은 모습으로 학교로 갈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2. 9. 10. 06:34

일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탈린에서 빌뉴스로 오는 국제선 버스에서 아내에게 전화해서 밥을 해놓아라고 말했다. 호텔이나 식당 음식만 먹으니 전기밥솥에서 한 따끈하고 찰진 밥이 몹시 먹고싶었다. 김치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들지 않았으니 없을 것이다.

아빠 현관문을 열자 딸아이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이 식욕을 더욱 돋구었다.

"아빠, 엄마가 마리아(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한국인)님으로부터 김치를 샀어."
"정말?!"
"정말이지 빨리 밥 먹어."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나를 위해 맛있는 김치까지 사서 준비해놓다니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김치통을 열자 감동은 조금 사그라졌다. 냄새와 빛깔이 사온 김치가 아니고 아내가 만든 김치임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10여년을 살면서 아내가 이렇게 나없이 혼자 직접 김치를 만든 일은 처음이다. 나 대신 아내는 딸아이와 함께 돌아올 나를 위해 정성껏 김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며칠 있으면 더 맛있을 거야!"
"내일 아침엔 김치찌게를 해먹어야지."

* 아빠 대신 난생 처음 김치 양념을 버무리는 요가일래

아내는 폴란드인 친구가 만든 김치제작도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폴란드인 친구 라덱은 김치를 정말 좋아한다. 지난 여름 내가 만든 김치와 그가 만든 김치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평가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그의 것이 내 것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 

* 폴란드인 라덱이 만든 김치제작도

일전에 라덱은 자기가 만든 김치제작도를 나에게 보냈다. 역시 전력시설물 설계사답게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있다. 앞으로 김치 만들기를 묻는 현지인 친구들에게 이것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8. 6. 04:17

리투아니아 여름방학은 길고 길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가 방학이다. 이렇게 긴 방학도 이제 한 달도 남겨놓지 않고 있다. 

방학 내내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지 말라", "컴퓨터 사용시간을 꼭 지켜라"라는 아내의 부탁 말이 매일 귀에 들린다. 딸아이가 컴퓨터를 하루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이다. 대부분 딸아이는 한국에 잠시 가 있는 한국인 친구와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와 인터넷 대화를 하면서 같이 게임을 즐겨한다. 컴퓨터 외에 텔레비전을 두 시간 시청할 수 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딸아이는 책을 읽거나 인형 등을 가지고 논다. 어느 날 딸아이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부탁했다. 그리고 거실 문을 닫더니 혼자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들어가려고 하니 나중에 부르겠다고 했다. 

딸아이가 식구들을 모두 불렀다. 딸아이는 카메라에서 사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한 편의 만화영화를 보는 듯했다. 딸아이가 찍은 사진은 400여장이나 되었다. 한 동작 찍고, 인형을 옮기고, 또 한 동작 찍고 옮기기를 반복했다.   


딸아이는 카메라 메모리칩에 지우지 말고 보관하라고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재미난 사진 만화영화 놀이를 그냥 컴퓨터에만 사진으로 보관하기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딸아이가 카메라에서 연속으로 보여준 사진 동영상을 직접 컴퓨터에서 작업을 해보았다.  
 

지루한 방학, 길고 긴 하루를 이렇게 400컷 사진을 찍어 만화영화를 만들어본 초딩 딸아이가 기특해보였다. 그렇다고 컴퓨터 사용시간을 세 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7. 23. 06:44

한국에서 오신 스승님 일행을 6월 25일 바르샤바에서 맞이했다. 스승님은 원불교 좌산 상사님이시다. 교단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를 두 차례 역임하셨다. 상사님을 1982년 대학생 시절 종로교당에서 처음 뵈었다. 지금 유럽에서 살 수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해준 분이다. 에스페란토 공부와 원불교 교서 번역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셨다. 

7월 4일 떠나는 날까지 모시면서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스승님과 함께 한 시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었다. 스승님이 떠나신 날 저녁부터 잘 때까지 10살 딸아이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10일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딸아이 마음 속에 차지한 비중이 아주 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라트비아 룬달레 궁전에서 스승님과 요가일래
▲ 짧은 한복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해 동안 입을 수 있는 예쁜 한복을 선물해주셨다. 

스승님께서 계시는 동안 일어났던 여러 일화 중 하나를 소개한다. 주무시는 방에 12장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다. 마침 6월에서 7월로 넘어가는 때였다. 월을 바꾸기 위해 벽에서 달력을 떼내는 순간 함께 걸려 있던 도자기 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딸아이가 노래 공연에서 받았던 상품이었다. 방을 지나가는 데 스승님께서 부르셨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깨어진 새를 보여주시면 말씀하셨다.  

"내가 달력 월을 바꾸려다가 그만 새를 바닥으로 떨어뜨렸어요."
"괜찮아요. 원래부터 새가 견고하게 붙어있지 않았어요."   

이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떠나시기 직전이었다. 다 함께 거실에 앉아서 감상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스승님께서는 벌써 쓰레기통으로 버리셨을 듯한데, 깨어진 새 조각을 챙겨서 앞에 놓아두셨다. 그리고 딸아이 요가일래를 부르셨다.   


"내가 요가일래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하나 있는데, 할아버지가 잘못해서 이 새를 그만 깨뜨렸어요."
"할아버지, 괜찮아요."

그래도 상품으로 받은 예쁜 새가 아까운 듯 딸아이 눈에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스승님 일행을 환송하기 위해 온 식구가 공항으로 나갔다. 집으로 돌아와자 딸아이는 무엇이 급한지 물었다.

"아빠, 그 깨어진 새가 어디 있어? 쓰레기통에 버렸어?"
"왜?"
"깨어졌지만 할아버지 기념으로 오랫동안 보관하려고."
"아빠가 벌써 잘 보관하고 있어. 그런데 새를 보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마음 속에 보관해야 돼."
"뭔데?"
"지위와 노소를 떠나서 누구나 실수했다면 직접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법이지."
"아빠 말이 어렵다. 할아버지라도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말이지?"
"그래. 아이라도 할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말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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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2. 6. 25. 10:47

며칠 전 집 안에 같이 있던 딸아이가 오랫동안 기척이 없었다. 무엇을 하기에? 궁금했다. 얼마 후 부엌에 가보니 잠잠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열심히 과자를 오븐에서 굽는 일을 혼자 하고 있었다.


군것질을 잘 하지 않는 것도 대견한데 이렇게 직접 과자를 만들다니...... 아빠의 기쁨은 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딸아이가 굽은 과자는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바삭바삭한 것이 아빠의 시원한 맥주 안주로도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2. 6. 15. 06:42

"발레 수업을 1년 더 받으면 안 되나?"
"싫어."
"1년 더 다닌다면 선물을 사줄 수 있지."
"그렇다면 강아지를 사줘!"
"강아지 말고 다른 것......"
"그럼, 안 갈거야." 

지난 1년간 발레 수업을 받은 10살 딸아이는 힘들다고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한다. 1년 더 다니도록 여러 유인책을 써보지만 효과가 없다. 근래 들어 딸은 무척 애완견을 가지고 싶다고 졸라댄다.

노래 대회 상품으로 받은 개 저금통[관련글]이 애완견을 대신할 것이라고 기대해보았지만, 오히려 애착심에 불씨를 짚힌 것 같다. 

최근 폴란드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를 모은 애완동물이 저질러놓은 엉망진창 집안 사진을 보여준다면 애완견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까......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이런 엉망진창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이를 보고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속에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는가라는 쪽보다는 사람 사는 집에는 사람과 사람이 부딛끼는 것이 좋겠다는 쪽에 더 무게중심이 이동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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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2. 6. 5. 05:04

일전의 글[지지 않는 장미꽃을 엄마에게 선물한 초딩 딸]에서 리투아니아에는 공동으로 지내는 어버이날이 없다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어머니날은 5월 첫째주 일요일이고 아버지날은 6월 첫째주 일요일이다. 
 
* 어머니날에 딸아이가 준 선물

지난 어머니날에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 요가일래는 깜짝 선물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바로 예쁜 장미꽃을 직접 그려서 유리판 사이에 넣은 것이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장미꽃을 어머니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날에는 어떤 선물을 준비할까 궁금했다. 


10일 전 우리 집 부엌 식탁에 진한 자주색 작약꽃이 꽃병에 꽂혀있었다. 시들자 꽃잎이 하나 둘 떨어졌다. 그런데 통에 이 떨어진 꽃잎을 누군가 담아놓았다. 무슨 용도로 이렇게 버리지 않고 보관을 하고 있을까라고 궁금했다. 그 후 여러 일이 지났다. 딸아이가 준 아버지날 선물을 보고서야 그 궁금증을 해소했다.


요가일래는 이 말린 작약꽃을 가지고 선물을 만들었다. 풀로 꽃잎을 종이 위에 붙였다. 저렇게 많은 꽃잎을 하나 하나 붙이느라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까...... 시든 꽃잎을 버리지 않고 선물로 재활용하는 초딩 딸아이의 생각과 그 준비성에 놀라움과 부끄러움이 교차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5. 26. 07:04

이번주 유럽의 최대 화제 중 하나가 유로비전 가요제이다. 내일 일요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결선전이 열린다. 유로비전은 1956년부터 유럽국립방송국연맹이 매년 전년도 우승국가에서 개최하는 이 행사는로 수억명이 지켜보는 세계적인 가요제이다. 올해는 43개국이 참가해 26개국이 결선전에 올랐다. 


이틀에 걸쳐 열린 두 번의 예선전을 시청했던 초딩4 딸아이 요가일래가 한 마디했다. 요가일래는 현재 음악학교에서 노래를 전공하고 있다.

"내가 유로비전에 나간다면 영어로 노래할 거야."
"왜?"
"그래야 사람들이 내가 부르는 노래가 무슨 내용인지를 알 수 있잖아. 가수들이 자기 나라말로 부르는 노래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
"그러게. 생중계하는 TV가 노래를 번역해 자막처리해주면 참 좋겠는데 아쉽다. 그런데 네가 영어로 노래한다고 해서 유럽 시청자 모두가 이해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도 영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난 영어로 노래할 거야."

딸아이는 엄마와 함께 시청한 후 다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엄마와 의견을 나눴다. 
"저기 저 부문은 제대로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저 부분은 좀 부자연스러운 연결이다......"

"네가 이번 유로비전에 우승할 수 다서 나라를 선정할 수 있겠니?" 
"물론 할 수 있지. 스웨덴,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아이슬란드, 몰다비아."

아래는 딸아이가 선정한 다섯 나라의 유튜브 동영상이다(무순이다). 

* 스웨덴

* 리투아니아

* 에스토니아

* 아이슬란드 

* 몰다비아

유로비전은 참가 가수뿐만 아니라 좋은 성적을 거둔 나라의 국민들에게 큰 기쁨과 자부심을 준다. 과연 누가 우승을 하고, 또한 리투아니아가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할 지 궁금하다. 딸아이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유로비전이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길 기대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5. 22. 06:15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모처럼 폴란드 바르샤바를 다녀왔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바르샤바까지 거리는 약 500킬로미터이다. 자동차로 갈까 버스로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기름값과 버스교통비를 비교하니 천약지차였다. 고급버스인데도 인터넷으로 일찍 표를 구입하니 한국돈으로 일인당 1만원이었다. 7-8시간 직접 운전으로 얻는 육체적 피로감까지 고려하니 버스 이용이 훨씬 더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10살된 딸아이도 동행했다. 또래친구가 없으면 심심하니까 가는 것을 주저했지만, 딱히 누구한테 맡길 수도 없었다. 다행히 도착하니 3개월이 더 어렸지만 10살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초기엔 탐색적이었다.

"아빠, 저 친구하고 같이 놀고 싶은 데 무슨 말로 하지?"
"영어할 수 있는 지 물어봐."
"부끄러우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아빠, 영어할 수가 없데."
"그럼, 편하게 너는 한국말로 하고, 저 친구는 폴란드말로 하면 되잖아.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자꾸 하다보면 조금씩 이해가 될 거야."

이렇게 모국어가 서로 다른 두 또래아이는 뜰에서 한참 동안 노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연히 화장실로 가가다가 컴퓨터 앞에서 둘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니?"
"대화하지."
"어떻게?"
"여기 봐!"


이들은 구글번역기에 각자의 모국어를 쳐넣고 번역하면서 컴퓨터 화면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1990년대초 헝가리 시골에서 사전을 이용해 거북이 걸음마처럼 의사소통하던 때가 떠올랐다. 요즘은 참으로 인터넷 덕분에 10살 어린이조차도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이렇게 구글번역기로 의사소통을 한 뒤 밖에 나가서 놀았다. 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컴퓨터 방으로 왔다. 이를 반복하면서 놀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하는 빈도수는 조금씩 낮아졌다.

"아빠, 내가 이제 조금씩 폴란드말을 할 수 있어."
"우리 자주 폴란드에 올까?"
"그러고 싶어. 제발~~~"
"처음에는 오기 싫다고 했잖아."
"이제는 달라졌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5. 7. 09:11

우리나라는 어버이날이 5월 8일로 확정되어 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해마다 변한다. 부모 모두를 기념하는 날은 없고 어머니날과 아버지날로 분리되어 있다. 어머니날은 5월 첫째주 일요일, 아버지날은 6월 첫째주 일요일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10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다가왔다.

"아빠, 침실 열쇠 어디 있어?"
"침실 열쇠는 없는데. 왜?"
"내일이 어머니날인데 내가 선물을 몰래 준비할 거야. 엄마도 침실에 못들어오도록 해줘."

이렇게 요가일래는 저녁 내내 부모 방출입을 금지시키면서 무엇인가 만들고 있었다. 어제 일요일 딸아이책가방에서 숨겨놓은 선물을 꺼내 엄마에게 선물했다.

표지에서부터 벌써 정성이 듬뿍 담겨있는 선물일 것이라는 냄새가 풍겼다. 금빛 포장지로 아주 야무지게 포장을 했다. 과연 무엇일까 더욱 궁금해졌다. 
'혹시 빛좋은 개살구는 아닐까......'


파손이 쉽게 되지 않도록 비닐포장지로 한 번 더 쌌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선물은 예쁜 장미꽃 한 송이였다. 


아내도 감동먹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내 자신도 감동먹었다. 곧 시들어버릴 생생한 장미꽃보다도 영원히 지지 않는 장미꽃을 엄마에게 선물한 딸아이가 기특했다. 아버지날 딸아이는 어떤 선물을 준비할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