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에 해당되는 글 471건

  1. 2011.10.22 쉿! 조용히 해! 내가 자고 있잖아! 2
  2. 2011.10.13 한글 없는 휴대폰에 딸이 보낸 엉성한 한국말 7
  3. 2011.10.11 학교에서의 딸 전화에 먼저 가슴 쿵덩쿵덩 2
  4. 2011.10.06 아버지라는 말 대신에 써진 동행인에 섭섭 6
  5. 2011.10.04 나무토막을 여행 기념물로 삼는 못난 아빠
  6. 2011.10.01 학예발표회에 제외된 딸아이의 슬픈 심정 5
  7. 2011.09.29 게을러서 중단한 그림 마치는 딸아이의 편법 1
  8. 2011.09.26 김치에 정말 좋은 한국냄새가 나네 2
  9. 2011.09.23 축하금 털어 미국가서 온 언니에게 준 그림
  10. 2011.09.20 해외연수갈 아내한테 딸 학교보내기를 배우다 6
  11. 2011.09.08 국어가 연속 2시간인 외국 초4 수업시간표
  12. 2011.09.02 개학 첫 날에 벌써 야유회 개최한 딸아이 학급 1
  13. 2011.08.28 가족 사진에 얼굴은 어디 가고 그림자만
  14. 2011.08.26 외국 초학생 휴대폰에서 들리는 한국 노래들 1
  15. 2011.08.10 매직펜으로 얼굴 화장을 해버린 딸아이
  16. 2011.08.01 90살 증조모를 아이처럼 달래는 10살 증손녀 4
  17. 2011.07.06 아빠 책상 정리한 수고비는 얼마일까 3
  18. 2011.07.05 외할머니 용돈 차별에 토라진 딸아이 2
  19. 2011.06.30 여자아이로부터 고맙다는 표현은 처음이야
  20. 2011.06.29 길바닥에서 돈 만원을 주운 딸아이와 대화 2
  21. 2011.06.28 한국 지하철에서 머리 쓰다듬기를 싫어한 딸 3
  22. 2011.06.23 9살 딸아이 마침내 귀 뚫기 소원을 이루다 5
  23. 2011.06.14 참가자가 2명인데 왜 3등이지, 황당한 국제 대회 1
  24. 2011.06.14 "야!"면 안되잖아, 9살 딸의 따끔한 한 마디 8
  25. 2011.06.07 전자책 시대에 도서관에 책대출하는 딸아이
  26. 2011.05.24 유럽 중앙에 울려퍼진 한국 동요 - 노을 9
  27. 2011.05.21 악성댓글로 인해 토라진 초3 딸아이 6
  28. 2011.05.18 인형하고 같이 안자려는 딸아이의 까닭
  29. 2011.05.04 친구의 햄스터 죽음에 깔깔 웃어버린 딸의 이유 3
  30. 2011.05.02 민요 경연 대회장엔 마이크가 없다 2
요가일래2011. 10. 22. 00:01

아내가 집을 떠난 후[관련글] 어느 때보다도 딸아이와 둘이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바쁜 일로 딸아이가 잠잘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한 날이 흔했다.
예전에는 한국말 책 읽어주기가 가장 기본적인 책무였는데 말이다. 

학교에 가는 날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는 보통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그래야 아침 7시에 일어나 등교하는데 크게 보채지 않는다. 

어느 날 딸아이가 있는 방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살짝 가보았다.

이미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딸아이의 표정이 참 재밌었다.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면 딸아이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졌다. 


"아빠, 내가 정말 저렇게 하고 잤어?"
"정말이지."
"참 재미있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쉿! 조용히 해! 내가 자고 있잖아!"
"그래 맞아!!! 하하하하하......"

* 최근글: 아내가 집 떠난 후 남편이 느낀 힘든 일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13. 08:04

그 동안 네 식구가 부딛끼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부터 초등학교 4학년생 딸 요가일래와 단 둘이 지니고 있다.  큰 딸은 영국으로 유학가버렸고, 아내는 지금 인도 델리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아침 7시 딸을 깨워 아침 식사를 챙기고 학교을 보내는 일은 힘들지 않다. 하지만 뚝 떨어진 바깥온도를 보고 옷을 더 따뜻하게 입히려고 하는데 딸이 이를 거절하면서 생기는 실랑이는 괴롭다.

아내는 연일 딸에게 옷을 따뜻하게 입히라고 편지로 지시한다. 하지만 딸은 이제 멋을 부릴 시기가 되었는지 두툼한 것보다는 날씬한 것에 고집을 부린다. 적어도 딸아이에게는 윽박지르는 것을 싫어하는 체질이라 궁색하게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라고 종용해본다.

제일 힘든 일은 딸아이를 혼자 집에 있게 하는 것이다. 특히 저녁 시간이다. 일 때문에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는 두 서너 시간 딸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다. 이런 경우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쪽지로 의사소통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둘 다 휴대폰은 한글이 없다. 한국말을 소리나는 대로 리투아니아어 철자로 표기한다. 한 마디로 딸아이가 표현한 한국말은 엉성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의사소통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몇 가지 쪽지를 공개한다. 밤에 아이팟으로 찍은 것이라 선명하지 않음에 양해를 구한다.

▲ Apa nega bolso džibe wanda. Islkoja?
   
아파 네가 볼소 지베 완다. 이슬코야? (아빠 내가 벌써 집에 온다. 있을 꺼야?)

▲ Bagu innde apaga bogušipči
   바구 인느데 아파가 보구쉽치 [(TV)보고 있는데 아빠가 보고싶지.] 

▲ Nega  džibe itagu malhegušiposo.
   네가 지베 이타구 말해구쉬포소 (내가 집에 있다구 말하고 싶어서.) 

▲ Bolso  džibe wa! Musowo...
   볼소 지베 와! 무소워...(벌써 집에 와! 무서워...] 

이렇게 한국말로 쪽지를 보내는 딸아이가 대견스럽다. 리투아니아어로 하면 오히려 더 정확게 쓸 수 있는데 왜 굳이 엉성한 한국말로 쓸까?

이유는 간단하다. 딸아이는 예외없이 아빠하고는 죽이든 밥이든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고 저절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말 읽기와 쓰기가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는 시간문제라 여겨진다. 이번에 한국을 같이 방문할 때 길거리 간판들을 보면서 한국말 읽기 공부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11. 06:35

지난 토요일 드디어 아내가 3주간 해외연수로 아시아 인도로 떠났다. 공항으로 배웅할 시간이었다.

"엄마 배웅하러 공항에 함께 가자."
"아니, 그냥 집에 있을 게."
"그래. 알았다."

아내에게는 초등학교 4학년생 딸에게 공항가기를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분명 눈물로 엄마를 보낼 것이므로 그냥 담담하게 서로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내가 없는 첫날은 평소대로였다. 일요일 침실에서 딸아이가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동안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혹시 피곤해서 일찍 자나라고 생각했다. 살짝 가보니 딸은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 보고 싶어."
"어제 엄마 인도에 갔는데"
"나 한국 안 갈래. 엄마 보고 싶어."
"우리가 한국에 갈 때 엄마가 아직 인도에서 집에 오지 않아. 너 혼자 있을 수 있어?"
"아빠도 한국 가지 마."
"구입한 표는 어떻게 해?"
"다른 사람에게 팔아."
"조금 있으면 기분이 좀 좋아질 거야. 엄마 생각은 하지만 울지마. 아빠가 뭐 먹을 거 갔다줄까?"
"알았어."

평소에는 새벽까지 일을 하지만 이제 아내 대신 딸을 등교시켜야 하므로 일찍 자야 했다. 비교적 딸아이는 아내가 있을 때보다 더 자발적으로 학교갈 준비를 했다. 아침 식사를 마련하는 동안 딸아이는 가방을 챙겼다. 바깥 온도가 영상 5도로 추운 날씨였다. 모자까지 챙겼다. 이렇게 아내 없는 첫날 등교시키기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첫 수업이 끝난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렇게 아침 일찍 누가 전화했을까...... 화면에 찍여있는 번호를 보니 딸아이 전화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먼저 가슴이 쿵덩쿵덩 뛰었다.

"아빠, 나야. 학교로 와줘."
"무슨 일인데?"
"내가 볼펜이 없어."
"친구한테 빌리면 안되나?"
"안돼. 내 방에 가면 볼펜을 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와."
"필통 말이니?"
"그래 맞아. 필통! 내 방 책상 위에 있어."
"알었어. 아빠가 빨리 갈 게."

학교 생활 4년째 필통없이 학교에 간 날은 처음이었다. 딸의 필통을 챙겨 1km 떨어진 학교로 달려갔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수업 중이었다. 교실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건너편에서 딸아이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자, 여기 필통."
"아빠, 고마워." 

필통에는 연필, 볼펜, 색연필 등이 있었다. 없으면 다섯 시간 수업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전화에 불안했지만 이렇게 딸아이를 돕고 나니 흐뭇했다.

집으로 돌아와자 다음 휴식 시간에 딸아이가 문자쪽지를 보냈다. 
"Gomawo! :}" (고마워: 휴대전화에 한글 자판이 없어 이렇게 라틴글자로 쓴다.)
 


일전에 학교 수업 중 휴대폰으로 인해 생긴 아내의 불편한 심기(관련글: 선생님도 수업시간에 휴대폰 꺼놓아야 할 판)를 떠올리면서 "휴대폰이 참으로 유용하네"라고 되새겨보았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10. 6. 08:09

리투아니아 법에 따르면 부모 중 한 사람이 미성년자 자녀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려면 부모 한 쪽의 동의서를 공증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사항이 폐지되어 동의서가 없어도 된다. 이제 얼마 후 딸아이와 둘이서만 한국에 간다. 아내의 동의서 없이도 리투아니아를 출국할 수가 있다. 하지만 불안요소는 있다.

내 여권에 미성년자 딸아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면 걱정이 없다. 문제는 딸아이의 국적은 리투아니아, 내 국적은 한국이다. 또한 여권상 딸아이의 성(姓)과 나의 성이 다르다. 이렇게 여권상 완전히 아버지와 딸이 남남이다. 가족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표면상 근거는 얼굴이 닮았다는 것과 둘이 한국어로 말한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태어나자 국적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리투아니아가 생활 터전이니 리투아니아 국적을 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지금도 리투아니아는 이중 국적에 관대하지 않다.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리투아니아는 단일 국적이 절실했다. 리투아니아에는 폴란드인,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등 여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소수 민족이 다수를 이룬다. 그래서 리투아니아는 단일 국적을 국가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한 방법으로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서가 없어도 되지만 행여나 제3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의서와 공증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아내는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종종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자녀를 데리고 도망을 가버리는 경우이다. 동의서는 도망가는 쪽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남은 쪽에는 그야말로 후회막급을 안겨준다.

공증사무실에 가면서 아내와 나눈 대화다.

"언제까지 동의서를 유효하게 할 것인데?"라고 아내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까지로 해야지. 당신 한국 가서 안돌아오면 어떻게 해?"
"지금껏 같이 살았으면 믿어야지. 그리고 다음에 딸아이와 또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잖아."
"기간은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장소는 한국으로 국한해서 동의서를 작성할 거야."
"알았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라고 답했다.

아내의 근심에 불을 더 짚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증사무실에 도착하자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문서를 작성하는 직원이 물었다.

"기간은 언제까지 할까요?"
"딸아이가 (18세) 성년이 될 때까지 해주세요."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어느 나라로 가든지 상관이 없도록 해주세요."

아내에게 왜 조금 전과 180도 다른 결정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당신을 믿잖아!"

 
동의서를 확인해보았다. 핵심 내용은 "미성년자인 나의 딸이 성년이 될 때까지 동행인 최대석과 함께 어느 나라에도 가는 것에 동의한다"이다. 아내에게는 딸이라는 것이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표현이 전혀 없다. 아버지라는 단어 대신에 동행인이 들어가 있다. 아무리 정형적인 문구이지만 기분이 섭섭했다. "동행인 최대석"보다야 "아버지 최대석"이가 훨씬 더 친근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4. 06:20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 여름방학은 길다. 겨울방학이 없는 대신 여름방학은 약 3개월이다.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여름방학 숙제조차 없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쉴 수 있도록 한다. 방학 전 담임 선생님은 여행가서 개학이 되면 기념물을 가져와 이야기하도록 부탁했다.

방학 내내 딸아이는 선생님 부탁을 실행해야 한다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터키, 불가리아, 영국, 스페인 등으로 여행가자고 졸라댔다. "그냥 방학 잘 보내고 오라고 하시지 여행 이야기를 꺼내 부모를 곤란케하시나?"라고 살짝 선생님에 대한 불평심이 일어났다. 한편 "선생님 부탁은 왜 꼭 들을려고 하니?"라고 딸아이를 책망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다.

아내는 열심히 적합한 해외여행을 찾느라 여러 주를 보냈다. 하지만 살다보면 뜻과 같이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한 주 한 주, 한 달 한 달 보내다보니 결국 지난 여름방학에는 가족 해외나들이는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위안삼을 일은 있었다. 당시 큰 딸 마르티나는 2달 여정으로 미국을 여행하고 있었다. 아내는 10월 중하순 3주 동안 인도(India)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8월 하순 친구들이 리투아니아 메르키스 강(江) 카누여행(관련글: 여름 가족여행으로 손색없는 카누 타기)을 기획했다. 우리 가족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내팽개치고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해외여행은 못가도 한번이라도 국내여행은 갔다오자라는 취지였다.

강을 따라 카누를 저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맑은 물에 수영하는데 물 속에 돌처럼 생긴 물건이 눈에 띄었다. 꺼내보니 진흙으로 덮혀진 물건이었다. 진흙을 걷어내니 검은 나무토막이었다.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어미새 모양이었다. 신기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 강물 속에서 찾은 나무토막,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어미새를 닮은 듯하다.
 

개학 후 예정된 대로 딸아이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여행 기념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빠, 난 무엇을 가지고 가지?"
"지난번 나무토막 어때?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카누여행을 했으니 충분히 기념이 되잖아."

(요즘 사람들이 흔히 다녀오는 해외여행도 시켜주지 못해 못난 아빠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아빠. 좋은 생각이네."

이날 나무토막을 가지고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나무토막 보여줬어?"
"친구들이 그리스, 크로아티아, 스페인, 독일, 덴마크 여행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서 시간이 없었어."
"그래서?"
"그냥에 옆에 앉은 친구에게만 이야기해줬어."

"여름에 해외여행 못가서 미안해. 하지만 조금 있으면 아빠하고 같이 한국을 방문하잖아."
"알았어."
"한국에 가면 무엇을 제일 먹고 싶니?"
"배, 대추, 밤......" 

요즘 딸아이는 곧 한국에 갈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1. 06:39

보통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는 문을 열어주자마자 큰 소리로 "아빠 ,나 왔어!"라고 말한다. 어제 금요일 딸아이가 아파트 입구에서 문을 여는 소리에 우리 집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혹시나 가방이 무거울까봐 복도를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시무럭한 표정이었다. 이 표정은 아빠를 보자마자 눈물 방울로 변해가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곧장 들어가더니 울기 시작했다. 이 방면에서는 아빠와 엄마가 한 수 위이므로 아내에게 요가일래에게 사연을 물어보라고 했다.

사연인즉 매주 금요일마다 정규수업이 끝난 후 10월 19일 열릴 학예발표회를 연습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담임 선생님이 낭독할 시를 주거나 부를 노래들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이날 남녀가 쌍을 이루어 춤을 추는데 짝을 정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딸아이에게는 시도 주지 않았고, 노래도 주지 않았고, 짝도 정해주지 않았다. 학급 친구들이 교실 앞에 나가 연습을 하는 동안 혼자 책상에 앉아 지켜봐야 했다.

▲ 2010년 12월 학예발표회 모습
 

결국 딸아이는 심한 소외감을 느꼈고, 이는 슬픔으로 이어졌다. 더우기 시낭송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모두 좋아하는 아이라 소외감내지 무시당한 듯한 기분이 곱절로 느껴졌을 것 같다. 

까닭은 단순하다. 요가일래 10월 20일 아빠따라 3주간 한국을 방문한다. 그 동안 출국 일정이 10월 18일에서 20일로 연기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학예발표회 전에 요가일래가 한국으로 떠난다고 생각해서 과제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20일 떠나니 19일 학예발표회에 참가할 수가 있게 되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렸다.

"네가 학예발표회에 참가할 수 있으니 과제를 달라고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할까?"
"그렇게 해줘. 하지만 벌써 누가 할 지 다 정해졌어. 노래는 6곡을 더 배워야 돼."

"노래 6곡을 더 배워야 하면 힘들겠다. 음악학교에서 준 노래도 배워야 하잖아. 그냥 참가하지 않으면 안될까? 노래는 음악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잖아. 그리고 다음날 한국에 가야 하니 전날 준비할 것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맞아. 학예발표회에 참가하지 않을게. 선생님에게 전화할 필요없어."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지 말고 정규수업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보내달라고 선생님에게 부탁해보는 것이 좋겠다."
"알았어."

이렇게 부모와 대화를 통해 딸아이의 기분은 많이 전환되었다. 반 친구들이 다 학예발표회를 연습하는 데 혼자 제외되어서 느끼는 딸아이의 기분은 쉽게 이해가 된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혼자 먼저 집으로 돌아오는 딸아이의 발걸음은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아빠 나라를 방문할 기쁨으로 그 발걸음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상쇄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9. 29. 07:26

여름 방학을 마칠 무렵 어느 날 딸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빽빽히 그려? 눈이 안 아파?"
"아니. 나 이 종이 가득 채울 거야."

하염 없이 작은 원을 그리면서 여백을 채워가고 있었다. 지루하고 집중력 저하로 나 같으면 큼직한 그 원 서너개를 그리고 빨리 끝냈을 법하다.

이렇게 며칠 동안 딸아이는 틈틈히 집중해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방학을 다 마친 8월 31일 딸아이는 여백을 반 정도 채우고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다 채운다고 하더니......"
"이게 다 그린 거야."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 항상 날짜와 이름을 기재하도록 딸아이에게 부탁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을까하고 그림의 뒷장으로 넘겨보았다. 딸아이의 재치있는 마무리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림을 다 끝낼 수 있었지만 게으름을 피웠다. 이 그림을 "반(半)기포"라 이름지었다.
2011년 8월 20일 - 2011년 8월 31일.


이렇게 딸아이는 11일 동안 그린 그림을 "반"(半)을 사용하면서 완성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9. 26. 06:04

금요일 딸아이는 바쁘다. 일반학교를 다녀오자마자 음학학교에 가야한다. 또 집으로 돌아와서 짐시 쉰 후 발레학교에 간다. 올 9월부터 발레 과외를 받는다. 허리를 곧곧하게 하고 다리를 똑바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보내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 이렇게 발레학교를 다녀온 딸아이에게 과제가 하나 더 있었다. 대출한 책 다섯 권을 인근 도서관에 반납하는 것이었다. 마감일이라 더 늦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집에는 딸아이와 나와 단 둘이 있었다.

"혼자 갈 수 있니?"
"아빠하고 같이 가면 더 좋지."
"그래 같이 가자."

도서관 가까이에 피자집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학교, 음악, 발레에 지친 딸아이에게 좋아하는 피자를 사주고 싶었다. 덩달아 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을 셈이었다. 

"우리 피자 먹고 갈까?"
"좋아. 그런데 우리 사가지고 집에서 먹자."

"가는 동안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냥 피자집에서 먹고 가자."
"싫어."

"그런데 할인 카드(한 판 값으로 피자 두 판)를 엄마가 가지고 있어."
"그럼, 안 되겠다. 바보짓했다고 엄마가 화낼 수 있어."

"그래, 집에 가서 김치하고 밥 먹자."
"아빠, 빨리 집에 가자."

집으로 돌아와 접시에 밥을 담았다. 냉장고에서 있는 김치통을 꺼내 열었다. 익은 김치에서 나는 새콤한 냄새를 맡으면서 딸아이가 말했다.

"음~~~ 정말 좋은 한국냄새가 나네!!!"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는 김치의 배추는 아직 먹지 못하지만, 김치를 밥에 발라서 곧잘 먹는다. 보기에 맛이 하나도 없을 것 같지만, 딸아이는 붉게 페인트를 칠한 듯한 밥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중 하나"로 꼽는다. 물론 접시 옆에 물컵이 반듯이 있다. 

딸아이가 이렇게 먹곤하다가 더 자라면 김치를 온전히 먹을 날이 올 것이라 기대된다. 대부분 유럽 사람들은 김치냄새에 눈살을 찌푸르는 데 김치에 정말 좋은 한국냄새가 난다는 딸아이 말에 웬지 한국인으로서 흐뭇한 마음이 든다.

* 최근글: 아리스토텔레스식 사위 고르는 법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9. 23. 05:55

큰 딸 마르티나는 지난 7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외할머니는 그 동안 고등학교 졸업할 때 주려고 적금을 들어놓았다. 이 적금(리투아니아 돈으로 2000리타스, 약 1백만원)을 타서 졸업 축하금으로 주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큰 고민없이 마르티나는 미국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금액이 조금 부족하기에 사용하고 있던 노트북까지 팔았다. 

"외할머니가 한 푼 두 푼 모아 선물한 것인데 좀 더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안 되겠니?"
"내 꿈은 미국 한 번 가보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나에겐 최고의 선택이다."

대학생이 되면 유용하게 쓸 데가 많을 것 같은데 미국 가는 비행기표에 홀랑 다써버린다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성년이니 부모 의견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외할머니가 졸업 선물로 거액을 주었으니 부모가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롯이었다. 그래서 졸업 축하금으로 미국 여행경비를 대기로 했다.

이렇게 보스톤, 뉴욕, 워싱턴, 나이가라 등지를 2달 동안 여행하다가 어제 마르티나가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 어때?"
"집이 최고야. 그곳에 살고 싶지는 않아. 가는 곳마다 걸인에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고 냄새나고, 몇 번 속임수도 당했어. 빌뉴스가 조용하고 깨끗하고 참 살기 좋다는 것을 느꼈어."
"미국 대도시에는 그럴 수 있지만 지방에는 빌뉴스보다 좋은 데가 많을 거야. 미국 간 것 후회 안 돼?"
"후회는 안 돼. 이번 한 번으로 만족한다."



마르티나가 돌아오자 제일 반가워하는 사람은 바로 요가일래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요가일래는 숙제를 마치자마자 언니를 환영할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때에는 하루에도 여러 장씩 그림을 그리더니 요즘 통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림도 자꾸 그려봐야 내공이 생기는 법인데 말이다.

무슨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했다. 언니가 집으로 오자 공개한 그림이 바로 아래 그림이다.
"Hi!"
"Miss you!"
"Labas!"  
"Muliu!"
"Love you!"


철자 'i'와 느낌표"!" 대칭이 눈길을 끈다. 이제 오는 일요일 언니 마르티나는 영국 유학을 위해 집을 떠난다. 둘 사이의 작별 충격이 커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9. 20. 06:04

오는 10월 8일 아내는 3주간 인도로 해외연수를 간다. 인도 정부가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한 정부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인도는 다양한 기간 동안 연수를 시킨다. 항공료, 체재비, 교육비 등 일체 경비를 인도 정부가 부담을 한다. 아내가 참가할 프로그램은 "리더쉽 훈련 프로그램"이다.

아내가 없는 동안 딸아이 학교 보내기 등 모든 일은 고스란히 떠맡겨되었다. 딸아이는 9월부터 초등학교 4학년생이다. 만으로 아직 9살이다. 여전히 아내가 학교 가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아내와 나는 생활패턴이 달라 늘 늦게 일어난다. 식구들이 다 잠든 늦은 시간에 일에 집중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에 늦게 잠자리에 든다. 그래서 대부분 딸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보지 못하다.  

"이제 일찍 자고 같이 일어나 어떻게 요가일래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지 배워야지."라고 아내가 말했다. 어제 일어나 아내로부터 하나하나 배우기를 시작했다.

먼저 7시 일어난다.
부엌 창문밖에 있는 바깥온도계를 확인한다.
그날 온도에 따라 입고갈 옷을 고른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에는 체육에 적합한 옷을 입힌다. 

딸아이 방에 가서 딸을 깨운다.
옷을 주고 부엌으로 간다.

코코아 차를 만든다.
두 찻숟가락 코코아, 한 찻숟가락 설탕을 넣는다.
뜨거운 물을 컵 1/2이 조금 안 되도록 붓는다.
우유를 붓는데 컵 위까지 찰랑찰랑 차지 않도록 한다.


"코코아가 너무 차지도 않아야 하고 너무 뜨겁지도 않아아 한다." 
"왜 이렇게 어려워!"

그리고 하얀 빵 한 조각에 잼을 바른다.
빵을 먹는 동안 도시락을 준비한다.
과자 몇 개와 사과, 그리고 잼을 바른 빵 한 조각이다.

다음은 머리를 손질한다.
머리 손질하기에 적당한 빗과 머리끈을 준비한다.
머리 손질과 머리 묶기를 돕는다.

이어서 딸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학교로 향한다.
이때 침실 창문가로 얼른 가서 딸이 뜰을 지나고 신호등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렇게 학교 보내기가 끝난다. 이어서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 일과를 생각해본다.


일어나 대충 준비하고 빵 먹고 등교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학교보내기를 따라해보니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대로 척척 준비해나가는 아내의 능숙함이 경이롭게 보였다.

▲ 요가일래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이 머리를 묶어서 오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풀어진 머리는 글쓰기 등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준비하더라도 선택한 옷이나 아침밥 등으로 딸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생길 법하다. 분명히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아내의 빈자리, 엄마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2주 넘게 남았으니 배우고 익숙해지는 데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9. 8. 07:52

9월 1일 딸아이 요가일래는 일반학교와 음악학교 4학년생이 되었다. 음악학교에는 처음으로 음악사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이날 첫 수업에 갔다온 온 요가일래는 음악사 선생님이 마음에 든다고 아주 좋아했다. 수업 중 선생님과의 질의응답을 전했다.

"우리가 음악사 시간에 무엇을 배울까요?"라고 선생님이 물었다.
"작곡가들에 대해서 배우겠죠"라고 한 학생이 답했다.

"최초의 악기는 무엇일까요?"라고 선생님이 또 물었다.
"물론 북이죠."라고 한 학생이 자신있게 손을 들고 대답했다.
"북도 오래되었지만, 그 북보다 더 먼저 있었던 것이 있지요. 대답할 사람 없어요?"

교실에는 잠시 침묵이 흘렸다. 요가일래가 손을 들었다.

"제 생각에는 목소리(성대)입니다."
"맞아요. 역시 가수 요가일래는 뭐든지 다 알아요."라며 선생님은 칭찬했다.

음악사 선생님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 바로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생님의 칭찬 여부가 학생들의 호불감에 큰 영향력을 끼침을 쉽게 알 수 있다. 딸아이가 지루해할 것 같은 음악사의 첫 수업에 좋은 인상을 받아서 다행스럽다.

* 4학년 개학일에도 여전히 학부모가 자녀를 동반한다.
  
어제 일반학교 4학년 다음 선생님으로부터 이번 학년 시간표를 받았다. 유럽 리투아니아 초등학교 4학년의 시간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 리투아니아 빌뉴스 한 초등학교 4학년 수업시간표
 
먼저 주 5일 수업에 총 수업시간은 24시간이다. 각 과목의 수업시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리투아니아어 7시간
수학             4시간
영어             3시간
세계 알기      2시간
음악             2시간 
체육             2시간
미술, 기술     2시간
윤리, 종교     1시간
무용             1시간

초등학교 4학년인데 여전히 국어인 리투아니아어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그 다음은 수학이다. 영어와 불어 중 선택한 외국어 수업이 3시간이다. 국어 수업이 두 시간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돋보인다. 한국의 초등학교 4학년의 국어와 수학 등의 수업시간은 몇 시간일 지 궁금해진다.

* 관련글: 만화책 같은 초등학교 첫 영어책
               점수 없는 초등학교 성적표, 그럼 어떻게?
               유럽 초등학교 2학년 수업시간표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9. 2. 07:11

9월 1일은 유럽 리투아니아 모든 학교가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개학일이다. 이날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덕을 보는 사람들은 꽃장수들이다. 모든 학생은 꽃다발이나 꽃송이를 마련해 담임 선생님에게 선물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사진: 초등학교 4학년생이 된 요가일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각이 9월 1일 밤 12시경이다. 인근 공원에서 흘러나오는 공연 음악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오늘 학년을 시작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음악 공연이다. 이들은 새벽까지 노래와 춤으로 새 학년을 맞는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 되었다. 학급의 학생수는 28명이다. 며칠 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문자쪽지가 왔다. 개학일 학교 모임을 마치고 바로 야유회를 개최하니 준비해오라고 했다. 준비물은 간편한 운동복 차림과 각자 점심이었다. 가능한이면 부모도 참가하는 것이었다.

▲ 모두가 선물할 꽃을 들고 개학식에 임하고 있는 모습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꼬박 3개월 동안 딸아이는 학급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긴긴 시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고 9월 1일 만나니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그런데 1시간 정도 걸리는 개학 모임이 끝나면 뿔뿔이 집으로 헤어진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올해는 아예 개학 모임을 마치고 야유회를 개최하기로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결정했다. 장소는 빌뉴스 교외에 살고 있는 동급생 부모 집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또한 숯불로 소시지를 구워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는 것을 꺼렸지만 그래도 개학일이니 함께 하자고 해서 아내와 함께 나섰다. 막상 가니 대부분의 학급생이 참가했고, 부모들도 많이 참석했다.

지난 3개월 동안의 공백을 메우느라 아이들은 노는 데 정신이 없었다. 부모들은 각자 가져온 점심을 식탁에 올려놓고 장작불을 피우고 소시지를 구웠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개학 후 그냥 집으로 헤어지지 않고 야유회에 온 것에 대만족이었다.

▲ 개학일에 공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서먹서막한 분위기로 새 학년을 시작하는 것보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함께 뛰어놀고 밥을 먹으면서 첫 날을 보내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개착 첫 날에 야유회를 진행시킨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날 야유회의 이모저모를 엿볼 수 있는 사진을 올린다.

▲ 학교에서 20km 떨어진 교외인데도 대부분의 학급생들이 참가했다.
▲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을 들어올려보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다.
▲ 마지막 남은 딸기를 따먹고 있는 아이들
▲ 건초로 장난하는 아이들
▲ 각자가 준비한 음식물로 식탁이 부서질 것 같았다.
▲ 고기 굽는 일은 관례대로 남자의 몫이었다. 
▲ 뛰어노느라 배가 고파진 아이들
▲ 학부모들도 덩달아 담소를 즐겼다.
▲ 우리나라 007 빵 놀이를 연상시겼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놀았다.

* 최근글: 외국 초학생 휴대폰에서 들리는 한국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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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1. 8. 28. 09:22

요즈음 모처럼 맑은 날이 며칠일째 지속되고 있다. 낮 온도는 20도 내외이다. 반팔 상의를 입지만 왠지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6,7월의 낮 온도 20도와는 사못 다르다. 양(陽)이 점점 지고, 음(陰)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가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햇볕을 만끽하기 위해 산책 길에 나섰다. 한때는 혼자 거의 매일 산채 다녔던 집 근처 빙기스 공원을 향했다. 아내, 나, 딸 이렇게 나섰다. 아내와 딸은 최근 새로운 휴대폰을 장만해서 가는 도중 종종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곤 했다.  


넓은 잔디 공원에 들어서자 딸아이가 제안했다.

"아빠, 우리 가족 사진 찍자!"
"주위에 사람이 없는데 누가 찍어주지?"
"괜찮아. 내가 찍을 거야."
"그러면 가족 사진이 아니잖아!"
"찍을 수 있어."
"어떻게?"
"그림자를 찍으면 되지."

이렇게 아래 우리 가족 그림자 사진이 탄생하게 되었다.
 

실물이 나왔더라면 작은 키가 들통났을 덴테 이렇게 그림자로 보니 키다리가 된 듯하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8. 26. 10:04

오는 9월 1일이면 딸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 된다. 그 동안 휴대폰에 대해 별다른 욕심이 없더니 근래에 들어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휴대폰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아빠, 이 휴대폰 사줘~"
"사용하던 거 그냥 사용해. 아직 쓸만하잖아."
"낡았어. 그러면 내가 모아둔 용돈으로 사줘. 알았지?"

딸아이 휴대폰은 언니가 몋해 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내가 보기에도 너무 낡았다. 어제 무슨 일인지 밖에 나가서 한참 동안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아내는 딸아이에게 눈을 감아라고 했다.

"짜잔~~ 이걸 봐!"

딸아이가 원하던 휴대폰이었다. 딸아이가 새 학년으로 올라가니 그래도 뭔가 감동적인 것을 선사하려는 것이 아내의 마음이었다.

"정말 기뻐 죽겠어."

혼자 자기 방에서 새로운 휴대폰을 탐구하던 딸아이는 쪽지를 가지고 왔다.


"아빠, 이 노래들을 빨리 인터넷에서 받아서 내 휴대폰으로 넣어줘."

Kesha: Take it off
F.T. Island: I hope (바래)
Big Bang: Tonight (오늘밤)
Shakira: Give me everything
BeFour: No limit
Miley Cyrus: Can't be tamed
Lady Gaga: Paprazzi
Jenifer Lopez: I'm into you
Ukiss: Man man ha ni (만만하니)
Rihanna: Please don't stop the music......

바빴지만, 그래도 가끔 딸아이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좋은 아빠"가 되어보자라는 심정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노래들을 찾았다.  일일이 이 노래가 맞는 지 딸아이에게 확인했다. 그런데 몇몇 노래에는 한국어가 들렸다.

"어, 이 노래 네가 어떻게 알았니?"
"리투아니아 친구들이 알려준 한국 노래야."

* K-Pop 가수들에 푹 빠진 폴란드 여학생들 (사진출처: 주폴란드한국문화원)

리투아니아 친구들은 이제 9살-10살이다. 이들이 벌써 한국 노래를 듣고 따라서 부른다는 것이 정말로 믿기지가 않는다. 한편 이 작은 나라 어린이들 사이에도 외국 유명 가수들의 노래과 같이 휴대폰에서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당당히 들린다는 사실에 뿌뚯한 마음이 든다.

* 최근글: 얼음 위에 잠자는 북극곰 너무 귀여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8. 10. 07:12

우리 집을 자주 방문하는 친척의 딸아이가 이제 만 한살 반이다. 우리 집에 오면 혼자 아장아장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내 엄마가 뒤를 따른다. 무엇에 부딛히거나 무엇을 입에 넣는 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이렇게 부모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이는 딸아이 요가일래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난 딸아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딸아이가 네살이었을 때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나 어때? 예쁘지?"


황당한 일이었다. 메직펜으로 양 미간 사이 바로 위 이마에 화장을 해놓았다. 인터넷에서 이마에 점을 찍는 인도 여인들을 보고 한 듯 했다. 여러 개의 점이 있는 것을 보니 한 개의 점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같았다.

"예쁜데 지울려면 고생 좀 해야겠네. 어떻게 메직펜으로 얼굴 화장할 생각을 다 했니?!" 


칭찬에 이어지는 나무람에 딸아이는 그만 뽀르퉁하게 토라졌다. 사실 이런 일들이 아이 키우기에 솔찬한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8. 1. 02:58

지난 주말 장모님이 살고 계시는 리투아니아 북서부에 있는 쿠르세나이를 다녀왔다. 장모님은 모친을 모시고 살고 계신다. 10살 딸아이 요가일래에게는 외증조모이다. 

외증모님은 곧 만 아흔살이 된다. 거동이 불편하다. 지팡이에 의지해 조금씩 걸어다니신다. 하지만 조금 먼 거리는 휠체어가 필요하다. 식구들 모두 집 인근에 있는 텃밭에 가기로 했다. 외증조모님도 휄체어에 태워 다녀오기로 했다.

▲ 외증조모를 휠체어에 태워 밀고 가고 있는 요가일래 
 

텃밭으로 가는 동안 요가일래가 즐겁게 휠체어를 밀고 갔다. 텃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외증조모와 딸아이의 대화를 잠깐 엿듣게 되었다.

"내 지팡이, 내 지팡이 어디 있나?"
"할머니, 집에 있어요."
"빨리 내 지팡이 줘. 빨리 빨리 지팡이 줘."
"할머니, 집에 있다고 했잖아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 외증조모의 머리수건을 매어주고 있는 요가일래
 

텃밭에 있는 이웃집를 지나자 증조모는 또 다시 지팡이를 찾았다.

"내 지팡이 왜 안 주나? 벌써 집을 지났잖아!"
"할머니, 저 집이 아니라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이에요."

외증조모는 지팡이를 달라면서 연신 눈물을 흘리셨다.

"내 지팡이, 내 지팡이!"
"할머니 10분만 가면 집에 도착해요. 그때까지 참으세요. 조금만 참으면 돼요."
"내 지팡이 내 놓아! 내 놓아!"
"할머니, 아이처럼 굴지마시고 어른처럼 조금만 좀 참으세요."

▲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지팡이를 외증조모에 건네주는 요가일래
 

10살 아이와 90살 할머니 사이의 대회를 옆에서 들으면서 "나이가 들면 어른이 아이가 되는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고, 한편 90살 외증조모의 응석을 끝까지 웃으면서 달래주는 10살 딸아이가 대견스러웠다. 딸아이가 저렇게 응석을 부린다면 초지일관으로 미소띠며 달래줄 수 있을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7. 6. 07:42

요즘 매일 탁구를 친다. 지난 2월 우리 집에 설치했다. 짝은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할 큰 딸 마르티나다. 테니스를 취미를 가지고 있는 마르티나는 탁구도 비교적 잘 친다.

그냥 치면 재미가 없으니 내기 탁구이다. 마르티나가 이기면 10리타스(5천원)를 주고, 지면 마시는 차를 끓여주는 것이 내기이다. 아내도 좋아한다. 지면 건강을 위해 탁구를 친 값이라고 생각하고, 마르티나에겐 짭짤한 용돈 벌이다. 

늘 막상막하이다. 먼저 여섯 번을 이긴 사람이 승자이다. 보통 7-11번을 논다. 어제도 탁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작은 딸 요가일래는 아빠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아빠, 책상이 너무 지저분해. 내가 깨끗이 정리해줄게."

요가일래는 책상에 널려있는 책을 한 쪽에 쌓아서 정리했다. 더 이상 쓸 수 없는 볼펜을 버렸다. 특히 책깔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색종이 스티커를 필통에 붙여놓았다.

▲ 책깔피로 사용하라고 연필통에 붙여놓은 색종이 스티커들
 

"아빠, 내가 이렇게 정리하니 기분이 좋지?"
"그래."

탁구시합에 집중해야 하는 데 요가일래의 물음은 점점 방해가 되어 갔다.

"아빠, 내가 이렇게 잘 깎인 연필도 줄게."
"그래."
"아빠, 내가 이렇게 아빠를 위해서 책상을 정리하는데 아빠는 '그래', '응'이라고 짧게 말을 해!"

▲ 아빠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요가일래
 

요가일래는 더 긴 칭찬을 듣고 싶어했다. 그런데 탁구에 열중인 아빠의 반응은 짧고 무뚝뚝했다. 드디어 토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한 일이니 끝을 내겠다고 했다. 즐거움으로 시작한 일이 아빠의 반응으로 댓가를 바라는 일로 변해갔다. 

"아빠, 용돈!"
"네가 생각하기에 책상 정리 수고비가 얼마나 할까? 원하는 만큼 가져가."
"아빠 책상이니까 아빠가 결정해야지."

잠시 머뭇거렸다.

"5리타스(2천5백원)는 어때?"
"그럼, 5리타스 줘."

요가일래는 아빠 손바닥에 있는 동전에서 5리타스를 가져갔고, 다시 20센트를 더 가져갔다. 

"20센트는 팁이야. 이건 내 저금통으로!"

아빠와 딸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다가왔다.

"아니, 책상 정리하는 수고비가 5리타스! 너무 많아! 이렇게 습관을 들이면 안 돼!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는데 딸이 아빠 책상 정리를 댓가없이 해주면 안 되나?"

맞는 말이지만 아내에게 한 마디했다.

"그 돈이 누구한테 가든 우리 집에 있잖아! 아이도 돈이 필요하잖아. 이렇게 해서 모우게 하는 것도 좋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7. 5. 08:24

일주일 동안 장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 도시로 아내와 딸들이 다녀왔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마자 9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외쳤다.

"아빠, 사랑해. 정말 한국말 하고 싶었다."

요가일래는 늘 리투아니아어와 한국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아빠가 함께 하지 못한 시간 동안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딸아이의 첫 외침을 들으니 한국어의 빈 자리가 그렇게 컸구나라고 느꼈다. 어젯밤 딸아이에게 시골에 있었던 일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았다.

- 가장 재미 있었던 일은?
- 비가 오는 데 호수에서 수영을 한 일이다.

- 가장 좋았던 일은?
- 친구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개와 함께 놀았던 일이다.

- 가장 안 좋았던 일은?
- 언니가 사촌오빠와 이야기하면서 나를 비웃을 때이다.

- 아빠 안 보고 싶었어?
- 보고 싶었지. 한번은 보고 싶어 울었어.

 - 또 시골에 가고 싶어?
- 아니. 잠 잘 때 모기가 나를 물었어.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딸아이가 입을 열였다.

"그런데 아빠, 외할머니가 참 나빠."
"왜?"
"1000리타스(50만원)를 주었는데. 언니에게는 600리타스(30만원), 엄마에게는 400리타스(20만원) 나에게는 20리타스(1만원)만 주었어. 너무 적어!!!" 
"언니는 곧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니까, 외할머니가 용돈을 많이 주셨을 거야."
"언니에게 500리타스(25만원) 주고, 나에게 100리타스(5만원)를 줄 수 있잖아!"
"너도 커면 많이 주실 거야."
"그래도 20리타스(1만원)은 너무 적어."
"20리타스라도 준 것에 고마워해야지."


▲ 외할머니와 좋아하는 완두콩을 심고 있는 딸아이
 

딸아이는 벌써 금액에 민감한 나이가 되었으니, 자기가 생각하는 연령차이에 비해 용돈차이가 너무 커서 외할머니에게 토라졌다.

"남이 받은 용돈 금액은 알려고도 하지 말고, 단지 네가 받은 용돈 금액이 적든 많든 감사히 받아라."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30. 06:34

방학이 우리 집 가족을 이산가족으로 만들고 있다. 아내와 딸은 장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 도시로 떠났다. 일 때문에 홀로 집에 남아 있다. 항상 있던 식구들이 없으니 집은 조용하지만 허전하다.

도심이지만 마치 깊은 산 속에서 혼자 휴가를 보내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가족인지라 잘 무렵이면 시골로부터 안부전화가 온다. 하루 있었던 일이 이야기로 펼쳐진다.

어제 제일 중요한 일은 9살 딸아이가 드디어 장모님 아파트 또래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전체 가구수가 23이다. 비슷한 또래가 있는 집은 딱 하나이다. 그는 고층에 살고, 우리는 저층에 산다. 서로 왕래가 없다. 주변에 놀이터가 있지만 또래 아이를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방학 전 주말에는 가끔 인근에 사는 학교 반친구들을 불러 노는 것이 전부이다. 이제 방학이니 학교 반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거의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쉬운 점이 바로 주변에 또래가 없다는 것이다. 시골 아파트 마당에서 또래를 만나 즐겁게 노는 딸아이를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솟는다.

▲ 자랄 때 주변에 또래아이가 없어 대부분 혼자 집에서 놀아야 했던 딸아이(사자놀이하는 딸아이)
 

딸아이는 엄마에게 마당에 있었던 일을 전했다.


"엄마, 친구들이 내 얼굴을 가지고 싶데."

여담이지만 종종 딸아이를 보면서 동양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현지인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피부가 조금 다르다고 놀림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엄마,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오빠들이 나보고 예쁘다고 말했어. 그래서 내가 고마워라고 답했어. 그런데 오빠들이 여자아이로부터 고마워라는 말을 처음 들었데."

보통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 "예쁘다"라고 주파를 던질 경우, "너~ 꺼져"(eik tu, 반드시 화냄을 뜻하는 표현이 아님)라고 답한다. 이 남자들도 이런 통상적인 반응을 기대했는데, 딸아이가 "고마워"라고 답하자 당황하면서 신기해한 듯했다.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가 칭찬을 해주면 "고맙다"라고 먼저 말하라고 일러준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딸아이가 시골 또래아이들과 건강하게 잘 지내고 돌아올 보자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오길 기대해본다.

* 최근글: 소여물로 멋진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29. 09:00

며칠 전 9살 딸아이 요가일래 친구가 우리 집에 왔다. 둘이서 열심히 놀다가 그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딸아이는 친구를 가까운 네거리 신호등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왔다. 그런데 딸아이는 난데없이 20리타스(한국돈으로 약 1만원)를 흔들면서 기쁨이 넘쳐났다.

"아빠, 나 20리타스 주섰다!!!!" 
"그래? 그렇게 큰 돈을? 어디서?"
"내가 친구를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20리타스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어."
"너는 기쁘지?"
"정말 기뻐!"
"그런데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슬플까?"
"잃어버린 사람이 바보야! 자기 돈을 잘 보관해야지. 떨어져 있는 것을 내가 찾았으니 이제 내 것이야."

잠시 침묵이 흘렸다.

"만약 잃어버린 사람이 아주 가난한 사람인데 그 돈으로 빵을 사려고 했다면 지금쯤 얼마나 배가 고플까?"
"아빠는 이렇게 생각해봐. 만약 주운 사람이 술주정뱅이인데 이 돈으로 술을 살 수도 있잖아. 내가 주워서 나중에 좋은 물건을 사면 잃어버린 사람도 좋아할 거야."
"주운 것은 혼자 쓰는 것보다도 좋은 일에 쓰는 것이 좋겠다. 나중에 그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데 쓰자."
"안 돼. 이것은 이제 내 돈이야. 그러면 아빠가 이 돈만큼 다른 사람을 도와줘."

▲ 리투아니아 지폐 20리타스 앞면과 뒷면
 

보니 돈이 세뱃돈처럼 깨끗해서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들 것 같았다. 또한 동전이 아니라 지폐이니 돈 욕심이 더 날 법했다. 딸아이에게 함부러 길에 있는 물건을 줍지 말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너보다 더 돈이 필요한 사람이 그 돈을 주워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 이젠 그만! 주위에 (잃어버린 돈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내가 먼저 보았고, 내가 주섰어. 나도 돈이 필요해. 자꾸 모아야 돼."

언젠가 딸아이가 자라서 "길에 흘린 물건이라도 줍지 말라. 흘려서 마음 아플 그 액과 물건을 같이 가져 온다."라는 소태산의 법어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회되면 딸아이가 주운 그 돈만큼 좋은 일을 하는데 쓰도록 지갑문을 항상 열어놓아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28. 06:21

요즈음 한국에는 지하철에서 귀엽다며 아기를 만진 할머니, 원색적인 말투로 이 할머니를 페트병으로 때린 아기 엄마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찰이나 법조계에서도 고민스러운 일이다고 한다. 아기를 만진 것이 과연 폭행죄가 될까? 또한 페트병에 상해를 입지 않은 경우에 과연 유무죄를 논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지나친 반응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은 충분히 있을 법하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몇해 전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하철을 타고 우리 가족만 있을 때 딸아이가 자주 묻는 말이 있었다.

"아빠, 왜 한국 사람들은 내 머리카락을 만져?"
"기분 안 좋아?"
"짜증 나."
"꽃이 예쁘면 너도 만지고 싶지? 귀여워서 만지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네 할머니라고 생각해."
"그래도 싫어."
"그냥 웃으면서 견뎌! 조금 있으면 (리투아니아) 집에 가잖아." 

주로 중년이나 노년 여성들이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부드럽니?" "얼굴이 참 예쁘다"......

애정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라고 알려진 유럽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 느낀 것은 바로 자기 아이라도 밖에서는 잘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조심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 한국인의 머리 쓰다듬기에 익숙하지 않은 딸아이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법하다. 우리 집의 경우 아이와 함께 공공 장소에 갈 때 특히 버스, 슈퍼마켓 등에서는 절대로 자기 손으로 입술이나 얼굴 등을 만지지 말도록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접촉한 것을 만진 손으로 그냥 입술이나 얼굴을 만지만 아무래도 위생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미루어보면, 아무리 귀엽고, 어리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딸아이가 쉽게 이해가 된다. 

한국에서는 귀여운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이 우호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예쁘다고 주저없이 타인의 아이들을 쓰다듬지 말고 그냥 미소와 함께 칭찬의 말만 해주는 것이 좋겠다. 물론 이번 한국 지하철 경우는 극단적인 예에 속하지만, 이제 한국에서도 머리 쓰다듬기의 미풍이 배척당하는 듯해서 씁쓸한 마음이 일어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23. 07:25

몇해 전 한창 언니와 엄마 귀걸이를 가지고 놀던 시절 딸아이는 언니처럼 귀를 뚫겠다고 엄청 졸라했다. 그땐 "귀를 뚫을 때 정말 아플거야. 넌 아직 어리잖아!"라는 말로 어렵게 설득시켰다. 지금껏 이 일은 수면래로 잠겨져 있었다. 일 때문에 다른 도시에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가일래가 귀를 뚫겠다고 졸라대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아직 어리잖아. 적어도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야잖아."
"요가일래가 막무가내라 당신이 직접 설득해봐."

벌써 엄마하고 한 바탕 실랑이을 벌인터라 전화를 건네받은 딸아이는 울면서 전화를 받았다.

"아직 어리잖아. 나중에 커서 하면 안 돼?"
"아빠, 나도 이제 컸어. 어렸을 때도 어리다고 하고, 지금도 어리다고 하면 거짓말이잖아. 나 
이제 9살이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
"아플텐데 정말 귀를 뚫고 싶어?"
"그래도 정말 뚫고 싶어. 친구들은 벌써 다 귀글 뚫었어."
"그래. 내가 정말 하고 싶으면 이제 귀를 뚫어라."

▲ 귀를 뚫기 직전의 딸아이 모습

외지에 있었는지라 더 이상 설득하기엔 한계를 느꼈다. 7살 때 아직 어리다고 못하고 했고, 9살인데도 어리다고 못하게 하는 것은 딸아이 말대로 그 동안의 성장을 무시한 것이다. 또한 주변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진작 귀를 뚫었으니 "너만은 안 돼!"는 아버지와 딸간 간격의 벽을 더욱 두텁게 할 것 같다.

훌쩍이던 딸아이는 목소리는 이내 경쾌해졌다.
"아빠, 고마워~~~"
 

한쪽 귀를 뚫은 후 딸아이는 통증을 느껴 엄마에게 "다른 쪽 귀는 나중에 뚫으면 안 될까?"라고 물었다. 노련한 아저씨는 딸아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하는 동안 다른 쪽를 만지는 척하면서 그대로 확 뚫어버렸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자, 딸아이는 아주 반갑게 맞았다. 귀에는 귀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진작 허락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여자 아이들은 보통 몇 살에 귀를 뚫을까 궁금해진다. 미리 알았다면, "한국 아이들은 16살(?) 귀를 뚫어"라는 말로 설득해 보았을텐데 말이다. 

"아빠, 한국에 가면 예쁜 내 귀걸이 사줘! 알았지?"
 
"그래, 꼭 사줄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14. 08:08

최근 K팝의 파리 공연이 성황리에 마쳐졌다.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고 들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표 일간지인 르몽드는 “음악을 수출품으로 만든 제작사가 길러낸 소년·소녀가수들이 긍정적이며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를 팔 수 있다고 여기는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아이돌의 교육기간 중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 수단도 동원된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고 노래에 관심있는 딸아이의 "성형수술 때문에 가수가 안될래"라는 옛날 말이 떠올랐다. 6월 12일 딸아이가 참가하는 "국제 음악 경연 대회"가 열렸다. 처음 참가하는 국제 대회라 큰 기대를 하고 가보았다. 고등학생까지만 참가할 수 있고, 피아노 부문과 노래 부문으로 나눠져 있었다.

행사 안내 책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명색이 국제 대회인데 딸아이가 참가하는 노래부문 카테고리 A(2001년 6월 11일 이후 출생)에는 참가자가 고작 2명뿐이었다. 하지만 나이대가 올라갈수록 참가자는 더 많았다. 

궁금해서 리투아니아인이자 음악을 전공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데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 이유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다듬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그 목소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답이 왜 참가자가 적은 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참가자는 연달아 노래를 세 곡 불렀다. 한 곡도 아니고 세 곡을 부르는 것이 9살 딸아이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목감기 기운으로 목안이 따끔거리는 증세를 겪고 있었다. 노래를 다 마치고 밖으로 나온 딸아이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 세번 째 노래에서 단어를 두 군데 섞어서 기대한 만큼 잘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만, 심사위원들 중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도 있으니까. 못해도 2등은 할 수 있잖아."

경연대회 결과는 6월 13일 오전에 나왔다. 행사장에 가있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가일래가 3등을 했어!"
"참가자가 2명뿐인데 어떻게 3등을 했지? 좀 황당하지 않나?"
"1등과 2등은 선정되지 않았고, 3등이 최고야."

행사 안내책자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까닭은 이 경연대회의 등수는 상대평가가 아니고 절대점수로 매겨지기 때문이다.

▲ 상장에 서명한 사람들: 리투아니아 이탈리아 대사,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대사, 리투아니아 음악연극 대학교 총장, 빌뉴스 음악전문학교장....

▲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서 참가해 노래를 부르는 9살 요가일래
 

아내는 대회 규모나 등수가 문제가 아니라 딸아이에게 다양한 무대 체험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점 때문에 이 대회에 참가시켰다고 한다. 금색 상패를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몹시 기뻐했다.

"아빠, 이게 진짜 금이야?"
"글세..."
"이게 진짜 금이다고 했다면 내가 노래를 더 잘 불렀을텐데......"
"앞으로 열심히 노래해봐. 이것보다 엄청나게 더 큰 진짜 금도 받을 수 있어."
"알았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14. 06:27

어젯밤 늦게 잠 들었다. 아침 10경에 일어나니 아내가 사라졌다. 

혹시 욕실에?
욕실문 틈사이로 전등빛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아내가 창문을 활짝 열고 커피를 자주 마시는 발코니로 가보았다.
창문이 닫혀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보통 다음날 아침 어디를 가면 그 전날 알려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를 않았다.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아내로부터 문자쪽지가 왔다.
어디를 가야 하는 데 웹지도에 위치를 알아서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한참 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피아노 수업에 있어."
"방학이잖아."
"이탈리아에서 피아노 교수가 와서 교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지인하고 우리 집에 갈테니 집안 정리 좀 하고, 점심밥도 해놓아!"
"소식없이 나가더니 온만 것을 다 시키네."

먼저 바쁘게 집안 정리를 해놓고 쌀을 씻고 전기밥솥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바쁜 시간에 왜 그리 전화가 자주오는지......
그중 하나가 지인으로부터 왔다.

"야! 내가 바빠서 부탁한 것을 알아보지 못했어. 조금 후 내가 전화해줄게."

손님맞이로 집안 복도 거울을 닦고 있던 딸아이가 이 전화를 들었다.

"아빠, '야!'라고 하면 안되잖아."
"미안해~~~~~"
"아빠, 나한테 '미안해'라고 하지 말고, 아빠 친구에게 직접 '미안해'라고 말해야 되잖아!"
"알았어."

▲ 아빠에게 한 수 가르침을 서슴치 않는 요가일래 [요가일래의 한국 노래를 듣고 싶은 분은 여기로]
 

9살 딸아이의 지적을 듣고나니 속으로 뜨끔했다.
아무리 경황없지만 함부로 "야!"라고 말하지 말아야겠다.
또한 제 3자가 아니라, 내 말을 들은 당사자에게 직접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딸에게 "미안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가르쳐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야 딸아이의 또 다른 가르침이 없었을텐데 말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7. 07:17

유럽 리투아니아 초등학교는 벌써부터 여름방학(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이다. 한국 학생들이 부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긴 대신에 겨울방학은 없다. 물론 성탄절, 2월 초순, 부활절을 기해 1-2주일 학교에 가지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친 딸아이는 며칠 사이에 방학을 만끽하고 있었다.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난다. 종종 심심하다고 졸라댄다. 

"책 좀 읽지?"
"읽을 책이 없어."
"그럼 도서관에 가서 빌리면 되잖아."
"알았어."

이렇게 어제 딸아이는 자신의 여권을 챙겨서 부모와 함께 인근에 있는 시민도서관을 다녀왔다. 요즘 같은 전자책과 인터넷이 활성된 시대에 과연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리는 아이들이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면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동안이지만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여럿이 보였다. 
 

한 학생에게 최대 다섯 권을 빌려준다. 여섯 권을 선택한 딸아이는 한 권을 포기해야 했다. 


빌리는 책 각각에 자신의 사인을 했다. 딸아이의 사인은 한글로 쓴 "요가"이다. 


이렇게 다섯 권을 책을 1개월 동안 빌렸다. 전화으로 두 번은 연기할 수 있다. 통지없이 연체하면 하루마다 1센트(45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제 책 다섯 권이 있는 한 심심하다고는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책 한 권 다 읽고 독후감 쓰고, 엄마로부터 약간의 용돈도 받을 수 있으니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24. 05:21


노래하는 요가일래(생후 2년 8개월)

노래하는 요가일래(생후 6년 3개월)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음악학교를 다닌다. 전공은 노래이다. 한국 누리꾼들에게 요가일래가 부를만한 한국 동요을 지난해 3월 초에 부탁했다. (오른쪽 사진: 노래 선생님과 요가일래) 

 * 관련글: 딸에게 한국노래를 부탁한 선생님


아빠가 한국인임을 알고 있는 음악학교 노래 선생님이 요가일래가 좋은 기회에 한국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원했다. 누리꾼들이 여러 노래를 추천해 준 것 중에 동요 "노을"을 선택했다. 독자들 중 그 후 진행 상황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종종 딸아이에게 물었다.

"네 노래 선생님이 한국 동요 안 가르쳐줘?"
"응."
"그럼, 언제 가르쳐줄까?"
"나도 몰라."


이렇게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어제 드디어 요가일래가 한국 동요 "노을"을 불렀다. 음이 높다고 생각해 선생님이 한 단계를 낮추었다. 그 동안 리투아니아어로만 노래를 부르던 요가일래를 응원한 모든 독자들에게 이 노래를 전한다.

리투아니아인 노래 선생님이 지도하고, 리투아니아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의 한국 동요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 아래 동영상을 소개한다. 

 

참고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지방이 유럽의 지리적 중앙이라는데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억지를 부려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가 연구를 토대로 발표한 것이다. 어제 딸아이가 노래한 장소는 빌뉴스의 옛 시청 건물(로투쉐)이다. 권위있는 문화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라서 유럽에 한류를 전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노래는 재미로 하고 가수는 안되겠다는 요가일래이지만 어제 앙코르 박수까지 받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너 앙코르 박수 엄청 받았을 때 한국 노래 한 곡 더 하지."
"그러게. 산토끼 산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불렀으면 다 웃었을 거야." 
  

 
* 관련글: 딸에게 한국노래를 부탁한 선생님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21. 05:44

시력보호 차원으로 초등학교 3학년생 딸아이에게 컴퓨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한 지 벌써 1여년이 다 되어간다. 한때는 열심히 페이스북에 사진도 올리고 했다. 그 사진 중 하나가 최근 딸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악성댓글 때문이다. 

최근 밖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자 딸아이가 있었던 일을 말했다.

"아빠, 친구가 내 사진에 아주 나쁜 댓글을 달았어."
"뭐라고?"
"똥을 많이 싸서 네 옷이 검게 되었다."
"그래. 좋으네  "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딸아이는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리고 한 마디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내가 아빠 딸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딸아이는 친구의 기분 나쁜 댓글에 아빠가 화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내기는 커녕 "좋으네"라는 말에 그만 아빠에게 배신감을 순간적으로 느끼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조금 후 딸아이의 감정이 누그러진 듯해서 방문을 열고 말했다.

"나쁜 댓글에 네가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하려고 그렇게 말한 거야."
"그래도 나는 아빠 딸이니까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잖아!" 

블로그나 인터넷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 악성댓글이다. 물론 좋은 댓글, 기분 좋게 하는 댓글만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가 나쁜 말하면 들어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러면 기분 나쁠 일도 없어."
"아빠는 그게 쉽다고 생각해?"
"힘들지만 자꾸 노력해야지."
"누가 맛이 없는 음식을 주면 네가 안 먹지?"
"맞아. 안 먹어."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18. 05:54

밤 10시경이면 초등학교 딸아이 요가일래가 잠을 잘 시간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잠자기 전 아직도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준다. 어젯 저녁은 여러 가지 일로 몹시 바빴다. 밤 10시가 되자 어김 없이 딸아이는 내 방으로 왔다.

"나를 사랑하는 아빠!"
"왜?"
"책 읽어줄래?"

바쁘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아빠"라는 말이 세상 만사를 제쳐 놓게 했다.

"무슨 책을 읽어줄래?"
"네가 선택해. 자주 읽지 않은 책을 선택해."
"홍길동 이야기 아니면 엄지 공주?"
"쪽수가 적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 바쁜 아빠에게는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엄지 공주, 내일은 홍길동 이야기. 알았지?"

이렇게 동화책을 선택하고 딸아이 침대로 갔다.

"아빠, 그런데 나 인형하고 안잘래."
"왜?"
"그러니까 내가 꿈을 꾸었는데 인형도 말을 할 수 있어."
"인형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
"그럼 있지."

딸아이는 인형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례 1
"옛날 시골에 갈 때 내가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을 함께 나란히 앉아 있게 해주었다. 일주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보니 남자 인형은 누워 있고, 여자 인형은 조금 서서 있었어." 

사례 2
"발코니에 인형이 창문 밖을 보게 해놓았어. 내가 부엌에 가서 음료수를 가져왔는데 인형이 밖을 보지 않고 안쪽으로 보고 있었어."

"그럼, 인형이 말한다고 해서 왜 인형을 안고 안자려고 해?"
"인형이 말을 하니까 시끄러워 내가 잘 수 없잖아."
"인형은 참 신기하다. 네가 잘 때 말하고, 네가 안볼 때 움직이고...."
"정말 그러네."

인형이 유정물(有情物)이라고 믿고 있는 딸아이가 너무 순진해보였지만, 굳이 무정물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싶지 않았다. 엄지 공지 동화책을 다 읽었을 때 딸아이는 인형 없이 벌써 고히 잠들어 있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4. 08:27

이제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어딜 때부터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다. 종종 우리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몇 해전 요가일래가 러시아어 유치원을 졸업하던 날이었다. 

졸업식은 문화행사이다. 남아있는 유치원생들이 재롱을 부리고 떠나가는 유치원생들이 그 동안 배운 노래와 춤을 공연한다. 마지막으로 20여명이 송별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왔다. 다른 아이들은 별다른 감정없이 침착하게 노래를 하는데 앞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요가일래는 눈물을 주럭주럭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요즈음 주말을 몹시 기다린다. 얼마전부터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들리니" 드라마를 본다. 초기에 요가일래와 함께 보왔다. 눈물 흘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아빠하고 같이 보자."
"아빠, 나 안 볼래."
"왜?"
"눈물 나오게 해서 안 볼래."

가끔 길거리에 죽어 있는 새들을 보면 꼭 같이 묻어주자고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딸아이에게 주문처럼 하는 말이 있다.

"태어난 것은 모두 때가 되면 죽는다. 죽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 

가끔 놀이 삼아 딸아이와 문장잇기 놀이를 한다.

"태어나면"
"죽는다."
"죽으면"
"태어난다."

생사거래에 대한 무덤덤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며칠 전 요가일래는 학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친구가 자기 햄스터가 죽었다고 말했는데 내가 깔깔 웃었어. 그러니까 친구가 왜 웃느냐고 삐지듯이 물었어. 그래서 내가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다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렇듯이 친구가 알았다고 말했어."

이렇게 명랑하게 말을 한 후 요가일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도 봤는데 그 햄스터가 정말 귀여웠어. 정말 마음이 아파."
"친구한테는 웃었고, 지금은 울고 있네."
"친구가 슬퍼하지 말라고 웃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나도 슬퍼."
"슬퍼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기뻐해도 너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좋아."
"알아.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
"그러니 마음의 힘을 길러야 돼."
"노력해볼 게."

요가일래와 대화하는 동안 옛날 어머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님은 이렇게 물어셨다.

"너 시골 할머니한테 놀려가지 않을래?"
"좋지."


이렇게 어머님과 같이 버스를 타고 기대감과 함께 시골로 향했다. 그런데 시골이 가까워지자
어머님 왈: "가면 할머님은 안 계실 거야."

대학생인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어머님은 장례에 가자라는 말 대신 놀려가자고 말하셨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이렇게 어머님은 죽음 앞에 듬듬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태어난 것은 죽는다."라라고 요가일래에게 말했다.
"하지만 언제 죽을 지 아무도 모르잖아!"라고 답했다.
"그렇지. 모르니까 열심히 살아야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5. 2. 14:55

지난주 금요일 딸아이가 다니는 음악학교에서 노래 경연대회가 열렸다. 그 동안 약간의 감기 증세, 부활절 방학 등으로 제대로 노래 지도를 받지 못했다.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딸아이에게 이왕 등록했으니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달랬다.

늘 그렇듯이 기록을 위해 이날 경연 대회장인 음악학교로 갔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있는 음악학교들에서 노래 전공 학생들과 앙상블들이 참가했다.

200석 규모의 강당에서 열렸다. 지금껏 연주회 등에 관람했을 때에는 늘 무대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마이크가 없었다. 딸아이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큰 강당에 왜 오늘은 마이크가 없지?"라고 옆에 있던 아내에게 물었다.
"민요 경연 대회에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라고 답했다.


 이날 딸아이는 리투아니아 민요 두 곡을 불렀다. 리투아니아어이지만 딸아이의 동영상을 소개한다. 결과는? 2등을 했다.



"오늘은 2등 했나? 축하해. 기분이 어때?"
"괜찮아. 벌써 1등을 많이 했잖아. 2등 할 수도 있지 뭐."
"그래. 맞아."

이날 식구들은 케익과 맥주로 소박한 축하연을 베풀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