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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4 리투아니아 결혼선물은 편지봉투 속에
  2. 2008.07.14 치맛바람 일으키며 신나는 포르투갈 민속춤 2
  3. 2008.07.13 잎과 버찌로 장식된 마네킹 2
  4. 2008.07.13 리투아니아 '처녀파티'에서 산 물건 5
  5. 2008.07.12 수학 수수께끼가 된 쾨니히스베르크 7개 다리 현모습
  6. 2008.07.12 흑백 의상의 경쾌한 루마니아 민속춤
  7. 2008.07.11 칸트 무덤은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에 4
  8. 2008.07.11 달러 弗를 닮은 러시아의 연어요리
  9. 2008.07.10 맥주병따개가 곧 사라지지 않을까 6
  10. 2008.07.10 결혼 여부 구별해주는 여자들의 성
  11. 2008.07.10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네리스 강변
  12. 2008.07.09 오자미로 제기 차는 리투아니아 여중생들
  13. 2008.07.08 칼리닌그라드엔 러시아 경찰이 없더라
  14. 2008.07.08 한국의 고유가 대책 리투아니아에 소개
  15. 2008.07.08 규제를 비웃는 도로 위 술병
  16. 2008.07.07 소나기가 내리는 빌뉴스의 거리 풍경
  17. 2008.07.07 날개 달고 벽 오르는 젖소 3
  18. 2008.07.06 칼리닌그라드의 아름다운 화분나무 2
  19. 2008.07.05 21C 세계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8
  20. 2008.07.04 리투아니아 화물연대의 점잖은 시위 2
  21. 2008.07.03 리투아니아 십대들의 자전거 높이뛰기 묘기 2
  22. 2008.07.03 '시사IN'에 소개된 내 블로그 기사
  23. 2008.07.03 길 위의 달콤한 사랑을 짓밟을 뻔 2
  24. 2008.07.03 줄기가 16개인 희귀한 보리수나무
  25. 2008.07.02 리투아니아 미녀들의 춤은 비 속에서도 구경꾼을 모은다 3
  26. 2008.07.01 모래언덕과 백조, 한 폭의 수채화 1
  27. 2008.06.30 칼리닌그라드에 한국 반찬 인기짱 5
  28. 2008.06.29 10헥타르 숲을 앗아간 가마우지들
  29. 2008.06.29 유럽에서 처음 본 구렁이
  30. 2008.06.28 타다 남은 나무 숲, 여름 속 겨울 연상
생활얘기2008. 7. 14. 08:05

 
일전에 리투아니아에 1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바로 아내의 조카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익히 알다시피 유럽에선 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만이 결혼 식장과 피로연에 참가한다. 가까운 친척과 친한 친구들이 초대받고, 보통 규모는 30-100명이다.

결혼선물은 눈에 띄게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 과거엔 주로 주방기구, 이불천 등 신혼부부가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들을 선물했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 물건 선물 대신 축의금 선물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처조카의 청첩장처럼 아예 청첩장에 "추신: 선물이 편지봉투에 들어갈 수 있으면, 기쁠 것입니다"라는 문귀가 기재되어 있다. 축의금을 받은 사람이나 축의금 기록부가 없는 것이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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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조카의 결혼식 청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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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신: 선물이 편지봉투에 들어갈 수 있으면, 기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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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가 조카에게 선물을 편지봉투 속에 넣어 건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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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당 결혼식을 막 마친 데이비다스와 바이다가 사진사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7. 1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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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발틱 2008” 국제 민속 축제가 열렸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짓궂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이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쾌청한 날씨 덕분에 다양한 민속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포르투갈 여인들이 빙빙 돌아가며 일으킨 치맛바람에 캠코더마저 흔들렸다.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열정적인 포루투갈 사람들의 면모를 여실히 직접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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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는 유럽대륙의 지리적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이 리투아니아의 지리적 중심에 있는 도시가 바로 '케다이네이'이다. 이곳에선 매년 7월 오이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현장에 전시된 마네킹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마네킹은 단풍나무잎과 버찌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여름철 패션으로 제격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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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3. 06:05

어제 토요일 공원에서 친구와 맥주를 한 잔 하고 있는 데 같은 옷을 입은 아가씨 여섯 명이 다가와 물건을 사라고 했다. 사연인즉 한 주일 후 결혼을 하는 예비신부가 이날 물건을 많이 팔아야 행복한 결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구니에 있는 물건을 봐서는 안 되고 먼저 값을 치러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결혼하기 일주일전 여자 친구들끼리 모여 이른바 '처녀파티', 남자 친구들끼리 모여 '총각파티'를 연다. 행복한 결혼을 축하해달라고 하는 데 거부하기가 어색했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값을 치르고 받은 물건은 다름 아닌 예부신부가 직접 만든 과자였다. 이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니 축하하는 마음도 한결 더 즐거웠다. 행복한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바구니를 든 아가씨가 예비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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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리투아니아 미녀들, 연인을 원수로?
               마지막 미혼 즐거움을 만끽하는 처녀파티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2. 14:24

튜튼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도시는 철학자 칸트가 평생을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를 유명케 한 또 다른 것은 바로 7개 다리 건너기 문제이다.

두 개의 섬을 형성하며 프레겔 강이 쾨니히스베르크 중심가를 흐르고 있다. 이 섬과 강변을 연결하는 7개의 다리가 있다. 18세기 이 7개의 다리들을 한 번만 건너면서 처음 시작한 위치로 돌아오는 길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흔히 이를 한붓그리기 문제라고 한다. 1736년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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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어, 지금의 다리 모습은 그 전의 다리와 똑 같을 수 는 없지만, 그래도 18세기 사람들을 고민하게 한 7개  다리 건너기 문제를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지난 6월 하순 방문했을 때 그 다리들의 흔적을 찾아다녀보았다. 3과 4번 다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에서 내려다본 7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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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7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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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7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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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내려다본 6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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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본 6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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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6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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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내려다본 5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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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본 5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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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본 2번 다리 (원래 다리는 부서지고 새로운 고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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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본 1번 다리 (원래 다리는 부서지고 새로운 고가다리)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7. 12. 05:59

최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발틱 2008” 국제 민속 축제가 열렸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짓궂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이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쾌청한 날씨 덕분에 다양한 민속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북동유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에서 루마니아 등 동남유럽 나라들의 민속춤을 접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검은 색과 하얀 색의 조화로운 의상으로, 경쾌한 춤으로 루마니아인들은 많은 빌뉴스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1. 15:05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철학자 칸트의 무덤은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칸트의 무덤을 직접 가본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 아닐 것이다. 그의 무덤은 유럽연합 국가들에 둘러싸인 고립된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위치해 있다.

원래 이 도시는 튜턴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철학자 칸트(1724-1804)가 평생을 살았던 이 도시는 안타깝게도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었다.

지난 6월 하순 칸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민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다리 위를 지나서 그의 무덤을 찾았다. 그의 무덤은 루터교 대성당 건물 한 쪽 벽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 독일인 관광객들이 비싼 러시아 비자 비용을 내고 자국 출신 세계적인 철학자 칸트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는 짧거나 긴 시간 속에 끝없이 변화하는 생물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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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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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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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은 대성당 한 쪽 벽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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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산책 나올 때 사람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바로 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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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쪽에서 바라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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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공부하고 가르쳤던 쾨니히스베르크 (지금은 칸트) 대학교 교정에 있는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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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공부하고 가르쳤던 쾨니히스베르크 (지금은 칸트) 대학교 교정에 있는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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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동상 곁에 산책 나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할머니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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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 아니다의 뜻인 한자 (불)은 달러($)의 한자 표기이기도 하다. 일전에 러시아의 고립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방문해 한 대형매장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연어요리를 주문했다.

가져온 연어요리의 문양이 눈길을 끌었다. 그 문양을 보니 달러 표시인 弗을 꼭 닮았다. 물론 요리사는 弗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모양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기가 발동해 왜 그 많은 문양 중 弗자 비슷하게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일어났다. 혹시 팁을 듬뿍 주라는 소리일까...... 호기심이 발동해 결국 카메라를 꺼내 이 언어요리를 촬영했다.

그 순간 계산대에 서 있던 지배인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사진촬영 금지라고 일침을 가했다. 혹시 지배인에게 弗를 주면 더 찍을 수 있었을까...... 자 앞에 사람 이 더해졌더라면 부처의 자비로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장난스러운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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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0. 23:37

대학시절 병따개 없이 맥주를 마신 후 다음 병은 늘 친구들이 숟가락이나 라이터 혹은 젓가락으로 따주던 때가 있었다. 혼자 마실 때는 문턱이나 창틀 등 딱딱한 물체를 의지해 내려치면서 병마개를 따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맥주만 파는 데 급급하지 말고, 손쉽게 병마개를 열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리병 맥주보다 캔 맥주를 선호했다.

세월따라 맥주병마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난 칼리닌그라드에서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를 한 잔하려고 가게에 갔다. 수 많은 종류의 맥주 중 가장 눈길을 끈 맥주는 바로 편하게 병마개를 딸 수 있는 맥주였다. 손잡이를 잡고 위로 가볍게 당기니 쉽게 마개가 따졌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서 이러다가는 맥주병따개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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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7. 10. 15:24

정말 마음에 드는 어여쁜 여자를 알게 되어 어느 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잔을 기우리며 통성명을 하자 이내 남자의 안색이 바뀐다. 왜일까? 이 여자의 성(姓)이 “-aitė"로 끝나지 않고, ”-ienė“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투아니아 여자들의 성에 붙은 접미사를 통해 상대방이 유부녀인지 처녀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접미사 ”-aitė, -ūtė, -iutė 또는 -ytė"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의 성에 붙고, “-ienė”는 결혼한 여자의 성에 붙는다. 남편의 성이 Kazlauskas(카즐라우스카스)이면, 아내의 성은 Kazlauskienė(카즐라우스키에네), 딸의 성은 Kazlauskytė(카즐라우스키테)이다. 그러니 "-ienė"라는 성으로 보아서 남의 아내인 여자 혹은 이혼한 여자가 총각을 유혹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설사 이혼을 하더라도 여자는 일반적으로 전 남편의 성을 그대로 간직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녀로 인해 자녀의 성과 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전 남편의 성을 계속 유지한다. 하지만 이혼할 때 법원이 결혼 전 자신의 성과 전 남편의 성 중 택일할 수는 기회를 준다. 공식적인 결혼식을 신청할 때 신부가 자신의 결혼 후 성을 결정하도록 한다.

리투아니아어는 여자의 성(姓)이 결혼 상태를 나타내주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언어로 알려져 있다. 일부 여자들은 이처럼 자신의 성에 결혼 유무를 강제로 밝히는 것은 사생활보호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주장에 회의적이고, 이를 리투아니아의 아름다운 오랜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리투아니아 법은 결혼하는 여자에게 처녀 때 자신의 성을 계속 보존하고,  또한 미혼인 여자가 예외적인 경우 자신의 성에 “-ienė"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후자는 나이가 많이 들어 성에서 ‘결혼도 못한 여자’라고 노출되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여자들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한편 처녀 때의 성과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생기는 성을 함께 사용하는 여자들이 요즘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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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속의 신부는 아버지 성과 남편의 성 둘 다 선택했다.

* 관련글: 프리미어 리그 축구선수의 축구공 묘기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7. 10. 06:25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를 가로지르는 강이 하나 있다. 이 강 이름은 네리스. 녹색다리 부근 동쪽과 서쪽에 각각 위치한 강변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봄날 사람의 손길이 닿은 후 이들은 땅에 품은 자신들의 사랑을 봄부터 가을까지 세상에 드러내놓고 서로 확인하고 있다. 먼저 서쪽 강변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Aš tave myliu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하자 동쪽 강변이 "Ir aš tave ♥ (저도 사랑해요)"라고 답한다.

강변 글귀와 어울러져 낚시하러 가는 사람이 마치 물고기가 아니라 사랑을 낚으러 가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빌뉴스의 많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다. 무정한 강변도 서로 사랑하는 데 사람간 사랑은 구지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 배경 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Andrius Mamontovas)의 노래 "사랑은 자유로워"(Meilė laisva)의 앞부분.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면, 아래 동영상을 보세요.)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7. 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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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중심가를 산책하면서 오자미로 제기 차는 여중생들을 만났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동네 친구들과 제기 차던 때가 문득 생각나서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리투아니아 오자미 안에는 보통 메밀껍질을 넣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사라졌을 것 같은 제기 차기 놀이가 이곳 리투아니아에서 그 비슷한 놀이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다음에 한국 가면 제기를 사서 이렇게 노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7. 8. 13:36

러시아의 고립영토인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와 인접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칼리닌그라드 가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10년 째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칼리닌그라드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드디어 지난 6월 23일에서 26일까지 칼리닌그라드를 다녀왔다.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러시아 여행에 관한 많은 글을 읽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관광비자로 입국해서 길거리에서 촬영하다가 경찰의 제재를 여러 차례 받았다는 글이었다. 또한 호주머니용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경우 세관에 꼭 신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글도 있었다. 중급 DSLR 카메라와 6mm 업무용 캠코더를 가지고 가려던 차에 걱정이 몹시 앞섰다.

현지인 친구에게 사정을 물어보니 칼리닌그라드 시내엔 경찰이 없고, 치안도 안전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7시간이 걸렸다. 칼리닌그라드는 평화로운 초원으로 첫 눈에 들어왔다. 칼리닌그라드 도심까지 가는 데 두 차례 함정단속을 하는 교통경찰을 보았다. 이들은 가로수와 숲이 울창한 곳에서 단속하고 있었다. 다행히 앞에서 오는 차들이 교통경찰이 있음을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알려주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도심엔 치안과 질서 확립을 위해 도보 순찰하는 경찰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칼리닌그라드 도심에서 친구의 말처럼 3박 4일 동안 달리는 차 속의 교통경찰을 제외하고는 경찰을 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 중 마주친 러시아 경찰들의 다양한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촬영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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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http://www.englishrussia.com/?p=383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7. 8.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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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한국 정부가 '초고유가 대응 에너지 절약대책'을 확정해 발표한 내용이 리투아니아 최대 인터넷뉴스 포털사이트에 소개되었다.

오는 7월 15일부터 1만5천대에 이르는 관용차가 홀짝제를 실시하고, 800여개 공공기관에서 여름철 건물 적정온도를 1도 높이며, 관용차량 절반을 향후 경차·하이브리드차로 바꾸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국의 이와 같은 에너지 절약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 모범적인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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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8. 00:22

최근 리투아니아 빌뉴스 중심가에 위치한 빙기스 공원을 산책하다가 도로 한 가운데 놓인 술병을 보았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거리, 공원 등 옥외 공공 장소에서 술을 일체 마시지 못하게 되어 있다. 정복이나 사복 경찰이 수시로 순찰을 돈다.

술을 마시다가 처음 적발된 사람들은 30-50리타스 (한화로 1만5천원-2만5천원) 벌금을 내야 한다. 두 번째 적발되면 50-100리타스 (한화로 2만5천원-5만원)을 내야 한다. 이 도로 위 술병은 이러한 규제를 비웃는 듯 했다.

한편 현지 규제를 잘 모르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갈증 해소를 위해 빌뉴스 공공 장소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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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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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빌뉴스에도 종종 소나기가 내린다. 하얀 실구름 하늘에 어느 새 먹구름이 나타나고, 엄청난 비를 뿌리고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꼭 하늘이 화가 나서 지상을 향해 '너희들 맛 좀 봐!"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렇게 날씨 좋다고 우산 없이 밖에서 놀다가 비를 흠뻑 맞는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난 7월 5일도 이런 경우를 맞은 하루였다. 다행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차 가까이에 있어 큰 봉변을 피했다. 차창 넘어  바라본 소나기 내리는 빌뉴스 거리 풍경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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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쏟아지는 비와 튀기는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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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쏟아지는 비로 앞으로 거의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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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수도 입구엔 몰려든 빗물로 순식간에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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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 처마 밑에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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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할까 말까 망서리다 결국 이 차는 후진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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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퀴는 계곡물의 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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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는 어느 새 수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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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 하늘에 비가 쏟아진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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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빌뉴스 중심가에 위치한 리투아니아 교사회관 뜰에 가보았다. 이 뜰엔 풀을 뜯어 먹는 젖소가 있다. 아이들이 이 젖소 등에 타는 것을 즐겨한다. 어제는 또 다른 젖소를 보았다. 이 젖소는 날개를 달고 벽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 젖소를 보면서 현재 한국의 최대 화두인 광우병 쇠고기와 촛불 시위가 떠올랐다. 마치 미국 도살업자를 피해 하늘로 도망치고자 하는 미국 소를 형상화시킨 것 같았다. 아무튼 젖소에 날개를 달아준 예술가의 상상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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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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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국가들에 둘러싸여 섬이 되어버린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고립 영토이다.

원래 이 도시는 튜튼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철학자 칸트가 평생을 살았던 이 도시는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었다.

지난 6월말 이 도시를 방문했다. 시내 중심가를 산책하면서 만난 화분나무가 즐비한 낡은 소련시대 건물에 익숙해진 눈에 퍽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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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 공원, 멀리서 보면 꽃나무처럼 보이는 꽃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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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 공원, 멀리서 보면 꽃나무처럼 보이는 꽃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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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 공원, 멀리서 보면 꽃나무처럼 보이는 꽃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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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을 사진 찍어라고 하는 러시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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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의 어머니"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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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청년이 꽃화분 앞 분수대에서 포장지를 깔아놓고 자신의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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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에 위치한 러시아정교 성당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 7. 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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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평소 존경하던 분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7년 한국에서 이 분을 인터뷰한 기사를 소개해 이 분의 뜻이 세상에 좀 더 알려주기를 바라면서 올려봅니다. 늘 미소를 띤 이 분은 오래 오래 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특별인터뷰 이종영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 

이종영 박사는 1932년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하여 청구대학을 나와 경북대학교, 하와이대학교, 하바드대학교 대학원을 수학하고, 미국 센튜리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일본 코베대학교에서 상학박사를 취득하였다. 18년간 유엔 식량농업기구에서 근무하였고, 경북대학교 교수.경영대학원장, 한국 마케팅 학회장,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중국 남경경제대학, 연변대학 명예교수, 재단법인 한국 산업경제개발 이사장, 그리고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중국상업정책사연구", "마케팅과 후진국의 경제발전", "기업윤리 - 이론과 실제", "마케팅의 과제와 전망", "Marketing Improvement in Developing Countries" 등이 있다.
편집자 주


◎ 원불교《정전》이 1988년 에스페란토판으로 번역되고, 아울러《대종경》이 번역되어 현재 마지막 교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원불교 좌산 종법사는 지난 95년 한국 종교인으로서는 최초로 종교 NGOs 초청으로 유엔에서 「세계공동체 건설과 종교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시면서 세계 일가(家)를 이루기 위해 에스페란토를 세계 공통어로 설정하자고 주장하셨습니다. 그 동안 《원광》은 이러한 중요한 에스페란토를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만, 오늘 이렇게 세계 에스페란토 운동을 이끌어 가시는 회장을 모시고 에스페란토 운동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먼저 에스페란토는 어떠한 언어이며, 어떠한 배경 속에 태어났으며,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원불교의 좌산 종법사님을 2년전에 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친근감 속에 한국과 세계의 당면 과제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세계 공통어」에 대한 말씀은 기억에 생생합니다.
에스페란토의 탄생은 기본적으로 세계 인류가 하나의 형제·자매라는 것을 전제하기에 아마 원불교가 인류에 공헌하고자 하는 이상과 통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 좋은 만남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 생각에 인간들이 상호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하고, 건설중이던 바벨 탑이 무너진 이후부터 인류는 하나의 공통어를 갈망해 왔다고 봅니다.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Zamenhof) 박사가 살았던 폴란드의 비얄리스토크는 유대인·폴란드인·독일인·러시아인 등 다국적·다인종 지역으로 언제나 「언어」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언어로 야기되는 각종 분쟁을 지켜보면서 결국 에스페란토를 창안하게 되는데, 몇 가지 추구하는 이상이 있습니다. 곧「1민족 2언어」주의입니다.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사용하고 외국인과는 공통어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 인류가 지구촌 공동체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 그 공통어의 필요성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에 대응하는 반면, 언어 강대국으로 부터 약소민족의 언어권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유럽연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9개국을 회원으로 가진 유럽연합이 회의를 하는데 33명의 통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금년 1월부터 회원국이 15개국으로 늘어났고 공통어 또한 11개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언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의 공통어를 불어·영어·독일어·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5개 국어로 제한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초, 불란서어는 외교어, 독일어는 의학용어, 영어는 상업용어로 많은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2차대전 이 후에는 세계의 양극화에 따라 자유진영은 미국의 영어가, 공산진영은 러시아어가 강요되다시피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소련이 붕괴되자 영어의 영향력이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대국의 언어가 소수의 약소민족어 (한국·일본·이태리 등 언어적으로 약소국)에 대한 태도입니다. 언어는 민족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민족어를 상실하면 민족 그 자체가 위협받습니다. 일제시대에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언어말살의 뼈아픈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에스페란토는「세계화」시대에 국제적인 언어의 교량 (의사소통, 외국어 학습, 외국어 번역, 출판물)역할과 민족의 융화를 돕고 약소민족의 언어권을 보호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에스페란토에 내재해 있는 사상은 인류인(人類人)주의를 목적으로 탄생된 평화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인류가 사랑의 기초위에 평등·중립·정의·우애를 촉진하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통해 교류하자는 것입니다.

◎ 오늘날 가계살림을 휘청거리게 하는 사교육비중 많은 부분이 외국어 공부, 특히 영어 과외공부에 들어갑니다. 요즈음 취직을 위한 어학공부로 대학생들 휴학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으며, 많은 수가 외국에 가서 어학연수를 받는다고까지 합니다. 이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필요한 어학 능력을 습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며, 특히 세계화시대에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금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공통어로 지향하는 에스페란토는 이러한 현실적 과제를 극복하는데 과연 얼마나 쉬우며, 인간이 만든 인공어로서 자연어에 비해 어느 정도 표현의 한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세계 공통어」라는 표현에는 사실 우려점도 없지 않습니다. 각종 각색의 인종과 풍속이 총 집합된 지구촌 인류가 하나의 언어로써 대화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논의되는 에스페란토가 세계 공통어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국제 공통어는 다음의 몇 가지가 전제된다고 봅니다.
첫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무엇보다 중립어 (中立語)라야 합니다. 철저히「언어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듣지 않아야 합니다. 강대국의 언어적 침투는 곧 언어적 약소국가의 문화 파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특정 민족어는 국제 공통어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중립적인 국제 공통어는 민족어 (母國語)의「보조어」라야 합니다. 민족의 융화를 돕는 민족 나름대로의 언어를 유지·발전시키면서 대외적인 통상이나 교류에서 국제 공통어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1민족 2언어주의를 내세운 것입니다.
둘째, 문법이 간결하고 규칙적이며 발음이 쉬워야 합니다. 곧 배워서 사용하기에 편리해야 합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에 설명을 덧붙인다면, 「자연어」라는 것은 말이 생긴 이후에 체계화 시킨 것이기 때문에 문법이 매우 복잡한 반면, 에스페란토는 모든 자연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취하여 만든 「인공어」이기에 문법상 배우고 사용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즉 1음 1자, 1자 1음 주의를 원칙으로 변음과 묵음이 없으며,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5모음제(A·E·I·O·U) 언어입니다.
셋째, 언어적 기능이 충분해야 합니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이나 표현을 어려움없이 나타낼 수 있고, 철학·문학·예술·경제·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서 충분히 표현 가능한 언어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에스페란토가 이 세가지를 갖추고 있느냐의 질문을 하겠지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 박사가 1987년, 창안할 당시「유럽」의 국제적 여건을 바탕하였지만 지금은 거듭 발전하여 동양적 언어의 요소 (예, 굴절어 등)를 내포하고 있기에 이 세가지 요건을 구비한 언어라고 확신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특정 언어에 편중하지 않은 인공어이기에 중립적이고, 문법이 전문 16개조로 되어 규칙적이고 간결하며, 단어를 합성할 수 있고 표현이 자연어와 가까워 배우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 실예로 1984∼5년, 이탈리아 Rocca 소학교의 9∼11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학습시킨 불란서어와 에스페란토의 결과인데, 160시간의 학습 후 어학능력이 불란서어는 35%, 에스페란토는 80%였다는 것입니다.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종교경전이나 문학 작품도 엄청납니다. 원작 문학작품만도 6,000여종이며, 15개국의 문학선집이 번역 되었습니다. 또한《기독교성경》(1926년 번역),《코란》(1968년), 이집트의《파피루스》, 중국의 사서(四書)등 동·서양의 수 많은 경서가 번역되었습니다.《원불교교전》도 번역이 끝나 최종 검토중에 있다는 희소식 또한 에스페란토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에스페란토의 언어적 한계를 말씀하셨는데, 모든 언어가 생명력을 갖고 변화·발전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다만 전 세계에서 외국어를 번역하는 자동번역기 개발 프로그램에 관련시켜 설명 드리겠습니다. 예컨대 자동번역기에서 6개 국어를 상호 번역하려면 30개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에스페란토를「교량어」로 사용할 경우에는 12개의 번역 프로그램 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언어 분산 번역 프로그램. DLT : Distribuita Lingvo-Tradukado).
에스페란토는 각 나라의 민족어를 번역하는데 아주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 민족어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여 공통점을 찾은 언어이기에 교량어로서 매우 훌륭하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조금더 설명하죠.《원불교 교전》을 영어로 재 번역하여 출판직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수많은 입장이 없을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런데 이《원불교 교전》을 먼저 에스페란토로 번역하여 영어·독일어·러시아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하면 보다 원전에 가깝게 번역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에스페란토는 모든 민족어가 가질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여 만들어진「인공어」입니다. 약 200∼300여 종류의 민족어로 각종 출판물이 번역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에스페란토는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는데 어떤 언어보다 과학적이고 용이하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그리고 국내에 어느 정도로 보급되어 있으며, 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까?
◎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때마다 110년이 된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어떻게 잘 소개할까 걱정을 했었는데 또 이 질문을 받게 되었군요.
에스페란토는 1887년, 자멘호프 박사에 의해 창안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1908년 세계 에스페란토 결성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120여국 약 2백만∼3백만명 정도의 사용자가 있습니다(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원). 75개국에 대표 2천명, 60여개국에 국가 지부, 50여개국에 전문가, 200여개에 달하는 각종 신문·방송·출판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51개국에서 2천 여종의 교과서가 발행되었고, 32개국 700여개 학교에서 에스페란토를 교육하고 있으며,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엘테대학교에서는 석·박사과정을 두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약 2천 여명의 회원에 6개지부가 있으며, 청년회·대학생연합회·기독교 연맹·원불교 에스페란토회 등으로 구성·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에스페란토 보급은 처음 1900년대에 《임꺽정》을 쓴 홍명희씨로부터인데 이미 1920년대에 《감자(Batato)》, 《붉은산(Rug^a (Monto)》등을 번역하여 외국의 에스페란토지(誌)에 소개하였습니다. 장혁주의 소설《쫓겨가는 사람들(La Forplelataj Homoj)》, 이태준의 《분노(Indigno)》등 수 없는 작품이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일간지<동아일보>,<조선일보>등에서는 에스페란토 지상강좌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은 에스페란토 창안 1백주년(1887∼1987) 기념으로 이재현의 원작수필을 비롯 한국의 수필, 소설, 민화를 번역한《한국의 수필·소설 및 민화》(Koreaj Eseoj, Noveloj kaj Popolrakontoj)가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습니다.
세계에 널리 보급·발전시키고 있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사실「여론의 선도자」들입니다. 곧 그 나라나 지역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기에 역사가 지날수록 더욱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원불교에 대하여 매우 놀라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세계화」의 노력입니다. 한국에서도 어느 기성종교에 못지않게 각 방면에서 모범적인 활동을 하는 반면, 경전을 영어·에스페란토·독일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싱할리즈어 등으로 번역하여 보급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놀라고 찬사를 보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한가지 에스페란토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덧붙인다면 원불교의 세계화를 도울 수 있는 에스페란토를 「교무」양성과정(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영산원불교대학교 과정)에서 학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교양선택(제 2외국어) 과목 정도로 수강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가 점차 개방되어 공통어 사용은 사실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원불교 교무님들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하시려면 물론 영어를 익혀야 되겠지만 그 보다 훨씬 쉽고, 더욱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에스페란토를 익혔으면 합니다.

◎ 저도 여러차례 국제대회에 참관하면서 언어 장벽없이 제 가슴에 담은 모든 것을 상대방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언어가 서로 다른 수천명이 모여 통역과 번역이 없는 대회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러한 대회를 치루는데 남다른 감회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 이러한 대회는 주로 어떻게 진행됩니까?
◎ 세계대회는 에스페란토의「실용성」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큰 행사입니다. 곧 수많은 국제회의가 언어의 장벽 때문에 행사비의 약 30%∼50% 가량을 통역비로 사용하는데 전혀 통역없이 세계대회를 치른다는 기적같은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대회는 매년 7월 하순경에 약 1주일정도의 일정으로 약 60개국에서 2,000∼3,000명 정도가 참가합니다. 이 세계대회 때에는 주로 이사회, 총회, 강연회, 대학강의를 비롯, 연극, 음악 등의 전문단체 총회, 친교, 문화행사 등을 하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통역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에스페란토 세계대회는 개방화를 추구하여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도 참가하게 합니다. 대외적으로 통역없이 국제 대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죠. 유럽대회, 북미대회, 아프리카대회, 아세아대회 등의 지역대회도 매년 열리며, 한국에서도 금년은「경주」에서 열릴 예정인데, 어느 국제기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통역 없는 대회가 열릴 것입니다.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전 인류의 민족적인 차별을 없애려고 했고, 대화와 교류를 통한 진정한 우애를 존중했으며, 강대국의 특권이나 불의를 부정하고 인류가 공존하는 평화의 언어를 세상에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은 이러한 대회에서 모두에게 확인됩니다. 종교의 홍보를 위해 참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의 「오도모토」라는 종교에서는 세계대회가 열릴 때마다 참가하여 홍보를 해왔습니다. 원불교에서도 가능하다면 이러한 대회에 참가하여 홍보기회를 삼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대회는 에스페란토를 사용(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 에스페란토에는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가 추구해온 인류애, 형제애, 세계평화가 내재되어 있어 종교단체들이 쉽게 이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원불교에서도 1980년 서울 종로교당 청년회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세계 종교계에서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어떠합니까?
◎ 이 질문의 대답에 앞서 자멘호프 박사가 자란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폴란드의 비얄리스토크를 다시한번 상기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비얄리스토크는 주민의 40%가 유대인으로서 상점이나 뒷골목에서 유대어를 사용했고, 20%는 주로 노동자인 폴란드인이 폴란드어를, 25%는 주로 독일인이 독일어를, 그리고 적은 숫자인 러시아인은 관리나 군인 등 지배계급으로서 공용 표준어라는「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온갖 독재를 자행했던 곳입니다.
사실 자멘호프 박사는 에스페란토를 통해「민족간의 평화」를 갈망한 것이지「공통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의 목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인본주의자였고 적극적으로「에스페란토」라는 언어로써 그 방법을 찾았습니다.
1878년 12월 5일, 에스페란토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비얄리스토크의 부모님집에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부른 노래 가사에도 나타납니다.
「민족간 증오심이여!
없어져라. 없어져라.
이제는 인류가 한가족으로
뭉쳐야 할 그 때가 왔도다」
그러나 처음에는 에스페란토 회원들조차 공통어 에스페란토의 효율성은 인정하면서도 어떤 「사상」이나 「정신」으로 확산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자멘호프 박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 유명한 인류인주의(人類人 homaranismo)를 구체화 시키기에 이릅니다. 곧 에스페란토의 내적사상이라 할 수 있는 인류애·형제애·세계 평화를 담은「인류인주의 선언문 12개항」입니다.
이제 질문하신 자멘호프 박사의 종교에 관련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가지 근거보다 우선 인류인주의 선언문에 나타난 그의 평화적인 종교관을 소개하겠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류인주의 선언문에는 신(神)에 대한 해석부터 차이가 옵니다.
「신(神)은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한 신비로운 힘을 말하는데 그 본질은 각자가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다. ····신에 대한 나의(개인적인) 생각을, 신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밝혔으며 종교의 기본원칙에 대하여「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대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행해야 하며, 항상 당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고 했습니다.
신에 대한『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자멘호프는 무엇보다「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종교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나의 종교에 반하지 않는 한, 각 종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중립적인 방식으로 행사를 해야한다」그리고「종교의 주된 목적이 인간을 형제로 만드는데 있지만. ··· 나의 도시에 모든 사람에게 중립적인 사원(temple)을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중립적 사원에서는 각기 다른 종교나 철학적 제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다같이 느끼지만, 각기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는 위대한 힘(forto)을 서로 다같이 섬기도록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중립적인 종교사원과 의식, 그리고 표현이 다른 절대적 진리에 대하여 상호 존중하자는 자멘호프 박사의 종교적 입장은 이와같이 언제나 형제애, 평등, 세계평화 (정의)의 기초위에서 타 종교와의 대화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언제나 사랑·관용·이해의 종교 행동원칙을 정해놓고「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고 했으며「파괴는 비록 건설을 목적으로 할지라도 결코 안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세계 각 종교에 있어서 에스페란토의 영향은 첫째, 주요경전의 번역입니다. 《기독교 성경》을 비롯해 수 많은 불경과 주석서가 에스페란토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세계 천주교 에스페란토 연맹을 결성하여 천주교 주요 서적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것은 오래전부터 였고, 바티칸 에스페란토 방송이나 교황의 부활절·성탄절 메시지 등 에스페란토를 적극 보급·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바하이교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세계 공통어로 채택하기 위해 UN에 공식 요청한 종교의 하나이며, 일본의 오오모토교, 이슬람교 등 많은 종교가 에스페란토를 보급·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오오모토교는 세계대회 때마다 엄청난 교단적 참가(100명 이상)와 함께「하나의 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언어」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 종교입니다.
원불교에서도 한국 에스페란토회가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지난 《원광》창간 48돌 기념 <종교경전 및 주석서 전시회>때 각 종교경전 및 주석서 23권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창시자 자멘호프 박사의 인류인주의 입니다. 어느나라, 어떠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에스페란토가 보다 많이 보급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에스페란토가 보급됨으로써 미치는 영향입니다. 바로 평등·사랑·형제애·정의·중립의 이상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 회장께서는 근 20년간 유엔 식량농업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오랜 행정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난 95년부터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장으로 있으면서 유엔, 유네스코, 유럽의회 등을 수차례 방문하여 국제기구 언어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에스페란토의 공용어 채택과 소수언어 보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하며, 에스페란토가 이들 국제기구의 공통어로 채택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 과연 국제기구에서 국제 공통어가 필요한가.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모두가「반드시」필요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은 이를 담당한「정치가」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정은 합리적 결정보다 정치적인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정치적인 결정? 곧 자국의 이해 득실을 따지는 국가외교상의 기술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에스페란토의 국제 공통어 채택에 대한 지지와 격려는 오래 전부터 입니다. 그 예로 1920년대에 이미 국제연맹총회에서 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의 반대로 부결되었죠. 1924년, 만국우편엽합(IPU)에서의 통신용 언어 채택에서 에스페란토가 선정되었고, 1954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에스페란토 교육 권장의 결의를 하는 등 수 없는 논의는 지금까지 계속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가능성은 어느 정도 보입니다. 1996년 프라하에서 개최된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때에 UN, EU, 유네스코 대표 및 학자들이 참가하여 아주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특히 1997년 UN 경제사회 이사회에서「국제보조어」문제가 중요한 안건으로 논의되도록 노력했던 점을 볼 때 희망이 있습니다. 1997년 5월 UN 경제사회이사회 소속 비정부 기구 (700여개)를 회원으로 「국제 보조어를 위한 비정부기구 연대」가 결성되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발전하면 언젠가 에스페란토가 국제 공통어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998년, 제네바에서 UN 인권문제고등판무관의 지원으로 「인권 문제의 언어적 측면」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만국 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인데, 이것은 국제 사회에서 에스페란토의 중요성이 인정받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렵연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죠. 현재 11개국의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의회 위원수가 627명입니다. 그런데 회의 및 행사에서 사용되는 경비의 50% 정도가 언어 (통역)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어떤 한 위원이 연설을 한다고 할 때 11개국어로 동시 통역하지 않고는 의사가 전달되지 않는 분위기를 짐작하시겠습니까? 의원 사무실 문패마다 11개국어로 표시하고 있는「언어」의 한계에서 에스페란토의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실현 되느냐 못되느냐가 언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사실상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몇몇 강대국들의 언어 기득권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모든 회원들의 언어는 평등하다」라는 기본 원칙을 앞세우기에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 사실 유엔, 유네스코, 유럽의회 등 이러한 공인된 국제기구의 결정이 에스페란토 보급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로 더욱 구체화되는 21세기에서의 에스페란토운동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우리나라에서 요사이 부쩍 국제화·세계화를 부르짖는데 여기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민족 문화입니다. 다양한 민족문화 특히 언어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에스페란토를 세계에 널리 보급·발전시키는 목적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세계가 하나의 평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대화와 만남의 중립적인 공통어가 절실하다는 것이며, 둘째는 소수 약소민족의 언어 보호 및 여기에 따른 인권의 문제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많은 설명이 있었으므로 생략하고 「인권」보호에 대해선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지구상의「피난민」이 대략 1천 6백만명 정도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언어로 인한 인권의 피해가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면 믿겠습니까? 사실 우리 한국인들은 어느 정도「영어」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회의, 사업, 관광 등에서 그렇게 불편함없이 사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영어」가 세계의 공통어 입니까? 유럽만해도 영어만으로는 도저히 통하지 않는 나라가 수 없이 많습니다.
국가적으로 온갖 분쟁과 혼란, 그 속에서의 빈곤, 질병, 무지의 약소국가가 겪는 고통 가운데「언어」때문에 생기는 고통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경이 수 없이 무너지고 그때마다 지도자와 법이 바뀌는 상황에서 「언어」는 때때로 최악에는 파괴와 죽음을 부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권이 보장되어야 인권이 보장된다는 측면입니다.
내년에 UN에서 만국인권선언 50주년 기념으로「인권문제의 언어적 측면」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에스페란토가 국제 사회에서 반드시 공통어로 채택되었으면 합니다.
세계 에스페란토협회에서는 새 언어질서를 위한 캠페인 2,000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외적으로 UN에서 언어문제를 토의하도록 계속적인 건의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언어 교육을 통한 세계 평화운동」 을, 유럽연합(EU)에서는 국제 보조어로서 에스페란토가 채택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유명인들을 중심으로「에스페란토의 벗」을, 각 운동단체, 친목단체 등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여 이제는 세계 곳곳에 수 많은 전문단체, 특성 단체가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무엇보다 에스페란토가 그 사회의 질적 향상과 유대강화에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어 국제회의, 친선, 관광, 교육, 특히 인터넷이나 출판을 통해 발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발전적인 과제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한국어와 얼마나 특성상 가깝고 외국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언어 교육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겠으며 둘째, 에스페란토협회의 운영적 자립 셋째, 에스페란토의 위상이 높아져 교육, 방송 및 기타 언론 매체를 통해 보급·발전되는 것 넷째, 에스페란토가 한국의 대내외 외교에 큰 역할을 하는 것 등 홍보·활동에서 한걸음 발전하여 효율성과 우수성에서 인정받는 언어가 되었으면 합니다.
에스페란토가 국제 공통어로 채택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사실 어쩌면 유토피아 같은 꿈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에스페란토가 반드시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이 있다는 확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점차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될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인데, 가장 문제가 되는 언어! 특히 민족어 내지 민족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실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점의 간판을 한번 보십시오. 영어를 비롯해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가 난무합니다. 이것이 세계화 입니까? 우리나라는 한문이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민족어가 사라졌고, 일제 식민지하에서는 제도적으로 말살되었으며, 지금은「영어」를 비롯, 수 많은 외국어에 의해 민족어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에스페란토는 거듭 강조하지만 약소민족의 소수 언어를 위해서도 반드시 보급·발전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국제 공통어가 되었으면 하지만 국제 보조어의 하나로서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중국정부는 매주 열리는 외교부 정례기자회견문등을 그동안 영어로 번역 배포해오던 것을 지난 해 9월부터 이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중국은 위대한 나라이며 위대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하필 영어로 번역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에서입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태도 때문에 각국의 언론사 기자나 외교관들이 매우 어려운 처지라고 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영어 독점주의? 영어가 사실 많은 국가에 있어서 공통어 내지 그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진다는 것 아닙니까? 민족어를 보호하겠다는 이러한 태도는 중국만이 아닐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나라가 소위「언어식민지」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입니다.

◎ 에스페란토운동을 하시면서 보람과 힘들었던 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해방 직후 헌 책방에서 우연히 에스페란토를 만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날까지 에스페란토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세계대회 때 입니다.
세계대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7일간의 독립국가」라고 할까요. 어떠한 통역도 없이 전혀 의사소통에 막힘도 없이 진행되는 일정 하나 하나를 통해 인류가 진정한 형제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약 3천여명의 참가자들은 국적·인종·언어·종교·연령 등에 전혀 구애없이 오직 에스페란토라는 공통어로 하나가 됩니다.
영어가 국제어라는 선입감을 벗어나자고 할때 어떤 분은 영어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UN기구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소위「영어」덕을 톡톡히 본 사람입니다. 영어의 장·단점을 잘 알고, 영어의 영향력을 알기 때문에 에스페란토를 권장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에스페란토 세계대회 때 15명이 한 조가 되어 문화답사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에스페란토만 사용했기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조차 이야기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우연히 국적을 묻게 되고 각자의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11개국에서 모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에스페란토는 진정 사랑이 담긴 언어라고 생각하며 세계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급·발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언어가 죽어가는 경우는 어떠한 상태일 때를 말합니까. 전문용어로 사용하지 못할 때 입니다. 한국어도 죽어가는 언어에 속한다고 봅니다. 점차 전문연구 부문에서 사용정도가 줄고 또 평가절하를 받고 있습니다. 한 예로 공과대학 교수들의 연구물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영어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어로 표현이 어렵고 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이죠. 이것은 그 동안 민족어의 방패 역할을 할 공통어가 없기 때문이며, 정치·경제적인 자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후진국의 경우, 특히 아프리카의 원주민 언어들은 개방과 경제적 발전이라는 이유로 지금 사멸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8개국에 있는 세계 에스페란토협회의 임원들과 전자우편을 통하여 의사교환을 하면서 협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어를 몰라도 전혀 언어의 장벽이 없습니다.

◎ 천주교인으로 평소 종교에 대한 생각과 원불교에 대해 아시는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 종교인은 대체로 열심히 믿는 사람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열심히 다니는 사람에 속한다고 봅니다.
원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원상(一圓相)을 보면서 자멘호프 박사가 신에 대하여「우주를 지배하는 신비로운 힘」으로 표현한 내용과 통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교세확장 보다는 사회의 공익과 복지, 때로는 불의에 대해 대단한 용기를 가진 종교라고 알고 있습니다.
평소 저는 에스페란토에 대하여 사랑이 있는 언어, 인간의 마음을 열어주는 언어라고 생각해 왔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그「수단」으로 충분한 언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류의 공통된 이상은 평화이겠지요? 이 근원적인 목적에 종교이든, 그것이 언어이든 같을 것입니다. 원불교 또한 이 근원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 생각하지만····.
세계는 다양한 언어, 종교, 사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립과 반목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의 창안자들이 목적한 일이라고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아마 원불교를 개교하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그 방법을「종교」로, 자멘호프 박사는「언어」로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이 글은 원불교 기관지인 "월간 원광" 1997년 9월호에 16쪽에 걸쳐 실렸습니다.
* 대담: 최보광(대석) / 원불교 교서정역위원회
* 정 리: 오 선 명 본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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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7. 4. 16:26

리투아니아 디젤 1리터당 현재 가격은 4.3리타스(한화 2,100원)이다. 끝없이 치솟는 기름값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화물차 운전수들일 것이다.

기름값 인상에 반대하고 정부의 적극 대책을 촉구하면서 화물연대는 그 동안 정부와 협상을 했으나,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어 화물연대는 도로 위 시위를 결정하고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로 했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시간과 거리를 미리 알려주면서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난 7월 2일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수백 대의 화물트럭이 저속으로 도로 위를 달리면서 시위에 나섰다. 리투아니아 화물연대의 이날 점잖은 시위가 이대로 그칠 지 아니면 또 다른 격렬한 시위의 도화선이 될 지 리투아니아 정부의 대처가 주목된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7. 3. 16:46

요즘 리투아니아 십대들에게 인기 있는 취미는 자전거 높이뛰기이다. 일전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중심가에 위치한 빙기스 공원에서 자전거 높이뛰기를 하는 십대들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계속 도전해 성공한 노란색 윗옷과 회색 아랫옷을 입은 사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리투아니아 십대들의 자전거 높이뛰기 한번 구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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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08. 7. 3. 15:37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또 다른 기쁨은 인터넷판으로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종이판으로도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지난 6월 4일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기사를 올렸다.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로 알려진 "시사IN" 오윤현 기자가 이 글을 읽고 6월 23일 방명록에 '블로거와 만드는 멋진 인생'에 게재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동의했고, "시사IN" 42호 2008년 07월 01일 에 게재된 것을 확인했다.

지면 언론과 블로거를 소통시키는 '시사IN'의 '블로거와 만드는 멋진 인생' 고정란이 앞으로 계속 발전하고 기존 언론과 블로그가 상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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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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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책 중 걸으면서 우연히 시선을 낮춰 밑으로 내려다보았다. 바로 한 발짝 앞에서 노린재 한 쌍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늘 그러듯이 별 생각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다가는 노린재에게 큰 재앙이 될 뻔했다. 하마터면 천근만근 나가는 신발에 짓눌러 달콤한 사랑 중에 황천길에 갔을 것이다. 리투아니아 노린재의 선명한 주황색과 검정색이 이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다.    

건장한 스님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가는 길에 작은 생명체들이 그 지팡이 소리를 듣고 길을 비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 덕분에 스님은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동안 길을 걸었을 때 신발에 밟혀서 목숨을 잃은 생명들에게 용서를 구해본다. 길을 걸을 때 늘 전방, 좌우, 상하를 번갈아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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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3.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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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菩提樹)라면 우선 석가모니 부처님과 인도를 떠올리게 된다. 보리수는 리투아니아 어디를 가든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한 나무이다. 이 보리수에서 나는 꽃은 말려서 차(茶)로 만들어 특히 감기증세가 보일 때 마신다.

리투아니아 북서쪽에 있는 파필레(Papile)라는 마을에는 16개 줄기를 가진 거대한 보리수가 있다. 그 희귀성으로 인해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

어제 빌뉴스에 살고 있는 거리를 산책하다가 평소 전혀 눈에 확 들어오지 않던 줄기가 4개인 보리수를 보았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런 경우 줄기가 네 개인 나무라고 표현한다. 어떻게 보면 네 개의 나무가 아주 가까이에서 각자 자라다가 합쳐진 것일 수 있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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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개 줄기를 가진 거대한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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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개 줄기를 가진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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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7. 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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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빌뉴스 구시청 광장엔 늘 다양한 공연 등 볼거리가 많다. 비 속에서도 리투아니아 미녀들의 춤은 구경꾼을 모은다. 짧은 동영상이라 좀 아쉽지만, 그래도 그날의 분위기를 읽는 데는 충분하리라 여긴다.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면, 아래 동영상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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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모음2008. 7. 1. 10:11

일전에 "백조는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하다"라는 글에서 리투아니아 호수에서 찍은 백조 사진을 소개한 적이 있다. 지난 번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리투아니아로 돌아온 길에 '니다'라는 작은 도시를 거쳐 왔다. 니다는 네링가 국립공원의 중심이다. 이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특히 리투아니아의 사막이라 불리는 거대한 모래언덕이 있다.

이 니다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백조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파제에서 모래언덕 쪽으로 보니 하얀 점들이 수두룩했다. 응당 갈매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백조였다. 그 뒤에 보이는 모래언덕과 어울러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주는 듯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으면서 이 백조의 한가로움을 한 번 구경하세요.

애독자 중 생물을 전공하신 분이 동영상의 백조는 코 위에 검은 혹이 튀어나와 있어서 혹고니이고, 고니가 표준말이라고 합니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6. 30. 14:06

일전에 칼리닌그라드를 다녀왔다.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고립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주(북쪽 리투아니아, 남쪽 폴란드, 서쪽 발트 해에 접해 있다)의 주도이다. 철학자 칸트가 평생을 살았던 곳이 바로 이 도시이다.

원래 이 도시는 튜튼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 연방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현지인의 초대를 받아 집으로 가보니 샐러드 종류들이 여러 있었다. 샐러드 중 고사리가 있어 좀 의아했다. 리투아니아인을 비롯해 유럽인이 고사리로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은 웃으면서 자주 한국 반찬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 다음날 한국 반찬 가게가 있다는 곳을 직접 찾아 가보았다. “한국 샐러드”라는 안내 표시 넘어 고려인인 듯한 여러 명이 반찬을 팔고 있었다. 고사리, 가지, 오징어, 버섯, 미나리, 가지 등 보기에도 한국의 어느 재래 시장 반찬 가게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아주머니는 무조건 맛을 보게 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겠지만 기름기가 많고 짰다. 반찬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중앙아시아에서 이쪽으로 이사 온 고려인이라고 말했다. 맛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한국 반찬이라는 이름을 걸고 팔고 있으니 한국인으로 더욱 정감이 갔다. 여러 반찬을 샀는데 600루블(약 3만원)을 달라고 했다. 비싼 것 같아 주저했으나 덤으로 한 뭉치를 주고 또한 ‘한국’이라는 말에 사게 되었다.

칼리닌그라드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한국 반찬 한 번 구경해보세요.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6. 29. 14:06

가마우지를 볼 때마다 중국 계림 지방의 낚시법이 생각난다. 목 아래 부분이 실로 묶인 채 가마우지는 물속으로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고, 주인은 이를 내뱉게 함으로써 잡는 낚시법이다. 리투아니아에도 가무우지가 살고 있다.

리투아니아 유오드크란테 지방엔 가마우지 집단서식지가 있다. 약 2000쌍이 살고 있다. 가마우지가 이곳에 처음 도착한 것은 19세기 초이다. 프러시아(프로이센) 정부는  숲에 큰 피해를 주는 가마우지를 19세기 말경 멸종시켰다. 하지만 1970년대 가마우지가 이곳에 다시 나타났다.

가마우지 배설물엔 나무뿌리를 태워버리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집단서식은 오래되고 연약한 숲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약 10헥타르 숲이 죽었다. 더군다나 어부들은 어획물 감소로 가마우지에 불평하고 있지만, 프러시아와는 달리 리투아니아 정부는 가마우지를 보호동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이렇게 자연과 사람의 합리적인 공존을 꾀하고 있다. 한편 같은 가마우지이지만 중국과 리투아니아 가마우지는 아주 판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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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6. 29. 06:40

일전에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리투아니아 네링가의 중심 소도시인 니다에서 카메라를 메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담 하나 사이를 두고 리투아니아인이 자꾸 손짓을 하며 오라고 했다. 아마 리투아니아어를 모를 것이라 여기고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냥 갈까 아니면 응할까 망설이다가 돌아서 담으로 가봤다. 카메라를 멘 나에게 알릴만 했다. 바로 뱀 한 마리가 담벼락에서 어디로 빠져나갈까 궁리를 하고 있었다. 유럽에 10여년을 살면서 이렇게 야생에서 뱀을 본 것은 처음이다. 주위 사람들은 겁내지 않고 구경을 했다. 마침 풍경화를 그리는 여학생이 내려놓은 화선지 가방 속으로 들어가 똬리를 트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리투아니아어로 이 뱀 이름은 "Žaltys"(잘티스)이다. 리투아니아 잘티스는 머리에 노란색 방점과 몸에 흑색 점무늬가 산재해 있다. 드물게 황갈색을 띤 것도 있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해 발트인들은 독이 없는 뱀인 이 잘티스를 집을 지키는 수호자로 여긴다. 또한 다산과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들었다. 가정의 번영과 풍작을 위해 잘티스를 집안의 특별한 곳에 보호하고 일정한 시간에 기도를 올렸다. 발트인의 믿음대로 이 구렁이를 본 덕분에 가정이 평안하고 온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 세계 男心 잡은 리투아니아 슈퍼모델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6. 2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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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발트해와 큐르슈만 사이에 길쭉한 곶으로 형성된 네링가 국립공원이 있다. 지난 해 산불로 인해 적지 않은 숲 면적이 사라졌다. 보기 흉칙할 것 같은 타다 남은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놓아두면서 이색적인 자연 전시장을 조성했다.

멀리서 바라보니 나뭇잎이 하나도 없어 마치 여름 속 겨울을 보는 것 같다. 가까이 가보면 검게 불탄 채 죽어버린 나무들이 빽빽히 서있어 안타까움을 절로 자아낸다. 더우기 이곳은 사토라 나무가 자라기엔 아주 척박한 땅이다.

백마디 불조심보다 이 한 편의 풍경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기발한 발상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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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로 적지 않은 숲 면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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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속 겨울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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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다 남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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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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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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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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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숲이 아니라 다시 살아있는 숲이 되어 뭇 생명들이 공존하기를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