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세계적 범유행으로 완전 비대면 사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연결되어 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 유럽에 살고 있으면서 인터넷으로 올해 벌써 네 번이나 한국에 있는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시와 노래 번역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되었다. 매번 다른 시와 노래를 가지고 실제 번역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로 다루었다.
경험상 문장 번역보다 시 번역이 더 어렵고 시 번역보다 노래 번역이 훨씬 더 어렵다. 50분 주어진 시간에 이 무게 있는 주제를 다 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 짚어본다.
번역에 있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원문을 확실하게 이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문장 속에 등장한 한국어 단어의 가장 적합한 에스페란토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슴을
brusto, sino, koro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가방을
teko, sako, valizo, kofro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꿈을
sonĝo, revo, espero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를 결정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간과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운율 맞추기다. 유럽어의 주된 영향 속에 있는 에스페란토의 시나 노래에서는 이 운율이 중요하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에스페란티스토이고 또한 언어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것으로 여겨 아래에 간략하게 운과 율에 대해 에스페란토로 소개한다.
*Rimo*
samsoneco inter du aŭ pluraj vortoj, de la vokalo akcenta kaj de sekvantaj son-elementoj. Kolomano Kalocsay klasifiki kiel jene en “La Esperanta Rimo”.
1. Pura rimo
sameco de ĉiuj akcentaj kaj postakcentaj vokaloj kaj konsonantoj:
reĝo--seĝo, ardo--bardo, ventro--pentro
2. Rimoido
sameco de ĉiuj akcentaj kaj post-akcentaj vokaloj, pli-malpli granda malsameco de konsonantoj:
sameco de ĉiuj rimelementoj escepte la akcentitan vokalon:
arbo--korbo, reĝo--paĝo, ombro--decembro.
4. Radik-rimo
pura interrimado de la radikoj, vokala kaj konsonanta malsameco de la finaĵoj:
bela--anĝeloj, lando--grandaj
*Verspiedo*
Karakteriza kombinaĵo de silaboj kun difinita longeco aŭ akcentiteco. La ĉefaj piedoj estas du- aŭ tri-silabaj piedoj kaj entenas nur unu akcentitan silabon.
1. Trokeo
Unu longa aŭ akcenta silabo kaj unu mallonga aŭ senakcenta silabo
Ekz. En la mondon venis nova sento
2. Jambo – el du silaboj
La unua silabo estas mallonga aŭ senakcenta kaj la dua estas longa aŭ akcenta silabo
Ek. Mi amis vin
3. Amfibrako – el tri silaboj
Unu longa aŭ akcenta silabo inter du mallongaj aŭ senakcentaj silaboj
Ekz. Doloro; Tra densa mallumo briletas la celo
4. Anapesto
Post du mallongaj aŭ senakcentaj silaboj sekvas unu longa aŭ akcenta silabo
Ekz. Anapest’; Ne riproĉu la sorton, ho juna animo
5. Daktilo
Unu longa aŭ akcenta kaj du mallongaj aŭ senakcentaj silaboj
Ekz. Tiu ĉi; kanto sincera de mia animo
아래는 2020년 11월 14일 남강 에스페란토학교 강의에서 활용한 한국어 시와 에스페란토 번역본이다.
가을 여행가방
이남행
날씨가 차가와지고 있어요.
벌써 눈 소식이 들려요.
가을은 이제 떠날 준비를 합니다.
거리의 청소부는
가을이 벗어놓은 노랗고 빨간 잎들을
여행가방에 차곡차곡 넣어
떠날 준비를 돕고 있어요.
하지만 가방엔
아직 빈 공간이 많아요.
아마도 그 공간엔
가을이 나에게 준
외로움과 쓸쓸함을 모두 담아가지고 가겠죠
La kofro aŭtuna
Tradukis Chojus
Vetero fariĝas pli frida.
Aŭdiĝas pri ĵusa neĝfalo.
Aŭtuno pretiĝas forlasi.
La stratpurigisto en kofro
ekstaplas jen flavajn, jen ruĝajn foliojn
plukitajn nun de la aŭtuno
por helpi jam ĝian pretiĝon.
Sed tamen la kofro
ankoraŭ tre multe malplenas.
Do eble l’ aŭtuno jen tute enmetos,
forportos solecon kaj triston
donitajn ja al mi.
노래도 시와 마찬가지다. 위에서 노래 번역이 시 번역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한 것은 음표수와 음절수를 맞춰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표의 강약과 음절의 강약을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노래 번역은 아래 순서대로 진행한다.
초벌 번역을 한다
리듬에 따라 강조된 음표가 어느 것인지를 확인한다
강조된 음표와 강조된 음절을 서로 일치시키면서 번역 가사를 다듬다
동시에 강조되지 않은 음표에 강조된 음절이 오지 않도록 한다
가능한이면 각운을 맞추는 것이 특히 노래에서는 권장된다.
음표 분석을 하고 이에 강조 음절을 맞춘다. 참고로 온음표, 두분음표 등에는 의미있는 단어의 음절이 오도록 한다. 예를 들면 온음표에 la나 이와 유사한 음절 등이 오지 않도록 한다. 음표수에 음절수를 맞추기 위해 ho, ja, jen, nun, plu, do, jam, tre 등을 적절히 활용해도 좋다. 아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음표 분석과 에스페란토 번역 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을 눈여겨 보고 '아, 노래 번역은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어렴풋이 감을 잡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진로를 아예 바꿔놓았다. 올 2월까지만 해도 딸아이 요가일래는 영국 유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1월부터 급하게 아엘츠(IELTS) 시험 준비를 했다. 2월 하순에 치런 아옐츠 시험에서 영국에 있은 모든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좋은 성적을 얻었다. 입학원서를 낸 여러 대학교로부터 비대면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런데 3월 초순부터 유럽 전체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을 떠나서 총리까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버린 영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유학을 포기하고 학부는 리투아니아 국내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전공도 예술사에서 철학대학에 속해 있는 사회학과를 스스로 선택했다.
국가고등학교졸업시험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어서 법학이나 국제관계학, 국제경영학 등 다언어능력을 살려서 장래에 직업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얻을 가능성이 높은 학과를 선택할 것을 부모로서 권했지만 "자기 인생길은 스스로 결정한다"라는 짧은 주장에 "그래 우린 너를 믿어"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리투아니아 대학 입학 전형은 두 가지다. 무료입학과 유료입학이다. 무료 최소 입학생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학과마다 무료 입학생수는 다르다. 요가일래는 무료입학 전형에 합격했다. 등록금, 기숙사비 등으로 걱정하지 않어서 좋다. 자녀가 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가계살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참으로 낯설다. 일전에 돈 이야기가 하도 없어서 물어봤다.
"한국에는 대학생이 되면 교재비도 솔찬하게 들어가는데 교재를 사달라고도 하지 않니? 교재 없이 수업을 하나?"
"살 필요가 없어. 학생들 모두 도서관에서 교재를 빌려."
"학생수가 수십명이 되는 학과도 있는데 그만큼 교재가 도서관에 다 있나?"
"다 있어."
며칠 후에 요가일래는 사회학과 1학년에서 배우는 심리학, 통계학 등 교재를 보여주었다.
전부 헌책이다. 뒷표지를 보니 도서관 도서 일련번호가 붙여져 있다. 모든 교재를 이렇게 도서관에서 빌려서 앞으로 공부한다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좋지만 책을 펴내 이것으로 가르치는 교수들은 부수입이 따로 없어서 어쩌지.... ㅎㅎㅎ
대부분 학생들은 컴퓨터 노트북에 기록하지만 직접 필기를 하는 것이 좋아서 큰 공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공책 뒷표지를 보니 가격이 적혀 있다. 공책 한 권에 3.5유로이니 한국돈으로 약 5천원 정도다. 대학생용 공책의 값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공책 산다고 돈을 달라고 하지 왜 안했어?"
"비싸지만 내 돈으로 샀어."
"그래도 공책 사 줄 여유는 있으니까 사달라고 해."
"괜찮아. 대학생이 됐으니까 이런 것도 이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할게."
이렇게 자녀교육비에 걱정이 없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세계 모든 나라가 적어도 국민의 교육과 의료를 책임져 주는 시대가 빨리 오길 바란다.
유럽은 예년 같으면 5월에서 6월에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되는고등학교 졸업시험이 끝난다. 올해는 예기치 않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3월 13일부터 학교가 임시 폐쇄되었고 수업은 원격으로 이뤄졌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이래 처음으로 졸업시험을 취소했지만 리투아니아는 이를 연기해서 6월 22일부터 7월 21일까지 한 달 동안 치르고 있다.
리투아니아 고등학교 졸업시험은 두 종류다. 하나는 국가시험인데 이는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역할도 한다. 다른 하나는 학교시험인데 이는 졸업증명 여부만 결정한다. 두 시험 문제는 서로 다르다. 올해 리투아니아 수험생수는 2만6천여명으로 국가시험 응시자는 17,268명이고 학교시험 응시자는 8,511명이다.
예년 같으면 한 교실에 14명이 같이 시험을 본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서 9명이 본다. 여러 학교 출신들의 수험생들이 섞어 있다. 마스크 착용은 불필요하고 교실마다 소독제가 배치되어 있다.
졸업증명서를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시험과목 2개에서 일정한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 의무과목인 리투아니아 언어와 문학과 선택과목 한 개다. 수험생들은 자유롭게 국기시험과 학교시험 중 선택할 수 있고 최대 7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 16%만 맞아도 졸업 인정
생물, 화학, 물리, 지리, 역사, 수학, 외국어(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는 과목별 16% 이상의 점수를 취득해야 한다. 정보기술은 20%, 리투아니아 언어와 문학은 30% 이상을 취득해야 졸업을 인정 받을 수 있다. 인문계열을 전공하려면 역사과목이 필수이고, 의학계열을 전공하려면 생물과목이 필수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리투아니아 언어와 문학 외에 영어(관련글은 여기로), 수학, 역사를 선택했다.
6월 29일 리투아니아 언어와 문학 시험을 치러 가는 날이다. 전날 밤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 요가일래에게 달걀 두 개를 삶아서 주라고 부탁했다. 시험을 치러 가는 날에 달걀?! 달걀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있어 주저되었다. 예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비빔밥에 얹어진 달걀을 먹은 후 살모넬라균 식중독으로 아주 고생한 적이 있었다.
살모넬라균은 63°C의 온도에서 3분 30초 이상 조리하면 사멸된다고 한다[출처]. 유럽인 아내는 물이 끓기 시작한 후 5분 더 삶는다. 혹시나 해서 난 15분을 더 삶았다. 우유차와 함께 삶은 달걀 두 개를 식탁에 올려 놓았다.
“이거 먹고 4시간 동안 배가 안 고플까?”
“양이 적지만 배가 빨리 고프지 않아. 그리고 시험 칠 때는 배가 좀 비워 있어야 좋아.”
"맞다."
객관식은 없고 오로지 주관식 문제만
의무과목인 리투아니아 언어와 문학 국가시험은 어떠할까?
먼저 네 시간(9시-13시)에 걸쳐 행해진다. 선다형과 진위형 문제 형태가 전혀 없다. 오로지 논술형 필기시험이다. 4개의 문제가 주어진다. 문학 문제 2개 그리고 추론 문제 2개다. 4개 중 한 문제만 선택해서 500 단어 이상으로 글을 써야 한다. 각각의 문제마다 예시된 국내외 36명의 작가 중 2명이 추천되어 있고 이 작가를 토대로 글을 써야 한다.
참고로 올해 문제는 다음과 같다
추론 필기문제
1. Kur yra riba tarp pokšto ir patyčių? 농담과 집단따돌림의 경계는 어디에 있나?
추천 작가 - Jurgis Savickis, Marius Ivaškevičius
2. Ar menas gali paveikti tikrovę? 예술이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추천 작가 - Maironis, Vincas Mykolaitis-Putinas
문학 필기문제
1. Švenčių reikšmė literatūroje 문학에서 축제들의 의미
추천 작가 - Kristijonas Donelaitis, Balys Sruoga.
2. Kartų santykiai literatūroje 문학에서 세대들간의 관계
추천 작가 - Jonas Biliūnas, Juozas Aputis.
요가일래가 시험을 치는 네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어떤 일에도 쉽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사히 시험을 잘 치기를 염원하면서 시험을 끝내고 올 전화나 쪽지만 기다렸다. 드디어 쪽지가 왔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예술에 관한 문제가 나와서 매우 만족스럽게 시험을 쳤다고 한다. 음악학교와 미술학교에서도 두루 예술에 대해 공부했기에 이 문제를 논하는 데에는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예술에 관한 시험을 치고 돌아올 요가일래를 위해 케익을 구워서 그 위에 MENAS(예술)라는 글자를 장식했다.
수학공식을 다 주고 풀게 한다
세 시간 소요되는 수학 시험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사지선다형 10문항이고 2부는 단답형 12문항이고 3부는 답을 도출하는 과정까지 써야 하는 18문항이다. 전자계산기를 지참할 수가 있다.
특이한 사항은 시험지와 함께 수학공식을 담은 종이를 주는 것이다. 수 많은 공식들을 일일이 암기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과는 확연히 다르다. 자연스럽게 외운 학생들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되겠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중심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수학시험 3부는 답뿐만 아니라 답을 도출하는 과정까지 적게 해서 이를 평가한다.
시험지는 회수가 아니라 각자 가져 간다
다음은 역사시험을 소개한다. 이 과목 또한 세 시간에 걸쳐 치러진다. 총 51개 문항으로 되어 있다. 1번에서 25번까지가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다. 나머지는 제시된 다양한 역사적 자료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해야 하는 주관식 문제다.
한편 모든 시험과목의 시험지는 회수하지 않고 수험생들이 각자 가져 간다. 시험이 끝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쉽게 답을 맞춰볼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6월 22일부터 7월 7일까지 네 과목 시험을 모두 마쳤다. 시험성적 결과는 한 달 후에 나오고 이 점수를 토대로 리투아니아 대학 등에 입학하게 된다.
유럽은 예년 같으면 5월에서 6월에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되는고등학교 졸업시험이 끝난다. 올해는 예기치 않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3월 13일부터 학교가 임시 폐쇄되었고 수업은 원격으로 이뤄졌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이래 처음으로 졸업시험을 취소했지만 리투아니아는 이를 연기해서 6월 22일부터 7월 21일까지 한 달 동안 치르고 있다.
이 졸업시험을 앞둔 6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요가일래는 집옷이 아니라 학교에 갈 때처럼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어디 나가려고?"
"아니."
"그런데 집옷이 아니고 외출복을 입고 있네."
"집옷을 입고 있으니까 집에 있는 같아서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옷을 입고 있으니 집이지만 학교에 있는 것 같아서 집중이 잘 된다."
외적 환경과 관계없이 집중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등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일러주고 싶었지만 나름대로 확실한 이유로 그렇게 해서 마음을 잡으려고 하는 딸에게 "정말 좋은 생각이네"라고 답했다.
6월 22일 첫 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영어 시험이다. 구술시험과 필기시험이 각각 다른 날 치러진다. 이날은 구술시험이다. 시험장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걸어서 혼자 갈 수 있지만 그래도 첫 시험이라 동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시험장까지 아빠가 데려다 줄게."
"아니야. 필요 없어. 혼자 갈 거야."
"이제 완전히 고등학교를 마치는 시험이잖아. 오늘만큼은 아빠가 데려다 줄게. 네가 초등학교 첫날부터 아빠가 4년 동안 꼬박 데려다주고 데려왔잖아. 한국 부모들도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가족이 시험장까지 보통 동행한다. 학교 시작일일처럼 학교 끝남을 알리는 날에도 내가 동행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이유라면 기꺼이 아빠하고 같이 갈게."
시험장인 학교가 눈앞에 보인다.
"자, 이제 여기서 헤어지자."
"학교 출입문까지 동행할 수 있다."
"아니. 여기부터는 혼자 생각을 정리하면서 갈게."
"그래. 그럼 시험 잘봐."
시험지는 회수가 아니라 수험생이 가져간다
영어 구술시험은 수험생 2명이 동시에 시험관 2명 앞에서 약 30분 동안 치른다. 두 가지 주제를 가기고 첫 번째는 혼자 3-4분 동안 말을 하고 두 번째는 둘이서 4-5분 동안 대화를 한다. 주제를 혼자 연마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구술시험은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참고로 리투아니아 영어 졸업시험 내용을 소개한다. 우선 리투아니아 졸업시험 시험지는 회수하지 않고 수험생이 가져간다. 영어 구술시험지는 총 두 장이고 각각 상단은 주제가 적혀 있고 하단은 수험생이 자신의 생각 등을 적을 수 있도록 비어 있다. 혼자 말하기 주제는 "전자책(E-books)"이다.
둘이 대화하기 주제는 "나의 세대(My generation)다.
구체적 문법 문항은 없다
7월 1일 필기시험은 장장 3시간에 걸쳐 치러졌다. 시험 구성은 이러하다. 듣기 30분, 읽기 60분 그리고 작문 90분이다.
듣기시험은 총 25개 문항으로 되어 있다. 1부는 10개 문항으로 상황별 다섯 개 대화를 듣고 A, B, C 중 정답을 고른다. 2부는 4개 문항으로 사회학자와의 인터뷰를 듣고 A, B, C 중 정답을 고른다. 3부는 5개 문항으로 어떻게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지에 대한 대화를 듣고 해당 답 하나를 고른다. 4부는 다른 세대들에게 지어진 이름들의 개요를 듣고 한 단어만 직접 써넣어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모든 듣기 시험은 두 번 녹음을 듣는다.
읽기시험도 총 25개 문항으로 되어 있다. 1부는 4개 문항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아르바이트 일자리 대한 예시를 읽고 각기 해당되는 답을 고른다. 2부는 6개 문항으로 시드니에 대한 안내글을 읽고 예시된 6개 단어를 이용해 해당 문장에 맞도록 쓴다. 3부는 7개 문항으로 인간지식에 대한 기사를 읽고 중간중간에 빠진 문장을 예시된 문장 8개 중 맞는 문장으로 채워넣는다. 4부는 8개 문항으로 소행성에 대한 과학기사를 읽고 그 요약문에 한 단어만 추가해서 문장을 완성한다.
작문시험 1부는 이미 표를 구입한 행사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취소되어서 매표소 담당자에게 80 단어 이상 편지를 쓰는 것이다. 2부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상 교실 수업에 대해 180 단어 이상으로 작문하는 것이다.
영어시험 문항 어디에도 구체적인 문법, 예를 들면 맞는 전치사 고르기 등에 대한 문항이 없다. 이런 지식은 작문을 통해서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요가일래는 영어 졸업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영국 유학을 목표로 지난 2월 아이엘츠(IELTS, 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 시험에서 아주 만족할만한 성적을 얻었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대학입학시 이 성적을 리투아니아 방식으로 환산해서 인정해준다. 아쉽게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등으로 대학진로를 바뀌게 되었다. 한편 아이엘츠 성적은 유효기간이 2년이지만 리투아니아 국가시험 성적은 평생 유효하다. 그래서 이번에 영어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유럽 대부분 국가의 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전통적으로 세 가지 축제일이 있다. 첫 번째 축제일은 100일이다. 이는 마지막 수업일 100일을 앞두고 열리는 행사다. 이 행사는 고등학교 2학년생들이 졸업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할 선배들을 위해 마련한다. 보통 학교 체육관에서 이뤄진다. 이날 3학년생 전체가 모여서 후배들이 주관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는 날이다.
두 번째 축제일은 마지막 종소리다. 이는 초중고를 포함한 12년 학교수업을 마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 리투아니아는 5월 22일이 마지막 종소리 수업일이다. 공식적으로 학교생활을 완전히 끝내는 날이다. 한국 학교의 졸업식과 비슷하지만 부모들은 이날 참가하지 않는다. 아래 영상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없던 2019년 리투아니아 한 고등학교의 마지막 종소리 행사를 담고 있다.
세 번째 축제일은 졸업파티다. 보통 7월 초순이나 중순에 열린다. 이날은 졸업생들과 부모들이 주로 호텔 레스토랑에서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고 춤 등으로 즐기는 것이 특이하다. 대부분 부모들은 좀 더 일찍 행사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올해 마지막 종소리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전례가 없는 행사가 되었다. 3월 13일부터 모든 학교가 임시 폐쇄되어 그동안 교실에서 수업을 전혀 하지 못했다. 수업은 온라인 원격으로 이뤄졌다.
대부분의 학교는 줌(zoom), 유튜브 등 인터넷을 이용해 행사를 가졌다. 일부 학교는 실내가 아니라 옥외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입구 손소독제 이용, 마스크 착용, 서로간 간격 유지 등)를 지키면서 행사를 가졌다. 학교에서 행사를 마친 후 친구들끼리 카페나 공원 등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북유럽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요가일래는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음악학교 8년 과정을 마쳤다. 음악학교는 일반학교 수업 후 일주일 3일 다닌다. 동시에 두 학교를 다니느라 또래 아이들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적었는데도 곧 이어서 미술학교를 다니고 싶어했다.
미술학교는 4년 과정이고 입학시험을 거쳐야 한다. 대체로 1년 예비과정을 다닌 후 입학시험을 치고 들어간다. 다행히 예비과정 없이 합격해서 입학했다. 초반기에는 미술 역사 등을 비롯해 미술의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다 배운다.
미술학교 졸업학년에 다닐 때 어느 날 요가일래는 어린 시절 한국의 고향집 사진과 리투아니아어 배울 때 사용한 책이나 연습책을 보여 달라고 했다.
"왜 그런 것이 필요해?"
"그냥 한번 궁금해서 보여 달라고 했어."
"한번 찾아볼게."
앨범을 뒤져 어린 시절 고향집 사진 한 장 그리고 20년 전 리투아니아어를 공부할 때 사용한 연습책을 찾았다. 그 연습책에는 연필로 쓴 내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자, 여기 있다."
"우와, 정말 오랜 된 것이다. 내가 잠시 빌려갔다가 돌려줄게"
그렇게 두 물건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드디어 지난해 5월 미술학교에서 졸업전시회가 열렸다. 당시 발트 3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느라 요가일래 졸업전시회에 가볼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전시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져온 작품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일까?
졸업작품의 동기(모티브, motive)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궁금하다면서 빌려간 것이기 때문이다. 요가일래 전공은 리놀륨 판화(리노컷 리노판화 linocut, linoleum etching)다.
요가일래의 판화 전시품은 모두 여섯 점이다.
아래 사진 왼쪽 하단에 있는 것이 작품의 동기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2002년 빌뉴스대학교에서 리투아니아어를 배울 때 사용한 연습책의 일부다.
요가일래는 아빠가 쓴 "AR?..."가 마음에 들어서 이것을 그대로 작품으로 만들어내었다. AR는 "까?"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리투아니아어 의문사다.
리투아니아어 수업 시간에 "한국에는 저수지와 호수도 많이 있다"라는 아빠의 한국 소개글에서 착안해서 "저수지와 호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어서 "한국에는 사계절이 있다"라는 아빠의 한국 소개글에서 착안해서 아래 작품을 만들었다. 겨울은 -, 봄은 ~+, 여름은 +, 가을은 ~- 그리고 순환은 원으로 표현했다.
여름과 겨울로 변해가는 중간과정에 있는 봄과 가을을 표시하기 위해 ~(물결, 흐름)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명은 "봄"이다.
아빠가 쓴 글씨 중에 "Kur?"가 마음에 들어서 아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글씨뿐만 아니라 의미가 깊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어 "kur"는 문장에 따라서 "어디서, 어디에, 어디로"라는 뜻을 모두 다 담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니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절로 떠오른다. 확실한 물음의 밝은 흰색과 불확실한 대답의 어두운 검은색이 잘 어울린다.
"한국의 지형은 북쪽(š)과 동쪽(r)에 산이 많고 남쪽(p)과 서(v)쪽에는 평야가 많다"라는 아빠의 한국 소개글에서 착안해서 아래 작품을 만들었다. 산은 곡선으로 평야는 직선으로 표현했다.
한국에서 어릴 적 살던 아빠의 시골집이다.
찍어 놓은 사진으로밖에 졸업전시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몹시 아쉽다. 아무런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가져간 아빠의 오래된 물건에서 착안해서 졸업작품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특히 자기의 근원 중 하나인 한국을 아빠가 리투아니아로 작문한 글에서 착안해서 이를 작품화한 것은 아빠에겐 크나큰 선물이자 감동 그 자체이다.
"아빠의 글씨와 한국소개를 졸업작품화해줘서 고마워~~~" "미술학교에 보내준 것에 내가 고마워 해야지."
피아노가 있는 거실에서 월요일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거의 쉼없이 들러오는 소리다. 왜냐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학교가 폐쇄되어서 온라인 원격으로 아내가 피아노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학생 여덟 명이 수업을 받는다. 학생 한 명씩 45분 수업을 받는다. 수업간 휴식은 5분이다. 설명하다보면 시간이 좀 길어져서 5분 휴식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리투아니아 음악학교 피아노 수업은 1대1 대면으로 이루어진다. 즉 교사 1명에 학생 1명이다.
거실에서 온라인 원격 수업을 마친 아내를 인터뷰한다.
"정식 수업과 온라인 원격 수업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나?"
"온라인 원격 수업이 훨씬 더 힘들다"
"무엇이 힘드나?"
"첫째는 인터넷 속도다. 피아노 치는 손가락이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소리의 지속성이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치는 순간의 소리는 들리지만 이어지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둘째는 학생이 어떻게 페달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볼 수가 없다. 페달은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고 소리를 지속시켜 그 소리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내는 데 매우 중요하다. 셋째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일대일로 대면해서 하는 수업일 경우 두 손으로 보여주면서 10초 설명하면 될 것을 60초나 더 설명해야 한다. 한 손은 피아노를 쳐야 하고 다른 한 손은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한다. 넷째는 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거나 학생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일대일 대면 수업보다는 온라인 원격 수업이 덜 긴장될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훨씬 더 긴장된다. 첫째 비대면 온라인 원격 수업 자체가 하나의 큰 장애다. 이런 장애 속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쳐야 할지 늘 긴장된다. 둘째는 마치 공개 수업하는 기분이다. 격리조치 기간으로 출근하지 않는 학부모가 학생 옆이나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 선택이나 감정 조절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다른 수업에 비해 피아노 온라인 수업이 더 힘들지 않나?"
"맞아.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수업은 노래나 합창 수업보다 더 힘들다."
"정식 수업과 온라인 원격 수업 효과를 비교하자면?"
"아무리 열성적으로 해도 온라인 원격 수업 효과는 정식 수업 효과의 50%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해."
* 아내의 학생이 연주를 하고 있다
"격리 기간 동안 온라인 수업을 하지 않기로 한 도시도 있다고 하는데..."
"리투아니아 음악학교는 자치정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치정부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온라인 수업을 하는 곳이 있고 하지 않은 곳도 있다. 제2의 도시 카우나스는 온라인 수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카우나스 음악학교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지 않고 교사들은 50% 월급만 받기로 했다. 빌뉴스 음악학교는 온라인 원격 수업을 하고 교사들은 정상적인 월급을 받는다."
"온라인 수업인냐? 월급 50%냐? 어느 것을 선호해?"
"가정 살림을 고려하면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고 정신적 편함을 추구하자면 월급 50%을 받는 것이 좋지. 온라인 원격 수업이 너무 힘들어 차라리 월급 50%만 받았으면 좋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전세계 확진자 수가 이미 백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 수가 6만6천 명에 이른다. 미국은 4월 3일 단 하루만에 새로운 확진자 수가 25,185명이다. 이를 두고 분명히 트럼프는 미국의 코로나 진단검사 속도가 세계 최고라고 자화자찬할 수도 있겠다.
프랑스는 4월 3일 하루 새 확진자 수가 5,233명이고 하루 사망자 수가 이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20명이다. 총 확진자가 64,338명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휴교령에 이어서 전국민 이동제한령까지 내려졌다. 학교가 닫히자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 코로나19로 치러질지가 불투명한 고등학교졸업시험을 앞두고 있는 요가일래
4월 3일(금요일)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해 올 여름에 치를 바칼로레아(baccalauréat, 줄임말 bac)가 취소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시험은 고등학교 졸업시험으로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된다. 50% 이상의 점수를 받는 모든 학생에게 프랑스 대학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논술과 철학 시험이 필수인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1808년 처음 시작된 시험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취소된 적이 없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시험이다. 드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 모순이 초래한 1968년 5월 학생과 노동자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 시험은 치러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바칼로레아 대신 학생들은 1년 동안 시험과 숙제로 얻은 점수를 기반으로 평균 점수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어려운 현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간소하고 안전하고 공정한 해결책이다. 지금의 봉쇄 기간 동안 얻은 점수는 계산에 넣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출처].
현재 살고 있는 나라 리투아니아 졸업시험은 어떻게 될까?
딸 요가일래가 고등학교 졸업반이어서 걱정이 된다. 이 졸업시험은 대학입학시험에 해당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아서 계속 휴교 기간이 길어진다면 리투아니아도 프랑스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투아니아도 프랑스처럼 할 수 있을 텐데 너 평소 성적 괜찮아?"
"응, 좋아. 걱정하지마."
"아이엘츠(IELTS) 시험 성적을 2월에 받아 놓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게."
(요가일래는 지난 1월부터 2개월만 학원을 다닌 후 2월 23일 시험을 치러 아주 만족한 점수를 얻었다.)
한편 요즘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숲에는 봄의 전령사 노루귀꽃이 쌓인 낙엽을 뚫고 피어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이맘때 숲에서 만난 귀한 분홍색 노루귀꽃이다. 격리조치 초기에는 산책을 권하더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가격리를 권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자연 속 노루귀꽃을 감상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 앞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개벚나무는 꽃망울을 틔우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만 밤새 겨울 내내 오지 않던 눈을 맞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햇살 내리쬐는 날에는 아이들이 뛰는 노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 또한 코로나19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용금지를 뜻하는 줄이 놀이기구를 감싸고 있다.
아, 빨강색 노란색 줄이 언제 걷힐까?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하루빨리 아파트 발코니 창문을 통해 듣고 싶다. 거실에서 온라인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아내도 하루빨리 학교로 정상 출근하면 좋겠다.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에 참가하는 딸도 하루빨리 학교로 등교해서 집에서 나 홀로 마음껏 음량을 높여 여행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싶다. 아, 그날이여! 하루빨리 오소서...
11월 중순부터 가급적이면 휴대전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계기는 휴대전화를 통신회사 수리소에 맡긴 것이다. 그 전에는 집에서도 휴대전화를 거의 손에 놓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컴퓨터 옆에 놓아두고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사회교제망을 휴대폰으로 사용했다. 잠에 떨어지기 직전까지도 침대에서 휴대전화기를 뉴스 등을 읽어야 했다.
그런데 휴대전화기가 수리소에 있는 동안 처음에는 없어서 아주 불편했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없는 것에 차차 익숙해졌다. 자기 전에는 책을 읽고, 잠시 쉴 때에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12월 중순 통신회사로부터 새 전화기 삼성 갤럭시 S7 엣지로 교체 받은 이후부터는 무선뿐만 아니라 아예 전화기 자체를 꺼서 작업방에 놓고 침실로 간다.
3일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딸아이의 하얀 휴대전화기가 딸아이 방문 앞 복도에 놓여있었다. 휴대전화기 전원도 꺼져 있었다.
이틀 전에도 역시 방문 앞 복도에 휴대전화기가 놓여있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쉽게 알 수가 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이렇게 아빠따라 자기 전에 휴대전화기를 방 밖에 놓고 자는 것을 스스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딸아이가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아무쪼록 우리 집 세 식구 모두가 이 습관에 익숙해져 앞으로도 쭉 이어가면 좋겠다. 새해부턴 아내도 동참하길 기대해본다. 아래는 아내의 기타 반주에 노래하는 딸아이 영상이다.
유럽 리투아니아에 요즘 날씨가 맑아 기분마저 좋아지고 있다. 마침내 하늘이 잿빛 구름을 걷어내고 파란 자기 실체를 드러내는 날이 잦아지고 있다. 이렇게 하늘도 완연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교 1학년생 딸아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기분이 엄청 좋았다.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왜 기분이 좋니?"
"오늘 수학 시험 아주 잘 봤어. 만점 받을 거야."
"지난주에 보고 또 수학 시험이 있었어?"
"여러 명이 다시 시험 봤어."
사연인즉 이렇다.
지지난해까지만 해도 딸아이는 수학을 아주 힘들어했지만 지난해부터 수학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집에서도 거의 부모 도움 없이도 혼자 쉽게 잘했다. 이 덕분에 반에서 성적도 상위권이다.
3월 초순까지 1등 하던 딸아이는 중순이 되자 20등으로 내려앉았다. 어떻게 짧은 기간에 1등이 20등이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평가를 하는데 모두가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3월 전체 과목 평균 성적 90점 이상을 받은 학생이 29명중 무려 22명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시험 번수가 학생마다 다르다. 어떤 학생은 5번이고, 어떤 학생은 13번이다. 어떤 학생은 5번 시험 쳐서 평균 점수 9.8을 받았고, 어떤 학생은 13번 시험 쳐서 9.5를 받았다. 등위는 전자 학생이 더 위에 있다.
지난주 백분율를 공부했는데 딸아이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시험 전날 자기 분에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공부했다.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으나,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반밖에 받지 못했다. 그래서 반에서 등수가 급격히 하락했다.
부모 입장에선 쭉 최상위권으로 그대로 끝까지 가주었으면 좋았겠는데 그렇하지 못해 아쉬웠다. 성적을 인터넷으로 확인한 후 한마디 살짝 했다.
"네가 반에서 하위권으로 내려가 마음이 좀 아프네."
"나도 마찬가지야."
"이제 텔레비젼도 덜 보고, 인터넷도 덜 하고, 취미생활도 덜 하고..."
"아빠는 학교 점수로 날 사랑해? 아니면 아빠 딸로서 날 사랑해?"
"그거야, 아빠 딸로서 사랑하지."
"아빠 딸로서 날 사랑하면 더 이상 점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 내가 나중에 좋은 사람이 될 테니까 지금 점수가 중요하지 않아."
"그래, 점수로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않을 게. 하지만 그래도 좋으면 좋지..."
재시험을 보다
지난주 수학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못 받은 학생이 비교적 많았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이는 목적이 성적으로 학생 순위를 매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 습득을 점검하는 데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지난번 나쁜 점수는 기록에서 삭제된다.
"아빠는 학교 점수로 날 사랑해? 아니면 아빠 딸로서 날 사랑해?"라는 딸아이의 말이 오래도록 내 귀에 남을 것이다. 이날 점수가 낮다고 크게 야단치지 않기를 참 잘했다. 그렇다가는 딸에게 깊은 상처만 줄었을 법하다.
* 요즘 실팔찌 만들기에 푹 빠진 딸아이 요가일래
공부가 전부인 경쟁 사회에 익숙해진 옛 버릇이 나도 모르게 그날 튀어나와버렸다. 덕분에 딸아이로부터 한 수 배우게 되었다. 어제도 딸아이는 한국 방송을 보면서 공부보다 실팔찌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겨울 내내 거의 오지 않던 눈이 3월 4일 수요일 밤에 엄청 내렸다. 이번 겨울은 유럽에서 25여년 살면서 눈이 가장 적은 겨울이고, 날씨가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그래서 아파트 뜰에는 벌써 벛꽃나무와 사과나무와 새싹을 튀우고 있었다. 그런덴 이번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인 듯 이날 폭설이 내렸다.
* 눈에 파뭏힌 우리 집 뜰의 사과나무
목요일 아침 13살 딸아이 요가일래는 혼자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학교로 갔다. 얼마 후 아내의 휴대전화로 문자쪽지가 날라왔다.
내용인즉 학교 가는 길에 시상이 떠올라서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보내준 시를 잘 읽어봤다. 마음에 들었어."
"그래?!"
"그런데 학교 갈 때는 시 쓰는 것도 좋지만 사방으로 조심해서 가야지."
"내가 앞을 잘 보면서 문자를 쳤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리투아니아어로 쓴 원작시를 한국어로 한번 번역해보았다.
13살 딸아이가 모처럼 내린 눈에 어떤 느낌을 받아 시를 썼을까...
OBELAITE!
Ak, vargšele obelaite, Mūsų kiemo karailaite.
Negailestinga ta žiema, Be saiko skriausdama tave.
Buvo išdygę - mieli ragiukai
Ir maži maži pumpuriukai.
O ji vis metė savo sniegą,
Tad nušalai, mieloji.
Šią vasarą nepamaitinsi,
Saldžiarūgščiais obuoliais.
Tai žaismas žmonių jausmais.
Tas sniegas buvo kaip druska
Berta ant mano kruvinos žaizdos.
사과나무
아, 불쌍한 사과나무,
우리 뜰의 여왕이여.
무자비한 겨울이 너를
절제 없이 손상시켰네.
귀여운 뿔들과 작고 작은
새싹들이 돋아났는데
겨울이 그만 눈을 던졌고
귀염이 네가 얼어버렸네.
이번 여름 달고 신 사과를
먹일 수가 없게 되었네.
이는 사람의 느낌과 장난질.
눈은 내 피나는 상처에
뿌려진 소금과 같았구나.
나 같으면 아침 등교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간만에 내린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면서 기분 좋게 갔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딸아이는 눈 속에 파뭏혀버린 사과나무의 새싹이 얼게 된 것에 마음이 많이 아파서 이런 시를 쓰게 되었다.
나타난 것에 대한 기쁨보다 감춰진 것에 대한 슬픔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인생에서는 필요할 때도 있겠다. 이런 마음을 자아낸 딸아이가 심신이 다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벌써 봄계절이 시작된다. 25년 동안 유럽에 살면서 이번 겨울만큼 눈이 적고 춥지 않은 때는 없었다.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해마다 한 두 번 고생시키던 감기도 2월 중순까지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하다가 이번 겨울에 무감기 신기록을 세울 것 같았다. 같은 방에 자는 아내가 감기에 들었지만, 거의 다 나을 때까지도 나에게 옮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목이 조금씩 아파오더니 콧물, 기침 등으로 이어졌다. 한 집에 사는 식구라 어쩔 수가 없다. ㅎㅎㅎ 함께 사는 딸아이 요가일래는 1월 초순에 이미 감기를 겪었다.
나는 감기에 들면 가급적이면 철저히 폐쇄적으로 생활하려고 한다. 방을 따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 오거나 내 몸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것이 딸에게 가장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침 인사, 낮 인사, 저녁 인사 등 하루에도 여러 번 포옹으로 한다.
어느 순간 내가 감기에 든 것을 잊어버린 딸아이는 습관적으로 포옹하려고 다가온다.
"안 돼!!!! 아빠 감기 들었어."
"정말 안고 싶어."
"아빠가 감기 나으면 많이 안아줄게."
저만치 떨어져 있던 딸아이는 말한다.
"아빠, 두 팔을 벌려라. 나도 두 팔을 벌린다. 자 , 우리 포옹하자."
"그래, 우리 포옹했다. 잘 자라~~~"
"아빠, 우리가 이렇게 포옹하다니 정말 미쳐나봐 ㅎㅎㅎ"
어제는 요가일래가 다니는 음악학교에서 노래 전공자 독창과 합장 공연이 있었다. 유명 작곡가를 초대하고, 학생들이 그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행사였다.
"오늘 아빠가 촬영하러 갈까?"
"와야지. 내가 노래 잘 부를거야."
"그래. 알았다."
이렇게 해서 공연 시간에 학교에 가서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노래는 리투아니아어이고, 제목은 "노래가 바람 속에 소리난다"이다.
노래가 끝난 후 잘 했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으나 아직 콧물과 기침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올해는 한국을 떠나 산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니 한 가지 생활 변화를 꼽으라면 바로 재치기이다. 이제는 라면을 끓일 때나 김치를 담글 때나 늘 재치기한다. 심지어 고춧가루가 든 매운 음식을 먹을 때도 재치기한다. 바로 매운 고춧가루가 코를 자극해서 이를 유발한다. 한국 방문시 식탁에선 재치기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매운 라면은 외국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별미 중 별미일 것이다. 아버지만 한국인인 13살 딸아이요가일래는 라면을 좋아하고 잘 먹기 때문에 자기도 완전한 한국인이라고 우겨댄다.
똑 같은 방법으로 엄마가 끓이는 라면은 맛이 없고, 아빠가 끓이는 라면이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라면 요리는 늘 내 몫이다. 매울 것 같아 라면스프를 다 넣지 않고 끓여주면 금방 반응이 나온다.
"아빠, 난 매운 라면을 좋아해. 이번에도 스프 다 안 넣었지?"
"그래"
"앞으로 다 넣어줘."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아주 드물게 라면을 끓여 준다. 지난 금요일 기특하게도 딸아이는 손님 맞이를 위해 큼직한 거실 창문 세 개를 딱는 중이었다.
"아빠, 오늘 라면 끓여줘."
"매운 것 자주 먹으면 안 좋아."
"반드시 해줘야 돼."
"왜?"
"내가 라면을 먹으면 목 구멍이 따뜻해지고 노래가 더 잘 나와."
"ㅎㅎㅎㅎ 라면을 먹으면 노래를 더 잘 부른다고?! 그럼 오늘 해줘야지."
"내가 음악학교에 갈 때마다 라면을 끓어줘."
라면 꼭 먹으려는 이유를 이날은 노래 부르기에서 찾았다.
라면과 노래 부르기라...
요가일래의 주장대로 정말 매운 라면을 먹으면 목이 트이고 노래를 더 잘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이 된다면 "노래방 가기 전 반드시 라면을 드세요"라는 라면광고가 나올 법하다. ㅎㅎㅎ
이제 중학생 1학년인 딸은 성능 좋은 컴퓨터에 대한 욕심이 없다. 작은 노트북을 사용하기에 화면이 큰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해도 그냥 만족해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미국에서 인턴생활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얻은 언니가 맥으로 갈아탔다. 그래서 화면이 15.7인치 노트북을 물려받게 되었다.
한번 컴퓨터를 손봐주려고 마음 먹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그 동안 인터넷을 하는데 화면 여기저기에서 자꾸 광고가 뜬다고 몇 차례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을 정도겠지 생각하고 차일피일을 미루었다. 그사이 딸아이 부탁도 잠잠해졌다. 그런데 새해에 또 다시 부탁했다. 새해 첫날의 부탁이라 순간적으로 바쁜 일이 있었지만 손을 봐주기로 했다.
같이 제어판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다. 공짜 프로그램들을 사용하는 댓가로 광고를 뜰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몇몇 프로그램을 지워도 효과가 없었다. 한 두 개 프로그램을 더 지우니 이제 인터넷을 하는 중에 화면에 광고가 사라졌다. 딸아이의 감탄사가 지어졌다.
"아빠는 정말 사람이 아니야!!!"
"그럼, 뭔데?"
"하늘에서 온 천재야!!!"
꼴랑 컴퓨터를 좀 손봐줬더니 이렇게 딸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그동안 광고로 열을 얼마나 받았으면 이런 칭찬을 다 할까... 딸의 부탁을 내 일이 아니라 무심하게 대한 것에 미안해 칭찬에 하하 웃지를 못했다. 진짝에 해결해줄 것을 말이야....
* 광고창 괴롭힘 없이 인터넷을 즐기고 있는 딸아이
"어디 또 아빠가 컴퓨터 손봐줄까?"
"아니. 오늘 아빠 힘들었잖아. 이제 나를 위해 고생하지마!!!"
아빠가 고작 30여분 손봤는데 엄청나게 고생한 것으로 이해하는 딸아이...
"너를 위한 것이라면 힘든 일도 힘들지 않지... "
'괜찮아. 이제 제일 안 좋은 것을 해결해줬잖아."
다음날 딸아이는 밀가루와 달걀을 엄마와 함께 가서 구입해 혼자서 집에서 직접 빵과자를 구웠다.
이렇게 맛있는 빵과자가 완성되었다. 촛불까지 켜놓고 아빠를 불렸다.
"이거 어제 컴퓨터 손봐준 것에 대한 선물이야."
"정말? 답례가 너무 값지다!!!"
컴퓨터 손봐줬다고 "아빠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렇게 보송보송한 빵과자까지 선물로 받다니 참 못난 아빠가 딸 가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이 요 경우가 아닐까 ㅋㅋㅋ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인 딸 요가일래는 일반학교외에도 음악학교를 다닌다. 17일 수요일 한 해를 마감하는 공연회가 열렸다. 음악학교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많은 학생수로 공연에 출연하기가 쉽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노래 부문에서는 주로 합창단이 출연했다. 독창을 전공하는 딸아이는 학생들이 자원해서 들어가는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 음악학교 연말 연주회
지금껏 매년 이 공연회에 출연했는데 올해는 독창으로 뽑히지 않았다. 변성기 나이로 애매했다. 그냥 합창 한 곡에 참가했다. 요가일래는 아주 좋아라 했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좀 아쉬웠다. 아내는 교사 뒷풀이로 학교에 남고, 요가일래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길을 걸으면서 요가일래와 한 대화가 마음에 와 닿아 남기고자 한다.
"아빠, 내가 정말 아빠를 사랑해."
"거짓말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
"오늘 음악학교로 오면서 아빠에 많이 불평했잖아."
"아빠, 내가 엄마하고 얼마나 싸우는지 알잖아. 그래도 난 엄마를 사랑해."
"그래? 싸우지만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다는 말이네."
"맞아. 아빠가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파.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조차 하지 마."
"그래 알았다."
상대방에게 일시적으로 불평하더라도 그 바탕에 서로의 근본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 불평은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한 두 가지 더 아버지와 딸 사이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시간이 필요하잖아!
일전에 지인이 요가일래에게 실팔찌를 서너 개 만들어줄 것을 부탁했다. 짬짬이 손목띠를 만들고 있었다.
"이거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해?"
"한 3시간이면 돼."
"그러면 쉬지 않고 꼭박하면 하루만에 다 할 수 있겠네."
"없지. 내가 그렇게 안 하지."
"왜?"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잖아! 아빠도 일만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해."
일이 있으면 꼭 빨리 끝내려고 그 일에만 완전히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에도 관심 좀 가져라는 말이다.
* 요가일래의 취미 - 실팔찌 만들기
아빠도 먹고 싶잖아
어느 날 밤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양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와~ 샌드위치 맛있겠다."
"내가 했으니 맛있지. 아빠도 먹을래?"
"내가 먹으면 너한테 양이 부족하잖아. 네가 다 먹어."
"아니야. 내 배에 있을 것이 아빠 배에 있어도 내가 배부르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세상에 내 배만을 채유려는 사람이 세상이 비일비재한데 이날 우리집 부엌에는 달랐다. 요가일래가 커더라도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꼭 이런 생각을 간직하길 바란다.
아빠만큼 키 클래
딸아이는 또래에서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네가 아빠를 닮아서 키가 작나? 아빠를 닮지 마."
"괜찮아.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딸은 아빠 키만큼 자라."
"정말 그럴까? 그래도 예외가 있잖아"
"그냥 아빠만큼 키 클래."
작은 키를 크게 하기 위해 수술까지 하는 세상인데 그냥 아빠처럼 작아도 좋다라는 딸아이...
있는 그대로를 좋아해
종종 딸의 귀엽고 기특한 순간을 보면 묻곤 한다.
"아이구, 네가 어떻게 아빠한테 태어났니?"
"세상에는 더 좋은 사람도 많고, 더 넉넉한 사람도 많고..."
"그래도 난 아빠가 좋아."
"왜?"
"아빠는 내 아빠니까."
빈부귀천의 척도로 아빠를 보지 않고 '아빠는 내 아빠니까'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좋아하는 딸아이...
이렇게 딸아이는 어린 내 딸이 아니라 나를 인간적으로 더 성숙시키는 존재로 다가온다. 어른이 아이에게 배운다라는 말은 이제 우리 집의 일상사이다.
일전에 "중학생이 되자 확~ 변한 딸의 생활상" 글에서 유럽 리투아니아 중학교 1학년생 수업내용을 소개했다. 오늘은 시험 성적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학교 1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요즘 흔히 말한다.
"내일 시험 있어."
"또 시험이야!"
"모레도 시험 있어!"
"뭐!?"
"힘들겠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시험일이 다가오면 밤을 꼬박 새면서까지 공부했는데, 딸아이는 평소처럼 밤 10시에 잠을 잔다. 왜 그럴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따로 없어
어느 특정한 날을 정해 그날 하루 내내 모든 과목 시험을 치지 않는다. 과목마다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시험일을 달리한다. 동일한 내용에 대한 수업을 서너 차례 진행한 후 선생님이 이 내용에 대해 학생들이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낸다. 시험공부 분량이 많지 않아서 한꺼번에 힘들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비교적 자주 점검하기 때문에 평소 느슨하게 공부하다가 시험일이 다가와서야 벼락치기 공부하는 일이 아직까지는 없었다. 한국에 있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여긴 따로 없다.
평가점수는 1-10점이다. 아래는 학생수 29명의 성적표이다. 이번 학기 지금까지 평균성적이 9점(90점)이상이 12명, 8점(80점)이상이 7명, 7점(70점)이상이 7명이다. 80점이상 학생이 19명으로 전체의 과반수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다. 아래 붉은 칸을 한 것이 과목(러시아어)당 평가번수(Pazymiu)이다. 한 학생은 6번, 다른 학생은 10번, 또 다른 학생은 15번이다. 학생마다 다르다. 동일한 번수로 시험을 쳐서 얻은 점수 합계를 나눠 평균점수를 내고 순위를 정해야 맞을 듯한테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또 다시 그 까닭이 궁금해진다. 그 답이 아래 붉은 칸에 나와 있다. 필기시험 하나만으로 과목당 성적을 평가하지 않고, 그 과목에 대한 지식습득을 평가는 내용이 여러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번수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성적내용은 복잡다단
성적에 포함되는 평가내용은 이렇다.
실습
자립작업: 시험문제를 주면 학생들이 교과서나 기타 자료 등을 이용해 스스로 답을 내는것
이론
취합 (반복되는 과제 제출을 종합해서 평가)
다른 기관이 발행한 평가(예, 다른 기관이 주최하는 수학 경시 대회 등 참가해서 얻은 점수)
필기시험
숙제
자립이나 가정 학습 점수 (병 등으로 결석일이 많은 학생의 경우)
일상사 (일반적인 학생들의 일)
교실일 (예, 교실 환경미화)
프로젝트 (과제 발표)
막상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참 복잡하다. 하지만 과목당 필기시험 하나만으로 단순히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내용을 종합해서 그 과목의 성적을 매기는 것이 특이하다. 그래서 학생마다 평가번수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초유스의 동유럽> 블로그를 운영한 지 벌써 만 7년이 되었다. 이 블로그의 한 부류를 차지하는 아버지와 딸아이 이야기의 주인공 요가일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언제 다 자라나? 휴~"하던 시절이 훌쩍 가버렸다. 이제는 "벌써~ 소녀가 되었네!. 사춘기를 잘 넘겨야할텐데"라는 때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는 시간이 빨리 가면 참 좋겠다라고 바랬는데 지나고 나니 세월은 역시 빨랐다. 이제 6년을 더 학교 다닌 후 고등학교를 마치고 언니처럼 외국에 공부하러 가면 함께 지낼 시간도 사실 그렇게 많지가 않다.
지난 여름 종종 큰소리로 대꾸하기에 한번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이유없이 대꾸하면 안 되잖아!"
"나도 알아. 선생님이 우리가 그런 나이에 있다고 해서."
"그래도 아빠가 늘 마음이 예뻐야 된다고 네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쳤는데 이런 때 그 덕을 좀 보자."
"나도 알아. 아마 이런 날이 빨리 지나가면 괜찮을거야."
더 이상 나무랄 수가 없었다.
9월 1일 요가일래는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이 되었다. 먼저 유럽 리투아니아의 중학교 수업시간표를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1주일 수업시간은 총 31시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1주일 수업시간이 22시간이다. 6년 후 11시간이 더 추가되었다. 가장 수업시간(5시간)이 많은 과목은 국어인 리투아니아어다. 이어서 영어와 수학이 각각 4시간이다. 역사, 생물, 지리, 러시아어, 체육, 작업이 각각 두 시간이다. 물리, 미술, 음악, 신앙, 정보기술, 학급시간이 각각 1시간이다. 역시 여기도 국영수가 최우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담임선생님과 조회는 매일 열리지 않고 월요일 딱 1시간이다.
그렇다면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생활에서 확~ 변한 것은 무엇일까?
9월 1일 개학한 날 밤 다음날 학교에 가기 위해 밤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딸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 부모님이 일어나야 돼?" (즉 일어나서 깨우고 아침밥을 챙겨줘야 돼나?)
"아니.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어. 내가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까 그냥 부모님은 계속 자세요. 내가 혼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서 먹고 학교에 갈거야."
"정말 그래도 돼?"
"정말이야. 이제부턴 내가 한다. 나도 이제 스스로 해야 할 나이잖아."
"그래. 그 결심을 존중한다."
그 후 며칠 동안 정말 딸아이는 스스로 잘 했다. 어느 날 아침 9시경 일어나 침대에서 뒤척이면서 '오늘도 학교에 잘 가겠지'하고 속으로 딸아이를 칭찬했다. 한참 후 일어나 세수하고 거실로 가는데 딸아이의 방문에 닫혀져 있었다. 혹시나 하고 열어보았더니 딸아이가 여전히 쿨쿨 자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보다 학교에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욕심에 자명종 시계를 6시 반에 맞추어놓았다. 일어났지만 3개월 여름방학에 여전히 익숙해져 있는 몸을 쉽게 일으켜세울 수가 없었다.
침실에 있는 아내에게 살짝 와서 상황을 설명하면서 야단을 치지 말자고 했다. 이번을 계기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후 요가일래는 휴대폰 자명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으로 맞춰놓았다.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이렇게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후에 음악학교로 출근하는 아내는 보통 늦게 잔다. 거의 집에서 일하는 나도 늦게 잔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 중 누가 먼저 일어나야 했다.
"당신이 내일 일찍 일어나 딸아이 등교를 도와줘!"라고 서로에게 미루지 않게 되었다.
이제 곧 만 13살이 되는 딸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부모 도움없이 등교를 하게 되었다. 이런 자립심이 지속되어 만 18세 성인이 되면 정말 스스로 세상살기에 익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는 이틀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수요일 아침 학교 가려고 하는 데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했다. 아직 고열은 없지만, 혹시 시간이 지나면 생길 수도 있어서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다.
목요일 아침에도 기침했다.
"오늘은 학교에 가도 되잖아?"
"자연과목 시험이 있어 안 갈래. 어제 학교에 안 갔으니 준비가 안 되었어."
"그래도 가야지."
"엄마가 안 가도 된다고 말했어."
목요일 저녁에도 간간히 기침했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지?"
"안 걸거야."
"왜?
"금요일이잖아."
딸아이가 가벼운 감기 증상인데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감기로부터 완쾌돼야 한다. 4월 13일 노래경연으로 텔레비전 출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으니 실팔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딸아이
몸이 아파도 혼이 날까봐, 아니면 적어도 개근상이라도 타야지 하는 욕심 때문에 중고등학교를 모두 합쳐 6년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은 아빠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유럽에 살다보니 자녀에게 부모의 생각이나 의도를 강요하지 않게 되는 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아뭏든 요즘 여기 아이들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약간 기침한다고 학교에 안 가도 누가 그렇게 나무라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공부 못 한다고 부모로부터 심하게 꾸중을 듣는다거나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는 것 자체가 여기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아래는 중국 학교 교실을 담은 영상이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매질하는 모습이다.
이 영상을 본 우리 집 식구 반응이다.
"어떻게 선생님이 저렇게 학생들을 때릴 수 있지?!"
"정말 잔인하다."
"나중에 선생님 팔이 엄청 아플텐데..."
아래는 중국 학교 교실과는 완전히 딴판인 러시아 학교 교실을 담은 영상이다.
학생이 나이든 선생님의 머리에 쓰레기통을 뒤집어 씌운다.
이 영상을 본 우리 집 식구 반응이다.
"참으로 러시아스럽다."
"존중이라고는 티클만큼도 없다."
"차라리 중국 교실이 더 좋다."
중국 교실만 보여주면 잔인함에 분노하게 되고, 러시아 교실을 보여주면 훈육매질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선생과 학생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존중이 완전히 마비된 사회를 이 러시아 교실에서 보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가끔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초등학교 4년까지는 일체의 지식교육을 하지 말고,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덕목을 기르는 인성교육만 했으면 좋겠다.
근래에 들어와 학교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의 하교 시간이 늦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에 남아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놓아두다가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아내가 수요일 저녁에 한마디했다.
"앞으로는 음악학교에 가지 않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한 시간 정도 늦게 돌아오는 것을 허락한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노는 것도 정말 중요해. 엄마가 이해해줘야지."
"그래도 안 돼. 숙제도 해야 되고, 음악학교에도 가야 되고."
아내의 결정이 쉽게 이해된다. 자녀들이 학교에 남아서 놀다보면 무슨 일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사춘기에 점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목요일이었다. 어머니의 결정을 하루도 안 돼서 잊어버렸는지 딸아이가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3시까지 돌아와야 했다. 딸아이는 3시 조금 후에 돌아오겠다는 문자쪽지를 보냈다. 그런데 시침은 점점 4시로 향해는데 딸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 걱정이 되어서 쪽지를 보냈다.
답은 이렇다:
내가 빨리 올게. 혼내지마. 친구를 혼내줬어. 엄마한데 내가 그렇게 늦게 왔는거 말하지마.
보통 한국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머니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정다감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깥 양반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회초리를 들고 훈계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어제 목요일 한국어 수업시간에 리투아니아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무서워했나? 어머니를 무서워했나?"
한결같은 대답은 "어머니를 무서워했다."였다.
"대체로 유럽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무서워할까?"
"그럴 것이다."
"왜 그럴까?"
"그냥 대대로 ㅎㅎㅎ."
유럽 아이들이 부모가 혼내는 방법 중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허리띠로 엉덩이 맞기다.
자, 왜 딸아이는 목요일 늦었을까?
친구를 혼내주느라 늦었다고 했다. 여기서 혼내주다는 설득하다가 맞는 표현이다. 학교에서 딸아이가 근래 서로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딸(A)을 포함해서 셋(A, B, C)이다. 그런데 B가 C에게 삐져서 사이가 좋지 않다. B는 딸에게 더 이상 C와 같이 놀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수업이 다 끝난 후 학교에 남아서 B를 설득했다.
"결과는?"
"친구(B)가 조금 좋아졌어. 내일 학교에 가서 더 말해야 돼. 그런데 내가 오늘 늦었으니 내일(금요일)은 내가 놀지 않고 수업 끝나고 바로 집에 올게."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에 두 번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생활지도 선생님이 어느 학생이 담배를 피웠을까를 조사하고 있었다. 답은 누가 바로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가이다. 각 반을 돌면서 누가 최근에 화장실을 사용했는지 탐문 조사를 했다. 그 조사 대상에 딸아이가 걸렸다. 같은 반에 누군가 딸아이가 최근에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학교 화장실을 꺼리는 딸아이인데 이 날 학교 화장실을 사용했다. 이에 딸아이는 생활지도 선생님에게 불러서 입냄새를 맡게 했다. 결과는 딸아이에게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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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린 다 사람이잖아
딸아이는 최근 들어 한 해 저학년생인 5학년생들과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들이 이상하게 딸아이를 쳐다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반 친구들과 놀아야지 학년이 다른 학생들과 노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 요가일래 [사진출처 facebook,com]
딸아이의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반 친구들이 이상해."
"왜?"
"학년이 다르다고 해서 친구가 도리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되었어. 우리는 사람이니까 친구가 될 수 있어야 돼."
"그래 지위나 연령, 피부, 종교, 민족, 신념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 부담없는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반 친구들이 뭐라고 해도 네가 지금처럼 학년이 다른 학생들과 친구하도록 해. 이유는 네 말처럼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니까."
이날 따라 딸아이의 "우린 다 사람이잖아"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남녀노소, 지위고하에 얽매여 가장 큰 근본인 "우리 모두 사람이잖아"를 망각한 경우가 참으로 흔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