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태어난 딸아이 요가일래는 지난 9월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리투아니아 음악학교는 일반학교 수업을 마치고 가는 방과 후 학교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식학교이다.
한국에서는 아주 흔한 피아노나 음악 학원이 리투아니아에는 없다. 부모가 자녀의 음악적 소질을 발견하면 음악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면 된다. 이 음악학교는 보통 만 5세부터 10세까지 어린이들이 입학할 수 있으며, 최대 10년(보통 8년)간 다닌다.
이곳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색스폰, 트럼펫, 클라리넷, 기타, 아코디언 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의 전통악기인 캉클레스, 비르비네 등도 가르친다. 자신이 선택한 악기 학습은 일대일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와는 달리 요가일래는 노래를 선택했다. 피아노는 필수적으로 가르치고, 또한 피아노보다는 노래가 아이에게 덜 부담스러울 것 같아 선택했다. 요가일래는 음악학교에서 일주일에 피아노 1시간, 합창 1시간, 노래 1시간, 창가법 2시간을 배운다. 한 달 수업료는 40리타스(2만2천원)이다.
성탄절을 맞이해 지난 3개월 동안 배운 실력을 부모들에게 선보이는 발표회가 최근 열렸다. 피아노, 합창, 노래 세 분야로 발표했다. 발표회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만 7세 요가일래를 영상에 담아보았다.
매년 11월 하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는 어린이와 아기 용품 박람회가 열린다. 이 박람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시합이 있다. 바로 아직 혼자 스스로 걷지 못하는 4개월에서 10개월 된 아기들이 겨루는 기어달리기이다.
아기의 소중함과 가족의 화합, 나아가 출산 장려의 취지로 열리는 행사이다. 총길이는 4미터. 출발선엔 아버지 혹은 어머니, 그리그 도착선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인형, 리모컨 등 아기 선수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안간 힘을 쏟고 있다.
출발은 했으나 뒤로 돌아 앉아버리는 아이, 가다가 옆으로 새는 아이, 결승점 앞에서 멈춰버리는 아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서는 아이......
리투아니아 인구는 340만명이다. 유럽연합 통계청은 2050년 리투아니아 인구를 250만명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리투아니아 정부는 400만명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국가 중 하나에 속한다.
리투아니아 출산모는 현재 출산 첫 해는 월급 100%를 받고, 다음 해는 85%를 받는다. 직장을 다니다가 출산을 한 부모들은 큰 어려움 없이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 아이가 만 2세가 되면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으로 돌아간다. 이런 정책 덕분인지 2005년 8.62, 2006년 8.75, 2007년 8.87, 2008년 9로 출생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오늘 11일부터 국제빙상경기연맹이 개최하는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이 주니어 경기로 시작되었다. 한국 고양 어울림누리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경기의 최대 관심사는 말할 것도 없이 김연아(18세) 선수가 처음 국내에서 열리는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이다.
'피겨 요정', '은반 요정', '국민 요정'으로 불리지는 김연아 선수가 이번 경기에도 최고의 성적을 거둬 한국 피겨의 위상을 마음껏 세상에 알리기를 바란다. 김연아 선수가 화제에 오를 때마다 리투아니아 교민 사회에서 떠오르는 어린이가 있다. 바로 리투아니아에서 피겨 스케이팅 어린이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 레베카(Kim Rebeka)이다.
1998년에 태어난 김 레베카는 리투아니아뿐만 아니라 발트 3국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미래의 유망주이다. 만7세에 피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교민들 사이에 '리투아니아의 김연아'로 통하고 있는 레베카가 앞으로 더욱 기량을 닦아 김연아 선수와 같은 훌륭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 동안 여러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아직 한 번도 레베카의 피겨 스케이팅 현장을 가보지 못해 아쉽다. 그 아쉬움을 유튜브 동영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기회 되면 꼭 현장을 찾아가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앞으로 제2의, 제3의, 제4의 김연아가 많이 나와서 한국 피겨 스케이팅이 황금기를 이루기를 바란다.
리투아니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어린이 선수 김 레베카에 대한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그 동안 딸아이 요가일래에 대한 글을 올릴 때마다 좋은 반응을 보여준 독자들에게 우선 감사한다. 블로거뉴스라 사적인 일에 대해 얘기하기가 꺼려진다. 더군다나,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딸아이의 사생활이 불필요하게 밖으로 누수 되지 않도록 호시탐탐 점검하려는 아내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요가일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나 친척, 지인들에게 근황을 알리는 데에는 사실 블로그가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각설하고, 오늘은 리투아니아 어린이들의 생일잔치에 대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요즈음은 이벤트성 식당이나 놀이장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어린이들도 늘고 있지만, 대부분 집에서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이 모여 잔치를 한다. 생일이 주중이더라도 주말에 모인다.
아이 생일을 빙자하여 어른들이 한 잔 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이날은 가급적 자제한다. 식사를 하고 케이크를 먹는다. 아이들은 케이크에 불 끄는 재미로 생일을 기다린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바탕 춤으로 몸을 푼다.
밤 12시가 되면 생일잔치가 절정에 이르고 성스러운 의식을 치른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생일을 맞은 사람을 의자에 앉혀 그 사람의 나이만큼 의자를 들어올린다. 이 의식이 끝나면 비로소 한 살 더 먹게 된다. 밤 12시까지 기다라는 것을 보면서 제사를 자정에 지내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렇게 사와 생은 밤 12시에 서로 만나 하나가 되는 것 같다.
의자 들어올리기는 특히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것으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생일잔치의 상징이다. 딸아이 요가일래의 지난 해 여섯 살 생일잔치를 영상에 담아보았다.
1910년 리투아니아에서 최초로 발명된 8륜 구동 수레가 100여년 만인 2007년에 복원되었다. 최근 이 복원된 수레를 타보았다. 오늘날에서야 다소 허술해 보이지만, 당시 마차나 초기 자동차 시대에서는 획기적인 운송수단이었다.
이 수레는 양쪽에 각각 4개 씩, 8개의 바퀴 모두가 동력을 전달받아 움직이는 시스템이고, 무게의 하중이나 필요시에 일부 바퀴를 상하로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모든 바퀴에 골고루 동력이 주어져 힘 있게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울퉁불퉁한 길에도 안정되게 갈 수 있었다. 당시 기술력으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발명이었다.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에 예속되어 있던 1907년 리투아니아인 프쉐미슬라스 네베라비츄스(1865-1936)가 이 시스템 발명에 대한 승인을 받았고, 1910년 3월 첫 시승식을 가졌다. 독일이 엄청난 금액에 제작권 판매를 제안했으나, 그는 팔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발명한 것이 리투아니아에서 제작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영국에 특허 신청비와 기계구조도를 보냈다. 그 후 몇 년 뒤인 1931년 영국 특허사무소는 이미 특허를 낸 사람이 있어 늦었다고 통보했다. 이렇게 그의 전륜 (모든 바퀴) 구동의 발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00여년이 지난 후 같은 마을 출신 레오나스 타물레비츄스가 마을 로고에 있는 수레바퀴의 유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리던 차 4년 전 우연히 1912년 찍은 8륜 구동 수레의 사진을 보고 더욱 흥미를 느꼈다. 그는 모든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2007년 복원에 성공했다.
이 8륜 구동 수레는 오늘날 군용차, 화물차, 우주탐사선에 적용되는 모든 바퀴 구동의 시초라면서 리투아니아 작은 마을 네막쉬체이는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복원자는 만약 재정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8륜 구동 수레를 리투아니아가 최초로 만들었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 수레를 타고 세계 일주를 꿈꾸고 있다.
역사 속에 묻혀 버린 것이 이렇게 후세대의 사람을 잘 만나면 이렇게 다시 세상에 드러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밤이 깊은 어둠의 바닥으로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오후 4시가 되면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리투아니아다. 하지만 시내 광장에는 해를 대신해 이 어둠 속에 빛을 내는 것이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투리의 전등이다.
크리스마스 투리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갓 베어낸 생생한 전나무를 여전히 선호하다. 매년 약 100만 그루의 전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베어진다고 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마다 성탄 축하를 위해 살아있는 수 많은 전나무가 생명을 잃게 되어 몹시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 집은 생나무 전나무 대신 인조 전나무를 사용한다.
지난 해 빌뉴스 미술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피라미드 크리스마스 투리를 영상에 담아보았다.
밤이 깊은 어둠의 바닥으로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오후 4시가 되면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리투아니아다. 하지만 오는 29일(토요일)부터 빌뉴스 대성당 광장에 해를 대신해 빛을 내는 것이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몇 해 전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꼭대기가 별이 아니라 붉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리투아니아의 크리스마스는 어느 특정 종교의 기념일을 넘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는 명절로 자리매김 되었다.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기독교화가 된 나라 중 하나이다. 1387년 동부지역, 1413년 서부지역이 기독화가 되었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79%가 로마 가톨릭교도, 4.9%가 러시아 정교도, 1.9%가 신교도이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 신자가 있는 리투아니아엔 11월 하순에서 1월 초순까지 시내 도처와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껏 꼭대기가 십자가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본 적이 없다.
리투아니아 크리스마스 트리의 꼭대기는 천사, 눈 결정체, 태양, 별 등으로 다양하게 장식되어 있다.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트리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소개한다.
기상천외한 괴력의 턱수염 글에서 리투아니아 사람 안타나스 콘트리마스(54세)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턱수염 소유자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7월 그는 또 다른 기록에 도전했다. 바로 오이 1000kg, 수레 200kg, 사회자 100kg, 합계 무게 1300kg을 턱수염으로 35m를 끌어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그는 세계기네스협회로부터 턱수염으로 오이수레를 끈 것은 기네스기록에 올릴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턱수염으로 2톤 기차를 끈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콘트리마스는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오이수레 끌기 기록에 다시 도전해 반드시 기네스북에 등재할 것이라 말했다.
평소 가족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긴 수염을 깎으라는 충고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오던 콘트리마스는 이 애물단지도 쓸모가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1999년 철인대회에서 첫 기록을 세웠다.
자신이 운영하는 맥주공장에서 있는 40kg 맥주통을 32cm 턱수염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7차례나 자신의 세계 기록을 경신했고, 리투아니아에서 최다 기네스북 보유자가 되었다. 그의 새로운 기록 도전에 성원을 보낸다. 그가 오이수레를 끄는 현장을 동영상과 사진에 담아보았다.
넓은 마당에 있는 늑대에게 한 사람이 다가가자 늑대는 자신을 깊숙이 낮춘다. 그가 늑대를 쓰다듬자 늑대는 그의 볼에 입맞춤을 한다. 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양이나 염소를 공격하는 날카로운 이를 가진 늑대에 고정된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 장면을 믿을 수가 없다.
벨로루시 국경에 가까운 리투아니아 숲에서 한 사람이 늑대 새끼 네 마리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와 길렀다. 하지만 새끼 두 마리가 곧 죽자 그는 평소 늑대를 기르고 있는 페트라스 다브리슈스에게 한 마리를 맡겼다. 처음 4개월 된 늑대 새끼를 보자 몰골이 형편없었다. 뜰에서 정성껏 이 늑대 새끼를 길렀다.
페트라스는 이 늑대뿐만 아니라 6년째 숲 속에 어미를 잃은 늑대 새끼나 다친 늑대를 발견해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리투아니아에 서식하고 늑대는 약 500마리로 추산되고 있다.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는 이렇게 기른 늑대를 일정기간 후 야생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달밤에 그가 내는 늑대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늑대와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폐타이어들" 글에서 리투아니아에 매년 쏟아져 나오는 폐타이어가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투아니아 환경부는 타이어를 교체하는 회사가 폐타이어를 차주나 이용자에게 돌려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빌뉴스 시청은 폐타이어를 수거하는 일정한 장소를 정해 시민들이 직접 가져올 것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단 수거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수거한 폐타이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 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위 글을 올린 후 지난 해 빌뉴스에서 열린 "이색공간 예술" 행사가 떠올랐다. 당시 폐타이어를 활용해 만든 의자, 커튼, 탁자 등이 시내 중심가에 전시되었다. 마치 폐타이어 재활용해 만든 거실을 보는 듯했다. 이 전시는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환경과 재활용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난 18일 발트 3국 중 가운데 위치한 라트비아가 독립 90주년 기념일을 맞았다. 5월부터 라트비아 곳곳에서 축제, 연주회, 전시회, 회의 등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렸다. 리투아니아만큼이나 아직 한국에 알려져 있지 않은 라트비아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라트비아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의 라트비아 지역엔 기원전 2000년경부터 발트인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1201년 독일인들이 리가를 건설했다. 1558년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자 독일 기사단은 이 지역을 리투아니아 보호령으로 양도했고, 1561년 리투아니아 보호를 받는 리보란드 공국과 쿠를란트 공국이 세워졌다.
1600년-1629년 이 지역을 둘러싼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스웨덴간 오랜 전쟁이 있었다. 1629년 리보란드 공국은 스웨덴 지배를 받기 시작했고, 쿠를란트 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영향 하에서 독립을 유지했다. 1700년-1721년 스웨덴과 러시아 전쟁으로 리보란드 지역이 먼저 러시아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어서 쿠를란트 역시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3국 분할로 러시아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가 독일에 패하자, 1918년 11월 18일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라트비아는 소련에 편입되고 말았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해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라트비아는 최초로 독립 국가를 형성한 1918년 11월 18일을 중요한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이날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아래 동영상은 2007년 여름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방문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인구 73만여명인 리가는 다우가바강과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고, 옛날부터 무역, 금융, 문화의 중심지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구시가지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배경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 (Andrius Mamontovas)의 노래 "나를 자유롭게 해다오" (Išvaduok mane)의 앞부분이다.
이번 주 리투아니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 작업이 이루어진다. 크리스마스 트리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빌뉴스 시내 중심가 대성당 광장에 매년 세워진다. 높이가 25미터에 이르고, 1500여개의 전구가 매달린다. 이를 시작으로 하나 둘씩 일반 가정에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
사람들은 갓 베어낸 생생한 전나무를 여전히 선호하다. 매년 약 100만 그루의 전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베어진다고 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마다 성탄 축하를 위해 살아있는 수 많은 전나무가 생명을 잃게 되어 몹시 안타깝다. 예쁜 장식과 반짝이는 전등을 감탄하느라 전나무의 못다 한 생명을 잊어버리곤 한다. 올해는 이 아름다움의 밑그림이 된 전나무를 더 많이 생각해야겠다.
11월 17일 리투아니아 현지 시각으로 오후 5시 20분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통 10월 중순쯤 오는 첫눈이 올해는 한 달이 늦어서 왔다. 그래서 딸아이 요가일래는 첫눈을 기다리면서 종이로 눈결정체를 만드는 놀이를 하곤 했다.
최근 요가일래는 눈결정체 만드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허락했지만, 하다가 가위질이 힘들어서 그만 토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종이 눈결정체를 완성하는 장면까지 찍지 못했다.
이날 첫눈이 펑펑 딸아이 요가일래는 벌써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할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온도가 영상 1도라 눈이 쌓이지 못하고 10여분 내린 후 그치고 말았다. "지난 번 눈결정체를 완성했더라면 더 멋있는 첫눈이 내렸을 텐데"라고 속으로 아쉬워했다. 배경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 (Andrius Mamontovas)의 노래 "나를 자유롭게 해다오"의 일부이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는 인구가 55만 명으로 리투아니아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벨로루시인 등이 사는 다민족 도시다. 1323년 게디미나스 대공에 의해 수도로 정해졌다. 수세기 동안 동과 서를 잇는 교차점에 위치한 빌뉴스는 전쟁, 점령, 파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91년 독립한 후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한편 마천루를 세워 고대와 현대가 조화된 도시로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빌뉴스 구시가지 359헥타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천500여 개 건물이 거리와 골목길, 뜰로 연결돼 있는데, 동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졌다.
한국의 대도시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빌뉴스는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맛을 간직하고 있다. 낮이 짧고 밤이 긴 요즈음 시내 중심가에는 전등 불빛이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고 있다. 빌뉴스 시내 중심가의 야경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배경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 (Andrius Mamontovas) 노래 "Tu Atnesei Sviesa"(내가 빛을 가져왔다)의 일부이다.
이제 리투아니아엔 날마다 밤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아침 7시가 되어도 다소 어둡다. 오후 5시가 되면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어두운 밤거리에 특히 곡선인 도로에 차를 타고 가다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이나 자전거 등으로 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경우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안전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빌뉴스 길거리에서 형광 옷을 입은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한 형광 장신구를 자신의 옷이나 가방에 매달은 사람들도 볼 수 있다. 형광 조끼를 입고 무리지어 이동하는 유치원 아이들도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근래에 대대적으로 리투아니아가 펼치고 있는 교통 안전 캠페인의 효과이다.
이런 장면들을 만나면서 지난 해 이맘때쯤 빌뉴스 시내를 산책하면서 본 나무 하나가 떠올랐다. 그 나무엔 형광 장신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바로 도로 교통 안전을 위해 "겨울철엔 형광 장신구를 달자"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래 동영상 참조(배경 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 (Andrius Mamontovas)의 노래).
일전에 “늑대사냥꾼이 늑대와 함께 사는 사연”이라는 글에서 늑대를 키우면 살아가는 리투아니아 사람 페트라스 다브리슈스를 소개했다. 4년 전 직접 방문한 그의 마당에는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 페트라스가 한 무속의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찾아오는 손님들뿐만 아니라 일체만물의 안녕을 위해 무속행위를 직접 행하기도 한다. 그가 이날 입은 옷은 투바 무속인이 입는 옷이다. 그는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에 거주하는 투바인 무속인으로부터 의식을 거행하는 법을 배웠다.
모닥불을 피울 장작더미에 꼭 들어가는 장작이 하나 있다. 바로 하늘에서 벼락을 맞은 나무의 장작이다. 이 장작은 불로 통해 하늘과 땅을 서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조촐하지만 제사상까지 마련되어 있다. 우유, 곡물, 소시지, 빵이 놓여있다. 막걸리 대신 우유를 사방에 뿌리고, 음식을 불에 태워 하늘에 공양하고, 마치고 큰 절을 올리는 모습 등에서 동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연과 모든 것에게 일체만물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줄 것을 청하기 위해서 기도했다"라고 말했다. 희귀한 리투아니아인 페트라스의 무속행위를 영상에 담아보았다.
최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진 한 시골에 다녀왔다. 바로 이 먼 시골에 주로 옛날 기계들을 수집해 사설 박물관을 운영하는 리투아니아 사람 유스티나스 스토니스(68세)를 만나기 위해서다. 우선 그는 30여년간 빌뉴스 게디미나스 공과대학교 교수로 일을 하고 퇴임했다. 그 후 고향으로 내려가 그 동안 수집한 각종 옛날 기계 등을 전시해 사설 “고기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지 10여년이 되었다.
3000평방미터 마당과 집안 곳곳에는 다양한 전시물이 놓여있다. 매일 방문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빌뉴스에 강의하러가기 위해 집을 비워야 할 때는 “미안해요. 지금 외출 중이니 혼자 구경하세요.”라는 푯말을 붙여놓는다. 그는 “박물관은 무료 관람이어야 한다. 현금기기는 인생을 망친다.”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대부터 모우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소장품이 7000여점에 이른다. 140년 된 감자 캐기 기계, 곡식알을 따는 기계, 원동기, 자동차 엔진, 농기계, 목재도구, 베 짜는 도구, 인쇄기, 계산기, 카메라, 트럭, 자동차 등 다양하다. 그의 뜻에 따르는 친구들이 그의 수집에 도움을 주고 있다. 1910년 세계 최초 트랙터 “Deutsch”, 최초 탈곡기 “Claas” 등은 외국 수집가들이 군침을 흘리는 소장품이다. 리투아니아 최초 공산당 서기장이 타고 다니던 볼가 차도 부르는 것이 값이지만, 그는 팔지 않는다.
12년째 홀로 살고 있는 그는 “남편이 알코올중독자가 되는 것을 원하는 아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수집가 남편을 두는 것은 이보다 100배나 더 나쁘다. 왜냐하면 모든 돈을 수집하는 데 바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도시에 남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박물관을 운영하자 국내외로부터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와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를 알리는 데도 일조를 하고 있다. 만나는 내내 자신의 소장품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던 이웃집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노교수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콘스티투찌야 대로를 지나가다가 낯선 조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아도 금방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건물 외벽 상단에 걸려 있는 이 조각상은 다름 아닌 메뚜기였다.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 메뚜기의 길이는 6m, 높이는 1.5m, 다리 길이는 2m나 되는 초대형이다.
비록 조각상이지만, 모처럼 도심에서 메뚜기를 보자 한국에서 친구들과 논두렁 따라 메뚜기를 잡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리투아니아에선 아주 드물게 메뚜기를 보았다. 빌뉴스에 있는 조각품들은 대개 기념조각품들이라 다양성이 부족하다. 이렇게 이색적인 조각품이 등장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앞으로 이런 조각품들이 많아져서 도시의 미관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를 기대한다. 배경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 (Andrius Mamontovas)의 노래 "나를 자유롭게 해다오"의 일부이다.
어제 저녁 일이 있어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중심가 광장을 지나갔다. 가로수 보호대에 잠겨 있는 자전거가 시선을 끌었다. 자전거 전체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고, 두 바퀴엔 국화꽃이 꽂혀 있었다.
자전거 붙여져 있는 안내판을 보니 “사망한 자전거 이용자 추모”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비로 이 하얀 자전거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하고, 리투아니아 도로 위 발생하는 참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지난 2007년 리투아니아 도로에서 사고로 자전거 이용자 73명이 사망했고, 569명이 부상당했다.
더욱이 겨울철엔 낮이 짧아 자전거 안전 운전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전등을 확인하고 안전모자를 착용해야 한다. 특히 차 운전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상호존중이 절실히 필요한 계절이다. 사망자를 추모하는 동시에 리투아니아이든, 한국이든 모든 자전거 이용자의 겨울철 안전 운전을 기원한다.
최근 시골 고향에서 고기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퇴임 기계학 교수를 취재하려 다녀왔다. 만남 인사를 마친 후 그의 첫 물음은 리투아니아인 아내와 집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인가였다. 모국어가 서로 다른 부부에게 제일 궁금한 중 하나가 "저들은 부부 사이, 자녀와 부모 사이 도대체 무슨 언어로 의사소통할까?"이다.
의사소통 언어가 “에스페란토”라 답하니 "아직도 에스페란토가 살아있냐?"며 놀라워했다.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오래 전 에스페란토를 알던 사람들 중에도 에스페란토가 벌써 죽은 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는 우리 집 공용어로 매일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와 같은 에스페란토 맺어진 다문화가정이 세계 도처에 있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확인하니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국의 젊은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누리망에 퍼져 있는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에 한국어 자막처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선봉에 서서 한국어보다 영어를 강화시키고, 부모들이 영어 발음을 위해 자녀에게 혀 수술까지 시키는 사회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언어이다. 변음과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와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익히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언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제1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어몰입교육이 판치는 한국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한번 에스페란토를 배워보고자 하는 사람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7-5881; 010-3340-5936)에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한편 http://lernu.net/에서 직접 배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원광대 등에 에스페란토 강좌가 정식으로 개설돼 있다. 한국어 자막이 되어 있는 아래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E@I www.ikso.net 제작)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에스페란토를 알아볼 수 있다.
▲ 어느 날 우리 집 탁자에 체코,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한국에서 온 8명 친구들이 의사소통 장애 없이 에스페란토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11월 1일은 가톨릭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리투아니아에서 ‘모든 성인의 날’이라 불리는 국가 공휴일이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이날과 2일을 구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벨리네스’라 부른다. ‘벨레’는 영혼, ‘벨리네스’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날’을 뜻한다. 죽은 사람 영혼을 추모하는 이 풍습은 고대로부터 내려왔는데, 죽은 이들의 영혼이 특정 시점에 사후 세계를 떠나 가족을 방문하러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 해의 수확을 마친 뒤부터 시작해 10월 한 달 내내, 그리고 11월 첫 주에 절정에 이른다. ‘벨리네스’ 풍습은 14세기 말 기독교가 전래된 뒤 기독교적 의미가 추가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을 기해 리투아니아인들은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조상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 그리고 유명 인사 무덤을 방문한다. 우리의 추석 성묘를 연상케 한다. 우리가 ‘벌초’를 하는 것처럼, 무덤 화단에 흩어진 낙엽을 줍고 시든 화초를 뽑고 새것을 심는다. 대개 꽃이 활짝 핀 국화를 심는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에겐 국화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또 무덤에 바칠 꽃송이는 반드시 짝수로 하고, 죽은 사람 영혼이 어둠 속에 헤매지 않도록 촛불을 밝히는 풍습도 있다. ‘성묘’에 나선 이들은 긴 시간 말없이 촛불을 응시하며, 죽은 이의 선행과 일생을 되돌아보며 기도를 하곤 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타오르는 촛불로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20세기 초까지도 리투아니아인들은 11월 1일 밤 죽은 사람 영혼이 들어오도록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또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침대를 마련하고 사우나실에 불도 넣었다. 영혼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개를 개집에 가두기도 했고, 영혼을 젖게 하지 않도록 물을 뿌리지 않았다. 영혼에 상처를 입힐까봐 예리한 물건들은 숨겼고, 영혼의 눈에 들어갈까봐 화덕에서 재를 꺼내지 않았다. 밤에 집에서 나가거나 가축을 밖에 내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믿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들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곤 고요함 밤에 들리는 바람 소리,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무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물이 튀기는 소리를 영혼이 오는 징표라 여겼다.
이어 영혼을 집으로 초대하고, 가족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 뒤 침묵 속에 식사를 한다. 밥을 먹는 동안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초대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그대로 놓아둔다. 음식은 밤새도록 식탁에 놓아뒀다가 다음날 걸인들에게 나눠준다. 걸인들을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영혼들 사이의 매개체로 믿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음식을 무덤으로 가져가 놓아뒀다고 한다. 이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은 ‘음부세계’에서 보낸 사람으로 여겨 극진히 환대하고 접대하는 풍습도 있다.
우리나라의 추석성묘를 연상시키는 11월 1일 리투아니아인들이 ‘벨리네스’를 맞아 묘지를 찾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일전에 다친 늑대 등을 보살펴 키우면서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사람 페트라스 다브리슈스를 만나고 왔다. 4년 전 딸아이와 방문했을 때에도 그의 마당엔 늑대가 뛰어놀고 있었다(관련 동영상: 기사 하단 오른 쪽 동영상).
이번에도 뜰에 놀고 있는 늑대를 보았다. 몸짓을 보니 전에 본 늑대가 아니었다. 예전에 키운 늑대는 지금은 숲 속 넓은 우리에서 살고 있다. 이번에 본 늑대는 벨로루시 국경과 맞닿은 숲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를 한 사람이 발견해 가져온 늑대이다.
이 늑대는 종종 뜰에서 만나는 말과 함께 신나지만 다소 위험한 장난을 즐겨한다고 한다.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아보았다. 물론 늑대가 민첩하지만, 실수로 말굽에 차이거나 밟히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했다. 배경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 (Andrius Mamontovas)의 노래 "나를 자유롭게 해다오" (Išvaduok mane)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