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인구는 340만 명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 이 리투아니아에 10여 년간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턱수염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려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털보 아저씨, 오염으로 찌든 도시가 싫어 숲 속에 수십 년 살아가는 타잔 할아버지, 버려진 샴페인 병을 수거해 튼튼한 집을 짓는 할아버지, 혼자 20년 삽질로 연못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할머니 등등…….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중 가장 믿을 수 없을 만큼 특이한 사람이 있다. 바로 모래를 거의 주식으로 먹는 사람이다. 2001년 처음 이 사람을 만났다. 리투아니아 북서부 텔쉐이 지방, 농가가 드문드문 있는 곰말레이 마을에 살고 있는 스타니슬라바 몬스트빌례네(60)이다.
그는 10여 년째 모래를 먹고 있다. 몬스트빌례네는 “나에겐 모래가 초콜릿이나 이국적인 과일보다 더 맛있다. 가장 맛있는 모래는 모래알이 작거나 점토가 섞인 모래이다. 모래에 섞인 조그마한 돌멩이, 나무나 풀뿌리는 양념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씹어 먹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래를 씹으면 침이 절로 많이 나와 물이 따로 필요 없다고 한다. 모래를 주식으로 삼기 전 그는 뇌종양, 고혈압, 소화불량, 현기증, 복통 등에 무척 시달렸다. 급기야 병원에 입원까지 했으나 호전되지 않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어느 날 모래더미를 보자 입 안에 군침이 돌더니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먹어보니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없던 기운까지 솟아났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동안 앓고 있던 병이 모두 나았다. 그는 당시 인터뷰 중에도 내내 모래를 양손에 움켜쥐고 쉴 새 없이 먹었다. 지난 5월 신문기사를 보니 여전히 그의 주식이 모래라고 한다. 세상엔 정말 평범을 뛰어 넘는 일들이 도처에 벌어지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족보를 통해서 해당 가문의 내력을 알고 어느 인물의 가계 배경을 알아본다. 리투아니아에도 이런 족보가 있을까? 답은 간단한다. 한국과 같은 족보는 없다. 이들에게 1000여년전 선조들의 이름을 알려주면 대부분 믿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세하게 좀 더 설명해주면 한국인의 기록문화의 대단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렇다면 리투아니아인들은 어떻게 가계보를 자손들에게 전할까? 바로 '가계나무' 혹은 '족보나무'를 만들어 전한다. 나무와 가지를 그려서 순서대로 선조들의 이름을 적어놓는다. 하지만 이 '가계나무'를 가진 가정을 아주 드물게 보았다. 대개 리투아니아인들은 부모와 자식간 관계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리투아니아어 단어 '비츌리스'는 '친한 친구'를 뜻한다. 이 단어는 꿀벌인 '비테'에서 나왔다. 리투아니아에서 곧 꿀벌은 우정을 상징한다. 리투아니아는 꿀이 좋기로 유명하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인적이 드문 깊은 숲 속 마을 “스트리페이케이”에는 “고대양봉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나무에 매달린 벌통, 나무 기둥 안에 판 벌통, 사람 얼굴 벌통, 집처럼 생긴 벌통 등 흡사 수준 높은 조각품과 같은 것들은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리투아니아 곳곳에 사용된 벌통들이다. 일부엔 지금도 벌들이 꿀을 만들고 있다.
성냥갑 같은 네모난 획일적인 벌통에 사는 것보다 이렇게 자연과 잘 조화된 벌통에 사는 벌들이 더 맛있는 꿀을 줄 것 같다. 리투아니아 옛 벌통들을 한 번 구경하세요.
어제 일요일 가족과 함께 리투아니아 빌뉴스 숲 속으로 산책을 갔다. 리투아니아에서도 해당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제 본 해당화는 보기 드물게 아주 큰 군락지를 이루며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해당화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바다가 가까운 강변에 자라던 해당화가 떠오른다. 진분홍빛 꽃이 진 후 주홍색으로 익어가는 열매를 따먹기도 했다. 자주 들었던 원산 앞바다 명사십리의 해당화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라는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노랫말 절로 흘러나와 고행생각을 부추긴다.
요즘 한국에는 해당화 구경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해수욕장 개발 등으로 해당화가 자랄 땅이 사라지고, 또한 신경통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해당화들이 뿌리 채 뽑혀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 어린 시절 해당화를 이렇게 곱게 자리고 있는 이국땅에서 만날 수 있어 너무 반갑다.
오드리햅번님의 “한국무용중 가장 화려해서 아름다운 부채춤” 글을 읽다가 2006년 10월 10일이 생각났다. 이날 리투아니아 빌뉴스 중심가에 있는 리투아니아 국립연극장에서 "손인영 무용단"의 한국예술 공연이 열렸다. 한국-리투아니아 외교 수립 15주년을 맞아 열린 문화행사로 마련된 리투아니아에서 보기 드문 공연이었다.
리투아니아 정계와 문화계 인사,외교단을 비롯해 교민,시민 등 모두 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행사에서 의상, 무희, 부채, 동작 등 모든 면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준 부채춤이 관람객들로부터 단연 최고의 반응을 얻었다.
일전에 블로그에 올린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밀레니엄 바이크 쇼"에서 세계 최고의 오토바이 스턴트맨 중 하나인 헝가리인 앙궐 졸탄 (Angyal Zoltan)가 관람객들에게 보여준 묘기이다. 한 바퀴로만 오토바이 타기, 외발 오토바이 타기, 뒤로 오토바이 타기 등 다양한 묘기로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로 인구 약 37만명이다. 빌뉴스가 폴란드령이었던 기간에는 대신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카우나스에 매년 6월 첫 번째 주 토요일에 오토바이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발트 3국을 통틀어 가장 큰 바이크 쇼인 “밀레니엄 바이크 쇼”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6월 7일 1만여대의 오토바이의 웅장한 거리달리기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리투아니아에선 오토바이 스포츠가 급속히 대중화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8년전 불과 500명이었던 바이크 인구가 지금은 5만여 명에 이른다. 동영상은 지난 해 열린 밀레니엄 바이크 쇼를 담고 있다. 이 때 행사에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오토바이 스턴트맨 쇼이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250km 떨어진 마을, 파비르제. 특히 주말이면 이 정원을 보려는 사람들로 조용한 마을의 한 집이 유독 붐빈다. 바로 8,600㎡(제곱미터)에 달하는 넓은 정원에 일궈진 연못을 보기 위해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름답고 넓은 연못이 할머니 혼자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올해로 78세인 알도나 할머니가 그 주인공. 정년 퇴직한 후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늪지대에 위치한 뜰에서 쉴 새 없이 삽질을 했다. 약 2m 깊이로 한삽 두삽 흙을 파내 못을 만들고 안에 연꽃을 심었다. 주변에는 습지에 잘 자라는 화초를 심었다. 20여년간 그가 삽질로 만든 연못은 모두 세 개이다.
그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은퇴한 노인들이 겪는 각종 질병으로 고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못 정원은 마을 주민들과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수많은 화초들로 가득 찬 연못 정원은 이제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고, 신혼부부의 결혼식 사진 단골 촬영지가 되었다.
할머니는 연못에 핀 연꽃을 방문객들이 찾아와서 지켜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여긴 원래 볼품없는 늪지대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년에 나를 찾아와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연못이 없다면 누가 늙은 나를 찾아오겠는가?”
그는 지금껏 혼자 살아왔다. 왜냐고 물으니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포클레인으로 한나절이면 팔 수 있는 연못을 삽으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년 걸려 파왔다. 그는 “기계로 속히 연못을 팔 수도 있지만, 우선 혼자 삽질을 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고 건강에도 좋으며, 더욱이 그런 기계를 빌릴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북동 유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 인구는 340만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에도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합이 벌어진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기들의 달리기”이다.
4개월에서 10개월 된 아기들이 겨루는 가장 빨리 기어달리기이다. 매년 봄과 겨울 두 차례 열린다. 아기의 소중함과 가족의 화합을 취지로 이루어지는 대회이다. 총길이는 4미터. 출발선엔 아버지 혹은 어머니, 그리그 도착선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기 선수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안간 힘을 쏟고 있다.
출발은 했으나 뒤로 돌아 앉아버리는 아이, 가다가 옆으로 새는 아이, 결승점 앞에서 멈춰버리는 아이...... 끝내 자신의 아이가 혼자 기어오지 못해 안타가워하는 모습이 잔물결로 다가온다. 천진한 리투아니아 아이들의 기어달리기 한번 구경하세요.
지난 해 라트비아 수도 리가 전시회에서 한 특이한 화가를 만났다. 2000여개의 우유팩 그림이 “인생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는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에르키 카세메쯔이다.
그는 20여년 동안 그날 그날 떠오르는 이미지를 일기 쓰듯이 우유팩 위에 그림을 그린다. 각각에는 날짜, 제목, 그린 장소 등도 기록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 반을 우유팩 그림 그리기를 했다. 그리고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서너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린 우유팩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마시고 버리는 우유팩을 이렇게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귀중한 재료로 활용하는 화가의 발상이 탁월하다.
몇 해전 부터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강변이나 공원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삶이 나아짐에 따라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전에 빌뉴스 빙기스 공원을 산책하면서 "막대기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막대기 걷기로 표현한 폴 워킹은 스키 막대기처럼 생긴 막대기를 양손으로 짚으면서 걷는 보행법이다. 북유럽 스키에서 착안한 걷기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미국에서 시작돼, 90년대 후반 유럽지역으로 건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 데, 최근 리투아니아에서도 이 막대기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씩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보행법은 무릎의 충격을 완화시켜 주기 때문에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노년층에도 좋다고 한다.
빙기스 공원에서 막대기 걷기 운동을 배우는 사람들 동영상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 댓글에 어느 분이 막대기 걷기는 핀란드에 비롯되었다는 글을 적었습니다. 저도 1992년 핀란드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어느 분이 1988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글을 읽고 의아해 했습니다. 위키백과 사전 에스페란토 글을 통해 아래와 같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영어로 노르틱 워킹으로 알려진 막대기 걷기는 21세기초에 전세계적으로 유행해졌다, 이는 1950년대 핀란드에서 탄생했다. 장거리 스키 선수들이 여름 훈련 동안 이른바 스키 걷기을 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1997년 노르틱 워킹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여가 운동으로 소개되었다. 2000년 이는 핀란드에서 건강 운동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막대기 걷기는 핀란드에 급속히 보급되었다. 현재 50만명이 규칙적으로 막대기 걷기를 하고 있다.
일전에 "통역 없는 세계 언론인 대회" 블로거 기사에서 에스페란토를 소개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매년 여름 개최되는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몹시 기다린다. 보통 60-80개국에서 2천명-4천명이 참가해 통역이나 번역 없이 일주일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친목과 상호이해를 증진시킨다.
이 대회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춤을 추거나 가르치는 최윤희씨가 있다. 최근 동영상 파일을 정리하면서 지난 2006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최윤희씨의 한국춤 강좌와 배우기 동영상을 다시 보았다.
그의 지도에 따라 다양한 민족의 남녀노소가 신발을 벗고 아리랑 가락을 흥겹게 추고 있다. 특히 오른 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열심히 따라 배우는 분이 인상적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한국을 알리는 데 열성을 쏟는 최윤희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리투아니아인들 사이에 살면서 음식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면 빠지지 않는 물음이 있다. 그 물음은 다름 아닌 한국 사람들의 개고기 식용이다. 대부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일반 가정에서도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처럼 개고기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작은 애완견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개를 한국 사람들이 먹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제 이들에게 쉽게 한 방 날릴 수 있는 꺼리가 생겼다. 바로 일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까마귀고기를 먹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무엇인가를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가리켜 “까마귀고기를 먹었나?”라는 말이 있다.
정말 까마귀고기를 먹으면 잊어버릴까? 하지만 한국에 살 때 주위에 까마귀고기를 먹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까마귀고기 먹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은 까마귀고기 먹는 것을 별미로 바라보는 것보다 우선 역겨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까마귀고기를 전통적으로 먹어왔다는 사실이 문헌을 통해 밝혀졌다. 2003년 옛 음식풍습인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을 주창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사람을 만났다.
전직 검사 출신인 변호사 안드류스 구진스카스(50)는 사냥꾼 노인으로부터 까마귀를 사냥해 까마귀고기 요리를 장만하는 법을 배웠다. 까마귀고기를 시식해보니 아주 맛이 좋아 이후 계속 먹어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했다.
처음에는 “같이 까마귀고기를 먹었다는 말을 다른 사람, 특히 아내에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까마귀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몇 해 전 까마귀고기 먹기 축제를 열기도 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처음 먹어보는 까마귀고기를 닭고기·토끼고기·오리고기 등과 비교하면서 맛이 아주 좋다고 평했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이 역겹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조상들이 먹었던 음식을 먹는 떳떳한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까마귀고기 먹기를 주창하는 구진스카스는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에만 그치지 말자. 까마귀는 서로 상대방의 눈을 쪼지 않는 신사의 새다. 우리도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아가자”라고 강조한다.
당시 만난 한 참석자는 “한국은 개고기를 먹고, 우리는 까마귀고기를 먹는다. 음식문화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자기 기준만으로 상대방의 음식문화를 절대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핀란드의 인기 스포츠인 "아내 안고 달리기"가 지난 5월 10일 리투아니아에서 최초로 열렸다. 리투아니아에도 전통적으로 아내를 안는 풍습이 있다. 바로 결혼식을 마친 후 신랑이 새 삶을 기념하기 위해 신부를 안고 다리를 건넌다. 바로 이날 핀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아내를 안는 두 풍습이 서로 만났다.
이날 경기에 참석한 14쌍은 먼저 아내를 안고 다리는 건너는 의식을 치루고, 100미터 거리를 아내를 안거나 업고 달리기를 했다. 이날 우승한 학생 커플은 26초만에 달렸다. 아내를 업는 방법도 다양했다. 결승점을 코 앞에 두고 넘어지는 쌍도 있었다. 한 쌍은 도중에 넘어졌지만, 다시 아내를 업고 뛰면서 행복한 웃음을 자아냈다.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최초 아내 업고 달리기 동영상을 보는 연인이나 부부는 오늘 한 번쯤 자신의 짝을 업어주는 것이 어떨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 동안 몇 차례 리투아니아 소련시대 조각품이 전시된 그루타스 공원을 블로그에서 소개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방문해줘 먼저 감사드린다. 오늘은 그 마지막으로 지난 해 방문 때 만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적은 연금을 수령하는 노인들 대부분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들은 그때는 지금처럼 빈부격차가 거의 없었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빵이나 감자가 부족해도 노래부르고 춤추며 즐겁게 살았다고 회상한다.
할머니의 눈물 글썽임을 지켜보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체제는 진정 없을까라고 자문해보았다. 능력에 따른 빈부차별과 모두가 가난한 평등 중 어느 것이 좋을까? 몇 억하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 옆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는 이가 떠오른다. 적어도 절대적 빈곤은 사라져야 한다.
일전에 그루타스 공원 레닌 동상 곁 리투아니아 여고생들과 새총으로 레닌을 겨낭하는 아이들을 이 블로그에서 소개했다. 오늘은 이어서 스탈린 퍼즐을 맞추는 여대생들을 소개한다. 조각난 자신의 모습을 스탈린이 보았다면... 후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기에 있을 때 독재하지 말고 잘 했으면, 조각은 나지 않았을텐데... 세월무상! 권불십년!
리투아니아에서 영원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던 옛 소련 체제가 1990년 무너지자, 레닌·스탈린을 비롯해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어제의 지도자’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도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던 이들의 동상과 체제를 상징하는 온갖 조각상은 시민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철거됐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부서져 폐기되기도 했다. 커다란 사회적 골치거리가 되어버렸다.
조각상들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그대로 옮겨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자는 여론에 더 힘이 실렸다. 이런 취지로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은 세워졌다. 거대한 레닌과 스탈린 동상에서부터 빨치산 대원의 군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루타스 공원은 매년 봄 한 차례 당시 사회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시절 축제’를 연다.
일전에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 레닌 동상 곁 리투아니아 여고생들을 블로그에서 소개했다. 오늘은 새총으로 레닌을 대신해 컵을 맞추는 놀이를 소개한다.
자고로 지도자는 역사의 웃음거리나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고 오래도록 존경받는 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과거와 달라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워낙 빠르다.
리투아니아에서 영원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던 옛 소련 체제가 1990년 무너지자, 레닌·스탈린을 비롯해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어제의 지도자’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도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던 이들의 동상과 체제를 상징하는 온갖 조각상은 시민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철거됐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부서져 폐기되기도 했다. 커다란 사회적 골치거리가 되어버렸다.
조각상들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그대로 옮겨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자는 여론에 더 힘이 실렸다. 이런 취지로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은 세워졌다. 거대한 레닌과 스탈린 동상에서부터 빨치산 대원의 군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루타스 공원은 매년 봄 한 차례 당시 사회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시절 축제’를 연다.
"태극은 음과 양으로 나누어 지는데, 양은 하늘, 남자, 밝음, 태양, 위, 강함, 정신, 불, 선 등을 나타내고, 음은 땅, 여자, 어두움, 달, 아래, 부드러움, ..." "요즘 아이들의 그림에서는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태양은 아버지를 상징하는데... 그때 아버지들은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다..." "금년도 추석에도 둥근 달은 뜰 것이다. 예부터 '해'는 남성(아버지)을 상징했고, '달'은 여성(어머니)를 상징했다. 때문에 아름다운 여인을 '달'같이 아름답다는 '달덩이'로 표현했다."
누리망에서 위와 같은 문장들을 읽었다. 만물을 음양으로 구분하자면 강인함을 뜻하는 해는 남성, 포근함을 뜻하는 달은 여성이다. 하지만 태양은 아버지, 달은 어머니라는 우리들의 이런 상식은 리투아니아인들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지난 해 "해맞이" 행사를 찍은 아래 동영상 현장 녹취음인 "햇님 어머니, 떠오르세요, 떠오르세요"에서 보듯이 리투아니아인들은 이를 정반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어의 모든 명사는 여성형과 남성형으로 나누어진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온 생명의 근원인 해를 여성, 달을 남성으로 본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은즉 남성들은 밤에만 살짝 와서 놀다가 가버리는 달과 같기 때문일 것이란다. 이런 연유인지 리투아니아 부부가 갈라서면 대개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산다. 민족에 따라 절대적 보편이 상대적 보편이 되는 예이다.
태양 어머니의 떠오름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리투아니아인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고 신비한 느낌마저 받았다. 리투아니아의 해맞이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풀밭에 새싹이 돋은 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낫을 기다리고 있다. 40대 시골 출신이라면 누구나 쪼그리고 앉아 낫으로 소먹이 풀을 벴을 법하다.
1990년 유럽에 처음 왔을 때 헝가리에서 한 친구가 자기네 여름별장에 가서 풀을 베자고 했다. 기차로 두 시간 여행한 후 그의 별장에 도착했다. 풀을 베기 위해 그가 준 농기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기대했던 낫이 아니라 거대하고 날카로운 무서운 도구였다.
실수하다가는 손가락 정도가 아니라 발목을 크게 다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풀베기가 주저됐다. 그래도 가르쳐준 대로 천천히 하다 보니 한국에서 사용한 낫보다 훨씬 많은 양의 풀을 벨 수 있었다. 풀을 베면서 우리의 '앉는 문화'와 반대하는 유럽의 '서는 문화'가 이런 큰 낫을 만들게 했구나라고 생각해보았다.
이후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면서 기회 있는 대로 이 큰 낫으로 풀을 베어보았다. 요즘 전기낫 등으로 손쉽게 풀을 벨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시 중심가를 벗어나면 이 큰 낫으로 풀을 베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리투아니아의 풀베기 동영상이다. 낫을 바루는 리듬 소리가 퍽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