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참나무가 천둥과 번개 신 "페르쿠나스"의 나무라 믿어왔다. 참나무를 사람과 신을 잇게 해주는 성스러운 나무로 여겨왔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집 마당 한 곳에 커다란 참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참나무는 상대적으로 전기가 잘 통하고, 벼락을 잘 받아들이는 나무로 여겨왔다. 피뢰침이 없던 과거에 마당에 우뚝 솟아있는 이 참나무가 바로 피뢰침 역할을 해서 재앙으로부터 집과 사람을을 보호하는 것이라 믿어왔다.
참나무는 기(氣)가 강한 나무라 여기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특히 거대한 참나무를 만나면 손을 그 참나무에 대고 기를 받는다.
일전에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참가차 폴란드 비얄리스토크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지인들과 유럽의 마지막 원시림이라고 불리는 비아워비에자 숲을 방문했다. 이 숲에서 장정 세 사람이 양팔을 쭉 벌려야 겨우 닿는 밑둥을 가진 참나무를 만났다. 리투아니아인 아내는 얼른 다가가 기를 받았고, 한국인들도 따라했다.
지난 8월 1일 모처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250km 떨어진 도시에 살고 있는 장모님을 방문했다.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장에서 이날 곧장 장모님 도시로 향했다. 장모님은 7월 28일 65세를 맞이했다. 우리 부부가 이 에스페란토 행사때문에 참가못할 것 같아 8월 1일로 연기했다.
보통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5와 10이 되는 해에 생일잔치를 크게 연다. 이날도 온 일가친척이 다 참가했다. 이번 생신잔치의 한 특징은 바로 장모님이 참나무 다섯 그루를 심는 것이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고대부터 참나무를 성스럽고 기가 강한 나무로 여긴다. 생신을 맞아 참나무를 심는 일을 주창한 장모님이 이날따라 아주 돋보였다.
▲ 일가친척들이 물통을 들고 숲으로 향한다.
▲ 참나무를 정성스럽게 심고 있는 장모님
▲ 어린 참나무 주변에 보호대를 설치하고 있다.
▲ 심어놓은 참나무 곁에서 기념촬영하시는 장모님
▲ 공동작업을 했으니 뒷풀이는 관례
▲ 초록 들판,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사람들의 한가로움이 매력적이다.
이날 장모님이 다섯 그루를 심은 까닭은 다섯 명의 기념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다(1. 리투아니아 1000년 역사; 2. 장모님의 65세; 3. 처제의 35세; 4. 처조카의 25세; 5. 요가일래의 세례식). 이 다섯 그루 참나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기원한다.
경제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마돈나의 탈린 공연이 대성공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탈린(Tallinn)은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다. 인구는 40만명이다.
'팝의 여왕' 마돈나(50세)는 지난 8월 4일 발트 3국에서는 처음으로 탈린에서 공연했다. 이날 모인 관람객은 7만명이었다. 에스토니아 뿐만 아니라 인근 나라 라트비아 1만 5천여명, 핀란드 1만여명, 리투아니아 5천여명도 마돈나 공연을 관람했다.
▲ 8월 4일 마돈나 탈린 공연 유튜브 동영상
공연 관람표 가격은 한국돈으로 11만원, 22만원, 44만원이었다. 발트 3국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한 상황임에도 공연 관람표는 이미 지난 봄에 이틀만에 매진되었다. 하지만 이번 마돈나 공연 덕분에 탈린의 숙박업계와 요식업계는 때 아닌 성황을 이루어 대박을 맞았다.
공연 당일 마돈나는 전용기로 탈린 공항에 도착해 공연이 끝나자마자 아이들과 22세의 남친이 기다리고 있는 핀란드 헬싱키로 곧장 날아갔다. 공연장에는 에스토니아 대통령 영부인, 에스토니아 국무총리, 라트비아 대통령 등등 수만의 팬들이 있었지만, 마돈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 온몸에 마돈나 문신 10개를 한 열성팬
이날 관람한 마돈나 팬들 중 자신의 몸 곳곳에 마돈나 문신 10개를 한 남자가 유튜브에 소개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다음 마돈나 문신을 위해 마돈나가 아이디어를 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과연 그의 열성에 마돈나가 답할 지 궁금하다.
최근 열린 로마 세계수영선수권 대회에서 인구 340만명의 리투아니아는 12명의 수영선수를 보냈다. 이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리투아니아 선수는 계드류수 티테니스(20세, 193cm)이다.
사진출처: http://www.anyksta.lt/
그는 8월 2일 열린 남자 200미터 평형 결선에서 2분07,80초로 리투아니아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3위에 그쳤지만, 이는 리투아니아인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는 50미터, 100미터, 200미터 평형에 출전해 각각 리투아니아 종전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떠날 때는 조용히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스타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여섯 살에 수영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영에 전념하고 있다. 수영에 전념하기 전 축구와 농구도 해보았지만, 수영선수들이 그가 수영에 좋은 체격조건을 갖추었다는 말에 수영을 선택했다.
현재 대학교 2학년으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20m 떨어진 작은 도시 아닉쉬체이에 살고 있다. 그는 리투아니아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delfi.lt가 최근 마련한 누리꾼과 대화에서 단독주택을 가지고 개을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물 속에서 숨을 쉬지 않고 2분 30초 동안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 아주 좋은 조건 아래 수영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거절한 이유는 현재 그를 지도하고 있는 교관이 아주 훌륭하기 때문이다.
delfi.lt 8월 6일 인터넷 기사에는 이런 그의 결정을 두고 리투아니아 누리꾼들은 지지와 철회 사이에 열띤 댓글을 달고 있다.
"미국으로 가라. 그렇지 않으면 높은 결과를 잊어라." "세계에서 가장 좋은 수영선수들은 미국과 호주 출신이다. 미국으로 가라. 인생에 한 번 있는 기회이다." "메달획득자의 경력은 짧다. 그 짧은 시간에 모든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 리투아니아 스포츠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 멋쟁이다. 정말 멋쟁이다." "정말 훌륭한 청년이다. 진정한 리투아니아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고 있는 수영선진국 미국행을 거절한 티테니스 수영선수가 앞으로도 더욱 좋은 성적을 내어서 토종선수로 세계를 재패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가면 자라고 있는 허리에 좋지가 않아!" "그래서?" "그러니까 가방이 무거운 날은 아빠가 들고가야지." '아빠, 내가 학생이야!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가야지!" "그래. 맞다. 무겁지만 학생인 너가 들고 가자!"
학교에 막 가려고 집을 나서는 7살 딸아이와 함께 한 어느 날 우리집 아침 풍경이다.
리투아니아 일간지 례투보스 리타스 8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전체 학생 1/3이 자기 몸무게의 30%에 이르는 무게의 책가방을 가지고 학교로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9월 1일이면 유럽 전역의 학교에서는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다. 벌써부터 부모들은 책가방이며 학교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하나 장만하고 있다.
이 신문보도에 의하면 요즘 스페인에선 새로운 책가방이 등장해 화제를 모우고 있다. 바로 이 책가방은 안의 내용물이 과도하게 무거우면 빨간색 빛과 함께 사이렌 소리를 낸다. 이탈리아 회사가 제작한 이 책가방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현재 25유로 (4만3천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책가방에는 저울이 내재되어 있다. 작동 원리는 교통신호등과 같다. 학생의 나이에 맞게 적당하게 무거우면 초록색 불이 켜진다. 무게가 약간 넘으면 노란색 불이 빛난다. 나이에 비해 책가방이 과도하게 무거우면 빨간색이 불이 빛나고 사이렌 소리가 난다.
▲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딸아이 요가일래
리투아니아 빌뉴스에도 이 책가방을 살 수 있다면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아이에게 꼭 사주려고 한다. 이 새로운 책가방이 책가방을 둘러싼 아빠와 딸의 실랑이에 종지부를 찍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해가 쨍쨍나는 여름날 따사한 햇살을 받으면서 의자에 앉아있노라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맥주이다. 인구 340만명의 리투아니아는 2008년 국민 1인당 맥주소비량이 89리터로 세계 7위에 올랐을 만큼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맥주를 즐겨 마신다.
일반적으로 리투아니아를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의 술집에 가면 편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안주를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맥주보다 안주가 더 비싼 곳에는 사실 맥주마시기가 주저된다. 갈증 해소하기가 복부 부풀리기로 끝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술집에 가면 안주 없이 맥주잔만 놓인 탁자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맥주안주를 먹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일전에 교외에 있는 술집에 가보니 여러 탁자에 맥주잔과 아울러 마늘치즈빵이 놓여있었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흔한 맥주안주가 바로 바로 마늘치즈빵이다. 만들기도 쉽다. 혹시 관심있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법을 적어본다.
1. 준비물
빵, 껍질 벗긴 생마늘, 소금, 치즈가루 혹은 얇은 치즈
2. 방법
빵을 약긴 길쭉하게 네모나게 잘라 기름에 약간 튀긴다.
간을 맞추기 위해 약간 소금을 뿌린다.
생마늘을 빵 위에 골고루 바른다.
치즈가루를 빵 위에 뿌린다.
빵 온도로 치즈가 녹는다.
(빵이 이미 식어서 치즈가 녹지 않을 경우 전자렌지에 넣고 약간 가열한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흔한 안주 중 하나인 이것을 오늘 저녁이나 주말에 집에서 한번 만들어 맥주와 함께 드셔보세요. 참고로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의외로 마늘을 자주 먹습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장모집 채소밭에 들깨를 심었다. 장모집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2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올해는 지난 해보다 일찍 심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주말 장모집을 방문해 보니 깻잎이 벌써 손바닥만하게 자라고 있었다.
▲ "리투아니아 깻잎 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린다면......
▲ 고기와 함께 싱싱한 깻잎을 먹고 있는 7살 구스타스
주위 사람들 중에는 싱싱한 깻잎을 따서 주면 향이 진하고 생소하다고 먹기를 꺼리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고기를 싸서 주거나 깻잎장아찌를 주면 대부분 좋아한다. 리투아니아인 아내는 깻잎장아찌에 밥만으로 한 끼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정도로 깻잎장아찌 애호가이다.
▲ 깻잎을 씻고, 양념을 하는 일은 한국인 남편의 몫
보통 한국음식을 만드는 일은 요리에 전혀 소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접 해야 한다. 따온 깻잎을 직접 물로 씻고, 양념을 만든다. 양념은 마늘, 참깨, 간장이 전부이다. 일전에 한국에서 오신 분이 깻잎짱아찌 통조림을 선물로 주고갔다. 이것을 먹은 본 아내는 우리 식대로 양념한 깻잎짱아찌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ㅎㅎㅎ
▲ 2008년 깻잎따기 영상
아내의 깻잎장아찌 사랑 덕분에 리투아니아 친척과 친구들 사이에 우리집 깻잎장아찌는 김치와 더불어 한국음식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일주일간 지속되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 프로그램에 따르면 수요일은 온종일 관광이 열린다. 이날은 대회가 열리는 도시 인근의 관광지를 둘러보는 날이다. 매년 온종일 관광을 마친 이날 저녁 한국인 참가자들이 모여 상견례를 하면서 친선을 도모한다. 올해는 20명이 참가했다. 제일 연장자는 올해 72세인 소아과의사 김영명 박사님이다.
김박사님은 52년전 1957년 의과대학에 다닐 때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껏 에스페란토 사용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는 스스로 애칭을 "HOPE"(에스페란토로 장식된 사람)로 부를 만큼 에스페란토에 푹 빠진 사람이다. 일년간 열심히 일하고 여름엔 세계에스페란토대회 등 에스페란토 행사에 참가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삶의 활력소를 얻고 있다.
대부분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박사님이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에 적인 숫자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1.3메가 픽셀이다. 요즘 휴대폰도 2메가 픽셀 카메라를 내장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는 5메가, 7메가, 8메가 심지어 12메가 픽셀 등 그 동안 괄목한 발전을 해오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한 초창기에 산 1.3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초유스도 초창기에 산 디지털 카메라를 여러 해 동안 잘 사용하다가 서너 차례 업그레이드를 했다.
언듯 보기에 7층 건물을 가진 전문의 김박사님의 부와 명성에 1.3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사진인화를 해도 만족스럽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김박사님은 에스페란토 활동을 하면서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에스페란토 운동을 위해 기꺼이 기부하곤 했다. 이런 기부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그가 지금까지 수년 동안 1.3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마음이 한 요인이 되었구나라고 느꼈다. 김박사님의 디지털 카메라를 본 후 10메가나 12메가 픽셀 디지털 카메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수그러졌다.
지금 폴란드 북동지방의 중심도시 비얄리스토크에 와 있다. 촬영 취재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 지역은 유럽의 마지막 원시림으로 유명하다. 1920년대 거의 멸종위기에 처했던 유럽산 들소가 자연서식하고 있다. 이 지역은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여기는 바로 비얄리스토크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비아워비에자에 위치해 있다.
지난 수요일 한국에서 온 지인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워낙 방대한 지역이고, 관광안내자 없이는 숲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이날 박물관 구경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특히 박물관 1층에 전시된 나무공예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악마의 형상을 지닌 버섯은 신기했다. 폴란드의 나뭇가지 변신 사진을 아래 소개한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사람의 능력에 따라 쓸모 없는 나뭇가지들이 멋지게 변신할 수 있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길이나 숲에서 버려진 나뭇자기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지난 7월 25일부터 폴란드 비얄리스토크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전세계 61개국에서 2000여명이 참가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비얄리스토크는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1859-1917)가 태어난 곳이다. 올해는 그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멘호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비얄리스토크는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자멘호프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해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했다.
지난 25일 한국인 참가자들이 한국안내 홍보지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곳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아니지만,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자신의 고향인 비얄리스토크에서 열리는 사실을 알고 혹시나 한국인들이 참가할까 궁금해서 대회장을 찾았다고 한다.
이름이 안나인 이 여자는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운다면서 자기소개를 한국어로 유창하게 했다. 폴란드의 변방도시인 비얄리스토크에서 이렇게 한국어를 말하는 여대생을 만나니 몹시 기뻤다.
이 여대생 안나가 지속적으로 한국어를 배워 한국과 관련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할 것을 기대해본다.
며칠 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사용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러시아를 여행 중인 프랑스의 한 여자 에스페란티토가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참가차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토요일 도착하는 데 기차역에서 마중하고 폴란드 대회장소인 비얄리스토크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를 묻는 편지였다.
아무런 주저 없이 역으로 가서 마중을 하고 도움을 주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혹시 우리 부부가 승용차로 갈 수 도 있는 데 그럴 경우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토요일까지 생면부지인 프랑스 여자 에스페란티스토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젊은 여자일까, 나이든 사람일까......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다. 기차 도착시간을 조금 지나 빌뉴스역에 도착했다. 선로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에스페란티스토(가방 등에 녹색별을 부착 등등) 같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합실에서 나와 역밖으로 나오니 머리가 희긋한 여자 한 사람이 열심히 디카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입고 있는 티셔츠 등에는 선명하게 "ESPERANTO"가 적혀 있었다.
낯선 사람을 낯선 기차역에서 낯선 사람이 만났지만, 둘은 악수하고 금방 오랜된 친구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하는 이유라고 한다.
▲ 생면부지이지만 처음 만나자마자 초유스네의 아침상을 받고 있는 르네 할머니 (오른쪽)
할머니를 집으로 안내해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300km 떨어진 폴란드 대회장소로 향했다.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 프랑스 에스페란티스토의 발음을 금방 알아보는 데 이 할머니는 그렇하지가 않았다. 봐아 하니 오랫 동안 에스페란토를 사용한 사람인 것 같았다. 여러 대화가 이어졌다.
▲ 세계를 집삼아 베낭여행을 즐기는 르네 할머니 (73세)
이 할머니의 이름은 르네 코벨(Renee Caubel)이다. 1937년에 태어났으니 73세이다. 1916년 에스페란토를 배운 아버지로부터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부모 둘 다 에스페란티스토이었고, 집에서 에스페란토를 사용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반발한 1939년부터 집에서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자제했다.
결혼을 하고 세쌍둥이를 비롯해 4자매를 낳고 길렀다. 병원 영양사로 20년간 근무했고, 52세의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은퇴했다. 1999년 남편이 사망하자 젊은 시절 했던 에스페란토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2000년 덴마크 여행을 시작해 매년 세 차례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
▲ 베트남 비자가 부착된 할머니 여권
2005년 99일간 유럽연합 회원국을 모두 방문했다. 일본, 중국, 베트남을 비롯해 40여개국을 여행했다. 할머니의 여행 특징은 바로 세계에스페란토청년회가 제공하는 "Pasporta Servo" (에스페란티스토 무료 민박 주소록)을 이용하는 것이다. 할머니도 거주 도시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 만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에스페란티스토를 만나면 처음 봤지만 수년 전에 만난 것처럼 정이 간다. 최근 러시아 에스페란티스토에게 묵었는데, 그는 자기 집의 열쇠까지 주면서 언제든지 오라고 한다"라고 말하면서 "에스페란토를 하니 청춘시절로 회귀한다"라며 애띤 소녀처럼 웃었다.
일흔의 나이에 이렇게 배낭여행을 하는 데 그래도 경비가 솔찬히 들어갈테인데 어떻게 해결하냐고 물었다. 연금에서 먹고 입고 하는 데서 최대한 절약해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경비를 조달한다고 한다. 노후에 이렇게 세계를 자기 집삼아 에스페란토로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이나 옛 친구를 만나 활발하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무척 부럽다.
7살 딸아이 요가일래는 방학이건만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학교갈 때보다 적다고 투덜댄다. 유럽인들의 생활이 일반적으로 한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 집 일상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방학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유독 올해는 다른 여름보다 할 일이 많이 생겼다.
오늘부터 오는 8월 1일까지 이웃 나라 폴란드 비얄리스토크에서 열리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우리 부부가 가기로 했다. 두 딸에게 같이 갈 것을 제안했으나, 큰 딸은 리투아니아 작은 도시에 사는 이모집을 선택했다. 덩달아 요가일래도 시골을 택했다. 강남콩도 먹고, 딸기도 먹고, 버찌고 따먹고, 강아지도 돌보고......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참가해 각국에서 온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 혹은 어린이들과 같이 어울리면 교육상으로 아주 좋은 것 같지만, 우리 부부는 두 딸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제도 부부는 대회참가 준비를 위해 밖에서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집에 오니 요가일래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었다. 제묵은 "요가일래의 준수사항"이다. 부모가 없는 사이 마르티나가 요가일래를 돌봐야 한다. 그래서 부모가 출타한 사이 이들은 서로 토의하면서 "요가일래의 준수사항"이라는 협약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언니(마르티나)가 먹는 거 무엇이든지 (요가일래도) 다 먹어야 한다. 2. 언니가 필요해 외출할 때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 3. 언니가 허락할 때 혹은 집에 혼자 있을 때 니텐도를 가지고 놀 수 있다. 4. 밤 11시엔 무조건 자야 한다. 잘 쯤에는 일체 말을 하지 말고, 놀지도 말고, 시끄럽게 해서는 안된다. 5. 언니 말을 들어야 하고, 반박하거나 소리를 질러서는 안된다.
찬찬히 따지고 보면 불평등협약서이지만, 언니와 동생이 정한 것이니 부모가 이렇다 저렇다 개입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요가일래, 너 언니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지?" "아니, 우리 같이 이야기했고, 언니가 썼어."
"그래. 아빠하고 엄마하고 폴란드 있는 동안 언니하고 잘 지내. 알았지?" "옙, 대장님! 걱정마세요."
▲ 언니와 동생은 10살 차이다. 친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래도 언니는 든든한 또 하나의 보호자다.
한국 시간으로 7월 22일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이 과정은 한국의 독자들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터넷신문으로 이 소식을 접한 후 과연 인구 340만명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 언론은 이 사건을 취급할까 궁금했다. 솔직히 취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길 간절히 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부끄럽고 쪽 팔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시간으로 7월 23일 리투아니아 최대 일간지 "Lietuvos Rytas"(레투보스 리타스)는 1면 왼쪽에 "Dienos Nuotraka"(오늘의 사진)란에 미디법 처리과정에서 일어난 사진을 선정해서 게재했다. 한나라 여성 국회의원 두 명이 민주노동당 여성 국회의원 한 명을 밀어내는 장면이다.
아내와 딸, 나아가 리투아니아 전역에 한국 이미지에 또 먹칠을 했구나 라며 자괴감이 일었다. 이어 7면에는 좀 더 자세한 기사가 게재되었다. 국회의장석 옆에 여야가 대치해 밀고 미는 사진을 올렸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지금까지 의회중심 정치체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의회에서 의원들이 몸싸움을 한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해관계가 첨예화되여 쟁점이 심각한 법안일수록 여야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맣대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는가! 매번 쟁점 법안을 이렇게 해결한다면 국회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국가이미지 훼손을 밥먹듯이 하는 지금의 한국 국회는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이 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일 것이다.
최근 공개된 브라운아이드걸즈(브아걸)의 음악비디오가 커다란 화제를 모우고 있다. 특히 이 음악비디오가 자극적인 섹시한 모습,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장면, 스타킹 찢기, 가학적인 행위 등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선정성이냐, 독창성이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가수들의 섹시함이나 선정성에 대한 논란은 한국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에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 브아걸이 기사를 접하면서 리투아니아 여가수 그룹 YVA(이바)가 떠올랐다. 이들은 파격적인 섹시한 의상과 무대 위의 전혀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충격과 재미를 함께 주고 있다.
YVA는 리투아니아 제의 2도시인 카우나스에서 활동하는 금발 머리의 3인조 여가수 그룹이다. 그룹 이름 YVA는 리투아니아어의 "특별히 유혹적인 매력"의 약자이다. 이 이름처럼 이들의 아이콘은 바로 섹시와 선정이다. 이들은 주로 짧은 치마나 바지, 짧은 윗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해 뭇 남자들의 환심을 확 끌어당기고 있다.
몇해 전 이들은 한 TV방송 프로그램에 출현해서 한국적 표현을 쓰자면 가요계에서 영원히 사장될만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다양한 연령층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여가수가 속옷을 무대 위에서 벗었기 때문이다.
▲ TV공연 중 속옷 벗는 YVA, 유튜브 리투아니아 관련 최대 조회수 동영상 중 하나
여가수뿐만 아니라 제작진조차 징계깜에 속할 것 같았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험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진 지에 대해서는 그 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금도 이들은 열심히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로써 선정성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잣대가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연예인이 방송 중 가슴이나 속옷 노출만 되어도 방송사고로 지탄을 받고, 가수들의 공연 중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은밀한 부분이 노출되어 홍역을 치르는 사회에선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주위 사람들은 상식 밖의 행동이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라고 할 수 있겠나 라는 의견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선정적이고 섹시한 것으로 유혹할 것이라 아니라 진짜 노래실력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수가 되기를 바란다.
최근 SBS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바로 방송 아이템 표절뿐만 아니라 출연자를 연습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는 일반인 출연자의 장기나 묘기를 세상에 널리 드러내게 한다는 본래 취지를 벗어난 행위라 더욱 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지탄을 받게 되었다.
제작진의 소재 찾기가 정말 힘든다는 점은 방송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완전한 표절과 사전교육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속된 말로 귀신에 홀리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소식을 접하자 지난 해 스타킹 출연섭외를 받았던 딸아이 요가일래가 떠올랐다. 요가일래는 초유스 블로그의 단골 소재이다. 종종 독자들로부터 요가일래가 끼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커면 스타킹에 출연해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스타킹 출연 오디션을 받게 한 요가일래의 양말 인형극
이런 칭찬 덕분이었는 지 지난 해 봄 한 스타킹 작가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블로그에 올린 4개국 인형극 동영상을 보고 서울에 올 경우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출연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위한 사전준비를 전혀 시키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때마침 지난 해 여름 가족이 모두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겸사해서 SBS 방송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 목동 SBS 사옥 1층 (상), 오디션 받고 있는 요가일래 (하)
당시 만 6살인 요가일래는 작가 언니의 부탁대로 여러 언어로 인형극을 선보였다. 옆에서 보고 있으니 평소보다 적극성이 결여되었다. 우린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너 한번 영어로 말해봐라! 너 한번 러시아어로 말해봐라! 너 한번 에스페란토로 말해봐라!"라고 하면 요가일래는 거의 대부분 답하기를 거절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언어로 자연스럽게 말을 걸면 바로 그 언어로 답한다. 경험한 바로는 아이들의 통역능력은 자신들의 자연적인 언어습득능력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작가분이 적어도 영어 인형극 부분에서는 요가일래와 영어로 오디션을 시도했더라면 받은 인상이 좀 달랐을 것이다. 이후 그 작가분으로부터는 아무런 추가적인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SBS TV 지구촌 VJ 특급 프로그램에서 "내 사랑 대한민국, 리투아니아 소녀 요가일래"라는 제목으로 출연했다.
앞으로 스타킹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무명의 인재를 발굴해내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일전에 올린 "여고 1학년 딸, 남친과 해외여행" 글에서 방학을 맞아 벨로루시로 여행을 떠난 마르티나 이야기를 전했다. 일주일간 여행에서 주로 벨로루시의 수도 민스크에서 시간을 보냈다. 민스크에 대한 마르티나의 가장 큰 인상은 바로 거대한 건물과 도로, 그리고 도심의 녹지대였다.
건물 중 가장 큰 인상은 바로 국립도서관이었다. 2006년 6월 16일 현대식 국립도서관이 개관되었다. 규모는 14개의 독서실에 1000석을 갖추고 있다. 이 도서관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해 건물 외벽을 대형 스크린처럼 꾸몄다. 여행 중 마르티나가 사진기로 찍은 이 국립도서관의 밤풍경의 영상을 올린다. (화질이 낮고 흔들림이 많음을 양해바랍니다.)
이 전광판은 우주와의 교감을 연출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하여 홍보와 광고를 할 수 있다. 이 전광판은 벨로루시 건축물 조명의 최고 자랑거리이다.
최근 연달아 티스토리에서 보내는 저작권 관련 공지사항을 읽었다. 오는 7월 23일부터 저작권법이 일부 변경되어 시행된다. 그래서 티스토리는 "저작권과 저작권 신고에 대한 궁금증" 글에서 회원들에게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글이나 음원, 영상, 만화, 사진 등을 확인하고 삭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오래 그리고 쉽게 다른 사람의 좋은 글 하나,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자신의 블로그에 퍼와서 보관하기가 이젠 더 어렵게 되었다. 날로 저작권을 강조하는 추세가 한국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즈음 유럽 여러 나라에는 이 저작권법 철폐나 혁신을 주장하는 일명 해적당이 속속 등장해 화제를 모우고 있다. 특히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스웨덴의 해적당은 7.4% 지지를 얻어 처음으로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해적당은 스웨덴에 할당된 의석 18석 중 비록 1석을 차지했지만, 이는 의미 있는 출발이다.
출처: piratupartija.lt (2009년 4월, 검은색 - 등록된 해적당, 파란색- 미동록 해적당, 붉은색- 설립추진)
이 스웨던 해적당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해적당이 설립되어 "자유로운 정보 —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기치 아래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해적당이 정당으로 공식적으로 등록된 나라는 스웨덴,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페인, 폴란드, 핀란드, 독일, 프랑스, 에스토니아 등이다.
이외에 비등록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 노르웨이, 러시아, 리투아니아 등이다. 정당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아일랜드, 네덜란드, 세르비아, 스위스 등이다. (오른쪽 이미지: 리투아니아 해적당 깃발; 출처: piratupartija.lt)
이들 해적당은 특히 지적 소유권과 특허권, 저작권 보호를 철폐하거나 혁신을 주장한다. 이들은 인터넷상 파일의 자유로운 교환 및 공유, CD 가격 인하, 특허권 철폐, 스캔제한 철폐, 가정에서 자유로운 파일 복사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 동안 초유스도 저작권 보호 차원에서 마우스 오른쪽 클릭 방지 플로그인을 사용해왔다. 이럴 경우 오른쪽 클릭을 통한 복사행위를 금지하여 무단복사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해적당의 취지에 공감하는 차원에 최근 다시 이 플로그인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제부터는 출처만 명확히 밝히는 조건으로 초유스의 글, 사진, 동영상 중 마음대로 손쉽게 퍼갈 수 있도록 했다.
70개국 2천명, 통역 없는 국제회의 가능할까? 한마디로 가능하다. 오는 7월 25일에서 8월 1일까지 전세계 70여개국에서 2000여명이 폴란드 북동지방의 중심도시인 비얄리스토크에 모인다. 한국에서도 20여명이 온다. 바로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들이 만나는 국제회의에선 늘 통역과 번역이 따른다. 하지만 이 세계에스페란토대회는 모든 회의와 강연, 공연, 관광 등이 에스페란토 하나만으로 이루어진다.
▲ 세계에스페란토대회 개막식 장면
비얄리스토크는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1859-1917)가 태어난 곳이다. 올해는 그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멘호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비얄리스토크는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자멘호프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해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했다.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에스페란토가 정말 언어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세계대회는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가장 큰 통로 역할을 한다. 불가리아의 농부, 인도의 맹인, 브라질의 대학교수, 리투아니아의 앳된 소녀, 영국의 구순 할아버지,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등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통역 없이 진행된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으면, 세계 공통어야말로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 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라고 자멘호프는 1905년 제1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역설했다.
일주일간 지속되는 이 대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대회대학은 세계 각국의 유수한 대학 교수들이 나와 천문학, 인문학, 언어학, 문학, 수학, 정보학, 민속학 등 다방면에 걸쳐 강의를 한다. 작가, 방송인, 기자, 법률가, 교직자, 자연치료사, 채식주의자, 고양이애호가, 과학자, 무국적주의자 등 많은 에스페란토 단체들이 분과회의를 가진다. 이러한 학술 및 회의 프로그램 외에도‘민족의 밤’을 통해 참가자들은 대회 개최국가인 폴란드의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다. 노래공연, 악기연주회, 연극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관광도 열린다. 어린이 세계대회도 병행에서 열린다.
전세계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고전음악이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러 차례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낸 험프리 톰킨 박사는 한 기자회견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는 여러분들이 추정하는 것보다 많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닌 레나토 코르세티 박사는 “최근 들어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의 우월적 지위에서 파생된 언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2007년 미국 사명위기언어연구소는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 7000여개 중 소수 민족 언어들이 2주에 한 개 꼴로 사라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세계 인구의 80%가 사용 빈도가 높은 언어 83개, 세계 인구의 0.2%가 3500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유럽연합의 회원국은 27개국으로 공식어가 23개에 이른다. 통번역에 소용되는 비용은 연간 무려 13억 달러에 달한다.
정치·경제·통화 분야에서 통합을 이뤄가는 유럽연합은 언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지배적인 언어인 영어를 공식어로 채택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로 합의를 이끌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등장하는 대안이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이다.
에스페란토가 발표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민족간 반목과 혐오감은 여전하고, 강한 민족의 언어는 약한 민족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에스페란토가 영어를 비롯한 특정 민족어의 우월주의를 넘어서는 공식적 대안으로 인정받을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에스페란토가 유럽연합의 언어로, 나아가 세계 인류의 공통언어가 되어 말이 같은 자국민간 모국어를 사용해 이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키면서 서로 말이 다른 민족간 에스페란토를 사용해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루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 제94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열린 원불교 분과모임 영상
초유스는 오는 7월 25일 통역 없는 세상으로 인류평화를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폴란드 비얄리스토크 현장을 찾아간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과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블로그를 통해 알릴 계획이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왜 맨날 요가일래 얘기만 나오고 17살 딸 얘기는 하나도 안나오나요? ㅋㅋ 너무 신비주의~ 전 요가일래가 외동딸인줄 알았어요...
우리집 가족 구성원은 모두 4명이다. 아내, 나, 17살 딸 마르티나, 7살 딸 요기일래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작은 딸과 늘 집에서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가일래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리고 있다. 마르티나는 오는 9월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년이 된다. 10대 후반이니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집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러 놀고 있다.
"아빠, 이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줘," "아빠, 내가 포즈를 취할테니 사진 찍어서 사람들이 보도록 해줘" 등등 요가일래는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친권이 부모 둘 다에게 있기 때문에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는 늘 아내의 동의를 구한다.
한편 마르티나는 사생활 문제에 예민한 나이에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글을 올리기가 주저된다. 그래서 자연히 마르티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거의 접할 수 없게 되었다. 위의 댓글을 아내와 마르티나에게 전해주었더니, 오히려 섭섭해 하는 듯했다. 이 댓글은 마르티나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마르티나를 통해 유럽 10대들의 이야기를 기회 있는 대로 쓰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마르티나가 남자친구와 단 둘이서 이웃 나라 벨로루시로 여행을 떠난 이야기이다.
마르티나는 6월 초순 벌써 여름방학을 맞았다. 방학이면 집에서 그 동안 못한 공부도 하고, 고등학교 2년 때 배울 과목도 미리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공부하라"는 말에 늘 마르티나와 요가일래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다.
"왜 방학이 있나? 바로 그 동안 공부하느라 지친 데서 잠시 쉬는 것이야!"
모두가 자녀들에게 "공부하라" 윽박지르는 혹은 윽박지르게 하는 사회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부부는 두 딸의 항변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래, 방학인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라."
아뿔사, 6월 하순 마르티나는 난데 없이 남자친구와 벨로루시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남자친구가 벨로루시에는 살고 있는 친척을 방문하는 길에 마르티나에게 동행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 2년 동안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에 우리 부부는 익숙해 있지만, 막상 아직 미성년자인 마르티나가 남자친구와 단 둘이서 해외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니 그 당돌함에 충격을 받았다. 한 바탕 질책 후에 며칠 간 마르티나와 냉전을 치루었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여자 나이 만 17세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마르티나의 이모는 만 16세에 시집갔고, 외삼촌은 만 17세에 장가갔다. 마르티나 또래 친구들을 보면 남친과의 둘 만의 여행은 흔하다. 그들 부모들은 동양인이 보기에 지나칠 정도로 자녀들의 이성교제에 관대하다. 결국 아내와 함께 마르티나의 해외여행에 동의하기로 했다.
"가서 러시아어도 좀 배워오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직접 보고......"
적지 않은 비자발급비와 여행경비 지원까지 받은 마르티나는 이렇게 남자친구와 함께 벨로루시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부부도 단 둘이 해외여행을 떠난 경우도 드문데 여고 1학년 딸이 남자친구와 오붓이 해외여행가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이번 여름은 유럽인 아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지 꼭 10년째가 되는 때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더니 적어도 아내의 식생활만큼은 확실히 변했다.
1999년 여름 두 달 간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아내가 가장 고생한 것이 음식이었다. 매운 것을 먹지 못했던 아내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밥과 달걀요리 혹은 김, 그리고 맵지 않은 국뿐이었다.
당시 한국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주로 에스페란토 친구들을 만났다.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지만 아내는 식성 때문에 이 환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지나가자 아내는 용기를 내어 매운 김치를 맛보았다. 당시 포항 한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맵지만 먹을 만하네"라고 한 두 점을 먹어본 아내를 말했다.
"바봐, 겁먹지 말고 그냥 먹어보면 된다구!"라고 맞짱구를 쳤다.
이날 아내는 김치 여러 점을 고기와 밥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매운 음식에 대한 용기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당연히 이날 저녁의 최고 화제는 김치였다.
하지만 기쁨 뒤의 고통은 너무나 빨리 왔다. 맛있는 식사 후 자고 있는 데 아내는 갑자기 속이 거북하다면서 깨웠다. 아뿔싸, 구토로 새벽내내 아내는 고생했다. 반드시 김치가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김치가 원인이라고 아내는 믿었다. 이후 아내의 김치 멀리하기는 방문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 "이런 진수성찬에 밥 하나만 먹기엔 너무 억울해!"
2001년 다시 한국을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이때 한국을 방문하기 전 아내는 "이번엔 꼭 매운 것을 먹는 데 성공할 것이야! 진수성찬에 밥 하나만 먹기엔 너무 억울해!"라고 다짐했다. 믿음이 강해서 그런지 당시 방문에 한국음식먹기는 대성공이었다.
▲ 리투아니아 한인회장 부인으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는 아내 (왼쪽 첫 번째)
리투아니아 집으로 돌아온 이후 아내는 직접 김치 담그기를 시도했다. 인터넷에 얻은 정보로 아내와 같이 김치를 담궜지만 김치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리투아니아 한인회장 부인을 찾아가 직접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김치는 어떨까?
그 이후 우리집엔 김치가 떨어지는 날이 드물다. 김치가 없으면 김치 담그자고 아내가 오히려 재촉한다. 리투아니아 현지인 친구집을 갈 때 아내는 자주 김치를 가져가 한국의 최고 건강식품이라며 김치예찬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10년을 같이 살다보니 유럽인 아내의 김치애호는 마치 강산이 변한 듯하다.
KGB는 1954년부터 1991년 11월 6일까지 존속했던 소련의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를 말한다. 당시 소련의 한 공화국이었던 리투아니아에도 리투아니아 KGB본부가 빌뉴스의 중심가에 우뚝 서있었다. 그리고 이 건물 지하실은 당시 한 마디로 공포의 감옥이었다.
현재 이 건물은 법원이고, 지하실은 KGB 감옥을 그대로 보존해 박물관을 만들었다. 소련점령시대에 리투아니아 국민 36만여명이 죽음을 당하거나 시베리아 등지로 강제추방되었다고 하니 리투아니아 국민들의 소련에 대한 반감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 당시 KGB 본부건물(상), 건물 밑부분 벽에는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하).
▲ 이곳으로 잡혀오면 먼저 좁은 공간에 서너 시간 가둔다(상), 그리고 얼굴 사진을 찍는다(하).
▲ 촘촘히 만들어진 감옥방들 (제일 위), 감옥방 내부들, 그리고 화장실(제일 밑)
▲ 갇힌 사람들의 육체적 운동을 위한 공간.
▲ 물고문실(상)과 철저히 방음이 된 고문실(하)
▲ 간수방, 저 저울의 용도는? 바로 갇힌 사람들에게 줄 음식량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 지하실 감옥에는 총살방이 있다. 총알이 박힌 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하).
▲ 건물 밖에는 소련시대 희생자를 위한 위령 돌탑이 세워져 있다.
지하실 감옥을 둘러보면서 KGB의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항거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있었기에 소련이 붕괴되었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 관련글: 천하의 KGB도 못찾아낸 지하 비밀인쇄소
7월 12일 리투아니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 달랴 그리바우스카이테(53세)가 취임했다. 그리바우스카이테 대통령은 7월 16일 첫 해외방문에 나섰다. 그의 첫 해외 방문국은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은 유럽연합의 6개월 순번제로 7월 1일 유럽연합의 새 의장국 임무를 맡기 시작한 나라이다.
▲ 2009년 리투아니아가 역사책에 언급된 지 천년을 맞이한 해이다.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새 대통령.
이 스웨덴 방문에 있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그리바우스카이테가 탄 비행기 좌석이었다. 그는 일등석이나 비지니스석을 선택하지 않고 이코노미석인 일반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현재 빌뉴스에서 스톡홀롬까지의 이코노미석 비행기표값은 870리타스(한국돈으로 약 43만원), 비지니석 비행기표값은 1350리타스(약 67만원)이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아직 전용기가 없다. 그 동안 대통령의 외국 방문시 이용한 비행기는 비행기 회사와 일년간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해결해왔다.
그리바우스카이테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늘 이코노미석으로 비행기를 타고 있다. 앞으로 이는 정부 각료들의 해외방문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가 돈을 절약하는 데 솔선수범하고 있는 그리바우스카이테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는 많은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한 박물관에는 중세유럽의 다양한 고문도구 50종을 전시하고 있다. 이것들은 주로 나무나 쇠로 만든 도구를 이용해 신체을 압박 내지 상해를 가해 고통을 주는 도구들이다. 중세유럽에서 사용했던 고문도구들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 중세유럽 고무도구 전시회가 열린 리투아니아 음악과 영화 박물관 지하실
▲ 두 구멍 사이로 발을 넣어 신체구속을 했다.
▲ 물고문대
▲ 목, 손목, 발목을 모두 구속시키는 도구
▲ 쇠로 만든 신발을 조임으로써 발을 아프게 하는 도구
▲ 머리를 조임으로써 고문하는 도구
▲ 죄인의 머리에 쓰게 함으로써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고문도구
▲ 가랭이를 자르는 큼찍한 톱 고문도구
▲ 머리와 팔을 구속하는 고문도구
▲ 각종 정조대들
▲ 가슴에 고통을 주는 고문도구
▲ 쇠로 된 통안으로 사람을 넣어 조임으로써 고통을 주는 고문도구
▲ 알몸으로 항문 등에 피리미드의 뽀쪽한 부분을 삽입해 고통을 주는 고문도구
▲ 알몸으로 나무송곳으로 빽빽한 의자에 앉혀 고통을 주는 고문도구
위의 고문도구에서 보듯이 중세 유럽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수사를 통한 범죄입증과는 달리 고문을 통한 피의자의 자백에 의존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요즘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만나면 "여름이지만 여름이 아니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영상 20-30도의 날씨에 해가 쨍쨍나야 여름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여름날은 지금껏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이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편 바쁜 일에 파묻혀 있는 아빠는 호수로 가자라는 딸아이의 성화같은 재촉을 받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딸아이는 손님으로 가기를 좋아하고, 또한 낯에 익은 손님들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 어제 저녁 드디어 모처럼 가족이 교외에 있는 친척집으로 손님으로 갔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보더니 딸아이의 모델끼가 발동했다. 그 동안 바빠서 딸아이와 같이 놀아주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열심히 촬칵촬칵 눌렀다.
▲ "세상 사람들 모두를 사랑해요."
"아빠, 아빠는 나하고 이렇게 손잡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 — "정말 좋아해." "나도. 우리 이제 자주 이렇게 하자. 알았지?" — "날씨가 좋아지도록 우리 소원을 빌자."